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전략의 고갱이다. 영국 속담이다. 기실 모든 권력은 자신의 속살을 숨긴다. 아무 것이 없을 때도 마치 뭔가 있는 듯이 어루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권이 목매는 풍경을 두고 곰비임비 추측이 이어진다. 어떤 비밀이 있을까. 보수는 물론, 수구세력 일각에서도 갸우뚱한다. 왜 그럴까. 양극화를 해소한다면서 양극화를 부채질할 협정에 저돌적인 노 정권의 깜냥을 저들조차 이해할 수 없어서다. 대한민국의 미국 예속으로 벅벅이 분단체제를 영구화할 협정을 아무런 여론수렴도 없이 강행하는 노 정권 앞에 군부독재 세력까지 입을 다물지 못해서다. 그래서다. 장안의 화제다. 언제나 정치인 노무현의 ‘깊은뜻’을 헤아리는 지지자들은 여러 가지 ‘비밀’로 풀이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내세운다. 미국과 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보장받았다는 ‘큰거래’설이 나돈다. 하지만 개성공단이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조지 부시 정권의 살천스런 눈초리가 풀리는 조짐은 없다. 현실은 거꾸로다. 자유무역 협상과 동시에 노 정권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까지 덥석 받아들임으로써, 동북아 정세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진실은 미국의 ‘보장’을 받아 진전되는 남북관계는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또다른 비밀은 미국의 압력이다. 수출로 살아가는 한국 경제가 미국 압력을 거부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다. 노 정권을 비판할라치면, 대뜸 현실을 모른다고 시쁘게 여긴다. 하지만 압력론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 손사래쳤다. “어떤 압력”도 없었다며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여 우리가 제안하여 성사된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결국 ‘큰거래’도 없고 압력도 없었다. 적어도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는 게 아니라면 그렇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많이 걸려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생각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도 불거진다. 그가 “책임있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자”며 제안한 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신감”이다. 결국 비밀이 있다면 하나다. 대통령이 거듭 밝혔듯이 자존심이다.

자신감과 자존심. 딴은 좋은 말이다. 카네기 따위의 성공처세술에 단골로 등장한다. 하지만 일찍이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경고했다. 어리석은 권력자들이 지니는 게 바로 자존심임을. 게다가 자신감이 무지를 밑절미로 할 때 폐해는 무장 커진다. 아니, 차라리 자신의 무지를 알면 전문가나 지식인에게 귀라도 기울인다. 가장 큰 문제는 어설프게 아는 일이다. 대통령이어서 더 그렇다. 최고의 의사결정권을 지닌 걸 마치 최상의 판단력을 갖췄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보라. 대통령이 ‘좌파 신자유주의자’임을 사뭇 진지하게 자처하는 모습을. 썰렁한 희극이다.

임기 내내 자신의 실정을 언죽번죽 남 탓으로 돌려온 대통령의 언행에 비추어본다면, 최악의 ‘비밀’도 가설이 될 수 있다. 협상이 결렬될 때, 경제 실정을 모두 그 탓으로 돌리려는 정략은 아닐까. 임기를 마치며 진보세력의 무책임한 반대로 자신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노라고 실패를 합리화하지 않을까.

노 대통령은 자유무역 협상을 강행하며 국민에게 자신감을 주문했다. 실소를 머금으며 명토박아 둔다. 이땅의 민중은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무책임한 자신감이 없을 뿐이다. 도박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남 탓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다. 국민의 자존심 걱정은 접기 바란다. 겸손하게 대통령 자신을 성찰할 때다.


-손석춘 칼럼-[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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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2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임성이 약하고, 주위가 산만한 놈현 대통령이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
ㅎㅎㅎ

balmas 2006-05-2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게요. :-)
 

능력과 노력?

봉건사회는 인생이 신분에 의해, 말하자면 아비가 누구인가에 의해 정해지는 사회였다. 제 아무리 무능하고 되어먹지 못한 놈도 아버지가 귀한 몸이면 귀한 몸이 되는 사회였다. 부르주아들은 그런 사회에 맞서 ‘능력과 노력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능력과 노력에 의한 차이’를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기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가능하지 않고 바르지도 않다. 능력과 노력에 의한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수천수만 배가 넘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능력과 노력의 차이라 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합법적이라 해도 비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이다. 그런 사회는 부서져야 한다. 제아무리 능력 없는 사람도 정직하게 일한다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능력은 달라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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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말만 하기.. 짧고 좋네.. ㅎㅎㅎ
 

