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ED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나코는 명문여고를 다니는 아주 평범한 모범생 여학생이었다.
적어도 드 좀비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여학생답게 집에서 챙겨주는 과외도 열심히 받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언니처럼 따르던 과외선생님 아야코가 어느날 갑자기 자살해버린것.

하지만 가나코는 아야코의 자살을 믿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뭔가 있을거야 분명히...
그래 분명히 뭔가 있어야 얘기가 돼지. ^^

그 죽음의 비밀을 아야코와 드 좀비스가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앗 드 좀비스와 가나코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책을 보면 안다.
그냥 우연히이긴 하지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전작들처럼 드 좀비스는 여전히 오지랖도  넓다.
조사를 할 수록 밝혀지는 대학의 비밀과 부정들!
일본 사회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이 가지는 그것도 일류 명문대학이 가지는 위치와 무게는 어느정도일까?
그것은 자본의 세계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최고의 디딤돌임은 분명하다.
그러데 단지 그것뿐?
이 글에서 다뤄지는 대학은 그정도가 아니라 대학 그 자체가 현실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축소판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여기도 드 좀비스의 먹이다.
자본의 논리나 이 사회가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응징하는 것은 재미없다.
아웃사이더에게는 아웃사이더만의 응징방식이있다.

가네시로의 소설이 늘 독자를 끌어들이는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어차피 드 좀비스같은  아웃사이더는 세상에 널려있다.
조금만 냉정하게 스스로를 본다면 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 언저리 어디쯤에 헤메고 있을거고...
단순히 아웃사이더의 신세한탄만이라면 이렇게 이 작가에게 끌리지는 않으리라...
그는 바로 수많은 아웃사이더의 염원을 모아 새로운 행동방식을 만든다.
주류사회가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타격을 가한다.
대리만족의 통쾌함이 전해지는 순간이다.

부정부패한 대학과 사회
이번에는 드 좀비스가 어떤 방식으로 한방을 터뜨릴까?
답은 역시 드 좀비스 답다는 것만 말해두자.....
또한 가나코의 멋진 피날레도 드 좀비스 다워지는 것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다음 소설은 여자 드 좀비스가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책의 말미에 붙여본다.
여자  드 좀비스라???
진짜 멋지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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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니 근질근질 합니다. 너무 유혹적이예요. ^ ^.

바람돌이 2007-04-2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쉽게 읽히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요? ㅎㅎ 재밌어요.

Mephistopheles 2007-04-2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비스의 활약은 언제나 호쾌하고 명쾌하고 화끈...하다는..^^

마노아 2007-04-2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알라딘에 붙박이 시켜준 책이 이거였어요^^ 카즈키, 참 통쾌한 작가죠^^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어른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특히 박통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민성이 썩어서 안돼!  정신차릴려면 박통같은 사람이 다시 나와야돼 등등....
한때는 이 말에 대들다가 밥상이 뒤집어진 적도 있었고 그래서일까?
국민성이니 습성이니 어쩌고 하는 말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된게....
게다가 당시 난 세상에 국민성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것은 없노라고,
모든 것은 결국 사회경제적 상황이 만들어놓은 환상이라고 주장하며 열렬한 사회과학주의에 빠져있던 때니 더더욱 그런 주관적인 냄새가 팍팍 풍기는 말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살아보니 웃기는게 여전히 국민성 어쩌고 하는 말에는 동의가 안되지만 묘하게도 인종이나 민족이 다르면 반응양식도 달라지는 뭔가가 보이는거다.
집단의식이나 행동양식, 반응양식??? 아니면 진중권의 표현대로 -뭐 거슬러올라가면 부르디외의 말이지만 - 하비투스=습속???
하여튼 뭐라 부르든 말이다.
어쨌든 이게 내가 아는 박통을 그리워하던 어른이 말하던 국민성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은 사족일테고....
구체적인 공통의 역사경험, 문화적 경험이 만들어놓은 공통의 대응방식이랄까?
어쨌뜬 이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경험이 달라지면 변해갈 것임은 또 분명하다.

