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읽지 못 하고.
아롱이 준비물로 신문을 챙기다가 한겨레신문 5월 16일자 임경선의 칼럼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수영 수업을 할 때, 읽어보려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맨 먼저 보이는 글자는 <끝>, 그 날은 <임경선의 남자들> 연재 마지막 날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15개월 전, 임경선은 한겨레로부터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는데, 주제가 ‘내가 사랑한 남자들’이었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어떠냐 물었더니, 남편 왈, ‘사랑했던 남자들 얘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지 않겠냐. 반년이라도 버티려면 ’사랑한 남자‘만이 아니라, 미워하거나 인상적이었다거나 다양하게 써야 하지 않겠냐’며 다만 자기 얘기는 빼줄 것을 점잖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랑한 남자들’로도 반년은 족히 쓸 수 있었지만, 아무튼 그러마고 연재를 시작했고, 격주로 신문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칼럼이 실린 섹션만 고이 빼내, 손도 안 댄 듯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놓더라는 것이다. ‘읽지 않고 있다’는 그만의 표현이었다고.
2. 홍서트에서 생긴 일
지난 주 티켓은 남편 카드로 결제했다. ‘홍광호, 홍광호’를 연호하며 정신줄을 놓아버린 날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는 하지만, 남아있는 자리 중 그래도 괜찮은 자리를 골라주며, 결제를 향해 클릭, 클릭하는 모습이 뭐, 그렇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전날 갑작스레 발생한 가정사도 있고 해서, 남편은 토요일 아침 8시부터 그 날밤, 그러니까 내가 집으로 돌아온 밤 11시까지 애들을 돌봤다. 차려놓은 아침을 먹이고, 김밥을 사 먹이고, 콩국수를 사 먹였더랬다.
<Hongcert>에 다녀와서 나는 페이퍼를 썼다. 기획사를 통해 공지되었다시피 <Hongcert>는 ‘홍광호’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콘서트였다. 홍광호는 몽골청년 '솔롱고'도, 로맨시스트 '유리 지바고'도, 냉혹한 ‘지킬’도, 귀족청년 ‘라울’도, 가면을 쓴 ‘팬텀’도, 넉살 좋은 ‘배비장’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홍광호 팬들이 표현하듯 순수배우 그 자체, 인간 홍광호였다.
나는 사실 홍광호의 연기를 본 적이 없다.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난 그냥, 그의 노래 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 그 콘서트에 가게 된 거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빠순이’ 문화가 한반도 널리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난 누가 보고 싶어, 누가 좋아서, 어디를 쫓아다닐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 때는 부지런히 쫓아다닐 곳이 있었고, 졸업 후에는 바로 결혼을 했다. 이제는 얘가 둘, 명실상부 제3의 성, 아줌마다.
그런 내가, 거금을 주고 티켓을 예매하고, 남편과 스케쥴을 조정하고, 싱가폴에서 사 왔으나 노출강도가 심해 입지 못했던 새 원피스를 꺼내 입고, 8cm의 샌들을 신고, 바야흐로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나타났던 거다. 오직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그런데, 아뿔싸. 그의 노래를 듣던 중, 난 정말로 ‘홍광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에게 열광하는 4,000여명의 10, 20, 30, 40대 및 50대 여성들의 환호성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저번 페이퍼에 썼듯이, 내 귀엔 그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들으러 콘서트장에 갔는데,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그의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라는 비난보다는 ‘콩깍지’ 이론을 선택한다.
3. 내가 쓴 페이퍼를 남편은 읽지 못 하고.
콘서트에 다녀온 후, 난 페이퍼를 썼다. 미친 가창력, 꿀성대, 뮤지컬계의 아이돌, 이런 이야기야 다 당연하고, 선곡은 물론, 피아노 연주도, 색스폰 연주도 너무 너무 훌륭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유머를 구사할 때도 자신만만한 모습이 항상 당당해 보이는데, 홍광호의 말 소리를 직접 들어본 바, 홍광호에게서는 ‘연극 배우’ 느낌이 났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좌측, 우측, 정면으로 90도 폴더인사를 날려주었다.
저번 페이퍼에서, 난 정말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썼다. 내게 일어난 중대한 심적 변화를 난, 내 서재, ‘사람 사는 이야기‘에 올렸다. (알라딘 서재에 ’일기 좀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건 알고 있지만, 난 사실, 다른 분들의 ’일기‘가 그렇게나 재미있다. 또 나름 생각하기에, 내 이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다라는 생각도 있고.) 암튼, 그 날 오후,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떴다.“
헉.
내가 홍광호와 사랑에 빠지기 직전,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저 잔잔하고, 애잔한 문장을 남편은 아무런 느낌 없이 그렇게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읽었어? ... 읽었어?”
“로그인을 했는데, ... ”
왜 읽었어, 왜 읽었어를 5분간 목놓아 외치고, 다시 들어와 그 글을 읽어봤다.
남편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보여주기 싫은 글이었다.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그것도 신문에 정기적으로 실리는 그녀의 칼럼을 읽지 않고 고이 고이 접어 그녀의 책상에 올려놓았다는데, 어째 울 신랑은 ‘알라딘 서재’에 올려진 내 페이퍼를 읽었단 말이냐.
그리곤 생각했다.
남편에게 보일 수 없는 글을, 어떻게 알라딘 서재에는 올리고 있나.
이건 <Hongcert> 아니, 홍광호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홍광호’에 대한 것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글들, 책에 대한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상, 내 결심을 표현한 내 글, 내 페이퍼를 난,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알라딘 서재에는 떡~하니 올려놓는 그 글들을, 남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하루를, 이틀을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임경선은 결혼 전 ‘사랑한 남자들’에 대한 글을 1년 넘게 신문에 연재하면서 남편이 읽었단 한들 어쩌라고~ 말하고,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읽지 못 하고, 나는 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라딘 서재’에 올리고, 울 남편이 ‘우연히’ (남편은 내가 그렇게 ‘알라딘 서재’에 가서 놀아도 도통 관심이 없다. 아마, 이번 글도 실수로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글을 읽게 된 걸 알게 된 나는, 통탄해 마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쓰는가.
나는 무엇에 대해 쓰려 하는가.
무엇에 대해 쓸 때, 남편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