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여름처럼 더운 여름이 있었나 싶다. 어떻게 여름은 매해 더 더워지는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도 방안은 낮의 열기로 후끈하고, 어제는 안방 옆 수납장 있는 곳으로 갔는데, 바닥이 난방을 한 것처럼 뜨듯하기까지 했다. 이열치열로 이겨낼 수 있는 더위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이럴 때는 역시 책읽기를 통해 상상의 세계로 탈출하는 게 최고다. 나는 여름에 읽는 책과 겨울에 읽는 책들을 나름 분류해 놓고 있다.    

2. 여름 독서의 특징 : 날도 더운데, 내용이 지루하면 체온 상승의 불운이 찾아 올 수 있다. 재미있는 책이면 좋고, 약간 가벼운 내용의 책도 좋다. 배경이 겨울이면 좋겠지만, 다른 계절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문체는 시원해야 한다. 



1) 김훈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모두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남한산성>이다. 사실, 김훈의 작품은 모두 읽어야 함에도, 아직 다 읽지 못 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칼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칼의 노래>를 읽던 중 불편했던 순간이 많아, 그보다는 <남한산성>을 더 좋아한다. 

작품의 배경이 겨울이라서 여름 독서에 적합하다기 보다는,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 때문에 시원한 책읽기가 가능하다. 서늘한 문체가 1월의 칼바람을 만나, 가슴 속 깊이 시원하게 해 준다. 

 

 

 

 

2) 에드가 알렌 포 <우울과 몽상> 

 


아직 더워지기 전, 신랑이 이 책을 들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름엔, 이런 거 읽어야지." 

2학년 때였나, 변변찮은 영어실력으로 <검은 고양이> 를 읽어가던 중, 마지막 충격반전에, 나의 독해 실력을 다시 한 번 의심하며, 페이지를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등골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좋아한다면, 여름엔 에드가 알렌 포가 최고다. 

 

 

 

3. 겨울 독서의 특징 : 겨울의 밤은 여름의 밤보다 길다. 겨울의 밤은 일찍 시작해, 늦게서야 겨우 끝난다. 또 여기저기 놀러가고 싶은 여름보다는 겨울은 실내에 있으면 더 포근한 느낌이 든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기에, 장편소설도 도전해 볼 수 있고, 만연체의 문장도 큰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1)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일단 러시아 소설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작품이 잉태된 곳이 겨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이름 때문에. 이름 때문에 겨울에 읽어야 한다. 

로지온 로마노비치/로마니치, 로쟈, 로자까는 라스꼴리니꼬프이고,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소네치까는 소냐이다. 이건 또 어떤가. 아말리야 표도로브나/이바노브나/류드비꼬브나는 립빼베흐젤 부인이다.  
 
더운 여름에 주인공 이름이 헛갈려 책 앞 페이지를 여러번 왕래하다 보면 체온 1~2도 상승한다. 

2) 조정래 <태백산맥> 

 


장편을 읽기엔 역시 겨울이다. 긴 겨울,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1권, 2권, 3권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봄이 찾아온다. 약간의 인내심을 더해 3월말까지 장편을 밀어붙여본다면, 10권의 장편소설은 한 해 겨울에 가뿐히 완독할 수 있다. 

 

 

 

 

 

 

 

3) 알베르 카뮈 <이방인>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이 말 그대로 작열한다. 그가 왜 살인을 했던가. 뜨거운 태양 때문 아니었나.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69쪽)  

 

 

 

 

 

 

 

 

4. 그런데, 지금... 

1) 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몇달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반정도 읽고 반납했는데,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서 이 책에 대한 강신주의 애정을 새삼 발견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이다. 내 사랑이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더라도, 나는 내 사랑을 멈추지 않으리라. 

 

 

 

 

 

 

 

 

 

2)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이야말로 여름 독서에 적합하다. 유쾌하고, 발랄하다. 그녀가 말한대로 문체가 그녀 자신, 그녀의 몸 자체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작품 속에서, 박지원도 열하의 더위에 헉헉대고 있다는 것. 

