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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깜박 도깨비 ㅣ 옛이야기 그림책 13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5월
평점 :
<이주의 베스트셀러>는 작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나 혼자 꾸준히 썼는데, 올해는 많이 못 썼다. 아니, 거의 못 썼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닌데, 글을 쓸 시간은 부족했던 거 같다. 그냥 물리적으로.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지금 이 순간 뽑아보는 이 주의 베스트셀러. 사실은 지난주의 베스트셀러.
이 책은 <줄줄이 꿴 호랑이>로 유명한 권문 희님의 책이다. 나는 그분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그 분의 동화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의 그림도 마음에 든다. 특히 도깨비의 불꽃 머리가 마음에 드는데, 요즘 핫이슈 홍명보 감독의 헤어스타일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혼자 사는 한 아이가 단기 알바(최저임금 10,000원 돌파 축하합니다. 문재인 정부 첫해에 16.4% 인상해서 가능한 일이에요)로 받은 일당 돈 서 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도깨비를 만난다. 돈 서 푼 빌려달라는 도깨비. '도깨비는 잘 잊어먹는다던데...' 그래도 어쩌리. 아이는 도깨비에게 꼭 갚으라 한 마디를 더하고 돈 서 푼을 빌려준다. 다음날 찾아온 도깨비, 돈 서 푼을 갚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도깨비는 돈 서 푼을 갚으러 온다. 너 돈 갚았어. 언제? 어제. 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제 빌렸는데 어떻게 어제 갚니?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도깨비는 돈 서 푼을 갚으러 온다. 없는 살림의 찌그러진 냄비가 안쓰러워 보인다며 요술 냄비를, 나뒹구는 방망이를 보고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져다준다. 돈 서 푼, 요술 냄비, 도깨비 방망이가 차곡차곡 아이네 집에 쌓여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도깨비가 찾아와서 엉엉 운다. 도깨비네가 파산 선고를 받았는데, 살림을 너무 헤프게 써서 그렇다는 거다. 들어보니 돈 서 푼, 요술 냄비, 도깨비 방망이를 모두 아이한테 가져와서 그런 거 같다. 내가 모아놓았어, 이거 다 다시 가져가! 돈 못 갚아서 미안해, 요술 냄비도, 도깨비방망이도. 미안해! 하늘의 벌 받고 와서 내가 다 갚을게! 울며 뛰쳐나가는 도깨비. 그 후로 그 아이는 예쁜 각시를 얻어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도깨비야! 도깨비야!" 도깨비를 부르며 죽는다. 하늘나라에서 벌 다 받은 도깨비는 그 아이의 집으로 찾아오고.... 아, 걔네집이 어디더라? 이 근처 같은데? 그렇게 이 동화는 끝이 난다.
그저께 큰아이랑 침대에 누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핸드폰으로 찍어둔 그림을 보게 됐다. 이 책 기억나지? 큰아이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되는 베드타임 스토리. 옛날에 혼자 사는 아이가 있었대. 근데 그 아이가... 도깨비... 돈 서 푼, 요술 냄비, 도깨비방망이... 도깨비야, 도깨비야. 이 책 읽어줄 때 아이들한테 꼭 물어봐. 왜 그 아이는 죽으면서 "도깨비야! 도깨비야!" 했을까. 너무 고마워서. 고마운데 그 말을 못해서. 고마운 마음을 도깨비한테 전하고 싶은데 그걸 전할 수 없어서. 그래서...
이 책을 몇 번쯤 읽었을까. 7번? 8번? 그림이 귀엽고, 도깨비가 귀엽고, 돈 서 푼도 귀엽고. 요술 냄비에서 연어초밥과 돈까스, 커피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그림책.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 그런데 마지막 따옴표에서 전해지는 애절함. "도깨비야, 도깨비야!" 마지막 말 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
큰아이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하면서, 도깨비가 '부모'의 비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내어 천천히 일곱, 여덟 번을 읽었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정말 도깨비는 부모의 비유일까.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다. 그런 부모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그것 역시 부모에 대한 이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도깨비를 생각하면서 내 부모를, 엄마와 아빠를 떠올린다.
아이는 혼자 사는 아이다. 아이는 세상에 혼자 왔고,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그 애 앞에 도깨비가 나타난다. 도깨비는 아이에게 돈 서 푼을 달라고 한다. 줘야 해서 줬지만 못 받아도 괜찮다. 그날 하루 돈으로는 큰 돈이지만, 아이가 다 큰 후에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 아이는 돈을 빌려준다. 준 것도 아니고 빌려준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도깨비가 돈을 갚는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도깨비는 빌린 돈을 갚으러 온다. 매일 갚으면서도 도깨비는 갚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갚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돈 서 푼을, 요술 냄비를, 도깨비 방망이를 매일매일 가져다 주면서도, 자신이 그 좋은 걸 주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헤어질 때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다음에는 꼭 갚겠노라고, 다음 번에 만날 때는 돈 서 푼을 꼭 갚겠노라고 말한다.
아이는, 도깨비 덕분에 결혼을 하고, 도깨비 덕분에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 수 있었던 아이는, 도깨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네 덕분에 편안히 살았다고, 네 덕분에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도깨비는 없다. 도깨비는 떠났다. 미안해하며, 돌아오겠노라고 말하며 떠났다. 영원히, 영영 아이를 떠났다.
돈 서 푼을 갚겠다는 도깨비의 마음과 '도깨비야!'를 부르는 아이의 마음은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엄마, 아빠의 딸이고 아이들의 엄마인 나는, 도깨비보다는 아이의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좋은 것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도깨비가 되지 못한 나는, 미안해하는 아이가 된다.
"도깨비야, 도깨비야!" 도깨비를 부르는. 고맙다는 마음을 끝내 전하지 못한. 도깨비에게 닿지 못한 마음을 가진.
아이. 남겨진 아이. 도깨비를 부르는 남겨진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