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 진출 막혀 있던 시대에 미모로 신분 상승한 왕의 정부들
당시의 스타였지만 나라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저주의 표적돼

44살이란 짧은 생애 가운데 20년 가까이 루이 15세의 정부로 지냈던 퐁파두르 부인의 친모는 고급 매춘부였다. 억척같았던 어머니는 미래의 ‘왕의 정부’로 만들기 위해, 어린 딸에게 다방면의 ‘고액 과외’를 하는데 그녀를 가르쳤던 선생들의 이름을 모두 열거하면 그 시대의 명사록이 될 수 있을 만큼, 그녀가 받은 교육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온 가족이 전력 기울인 ‘가족사업’

중국은 좀더 개방적이지만, 우리나라의 후궁은 원칙적으로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녀라야 했다. 유럽은 그와 다르다. 간통도 대죄이긴 하지만, 기독사회에서는 미혼 여성의 임신이 더 중한 대죄였다. 남편은 왕과 정부 사이에서 난 아이의 알리바이를 꾸미기 위해 필요했고, 남편은 그 대가로 작위나 금전을 보상받거나 많은 경우는 대사직을 맡아 외국으로 떠났다. 때문에 ‘준비된 정부’였던 그녀 또한 20살이 되자 후견인의 조카와 결혼을 한다. 남은 것은 잘 계산된 왕과의 해후. 그 일은 온 가족이 전력을 기울였던 ‘가족사업’으로, 거기에는 춘향이 변사또에게 받았던 것과 같은 강제가 없었다.


△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대부분의 역사가들이나 전기작가들은 물론이고 페미니스트마저도 왕의 정부를 매춘부로밖에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과 욕망>(랜덤하우스중앙, 2005)을 쓴 마거릿 크로스랜드는 “현대 여성 중에서 과거의 여성들을 평가하면서 그들의 시대적 지위를 고려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물으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거의 막혀 있던 18세기에 여성이 신분 상승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미모와 사교술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퐁파두르 부인을 여권운동의 선구자로 본 최초의 필자다.

퐁파두르 부인에게 여권의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나, 그녀가 남겨놓은 업적만큼은 여느 왕의 정부와 비교되지 않는다. 파리의 명소가 된 몇몇 건물은 그녀가 사재를 털어 지었고, 명품 도자기 세브르를 만든 것도 그녀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과학과 사상을 환영했던 그녀의 물질적 지원과 보호가 없었다면, 백과사전의 제작은 도중에 중단되거나 훨씬 늦게 간행되었을 것이다. 유럽 왕실을 수놓은 정부들의 역사를 쓰면서, 400쪽이 넘는 분량 가운데 상당량을 퐁파두르 부인에게 할애했던 엘리노어 허먼의 <왕의 정부>(생각의나무, 2004) 역시 유사한 평가를 내렸다.

왕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왕정이다. 정부의 침대는 왕이 진 과중한 책임과 전능한 권력 그 어느 사이에 놓여 있을 것이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왕가의 결혼이란 참 끔찍했다. 왕족의 결혼은 그저 왕자를 생산하기 위한 요식 행위이거나 정략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사랑은 문제되지 않았다. 공주들의 미모는 동화 속 주인공과 매우 달랐으며, 정숙을 미덕으로 여기고 정열을 자제하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자들은 적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잘생겼다”고 생각한다는데, 이는 “왕과 정부 사이의 성교는 진짜 사랑 행위, 혹은 적어도 진정한 욕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를 보면 왕이 적자보다 서자를 편애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현대인에게 정부가 있는 걸까

왕의 정부는 그 당시의 ‘스타’였지만, 두 저자가 공히 지적하듯이 흉년·전쟁·불황 등의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원성과 저주의 표적이 됐다. 왕에 대한 불만을 입 밖에 내는 것이 반역에 해당하는 시절이기에 백성들은 “정부를 속죄양”(마거릿 크로스랜드)으로 삼거나 “손쉬운 분풀이 대상”(엘리노어 허먼)으로 여겼다. 이런 사정은 동양도 다르지 않다. 안록산의 난으로 도탄에 빠진 군사와 백성들은 당 현종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군주를 징벌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종을 윽박질러 양귀비를 죽이게 했다.

성서에 의하면 왕정이란 악마의 산물이다.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왕정 체제를 가지고 있을 때도, 이스라엘의 신은 왕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왕의 정부>를 읽다 보면, 유럽 왕실이나 귀족사회가 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개망나니 집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왕족들은 애초에 의무감으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정부가 필요했다지만, 사랑해서 결혼을 한 현대인들에겐 왜 정부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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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2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변하고, 또 식어버리기 때문인걸 몰라서 물었을지 원.. -_-;;
그런데 이 글은 출처가 어디인지요?

라주미힌 2006-02-2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21입니당... 1주일에 한번은 들르는뎅 읽을만한게 많아용.
 

제브라피시로 종양모델 만들거나 달걀에 화장품 독성을 주입하는 대체실험
고통 기억 시간이 최대한 짧은 생물 이용하는 노력, 아직 한국은 걸음마 단계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마우스, 개, 원숭이만이 실험동물이 되는 걸까? 아니다. 최근에는 물고기도 실험동물로 이용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어류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3R 원칙에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경제적이기도


△ 암 메커니즘 연구에 쓰이는 제브라피시(위)와 종양 유전자를 집어넣은 치어들. 물고기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윤운식 기자)

서울대 수의대 박재학 교수팀은 제브라피시(잉어과의 대표적인 관상어)를 이용해 암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고등동물보다는 하등동물을, 하등동물보다는 동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1월31일 찾은 그의 실험실은 수족관으로 둘러싸여 축축이 젖어 있었다.