 

 

 

 

 

 

 

 

3)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후반부로 갈수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적나라해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베르테르가 항상 고뇌에 차 있었던 건 아니고, 그도 사랑으로 인한 기쁨을 누렸던 때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한다. 적확히는 외출용이다. 밖에 오래 있을 게 아니고, 잠깐 외출할 때 가방 속에 챙기는 책이다. 근래는 가족들과 함께 외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들고는 다니는데, 읽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여름이 다 지나면, 독서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다. 몇번의 기사를 기억해 보면,  가장 책을 안 읽는 계절 내지는 책구매가 가장 적은 계절이, 바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고들 한다.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메뚜기도 한 철이라, 더위를 식힐 시원한 독서를 해야겠다. 

 

하지만, 하지만...

 

아~~~ 너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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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8-1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이문열의 초한지를 읽고 있습니다. 어디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이나 시원한 카페에서 책읽는 것이 가장 좋더군요.

단발머리 2013-08-17 08:10   좋아요 0 | URL
저도 시~원한 카페에서 책읽는 거 좋아해요. 문제는 초등생인 제 딸도 그 맛을 알아버렸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문열의 초한지는 읽어보지 않았어요.
재미있을까요? 급 궁금해지네요*^^*

노란곰 2013-08-2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전 여름엔 정민 책을 읽는데 좋더라구요. 작년엔 가장 덥고 잠이 안 오는 휴가땐 삶을 바꾼 만남을 읽었고 올해는 다산의 재발견을 읽기 시작했어요. 물론 책을 마구잡이로 읽어 한권에 집중하긴 힘들지만요. 괜히 제가 좋아하는 강신주, 고미숙 님의 책이 보여 반가운 맘에...^^*

단발머리 2013-08-28 09: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란곰님. 반갑습니다~~

정민은 신랑이 좋아하는 작가예요. 저는 정민의 책은 완독한게 없네요. 다산의 재발견은 전부터 눈독들였었는데, 두께 때문에 망설이고 있답니다. 내년 여름쯤 도전해볼까요?

강신주님, 고미숙님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두요~~~ 앞으로 자주 뵈요.
 

 

1. 알라딘 10주년, 축하합니다. 

 

내가 얼마나 이벤트에 약한지, 이 세상 모든 안내문을 얼마나 대충 읽어치우는지 단박에 밝혀진다. 난 "서재 10주년 <알라딘 서재 10대 뉴스> 이베트 참여"를 생각없이 클릭하고, <레 미제라블> 페이퍼를 작성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오늘 아침에 들어와보니, 이벤트 화면에 모두들 '알라딘, 축하해요.', '알라딘, 계속 번창하세요.'하시는데, 나만 코제트 얼굴을 해 가지고 '사랑, 그 아름다운 이름'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다. 사실, 그 글을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에다가. 

 

알라딘 10주년, 축하합니다. *^^

 

시작은 2010년부터인데, 본격적으로 글도 쓰고 알라딘서재 글 읽은건 2011년 말부터이다. 책 좀 읽으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글 좀 쓰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싶은 사람, 알라딘서재에 오시면 되겠다.

 

얼굴을 모르지만, 서로의 글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고, 같이 좋아해주고, 같이 슬퍼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난 항상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알라딘 서재엔 그런 분들이 많다.

 

알라딘을 칭찬해 주고 싶은건, (결제를 유도했기에 칭찬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ㅋㅎ) 이벤트 상품들에 정성을 기울인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애들... 

 

 

 

 

 

 

 

 

 

 

 

 

 

 

이런 애들도 있다.

 

 

 

 

 

 

 

 

 

그냥 구입할 수 있지만, 리바이벌 이벤트를 기다리는 이런 애들도 있다.

 

 

 

 

 

 

 

 

 

 

 

칭찬 한 가지 더, <땡스투, 영어로 쓰면 안 보이는...>는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한 번 더 읽어보게 하고, 내가 좋아하는 분들께 100원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여기서 놀고, 여기서 배우고 싶다. 알라딘, 영원하라! 알라딘 서재, 영원하라!

 

 

2. 고미숙의 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녀의 책은 한결같이 1) 심오하고 2) 재미있고 3) 읽기 쉽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초판, 2003)의 출간 10주년 기념 개정신판이 나왔다.

 

집에 이 책 있는데, 새 책으로 읽고 싶다. 쩝...