문제는 ‘진정성’ 없는 가벼움, 더불어 같이 움직일려는 자세 필요

 

한 여론조사기관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응답자들은 '국정 운영에 무능해서'(31.5%), '국정 운영방식이나 철학에 공감하지 않아서' (27.3%),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독선적 모습이 싫어서'(21.6%) 등의 답을 내놓았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의 주된 이유는 '열린우리당이 더 싫어서'(37.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어느 신문 사설은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독선'에 방점을 뒀고, 이 신문의 정치부장은 별도의 칼럼에서 열린우리당이 외면받는 핵심적인 이유를 "싸가지가 없다"는 것으로 보았다.

과연 그럴까?

이런 평가의 타당성에 관계없이, 아무래도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가벼움'이다. 이는 '진정성'과도 통한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도 다를 게 없다.

싸가지 없는 사람을 좋아하긴 힘들지만, 그 사람에게 진정성만 있다면 달리 볼 수도 있다. 늘 입바른 소리를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개인적으론 큰 손해를 입게 돼 있다. 그게 정상이다. 힘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싸가지 없게 굴어 빛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힘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누가 돌을 던지랴. 오히려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싸가지 없게 군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인기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거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둔 뒤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면? 그러다가도 또 필요에 따라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등 오락가락한다면?

그건 진정성과 신뢰의 파탄을 의미한다. 그래도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까운 어떤 점을 높이 사서 계속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정성과 신뢰’야말로 인간됨의 본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벼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한국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권위주의 문화에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가벼움 자체에서 그 어떤 해방의 기운을 느낄지도 모른다. 생산적인 '해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무거움의 해체를 위해선 가벼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가볍다고 진정성이 없는 건 아니다. 진정성이 강하다고 해서 무거운 것도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벼움과 진정성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문제가 되는 가벼움은 진정성 없는 가벼움이다. 그때그때 편의주의적으로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가벼움이다. 그건 '기획 과잉'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랜 습관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 가벼움은 사이버세계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와도 통한다. 요한 호이징하는 '호모 루덴스'라는 책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 파격적 주장을 원용하자면, 적어도 2002년의 사이버혁명 이후 정치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그간 재미있게 놀던 사람들이 똑같은 레파토리가 반복된다고 싫증을 내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은 탄생서부터 드라마틱했고, 앞으로도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정당이다.

재미있게 놀되, 혼자만 놀지 말고, 더불어 같이 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새전북신문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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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1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충 쓴 듯...

릴케 현상 2006-05-1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안퍼갈게요^^
 
 전출처 : 가을산 > 조순, 장하준 등이 보는 FTA는?

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605/h2006051506282921500.htm

한미FTA 장밋빛 전망 근거없고 속도도 걱정"
조순 전 부총리, 경제학회 정책포럼 기조연설

경제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다음달 1차 협상이 시작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장밋빛 전망의 근거가 없고 초고속으로 진전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조 전 부총리는 또 세금을 통한 부동산 정책, 신자유주의 기조하의 분배정책 등참여정부 경제정책들의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조 전 부총리는 15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한국경제학회 2006년1차 정책포럼에 앞서 배포한 `한국경제의 발전과 앞으로의 방향'이라는 기조 연설문에서 한미 FTA협상에 대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서 걱정이 앞선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FTA 같은 중요 사안에 대해 식자(識者)는 말이 없고 당국은 `전광석화'처럼 처리하려 한다"며 "관변에서 나오는 연구결과가 일률적으로 장밋빛인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반문, 한미 FTA 효과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 주요 품목인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관세율은 0%에 가깝거나 2~3%에 불과해 FTA에 따른 수출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한국의 관세율은 11.2%여서 이것이 철폐되면 대미 수입이 많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전 부총리는 이어 "대미 수출이 늘어나도 수출 증가에 따른 원.달러 환율 하락을 걱정해야 한다"고 FTA의 부정적인 영향이 만만치 않음을 강조했다.