“제브라피시는 사람과 유사성이 많아요. 사람처럼 척추동물이고, 폐를 제외하곤 인간이 가진 장기를 다 가지고 있죠. 2000년대 이후 윤리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동물 모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연구에서는 마우스가 종양모델로 이용된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서도 인공적으로 쥐에게 ‘테라토마’를 만들었듯이, 연구자들은 많은 실험에서 쥐의 세포에 종양 유전자를 주입해 암을 만든다. 종양 유전자를 품은 쥐들의 암 발생 과정을 연구해 암 발생 메커니즘과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실험실의 쥐들은 태어나자마자 외부에서 주입된 암을 앓다가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한다.

연구팀의 석승혁 연구원은 깨알만 한 알이 들어 있는 샬레를 현미경 재물대 위에 얹었다. “쥐에게 종양 생성 유전자를 집어넣을 때는 세포에 직접 주입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요. 하지만 제브라피시는 세포보다 훨씬 큰 알에 주입하면 되기 때문에 손쉽고 실패율이 낮아요.”

제브라피시는 경제적이기도 하다. 세 달이면 성체가 되는 짧은 생애주기, 한 번에 200~300개의 알을 낳는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실험용 쥐가 한번에 6~10마리 낳는 데 비해 엄청난 번식력이다.

그렇다고 물고기는 생명이 아닌가.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학계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어류는 포유류에 비해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계에선 종양 모델 연구가 불가피하다면, 어류를 이용한 종양 연구는 ‘인도주의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물고기도 물론 ‘생명’이기 때문에 실험을 피해야 하지만, 최대한 동물의 고통을 줄이려는 인간의 선의의 노력으로 해석하자는 것이다.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혈액암 연구모델을 확립한 논문은 2003년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박 교수팀은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뇌 종양과 간 종양 모델을 확립하는 게 목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화장품의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독성물질이 투여된 유정란. 토기의 안점막을 대신한다.

그러나 박 교수처럼 대체실험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1월20일 경기 기흥의 태평양 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실험동물의 대체에 관련된 특별 세미나’에 참석한 70여 명의 동물실험 연구자들의 얼굴에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이날 4시간 남짓의 세미나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참석자들의 하소연이 네댓 차례 반복됐다. 실험동물의 대체에 관한 한 한국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동물실험을 이용한 화장품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또한 2005년 11월7일에는 관련 업체와 연구자들이 모여 “화장품은 물론 화학합성물에 대한 동물실험도 금지하기 위해 이를 위한 대체실험법을 연구해 보고한다”는 브뤼셀 선언을 발표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체실험법 체계를 갖춰나가고 있다. 1994년 유럽은 유럽대체실험검증센터(ECVAM·European Center for the Validation of Alternative Methods)를 세워 민간에서 개발되는 대체연구법을 검증·인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역시 같은 기능을 가진 대체실험검증위원회(ICCVAM)가 1997년 세워졌고, 일본에서는 일본대체실험검증센터(JACVAM)가 2004년 설립됐다. 이 기관들은 민간의 대체실험을 지원·연구하는 한편, 대체실험법을 통해 얻은 독성시험 결과를 검토한다. 세계 추세는 동물실험에서 대체실험으로 가는데, 국내에선 연구하는 학자도 드물고 정부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잡지를 보니까 뒷면에 동물 실험하는 회사와 하지 않는 회사를 써놓았더라고요. 소비자들이 구매에 참고하는 것이죠. 다행히 우리 회사는 리스트에 없었지만, 이젠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대체실험법을 준비하지 않으면 수출 등 기업 활동에도 지장이 생길 겁니다.”

한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연단에 서서 이렇게 푸념했다. 연구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우리가 대체실험법을 개발해도, 인증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이를 인정해줄지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올라온 연구원은 식약청과 4~5개 기업이 공동으로 대체법 연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화장품업계에서는 제1위 업체인 태평양 정도만 대체실험법을 제한적으로 도입한 상태다.

화장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동물실험은 ‘드라이즈 테스트’라고 불리는 안점막 실험이다. 화장품이나 샴푸·린스의 특정 성분이 눈에 들어가도 실명이나 눈병의 위험이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일정량의 독성물질을 토끼의 눈에 투여하고 1시간, 24시간, 48시간째 경과를 확인한다. 물론 간결한 실험결과를 위해서 토끼는 결박되며 마취제의 투입도 제한된다.

대체시험법 준비 서두르는 식약청

태평양은 계란을 이용한 대체실험(헷캠·HET-CAM)을 도입해 토끼에게 고통을 주는 안점막 실험 횟수를 줄이고 있다. 열흘 정도 부화시킨 유정란에는 혈관이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독성물질을 투여한 뒤 눈이 충혈되는지 여부를 따져 독성을 가린다. 막 자라기 시작한 유정란의 혈관이 토끼의 안점막을 대신하는 것이다. 소의 각막세포를 이용한 방법도 있다. 식용으로 도축된 뒤 나오는 각막세포를 독성실험에 이용한다. 김배환 태평양기술연구원 박사는 “모든 실험에 대체실험을 도입하진 못했고, 10번의 실험이 있다면 9번을 대체실험으로, 나머지 1번을 동물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횟수를 줄인다”고 말했다.

식약청은 대체시험법 확립을 위한 준비에 서두르고 있다. 식약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독성시험 가이드라인에서 인증한 대체실험법을 도입해 시험해보고 있다. 또한 화장품 안전성 인증에 필수적인 피부감작성 시험에 대한 대체시험법을 2009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독성연구원의 이종권 박사는 “화장품 안전성 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며 “국내 연구 인프라가 취약해 다수의 기업연구소와 대학이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유럽에 비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본은 국가기관도 만들었다”

[인터뷰_ 야수오 오노 박사]

각 기관과 기업에 동물실험위, 대안연구 지원하는 검증센터도


일본은 동물 대체실험 연구 역사가 긴 편이다. 2006년 8월에는 세계 동물실험 대체법 연구자들이 모이는 ‘제6차 생명과학에서의 동물이용과 대체법에 관한 세계 과학자 회의’를 개최한다. 한국 과학계에 이 회의를 홍보하러 1월20일 서울에 찾아온 제6차 회의 의장인 야수오 오노 박사에게 일본의 대체연구 현황을 들어봤다. 국립 식품의약품위생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일본 대체실험법 연구회 대표를 지냈다.

