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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평점 :
앞으로는, 다시는, 이 책을 읽고, 저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이나, 이 책 다음에는 어떤 시리즈를 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이제서야 알게 됐는데, 나는 작가 한 명의 책을 연달아 읽지 못 한다. 지루해서가 아니다. 나는 세계 문학사에 길이길이 빛나는 고전, 그 중에서도 소설 분야를 주로 읽고 있는데, 어디 지루할 틈이 있겠나. 졸릴 짬이 있겠나.
이번에도 그렇다. 밀란쿤데라의 [농담]을 다 읽고, 그의 다른 책 [불멸]을 집어들었으나, 들었으나, 아, 첫장을 넘기지 못 했다.
나는, 두려운 것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연거퍼 읽었을 때, 혹 줄거리가, 주인공의 이름이, 작품의 배경이 서로 서로 섞이는 것은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그럼 어때. 어떻게 세세히 다 기억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좀 심하다. 나는야 읽고 나서 돌아서면 모두 잊어버리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로서, 포스트잇 옮기는 걸 까먹어서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 일이 일상 다반사다. 그것도 30페이지 넘게 말이다. 그러니, 한 작가의 작품을 이어서 읽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에 읽은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의 여주인공과 키스할 테세다. 이건 아니다 싶다.
그래서, 연작이 아닌 이상 한 작가의 책을 연거퍼 읽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일단 무기한 보루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인 오스틴, [에마]다.
자랑삼을 만한 미모나 총기도 없었다. 젊은 시절은 별다른 일 없이 스러져 갔고, 중년기는 노쇠해 가는 모친을 보살피며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애면글면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바쳐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행복한 여인이었고, 그 이름을 거론할 때면 누구나 선의를 함께 표하는 그런 여성이었다... 소박하고 쾌활한 성격,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정신은 모든 사람에게 귀감으로 여겨졌고 그녀 자신에게는 지복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자잘한 화제를 끝없이 펼쳐 놓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잡담과 무해한 뒷공론을 즐기는 우드하우스 씨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33쪽)
요즈음은 많이 자중하는 편이지만, 사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는, '오늘도 조금만 말하자' 혼자 다짐을 하고서는 집을 나선다. 이 책에는 나보다 더 말하기 좋아하는 분이 나오는데, 국보급 이야기꾼 베이츠양이다. 베이츠양에 대한 묘사에서 나는, 제인 오스틴을 본다.
자랑삼을 만한 미모도 지혜도 재산도 없지만, 소박하고 쾌활한 성격에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녀. 자잘한 화제를 끝없이 펼쳐 놓는 대단한 이야기꾼. 제인 오스틴, 그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사실 조금 암울할 수도 있겠다. 미모도 지혜도 재산도 없는 노쳐녀,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적은 수입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행복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지금 자신의 외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신은 만족한다고, 감사한다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베이츠양이 그런 것처럼,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만족한다고,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제인 오스틴이 예전보다 좀 더 좋아졌다.
"해리엇,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규칙은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는 거야. '좋다'라고 말하는 데 망설임이 있다면, 곧바로 '아니요'라고 말해야지. 마음이 반만 기운 채 긴가민가 하는 감정 상태로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안전하지가 못하지. (79쪽)
이와 비슷하면서도 사실 다른 경우의 이야기를 [강신주의 다상담]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강신주의 다상담을 '들은' 이유는 강연이 책으로 묶여 나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강연은 두 번, 세 번까지 듣기도 했는데,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건, 강신주님 답변이 정말 '돌직구'라는 것, 그리고 돌직구 조언 사이사이 그의 진심어린 애정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특별게스트로 김어준님이 나왔을 때였던 것 같다. 이혼을 고민하는 상담이었는데, 강신주님과 김어준님 모두 이혼을 '독려'했다.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면, 일단은 '이혼을 하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번 '이혼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면,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작은 사건 사고에도 그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이혼하고, 한 번에 훅 털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는 거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혼의 파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 번에 밀어붙이기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결혼의 3.5 내지 5.5배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혼'을 '생각'할 만한 단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경우이지만, 똑같은 측면에서 에마의 말은 옳다. 어떤 남자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사귈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사귀지 않는편이 낫고, 결혼할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결혼하지 않는게 낫다. 그녀의 말이 옳다. 긴가민가 하는 감정 상태로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너 아니면 안 돼, 너 아니면 난 죽어, 해서 결혼해도, 그 다음엔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가 절로 나오는 법이니까. (마지막 문장은 생활 속에서 얻어진 문장이 아님을 '굳이' 밝혀둔다.)