그는 "쌀이 FTA협상 대상 품목에서 제외된다고 하지만 이런 `특전'이 오래 유지될 수 없다"며 농축산업 보호에 우려를 나타냈고 "이미 더 이상 내줄 것이 없을 정도로 개방된 금융에 대해 무엇을 바라고 신금융서비스를 미국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것인지 내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우려에 대해 "대내적인 자유화와 자율화의 준비를 소홀히 하면서 대외 개방을 서두르면 개방의 실리를 거두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유동성, 저금리, 도시개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부동산 보유 유인이 계속 제공되는 현실에서 투기의 징후를 중과세로 제거하려는 정책이 성과를 거둘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 전 부총리는 이와 함께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기조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배정책을 쓸 정부의 능력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며 신자유주의와 참여정부의 분배 강조 정책이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해 "강자는 더 강하게, 약자는 더 약하게 되는 것을당연시하고 극단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자유방임을 신조로 하는 새로운 영.미 이데올로기"라며 "신자유주의로는 양극화와 성장동력 약화를 치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대가 컸지만 경제운용의 경험이 없고 진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출 겨를 없이 정책을 담당했으며 대증요법으로 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책의 일관성, 정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3년이 흘러 과거의 후유증도 이 정부의 잘못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제회복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가 신자유의적 이론과 색깔논쟁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경제의 회생책을 강구하고 국민 복지를 지키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색깔논쟁에 구애받지 말고 실사구시의방법으로 현실에서 필요하고 가능한 길을 찾아야 한다"며 "문화와 국민성 등 우리나라에 맞는 발전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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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sbs.co.kr/economy/economy_NewsDetail.jhtml?news_id=N1000109264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FTA관련 SBS 인터뷰

이번에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입장의 논리입니다. 결국 경제적 약자인 한국만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저희 8시 뉴스 TV칼럼을 맡고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통해서 들어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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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 즉 한미 FTA에 대한 협상이 다음 달에 시작됩니다.

지난 1월 한미 FTA 협상 의도를 선언한 후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대응 논리들은 정말 실망스러운 것들이었습니다.

우선 정부관계자들은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에서 북한이나 쿠바 같은 고아가 될 것이라며 한미 FTA의 불가피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이미 고도로 개방된 경제로 지금보다 더 개방을 안한다고 해서 북한 같은 고립경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은 마치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당신, 자동차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봉건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는거야?" 하고 윽박지르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또 정부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70~80년대식 종속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며 논쟁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꼭 종속이론을 믿어야 한미 FTA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한미 FTA가 체결되어 경쟁이 강화되면 취약부문의 생산성이 올라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이 갑자기 강화되면 그 결과는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약자의 도태입니다.

과거 우리가 유치 산업을 보호했던 것도 바로 일단 보호장벽을 치고 실력을 길러야 수출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개방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60~70년대에 자유무역의 논리를 따라 자동차, 철강, 조선, 전자 등의 유치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섬유나 가발을 수출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FTA의 경우는 그것이 상품교역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자본시장 등까지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고,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요, 과거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지금까지의 독선적인 자세를 버리고 한미 FTA에 대한 겸허한 논쟁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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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6, 2006

한미 FTA, 비공개 문서들이 말하는 진실
                                                     -- 이코노미 21 이정환 기자

한국과 미국은 내년 3월 발효를 앞두고 추진 중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협상 도중 교환한 문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18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2차 사전 준비회의에서다.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는 이와 관련, 최근 브리핑에서 “우리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미국의 협상 원칙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미국 쪽에서 “앞으로도 다른 나라들과 해야 할 협상이 많은데 문서가 공개되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종훈 우리 쪽 협상 대표는 “미국 쪽에서는 10년으로 하자고 했는데 줄여서 3년이 됐다”고도 했다.

도대체 한미 FTA 협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 의회나 국제무역위원회 등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바라는 것, 그리고 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공식 또는 비공식 문서에 드러난 한미 FTA 경과와 현재 상황, 그리고 핵심 쟁점을 살펴보자. 비공식 문서라고 해도 웬만한 문서는 이미 구글 등 검색엔진에 올라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먼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2001년 보고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미 모두 GDP나 고용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FTA 체결 4년 후면 미국이 한국과 교역에서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한국이 무역 적자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4년 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출은 54% 늘어나는 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수출은 21% 늘어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작성된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초 한국이 미국 쪽에 FTA 협상을 먼저 제안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한국 쪽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설명회를 열었고 그 이듬해인 2005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사전 실무회의가 열렸다.

2005년 11월 미국 의회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한미 FTA 협상과 관련, 미국 농업과 자동차, 영화, 제약 산업의 우려를 충분히 검토했다. 협상에 앞서 이런 쟁점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최근 한국의 통상장관은 이런 우려들이 적절한 시점에 처리될 것이라고 확인해줬다.”