일본의 동물실험 실태는.

=예전엔 일본에서도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물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해선 안 된다. 이를테면 중추신경계 관련 약물의 안전성을 검증할 때, 굳이 영장류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배양세포에서 검사해도 충분하다. 또한 될 수 있으면 하등동물을 쓰고, 동물실험을 할 수밖에 없을 때는 마취약을 쓰는 등 고통을 경감시켜야 한다. 대체실험법학회는 그런 실험을 연구 개발하고, 과학자들에게 교육하는 단체다. 1982년 대체실험법 연구회로 시작해 1990년 학회를 결성했고, 2002년에 일본 학술원 등록단체가 됐다. 현재 33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동물실험에 대한 국가적 규제가 있나.

=일본에선 각 기관과 기업에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된 뒤, 그런 경향이 줄었다. 대학은 문부성 규정에 따라 동물실험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기업에는 권고사항이다. 최근에는 ‘동물애호와 관리에 관한 법’ 안에 3R 법칙이 명시됐다. 여기서 3R 중에 실험 개체 감소(reduction)과 대체법 활용(replacement)은 권고사항이지만, 고통 감소(refinement)는 의무사항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대체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일본의 경우 최근까지도 대안 연구를 지원·관리하는 담당기관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대체실험법을 인증하는 일본대체실험검증센터(JACVAM)라는 기관이 생겼다. 관련 예산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체실험이 생명윤리 논란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겠지만,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특히 독성물질을 동물에게 시험하지 않고 내놓을 때, 일반인이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대에 들어와 엄청나게 많은 화학물질이 합성되고 의약품이 탄생하고 있다. 특히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다이옥신을 보라. 각 동물에 투여됐을 때, 동물의 희생도 크고,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 대체연구는 이런 위험성을 줄인다. 동물을 이용하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이런 점에서 대체실험이 강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동물실험이 인간에게 똑같은 결과를 내오지 않는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동물에게 독약이 된다고 해서, 인간에게 독약이 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동물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물질도,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럴 경우 배양세포를 이용해 연구함으로써 독성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찬찬히 연구하는 편이 낫다.



동물 수를 최대한 줄여라

화장품 대체시험법은 국제적 수준에 비추어 어디까지 왔나

국내에서 개발된 화장품은 ‘기능성 화장품 등 심사에 관한 규정’에 따라 독성시험 결과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해야 한다. 신원료의 경우 △일회 투여 독성 시험(LD50) △1차 피부자극 시험 △광독성 시험 △피부감작성(알레르기) 시험 △안점막 자극 시험 등을 거쳐야 한다. 이들 시험에서는 모두 동물이 이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화장품에 대한 동물 대체실험법을 하나둘씩 제시하고 있다. 일회 투여 독성시험은 어린이가 화장품을 예기치 않게 먹게 될 경우 전신에 나타나는 독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다수의 동물에게 독성물질을 투여해 50%가 치사량에 이르는 수치(LD50)를 구한다. 그러나 ‘OECD 독성시험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대체시험법은 LD50치를 구하지 않고, 동물 수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1차 피부자극 시험은 화장품이 피부에 발라졌을 때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홍반이나 부종을 판단하는 데 이용된다. OECD는 인공피부를 이용한 시험법 등을 채택하고 있다.

광독성 시험은 화장 뒤 빛에 노출됐을 때 생길 수 있는 홍반·부종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다수의 기니피그가 실험동물로 이용된다. OECD는 2004년 4월 마우스 유래의 섬유아세포인 3T3 세포의 변이 여부를 조사하는 ‘3T3 NRU 대체 시험법’을 채택했다.

피부 감작성 시험은 다수의 기니피그의 털을 밀어내고 신원료를 바른 뒤, 3주 동안 알레르기 여부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반면 OECD가 채택한 대체시험은 국소 임파절 반응법(LLNA)인데, 이는 소수의 마우스의 귀에 신원료를 바른 뒤 6일째 귀의 림프절을 떼어내 세포 증식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실험에 들어가는 동물 개체 수와 고통 지속 기간을 줄이지만, 실험 뒤 방사선을 쬐어 결과를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 문제가 뒤따른다.

국립독성연구원은 2002년부터 피부 감작성 시험에 대한 대체법을 연구하고 있다. OECD가 채택한 국소 임파절 반응법을 이용하되, 방사선을 쬐지 않는 방법을 2009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박귀례 면역독성팀장은 “방사선 사용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대형 연구기관 외에는 이 시험법을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장품 대체시험법은 동물의 완전 대체 수준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동물 수와 고통을 줄이고 실험 기간을 짧게 하는 것도 많다. 박 팀장은 “과학기술 여건상 아직까지 완전 대체는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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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 통해 안전한 물질로 알려진 입덧방지제가 1만여 명의 기형아 만들어…환경적응력 잃은 실험동물들, 무차별적으로 죽여 얻은 결과를 맹신해야 하는가

▣ 김진석/ 건국대 교수·수의대

힘들고 지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황우석 교수 신드롬’에서 분명히 보이듯 의·생명과학 발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관심과 평상심 잃은 논란은 현장 과학자로서 감당하기 두려울 정도로 일방적이며 광적이다. 그럼에도 난자 채취를 포함한 연구윤리에 대한 일련의 반성 속에서 동물 이용 연구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척추를 끊은 개에게 줄기세포를 넣었다’든지 ‘100마리의 쥐의 척추를 고의로 끊고 줄기세포를 주입했다’는 과학 행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설치류와 인간의 차이 무시


