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정치는 修辭라지만(고종석)

 

2006. 4. 13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604/h2006041220505239780.htm

[고종석 칼럼] 정치는 修辭라지만

“국민의 대지 위에 따뜻한 봄 햇살을 비추고 입을 맞추어야 한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해찬 당시 총리의 경질을 건의하며 했다는 말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말인 것도 사실이다.

정 의장의 속생각을 캐자는 게 아니다. 진심을 담아 한 말이었으리라 믿는다. 내 주의를 끈 것은 정 의장의 수사학이다. 말로 하는 대화에까지 고개를 들이미는 그의 수사학 말이다. 글이나 대중 연설에 저런 말이 나왔다면, 그러려니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 의장이 이 말을 한 것은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면서다.

그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엔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만 배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거의 ‘독대’라고 할 수 있는 은밀한 자리다. 이런 자리에서 저런 장식적 화법을 쓰고 있는 정 의장을 상상해 보라. “대통령님! 국민의 대지 위에 따뜻한 봄 햇살을 비추고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부교감신경계에 탈이 난 사람이 아니라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부자연스런 감성적·장식적 발언

정 의장은 대통령 한 사람이 관객인(이병완 실장까지 포함시켜도 관객이 두 사람 뿐인) 무대에서 연극을 했거나 연설을 한 것이다. 여느 사람이라면 저런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대통령님, 여론을 따라야 합니다.” 이 말이 정 의장 말보다 한결 깔끔하고 또렷하지 않은가? 정 의장은 왜 깔끔하고 또렷한 표현 대신 장식적이고 아리송한 표현을 썼을까?

가능한 추론은 둘이다. 첫째는 정 의장 말투가 원래 그럴 가능성이다. 둘째는 그 말을 대통령에게 한 것이 아니라, 이 전 총리한테 화가 난 유권자들에게 했을 가능성이다.

대통령과 만난 뒤 우상호 당 대변인을 통해 이 말을 기자들에게 널리 알린 걸 보면, 두 번째 추론이 더 그럴 듯하다. 그러니까 정 의장은 대통령 집무실을 무대(연단)로 삼아 유권자들을 향해 공연(대중연설)을 한 것이다.

어쩌면 둘 다일지 모른다. 11년 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진지하고 공감 어린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신 일급 방송 앵커 출신 정치인답게, 다중을 염두에 둔 감성적 장식적 발언은 정 의장에게 제2의 천성인지도 모른다. 유권자들도 정 의장의 이런 수사 취향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이 천성은 정치가 쇼비즈니스로 변한 이 오디오-비주얼 시대에 북돋아야 할 정치적 재능인지도 모른다. 그

러나 이렇게 알맹이가 빈약한 감성적 발언들이 우리 사회의 정치담론 수준을 초급 수사학 교실에 묶어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 언설은 많은 부분을 수사학에 의지하게 마련이지만, 좀더 세련되고 성찰적인 수사학을 보고 싶다.

물론 알맹이 없는 구호에서 정 의장에게 결코 지지 않을 사람들이 한나라당에는 수두룩하다. 제게 정치적으로 불리하다 싶은 일만 생기면 난데없이 ‘국가정체성’을 되뇌는 이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의 고장난 라디오가 떠오른다.

전류는 흐르는데 주파수 동조가 잘 안 돼 지지거리기만 하는 고물 라디오 말이다.

●주류 우파 슬로건엔 독설만 가득

이들은 ‘국가정체성 수호’를 외칠 뿐 그 국가정체성의 실속이 무엇인지는 살갑게 알려주지 않는다.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면서도,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데는 결사반대다. 이들은 슬로건의 속살을 여권에 대한 독설로 채운다. 말이 독설이지 이들의 행태는 인격 살해에 가깝다. ‘치매’니 ‘등신’이니 하는 말이 예사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민주화돼 ‘말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자기위안이 무참할 정도다.

세계 정치사에서 장식적 말투나 독설은 주로 좌파 세력의 기호품이었다. 지금 한국에선 이런 수사학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주류 우파 정치권에 주로 포진해 있다. 유일한 원내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발언이 외려 덜 장식적이고 더 기품 있는 것은 우리 정치 지형의 앞날에 축복일까 재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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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인슈타인이 산 황우석에게
세계의 사회주의자 ① - 알버트 아인슈타인

“기껏해야 과학은 (사회윤리적) 목적을 이루는 도구를 제시할 뿐이다. … 우리는 인간의 문제에 관한 한 과학과 과학적 방법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 우리는 사회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단지 전문가뿐이라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불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당대 과학자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반세기 전에 이런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과학은 시민사회가 참견해서는 안 되는 어떤 ‘성역’이 결코 아니며 과학과 과학자의 전문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언제든지 제2의 황우석 사태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한국사회는 아인슈타인의 지적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근원”

과학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는 같은 글에서 아인슈타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진정한 근원이다. …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거장 아인슈타인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글의 제목은 아예 '왜 사회주의인가(Why Socialism?)'이다. 이 글은 1949년 5월 미국의 좌파 월간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창간호에 실렸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로만 알려져 있는 아인슈타인이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며 매카시즘(1950년대 초반 미국의 반공주의 열풍) 이전부터 미국 정보당국의 표적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순수과학자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병역거부, 핵무기 개발 중지를 주장한 전투적 평화주의자로, 자본주의 체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실천적 지식인으로 자신의 신념을 공공연히 밝히며 살았다.

CIA 표적이 된 천재과학자

   
▲ 유년기의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 울름 지방에서 유태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위스 취리히의 연방 종합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1902년 스위스 특허청에서 3급 기술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인슈타인은 1905년 26세의 나이에 그의 세 가지 대표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브라운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 열의 분자운동론, 빛이 마치 입자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물질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광양자설과 질량에너지등가원리(E=mc²)로 잘 알려진 특수상대성이론이 바로 그 세 가지다.

과학계에서 1905년이 ‘기적의 해’로 불리고 아인슈타인이 ‘천재’로 불리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수상대성이론 발견 100년이자 아인슈타인 사망 50주기였던 지난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리의 해’로 전 세계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됐다. 특히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4월 18일 그가 말년을 보낸 프린스턴에서 시작된 빛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세계 빛의 축제’가 진행되기도 했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지만 그의 이론은 1919년 영국의 관측대에서 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빛의 굴절을 실험으로 측정하면서 확증됐다.

“과학자들은 무기개발 동참 말라”

이때부터 아인슈타인의 화려한 명성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과학자로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과학적 업적을 통해 얻은 지위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과학 외적인 분야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인슈타인의 정치적 활동은 그의 학설이 인정받기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 유럽문화를 지지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유럽인에게 보내는 선언문> 서명에 참여했다.

또 종전이후 아인슈타인은 전범문제 연구를 위해 모인 '독일 6인 지식인 위원회'에 합류하고 1922년에는 국제연맹의 지적협력위원회에 참가했다. 패전국 독일이 국제연맹 가입국이 아닌 상황에서 그의 활동은 독일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아인슈타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931년 국제반전주의자협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아인슈타인은 전세계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데 동참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그는 또 "집단적인 삶이 가장 부정적으로 표현된 군대를 혐오한다"며 평화주의자들에게 병역거부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전세계 노동자들이 전쟁의 도구로 전락되는 일이 없도록 연합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히틀러 집권 2주 전 미국 망명

이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득세하기 시작하자 아인슈타인은 1932년 독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에 "독일국민이 무시무시한 파시스트가 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힘을 합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공동 서명했다.

하지만 경고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그해 7월 나치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해있던 프러시아과학아카데미를 탈퇴하고 1933년 1월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가 미국에 도착하고 2주 뒤 히틀러는 독일 총통이 됐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정치적 발언 가운데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러시아공산당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는 유보적이었지만 1917년 10월 혁명의 목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레닌에 대해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해 온 정열을 바치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미 극우세력, “아인슈타인은 세상 최고 사기꾼”

그는 1950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공산주의자가 된 적이 한번도 없지만 내가 공산주의자라 해도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아인슈타인의 이같은 태도는 매카시즘의 표적이 됐다. 2차대전 후 미 하원의 극우파들은 “이 세상 최고의 사기꾼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수년 전부터 공산주의자로 활약해 왔다”며 “지금 그가 퍼뜨리고 있는 허튼 소리는 공산당 노선의 이행일 뿐”이라는 악선동을 퍼부었다.

아인슈타인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하원 반미활동 위원회'의 조사로 인해 미국 사회의 민주적인 특성이 이미 상당히 훼손됐다"고 지적했을 뿐 아니라 간첩혐의를 받은 동료 과학자들의 사면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1953년에는 상원 국내안보소위원회의 마녀사냥에 맞서 동료 과학자를 비롯한 미국의 지성인들에게 증언을 거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싸우는 평화주의자”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아인슈타인은 그가 스스로를 규정했듯이 "호전적인 평화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1939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루즈벨트에게 독일에 맞서 원자폭탄을 제조해야 한다는 편지에 서명한 과오를 저질렀다. 나치에 대한 증오심이 남달랐던 아인슈타인으로서는 히틀러 정권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 사용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2차대전 후 아인슈타인은 이를 "내 생전에 저지른 한가지 실수"라며 죽는 날까지 후회했다. 그는 마치 유언을 남기듯 1955년 4월 11일 숨을 거두기 며칠 전에 버트란트 러셀과 함께 작성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통해 "인류라는 생물의 씨앗을 근절시켜 버릴 사태를 불러일으킬 핵무기를 만드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중단돼야 한다"고 호소하고 생을 마감했다.


아인슈타인 vs FBI
22년간 수집된 ‘아인슈타인 파일’ 1800쪽


1924년부터 1972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8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 공산주의자 검거로 악명이 높았던 후버 국장은 아인슈타인의 미국생활 22년 동안 아인슈타인이 주고받은 편지를 검열하고, 전화를 감청하고, 그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수집했다.

무려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FBI의 ‘아인슈타인 파일’은 미국의 정보당국이 이 천재과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얼마나 면밀히 감시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파일에서 FBI는 아인슈타인에 대해 “1947년부터 1954년까지 34개 공산주의 단체의 회원, 후원자 또는 관련자였다”고 지목하고 있다.

또 후버 국장은 아인슈타인에 대해 “미국 내 주요 공산주의운동을 후원”했고 “독일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던 1923~1929년 기간동안에도 아인슈타인의 집은 공산주의자들의 본거지이자 회합장소로 알려져 있었다”고 썼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미 당국의 수사는 그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히틀러가 집권을 앞둔 1932년 망명을 결심한 아인슈타인은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안 받아 미국에 입국비자를 신청한다. 이때 ‘여성애국자협회’라는 이름의 한 극우단체는 국무부에 “아인슈타인이 반전주의자이며 공산당,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 단체 등에 가입했다”는 내용의 16페이지짜리 투서를 보냈다.

투서를 받은 국무부가 베를린의 미 영사관을 통해 아인슈타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자 아인슈타인은 격분을 참지 못했다. 당시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조사라니? 나는 그런 멍청한 질문들에 답할 생각이 없다. 내가 (입국을)요청한 것이 아니라 당신네 나라에서 나를 초청한 것이다. 당신네 나라에 용의자 신분으로 입국해야 한다면 나는 전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화를 냈다. 언론에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당황한 국무부는 바로 다음날 아인슈타인 가족의 비자를 발급했다.