그러면 결국 오늘 한국인의 그러한 공통의 습속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순조롭지 못했던 우리 역사에서 근대에 맞는 신체를 재빨리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군사적 규율이 동원됐고 이는 온 사회적 구성원들의 몸에 군사적 규율을 각인시킨다.
전근대적 습속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근대로의 이행과 또 근대의 신체를 그대로 간직한채 정보화사회로
급속하게 전환해버린 한국사회.
사실상 이런식의 논지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주장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 내가 알기로는 박노자씨나 한홍구씨의 경우 이 문제가 아니면 뭘로 책을 쓸까 싶을정도로 많이 얘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다만 새로운 것은 역사나 정치, 사회 등 거대 담론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습관들,  작은 사건들 속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들이 책갈피 곳곳에서 펼쳐진다.
뭐 굳이 나는 자유롭다 나는 아니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민망해진다.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에서 살고있는 이상 여기서 제기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없을테니...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 - 이것은 어쩌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겟다.

끊임없이 나를 다시 보기. 익숙한 것들을 뒤집어보기 - 나를 제대로 아는 길일테다.
그게 국민성이든 습속이든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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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17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진중권님의 책은 일단 관심이 가는 편이랍니다.

바람돌이 2007-04-1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중권씨의 그 직설적인 화법을 좋아하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토드 스트래서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나치가 그렇게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데,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평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게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주장까지 해요?"

제 2차세계대전을 공부하는 역사수업시간에 학생이 던진 질문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이기도 한 역사교사 벤 로스는 이 질문에 대해 "글쎄.... 나치는 철저하게 훈련 받은 조직이라, 그 앞에서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 지독한 불안과 공포, 가공한말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는 애매한 대답을 하지만 자신 역시 그 질문에 대해 궁금증을 느낀다.

누군들 궁금하지 않겠는가?
명백히 비이성적이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행동들을 모든 인간들이 인형처럼 반복하는 모습.
바로 옆에서 비인간적인 만행이 벌어지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다수의 인간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에게 왜 모두 똑같은 옷을 입느냐고 묻는 평범한 독일인.
천만의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때 나치가 아닌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열광하는 이는 왜 열광하고 침묵하는 이는 왜 침묵하고 방관했을까?

그리고 시작된 실험!
나치의 어린 친위대의 모형을 현실 고등학교에서 만들어 가는 것.
교사의 실험은 처음엔 단지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은 별것아닌 약간의 신체적 훈련과 일체감을 같이 느껴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실험이 계속될수록 실험의 내용은 교사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니 오히려 교사인 벤 로스마저도 실험의 한 도구로 전락되어가버린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까지 학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파시즘의 집단적 광기로 폭발한다.

이제 벤 로스는 과연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실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이 파도라 부른 파시즘적 운동과 분위기에 폭빠져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만만 의기충천해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 과정이야 책을 볼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도록 하자.