△ 동물실험이 완벽하게 안전성을 입증한다는 말은 환상에 가깝다. 프랑스의 탈리도마이드 피해자가 아기와 함께 쇼핑하고 있다. (사진/ Rex features)

동물실험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의사가 감각과 운동신경 그리고 힘줄 사이의 기능적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어느 때인가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동물실험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동물실험 지지자들과 동물보호론자들 사이에 동물실험의 공과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동물 이용 연구가 의·생명과학의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했음엔 이론이 없다. 천연두와 소아마비 백신을 비롯한 각종 약물들과 장기이식 기술의 개발, 그리고 인체의 신비를 풀어내는 데 동물들의 대리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동물실험 자체를 완고하게 반대하는 동물권리론자들의 주장을 일단 미룬다고 치자. 그래서 ‘동물실험의 대체법이 없고, 연구자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건강을 위한 동물 이용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동물복지론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자신의 미래를 의·생명과학 기술에 온전히 갖다바친 국가에서 여지껏 동물실험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싹조차 보기 힘든 건 슬픈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계 최초의 발견’ ‘수십억 또는 수조원의 지적가치 창출’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단 언론들의 연구결과 보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동물실험 결과가 성급하게 부풀려지는데 웬일인지 인간에 적용됐다는 후속 보도는 실종되기 일쑤다. 환호하던 우리 모두 그렇게 무심하게 잊어가는 것이다.

1961년 11월26일 입덧 방지용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의 판매가 전격적으로 금지된다. 1957년 10월부터 유럽은 물론 일본의 임산부들에게까지 ‘부작용 없는 약’으로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약이다. 판매 직후부터 수백 건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지만 이는 무시됐다. 동물실험을 통해 ‘거의 유례없을 정도로 안전한 물질’로 판명됐다는 제조회사와 정부 책임자들의 주장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계에 걸쳐 약 1만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고서야 ‘동물실험에 대한 맹신’은 참혹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미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켈시 박사의 고집스러운 동물실험 자료 승인 거부로 이러한 불행에서 용케 몸을 피한다.

탈리도마이드가 개, 고양이, 래트, 햄스터와 닭에게는 어떠한 독성도 나타내지 않고 특별한 토끼 품종에서만 사람과 비슷한 독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재앙이 일어난 뒤의 일이다. 그 뒤에도 동물실험 결과 안전한 것으로 밝혀져 임상시험을 거쳐 판매됐던 약이나 식품들은 결정적인 부작용으로 인해 판매가 금지되거나 회수 처분되고 결국 법정 다툼으로 옮겨갔다. 물론 동물실험이 지닌 불가피한 과학적 맹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이러한 불행은 계속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동물실험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설치류는 생리학적으로 구토 기능이 없을뿐더러 인간과는 달리 코로만 숨을 쉰다. 이는 독성물질의 체내흡수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사람의 수명은 70살 전후지만 설치류는 고작 2년 내지 3년 정도 산다. 어디 그뿐인가? 래트는 다산성이어서 1년에 100여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임신할 때 더욱 건강하다. 그들의 태반은 사람의 것과는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설치류들은 사람에 비해 암에 대해 더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의 차이 때문에 암과 관련된 동물실험 데이터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 사이에서도 먹는 취향과 음식량이 다르듯 실험동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실험동물이 먹는 음식이나 복용하는 약물뿐만 아니라 환경에서도 천연 및 합성 화학물질들을 끊임없이 섭취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화학물질의 수는 수백만 개로 추정되며 음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화학물질만도 수만 개에 달한다.


△ 인공적으로 사육된 실험동물들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잃었다. 국립독성연구원에서 사육되는 동물들. (사진/ 류우종 기자)

15년 동물 이용 연구를 접다

또한 인공적으로 사육된 실험동물들은 수백만 년 전부터 그들의 진화를 지배해온 미생물들과의 공생관계가 결핍돼 있다. 그들은 인공조명 아래에서 멸균된 플라스틱이나 금속 격리상자 속에서 기획된 삶을 강제로 살며 고요함과 고정된 온도 속에서 살고 있다.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종류의 동물들인가? 만일 그들이 자신의 동물 종들을 닮지 않았다면 그러한 동물들로부터 얻은 결과들이 과연 인간의 병적인 조건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7년 전, 15년 동안이나 한눈 팔지 않고 매달려온 동물 이용 연구를 접었다. 할 줄 아는 게 오로지 동물실험뿐인지라 과학자로서 생존할 수 있을지 겁이 나고 불안해 망설이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나름의 희로애락을 지닌 생명체를 도구로 얻은 연구결과의 불확실성을 낱낱이 목격해야 하는 현장 과학자로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성적 판단이나 미래를 설계할 능력은 없어도 실험동물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불안을 피하려는 기본적 감성능력을 지닌 또 다른 생명체다. 이 변화무쌍한 생명체를 무오류의 연구결과로 복제할 과학기술은 아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허다한 이해관계에 묶어 마치 일회용 물건이나 실험실 시약처럼 함부로 다뤄도 되는 것일까? 백번 양보해 동물실험이 불가피하다 해도 진지한 고민 없이 이 땅에서 한 해에 300만 마리의 동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야말로 비과학적이며 반생명적 행위가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도 생명을 모독하는 과학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 이제라도 진정한 의·생명과학의 발전을 위해 동물실험은 만능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돼야 한다.


피나는 연구로 생쥐의 암 정복?

동물실험 약품들이 일으킨 재난…인간과 면역체계 달라 적용 힘들다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지사제인 클리오퀴놀은 쥐, 고양이, 개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과했다. 그러나 1976년 일본에서 이 약을 먹은 1만 명이 시력상실·장애와 마비 증상을 겪었고, 수백 명은 사망했다. 1982년에서야 전세계적으로 시판이 금지됐는데, 그때까지 아프리카 등 저개발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사제로 팔리고 있었다. 원숭이 실험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관절염 치료제 오프렌은 61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심장치료제 에랄딘도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반면 인간에게 이로운 페니실린을 쥐에게 투여하면 출산 때 사지 기형을 유발한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벤조일 퍼옥사이드라는 물질은 여드름 치료제로 이용되지만, 쥐에게는 발암물질이다.