 

 

 

 


 

 

 

 

 

 

 

 

 

3. 허영만의 <허허 동의보감>

 

 

 

 

 

 

 

 

 

 

 

 

 

북펀딩 안내문을 본게 어제같은데 (참여하고 싶었으나 1)참여 신청이 어려워보였고 2) 마감이 되어서 하지 못 했다.), 벌써 1권이 나왔다. 딸롱이가 그 때부터 사달라고 엄청나게 졸라대고 있다. 나도 보고, 만화 좋아하는 딸롱이도 보고, 건강에 관심 많으신 엄마도 볼 수 있을테니, 아무래도 구입해야겠다. 신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이어 '엄마와 딸'이 같이 보는 책 시리즈 2탄이다.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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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말에 ‘올해의 책’ 페이퍼를 쓰게 된다면

일단 『레 미제라블』은 따놓은 당상이다. 권수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내용이 좋아서,라고 말해야 하겠으나, 너무 오랫동안 읽어서, 일단 본인은 그런 말 할 처지가 못 된다.

 

 

 

 

 

 

2. 반년치는 커녕 한 달치도 제대로 받지 못 했다.

그녀의 4월이 그녀에게 왔던 것이다.

가난하고 인색한 사람들이 잠을 깨는 것 같고, 졸지에 궁색에서 호사로 변하고, 온갖 낭비를 다하고, 갑자기 빛이 나고, 돈을 헤프게 쓰고, 사치를 좋아하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때때로 본다. 그건 정기 급여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제 기간 만료된 금액이 있었다. 처녀는 그녀의 반년치 금액을 받은 것이다. (3권, 230쪽)

삐쩍마른 몸매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던 코제트가 불과 몇 개월 뒤,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강남 성형외과의 의료적 도움 없이 말이다.

금빛 어린 아름다운 밤색 머리에, 대리석 같은 이마, 장미 꽃잎 같은 뺨, 핼쑥한 살빛, 눈부시게 흰 살결, 번개처럼 미소가 떠오르고 음악처럼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아리따운 입, 라파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주었음 직한 머리와 그 아래에 장 구종이 비너스에게 주었음 직한 목. (3권, 228쪽)

바야흐로 그녀의 4월이 그녀에게 왔다. 그녀를 감싸는 아름다고 화려한 옷들도 그녀의 미모를 감당할 수 없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캐스팅은 참 적절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외모를 아만다의 미모와 비교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반년치’는 아니더라도, 두 달치, 아니 한 달치라도 제대로 금액을 받은 적이 있었나, 하는 것이다. 활짝 피어나 봄처럼 활기차고, 비 온 뒤 공기처럼 청명해 여름처럼 싱그러운 날들이, 그런 날들이 있었나, 하는 것이다. 금액을 못 받은 것은 확실한데,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 모르겠고, 게다가 반년치 금액을 받은 사람이 ‘처녀’이기에 하는 말이다.

3. 그는, 원래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라. 부자를 격려하고 빈자를 보호하라. 빈궁을 절멸하라. 강자에 의한 약자의 부정한 착취를 종식시켜라. 이미 도달한 자에 대한, 가고 있는 중에 있는 자의 부당한 질투를 억제하라. 노동 임금을 수학적으로, 그리고 우애적으로 조정하라. 어린이의 성장에 무상 의무교육을 주고 학문으로 성년의 기초를 만들어라. 손을 활용하면서도 지능을 계발하라. 강력한 국민임과 동시에 행복한 인간들의 가족이 되라. 소유권을 폐지하지 않고 보편화함으로써 시민 누구나가 예외 없이 소유자가 되도록 소유권을 민주화하라. 이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인데, 간단히 말해서 부를 생산할 줄을 알라. 그리고 그것을 분배할 줄을 알라. (4권, 41-2쪽)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에서 세계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패널 한 사람이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경우는요, 사실 빚에 많이 쪼들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양을 늘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길게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빅토르 위고 같은 경우는, 그 사람 자체가 할 말이 많은 경우지요. 원래, 자기가 하고 싶던 이야기가 많았던 거지요. 혼자 듣다가 혼자 웃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

가난을 절멸해야 한다고, 어린이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하라고, 소유권을 민주화하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가는 말한다.