아인슈타인이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군과 싸우는 공화파 정부를 지지한 것을 비롯해 일련의 정치적 활동이 FBI에 의해 기록됐다. 2차 대전 이후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아인슈타인에 대한 감시는 더욱 심해졌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FBI에 의한 감시를 눈치 채고 있었다. 그는 1948년 어느 날 열린 파티에서 주미 폴란드 대사에게 “당신도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미국은 더 이상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며 우리의 이 대화도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방에는 도청장치가 돼 있고 우리 집은 면밀히 감시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의 대화내용 역시 FBI 파일에 담겨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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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성범죄 예방 기제 도입의 위험성

성범죄 예방 기제 도입의 위험성
- 강화된 형벌과 감시는 여성의 시민권을 보장하는가?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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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한 법의 개입과 여성의 현실

작년 말 부터 여러 건의 성폭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로 용산초등학생 사건, 속칭 발바리 사건 등 아동에 대한 강간 살해, 성범죄 재범, 연쇄성폭력 등 ‘잔혹한’사건이 집중적으로 공개되어 왔다. 이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듯 논의의 방향은 처벌과 사후제재의 강화에 맞추어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성폭력 특별법의 개정, 아동성폭력 관련법의 별도 제정, 성범죄자 전자 팔찌 착용, 외출제한, 주거지역 내에 범죄사실을 공표하는 방안 등의 조치들이 제안되어 검토되고 있다.
성폭력에 대한 많은 역사적 문헌들을 통해 두 가지 주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성폭력이 범죄로 정의되고, 그것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판결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성폭력 희생자(여성)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시선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성폭력이 범죄로 인식되고 공적 처벌의 대상이 된 이후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한 성폭력보다 아동성폭력은‘극악무도한 범죄행위’로 인식되고 집단적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연관되는데, 근대적 가족 개념이 생겨나고 산업화에 따른 아동에 대한 보호와 관리 방식의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인식을 전제한다면, 성폭력에 대한 법의 개입은 여성의 시민권이 최소한 법적으로 보증되고, 성폭력이 권리의 침해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확대에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성폭력이 범죄로 인식되고 법적인 범죄성립요건도 완화되어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도 처벌 대상이 되었지만, 현실에서 성폭력에 대한 고소, 유죄 판결의 비중은 이에 상응할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성폭력을 다루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은 폭력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 등의 사회적 변화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성폭력의 법적 처리는 때로‘공적 강간’의 효과를 내거나, 피해자와 잠재적 가해자로 추정되는 집단에 대한 통제장치,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해 왔다.

(성)범죄예방이라는 관념의 이면

최근 사회적으로 논쟁 중인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제재의 강화는 비단 한국에서 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이중 특히 영국과 미국의 법, 제도는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 감시 방안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다기관공공보호연합(MAPPA)이라는 체계를 설치하여 성범죄자를 포함한 살인, 강도, 방화 등 이른바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광범하고 체계적인 관리와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와 모든 주 정부는 1994년에서 1996년 사이, 성범죄자가 공개된 명부에 이름과 각종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범죄사실을 지역사회에 공표하도록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한 메건법(Megan's law)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강화 뿐만 아니라, 사후통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변화가 범죄의 예방이라는 관념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관념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후 처리를 넘어서 적극적인 사전개입 - 관리를 지향하는 형태로 사회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그 수혜로부터 배제된 집단을 관리하기 위해 시장기능을 사후적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온 사회정책을 적극적 관리, 통제정책으로 변모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기조 하에서 이른바 사회적 위험 요인인 범죄에 대한 규정은 사회통제 정책에 의해 역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성범죄자에 대한 감시의 강화는 다양한 범죄행위, 나아가 신자유주의가 제안하는 사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적 부적응 행위에 대한 통제 - 감시의 한 형태로서 나타난다.
여기서 제기되는 쟁점은 범죄를 예측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와 같은 관념이 낳는 효과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이와 같은 목적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의 경험과 그 방법으로부터 역으로 추론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영국 MAPPA나 미국 메건법의 사례가 보여주듯, 범죄예방은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각종 정보의 해석,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범죄자의 잠재성을 의심하는 동시에 잠재정의 근거로 규정된 사회 - 경제적 요소들을 가지는 개인들을 사회, 집단의 위협으로 암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범죄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체계 안에 경찰, 보호관찰관 등 치안과 법률을 담당하는 전문가 외에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등이 포함되는 것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다. 따라서 범죄예방은 사실상 법적 처벌을 이미 마친 범죄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강화라 할 수 있다. 전자감시 장치, 체계적 관리시스템의 도입과 같은 조치의 확대는 법적 처벌이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로서의 형벌이 아닌, 일종의 중화장치로 변모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범죄자들에 대한 재활, 치료 등의 명목으로 이루어지는데, 시민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다루어지고, 형벌은 일반화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형벌제도의 변화, 시민의 잠재적 범죄자화는 역설적이게도 시민들을 잠재적 피해자, 감시자로 호명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범죄자에 대한 사후제재는 범죄자의 정보에 대한 시민의 접근도를 높이는 형태의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데, 이로써 시민은 범죄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은 성범죄자, 나아가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제반 정보를 구축하고 있는 홈페이지 등의 공개적 장치를 주요한 기제로 삼고 있으며, 영국의 'Watch out'과 같이 시민들이 감시시스템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발적인 주체로 나서고 운동적 해결을 모색하는 가능성을 억압하며, 국가 관리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역할을 하도록 관리, 통제하는 신자유주의 사회통제정책의 지배적 경향이다. 시민들이 범죄자,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수행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국가가 강제하는 사회적 규범,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된다.

더 많은 형벌과 감시를 불러올 성범죄 예방 정책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자들에 대한 언론보도나 정부의 접근 방식 역시 위와 같은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일 계속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와 집단적 분노의 분위기 속에서 범죄자 개인이 가진 특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증대했다. 빈곤, 여성혐오, 해체된 가족 등 (사실 한국 사회에 이미 충분히 일반화되어 있는)그들이 가지는 사회 ․ 경제적 배경과 조건은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는 주요한 근거로 제시되며, 이로써 범죄자의 잠재성의 조건이 출현한다. 이러한 잠재성을 제거, 예방하기 위해 전자 팔찌 착용 , 직업 및 활동 시간 제한 등 범죄자에 대한 각종 통제 장치의 도입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범죄자의 조건에 대한 탐색은 특히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가장)의 역할 붕괴 등 가족과 관련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인다.‘모성결핍이 성범죄 부른다’는 언론보도 제목으로 상징화된 이러한 접근은 이른바 비정상적 가족에서의 성장, 또는 현재의 그러한 조건이 여성혐오,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관념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최근 드러난 다수의 성폭력이 (정상적인 가족의 일차적 보호의 대상인)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성폭력의 법적 처리 강화, 성범죄 예방 기제의 도입은 시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접근은 성폭력이 범죄로 규정되고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성폭력과 그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수정하고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여성의 시민권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더 많은 형벌과 감시를 요구하게 할 뿐이다. 성범죄 예방이라는 관념이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참고자료-성범죄 예방 제도들>
1990년대를 거치며 많은 국가들에서 성범죄자 처벌과 제재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어 왔다. 주요 국가들의 제도변화는 다음과 같다.
스위스의 경우 2004년 성범죄자를 영구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법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성범죄가 아동-청소년과 접촉하는 곳에 취업을 못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관리하는데, 유죄판결 받은 사람은 물론, 기소되지 않은 성범죄자도 5년까지 관리 명단에 포함된다.
영국의 경우 2005년 13세 이하 어린이 성범죄를 무기징역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섹스법(sex law)의 초안을 작성했다. 영국은 이에 앞서 상습적 성폭행, 살인, 방화, 무장 강도, 유괴 등의 이른바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관리 공조체제인 다기관공공보호연합(MAPPA) 설치,운영해 왔다. 2003년 당시 총 52,800 여명이 관리대상이었으며, 이중 성범죄자는 21,400여명에 이른다. 범죄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위해 직원, 경찰, 보호관찰관,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교도관 등이 공조, 범죄자에 대한 위험성 분석과 재범 예측 평가를 수행한다.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관리 데이터베이스(ViSOR)로 정보를 공유하고, 자동위치 추적 장치를 통해 일상적 감시가 이루어진다.
미국의 메건법(Megan's law) 제정 과정은 최근 용산 초등학생 강간살해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 1994년 뉴저지주에서 메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7살 소녀가 성범죄 전력을 가진 이웃에게 강간, 살해 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메건의 어머니와 지역주민들이 나서서 메건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뉴저지주에서 제정된 메건법은 법집행기금 지원을 조건으로 한 연방정부의 지침에 의해, 1996년까지 미국으로 모든 주로 확대 제정 되었다. 각 주마다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메건법은 성범죄자 등록과 지역사회에 범죄사실을 통지하는 것에 대한 규정을 필수 조항으로 한다. 또한 미국은 2000년 7월 아동성범죄 재범 이상인 자를 무기징역에 처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투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였다. 다양한 감시체제가 각 주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켈리포니아의 경우 전자족쇄 법안이 발의, 11월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며. 상원에서는 성범죄자에게 25년형을 선고하는 법안이, 하원에서는 3범 이상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법안이 준비 중이다.
2006년04월12일 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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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논객 이규태와 진중권 효과
[쟁점] 진중권식 글쓰기 '파시즘 분쇄효과' Vs '문명과 문화 퇴행' 현상

깊은생각/무위

* 무위의 "이규태와 진중권: 장인정신과 멧돼지정신의 충돌"이란 기사에 대해 대자보 독자이신 '깊은생각'님이 이규태식 글쓰기의 한계와 진중권식 글쓰기의 의의를 제기하며 반론했고, 이에 무위의 재반론 등이 이어졌습니다. 본문에 대한 독자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조선일보식 글쓰기 이규태와 진중권 효과 / 깊은생각

이규태씨가 거의 20여년 '이규태 코너'를 연재한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점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도 하나의 주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실을 '주장'에 맞출때 문제인데, 제가 보건데 고 이규태씨도, '지하 서가'를 마련하고 엄청난 자료를 읽으면서 '행복한 글쓰기'를 한 '대단한 분'이라는, 고 이규태님의 '권위'에 대한 또 다른 무위님의 '논증'에도 불구하고, 그의 짧은 글 조차 조선일보식이라는 것이기에 생명이 길게 이어졌다고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분 스스로 조선일보의 편집위원이기도 했지만, 요컨데 요즘 유모 논설위원처럼 현 정부의 말만 요란한 '양극화 극복' 방책이 무슨 좌파정책인양 '오렌지색 정책'으로 색칠하는 그럼 사람아니었나 하는 것입니다. 안그랬다면 조선일보에 계속 글을 쓸 수 없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보는 이규태 코너의 문제점은 바로, '넓고 얕게 자료수집에 바탕한 글'이면서 조선일보식의 사고방식에 '딱 들어맞는' 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이를테면 '한국사람은 엽전이다'라는 식의 사람들속에 마치 전통상식처럼 떠내려오는 것들을 건져올리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아랍인들은 일반적으로 테러기질이 있다'이런 테제를 입증하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앵글로 색슨과 유태인은 날때부터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과연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탱크와 전투기와 소총 등을 배에 잔뜩 싣고와서 나라의 시작을 '전쟁'으로 치루어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아니었나요? 그때 그 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들이었고? 마찬가지로 '원주민의 땅' - 원래 땅주인을 백인들은 인디언이라고 하는데 적절한 이름은 아니죠 - 을 이런 저런 수단으로 - 때로는 돈과 물건 근본적으로는 기병대를 동원한 점령 - 의 방식으로 차지한 사람들이 북미에 이주한 '백인'들 아니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 그 사람들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딱지붙이기'가 성행하는 것 아닙니까? 가령 히틀러가 게르만의 우월성을 내세워 '유태인과 슬라브인 박멸, 그들의 땅에 게르만 거주지 건설'을 말했고, 남의 나라 얘기할 것 도 없이 훈요십조의 '왕건'은 '호남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말해 놓지 않았습니까? 요컨대 특정한 목적에 의해 '조작된' 이데올로기를 무슨'원래 그런' 진리처럼 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글을 쓸 때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 또는 남방불교식으로 말해, '선법'을 키우고 증강하는 방향으로 세워나가야 하죠!
 
남을 해치려는 마음, 적대감, 편견, 비하, 우월감의 과시 이런 것들을 드러 내는 글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테러리스트' 기질은 아랍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내재된 '원래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교육'을 하는 까닭은 그와같은 '내재된 속성'을 바꾸거나 지우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이스라엘 대사가 연세대 강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말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죠. 그 이스라엘 사람들, '유태인들 내부의 민주주의'는 정말 철저히 잘 제도화 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에 대하여 '비민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것 참 쉽겠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히틀러'가 웃을 것입니다. 너희들, 내 욕하더니 결국 '나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니. 봐라, 그게 원래 그런것 아니니. 이런 생각을 '진리'로 품고, 다른 가치 지향들을 '도덕 교과서속의 헛소리' 쯤으로 여기는 '세계관'이 다위니즘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바로 이 지점! 다위니즘적 관점에 서면 '윤리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 쓸데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진중권의 글쓰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두가지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다름아닌 잘못 조형된 이데올로기의 '해체' - 이는 시민적 상식의 재건축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죠. 둘째는 '시민적 윤리성'의 새로운 확립. 이런 지점에서 이규태와 진중권을 '장인정신과 멧돼지 정신'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규태'의 장인정신이 20여년 이상 '아무탈'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만큼이나, '진중권'의 멧돼지 정신이 왜 '필요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죠. 이규태의 '장인정신'은 그의 시대 - 1983년부터라니까 정확히 '신군부의 독재'시대 - 와 아무런 '불화'도 없었던게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민주화 시대'에도 그랬겠죠. 이 지점 바로 보아야죠. 아니, 더 알아 보아야 하겠지만, 어쩌면 '민주화 시대'에 아주 약간의 '불화'를 겪지 않았을까요.
 