결국 핵심 쟁점과 관련, 미국 정부의 사전 요구가 있었고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를 양보했다는 이야긴데 지난해 2월 우리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 명의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두루뭉술하게 처리돼 있다. “한미 FTA는 정부가 오랜 기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며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6년에 나온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오히려 솔직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미 경제 규모와 의존도를 볼 때 미국이 협상의 의제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불만은 한국의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청, 환경부 등 외국 정부나 기업과 접촉이 없는 국내용 부처들과 관련돼 있다. 미국 쪽 전략은 핵심 쟁점에 한국 국무회의가 직접 나서서 해당 부처에 압력을 넣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이와 관련, “몇몇 ‘촌스러운’ 해당 부처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무회의 전체 안건으로 상정해 해당 부처를 고립시켜 관철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크린쿼터가 미국의 이런 전략에 말려든 전형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에는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협상을 개시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김현종 통상장관에게 말했다”는 내용에 이어 “자동차와 의약품, 소고기와 스크린쿼터 등 4대 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가 한국 정부의 정치적 능력을 평가하는 리트머스 테스트로 보고 있다”고 적혀있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어땠을까.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6년 1월 말 4개 부문 모두를 양보한다고 미국 정부에 알려왔다.”

한편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놓고도 두 나라의 전망이 다르다. 2001년 미국 보고서를 보면 한국과 대미 무역수지는 2002년 98억달러에서 FTA 체결 4년 뒤에는 9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국내총생산이 최대 1.99%까지 늘어날 거라는 굉장히 긍정적인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는데 이 보고서는 상당부분 왜곡 날조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한미 FTA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 투자 관련 조항이다. 과거 미국이 싱가폴이나 칠레 등과 체결한 FTA 협정문을 살펴보면 투자자의 투자유치국에 대한 제소권이 포함돼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특히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투자유치국의 현지 법원을 우회 또는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항인 셈이다.

이해영 교수는 “국제투자분쟁중조정센터에 접수된 85건의 분쟁 가운데 피소국은 대부분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고 청구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국적 기업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절차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 실패를 투자 유치국 정부에 전가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투자 관련 조항과 관련해서는 이미 2004년에 체결된 한미투자협정(BIT)의 조항이 대부분 그대로 채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전 단계부터 내국민 대우를 적용한다거나 최고경영자의 국적을 문제 삼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은 주권 침해의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아무런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를 비롯해 교육과 통신, 방송, 법률 시장 등 공공 서비스의 개방도 비슷한 우려를 더한다.

올해 2월 미국 무역대표부가 미국 의회에 보낸 보고서는 한미 FTA의 초안이라고 할만하다. 이 보고서에는 가능한 모든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철폐, 자유무역기구(WTO) 기준에 맞는 지식재산권 보호, 각종 투자 장벽의 축소 또는 제거, 독점기업과 공기업의 경쟁제한 제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동안 미국이 호주와 싱가폴, 칠레 등과 체결했던 FTA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미국이 5년 이상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해왔던 반면 우리나라는 실증적 검토는커녕 협상력조차도 갖추기 못한 상황이다. 이 교수는 “분명한 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통상협정 가운데 가장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신자유주의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단군 이래 최대규모의 통상협정이 한일합방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체결되리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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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집단 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하여

<네트워커> 2005년 12월호에는 집단 지능에 관한 글 ‘공유와 협업의 플랫폼 그리고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 실렸다. 구글, 지식검색, 태그(Tag, 정보의 분류 방식, 주제어를 정해 꼬리표를 만들면 그 주제에 해당하는 자료가 동적으로 분류된다.) 등을 집단 지능의 모델로 거론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 지능에 관해 이야기한다. 웹2.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협업 시스템에 기반한 집단 지능형 웹서비스에 관한 관심도 아울러 증폭하고 있다. 그러면 집단 지능형 웹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지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실체는 없는데 모두들 그것에 기대려고 한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내의 인터넷 환경, 대중의 사고방식과 성향에 적합한 개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 "집단최면"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 - http://hochan.net

집단 지능은 ‘대화형 서비스’처럼 중독성이 강한 말이다. 집단 지능의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집단 지능의 한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 경계는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은 양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한계란 경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넘어설 수 없거나 아주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보다는 경계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일반명사가 된 인터넷 카페를 집단 지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떠한가. 대부분의 인터넷 동호회가 1년도 못가서 폐쇄되거나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와 지식이 운영진(소수)에게만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동호회는 집단 지능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아니다.