곁말은 부패의 고유 언어이므로 빨리 부패한다. 뿐만 아니라, 노상 숨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듣는다 싶어지면 이내 변형돼 버린다. 다른 모든 식물과는 반대로, 햇빛에 닿기만 하면 다죽어 버린다.. 곁말은 십 년 동안에, 일반 언어가 10세기 동안에 걷는 것보다 더 많은 길을 걸어간다. (4권, 294-5쪽)

이 부분이 제2 마의 삼각지대로서, 제1 마의 삼각지대 2권의 전투신보다 더 가혹했다. 이 또한 ‘곁말’에 대해, 위고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개를 떨구던 장 발장은 땅 밑, 하수도를 통해 혁명의 아수라장을 탈출하게 되는데, 장 발장이 거기에 있었다. 하수도에. 그리고는 파리의 하수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파리는 매년 2500만 프랑을 물에 던진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낮과 밤에. 무슨 목적으로? 아무 목적도 없다. 무슨 생각으로? 그걸 생각지도 않고. 왜 그렇게 하는가? 아무 이유도 없다. 무슨 기관으로? 그의 내장으로. 그의 내장이란 무엇인가? 그의 하수도다. (5권, 150쪽)

할 말이 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다시 돌아온다. 장 발장에게로.

변천은 엄청났다. 도시의 바로 한복판에서, 장 발장은 도시에서 나갔고, 눈 깜박할 사이에, 뚜껑 하나를 들어 올렸다가 그것을 다시 닫는 시간에, 그는 대낮에서 완전한 어둠으로, 정오에서 자정으로, 소란에서 정숙으로, 천둥의 회오리바람에서 무덤의 정체로, 그리고 폴롱소 거리의 급변보다도 훨씬 더 놀라운 급변에 의해, 가장 극심한 위험에서 가장 절대적인 안전으로 이동했다. (5권, 182쪽)

작품해설에는 빅토르 위고가 35년 동안 마음 속에 품어 오던 것의 소산이 이 소설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한 신문의 잡보 기사였다. 가난한 농부 피에르 모랭이라는 사람이 빵집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5년의 징역형을 받아 형을 마치고 일거리를 찾았으나, 모든 집들이 그의 누런 통행권 앞에 그를 외면했을 때, 디뉴의 주교 미올리 신부가 그를 형제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주교에게 헌신했다. (5권, 498쪽, 작품해설) 이러한 사실을 듣고 위고는 1828년 무렵부터 이 소설을 쓰기로 계획했다. 1845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마지막 5부가 탈고 출판되기까지 장장 17년이 걸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4. 사랑, 그 찬란한 이름

우주를 단 하나의 인간으로 환원하는 것, 단 하나의 인간을 신에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4권, 190쪽)

 

『망각과 자유』에서 강신주는 말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에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우주가 하나의 인간으로 환원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때,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그도, 그이도 나와 같기를. 그 사람도 내가 느끼는 대로 느꼈기를.

하지만, 그에게 나에 대한 사랑을 강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그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그가 나를 사량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그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그도 나와 같기를.

“ ... 아시겠어요? 당신은 나의 천사예요. 좀 오게 해 주세요. 나는 곧 죽을 것 같아요. 당신이 아신다면! 나는 당신을 열렬히 사랑합니다, 나는요! 아, 용서하세요.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아마 당신을 화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당신을 화나게 하고 있습니까?“

“아이고머니!”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죽어 가듯이 주저앉았다. (4권, 206쪽)

연애경험은 일천하지만, 주위에서 주워 들은 연애상식은 조금 있는지라,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남자의 구애, 그것도 첫 번째 구애에 바로 “네, 좋아요.”하고 바로 넘어가버리는 코제트가 조금 철없어 보인다. 예쁜 여주인공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생각해보니 줄리엣도, 춘향이도, 모두 첫 번째 구애에 냉큼 “네, 좋아요.”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가 보다. 어서 대답하라. 냉큼. 네, 좋아요.

5. 그대는 인생에 들어가고 있고, 나는 나오고 있소.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아흔한 살 늙은이에게 새파란 젊은이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대는 인생에 들어가고 있고, 나는 나오고 있소. 그대는 극장에, 무도회에, 카페에, 당구장에 드나들고, 재치가 있고, 여자들 마음에 들고, 미남 총각이오. 나는 한여름에도 깜부기불에 가래를 뱉고 있소. 그대는 유일무이한 재산인 젊음을 갖고 있는 부자지만, 나는 늙은이의 모든 가난을, 병약과 고독을 갖고 있소... 그대는 연애를 하고 있지만, 그야 말할 것도 없지, 나는 세상에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소. 그런데도 그대는 나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 (4권, 366쪽)

마리우스의 할아버지 질노르망 씨가 결혼 허락을 받으러 집으로 돌아온 마리우스에게 한 말이다. 자기에게 굽혀주기를 바라던 할아버지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사랑하는 손자를 두 번이나 잃어버린다. 후에,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손자를 보고 할아버지는 말한다.