요컨대 이규태님의 글 자체는 글자 그대로 '민속학지'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이데올로기'에 딱 맞는 그런 것이었다면 지나친 얘기인가요? 이 때문에 '학계'에서 그의 글을 그냥 '그러려니'하고 '연구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것 아닐까요?
 
무위님. 그 '많이 읽은 책들' 인용해서 긴 글 써 보아야 읽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요컨대 진중권이 '무엇을 목표로 왜 그런' 글을 쓰는지 알아야 '멧돼지 정신'이라고 딱지 붙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이규태씨가 왜 그런 글을 그렇게 오래도록 '시대와의 불화'따위 없이 '조선일보'에 세상을 떠나기 사흘전까지 쓸 수 있었는지 알아야 그것에 대하여 '장인정신'이라고 '높이 평가 할 수 만은'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위님의 이번 글은 결국 '나도 진중권 당신 만큼 많이 알아' '당신의 이규태 비판은 멧돼지 처럼 달려들어 물어 뜯는 것 뿐이네' '이규태님은 그런 당신의 돌격에 닿지 않는 장인정신 속에 고고하시다네' 이걸로 끝납니다.
 
무위님의 글은 '경제를 심리로 환원하는 최용식씨과 참여정부'에 대한 인식비판에서 아주 빛났습니다. 이번 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중권 현상은 문명과 문화의 퇴행 / 무위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또 달라야 합니다. 제가 오랜 짐을 덜어냈다고 표현했듯이 진중권이 이규태를 공격한 글을 읽자 마자 바로 가지게 되었던 내 마음의 짐이 이제야 움직임을 보이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규태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를 비방하고 마음대로 말하면서 폭언을 일삼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진중권 현상>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문명과 문화의 퇴행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남의 눈에 든 티는 보면서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잘 못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 글을 다 퇴고 하고 나면 더 이상 진중권에 대해서 쓰고 싶은 생각이 안 생길 지도 모릅니다.
 
몰라, <진중권과 파시즘>이나 <욕설의 경제학, 욕설의 미학>이란 글이 완성되면 진중권이란 이름이 몇 번 정도 더 등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하여간 <진중권 현상>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그 주역인 진중권을 거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규태의 글쓰기는 정치적인 글쓰기가 아닙니다. 20년이나 넘게 비정치적인 글쓰기를 해 왔다는 것은 어쩌면 기회주의적인 속성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보고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파시즘입니다. 정치적인 것은 십년을 못가지만 문화적인 것은 100 년을 넘어 영원히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규태의 가치가 새록새록 새싹 돋듯이 돋아서 큰 나무로 자라날 것은 확실합니다.
 
이규태의 글 쓰기는 아래에 제가 가지고 온 딱 이 수준입니다. 검색창에 '개고기'라고 쳐 보면 나옵니다. 자료와 방증에 치밀하고 가급적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선동식의 글쓰기보다 이런 글의 가치가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이규태가 세월이 지나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말미에 그냥 이렇게 툭 던져놓고 황급히 끝맺고 있음은 아마 할당된 원고지 제한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브리지트 바로도가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풍속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은 문화 제국주의의 횡포다, 또는 한국 사람들의 개고기 먹는 풍속은 야만적이다. 이런 표현이 어디에도 안나옵니다, 이건 진중권이 폭력으로 인종주의 망언 운운했던 그 글 또한 이런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
 
이규태 [바르도와 개고기] 조선일보 2001년 12월5일 ===== 개고기의 유래
개는 인간이 사육한 최초의 가축으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개 뼈가 출토되고 있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6畜은, 소, 말, 양, 돼지, 개, 닭 6가지를 나타내며 이것은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고, 우리 나라 에서도 개는 6축의 하나로 선사시대부터 가축으로 길러 고기를 취하였다. 고구려시대 에는 매적이라는 불고기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하여 육식을 멀리 하였으나 몽골 침략의 영향으로 다시 육식이 성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 개고기를 먹은 공자의 영향으로 선비들도 개고기를 마다하지 않게 되어 개고기 식용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다. 조선시대에는 누구나 개고기를 먹었고, 어느 푸줏간에서나 개고기를 팔고있었다. 현재 보신탕 집에서 팔고있는 메뉴는 보신탕, 수육, 전골, 무침, 두루치기 정도이다. 다른 음식은 거의 없어졌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개고기라한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대중적인 음식으로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복날에 개고기는 다른 고기들과 달라 기후 절기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프랑스에서도 1692년부터 3년 여간 지속된 이상기온 때 수많은 이들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의 파리 푸줏간에는 개고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규태[바르도와 개고기] 조선일보 2001년 12월5일 끝
 
저는 개고기를 입에도 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이 불교를 믿는 관계로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개고기를 매우 즐기는 데 몇 번이고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유혹했고 따라가서 침까지 꼴깍 넘어 왔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효자라거나 개고기 먹는 것을 야만적인 풍속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저 일생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서 개고기 하나 정도는 안먹고 살아도 큰 손해나 억울함이 아니고 어머니도 싫어하는데 뭐하려고 굳이.... 정도의 생각이 전부 입니다. (참고로 전 거의 모든 음식에서 가리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먹고 또 대식가입니다) 단 개를 잡을 때 맛을 낸다는 이유로 패는 풍속은 우리 인간의 잔인성을 표출한다는 측면에서 반대합니다만.<=== 이 내용은 진보누리에 쓴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전기 쑈크로 죽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가지 '나도 진중권 당신 만큼 많이 알아'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현 상태로는 절 모독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저 말고도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날 사람이 국내에도 매우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해 온 목적이 고작 저 수준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계속 발전하기에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지금은 아닙니다. 전 인간의 지능은 20대 중반에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폐활량이 높아서 산소가 뇌게 가장 많이 공급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영화에서 세계 명작 영화는 대개 20대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멋대로 살아라'라는 영화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진중권이 극우 멘탈리티를 연구하고 파시즘을 연구했다고 하는데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대로 진중권의 과거 행적은 파시스트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파시즘의 기본 속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파시즘의 근본 속성과 핵심은 '분리와 차별'에 있습니다. 어떤 집단을 분리시켜 우월과 열등, 선악으로 분리를 시킨 후 차별이라는 폭력을 행하지요. ( 물론 이건 어느 책에서도 보지 않은 순수한 제 생각이니 동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 나라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히지만 거기서 분리와 차별을 빼놓으면 파시즘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 이야기는 책에서 해야 하는데 님이 진지하게 나오시길래 미리 밝히는 겁니다 )
 
분리한 집단에 폭력을 가하기 위해서 이름(딱지라고 하나요)이나 이유를 갖다 부치지요.
 
진중권이 그간 해 온 행적을 보시면 딴나라빠 열우빠 민노당 황빠 황까 망언 기타 온갖 명명을 해 왔지요. 그러면서 온갖 언어 폭력을 가하지요. 그런 폭력을 행하는 방식도 논리와 이유가 아닙니다. 그저 그건 극우고 파시스트고 망언이고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고 ..... 네오파시즘이고 구술문화고......솔직히 너무나 한심하지 않습니까?
 
제 글에는 특별한 정치적인 목적이 없습니다. 전 독자보다는 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서 글을 씁니다. 물론 한 명이라도 제 글이 더 읽혀져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앞으로 2-3년 후면 한국의 모든 종이 신문의 총 매출액이 100억 남짓 해 질 것으로 예상한답니다. 과거 수년 전만 해도 메이저 신문 하나의 매출액이 1000억을 넘었다 하더군요. 안티조선 운동 때문이 아닙니다. 인터넷 포탈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때문입니다. 이제 종이 신문에서 다른 미디어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잔인함'이지 건전한 시민 운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들은 아직은 강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제 정말 순수한 사람들만 소수로 남고 정치꾼들은 전부 빠져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편집인들 중 가장 비정치적이었던 이규태까지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 공격한 것은 야비한 일입니다.
 
상당한 문필력이군요. 님이 진지하게 물음 주셔서 저도 최대한 진지하게 답변해 드렸음을 밝힙니다. 건필하십시오.
 
진중권, 한국적 파시즘 깨기에 여전히 유효 / 깊은생각
 
논쟁은 필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글 여러곳에서 잘 읽어서 바탕의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특히 경제를 '경세제민'으로 해석하시는 것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정책을 구사하는 분들이 항상적으로 명심해야 할 진리이죠.
 
그리고, 자기 주장의 '과잉현상' 그거 공감합니다. 이번 '황우석 사태'속에서 그것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됩니다. 그리하여 '방송' 안되면 '자살'하겠다는 피디가 나타날 지경에 이르러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마추어리즘'과 결합해 있다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프로 '지식인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습니다. 요컨대 '뭐 좀 안다는 분들'이 하는 행태에 더 이상 못참겠다는 것이죠! 가령 황우석에 대하여, 경기고와 서울고를 거친 '성골' 주류 엘리트는 아니지만, '비주류' 수의학을 전공하고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여 스스로 '기술'을 확립한 인물로 칭송하죠. 그 반대편에는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학력과 학벌' 풍토에 기대어 '전문가의 권위'를 내세우는 전문적 지식권력에 대한 무언의 항거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례로서 서울대 '조사위'를 '조작위'로 폄하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 서울대 본관정문으로 '난입'을 시도한 그 코란도 찦차의 사진도 있죠!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분들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또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면서 하나의 흩어지지 않는 '유기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연! 님 말씀하신 '아마추어리즘의 과잉주장' 사례가 된다고 봅니다. 민주화와 인터넷 언론의 엄청나게 빠른 '정보생산 기능'과 '정보공유 기능'이 결합한 결과이겠죠! 그런데도 한국의 지식인 지도층은 여기에 대하여 여전히 '계몽'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마추어리즘과 '사실관계'를 무시하는 한국적 언론풍토가 맞물린 극단적 사례가 '두번'인가 방송하고 사라진 케이비에스의 '시사중심'일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의 피디는 '맹목적 팩트주의'라는 말로, '음모설'을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끌어 들어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 만약 님이 진중권 글의 '이데올로기 효과'로서 '아마추어리즘의 과잉 자기주장'을 조장하면서 '안티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는 '판단'에서 그런 글을 쓰시는 것이라면, 진중권의 글을 더 읽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보입니다.
 
오히려 진중권의 이번 글은 한국 사람들의 '편견'-맹목적 팩트주의 보다 강한것에 대한 숭상에서 일방적 사실의 조립으로 만들어진 편견-을 벗겨내는 글 아닐까요? 그리고 진중권은 일관되게 독일의 '파시즘 미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기대어 '한국적 파시즘' 문화에 대한 분석적 비평적 해체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긍정적 효과' 또한 상당한 것입니다. 반면 이규태님의 '무슬림'에 대한 글은 한국인의 '팩트를 무시한 편견'을 늘리는데 기여한 글 아닙니까?
 
할리우드 영화건 어디건 무슬림은 거의 대부분 '호전적'으로 묘사되면서 '지하드'를 칭송하는 '테러기질의 사람들'처럼 이야기되는데, 이런 것은 '반대쪽의 정보들'도 충분히 제공되는 가운데 형성된 '견해'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맹목적 팩트주의'를 아예 저버린 한국 언론 자체의 '언론 플레이' 습성에서 조형된 것이라는 생각인데, 이 속에서 형성된 한국 보통사람들의 '상식'이 지금 '아마추어리즘의 과잉주장'으로 반격하는 것이라면 지나칠까요?
 