동물실험이 임상에 적용되기 힘든 이유는 종이 다르면 면역 체계도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수많은 암 치료제를 내놨지만, 그것은 마우스에게만 통했다. 과장해 말하자면, 지금까지 암 연구의 역사는 생쥐 암 연구의 역사였고, 과학자들은 생쥐의 암을 ‘정복했다’.

레이 그릭은 그의 책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 동물실험은 제약자본이 상품을 빨리 내 팔기 위한 형식적 인증 장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동물실험을 거친 의약품이 인간에게 동일한 결과를 제공할 가능성은 50%를 밑돈다”며 시험관에서의 환자에 대한 임상 연구, 시험관에서의 조직 연구와 장기 기증 등 사회적 해결책에 그만큼의 비용을 쏟았더라면 훨씬 더 의학이 발전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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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의 잔혹함을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어느 실험용 토끼의 고백
비린내 나는 탁자에서 의식을 잃은 뒤 깨어보니 내 다리엔 도청장치가…

무차별적인 여성 난자 적출도 애국으로 칭송되는 마당에 실험에 희생당하는 동물의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 ‘난자연구의 조세회피 지역’이자 ‘동물실험의 조세회피 지역’이다. 동물실험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고, 생명을 귀히 여기는 가치관은 교육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21>은 세계적 수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 한국의 동물실험 현황과 인간의 진보를 위해 혹은 국가·자본의 이익을 위해 실험실에 내몰리는 동물들의 권리를 취재했다. 편집자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디데이가 다가왔다. 엊그제 하얀 가운이 나를 실험실로 데려가더니 엑스레이를 찍었다. 넓적다리. 두껍고 넓은 넓적다리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을 마감할 것이다. 며칠 안 돼 하얀 가운이 나를 다시 실험실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곤 친구들과 함께 밀실에 가두고 독가스(이산화탄소) 밸브를 열겠지.

12주 전부터 나의 넓적다리에는 이물감이 있어왔다. 그때 어두운 실험실 안의 은빛 스테인리스 탁자로 끌려간 뒤부터였다. 그날 하얀 가운은 아침부터 나의 고향 친구들 넷을 차례차례 데려갔다. 한 시간이 지나고 돌아온 친구는 고개를 벽에 파묻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넓적다리에 어설프게 꿰매진 자국과 선홍빛 핏자국이 보였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비린내 나는 탁자에 눕혀지자, 갑자가 쏴 한 기체가 얼굴을 덮었다. 의식을 잃었다. 하얀 가운과 고무 냄새 나는 손, 백열등에 반짝이는 메스의 날을, 난 꿈에서 봤다. 엉덩이에 근육주사가 꽂혔고, 넓적다리에는 리도카인(국소마취액)이 투여됐다. 그리고 ‘앵’ 하는 소리가 났다. 하얀 가운들은 나의 넓적다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있었다. 모터 소리가 멈추고 뼛가루가 쌓일 즈음, 덜컥덜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멍에 무언가를 삽입했음이 틀림없다. 나를 감시하는 도청장치일까. 지금도 그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 시간 뒤, 깨어보니 철창 안이었다. 그 뒤 하얀 가운은 하루 두세 번씩 나를 보러 왔다. 나는 내 친구들처럼 얼굴을 벽에 파묻고 하얀 가운을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넓적다리가 시큰했다. 처음엔 움직이지 못했지만 이틀 뒤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옆 친구는 넓적다리가 썩어간다고 했다. 움직이질 못했다. 하얀 가운은 이틀째 꿈쩍하지 않는 옆 친구를 툭툭 건드려 시험해보았다.

친구는 고통스런 목소리로 그날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기드릴이 그를 깨웠고, 그래서 괴성을 질렀다고 한다. 하얀 가운은 그래도 마취량을 늘리지 않았다고 했다. 마취량을 늘리면 죽기 때문이었다. 대신 3cc 투여했던 근육주사를 1cc 더 투여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날 이후 공격적으로 변했다. 하얀 가운을 보면 우리는 시선을 돌린다. 우리의 몸은 긴장해 공처럼 구부려진다.

나는 안다. 그들은 내 다리의 이물질을 빼곤 용도 폐기할 것임을. 우리 생명권에 대한 유린의 역사는 대대로 구전돼왔다. 고향에서 무조건 살찌워야 했고, 몸무게가 2kg이 되니 이곳으로 보내졌다. 우리 넓적다리에 엑스레이를 찍으면 죽음이 임박했다는 징표라고 했다. 그들은 나와 내 친구들을 가둔 뒤, 독가스로 우리를 사살할 것이다. 그리고 내 다리의 도청장치를 꺼내겠지.

동물실험, 300만 학살의 현장

안락사 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채 매년 애완동물 수만큼 희생당하는 대한민국
과학의 비윤리성 막기 위해 기관마다 동물실험위 설치하고 3R 원칙 준수해야

▣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동물실험실은 주인공만 다를 뿐 유대인이 학살당한 아우슈비츠와 다르지 않다. 지구인을 납치해 생체실험을 한 뒤, 전자칩을 삽입한 외계인 이야기와도 다르지 않다.

앞의 묘사는 흔히 TIBIA라고 불리는 토끼 넓적다리 실험이다. 토끼 넓적다리 실험은 치과에서 쓰이는 임플란트 재료나 정형외과 치료에 쓰이는 뼈 조형물 실험에 이용된다. 넓적다리에 인공 보형물을 삽입하고 조직의 이상 반응을 지켜보는 시험이다. 12주 뒤 뼈 조직이나 근육이 괴사하면 시험은 실패다. 토끼가 건강하게 깡충깡충 뛸 수 있어야 성공이다.