“... 정말, 이 애는 죽었소. 정녕 죽었소.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어요. 나 역시 죽었소. 그는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았소. ... 그리고 육십 년 이래 튈르리 궁전의 욕심쟁이들의 무리를 질겁하게 하는 혁명을, 그리고 너는 이렇게 피살되면서까지 매정했으니, 나는 네 죽음을 슬퍼하지조차 않을 거다. 알았느냐, 살인자야!”

“마리우스”하고 노인은 부르짖었다. “마리우스! 내 귀여운 마리우스! 내 아기! 내 사랑하는 아들! 네가 눈을 뜨는구나. 나를 보는구나. 살아있구나, 고맙다!”

그리고 그는 실신하여 쓰러졌다. (5권, 248쪽)

결국엔 그렇다. 부모는 자식에게 질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가 자식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예외다. ‘이건희 삼성 가족’ 정도가 되겠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자식에게 진다.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진다. 그러니,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는 새삼 말해 무엇하랴.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지게 되어 있다.

인생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이 한 쌍 더 있는데, 장발장과 코제트이다. 만약, 코제트가 홀아버지 밑에서 곱게 자란 외동딸이었다면, 난 장발장에게 말했을 것이다.

“딸만 바라보지 마시구요, 딸에게 유산 모두 물려주지 마세요. 이제는 하고 싶은 것 하시면서 사세요. 친구들도 만나시고, 여자친구도 사귀시구요. 취미생활도 하시고, 여행도 다니세요. 그렇게 딸만 쳐다보며 살지 마시구요.”

하지만, 장발장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장발장에게 코제트는 그가 양육한 딸이기 전에, 그의 구원이었다. 장발장은 코제트를 위해 살았다. 이것은 장발장이 코제트를 위해서 살았을 뿐 아니라,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장발장은 코제트를 위해, 마리우스를 바리케이트의 아수라장에서 구출해 온다. 오직 그녀, 코제트를 위해서다.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장발장은 자신을 멀리하려는 마리우스의 마음을 깨닫고 조금씩 코제트에게서 멀어진다. 그것은 빛에서 어둠에서, 희망에서 절망으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이르는 길이었음에도, 장발장은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디딘다. 오직 코제트,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다.

니콜레트는 장 씨의 집에 들어가면서, 자기 안주인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왜 장 씨가 어제 오시지 않았는가.”를 알아오라고 마님이 보냈다고. “내가 안 간 지 이틀이 되오.”하고 장 발장은 조용히 말했다. (5권, 426-7쪽)

이 부분에서 코제트가 미웠다. 어떻게, 장발장에게, 우리의 장발장에게 그럴 수 있나. 어떻게 자신을 방문하지 않는 장발장을 잊어버릴 수 있나. 어떻게 장발장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나. 친절하신 작가님, 연거푸 말씀하신다.

그녀는 잊어버리기 잘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경솔했다. 사실은, 그녀는 그렇게도 오랫동안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던 그 사람을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한결 더 사랑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마음은 다소 평형을 잃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5권, 432쪽)

내가 다른 데서 말했지만, 자연은 ‘제 앞만 바라본다.’ 자연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오는 자’와 ‘떠나는 자’로 나눈다. 떠나는 사람들은 어둠 쪽을 향해 있고, 오는 사람들은 빛 쪽을 향해 있다... 젊은이들은 인생의 싸늘함을 느끼고, 늙은이들은 무덤의 싸늘함을 느낀다. 이 가엾은 아이들을 나무라지 말자. (5권, 433쪽)

코제트, 작가님께 고마운 줄 알아라.

6. 진보는 필연코 잠을 깨고

지난 대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고, 폭풍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나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 때문에 우리의 암담한 정치 현실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시민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시민들이 2만명, 3만명이 모여도 공중파 어느 곳에서도 보도하지 않는다. 방송이 이명박 낙하산으로 장악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이제야 뼛속깊이 깨닫게 된다.