이런 현상은 한국의 '지식인 지도층'이 잘못 역할한 때문이라 봅니다. 제 견지에서, '진중권'은 안티조선 운동에서 시작하여 강준만 교수와 갈라지면서, '시민적 상식'에 주로 독일식의 파시즘 부활을 경계하는 '정치적 진보성'을 결합하려 나름대로 애써 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주류 지식권력과 전혀 다른 작업을 수행했고, 강준만 교수도 마찬가지죠. 요즘은 님 말씀대로 그런 제 기능 못하는 주류를 향한 '안티'가 부작용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가있다고 여기며 이 지점에서 '아마추어리즘의 과잉주장'에 대한 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과도한 '안티'의 시대는 이제 접을 때가 되긴 했지만, 어쨋든, 고 '이규태님'의 장인정신이 그 날짜의 어떤 기사와 결합되면 보통사람의 마음에 '편견'을 새겨내는 '편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섬진강'의 시인이 있습니다. 이분의 깨끗함이 '조선일보'의 '편집기술'과 만날때 어떤 효과를 내 왔는지? 가령 '우리안의 파시즘' 을 꺼내든 임지현씨가 '체게바라 전기'를 조선일보 문화면을 온통 차지해가면서 글들 썼을때 어떤 효과를 내 왔는지? 바로 이런 것들을 '해체'하는 일에 뛰어든 분들이 안티조선 했던 분들이었고, 그 중에 진중권씨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여전히 '황우석 사태'때 비추어진 한국 언론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끌 국민을 만들기 보다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과잉담론'이 펼쳐질 조건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팩트'와 '주장' 양면에서의 거대한 실패사례였다는 것이며, 이 두가지를 저는 '브릭'과 '과갤'의 젊은 과학자들의 글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직' 진중권의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이며, 이규태님의 '장인정신'이 옳게 평가 받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님의 글은 너무 빨랐다고 생각하며, 진중권의 작업 전체에 대한 '조망'이 미흡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규태씨의 엄청난 글을 읽는 것 만큼, 진중권의 다른 글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님의 글이 진중권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이제 좀더 '진지모드'로 전환하되, '안티적'이지 않은 글을 쓰는게 낫다 정도로 의미있게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 진중권보다 더 잘 알아'라고 쓴 것에 대하여 '과도한 행간읽기'로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 무위

언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셨군요. 무슬림에 대한 님의 생각도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미국인들 보다는 무슬림을 훨씬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슬림의 율법보다는 그들이 경멸하는 American Way 가 있는 나라에서 제 소중한 딸을 키우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1인 제 딸이 나이 18세 이상이 되어서도 야한 비디오 하나 못보는 나라에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네델란드의 이민 정책이 일면 수긍이 갑니다. 생각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제 딸이 살게 하고 싶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남을 이지매하는 나라는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부시나 네오콘도 사실은 아랍인들을 더 잘아야 합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부시가 대통령에서 물러 난 후에 철저한 경호원이 없이는 밖으로 잘 다니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아는 이슬람 율법은 사실상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더군요. 원래 목적은 절대 그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만.
 
전 진중권이 황우석 박사 일로 크게 이지매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중권의 표현이 약간 과격한 점이 있다고 해도 지금 네티즌들이 너무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런 점을 진중권이 과거 행적에서 불러온 이유도 있지만 하여간 자유롭게 의견이 나오고 그 의견으로 공격당하는 세상은 질식할 것 같은 세상임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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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1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글이군요. 이거 퍼갈게요. 꾹.
 

이규태와 진중권: 장인정신과 멧돼지정신의 충돌
별이 떨어지다--한국 문화계(文化界)의 위대한 장인(匠人)을 추모하며

무위

.. 첫 단락은 故 이규태님을 위하여 비웁니다! ..
 
이규태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고 간 진중권의 저돌성(猪突性)
 
필자가 진중권의 글을 처음 접한 건 9.11 테러에 관한 사회적 이슈가 한창이었을 때 였을 것이다. 그때 그가 쓴 글에서 예로 든 카오스 이론을 보았다. 첫 느낌은 논리적 비약이 너무나 심해서 정말 저 사람이 카오스 이론은 제대로 알고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건 엘런 소칼이 프랑스 지성계에 만연한 지적 사기 풍토에 의문을 품은 것과 같은 동기였다. 한데 정말 공교롭게도 앨런 소칼이 쓴 <지적 사기>라는 책에도 '7. 간주곡-카오스 이론과 포스턴모던 과학' 이란 소제목을 단 글이 나온다. 진중권의 그 글을 처음 접했을 땐 "참 재미있는 사람도 다 있구나" 라고 했을 정도였다.
 
급기야 그는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이규태가 말한 아랍의 소위 인샬라 문화를 논하는 글에서 '살람 말레꿈' 이란 아랍의 인사말을 이용하면서, 일생을 비교문화 연구에 바친 故 이규태씨를 단어 몇 마디를 꼬투리 삼아 마치 인종차별주의자로 몰고 갔다. 문화의 상대성을 밝히기 위해 비교 문화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에게 인종주의 망언(妄言)만큼 모욕적인 언사가 있을까? 나는 그 이상의 모독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폭력을 선동할 때의 진중권을 보고 영락없이 씩씩거리는 멧돼지가 돌진하는 모습을 연상한 사람은 단지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맨손으로 식사하는 문화
 
나는 중동 바이어와 오랫동안 무역을 해온 관계로 인도 아라비안 문화를 상당히 접해 왔다. 게다가 필자가 대학 시절에 문화 인류학에 심취했었기 때문에 우리와 상이한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이 나름대로 갖추어진 상태였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mosque)에도 수 차례 가 보았고 심지어 중동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땐 수저나 포커 대신에 손가락을 사용한다. 처음부터 카레라이스 같이 끈적거리는 음식을 맨손으로도 자연스럽게 먹는 모습에 오히려 무슬림들이 놀라워했다. 한번은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주변이 조용한 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둘러보니 나의 이 모습을 흰옷에 수염이 텁수룩한 무슬림 식당의 사장이 캠코더로 찍고 있었다. 갑자기 이마에 땀이 흘렀다. 맨손으로 식사하는 것에 챙피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남이 캠코더에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소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저나 포크로 식사하는 문화가 맨손으로 식사하는 문화보다 우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 등급은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한번쯤 인도 아라비아계 식당에 가서 맨손으로 밥을 먹어 보기를 권한다.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먼저 탄두리 치킨을 먹고 난 후 카레라이스나 케첩 같은 것을 발라놓은 쌀밥을 오른손 가운데 세 개의 손가락을 이욯하여 모으고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밀어 올리면서 입에 넣는다. 이때 마치 손에 미각이라도 있는 듯이 의외로 미묘한(delicate)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과 문화의 상대성이란 이런 식으로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아랍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는 나의 일방적인 태도일 뿐이며 그들도 우리 문화에 대해서 상대적인 태도를 갖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타문화에 대해서 상대주의적인 태도를 갖기 힘든 이유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더 큰 원인은 그들의 식생활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문화와의 융화를 가로막는 무슬림의 식생활 문화
 
바람의 딸로 유명한 오지 체험가 한비야가 겪은 일이다. 한번은 아프리카 오지로 들어갔는데 그 부족에서 그녀를 이상한 마녀쯤으로 보았는지 겨우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골방에 가두고 사람들을 만나 보지도 못하게 해 버렸다. 말도 통하지 않지 배는 고프지 또 기운이 다 빠져서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라는 회의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3일 정도 되자 "이 한비야가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있는데 창문이 열렸다. 그녀가 가만히 밖을 보고 있는 앞에서 소의 목에 산 채로 구멍을 내서 그 흐르는 피를 염소 젖 같은 허연 액체가 담긴 컵에 받지 않은가? 보기만 해도 끔찍해서 치가 떨렸다. 하지만 내가 이 먼 아프리카 오지까지 와서 죽을 수는 없다. 저걸 안 먹으면 나를 저 어두컴컴한 골방에 평생 가두어 놓을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두 눈 꼭 깜고 그 끔찍한 주스를 받아 마셨다. 그랬더니 과연 나에게 광명이 비추었다. 그들은 나를 그들의 부족과 같이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중략)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로 접하게 되는 음식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켜 주는 대목이다. 한비야는 외국에 가서 다른 문화를 체험할 때 언어는 안 통해도 좋지만 음식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녀가 쓴 저서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사실 서양 사람들이 한국의 김치나 된장국을 잘 먹으면 괜히 친근감이 생긴다. 고추를 먹고 매워서 온 몸을 비트는 광경에는 묘한 동정심마저 생긴다. 같은 민족이라도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괜히 호감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니 음식 그 자체가 그 민족의 복잡 미묘한 문화의 축소판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슬림은 아프리카에 간 한비야처럼 다른 문화의 음식을 받아 들여 호감을 사거나 다른 문화의 축소판인 음식을 경험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게 사실은 종교적 이유 때문인데 그들은 특히 육류의 경우에는 할랄(허용) 미트 즉 무슬림에 의한 이슬람식 도살법에 의해 죽인 고기만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다 동물을 죽일 때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비빔밥을 모르고 먹었다가도 미각으로 고기 한 점이라도  느끼게 되면 급하게 뱉어낸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이태원의 이슬람 식당이 아니면 거의 채식만 해야 한다. 다른 음식을 먹어도 고기를 다 뺀 피자 정도만 먹는다. 홍콩 같은 곳을 가면 변두리 지역에서 일을 보다가도 이슬람 식당이 있는 퀸즈 로드(Queen's Road)같은 중심가로 가야 한다. 때로는 단지 이 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나절을 투자해야 한다.
 
 무슬림들이 어느 나라에 가든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모여 살아야 하는 이유에는 이 식사관습이 큰 몫을 차지한다. 무슬림들이 세계 도처의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율법이 바뀐다면 다른 문화권과의 소위 문명의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무슬림이란 신에게 바쳐진 자란 뜻이다. 이들이 보수적인 자세로 엄격하게 종교적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다음에 잘 나타난다. 선지자 무함맛(무하마드)이 말하기를, "우리의 것에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자는 거부되어야 한다. (종교에) 새로이 도입된 것들을 주의하라. 새로운 것은 모두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며 잘못된 것마다 지옥으로 가느니라." 그러므로 이슬람에 새로이 도입된 것이나 덧붙여진 것은 어떤 것이라도 비드아로 간주되며 거부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드아란 권위 있고 원천적인 이슬람의 신앙이나 관례에 덧붙여진 것으로 이것은 새로이 도입된 신앙이나 관례를 뜻한다. 새로운 것이나 혁신은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종교적 계시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평이했던 이규태 칼럼 '아랍인의 의식구조'
 
 누구보다 문화 상대주의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무슬림 문화와의 접촉을 많이 했던 필자가 보기에도 이규태의 그 칼럼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다. 중동의 풍속과 기후와 토질적 요인과 문화에 기반하여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진 문화 비평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규태님이 지적한 아랍 사람들에게 대한 문화적 특질은 대부분 수긍하는 입장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서적이나 여행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얻지 못하는 더 깊은 영역까지 체험하게 된다. 사업은 이익이 걸려 있기에 인간의 여러 가지 특징이 표출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일을 시켜 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싶다. 때로는 학자들보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훨씬 혁명적이다. 중국의 쑨원이 신해혁명을 이루고자 했던 근원이 그의 아버지가 외국인들이 많았던 상해에서 상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에서 주는 정보도 있지만 여러 경험으로 난 중동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 그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거래 대금이 완납될 때까지는 절대로 물건을 먼저 보내지 않는다. 남들이 왜 그렇게 편견이 심한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되묻겠다. 거래대금을 떼이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냐고? 신용장에 구두점(.) 하나를 꼬투리 삼아서 계약을 지킬 수 없노라고 치시미 뚝 떼는 사람들이 아랍인들이라는 것은 무역하는 사람들이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이다. 우리 회사의 중동 바이어들도 그렇지만 그들은 언제나 우리가 가족(Family)임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수로라도 비즈니스 관계라는 말을 하면 펄쩍 뛴다. 정색을 하고 ‘아니 우리가 고작 그런 관계냐?’고 언제나 되묻는다. 또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러나 계약을 쉽게 뒤집는 쪽은 십중 팔구 그들이다. 오로지 우리 회사하고만 거래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아침에 호텔에 가보면 동종의 다른 사람도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경우가 제법 있다.
 
 자기들끼리도 그렇게 서로 믿고 사는 것 같지는 않다. 바이어가 못 오고 그의 에이전트가 한국에 오는 경우에는 비싼 비행기 운임료에도 불구하고 꼭 두 명이 온다. 한 명은 나머지 한 명을 감시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크게 하는 일이 없다. 이런 관계로 그래서 이젠 그들과 쓴 계약서는 그냥 종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사는 방식을 익히게 되었다. 한번은 체코에 아랍 바이어를 데리고 갔다가 독일계 사업가를 만나서 계약서를 쓰고 온 일이 있다. 나중에 중동 바이어가 그 구매계약을 지키지 않았는데 한국 사람이라면 대충 넘어갔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 독일 사업가는 30만 달러 상당의 위약금을 에누리 한 푼 없이 받아 갔다. 이런 예에서 보다시피 많은 경우 그들이 하는 말과 실제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피상적인 친분으로는 잘 알기 힘든다는 뜻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특별히 악의는 없다.
 