다만 이 책에서 소름끼치도록 절감하는 것은
파시즘의 씨앗은 어디나 존재한다는 섬뜩한 교훈이다.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과 나찌의 군중대회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나 오랜시간 동안 집단주의와 획일적인 군사문화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신체에 각인된 집단주의, 전체주의는 늘 의식보다 먼저 반응해버린다.
민주주의와 개성, 자유에 대한 추구가 나의 의식이라면 질서와 규율의 추구는 나의 신체다.
그래서 나의 신체와 의식은 항상 질서와 규율/자유로움의 그 경계 언저리에서 헤매인다.
나의 어정쩡한 위치 그 어딘가에 파시즘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자유로와 보이는 삶을 살아가던 이 책의 아이들에게 숨어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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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17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꽤 매력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드팀전 2007-04-17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시즘은 20세기 가장 매력적인 연구대상인 듯 해요..2차대전 이후의 거의 모든 사회,심리,문화연구는 파시즘의 악령에 대한 일종의 경계와 두려움을 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말이지요.그게 한편에서는 정도를 넘은 간섭으로 작용할 경우도 있어보이구요...저도 '군중'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편입니다만 좀 구분이 필요할 듯 보이기도 합니다.이와 관련된 읽을 거리들이 많으니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네요.파시즘의 씨앗과 파시즘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파시즘의 씨앗이라는 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 인류역사에 수없이 등장하진 않았을까? 군중성이라는 것을 파시즘의 씨앗이라 본다면 모든 집단행동은 파시즘의 요소가 있다고 봐야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편의상- '선'을 위한 군집행동은 통제가능하기에 문제가 없고 '악'의 의도가 있는 군집성만 문제삼을 수 있을까? '통제가능성'의 여부는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파시즘의 씨앗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본성'의 한 단면으로 인정해야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독일''이탈리아' 등에서만 파시즘의 발호가 커진 것일까?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인간 내부의 권위에의 의존,순응,폭력적 배제등의 부정적 요소들을 대표하는 단어로 사용될 수 있을까? ....즉 '군중의 동의에 의한 집단의 광기어린 행동'은 모두 '파시즘'인가?...... 재미있는 질문들 아닌가요?

바람돌이 2007-04-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주제는 상당히 무겁지만 소설의 전개는 흥미진진하답니다. 재밌어요. ^^
드팀전님/이런 장문의 댓글이라니 부담스럽게시리.... ^^;;
지난 2002년 월드컵때 거리응원을 보면서 저 역시 흥분하고 행복해했었더랬죠. 근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영상이 파시즘의 영상과 겹쳐보이는 순간을 경험했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감정이었는데 그 순간 전 참 이것도 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햇었어요. 그냥 즐거운건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거기에서 꼭 뭔가 다른 생각을 끄집어내야하다니....
하여튼 문명과 이성을 자랑하던 20세기에 파시즘의 등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겠죠. 그러니 온갖 담론들이 쏟아지고 저처럼 쓸데없는 걱정으로 웃기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요즘 우리나라의 파시즘 연구나 논의는 일상의 파시즘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듯 합니다. 그런 글들을 좀 보다보니 제 고민의 축도 그쪽으로 기울어있는듯하고요. 어쨌든 님이 얘기하신 주제들이 전부 묵직묵직해서 다 공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계속 고민의 축으로는 삼아야겠죠....

마늘빵 2007-04-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바람돌이님 이 책 보셨군요! 저도 얼마전에 봤는데. ^^

바람돌이 2007-04-1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리뷰보고 이 책을 선택한거였는데요.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바람에 땡스투는 못했지만.... ^^ 님덕분에 리뷰쓰기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마늘빵 2007-04-1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때문에 보게 됐다니 이런 영광이. ^^
전 이 책 수행평가 도서로 주문해놨어요. 학교에다. 애들 읽히려고요.

바람돌이 2007-04-1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민중.... 중학교 1학년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좀..... 저희는 아직 예산이 없어서 도서관이 없어요. ㅠ.ㅠ

클리오 2007-04-1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내용도 맘에 드는데다 별 다섯의 리뷰... 덕분에 꼭 볼께요.. 나날이 쌓여만가는 보관함.. ^^

바람돌이 2007-04-1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지금 예찬이 자나봐요. ㅎㅎㅎ 저는 수업이 비어서.... 일단 소설적 재미도 있구요. 파시즘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어려운 책은 많지만 쉬운 책은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별 다섯이에요. 재밌어요.

국경을넘어 2007-04-1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시즘... 광기... 근대성... 뭐 이런 이야기하는 책들이 상당히 무거운데요. 개념에 개념을 쌓아서 도저히 올라가기 힘든 책도 있구요. 그런데 이 책은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어있나 봅니다. 아이들하고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바람돌이 2007-04-1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고등학교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 딱 좋을것 같아요. 전 내년에 아이들과 세계사를 하게 되면 파시즘 부분 공부하면서 같이 읽어볼려구요. 그거 공부하고나면 중학교 2학년정도돼는 애들도 왠만큼은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것도 같아서요.
 