4학년인가, 5학년 사회 과목을 배울 때, 도시, 그 중에서도 대도시와 농촌 생활의 장단점에 대해 배운다. 도시 생활의 장점 중에 하나가 “문화 생활이 용이”하다는 것인데, 이건 맞는 말이다. 돈이 없어 못 볼 뿐이지, 클래식 연주회, 뮤지컬 공연, 콘서트, 미술 전시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열린다. 멀어야 두 시간, 가까운 곳은 한 시간이면 도착 가능한 곳들이다. 서울에 산다는 건 그런 의미다. 그런가하면, 이런 점도 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삼십 분, 길어야 사십분이면 도착하는 곳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 규탄 촛불 집회”가 열린다. 오늘 저녁 10만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대도시 서울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감을 느낀다.

“아, 내가 나가줘야 되나... 이렇게 가깝게 사는데... 내가 힘을 실어줘야 하나...”

아무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데, 나 혼자 생각이다.

“아, 내가 도와줘야 하나...”

 

이 사진에 어울리는 말이다.

위고는 천재가 분명하다.

오늘, 이 시간을, 위고는 눈에 본 듯 말한다.

절망하는 자는 잘못이다.

진보는 필연코 잠을 깨고, 결국, 진보는 심지어 잠들어 있어도, 전진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것은 성장했으니까.

진보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더 높아진 것을 본다. (5권,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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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느와르 2013-08-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잊을 뻔한 레미제라블을 환기시켜주시는군요.
글이 참 좋습니다. 전 언제나 코제트보단 에포닌에 한 표죠 ㅋ

단발머리 2013-08-12 09:40   좋아요 0 | URL
네, 팜므느와르님.

저도 역시나 영상세대라 영화 볼 때는 역쉬, 코제트! 했는데요, 책 읽고 나니 에포닌이예요.
요즘엔 보기 어려운 사랑이지요.
진짜 사랑이라 그런가 봐요.
 

 

1. 첫사랑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5살 어린이의 뽀뽀같던 첫키스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공지영의 책이었던가. 소설 속 ‘나’의 딸이 말했다. 엄마 나이의 다른 아줌마들을 보면 눈에 빛이 없다고. ‘인생, 뭐 새로운 게 있겠어?’하는 눈빛이라고.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나 역시 그런 눈빛으로 세상을 사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직 내게 ‘처음’이라 할 만한 책들이 많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것.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처음이다. 11살 연상의 여인을 사랑해 결혼하고, 그녀의 아들을 위해 소설 구상을 했다는 그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2. 한 사람 안에 두 사람

만사에는 종말이 있다. 아무리 넓은 그릇도 결국엔 채워지게 되어 있다. 결국 이렇게 잠깐 악에 순종하게 된 것이 내 영혼의 균형을 파괴하고 말았다. (96쪽)

 

지킬과 하이드. 하나의 영혼 안에 공존하는 두 개의 자아. 지킬과 하이드는 외적인 면에서부터 완벽하게 구별된다. 올해 오십 줄에 접어든, 부드러운 표정에 크고 건장한 체격의 지킬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른바 ‘호감형’ 인간이다. 이에 반해 하이드는 핼쑥하고 왜소하다. 기형의 느낌이 들기는 했으되 딱히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외모, 그를 본 모든 사람들은 기이한 혐오와 반감, 두려움을 느낀다. (25쪽)

사회 속에서 명망을 쌓은 지킬,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 명예와 영광. 하지만, 스스로 정한 고귀한 원칙 때문에 부정한 삶을 감추고 살아가던 지킬은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에 의거해, 인간이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82쪽)을 갖게 된다.

완전히 다른 모습의 두 사람이 사실은 한 사람이라는 것. 두 개의 자아가 하나의 육체 가운데 공존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킬이 계속해서 하이드가 되려 하는 것은 하이드로 변했을 때의 쾌감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유일하게 순수 악의 존재인 하이드로 변했을 때, 그는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젊어진 것을 느꼈다.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던 지킬은 결국엔 약물 없이도 하이드로 변하고 마는데, ‘잠깐 악에 순종했을 때’ 종국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떨리는 손으로 유서를 작성하는 지킬. 하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하이드다.

3. 이번주는 휴가철이라 그런지

아이들 방과후 수업에도 빠진 아이들이 많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짐 챙기는 게 귀찮다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햇살이 너무 좋다. 아니면, 너무 뜨겁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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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5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8-0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반갑습니다.
깔끔한 문체를 구사하시네요. 제 취향이라 더욱 반갑다는...
자주 뵈올게요. 님을 알기에는 아직 제 가진 정보가 많이 모자랍니다.
차츰 친구가 되어요^^*

단발머리 2013-08-09 01:43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제 서재에서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팜님 서재에 자주 놀러갈께요.
팜므느와르님의 친구가 된다니, 아... 생각만해도 너무 좋아요.*^^*
편안한 밤 되세요~~~~~
 

1. 강신주와 장자, 니체와 고병권을 동시에 만나고 나니

어지럼증이 몰려온다. 용량을 넘어섰다.

