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자크
・지은이 : 소르주 샬랑동(Sorj Chalandon)
・원  제 : Le petit Bonzi
・옮긴이 : 이주영
・주제별 분류: 문학―소설―프랑스 소설
                       청소년―청소년 문학
・규  격 : 신국판 변형
・면  수 : 336
・가  격 : 9,500
ISBN : 978-89-92055-08-6  03860 
・출간일 : 2007227
 
프랑스 국립고등사범학교가 선정한 ‘2006 최고의 소설’
2006년 메디치 상 수상 작가, 소르주 샬랑동의 화제작
『말더듬이 자크』는 단 두 권의 소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상을 거머쥔 소르주 샬랑동의 데뷔작이다. 이 책은 가난과 따돌림 등으로 인해 말을 더듬게 된 한 소년이 말더듬증을 치료해줄 약초를 찾아 나서면서부터 벌어지는 9일간의 소동을 그린 소설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폭력, 가난에 짓눌린 열두 살 소년의 심리와 주인공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인간적인 교사의 모습이 이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 국립고등사범학교(ENS)에서는 이 책을 ‘2006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하면서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한 번쯤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가했다.
저자 소르주 샬랑동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을 썼다. 샬랑동은 튀니지 태생의 아랍계 이민자로서 가난과 사회적 차별을 견뎌내야 했으며, 아직까지도 말더듬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를 그리는 대신, 어린아이가 부딪치게 되는 현실의 벽과 절망감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샬랑동은 33년간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리베라시옹》의 기자로서, 이 책에서 소외계층과 노동자의 삶, 가난과 실업(失業)이 야기하는 가족간의 불화, 전쟁의 폐해, 학생 한 명, 한 명을 인격체로 대하기 어려운 교육 현실 등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들의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 자크는 1960년대의 도시, 서민 아파트에서 툭하면 주먹질을 하는 아빠와 항상 지쳐 있어서 무슨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엄마와 살고 있다. 항상 혼자 놀고, 혼잣말만 해야 하는 자크는 여섯 살 때 말더듬이가 되어버렸다. 자크의 보물 1호는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수많은 단어들을 적어놓은 단어장, 자크의 유일한 기쁨은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런 자크가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으려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벌이는 눈물겨운 사건들이 이 책의 줄거리를 이룬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자크뿐이 아니다. 솜씨 좋은 미장공이었으나 일을 하다 다쳐서 일자리를 잃은 후로 난폭해진 아빠, 남편과 아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엄마, 다른 교사들과 교육관이 달라 서로 못마땅해 하기만 하는 선생님,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미친 여자 등 자크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능력이 없거나, 마음을 나눌 상대가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또한 자크의 반 아이들 역시 사팔뜨기, 절름발이, 고아 등으로, 자크를 놀리기는 하지만 자크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 소설은 그렇게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와 세상을 향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화해의 과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소설은 결코 장밋빛 미래로 현실을 가리지 않는다. 저자는 결말에 자크를 감싸다 해직당하는 교사와 선생님의 희생으로 희망을 얻게 된 자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희망과 또 다른 불행의 가능성을 동시에 제시하고, 자크가 현실의 아픔을 딛고 한층 더 성숙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힘없고 약한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연민을 가득 담아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삶에 지친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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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사랑하는 자는 싸우다가 죽는다!
그리고 신들은 리드를 사랑했다.
리드는 시인이자 응원단장이었고,
재치꾸러기이자 볼셰비키였다.
또한 그는 뛰어난 기자였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그의 삶 속에 있었다.”
― 에드윈 저스터스 메이어 ―

 

기자이자 작가, 혁명가로서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존 리드.
그는 멕시코 혁명, 파업의 현장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 러시아 혁명의 현장 등을 쉼없이 누비며 인류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기록했다.

 

3세 때의 존 리드의 모습.
자수성가한 자본가 집안에서 태어난 리드는 “귀족적인 회색의 대저택”에서 보모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모리스타운 학교에 다니던 18세의 리드.
그는 이 무렵부터 글쓰기와 미식축구, 잡지 편집, 연애와 장난 등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자기 시대의 영웅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뉴저지 주 패터슨의 파업 노동자들(1913년 봄).
리드는 이 파업을 취재하는 도중 경찰 당국에 체포, 구금되는 등 고초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그는 급진주의자로서 거듭나게 되고,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패터슨 파업을 형상화한 야외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미국 좌파 사회는 물론 주류 사회에까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판초 비야가 이끌던 멕시코 원주민 반군(1914년).
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멕시코 혁명의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존 리드는 분쟁 지역 전문 기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후 그는 당시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기업가들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멕시코 내정에 간섭하던 미국 정부에 맞서 내정 불간섭 및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군 기자로 활약하던 리드(1915년).
리드는 유럽 전역을 누비며 지옥보다 더 참담했던 전쟁의 실상을 기록했다. 그가 묘사한
전쟁의 모습은 이러했다.
“이 전쟁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본가들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존 리드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루이즈 브라이언트(1916년).
날씬한 몸매와 검은 머리카락, 활기 넘치는 회녹색 눈동자, 그리고 기자로서의 야망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는 리드보다 두 살이 많았으며, 리드가 그리던 이상형의 요소를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었다.
 