△ 안락사 대신 심장에 공기를 넣어 죽이고, 안식표 대신 발가락을 자르는 동물실험은 우리 과학의 초상이다. 국립독성연구원의 실험동물 우리.

밤마다 토끼에 물려죽는 꿈 꾼다

그러나 실험을 마친 토끼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의료기기 시험기관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29)씨는 “실험 전과 실험 후의 토끼의 행동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던 토끼는 사람을 피하고, 벽 쪽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실험 후에도 성격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원을 잘 따르는 토끼도 있지만, 상당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때로는 괴성을 지른다.

TIBIA 시험은 2~2.5kg의 다 큰 토끼를 이용해 진행된다. 사육업체에서 사온 토끼는 3만~9만원. 이 토끼들은 실험동물 사육동에서 1주일 동안 적응기간을 보낸 뒤, 동물실험에 투입된다.

앞의 TIBIA 시험은 세계적인 동물실험 윤리 기준에 맞춰 진행된 것이다. 이 실험의 경우, 실험동물 전문사육업체에서 길러진 표준화된 동물을 구입해, 실험 전에 마취제를 투여해 동물의 아픔을 최소화하고, 인도적인 안락사를 시킨 뒤, 냉동 보관 뒤 전문 폐기업체를 통해 소각시켰다. 그러나 대학 실험실이나 영세업체에선 실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잔인하고 저렴한 방식이 동원된다.

“동물실험 뒤 동물을 안락사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산화탄소 흡입이나 정맥 주사를 놓기 위한 비용이 필요하거든요. 대학 실험실에서는 안락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심장에 공기를 투여하곤 하죠.”

김씨는 실제 토끼의 심장에 공기를 투입해 도살한 적이 있다. 도살 방법은 간단하다. 50㎖짜리 플라스틱 주사기를 토끼의 심장에 찌른 뒤, 손가락으로 찬찬히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50㎖의 공기가 주입된 토끼의 심장은 10분 만에 활동을 멈춘다. 김씨는 “나의 주사 한 방으로 토끼가 괴성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키는 걸 학부 과정에서 본 뒤, 밤마다 토끼에게 물려죽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한 해 동물실험에 희생되는 동물은 최소 300만 마리로 추정된다. 국내 인구의 6분의 1에 달하는 수치이고, 300만 마리로 추정되는 애완동물의 수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식표 없어 발가락 잘라 표시

그런데 이 수치는 정확한 게 아니다. 사실 한국의 동물실험 규모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물실험 관리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추정 두수가 산출된 과정을 들어보면 희한하기 그지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은 2005년 각 기관·기업·대학 연구소와 실험동물 사육·판매·수입업체를 대상으로 실험동물 사용 현황을 조사했다. 그러나 연구기관·기업 등 실험 주체들에게 물어봐 들은 수치를 합해보니 30만 마리가 나왔는데, 실험동물 사육·판매업체가 판 동물은 300만 마리가 나왔다. 300만 마리가 팔렸는데, 30만 마리밖에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10배 차이가 난다.

“일부 연구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동물실험을 했는지조차 계산하지 않는 실정이에요. 그러니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죠. 판매업체가 (세금 문제 때문에) 실제보다 많이 팔았다고 거짓말하지는 않을 테고… 그래서 최소 300만 마리라고 추정하는 거예요.”

황대연 국립독성연구원 동물자원팀 연구관의 말이다. 이처럼 동물실험은 난맥상이다.

동물실험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윤리가 있다. 바로 영국의 과학자 러셀과 버크가 제시한 ‘3R 원칙’이다. 3R이란 동물실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대체(replacement)하고, 그게 불가능할 경우 동물실험 횟수를 줄이고(reduction),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refinement)해야 한다는 대안 원칙이다. 고등동물 대신 하등동물을 써서 동물이 지각할 수 있는 고통을 줄이거나, 통계적 기법이나 새로운 실험환경을 도입해 실험 횟수를 줄이는 방식, 세포·조직 연구로 대신하는 노력 등이 모두 3R 원칙에 따라 행하는 대안 연구다.

그러나 한국 실험실의 상황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윤리적인 실험기준을 제시하고 과잉 실험을 방지하는 독립적인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된 곳도 손에 꼽을 정도다. 국립독성연구원이 2005년 조사한 결과,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 동물실험위원회를 둔 곳은 전체의 20%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국내의 한 의학연구소에서 면역 실험을 했던 고아무개(31)씨의 말이다.

일선 연구원 90% 실험동물법에 찬성


“실험 대상 마우스에 표식을 해야 하잖아요. 귀에 인식표를 부착하면 되는데, 이마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발가락을 잘라서 표시해요. 오른쪽 엄지발가락부터 자르기 시작하죠. 1번은 엄지발가락이 없는 마우스, 2번은 검지발가락이 없는 마우스, 10번은 발가락이 하나도 없는 마우스이고… 10번이 넘으면 발가락을 두 개씩 잘라 표시하죠.”