현대백화점 영풍문고에서 『안나 카레니나』 부분을 살짝 들쳐봤을 때는 책 전체를 읽어볼 생각은 안 했는데, 처음부터 읽어보니 보석처럼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학생들과의 강독회라 그런지 다정하고 편안하게 술술 풀어가는 저자의 이야기가 쉽게 책장을 넘기게 했다.

2.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나는 김훈이 좋은데, 좋으면서도 무섭다. 그의 문장은 너무나 담백하고 단단하지만, 삶의 면면을 가르는 사실적 묘사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읽었던 작품 중에는 『남한산성』을 제일 좋아한다.

자두의 생김새는 천하의 모든 과일들 중에 으뜸으로 에로틱하다. 자두는 요물단지로 생겼다. 자두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에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88쪽) 

마침 집에 자두도 있고, 수박도 있어서, 딸롱이가 자두를 먹을 때는 자두 부분을, 수박을 먹을 때는 수박 부분을 읽어줬다. 당연히, 반응은 심드렁했다. 김훈의 문장을 읽고 감탄하지 않는 딸롱이, 아직은 인생에 대해 예의를 차릴 나이가 아닌가 보다. 책 중간 중간 자신이 소개한 책들을 사서 읽어보라는 저자의 이야기를 그냥 지나쳤는데, 아래의 책들은 정말 사고 싶었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 1, 2』는 품절이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 한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중고는, 허걱. 중고는 비싸다.

 

 

 

 

 

3. 알랭 드 보통 <동물원에 가기>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들을 인정하게 될 터였다. (136쪽)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몇 달 전인가 『우리는 사랑일까』을 읽고, 이 책을 다음 타자로 찜해두었는데, 그만 까먹었다. 다시 도전하기로 한다.

 

 

 

 

 

4. 고은 <순간의 꽃>

엄마는 곤히 잠들고

아기 혼자서

밤기차 가는 소리 듣는다 (145쪽)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고, 고은님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이 책도 꼭 사서 저자처럼 줄을 쳐가며 꼭꼭 씹어 읽고 보고 싶다.

 

5. 김화영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났다가 그렇게 떠나 보낸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187쪽)

 

 

 

6. 뮤지컬 배우 옥주현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보고 와서, 유튜브로 뮤지컬 음악을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좋은 노래들이 많다. 유명한 것들은 외국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외국 가수와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를 비교해 듣기도 한다. 홍광호가 공연이 없는 날은 집에서 클래식이나 뮤지컬 음악을 들으며 하루 종일 쉰다고 해서, 그래서 듣는 건 아니다. *^^*

여러 동영상을 보던 중 옥주현의 동영상을 보게 됐다. 나가수에 나왔을 때도 ‘노래를 잘 한다’고, ‘예뻐졌다’고 생각했는데, 뮤지컬 동영상은 그보다 더했다. 내가 하도 봐서 딸롱이가 외워버린 곡이다. 내가 좋아하는 버전이다. 오늘 날씨에도 딱이다.

옥주현이 부릅니다. ‘레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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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7-2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영 집어 넣은 글들 참 좋네요. 특히 김화영의 글.

단발머리 2013-07-24 07:38   좋아요 0 | URL
앗, 야클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번역가 '김화영'이 아닌 작가 '김화영'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어요. *^^*

2013-07-24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4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3-07-2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원에 가기는 알랭드보통의 책 중 유일하게 다 못읽은책이에요. 아마 읽을당시의 상황도 여의치않았던것으로 기억해요ㅋ 덕분에 호퍼를 사랑하게 되었지만요^^ 전 불안을 가장 좋아해요♥

단발머리 2013-07-26 09: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만먹어도살쪄요님.

님은 알랭드보통 책을 다 읽으셨군요. 저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제목만 보고, 뭐야 이 작가?하면서
알랭드보통을 시시하게 여겼답니다. *^^*

좋은 책이 많을텐데, 저는 다 못 읽었어요. <왜 나는... >부터 시작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