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닮은 성격은 있어도 똑같은 성격은 없다. 부모의 가장 큰 착각은 아이의 성격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된다.-.쪽
누구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바라보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며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별은 언제나 자신만의 궤도를 갖고 순행해 왔다. 물론 그 중에는 금방 사라지는 것도 있고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것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저 '별' 이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부른다 하더라도, 사실 그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립성과 밝기를 갖고 빛나고 있는 중이다. 우주공간에 떠 있는 별 만큼이나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금방 생을 마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살면서 역사에 이름을 떨친 사람도 있고, 그저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모두를 역시 '사람'이라는 하나의 명사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제각기 독립성과 밝기를 지니고 세상을 살다 갔고, 또 살아가고 있다. . 따라서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입장은 개별성을 인정하는데서 부터 출발해야한다-.쪽
별이 위치와 밝기, 크기로 자신의 개별성을 입증하고 있다면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로 남과 다른 자신만의 존재를 드러낸다. 취미와 특기, 습관과 버릇, 직업과 옷 입는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라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잠버릇은 다 다르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것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이름이나 나이를 대지 않아도 나의 개별성을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외모나 환경으로 구분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성격이라고 부를 수 있다. 누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키와 몸무게는 얼마이고, 쌍꺼풀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제외한 특유의 성질과 품성이 바로 성격인 것이다. 이 세상 누구도 나와 성격이 똑같은 사람은 없다. 물론 기호나 취미가 비슷한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성격이 차지하는 의미가 더욱 크다. 따라서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성격과 세계를 가지고 있다-.쪽
"우리가 삶에서 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서 비롯된다. 재충전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 을 비우고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빈 그릇이 되는 것이며, 한쪽 손을 들고 축 복을 받은 후에 다른 손을 열어서 그것을 통해 그 축복이 다른 이들의 삶 속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베어하트(Bearheart),《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중에서-.쪽
연암 박지원의 친구 가운데 유련이라는 장서가가 있었다. 장서가란 책에 대한 사랑이 워낙 지극한 법이어서, 소장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오래도록 보존하려고 들게 마련이다. 그 또한 마찬가지여서 정교한 도장을 만들어 그것을 책마다 찍어두어 자신의 소유임을 후세까지 알리고자 하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연암은 이렇게 충고한다. 그대가 고서를 많이 쌓아두고 절대로 남에게는 빌려주지 않으니 어찌 그다지도 딱하십니까? ...... 대저 천하의 물건은 대대로 전할 수 없게 된 지가 오래입니다. ...... 그런데도 그대는 오히려 몇 질의 책을 대대로 지켜내겠다고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책은 정해진 주인이 없고, 선을 즐거워하고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이를 소유할 뿐입니다. ......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을 가지고 어짊을 보태나니, 그대가 만약 어짊을 구한다면 1천 상자에 가득한 책을 벗들에게 주어 함께 닳아 없어지게 함이 옳을 것입니다. 책을 진정으로 소유하는 방법은 벗들에게 주어 닳아 없어지게 하는 것이다? 연암 특유의 패러독스가 돋보이는, 실로 멋진 말이다. -.쪽
밤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밤잠 잘 자는 사람들, 세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간이 어둠의 시간과 빛의 시간으로, 즉 쉬는 데 써야 하는 밤과 움직이는 데 써야 하는 낮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 괴롭기만 하다. 밤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도는 유목민이다. 그러니 요즘 같은 세상에선 거주지를 제한당한 집시처럼 신세가 처량할 수밖에. 하지만 일단 그들만의 호텔, 접이식 의자가 침대를 대신하는 '야간열차 호텔'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들은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그래서 야간열차 안은 아랍의 시장 바닥처럼 술렁거린다. 복도는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빈다. 이미 친한 사람들,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과거에 작별인사를 하고 미래를 마주하며 무자비한 현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느라 분주하다. 단골손님이라야 제대로 찾아올 수 있는 이 호텔에서는 꿈과 사색과 명상이 제자리를 찾는다. 지나치게 낮만 중요시하는 사회, 사람들이 자신만의 내밀한 영역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 사회가 불법적인 것으로 여겨 내칠 위기에 처한 그 모든 것들이.-.쪽
과학자들이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에게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는 아마 폴 랑주뱅Paul Langevin의 '쌍둥이 형제 패러독스'일 것이다. 가령 쌍둥이 형제 중 한 사람만 열차로 여행을 떠나고 나머지 한 사람은 플랫폼에 남는다고 가정할 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가만히 있었던 사람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덜 늙어 있다는 것이 쌍둥이 형제 패러독스의 내용이다. 떠나는 건 자신을 죽이는 거라고? 상대성이론은 이 케케묵은 속담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떠나는 건 자신을 살리는, 즉 조금 더 오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간관념이 다르다고 말하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열차 여행, 그것도 야간열차 여행을 즐기는 사람의 인생은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서 한층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철도는 요즘 세상에 몇 안 되는 특별한 순찰로, 시간의 틈새를 살펴볼 수 있는 순찰로니까. -.쪽
열차, 그중에서도 야간열차 덕분에 나는 느림에 대한 욕구를 맘껏 발산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잃어버렸던 그 소중한 것을 되찾은 후 나는 글쓰기에 뛰어들었고 지금껏 그 속도에 맞춰 글을 써오고 있다. 열차 안에선 느림이라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거나 죄악시되지 않는다. 거기선 뭔가를 '한다'는 게 쓸데없는 짓이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해서 열차는 나름대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한다. 활동가들은 '무위'에 빠져들고 몽상가들은 활동가들의 재촉과 불평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물론 낮 시간대에 운행되는 열차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건 열차라기보다는 오히려 지하철에 가깝다. 승객들은 디브이디 플레이어로 영화를 감상하거나 노트북으로 회계업무를 처리하거나 휴대전화기로 주식시장에 주문을 외친다. 야간열차에는 이런 야단법석과 완전히 딴판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공원의 벤치나 흔들의자, 등대의 난간처럼. 야간열차는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룰 수도 있을 그런 꿈을 엿보며 천천히 노닐 수 있는 산책로다.-.쪽
어떤 종류의 여행이든, 여행은 즐거운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