고씨는 발가락을 잘리던 하얀 쥐의 절규를 잊지 못한다. 그는 “최소한 연구기관에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해 규제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며 “위원회가 각종 실험기준에 표준을 제시해야 되고, 무분별하게 동물을 사다 쓰는 과잉 실험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 국제실험동물인증협회(AALAC)의 인증을 받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비영리 국가단체인 AALAC는 실험동물 관리와 실험이 과학적·윤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인증한다. 인증받은 연구소는 매년 실험동물 프로그램을 보고해야 하고, 3년마다 직접 실사를 받는다. 전세계적으로 모두 650개 기관이 AALAC 인증을 받았다. 국내에는 국립독성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 성균관대, 연세대, 삼성생명과학연구소 등 5곳이 전부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업체나 바이오 벤처도 인증받지 않았다. 국립독성연구원 조정식 동물자원실장은 “AALAC 수준의 과학적 신뢰성 확보와 동물실험 윤리가 체내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시설 등록·신고제를 시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동물실험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발의한 실험동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동물실험위원회 의무 설치 △3R 원칙 준수 및 안락사 처리 △동물실험 시설 등록제와 실험동물 공급자 신고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조 팀장은 “시설 등록제와 신고제가 실시되면, 진입 장벽이 강화되기 때문에 양질의 동물들이 실험에 이용돼 연구 결과의 과학성과 신뢰성이 담보될 것”이라며 “외국 저널에서 동물윤리 기준을 요구하는데, 대다수 연구시설이 이를 충족할 여건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법안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는 큰 원칙에서 동의하고 있지만, 몇 가지는 정부·학계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실험동물 규제는 보건복지부 주관의 실험동물법에서 나올 게 아니라 실험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이므로 동물보호법상에 규정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실험동물 연구자에 대한 면허제를 시행하고, 동물실험위원회 구성 방안과 관련해서도 시민단체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기관별 위원회뿐만 아니라 권역별·국가별 동물실험위원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벌 연구소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경우, 기관별 위원회가 독립성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 국립독성연구원에서 사육되는 실험용 오리. 한국에선 한 해 300만 마리의 실험동물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큰 그림에서 학계와 식약청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쪽이라면,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마친 실험동물법은 올해 상반기에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청이 지난 2000년 77개 기관의 연구자들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연구자들 또한 실험동물법과 관련해 적극적인 생명윤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연구원들의 90%는 실험동물법 제정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각 부처 대표가 참석한 국가실험동물위원회가 신설돼야 한다는 의견에 62%가 찬성했다. 반대한 이들은 찬성의 2분의 1인 32%에 그쳤다. 또 그동안 동물실험위원회 등 기준 미비로 외국 저널로부터 논문을 거부당하거나 데이터를 불신당하는 일이 8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황우석 사태 때 우리는 꿈쩍 않고 있었어요. 국익을 위해 여성 난자를 마구잡이로 적출해 쓴 황우석 연구진을 두둔하는 마당인데, 감히 동물의 생명권을 말할 수 있겠어요?”

이원복 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동물법은 국가 경쟁력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미비한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은 양날의 칼을 가졌다. 과학은 한 인생을 불운에 빠뜨렸던 소아마비의 예방법을 발견했고 한센병을 정복했지만, 20세기 초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대량 학살의 무기로 변신했다. 과학의 비윤리적인 독주를 막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어쩌면 동물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일선 연구원들은 대부분 실험동물법 제정에 찬성한다. 한국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이 약물독성 동태실험을 위해 원숭이에게 신물질을 주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


설치류가 전체의 80%

유럽 등 감소 추세지만 한국은 급증, 최근 형질전환 동물실험 늘어

실험동물에는 초파리와 같은 무척추 동물에서부터 마우스와 래트 같은 설치류와 개, 그리고 원숭이와 같은 유인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동물실험은 인간과 멀리 떨어진 동물부터 시작해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로 이행한다. 초기 실험 단계에 설치류를 했다면, 그다음은 개에게, 그다음은 영장류를 하면서 차츰 개체 수를 줄여나간다.

설치류는 전체 실험동물 가운데 80%를 차지한다. 10cm 내외의 조그마한 쥐인 마우스와 시궁쥐 크기의 래트, 그리고 기니피그가 사용된다. 설치류는 의약품 독성 실험과 종양 모델로 널리 사용된다. 개와 영장류는 연구원을 알아보는 지능동물이다. 의약품 독성 실험이나 복제 연구 등 이용의 폭이 넓다. 실험을 마친 동물들은 안락사된다. 다만 영장류는 자연사할 때까지 관리하는 게 윤리적 관례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 동물실험은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동물보호단체의 로비와 대체실험의 보급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1986년 1700만~2200만 마리였던 것이 1992년 1400만~2100만 마리로 줄어들었다. 반면 한국은 1987년 12만 마리로 추정되던 규모가 2006년 300만 마리에 다다랐다.

최근 동물실험이 증가하는 분야는 생명공학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발현하도록 형질을 바꾼 형질전환 동물실험이 늘고 있다. 형질전환 동물에서 발현시키는 것은 인슐린, 단일 항체, 성장 인자, 백신, 이종 이식(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이식하는 것)을 위한 조직과 장기 등이다.



한국 과학논문의 거짓말

논문에만 존재하는 동물실험위, 지역별 설치 등 고려해야

과학자들은 유명 외국 저널을 통과한 논문을 보며 고개를 내젓는다. 국내에선 동물실험위원회가 없는 연구기관이 상당수인데, 외국 저널에 통과했다는 것은 논문 통과를 위해 있지도 않은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했을 거라는 뻔한 밑그림이 보이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위원회가 생겨 엄격하게 작동했더라면, 황우석 교수 실험의 여러 진위 논란 중 적어도 복제 소 영롱이 건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의 동물실험위원회는 2005년 3월에야 생겼다. 이나마도 국내에선 선구자 축에 든다.

서울대 동물실험위원회는 각 단과대·연구소로부터 실험에 앞서 동물실험계획서를 제출받았다. 계획서에는 동물 수와 실험 내용을 비롯해 동물실험 외의 대체 방안과 고통 감소 방안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이 계획서가 통과돼야 실험동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위원회가 실험동물 입수와 관리, 폐사 처분까지 관리하는 구조다. 박재학 동물실험위원장은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 680여 건을 심의해 부적절한 32건을 반려해 실험계획서를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반려된 실험계획서를 보면, 개를 이용한 실험이 21건이었고, 돼지를 이용한 실험이 11건이었다.