올바른 문화 해석법의 예
 
진중권은 자기가 알았던 아랍인 친구는 살람 말레꿈을 말하는 평화 애호적인 사람이었고 이규태가 표현한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노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싫어하는 일본인이나 미국인들도 개인적인 친분으로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예의 바르고 매너가 있는 사람들이다. 만나면 밝은 표정으로 먼저 아는 체를 할 만큼 인사성 밝고 싹싹하다. 그렇다고 그 민족이 예의바르고 매너가 있을 지는 몰라도 평화 애호의 민족이라는 것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부분으로 전체를 잘못 보는 오류로 매우 흔하게 빠지는 오류 중의 하나다.
 
진중권이 아랍문화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중동 사람들이 살람 말레꿈이라는 인사를 하는 것은 맞다. 아랍인 친구에게 '살람 말레꿈'이란 인사를 하면 '말레꿈 살라'라고 대답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들을 껴안는다. 간혹 '아함둘라'라는 말도 종종 덧붙인다. 하지만 "살람 말레꿈-너희에게 평화를"이라고 인사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을 내리는 진중권은 '무식이 철철 넘쳐서 주체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서 마땅하다. 진중권의 더 큰 문제는 무식하면서 지독하게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무식하면 나서지 않고 가만있어 주는 것이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데 그런 수준으로 왜 자꾸 나서서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가?
 
알기 쉬운 예로 한국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나 '저녁 잡수셨습니까?'라는 말로 인사를 한다.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Good Morning? Good Evening? 이 아니라 Are you still safe? 나 Did you have dinner? 다. 이건 표면에 나타나는 용어와는 정반대로 한국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역사를 살아 왔다는 것은 반증한다. 실제로 일제 징병기나 해방 후 서북 청년단이나 백골단 같은 극좌나 극우세력들의 횡포나 6·25 동란을 전후한 혼란기에는 '밤새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았듯이 한밤중에 다락방에 숨어 있다가 적발되어 고초를 당하거나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일들이 바로 우리들의 부모와 삼촌들의 역사다. 이런 역사를 겪어 온 한민족에게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법이 우세를 점하면서 퍼져 간 것은 오히려 너무 당연하다.
 
식사 표현이 인사말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말을 사용해온 공동체가 끼니 걱정을 많이 하면서 살아온 민족이라는 반증이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그 인사말이 기분이나 감정을 묻는 형식이라면 그 공동체는 매우 풍요롭고 평화로운 역사를 가진 민족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평화롭다는 말은 전쟁이 적었다는 뜻이지 평화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
 
살람 말레꿈이 평화 애호의 상징이라고?
 
진중권이 문화코드를 해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각이 있었다면 "살람 말레꿈-너희에게 평화를"에서 평화를 읽어내기 보다는 전쟁으로 점철된 고통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랍의 역사를 읽어 보라. 그들의 역사에서 국가간 또는 부족간의 전쟁이 그칠 날이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다.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형제간끼리 야밤에 기습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들이 일부다처제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빈번한 전쟁 때문에 남자들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동지역은 현대사에 들어와서도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규태가 사용한 '호전적'이라는 용어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비호감적 선입견만 제외하고서 냉정하게 보면 크게 틀린 지적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호전적이란 뜻은 전쟁이 많았다는 뜻으로 읽어야지 전쟁을 좋아한다 라는 뜻으로 읽으면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본래부터 평화를 싫어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전적', '호전적' 등의 단어를 생각하고 나면 전쟁에 관한 태도를 설명하는 용어가 더 이상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민족의 특이성을 논할 때 진중권처럼 개인적 친분에 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은 위험천만하다. 오히려 그 민족이라는 집단이 걸어온 오랜 역사와 그 역사 속에 표출된 문화양식을 기준으로 논하는 故 이규태님의 접근법이 훨씬 사실에 닿아 있음은 명확하다. 그들이 복수심이 강하고 잔인하다는 것은 다른 민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아랍인들 내부적으로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문제 일 수 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숨겨진 아랍인의 문화코드
 
다만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알리 바바와 40인의 도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알리바바의 형님은 죽어서 짐승처럼 껍질이 벗겨지고 40명의 도적은 모두 다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죽이는 방법도 귀에다가 끓는 기름을 넣어 죽이는 등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필자가 문화적인 코드를 담은 이야기를 매우 많은 책을 통해서 다양하게 경험했지만 사람 죽이는 방식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는 별로 보지 못했다. 그것도 인간의 목숨에 비해서는 별 것도 아닌 고작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물론 첫 시작은 물질적인 재산이지만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형제의 복수나 재산을 훔쳐간 사람에 대한 응징이나 보복도 얽힌다.
 
이게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문화와 상징에 대한 공부를 더 하기 바란다. 하필이면 왜 40인의 도둑이냐고? 그건 진중권이 생트집을 잡은 이규태의 바로 그 칼럼에도 나와 있다. 이 40이라는 숫자코드를 풀어 줄 단서를 밝혀 줄 故 이규태님의 문제의 그 칼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랍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수태된 지 40일 만에 알라신의 장부에 그의 숙명이 치부되며 그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신한다(이규태--아랍인의 의식구조)"
 
이규태의 이 표현대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단순한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서로 죽고 죽여야만 하는 지독한 운명에 얽힌다. 보다시피 이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숫자는 명목상의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읽어 내고 말고는 독자의 몫이다. 신밧드의 모험이 해양으로 진출한 아라비아 상인들의 이야기라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야기는 유목민들 약탈경제를 암시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한국의 이야기에 으레 나타나는 권선징악이나 선악의 개념도 모호하다.
 
이 이야기는 아랍 사람들과는 친구는 될지언정 적은 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충고 할 때 쓸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만하다. 내가 보기엔 미국의 부시나 네오콘 세력들이 이런 사실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빈 라덴 때문에 미국에서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며 미국의 부시는 폭력조직이라는 국가의 우두머리로서 보복 전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그 전쟁으로 후세인 실각에 성공한다고 한들 미국이 바라는 정부 형태의 설립은 단기간의 성과에 그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 시도는 아랍 사람들의 문화양식에서 비롯된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대자보에 "부시 재선, 국가의 의미와 문명의 위기(클릭)"라는 제목으로 밝힌 글에서 밝혔다. 또 그 글에서 필자는 미국인들이 위험을 당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해서 '애기를 안고 있는 여성이 야수를 만났을 때의 행동양식'을 비유로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가 쿠웨이트에 있는 석유자원을 얻기 위해 쿠웨이트를 공격한 걸프전쟁(1990년)때 미국을 위시한 유엔 연합국이 참전하자 이라크를 옹호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학자들 중 상당수는 미국이 아랍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참견한다고 한 적이 있다. 즉 아랍문화권에서 약탈경제를 위한 전쟁은 그들의 문화코드 중 중요한 요소인데 웬 참견이냐? 그런 뜻이었다. 즉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그 학자들도 아랍인들의 호전성만은 기본 전제로 인정하고서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천일 야화로 유명한 아라비안 나이트의 시작은 어떠한가? 남성 우월주의 문화의 상징적인 문화코드인 여자의 정조나 정절 때문에 왕은 결혼 첫날밤이 지나면 신부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 이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한다. 이런 것을 아랍 사람이 아닌 외부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잔인하다는 표현이 크게 무리가 아니며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은 체면과 명예도 매우 소중히 여긴다. 그런 부작용으로 21세기인 현재 한 무슬림 국가에서는 매년 500 명 이상의 여성들이 단지 정조 문제로 명예 살인을 당한다. 명예 살인이란 어떤 여성이 정조나 정절을 훼손하여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도 아닌 그 여자의 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살인을 말한다. 2005년 세계 여성 인권상에 뽑힌 여성은 무슬림 부족에서 집단보복 성폭행을 당하고도 보통의 경우처럼 자살하지 않고 대항했던 한 여성이었다.
 
몇 달 전 외신에는 한 무슬림 소년이 배고파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손 위로 트럭이 지나가는 형벌을 받았다. 그들의 율법이 이러한데 외부 사람들의 눈에 잔인하다는 표현이 안 떠오를 수 없다. 이태원에 있는 해밀턴 호텔에 있는 '아쇼카'나 크라운 호텔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알사바'라는 무슬림 레스토랑에서 바이어랑 식사를 할 때 간혹 옆 테이블에 한국의 여대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을 때가 있다. 바이어가 잠시 쳐다보고 있다가 하는 말은 으레 다음과 같다. "어메리칸 웨이(American Way)가 한국을 다 망쳐 놓았다. 여자들은 집안에 조용히 있어야지 저렇게 돌아 다니면서 떠들면 안된다." 물론 그와 나는 친구 사이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면 그가 한없이 불쌍하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심심찮게 말한다. “여성은 일단 나라를 잘 타고 나야 한다. 그 다음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 아랍지역에서 여자가 운전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혼자 승용차도 못 모는 것은 그들의 율법인데 얼마전 이집트인가에서 첫 여성 택시기사가 나왔다고 해외토픽에 나온 적이 있다.
 
 중세 시대 지구상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서 서구 르네상스의 원동력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아랍 문화가 왜 이렇게 까지 정체되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한국에 무슬림 이민자가 20만 명 정도만 초과하게 되면 한국 사회는 분명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서 이민족에 대해 가장 관대하다는 네델란드 까지 아랍인들에 대한 이민절차를 매우 까다롭게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절차가 하필이면 포르노 영화를 두시간 이상 볼 수 있어야 한다니 과연 네델란드다운 발상이다. 사해동포주의라는 이상만 가지고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다 감당할 수 없기에 이런 식의 이상주의 퇴조현상이 생기는 것으로 본다. 한번씩 부화가 나서 "무슬림은 왜 일부 다처제냐?"고 웃으면서 슬쩍 염장을 찔러 보면 마치 이규태가 그 칼럼에서 말한 내용을 외우기라도 했는지 모범답안이 나온다. 수많은 포교활동(전쟁)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어서 남겨진 여자들을 책임지기 위한 알라신의 배려라고.
 
무슬림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그들이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인 민족이라는 말에 수긍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혹시나 진중권처럼 오해를 한 나머지 과도하게 흥분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꼭 지적해 두고 싶은 말이 있다.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이란 말은 '적(敵)에 향한 그들의 대응방식'을 하나의 문화특성으로 규명한 것이지 인종주의적 편견인 '그들의 심성이 악하다'는 뜻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물론 적(敵)이 아니라 친구 사이일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다.
 
다만 故 이규태님이 연재한 비교문화 코너는 긴 논문이나 책이 아니라 매우 짧은 지면에 마무리해야만 하는 관계로 약간의 논리적 비약은 구조적으로 내포된 문제였다. 그런데 그 글에 나온 옥의 티를 의도적으로 침소봉대해서 인종차별주의자 운운한 진중권의 특이함은 단순 무식한 멧돼지가 가진 저돌성(猪突性)이 아니면 제대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저돌성의 기본적인 속성이 전후좌우를 종합적으로 볼 수 없는 좁은 시야 즉 편협함과 무식함이다. 그때 진중권이 보여준 것은 평생을 비교 문화학을 연구하며 쌓아온 故 이규태님의 투철한 장인(匠人)정신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기도 했다.
 
'호전적'이란 용어의 문화적 해석
 
 우리는 '호전적'이란 말과 '평화 애호적'이란 용어의 쓰임에 대해서 근원적인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따져 보면 평화를 싫어하는 민족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질문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보자. 그러면 어떤 민족은 호전적이고 어떤 민족은 평화 애호적이라는 표현이 왜 생겨났으며 이런 표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두 용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달성할 때, 대화와 타협이라는 평화적인 '방식'을 많이 취해 왔는가 아니면 전쟁과 격렬한 투쟁의 '방식'을 많이 취해 왔는가 하는 차이점에 있다. 이것은 다른 민족의 역사와 비교해서 발생하는 상대적인 빈도의 문제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호전적이라는 말을 전쟁을 즐기는 전쟁광 정도로 잠못 이해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오해를 받지 않고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나타내는 더 좋은 용어가 있었다면야 이규태도 분명히 그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용어는 없고 이규태가 사용해야 할 칼럼의 지면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규태는 짧은 지면에 가급적 더 많은 내용을 담기 위해서 마침표보다는 쉼표를 많이 사용하여 여러 문장을 한 문장에 연결하는 문체를 쓰고 있다. 무더운 여름은 맹하로 혹독한 더위는 혹서로 혹독한 추위는 혹한으로 그것도 괄호 안에 한자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전적이라는 단어를 다른 좋은 말로 길게 풀어서 묘사하지 않았다고 독자가 생떼를 쓰며 달라 드는 일은 과연 정당한가?
 