그는 대단히 잘생긴 청년이었다. 키며 태도며 말씨며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고, 표정은 부친을 닮아 활기와 박력이 넘쳤다. 그는 분별 있고 영민해 보였다. ... 그녀는 그가 자기와 친해지려는 생각으로 왔으며 곧 서로 친해질 수 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74쪽)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는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연까지도 인물이 훤한 것이 특징인가 보다. 프랭크 처칠은 남자주인공급으로, 잘 생긴 외모를 자랑하며 짠~ 하고 등장하고 있다. 그는 대단히 잘생긴 청년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여러명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역시 '잘생긴'은 장동건-원빈 태극기 형제가 제격이다. 장동건은 이미 결혼한 관계로, 원빈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으나, 나는 굳이 '잘생긴'을 '매력적인'으로 해석하는 바, 프랭크 처칠 등장시에는 별그대 외계인 도민준 김수현을 생각하면서 읽기로 한다.
나는 대개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어나간다. [에마]가 아주 유명한 책이기는 하지만, 난 대략의 줄거리도 모른 채였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그래서 에마가 프랭크하고도 이어질 수 없게 되나 싶었을 때,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에마는, 에마는 어떻게 되는거야? 누구랑 해피엔딩인 거야? 제인 오스틴 소설의 마무리는 항상 '결혼'인데, 그래서, 에마는 누구랑 결혼하는 거야?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책 뒤쪽을 기웃거렸다. 이 쪽, 저 쪽 페이지를 넘겨가던 중에, 나는 알게 됐다. 에마는 그 사람이랑 결혼을 하게 된 거다. 아하...
나는 그 사람이 처음 나왔을 떄부터 둘 사이의 대화가 참 건전하고, 진지하고, 교육적이며, 서로에게, 특히 에마에게 유익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소개됐을 때에 알게 된 그의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그 사람을 '신랑 후보군'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그런데, 에마의 짝은, 소울메이트는, 그녀의 결혼상대는 바로 그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놀랐다. 제인 오스틴이 그 사람을 일부러 숨겨놓은 것도 아니고, 그녀가 특별한 소설적 기법을 통해 그 사람의 중요성을 감추려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끝까지, 소설을 반 이상이나 읽어갈 때까지, 에마의 배필을 찾아내지 못한 거다. 에마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채지 못한 거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나같은 사람, 꼭 나같은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
에마는 즉각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몇 분간 속으로 생각을 되씹으며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몇 분으로 충분했다. 그녀와 같은 정신은 일단 의혹을 품으면 급속한 진전을 보게 마련이었다. 그녀는 모든 진실을 문득 감지하고, 인정하고, 확인했다.... 한 가지 생각이 쏜살같이 에마의 뇌리를 스쳤으니, N씨가 자기 말고 누구하고도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591쪽)
자기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해리엇이 그 사람을 연모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음을 알았을 때, 에마는 비로소 알게 된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란 걸 말이다.
참아 줄 수 없는 허영심으로 그녀는 모든 사람의 숨겨진 감정을 자기가 안다고 믿고, 용서할 수 없는 교만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조정하겠노라고 나댔다. (598쪽)
현명한 중매자를 자처한 에마, 정작 자기의 앞가림은 하지 못한 셈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기를 결정하면서 기대했던 것, 바랬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1. 단편소설이나 시보다 장편소설에 대해 부가되기 마련인 사회적 목적, 즉 소설이 개혁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일말의 주장에 대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어떻게 답하는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21 제인 오스틴, [에마], 216쪽)
2. 작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이 층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작은 거실 한쪽에 놓인 일인용 책상에 앉아 소설들을 써 나갈 때, 글을 쓰는 여자 제인 오스틴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는 어떠한가? (작품 해설, 704쪽)
3.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에마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한편 가장 비호감인 인물에게조차 공감을 표시하는 일, 즉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운 것이 분명한 이 어려운 작업을, 제인 오스틴은 어쩌면 이리 유려하게 해낼 수 있었는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21 제인 오스틴, [엠마], 219쪽)
4. [에마]의 배경이 되는 영국 귀족 사회에서, 결혼이 가능한 또는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가문 사이, 사회적 지위간의 층위는 얼마나 다양한가?
그런데, 나는 하나도, 단 하나도 대답을 찾지 못 했다.
내가 알아냈던 건, 에마가 자신이 누군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끝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마처럼 소설 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소설 바깥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나도, 에마가 정말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마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책 뒤쪽을 펴보기 전까지는 정말, 까마득히 몰랐다는 거다.
고전의 위대한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내가 이 에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진짜 남자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채 간다고 해서야 그 사람이 자기 사람임을 눈치채는, 책 뒤쪽을 펼쳐봐야 내용을 알게 되는,
내가 바로 에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