도구의 한계를 파악해야 경계를 확장할 수 있다
댓글 토론 같은 것은 어떠한가. 토론은 대립하는 두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장치(운영자)가 필요한데 댓글 토론은 그러하지 못하다. 댓글 토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부정하고 장밋빛 가능성에만 매몰돼 있으면, 그저 끝도 없이 넘치는 쓰레기 더미에 방향제를 뿌리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 쓰레기장은 가령 포털 사이트 뉴스면의 댓글 게시판 같은 곳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개인 웹사이트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게시판에서는 토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토론이 가능한 까닭은 중재자(웹사이트 운영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댓글은 집단 지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우선 오남용하지 않으면 된다.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은 뜬금 없으며, 원문을 보완하거나 교정하는 기능을 할 때에만 그것에 기여할 수 있다. 개인 웹사이트나 토론 게시판은 전문화할 때, 세분화할 때 오히려 거대한 집단 지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 지능의 한계는 우선 검증 시스템의 부재다. 그러면 우리는 한계를 정확히 알고 헛된 망상 - 가령 완결된 형태의 지식을 기대하는 것 - 을 접는 편이 낫다. 이러한 부정을 넘어서기 위해 그것을 오히려 활용해야 한다. 그것을 발판으로 다른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확장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절판되거나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의 내용이 온라인으로 제공된다면 여러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노력을 감안한다면 오프라인에서 재출간하는 것이 공공의 차원에서는 더 유익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이것을 인쇄하여 읽으려면 또 다른 비용이 소모된다. 완결된 지식을 갖추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기 보다는 완결된 지식으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메타적 기능에 충실한 것, 즉 기존 지식의 스캐닝 기능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책 한권을 통째로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올리는 것보다는 책 백권의 요약 자료가 훨씬 유익하며 집단 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인터넷의 활용도 면에서도 부합하다는 말이다.

집단 지능의 두 과제, 지식의 스캐닝과 경험적 지식의 축적
최근에 이사를 준비하며 무수한 부동산 관련 웹사이트를 많은 시간 동안 이용한 다음,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매물을 확인하여 대조해본 결과, 내가 보았던 인터넷의 부동산 정보들은 거의 모두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신 지식 검색에 실린 관련 답변들에는 유용한 것이 꽤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집단 지능의 가능성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개인의 경험적 지식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경험적 지식이 쌓이는 블로그 같은 도구의 내용들이 유사한 경험 주제를 지니며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는 태그는 경험적 지식이 집단 지능으로 변모하는 초기 단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로써, 집단 지능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이끌어냈다. 기존 정보의 메타 검색, 즉 스캐닝 기능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경험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모으는 것.

지식의 피라미드는 네 단계로 구성된다. 무수한 데이터들이 사막의 모래라면 그 중에서 선별된 데이터들은 정보 이전 단계인 유용한 데이터로서 하나의 벽돌이 되어 피라미드의 최하단에 놓인다. 그 위에 정보가 쌓이고, 그 위에 지식이 놓인다.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에는 지혜가 자리잡는다. 집단 지능형 서비스의 하나인 지식 검색도 넓게 조망하면 이러한 지식 피라미드의 형태를 띨 것이다. 집단 지능으로서의 웹이 단순한 지식 스캐닝에 그치지 않고 지혜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개인들의 경험적 지식 때문일 것이다.

집단 지능의 지향점은 지혜
화이트헤드는《관념의 모험》에서, 사회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본성을 본능, 지성, 지혜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본능이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원초적인 경험적 습관이라면 지성은 그것들에서 유래하는 관념들을 논리적인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지적 활동이다. 본능과 지성 사이의 판단자, 즉 조정자가 지혜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전체에서 일부분만을 채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혜는 ‘지적인 체계와 그 체계로부터 생략된 것들의 중요성을 항상 대결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깊은 이해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본능-지성-지혜가 서로 융합하고, 그렇게 되면 전체가 그 부분에서 출현하며, 부분들은 전체 속에서 출현한다. 집단 지능의 궁극적 지향점은 지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의 본질이 무엇인지 -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 항상 묻고 대화하고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것이 집단 지능, 또는 집단 지성의 최면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월간 <네트워커>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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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15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읽어보시라.. ㅎㅎㅎ

가을산 2006-05-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거 궁금했던 주제인데... 저도 잘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