진중권은 이규태를 인종주의에 기반한 망언을 일삼는 몰상식한 인간으로 몰아 부치면서 그 절반은 살람 말레꿈에 대한 인상비평에 기반하여 그들이 평화애호의 민족이며 또 환경결정론이 19세기 케케묵은 이론이라서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 앞 부분은 자신이 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무식한가를 제대로 나타내는 데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그 나머지 절반은 엉뚱하게도 미국의 호전성을 부각하는데 할애했다. 마치 이규태가 그렇게 하지 않았음에 분노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규태는 그의 칼럼에서 미국(米國)이 평화 애호적이라거나 호전적이라는 표현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9·11 테러가 범죄라느니 미국의 보복이 정당하다느니 하는 말도 전혀 내비추지 않았다. 그저 제목 그대로 아랍인의 의식구조를 밝히는 데에 총력을 다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놀라지 마라. 이규태는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9·11 '테러'라는 용어조차 쓰지 않고 있다. 테러란 용어 자체가 한쪽을 범죄시하는 단어가 아닌가? 이는 아마도 오랜 기간의 비교문화연구 경력에서 이규태님이 자연스럽게 체득한 객관성의 자세에서 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지하드와 호전성, 배신과 복수
 
아랍인들이 다른 문화 공동체로부터 호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에는 이 지하드(聖戰)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슬람은 복종의 뜻이며 종교 생활은 크게 믿음(信)과 행(行)으로 나누는 데 이 행동윤리에는 5주(5柱) 에다 지하드(聖戰)를 합쳐서 6주(6柱)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 보통인 종교에 전쟁이 행동윤리로 들어 있는 점은 다른 종교 문화권에서는 쉽게 이해 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 지하드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깐수 정수일 박사가 소개한 지하드의 모습 중 두 개만 소개한다.
 
다양한 성전 지하드
 
이렇게 중요시되는 지하드는 마음으로, 입(말)으로, 손으로, 검(劍)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경전은 그 방도를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마음과 입으로 한다는 것은 정신적 수행을 말하고, 손과 검(劍)으로 한다는 것은 육체적 수행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하드는 정신 및 육체적 행위 전반을 포괄하는 정교합일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지하드에서 노력지하드는 어디까지나 무슬림 개개인의 내면적인 수행문제이기 때문에 별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지만, 성전지하드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 법리(法理)문제를 야기해 오늘날까지도 구구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법학자들은 성전지하드를 대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구분하고 그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① 다신교자들에 대한 지하드: 유일신을 믿지 않는 다신교자들은 처음부터 가장 완강하게 유일신교인 이슬람교를 반대하고 박해를 가했으므로 그들과는 성전(聖戰)을 할 수밖에 없다.
② 배신자들에 대한 지하드: 이슬람 영역을 이탈하여 전쟁영역에 들어간 배신자들에 대해서는 돌아올 것을 권유하는데, 응하지 않으면 성전을 하되, '전쟁 영역의 사람'들과 동등하게 취급한다. (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문명 산책 7 에서)
 
국화와 칼과 한국인의 의식구조
 
2차대전 중 일본의 카미카제 특공대의 자살행위를 서구 유럽인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쓰 베네딕트 여사가 이 의문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그 이름도 유명한 <국화와 칼>을 썼다.
 
인류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칭송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의 명저들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논리로 점철해 놓은 논문 양식을 띄고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이것은 원저자가 직접 쓴 책은 안 읽고 그 책의 서평만 읽은 사람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오류다. 서평은 분석력이나 종합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참고 사항이 될 수 있겠지만, 짧은 지면에 압축해서 보여 줘야 하는 관계로 일반적으로 책 내용보다 어렵다.
 
레비 스토로스의 슬픈 열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마가렛 미드의 남성과 여성 그리고 말리노브스키나 래드 크리프 브라운 등의 각종 저서를 직접 읽어보라. 매우 평이한 문체로 읽기 쉬운 수필이나 일기를 보는 듯하다. 각 사안별로 분절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저서에서 대단하고 체계적인 이론을 발견해서 세계에 발표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그들의 저서를 연구한 후학들이다. 이는 마치 예수가 대중 속을 다니면서 토막토막으로 가르침을 설파하며 다닌 내용을 그 제자들이 모아서 바이블이라는 인류사의 큰 자산을 만들어 낸 형식과도 비슷하다.
 
이건 각종 문헌을 뒤져서 방대한 자료를 작은 주제를 단위로 엮어낸 이규태의 문화코드 구술양식도 위에 열거한 그 이름도 쟁쟁한 서유럽의 학자들이 사용한 형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문화에 있어서의 이규태의 업적
 
이규태가 무려 20년을 넘게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한국인의 문화코드를 기록하고 서술한 일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존경을 받기에 너무나 충분하다. 국문학자가 방언이 다 사라지기 전에 전국의 산간벽지를 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막걸리를 대접하면서 그들이 하는 방언이나 구성진 노래 가락 또는 노동요인 농가(農歌) 등을 원형 그대로 녹음해 오는 일은 우리 사회에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일이 조금만 더 지체되었다가는 급속도로 진행되는 현대화 도시화의 물결에 그 자취조차 사라져서 나중에는 학술자료나 사료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문화 인류학적 자료수집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화인류학적인 풍토를 모르고서 이규태의 글에서 일관된 이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문화 인류학자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과도한 기대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보면 그의 방대한 저서에서 일관된 이론을 찾아내야 하는 일은 후학들에게 던져진 숙제라 해야 더 정확하다. 설사 그런 이론을 못 찾아낸다 할 손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때로는 이론보다 자료가 더 중요할 때도 많다. 왜냐하면 자료는 후학들에 의해서 다양한 이론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 같은 경우는 의역보다 직역으로 번역된 책을 더 좋아한다. 이론은 내가 만들어 내면 되는 법이다.
 
평생 비교 문화학에 대한 칼럼을 써오는 외곬 인생을 살아온 故 이규태님으로서는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9·11 자살 테러 행위를 가능하게 한 ‘아랍인의 의식구조’를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생소한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싶게 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건 전문 칼럼니스트로서의 일종의 책임감이나 부담감으로 여겼을 것으로 본다. 이런 종류의 책임감과 부담감은 필자에게도 가끔씩 심리적 압박을 준다. 게다가 그가 글을 써온 전문 분야가 정치학이나 사회학자가 아니었기에 평이하게 ‘미국이 잘못해서 무슬림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라는 식의 시사평론을 쓰기보다는 당연히 그들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기후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종합적인 견지에서 문화 인류학적인 접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만 진중권에게 던져보자. 부시가 전쟁 미치광이고 미국이 호전적이라면 아랍 민족이 호전적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나? 이건 전혀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주제이지 않은가?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명의 충돌은 두 문화 사이에서 소통구조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양자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하기보다는 한쪽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할려고 하니까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평하자면 두 문화 모두 호전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논점에서 한참 벗어난 동문서답식 흥분은 진중권의 고질병인 것 같다. 강정규 교수가 6·25는 통일전쟁이었다고 했을 때 그는 '그럼 통일하자고 전쟁하자는 말이냐?'라는 말을 대중 앞에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용맹무쌍함을 보여 준 적이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국사 선생님이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삼국전쟁은 민족통일전쟁이었다'라는 말을 할 때 그럼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하나요? 하는 식의 황당한 말을 하지 않는다. 진중권이 이런 말을 하고 나서 강정구 교수에게 '진중권은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라는 말을 들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무식한 진중권의 폭력과 억울한 이규태
 
이규태는 그 글에서 9·11 테러에 연관하여 아랍인들의 문화적 특성을 이야기했지 미국의 보복 전쟁이 정당하다든지 그 전쟁을 지지한다든지 또 한국도 군대를 파견해야 하는지 그에 반대하는지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부분은 단 한자도 없다. 심지어 미국에 관해서 언급한 단어도 단 한군데도 없다. 억지로 미국에 관련된 부분을 찾아내라면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건 펜타곤이 폭삭하건'에 나오는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이란 딱 두 단어 뿐이다. 그것도 미국인의 행동특성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랍인의 행동약식을 설명하고자 마지못해 넣은 부분일 뿐이다. 대중들이 이 칼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은 진중권의 기막힌 거짓 선동술로 꾸며낸 소설에 의해 2차적으로 과장되고 가공된 이미지다.
 
이규태의 칼럼을 냉정하게 읽지 않고 진중권의 소설을 서평으로 더 많이 읽고 그게 사실인양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이규태를 이지매하는 대열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을 뿐이다. 필자의 지적이 틀렸는지 이규태가 쓴 텍스트를 진중권의 글과 비교해서 자세히 보기 바란다.
 
진중권의 과대망상과 편집증
 
'아랍인의 의식구조'라는 제목의 칼럼에 왜 '미국인의 의식구조'를 쓰지 않았냐고 트집을 잡고 생떼를 쓰며 달려드는 진중권의 정신에 심각한 장애가 있음이 확실하다. 굳이 미국인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故 이규태님의 고견을 알고 싶었다면 e-mail 이나 독자 투고 등으로 정중하게 요청을 하면 될 일이었다. 이규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그저 혼자의 상상으로 소설을 쓰면서 남을 공격하는 것은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모르겠다. 이건 무식함을 넘어서 무책임하고 야비한 방식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마땅하다.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으로 일시적인 정신외출 증상이 발생하지 않고서야 진중권이 이규태 칼럼니스트에게 저런 망언을 하면서 공격할 이유가 없다. 진중권의 정신병증은 아마 과대망상에서 오는 편집증 정도 될 것이다. 이규태는 이렇게 정신적 쇼크를 받은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그 문화적인 이해를 통해서 치유를 해주려고 시도했다가 도리어 환자에게 봉변을 당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중권이 저열하게 제목을 '황인종의 백색신화'라고 도발적으로 잡으면 이규태가 한국에 사는 황인종으로서 백색신화를 신봉하는 사람이 되는가? 이규태의 그 글에는 아랍인의 행동이 그르고 미국의 행동이 옳다 라는 투의 글은 단 한자도 없다. 이규태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문헌과 고증에 의해 실증주의적 자세로 그 글을 썼을 뿐이지 백인종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근거 없는 인민재판도 정도껏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중권처럼 망언을 하려면 적어도 이규태가 쓴 그 글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내야 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도리다. 그 글에서 못 찾겠으면 이규태가 지난 20여간 쓴 글을 다 뒤져서라도 이규태가 '친미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한 대목이나 ‘미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며 돌격대 역할을 한 대목’을 찾아와서 공격해야 하는 것이 기본 양심이다. 남을 공격하기 위해서 근거를 찾지 않고 소설을 써대는 것은 정신병자가 하는 짓이지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필자가 독자들의 객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때 이규태가 쓴 '아랍인의 의식구조'를 '일본인의 의식구조'로 바꿔 비슷하게 재연해 보겠다.
 
일본은 섬나라로 갇혀 살았기에 대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다. 이것을 이용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일본의 군벌세력들은 대동아 공영권을 내걸고 2차 대전을 일으켰다. 일본인은 섬나라에 갇혀 있다는 의식 때문에 오히려 이어령이 말한 작은 것을 숭상하는 문화를 낳았다. 실제로 그들은 키도 작았다. 일본을 가르치는 왜(倭)라는 말도 작다는 뜻이다. 성문화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개방적이고 우리가 보기에는 문란하다. 대체로 소심한 기질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남에게 지나칠 만큼 인사를 하는 풍속을 낳았고 섬나라 특유의 고립감에서 연유된 정신적 폐쇄 감은 자살을 미화하는 풍속을 낳았다. (중략)
 
카미카제(神風)는 원래 바다에 이는 태풍을 뜻하는 말이다.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있는 일본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다가 있었다. 아마테라스 호호니니기 등으로 이어지는 천손이 일본 천황의 모태가 되는데 이들 모두 그 원류를 따져보면 바다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런 신들이 일본 천황을 보호하고 일본을 보호하고 있다는 의식을 굳게 간직하고 살았다. 몽고가 고려와 연합하여 두 차례나 일본 열도를 공격했을 때도 그때마다 카미카제(태풍0가 불어서 일본에 상륙도 못한 채 패퇴한다. 이때도 일본인들은 카미카제(神風)가 일본을 보호했다고 믿었다. 2차대전 때 미국의 참전으로 일본이 패전할 기미가 보이자 자살특공대를 조직하는 데 이들이 바로 카미카제 특공대다. 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 함대를 향해 자살 공격을 감행하면서 한결같이 외친 말은 "천황폐하 만세!" 였을 것이다.
 