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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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호탕함과 애절함이 절묘하게 뒤섞인 목소리로 가수 송창식이 부르던 고래사냥은 딱 그때의 젊음의 표상이었을게다.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노래는 민기의 아버지처럼 세상살이가 지치고 힘들때, 꿈마저도 이제는 모두 잊어 갈때 그저 추억처럼 회한처럼 어느 놀이터 구석에서 신세한탄대신에 불려지리라......
민기 아버지가 그러한 것처럼.....

세월은 흐르고 젊은이는 늙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란다.
옛적 우리가 동해바다의 고래를 꿈꾸었다면
요즘의 아이들은 조그만 은빛 고래를 주머니속에 쏙 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동해바다의 고래든 주머니에 쏙들어가는 은빛고래든 결국 그들이 느끼는 무게는 마찬가지일터.
조금은 더 역사와 사회의 무게에서 빠져나온 요즘 아이들은 어떤 노래로 꿈을 꿀까?
힙합 춤과 랩으로?

일면 보기에 가장 평범해보이는 민기에게도 자기가 짊어짐 고민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다.
집에서는 공부 잘하는 누나에게 치이고
밖에 나가도 뭐 하나 특별할게 없다.
그나마 스스로 잘생겼다고 자부하는 얼굴로 연예인을 꿈꾸나 그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다.
이런 애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늘 호강에 받쳐서 요강에 똥싼다고 하던가?
하지만 어른들이 잊고 사는건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민의 무게는 우주적이고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잘것없어 보이지만 민기에겐 누구보다 무겁고 힘든 똑같은 무게일터.....

연호를 보면 생각나는 아이들이 많다.
아버지는 없고 엄마는 무책임하기 그지 없고 눈먼 할머니와 지하 셋방에서 대책없이 살아야 하는 연호.
이런 아이들이 그저 소설속의 아이들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세상에 널린 연호들은 연호처럼 그렇게 꿈꿀 자유마저도 빼앗긴다.
누가 뺏어가서가 아니라 아예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공개입양아 준희,  공부라고는 지지리도 못하고 뭐하나 잘하는 것 없으면서도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을 절대 버리지 않는 현중이
다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지금도 내 옆에는 수많은 민기, 연호, 준희, 현중이 들이 웃고 떠들고 숨쉰다.
그리고 아파한다.
그들에게 필요한건 뭔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모두들 주머니속에 작은 은빛 고래 하나 쏙 들어갈 수 있었으면....

그들이 꿈꿀 수 있는 능력과 시간을 소중히 여겨 줬으면....

오랫만에 성장소설을 잡았는데 순식간에 책이 넘어간다.
이금이씨의 두번째 청소년 소설이라는데 갈수록 맘에 든다.
유진과 유진의 약간 어색해보이던 점들이 이 책에서는 말끔히 사라졌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요즘 아이들이 보인다고 할까?
이금이씨의 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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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10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금이님의 새 책이 나왔군요. 저도 <유진과 유진>을 잘 보았던 터라 더욱 반갑네요. 전 왜 아직도 이런 성장소설을 좋아할까요?
 
꽃미남과 여전사 2 - 21세기 남과 여
이명옥 지음 / 노마드북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가히 꽃미남의 전성시대다.
대중매체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꽃미남들을 내보인다.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그것도 워낙에 대량생산되다보니 요즘은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싶게 얼굴 구분조차 제대로 안간다.
드라마나 영화들이 보여주는 여성도 많이 바뀌었다.
옛적에 <에이리언>에 시고니 위버가 나왔을때만 해도 무척이나 신선한 여주인공이었었는데....
뭐 요즘에는 차고 넘치는 여전사들이다.
굳이 총같은 무기를 들지 않더라도 자신과 세상에 대해 당당하고 도전적인 여성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꽃미남들과 여전사들의 공통점은?
뭐 둘다 무지하게 아름답다는거다.
근육질을 과시하며 여전사의 대표자로 떠오른 안젤리나 졸리를 보라!
이미지와 상관없이 일단 무지하게 예쁘다.
못생겼으나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진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단 못생긴건 상품이 안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얘기다.