동물실험위원회가 기관별로 있다 보니,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나도 한 연구기관의 위원이었지만, 한 번도 동물실험 현장을 보지 못했다. 보려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지역별 위원회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은 다수의 대학을 묶어 6개의 대학권에 지역별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은 연구자와 동물보호단체 인사로 구성되고, 위원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동물실험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동물실험 완전 폐지나 완전 허용 같은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니라 생명윤리에 기반한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인간 윤리 뛰어넘는 ‘동물권리론’은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출발

실험동물의 권리나 복지를 주장하는 철학적 토대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환경·생명윤리를 뛰어넘는다.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만 존재 가치를 승인하는 인간 중심적 윤리에 비해 동물권리론은 자연을 구성하는 동물과 같은 생명체의 내재적 가치나 도덕적 지위, 권리를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들의 철학적 전제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다리의 수나 피부의 털, 뼈 골격의 말단의 차이로 인해 같은 운명에 빠져야 한다고 볼 이유는 불충분하다”는 벤담의 말을 기초로,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존재인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권리의 옹호>라는 책을 쓴 피터 싱어는 “인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의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물들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이용함으로써 얻어진 선이 과연 인간이 그 동물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초과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 권리 운동의 시초라 불릴 수 있는 건 1770년대 영국에서 결성된 ‘동물학대방지협회’였다. 현재 ‘동물의 윤리적 취급을 위한 사람들’(PETA)이 25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동물 권리 운동은 발전했다. 급진적인 단체로 알려진 동물해방전선(ALF)은 생물의학 시설, 양모농장 등을 기습하면서 미 연방수사국(FBI)의 국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서구의 동물 권리 운동은 이윤을 목적으로 동물실험을 행하는 의료자본을 반대하고 생태주의, 채식주의 등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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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웃기는 남자, 남자는 웃는 여자 선택
뛰어난 유머감각도 진화한다
2006년 02월 21일 | 글 | 강석하/ 과학통신원 충북의대 기생충학교실 연구원ㆍscattrev@hanmail.net |
 
여자는 잘 웃기는 남자를, 남자는 자신의 유머에 잘 웃는 여자를 선택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찾아왔다. 애인이 없어 고독한 사람들은 이런 ‘데이’가 상술에 불과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고독감과 이별하고 싶다면 여기서 그치지 말고 ‘진화와 인간행동’(Evolution and Human Behavior)지 1월호에 발표된 유머감각에 관한 두편의 논문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뛰어난 유머감각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머가 기업경영에까지 파급될 정도로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유머감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의 대학원생인 에릭 브레슬러(Eric R. Bressler)와 지도교수 발샤인(Sigal Balshine)은 210명의 학생을 상대로 실험했다. 피실험자에게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두 명의 사진과 함께 한쪽 사진에는 재치있는 문장으로 쓰인 자기소개서를, 다른 사진에는 평이한 문장의 자기소개서를 보여준 뒤 누가 더 매력적인지 선택하도록 했다.

여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재미있게 쓴 남자를 연애상대로 더 매력적이라고 응답한 반면 남학생들은 자기소개서에 담긴 유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 연구들에서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여자의 유머감각을 이성의 매력에 중요한 요소로 꼽았었다.

브레슬러와 동료들은 앞선 연구들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유머감각’의 의미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했다. 즉 여자들은 유머감각을 ‘잘 웃기는’ 의미로, 남자들은 여자의 유머감각을 ‘유머를 이해하고 잘 웃는’ 의미로 썼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브레슬러팀은 맥마스터 대학의 129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간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버스에서 이성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 등의 상황을 가정하고 재치있게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의 농담에 잘 웃지 않는 이성과 자신의 농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재치있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이성 중 어느 쪽을 선택할 지를 물었다.

여학생들은 잘 웃기는 이성을 선호한 반면 남학생들은 자신의 유머를 좋아하는 이성을 선호했다. 남자들이 원하는 여자의 유머감각이란 자신의 유머를 이해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진화와 인간행동지에 곧 발표될 예정이며 현재 온라인으로만 서비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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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일까? ‘메이팅 마인드’(The Mating Mind)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들은 생존경쟁에 의한 자연선택보다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성선택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설파했던 뉴멕시코 대학의 제프리 밀러 (Geoffrey Miller) 교수는 뛰어난 유머감각에 대한 선호는 유머감각이 건강한 뇌와 유전자들의 질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처럼 뛰어난 유머감각은 이성에게 자신이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광고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밀러의 설명에 따르면 뇌가 뛰어난 유머감각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유전자들이 해로운 돌연변이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만 한다. 자식을 낳으면 유전자의 반은 배우자에게서 오기 때문에 유머감각이 뛰어난 배우자를 맞이하면 자녀에게 전달될 자신의 유전자 전망 또한 밝아진다. 이때 뛰어난 유머감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유머감각을 판별하고 선호하는 유전자 또한 같이 전달돼 유머감각과 판별력과 선호도도 동시에 진화해간다.

이런 성선택 과정에서 자식에게 투자를 많이 하는 쪽(대부분 암컷)이 선택권을 가진다. 유머감각의 진화에서도 여자는 유머감각을 선별하는 능력, 남자는 유머를 발휘하는 능력을 갖도록 나타난다. 브레슬러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밀러가 주장한 성선택론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만을 놓고 유머의 진화를 단정짓기는 아직 이르다. 이 연구는 캐나다의 한 대학의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었으며 다른 문화권에서도 같은 경향성이 발견될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진화적인 설명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는 보편성이 필요하다. 즉 문화적 특수성이 아니라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진화된 특성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 연구가 이뤄진 캐나다는 우리와 다른 문화권이다. 따라서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웃어야 할지 웃겨야 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한 번 이 연구결과가 우리 문화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자신의 경험에 비춰 판단해보자. 어쩌면 우리의 판단을 연구자들이 더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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