 윗 글에서 보다시피 이규태의 그 글은 아랍인과 일본인이라는 말만 달랐지 필자가 쓴 글과 그 흐름이나 정도가 별반 차이가 없다. 이규태가 부시나 미국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조차 안했는데 진중권 혼자 흥분해서 생난리를 치고 있는 현장이다. 이런 글을 보고 웬 암몬신이 나오고 '부시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는 망발이 나와야 하는 지 어안이 벙벙하다. 억지와 비논리로 점철된 진중권의 소설은 대중을 극단적으로 흥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그 글을 썼던 이규태 칼럼니스트는 대중의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내가 일평생 동안 무엇을 위하여 글을 왜 써왔지?' 하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아니 좀더 부지런하게 글을 써서 이런 사람들을 깨치지 못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반성했을 지도 모른다.
 
‘한 손엔 꾸란, 한 손엔 칼‘의 역사와 아랍인의 극단성 코드
 
 ‘꾸란(코란)이 아니면 칼을!‘이란 극단적인 말이 풍미했던 아랍의 역사에서 보듯이 그들의 조상은 선교를 위해서도 전쟁이란 수단을 사용해 왔다. 물론 서구 유럽은 선교를 제국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온 역사가 있다. 이에 반하여 아랍 지역은 선교를 위해서 전쟁을 수단으로 사용한 경우다.
 
아랍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극단적이라거나 호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의 시각으로서는 크게 무리 있는 표현이 아니다. 또 이런 역사적인 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들이 잘 모르고 있는 부분까지 찾아낸 후에, 故 이규태님이 중동지방의 극과 극을 달리는 기후와 고원지역의 생활 환경 등을 예를 들며 그 연원을 찾아간 분석은 절대로 비과학적인 분석법으로 치부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분석으로 인해서 인종주의 망언으로 비난받을 일은 더욱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과거사를 잊는 것은 사계절이 뚜렷하게 변하는 까닭과도 연관이 없다고 누구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에 입었던 두터운 외투를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두고 가볍고 화사한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하는 습성을 만들었을 것이고 이런 습성은 또 한민족의 의식세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환경결정론은 인간의 생활양식을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한 과학적인 접근법 중의 하나다.
 
환경결정론 환경가능론 문화결정론
 
환경결정론 환경가능론 문화결정론 등은 모두 인류 문화를 해석하는 데 모두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해 주는 과학적인 방법이다. 여기서 환경결정론은 이 모든 과학적 접근법을 낳은 뿌리며 모태다. 한반도 북쪽 지방에는 추운 관계로 폐쇄적인 가옥구조를 갖고 있고 비나 눈이 많이 오는 울릉도 지역에서는 지붕이 가파르다는 식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접근법이 환경 결정론이다. 환경결정론이나 환경 가능론은 그 자체가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이며 수단적 성격의 논리체계다. 따라서 환경 결정론에 기반했다고 평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이유로 비난받아야 할 내용은 아니다. 이것을 보고 비난할 대상으로 몰고 가는 것은 비교 문화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고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쉬운 예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접근법을 취했다고 평할 수는 있지만 구조주의적 접근법을 취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궤를 같이 한다. 왜냐하면 수단으로서의 과학적 방법론에서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읽는 우리는 그런 한계를 사전에 알고 읽으면 된다. 그러면서 환경결정론이든 환경가능론이든 아니면 문화결정론이든지 간에 그런 연구를 해서 발표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취사선택하여 자신이 축적한 다른 데이터와 함께 종합적인 견지에서 판단하면 된다. 
 
인종주의 망언과 진중권의 망언
 
 망언? 이규태가 쓴 글 중에서 망언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 글을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인상비평 정도로 피상적으로 이해한 나머지 진중권이 평한 인종주의 망언이야 말로 진정한 망언이었다. 망언이라면 ‘카미가제 정신으로 천황폐하께 청춘을 바쳐라’나 ‘조센진은 씨를 말리자’ ‘자살폭탄을 안고 미제의 심장부로 돌진하라’ 이런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 굳이 자살폭탄 이야기를 넣는 이유로는 필자가 부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빈라덴 같은 사람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한가지 확실하게 터득한 진리가 있다면 남보고 희생(犧牲)하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악마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희생은 남한테 말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솔선수범해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클리프 행어(Cliff Hanger)에는 이 희생(犧牲)의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현금수송 비행기를 납치한 일당들이 하얀 설원으로 덮힌 로키 산맥을 지나면서 식량부족인가 하여튼 일행 중 한 명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이때 그 두목이 가장 친한 여자 동료의 머리에 총구을 겨눈다. 그녀가 설마 하는 두려움의 눈초리로 응시할 때 그는 비정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면서 싸늘하게 내뱉는다. 희생!(Sacrifice)! 필자는 이 세상에서 남보고 희생(犧牲)하라고 말할 때의 모습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그 단어를 메아리로 몇 번이고 증폭시켰을 것이다.
 
 필자 생각엔 남에게 희생하라는 말을 내뱉는 인간치고 사이비 교주나 악당이 아닌 경우는 없다. 내가 북한의 인권법안에 반대하는 무리들이나 김정일을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민족 주체 강성 대국을 위해서 인민들이 희생하고 참아라고? 그런 말을 하는 인사들을 볼 때 마다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웃기지 마라! 네가 먼저 굶고 네가 먼저 희생해라. 김정일이 솔선수범해서 희생하고 북한 인권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너희들이 수용소에 갇혀서 인권 유린을 당해봐라.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비수같이 차가운 위선과 사악한 악마성을 발견한다.
 
집단에 귀속시켜 말하는 게 인종주의라구?
 
 이규태가 말한 극단적이거나 다혈질이라거나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이라는 말이나 또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하면서 인샬라를 외쳤을 것이다 라는 말이 망언이라면 세상에 망언이 아닌 말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평범한 문화 평론도 진중권에 걸리면 졸지에 망언(妄言)으로 둔갑한다. 진중권처럼 망언이란 용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진중권의 괴상한 망언명명 개그 시리즈는 이규태를 넘어 한승조 조갑제 지만원 기타에 까지 이어진다. 내가 보기엔 진중권은 책을 일기보다 신문의 헤드라인 기사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좀 지나면 필자인 이 김휘영에게도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 망언이란 말을 붙이지 않을까?
 
 진중권은 인종주의란 용어의 뜻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개인보다 집단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인종주의라면 모든 비교문화학적 저술은 인종주의 망언으로 가득 차 있을 뿐으로 학문적 가치는 단 한 줄도 없게 된다. 인종주의란 예를 들어 ‘흑인은 게으르고 지능이 낮고 책임감이 없으며 신의가 없고 강간 살인 절도 등 범죄를 잘 저지른다‘ 식의 경멸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놀랍게도 노벨 평화상에 빛나는 알버트 시바이처의 자서전을 보면서 흑인에 대한 그의 작은 편견을 피력한 대목을 발견한 적도 있다.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켜 집단적 특성을 밝혀 말하는 접근법은 문화인류학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데 이를 모르는 진중권의 오해나 무지에서 나온 말일 뿐이다. 문화인류학은 부족(tribe)으로 표현되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 관계로 이규태의 글에서 수니파니 시아파가 나오고 그 특성을 말해야 하는 이유도 지극히 당연하다. 개인은 윤리학이나 체육학의 대상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칼럼니스트 이규태가 쓴 글에서 그 표현이 좀 조심스럽지 못했다고 우려될 부분이 일견 보이긴 했다. 하지만 상기와 같은 인종주의적 편견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함족 셈족이라는 표현도 진중권이 혼자 했고 안티새미티즘이니 황색 백색이라는 피부색에 대한 언급도 진중권 혼자서 했을 뿐이다. 그리고 필자는 세계 무역 센터를 향해 돌진하던 사람들의 마지막 말이 ’인샬라'였을 것이라는 말에도 십분 동의한다. 그건 나말고도 아랍의 문화양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아니 진중권은 제외한다. 은근히 아랍인들과의 친분이 많았음을 과시한 진중권이 그들과 하루 이틀만 같이 있으면 도저히 듣지 않을 수 없는 말인 '인샬라!' 를 못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의 진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설마 진중권은 비행기를 타고 자살 폭격을 감행하면서 "살람말레꿈-너희에게 평화를'이라는 말을 했을 거라고 믿고 있다는 말인가?
 
IBM과 무슬림
 
 아랍 문화를 접할 때 처음으로 배우게 되는 것은 IBM(인샬라, 부크라, 마알리쉬)이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부크라(내일) 말리쉬(걱정 말아라)인데 이는 비아랍권 사람들을 질색하게 하는 문화다. 물론 이들의 문화에 젖어들면 약간의 여유를 느끼게 되는 점도 있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줄여가야 하는 속성 때문에 솔직히 난감함을 감출 수 없다.
 
 IBM 중 그 첫 번째가 인샬라!고 이 용어로 이규태를 공격해 간 사람이 진중권이다. 아랍인들은 저녁약속을 하고 헤어질 때도 인샬라. 내일 8시에 미팅 약속을 약속할 때도 인샬라!다. 물론 그 시간에 가 보면 태연히 딴 짓을 하고 있기 일쑤로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무슬림 바이어가 한국에 들어오면 이젠 내가 좀 늦게 나가기도 한다. 물론 이때 전화를 미리 해 주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화를 내는 법은 없다. 한국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나보고 자기 나라에 들어오면 환대하겠다고 정식 초대를 하면 나는 스케줄 상 확답을 하지 못하고 빙긋이 웃는다. 그러면 5초도 지나지 않아서 오른 손바닥을 내보이면서 인샬라가 나온다. 그땐 나도 손바닥을 쳐 주면서 인샬라!다. 그럼 서로 환하게 웃는다. 가게 되고 안 가게 되고는 신의 뜻이라는 의미다. 아랍계 문화와 조금만 친숙한 사람이라면 이 인샬라의 홍수에 흠뻑 젖지 않고는 시간을 단 몇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눈이 내리네(Tombe La Neize)‘로 유명한 샹송가수 아다모(Adamo)가 부른 샹송 ’인샬라‘는 이렇게 후렴구를 세 번 반복하면서 끝을 맺는다. “인샬라~, 인샬라~ 인샬라~~”
 
장인정신과 멧돼지 정신의 충돌
 
 이규태와 진중권의 충돌은 지성과 반지성의 충돌이다. 문명과 그를 파괴하려는 야만의 충돌이다. 고증과 자료에 충실한 장인(匠人)정신과 단순 무식을 자랑삼는 멧돼지 정신의 충돌이다.
 
 일생을 비교 문화 연구에 바친 이규태로서는 글 줄이나 쓴다는 한국의 지식인들 중에서 ‘살람 말레콤’이란 인사말을 두고 평화 애호의 문화 코드로 해석하는 단순무식한 인간이 있을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 그런 저급한 수준으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멧돼지처럼 우두두두 흙먼지를 날리면서 돌진 해 오는 맹목적인 인간이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오랫동안 문화비평가란 타이틀을 걸고 대중 앞에 글을 써왔던 진중권이 무슨 이유에서 말미암아서였는지 진정으로 문화를 비평한 글을 한편도 제대로 못 써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가 줄곧 써낸 글은 특별한 전문 지식도 없이 아무나 기분대로 쓰면 되는 정치나 시사비평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문화비평을 독자적으로 써 낼 소양도 쉽게 갖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진중권이 이규태 칼럼니스트에게 폭언을 퍼부은 그 부분을 그대로 돌려주면 ‘무식한 진중권은 남들이 공부할 때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 故이규태님 보고 고원지대에서 살다 오셨나를 묻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무협지나 읽고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이나 하면서 놀다 오지 않았는지’를 물어봐야 제격이다.
 
