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만, 앞으로만 전진.
나는 시를 좋아하는데, 시집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시를 좋아하는데, 시를 읽지 않는다?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시를, 그렇게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읽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고광헌’ 시인을 몰랐다. 그냥 도서관에 꽂혀있는 창비시집 중 제목이 제일 ‘만만한’ (죄송합니다, 고광헌 시인님~~) 시집을 골랐다. 시집을 읽고 반납한 후에야,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나는 트위터의 그 ‘고광헌’이 이 ‘고광헌 시인’이란 걸 알았다. 안도현 시인은 단번에 알았는데, 고광헌 시인은, 몰랐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진 때문이라고, 마구 마구 우기고 싶다.
정읍 장날
아버지, 읍내 나오시면 하굣길 늦은 오후 덕순루 데려가 당신은 보통, 아들은 곱빼기 짜장면 함께 먹습니다 짜장면 먹은 뒤 나란히 오후 6시 7분 출발하는 전북여객 시외버스 타고 집에 옵니다
배부른 중학생, 고개 쑥 빼고 검은 학생모자 꾹 눌러써봅니다
어머니, 읍내 나오시면 시장통 국숫집 데려가 나는 먹었다며 아들 국수 곱빼기 시켜줍니다 국수 먹인 뒤 어머니, 아들에게 전북여객 타고 가라며 정거장으로 밀어냅니다 당신은 걸어가겠답니다
심술난 중학생, 돌멩이 툭툭 차며 어머니 뒤따라 집에 옵니다 (22쪽)
이 시를 읽고 있자니,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켜 아들과 맛있게 먹는 한 아버지와 밥 먹고 왔다고 국수 하나만 시키는 어머니의 모습이 쉽게 떠올려졌다. 물론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다르지 않다.
지난 주, 엄마와 00순대에 가서 순대국을 먹었다.
난 사실, SK 상가 “행복한 새참”에 가서 엄마는 ‘열무비빔밥’을, 나는 ‘참치김밥’과 ‘떡볶이’를 시켜서 엄마랑 나눠서 맛있게 냠냠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메뉴보다는 순대국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엄마와 함께 순대국을 먹으러 갔다.
아무렴, 엄마는 좋아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 우리는 순대국이 담긴 뚝배기의 바닥을 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후엔 바로 옆 이디아에 갔다. 엄마는 토피넛 라떼를, 나는 까페 라떼를 주문했다. 엄마는 너무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하셨다. 그러고선, 이게 뭐야, 참 맛있다,고 하셨다.
내 어머니도 밥 먹고 왔다며 아들만 국수 곱빼기를 시켜주는 그 어머니이다. 아직도 자신에게 쓰는 1000원, 아니 100원이 아까워 벌벌 떠신다. 이런 어머니와 함께 밖에 나가 밥을 사 먹고, 커피를 사서 마신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작은 애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점심을 먹고 오니, 혼자서는 귀찮다고 밥 안 먹는 철없는 딸을 위해 엄마가 밖에서 밥을 사 주신게 그 시작이다.
엄마랑 마주앉아 주문을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엄마가 사는 아파트랑 가까워 우린 아~~~주 자주 만나는대도 엄마랑은 항상 할 이야기가 많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끔 내가 말한다.
“엄마, 다른 거 뭐, 큰게 행복이 아니예요. 엄마도 아직 젊으시고, 나도 젊고, 이렇게 밥 먹고, 이야기하고, 이런 순간이 다 행복이예요.”
그럼, 엄마는 맞다고 한다. 엄마가 더 늙으셨을때도, 내가 엄마랑 이렇게 마주앉아 밥을 먹을 수 있기를. 우리 딸롱이도, 내가 그런 것처럼, 나와 마주앉아 밥 먹는 것을 좋아하기를, 그러길 바란다.
이 아름다운 시집에는 이런 시도 있었다.
EU의 노동법이 깔린 도로에서 김진숙을 생각하다
(생략)
노동법이 안전하게 깔린 도로를
달릴 때 달리고, 쉴 때 쉬지만
때로 쉬어야 할 때 달리기도 하는
스타노의 인간적 노동에
서울의 트윗 친구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을 불러낸다
데자뷔인가
멈춘 시간, 고공 철제난간에서
열여덟 봉제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스물여섯 최초의 여성 용접노동자로 해고된 진숙이가
전태일로 울고 있다고 나를 깨워쌓는다 (생략) (82-3쪽)
스물여섯 최초의 여성 용접노동자는 이제 흰 머리의, 아니 백발의 중년이 되었다. 그 힘든 고공농성을 견디고, 노조가 요구하던 요건을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 갖다 놓는데에 성공했음에도, 그녀는 오늘도 통곡한다. 22일 오전, 한진중 노조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5살. 그는 35살밖에 안 된 젊은 아들, 젊은 아빠였다. 사측의 손배소 압박, 158억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그리고 그날 저녁, 현대중 해고자도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