이명옥씨가 최근의 이런 경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고자 한다.
왜 최근에 기존의 남녀 이미지를 역전시키는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그렇다고 뭐 사회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분석을 기대하지는 마시라!!!
저자는 그저 인간의 최고의 아름다움은 양성성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할 뿐이다.
원래 그랬다는 것이다.

1권의 1장에서는 동서양의 신화, 종교, 예술의 다양한 사례들을 들며 인간의 원형은 남녀양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얼핏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가는 예술작품들을 풍부한 도판으로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료로 쓰고 있다.
또한 2권에서는 신화와 역사속에서의 꽃미남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여성성이 어떻게 미적인 열광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럼으로써 미의 전형이 여성적인 남자인지를 얘기한다.
또한 여전사의 이미지의 원형이 되는 여성들을 신화와 역사속에서 소개하기도한다.

사실 최고의 미가 남녀양성성에 있고 인류의 시작에서는 그것을 최고로 쳤다고 주장한 저자의 주장에 별로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최고의 미라는게 과연 뭔가 하나의 틀로 그렇게 규정지어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하고싶을 뿐이다.
어차피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가장 주관적인 감정이다.
저자가 예로들었던 조르주 상드의 경우를 보더라고 그년느 객관적으로 결코 미인이 아니었지만 수많은 꽃미남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그것은 저자가 주장하듯이 그녀가 그녀속에 남성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재능, 자신감, 당당함이 남성적인 특성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사실 짜증이 좀 난다.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능력 - 남성적 특성이 아니라 - 이 그런 일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지게 된 즐거움이 왜 없었겠는가?
논의를 풀어나가는 와중에 역사와 신화상의 인물들을 다양하게 만나는 즐거움.
풍부한 도판들 속을 여행하는 미적 체험.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다만 여기까지이다.
저자의 논의는 남녀의 구분을 초월한 이상적인 미를 얘기하고자 했으나 그녀는 절대로 관습이 정한 남녀의 분리선을 넘지 않는다.
저자는 꽃미남들을 얘기할때는 관심의 대상이 바로 그들의 외모이다.
여성에게 흔히 갖다대어지던 잣대를 그들에게 갖다댄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적인 남성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여전사에게는 그녀들의 능력이 논의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남성적인 여성이 되는 것이다.

아예 숫제 남성의 특징, 여성의 특징이라는 걸 전제해버리고 전개되는 논의는 별로 신선하지 않다.
그녀의 의식속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관념이 정하는 그 분리선을 철저하게 전제한체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니 도발적인 그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글은 지나치게 평범하며 결론 역시 진부하다.
남성과 여성의 분리를 넘어서는 통합적인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통찰은 역시 힘든걸까?

지나가는 말.
저자 이명옥씨는 제목을 참 잘뽑는다.
그녀의 전작이었던 <팜므파탈>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그게 그의 능력인지 아니면 출판사 편집자의 능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만큼 선정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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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7-04-0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범위와 분량이 정말 장난이 아니시군요.. 으흑... 제가 먼저 출발했었는데 어느덧 님의 리뷰 수가 제 두배예요.. ^^;

짱꿀라 2007-04-0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군요. 역시 바람돌이님의 독서량은 엄청나시네요. 부럽습니다. 저는 언제나 쫓아 갈런지. 저두 열심히 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너무 게을러서요.

바람돌이 2007-04-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제가 우리집 애들이 예찬이만했을때는 한달에 1권도 채 못봤던 것 같은데요. 아이 키우는게 정말 장난 아니잖아요. 하지만 책으로도 절대 얻을 수 있는 가르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그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아요.
산타님/양보다는 질이라고 항상 생각하는데 문제는 제 독서는 질이 별로 담보가 안되는 것 같아요. 갈수록 어려운 책은 읽기 싫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