 며칠 전 흑돼지 무리가 농가에 뛰어 들어 온갖 소동을 피우는 광경이 TV를 통해 소개되었다. 흑돼지가 무얼 알겠는가? 그들의 눈에는 산에 있는 풀도 먹이감이고 농민들이 피땀 흘려 가꿔 놓은 보리며 채소도 다 한 끼 식사에 지나지 않는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쏘다니며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높이고 있었다. 하여간 흑돼지들이 하도 요란하게 소란을 피우니까 미디어의 각광은 받는다. 이런 흑돼지의 횡포를 보다 못해 소방수들과 농촌지도소 직원들과 농민들이 합세해서 흑돼지 무리를 우리에 몰아 넣었다. 그 후에 한 농민들이 하는 말이 재미있고 한없이 넉넉하다. “저 흑돼지들도 밖에 쏘다니며 먹이도 없이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저기 들어가니까 사료를 참 잘 먹고 있잖아요. 쯧쯧“
 
 나는 진중권의 여태까지의 행각에서 이런 흑돼지의 모습을 본다. 진중권은 자신이 자꾸 미디어에 자꾸 등장하는 것이 자신이 똑똑해서 그러는 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제발 꿈 좀 깨시기 바란다. 수십 년을 장인정신으로 글을 써온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서 인종주의 망언 운운하는 것이 어찌 저돌적인 멧돼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런 무식한 상태로서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 가기는 커녕 불순한 의도를 가진 권력이나 이상한 세력에게 이용당하며 살기 십상이다. 진중권이 농작물까지 마구 파헤치는 흑돼지처럼 문명과 문화에 대한 파괴운동을 하려고 작심하고 소동을 피웠든가? 하여간 흑돼지나 진중권이나 미디어의 눈길을 잡는 데는 다 성공했다. 가히 경축해 마지않을 일이다.
 
 몇 세기에 걸쳐 완성한 아무리 훌륭한 예술품이라도 무식한 한 사람의 망치에 걸리면 파괴는 순식간이다. 진중권처럼 단순 무식함에서 오는 맷돼지 정신에만 투철하면 일순간에 박살난다. 여기엔 논리가 필요 없다. 대중의 감정에 솔깃한 선동과 말초적인 감각만 부치길 수 있는 기교만 있으면 된다.

 사람들이 이규태가 쓴 원문을 면밀하게 비교 분석을 하지 않고 진중권의 글만 본다면 이규태는 영락없는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며 십자군 원정을 부추기는 사이비 기독교 근본주의자다. 하지만 진중권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진중권 스스로가 비교 문화에 관한 공부를 1년만 제대로 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저절로 극단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것이 문화인류학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힘이다. 20년 이상을 비교 문화학을 연구해 온 이규태가 진중권이 몰아 부친 인종주의 망언을 했다고 들을만한 소양밖에 쌓지 않았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그 글을 봐도 후학에게 그런 폭언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는 진중권이 그 글로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방식이 꼭 수 십년 간 외곬 인생으로 비교문화를 연구해 온 ‘위대한 장인(匠人)’에게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생트집을 잡는 방식으로 했어야 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냥 이규태와는 별개로 주간 동아 등 다른 잡지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옳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야비하고 저열한 방식이다.
 
환경결정론과 목마른 케냐
 
 환경결정론이란 울릉도에 있는 가옥의 지붕이 가파른 것은 비나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하기 위함이고 아랍인들이 극단적이라면 그건 기후나 고지대에 살아 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함이 주 목적이다. 결정론이란 말 때문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뭘 잘 모르는 사람이다. 과학적인 방법론 불과하기에 취사선택과 최종 선택은 본인들의 몫이다. 환경결정론이 케케묵은 이론에 불과하다고? 뭘 모르면 이렇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법이다. 요즘에는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유전정보가 해독됨에 따라 유전자 결정론까지 나왔다. 환경결정론에 의한 분석이 인종주의적 망언이라면 인종주의와 결정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는 유전자 결정론의 의한 분석에는 어떤 명칭을 붙여야 하나?
 
 내가 생각하는 환경결정론 환경가능론 문화결정론은 똑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다. 얼마 전 TV에서 <케냐는 목마르다> 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다. 야생 동물의 낙원이었던 케냐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가 계속되자 어떤 비참한 상황이 전개되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세렝게티 야생동물 공원의 동물들이 질병과 굶주림에 죽어가고 도로에 늘어선 케냐 어린이들은 손에 프라스틱 용기를 항상 들고 다닌다. 3일 동안 물 한 모금 못 먹었다고 말하는 어린이들이 혹시 물을 담은 트럭이 지나가면 즉시에 그 용기를 들고 줄을 선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는 소방차 모양을 한 물탱크들이 물장사를 하느라고 바쁘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마샤이 족은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염소를 끌고 도시 나이로비에 몰려왔다. 대도시는 원래 수원(水源)이 될 큰 강이 없으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는 그래도 물이 있고 목초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몰고 온 염소를 한 마리씩 팔아서 생활해온 그들은 몹시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비가 와서 자신들이 살던 옛 터전에 목초가 자라면 언제든지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모든 사회현상이 환경의 변화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웅변해 준다.
 
19세기 환경결정론에 반하여 가장 최근에 나온 학설인 문화결정론을 내 나름대로 비교 분석해 보겠다. 문화 결정론을 말하는 학자들이 드는 예는 대개 다음과 같은 구조를 띄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여러 민족들의 농경형태를 살펴보면 LA한인은 쌀을 심고 빵을 먹고 살았던 유럽인이나 아랍인들은 밀을 심는 등 그 행동주체들이 가진 문화양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준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 문화의 차이라고 들고 있는 미곡 문화와 밀 문화가 근본적으로 무엇 때문에 형성된 것일까? 한국인은 한반도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 전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미곡을 경작하고 먹는 문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내 생각에는 이 사람들이 쌀을 심고 밀도 심을 수 있는 것 또한 캘리포니아란 땅이 관개가 잘 되어 있고 기온도 맞아서 쌀과 밀 중 어느 것을 심어도 잘 자라는 환경이게 가능한 이야기다. 그들이 애리조나 같은 사막 지역에 이민 가서도 이런 행복한 선택권을 가지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이 그런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연이 부여한 것이다.
 
한인 이민 1-2세대는 모국어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문화결정론적이라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민 5세대 정도만 거치고 나면 그들이 쓰는 모국어도 바뀌어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현상은 문화결정론으로 봐도 일견 타당하고 환경결정론으로 봐도 또 타당하다. 단기간의 현상은 문화결정론으로 설명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환경결정론이 훨씬 설득력을 얻는다. 이러한데도 환경결정론이 19세기 케케묵은 이론이라서 별 볼일 없다고 주장하는 진중권은 왜 기원 전후에 발생한 기독교를 보고 케케묵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문화결정론이란 냉정하게 평가하면 환경결정론의 상대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그 이론적 토대가 너무 취약하다.
 
문화결정론 환경결정론 환경가능론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이런 까닭에 문화결정론은 환경결정론과 다른 나무가 아니라 환경결정론이란 나무에서 자란 다른 가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 환경가능론조차도 그들이 환경을 개척하는 방식이 그 환경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물질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환경결정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강물이라는 지역상의 장애를 정복하는 방식으로 배를 만들었지만 그 배의 재료는 각기 다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파피루스를 엮어서 배를 만들고 통나무가 북미 지역에서는 통나무배를 만든다. 얼음이 꽁꽁 얼고 눈이 많이 오는 에스키모 지역에서는 개 썰매를 사용한다. 말을 사용하는 마차의 사용은 그렇게 춥지 않고 목초가 자라는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간다는 환경가능론의 주장조차 그 극복하는 방식에서는 너무나 환경결정론적이다.
 
 문화인류학이나 인문지리학에서 환경결정론 환경가능론 문화결정론을 각기 1/3 1/3 1/3의 비중으로 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 접근법에서 각각의 중요도는 환경결정론이 약 70%의 중요성을 차지하고 환경가능론과 문화결정론을 합쳐서 약 20%, 나머지 기타 10%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제대로 된 분석이다. 특히 문화인류학은 기능적 측면보다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통할 수 있는 인류의 본성과 원형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보기엔 문화 결정론은 환경결정론이란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bough)에 불과하고 환경 가능론은 접(接)을 붙혀 자란 가지(bough) 정도다. 환경결정론적 연구방식은 그 효용성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19세기를 넘어 21세기 아니 3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줄 것임에 확실하다. 진중권은 책에서 본 것을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암기만 하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거기서 한 발짝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보는 것이 어떨까?
 
사실 한국의 일반인들 중에서 중동하면 사막이나 오아시스 정도만 생각하지 파미르 고원(Pamir Plat) 같은 고지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지역이 이규태가 말한 혹서와 혹한으로 대별되는 심한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모른다. 일반인들이 가진 상식은 중동은 ’사막지역이라서 기온이 높고 일교차가 심하다‘ 라는 인문지리 시간에 배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중동 문화와 중동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유용한 글이 오히려 더 많이 나와야만 한다. 아쉽게도 진중권이 가진 그 특유의 무식함과 저돌성 때문에 인종주의 망언이라는 폭력까지 당하기는 했지만 故 이규태님과 같이 서재를 뒤지고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알곡을 만들어 이 사회의 무지를 일깨워 주는 분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안티조선에서 안티포탈 운동으로
 
이제 시민운동도 지난 시절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그 중에서 특히 언론운동은 더욱 그렇다. 가령 안티조선운동을 지속한다 하더라도 이런 야비하고 무식한 방식으로는 시민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자 위대한 학자이자 장인(匠人)을 엉뚱한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문화를 파괴하는 행동일 뿐이다. 정치적인 목적은 수년을 못가지만 문화적인 가치는 영원히 남는다. 반성 많이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조중동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과거의 조중동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이 바뀌면 운동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사주라면 수 년 전에 그 주식을 다 처분하고 다른 사업으로 전향했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신문이 적자가 난다 하더라도 든든한 재벌의 대변인 역할만 하더라도 이사진의 입장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기에 제외한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언론 미디어 중에서 영향력 1위가 조선일보라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는 조중동 3개를 다 합쳐도 네이버(naver)나 다음(daum)같은 포탈 하나의 영향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또 대한민국의 대표적 종이신문들인 조중동은 KBS 하나의 위력에도 못 미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에서는 조중동의 횡포가 어떻니 하면서 엄살을 떤다. 그러면 대충 눈치를 차린 어용 시민단체 몇몇이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다. 국민 세금을 매개로 하여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여전히 안티 조중동운동에서 얻어낼 표와 반사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안티 조중동 운동의 타성에 못 이겨 여전히 뭇매를 가하는 일은 건전한 시민운동을 넘어서 이젠 일종의 잔인함으로 비춰진다. 이 와중에 걸출한 논객 변희재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다. 물론 그의 글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 선배인 진중권의 글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운동은 권력을 견제하는 본래의 역할을 해야 한다. 미디어 언론에서 그 권력지도가 종이언론에서 포탈로 넘어간 지 오래됐다. 이젠 안티조선운동이 아니라 안티포탈운동으로 방향을 바꿔 새로운 권력을 견제해야 할 때다.
 
故 이규태님을 추모하며 
 

▲▲故 이규태 前 조선일보 논설고문     ©조선일보
척박한 한국의 문화풍토에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몸소 등불로 밝혀 주셨던 별이 지다.
 
솔직히 이규태님이 작고하신 사실을 한달 넘게나 몰랐다. 신문을 안 본지가 제법 오래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체로 풍부한 사료를 들어가며 정치나 오락 일변도의 신문기사에서 유독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글을 쓰셨다. 그의 호흡이 멈추자 그의 글이 멈추었다. 말 못할 아쉬움이 밀려온다.
 
 나도 20대 때 그의 글을 보고 적지 않은 영감을 받았다. 돌이켜 보니 내가 그 분에게 해 준 것은 하나도 없으니 일순 미안함이 앞선다.
 
 이규태님은 서구 유럽에서는 국장이라도 지내거나 TV에서 그의 인생을 다룬 특집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정도의 한국 문화계의 거목이다. 그런데 현 정부와 조선일보와의 불편한 관계, 그리고 문화에 대한 몰이해 등이 이렇게 그의 죽음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심정적으로 동지가 아닌 적(敵)의 관계라 해도 이건 너무 몰상식한 짓임에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는 진중권 같은 무식한 인간이 쓴 소설 때문에 그를 오해하고 그에게 무지막지한 돌을 던지며 이지메에 동참한 세력들도 많을 것이다. 그 당시 이 상황을 다 알고서도 몸소 진실을 밝히며 도와주지 못한 나 자신이 한없이 죄송하다. 뒤늦게나마 故 이규태님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친다. / 김휘영(문화비평가)
 
‘24년 동안 8391일에 걸쳐 6702회까지 이어진 초유의 신문 고정 칼럼(‘이규태 코너’),
  스스로 주도한 대형 신문 시리즈물 37개, 120여 권에 이르는 저서, 사람 얼굴을 다룬 책만도 30권...‘----한겨레 신문
 “그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나는 그의 독자다.”--- 이청준 (소설가)
 “미국 유학 중 ‘이규태 한국학’을 즐겨 읽었다“ ----도올 김용옥
 “한국에서 거대한 박물관이 하나 사라졌다“---- 무명씨
 “우리는 진정한 문화인의 가치를 알아 볼 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무위 김휘영(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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