 
수많은 군중 앞에서 혁명의 이념을 설파하고 있는 레닌의 모습.
리드는 트로츠키를 존경했지만, 정말 좋아한 사람은 레닌이었다. 이 대머리 혁명가는 처음에는 존 리드라는 미국인 기자가 “하루는 혁명을 위해 일하고 다음 날은 자본주위를 위해” 일하는 것 아니냐며 미심쩍어했지만, 결국 그의 벗이자 동지가 되었다. 레닌은 리드와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다정하게 그의 건강을 챙겼으며, 그가 죽어 크렘린에 묻혔을 때 진심으로 슬퍼했다.
 
 
 
핀란드에서 투옥 중이던 때에 찍은 사진(1920년).
리드는 핀란드에서 약 3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는 이때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그해 10월에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모스크바의 노동 사원(Labor Temple)에서 영면 중인 리드의 시신(1920년).

 

존 리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 〈REDS〉의 포스터.
워렌 비티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이 작품은 『존 리드 평전』(아고라)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다. 는 54회 아카데미 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여우조연상, 촬영상을 받았다.

 

John Reed

 

세계 저널리즘 역사에 뚜렷이 이름을 남긴 미국의 기자이자, “생산한 자들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공산주의자였다.
존 리드는 1887년에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자수성가한 자본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개척정신과 의협심을 물려받고,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신에게 ‘최고’가 될 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음을 확인한 그는 자유롭고, 자신만만하고, 열정적인 인간으로 자라났다. 1910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메리칸》의 편집자로 언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13년부터 급진적 잡지 《대중》의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1913년 뉴저지 주 패터슨에서 일어난 섬유 노동자 파업을 보도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후로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 멕시코에서 쓴 판초 비야에 관한 기사들 덕분에 기자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종군 기자로 활약하며 전쟁의 비참한 실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세계에 휘몰아치는 ‘전쟁과 애국주의’의 광풍 속에서,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사회 운동의 최전선으로 나섰다. 그는 1917년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후, 페트로그라드에서 기자로서, 그리고 혁명가로서 온몸을 바쳐 일했다. 그는 소비에트 선전국에서 일했으며, 뉴욕 주재 소련 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혁명의 이념을 저버린 사회당 우파에 맞서서, 공산주의 노동당을 창당했다. 그는 공산주의 노동당 창당 후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으러 러시아로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1920년에 모스크바에서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그는 레닌을 비롯한 동지들의 애도를 받으며,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크렘린에 묻혔다.
그는 『멕시코의 반란』 『동유럽의 전쟁』 『붉은 러시아』 시집 『탬벌린』 등을 썼으며, 특히 그가 러시아 혁명을 직접 목격하고 쓴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카탈로니카 찬가』와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세계 3대 르포문학’으로 손꼽힌다.
이 책 『존 리드 평전』은 존 리드의 여러 전기 중 가장 정확하고 뛰어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 〈REDS〉가 제작되었으며, 이 영화는 54회 아카데미 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여우조연상, 촬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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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조건 많이 읽는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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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매직님께서 오셨을때 함께했던 비세흐라드예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그러기에 더 멋있는 곳이지요.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보는 블타바도 멋있지만, 비셰흐라드에서 내려다보는 전경보다는 못할것 같네요^^



비셰흐라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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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7-03-22 0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잊혀지지가 않아요 ....정말 멋진 !!!!!!!

보슬비 2007-03-24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다른 멎진 곳들도 찾았는데, 다음에 또 함께할 기회가 있겠지요? ^^
일요일에 여기서 미사도 봤답니다.
 

프라하 여행 코스에 '시민회관'과 '화약탑'이 코스로 있답니다.
가보면 조금 아쉬운 감이 있는데, '시민회관'은 이왕이면 레스토랑에 차나 맥주를 마시거나 음악회를 들으러 들어간다면 더 좋을것 같아요.



시민회관



화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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