
“신들이 사랑하는 자는 싸우다가 죽는다!
그리고 신들은 리드를 사랑했다.
리드는 시인이자 응원단장이었고,
재치꾸러기이자 볼셰비키였다.
또한 그는 뛰어난 기자였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그의 삶 속에 있었다.”
― 에드윈 저스터스 메이어 ―

기자이자 작가, 혁명가로서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존 리드.
그는 멕시코 혁명, 파업의 현장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 러시아 혁명의 현장 등을 쉼없이 누비며 인류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기록했다.
3세 때의 존 리드의 모습.
자수성가한 자본가 집안에서 태어난 리드는 “귀족적인 회색의 대저택”에서 보모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모리스타운 학교에 다니던 18세의 리드.
그는 이 무렵부터 글쓰기와 미식축구, 잡지 편집, 연애와 장난 등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자기 시대의 영웅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뉴저지 주 패터슨의 파업 노동자들(1913년 봄).
리드는 이 파업을 취재하는 도중 경찰 당국에 체포, 구금되는 등 고초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그는 급진주의자로서 거듭나게 되고,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패터슨 파업을 형상화한 야외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미국 좌파 사회는 물론 주류 사회에까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판초 비야가 이끌던 멕시코 원주민 반군(1914년).
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멕시코 혁명의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존 리드는 분쟁 지역 전문 기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후 그는 당시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기업가들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멕시코 내정에 간섭하던 미국 정부에 맞서 내정 불간섭 및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군 기자로 활약하던 리드(1915년).
리드는 유럽 전역을 누비며 지옥보다 더 참담했던 전쟁의 실상을 기록했다. 그가 묘사한
전쟁의 모습은 이러했다.
“이 전쟁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본가들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존 리드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루이즈 브라이언트(1916년).
날씬한 몸매와 검은 머리카락, 활기 넘치는 회녹색 눈동자, 그리고 기자로서의 야망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는 리드보다 두 살이 많았으며, 리드가 그리던 이상형의 요소를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었다.
수많은 군중 앞에서 혁명의 이념을 설파하고 있는 레닌의 모습.
리드는 트로츠키를 존경했지만, 정말 좋아한 사람은 레닌이었다. 이 대머리 혁명가는 처음에는 존 리드라는 미국인 기자가 “하루는 혁명을 위해 일하고 다음 날은 자본주위를 위해” 일하는 것 아니냐며 미심쩍어했지만, 결국 그의 벗이자 동지가 되었다. 레닌은 리드와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다정하게 그의 건강을 챙겼으며, 그가 죽어 크렘린에 묻혔을 때 진심으로 슬퍼했다.
핀란드에서 투옥 중이던 때에 찍은 사진(1920년).
리드는 핀란드에서 약 3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는 이때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그해 10월에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모스크바의 노동 사원(Labor Temple)에서 영면 중인 리드의 시신(1920년).
존 리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 〈REDS〉의 포스터.
워렌 비티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이 작품은 『존 리드 평전』(아고라)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다. 는 54회 아카데미 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여우조연상, 촬영상을 받았다.
John Reed
세계 저널리즘 역사에 뚜렷이 이름을 남긴 미국의 기자이자, “생산한 자들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공산주의자였다.
존 리드는 1887년에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자수성가한 자본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개척정신과 의협심을 물려받고,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신에게 ‘최고’가 될 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음을 확인한 그는 자유롭고, 자신만만하고, 열정적인 인간으로 자라났다. 1910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메리칸》의 편집자로 언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13년부터 급진적 잡지 《대중》의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1913년 뉴저지 주 패터슨에서 일어난 섬유 노동자 파업을 보도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후로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 멕시코에서 쓴 판초 비야에 관한 기사들 덕분에 기자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종군 기자로 활약하며 전쟁의 비참한 실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세계에 휘몰아치는 ‘전쟁과 애국주의’의 광풍 속에서,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사회 운동의 최전선으로 나섰다. 그는 1917년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후, 페트로그라드에서 기자로서, 그리고 혁명가로서 온몸을 바쳐 일했다. 그는 소비에트 선전국에서 일했으며, 뉴욕 주재 소련 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혁명의 이념을 저버린 사회당 우파에 맞서서, 공산주의 노동당을 창당했다. 그는 공산주의 노동당 창당 후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으러 러시아로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1920년에 모스크바에서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그는 레닌을 비롯한 동지들의 애도를 받으며,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크렘린에 묻혔다.
그는 『멕시코의 반란』 『동유럽의 전쟁』 『붉은 러시아』 시집 『탬벌린』 등을 썼으며, 특히 그가 러시아 혁명을 직접 목격하고 쓴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카탈로니카 찬가』와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세계 3대 르포문학’으로 손꼽힌다.
이 책 『존 리드 평전』은 존 리드의 여러 전기 중 가장 정확하고 뛰어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 〈REDS〉가 제작되었으며, 이 영화는 54회 아카데미 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여우조연상, 촬영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