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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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다시는, 이 책을 읽고, 저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이나, 이 책 다음에는 어떤 시리즈를 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이제서야 알게 됐는데, 나는 작가 한 명의 책을 연달아 읽지 못 한다. 지루해서가 아니다. 나는 세계 문학사에 길이길이 빛나는 고전, 그 중에서도 소설 분야를 주로 읽고 있는데, 어디 지루할 틈이 있겠나. 졸릴 짬이 있겠나. 

이번에도 그렇다. 밀란쿤데라의 [농담]을 다 읽고, 그의 다른 책 [불멸]을 집어들었으나, 들었으나, 아, 첫장을 넘기지 못 했다. 

나는, 두려운 것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연거퍼 읽었을 때, 혹 줄거리가, 주인공의 이름이, 작품의 배경이 서로 서로 섞이는 것은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그럼 어때. 어떻게 세세히 다 기억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좀 심하다. 나는야 읽고 나서 돌아서면 모두 잊어버리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로서, 포스트잇 옮기는 걸 까먹어서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 일이 일상 다반사다. 그것도 30페이지 넘게 말이다. 그러니, 한 작가의 작품을 이어서 읽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에 읽은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의 여주인공과 키스할 테세다. 이건 아니다 싶다. 

그래서, 연작이 아닌 이상 한 작가의 책을 연거퍼 읽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일단 무기한 보루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인 오스틴, [에마]다. 

자랑삼을 만한 미모나 총기도 없었다. 젊은 시절은 별다른 일 없이 스러져 갔고, 중년기는 노쇠해 가는 모친을 보살피며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애면글면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바쳐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행복한 여인이었고, 그 이름을 거론할 때면 누구나 선의를 함께 표하는 그런 여성이었다... 소박하고 쾌활한 성격,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정신은 모든 사람에게 귀감으로 여겨졌고 그녀 자신에게는 지복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자잘한 화제를 끝없이 펼쳐 놓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잡담과 무해한 뒷공론을 즐기는 우드하우스 씨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33쪽) 

 

요즈음은 많이 자중하는 편이지만, 사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는, '오늘도 조금만 말하자' 혼자 다짐을 하고서는 집을 나선다. 이 책에는 나보다 더 말하기 좋아하는 분이 나오는데, 국보급 이야기꾼 베이츠양이다. 베이츠양에 대한 묘사에서 나는, 제인 오스틴을 본다. 

자랑삼을 만한 미모도 지혜도 재산도 없지만, 소박하고 쾌활한 성격에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녀. 자잘한 화제를 끝없이 펼쳐 놓는 대단한 이야기꾼. 제인 오스틴, 그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사실 조금 암울할 수도 있겠다. 미모도 지혜도 재산도 없는 노쳐녀,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적은 수입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행복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지금 자신의 외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신은 만족한다고, 감사한다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베이츠양이 그런 것처럼,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만족한다고,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제인 오스틴이 예전보다 좀 더 좋아졌다.  

"해리엇,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규칙은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는 거야. '좋다'라고 말하는 데 망설임이 있다면, 곧바로 '아니요'라고 말해야지. 마음이 반만 기운 채 긴가민가 하는 감정 상태로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안전하지가 못하지. (79쪽)

 

 

이와 비슷하면서도 사실 다른 경우의 이야기를 [강신주의 다상담]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강신주의 다상담을 '들은' 이유는 강연이 책으로 묶여 나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강연은 두 번, 세 번까지 듣기도 했는데,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건, 강신주님 답변이 정말 '돌직구'라는 것, 그리고 돌직구 조언 사이사이 그의 진심어린 애정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특별게스트로 김어준님이 나왔을 때였던 것 같다. 이혼을 고민하는 상담이었는데, 강신주님과 김어준님 모두 이혼을 '독려'했다.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면, 일단은 '이혼을 하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번 '이혼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면,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작은 사건 사고에도 그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이혼하고, 한 번에 훅 털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는 거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혼의 파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 번에 밀어붙이기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결혼의 3.5 내지 5.5배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혼'을 '생각'할 만한 단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경우이지만, 똑같은 측면에서 에마의 말은 옳다. 어떤 남자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사귈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사귀지 않는편이 낫고, 결혼할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결혼하지 않는게 낫다. 그녀의 말이 옳다. 긴가민가 하는 감정 상태로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너 아니면 안 돼, 너 아니면 난 죽어, 해서 결혼해도, 그 다음엔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가 절로 나오는 법이니까. (마지막 문장은 생활 속에서 얻어진 문장이 아님을 '굳이' 밝혀둔다.)

그는 대단히 잘생긴 청년이었다. 키며 태도며 말씨며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고, 표정은 부친을 닮아 활기와 박력이 넘쳤다. 그는 분별 있고 영민해 보였다. ... 그녀는 그가 자기와 친해지려는 생각으로 왔으며 곧 서로 친해질 수 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74쪽)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는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연까지도 인물이 훤한 것이 특징인가 보다. 프랭크 처칠은 남자주인공급으로, 잘 생긴 외모를 자랑하며 짠~ 하고 등장하고 있다. 그는 대단히 잘생긴 청년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여러명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역시 '잘생긴'은 장동건-원빈 태극기 형제가 제격이다. 장동건은 이미 결혼한 관계로, 원빈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으나, 나는 굳이 '잘생긴'을 '매력적인'으로 해석하는 바, 프랭크 처칠 등장시에는 별그대 외계인 도민준 김수현을 생각하면서 읽기로 한다.   

 

 

 

 

 

 

나는 대개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어나간다. [에마]가 아주 유명한 책이기는 하지만, 난 대략의 줄거리도 모른 채였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그래서 에마가 프랭크하고도 이어질 수 없게 되나 싶었을 때,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에마는, 에마는 어떻게 되는거야? 누구랑 해피엔딩인 거야? 제인 오스틴 소설의 마무리는 항상 '결혼'인데, 그래서, 에마는 누구랑 결혼하는 거야?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책 뒤쪽을 기웃거렸다. 이 쪽, 저 쪽 페이지를 넘겨가던 중에, 나는 알게 됐다. 에마는 그 사람이랑 결혼을 하게 된 거다. 아하... 

나는 그 사람이 처음 나왔을 떄부터 둘 사이의 대화가 참 건전하고, 진지하고, 교육적이며, 서로에게, 특히 에마에게 유익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소개됐을 때에 알게 된 그의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그 사람을 '신랑 후보군'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그런데, 에마의 짝은, 소울메이트는, 그녀의 결혼상대는 바로 그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놀랐다. 제인 오스틴이 그 사람을 일부러 숨겨놓은 것도 아니고, 그녀가 특별한 소설적 기법을 통해 그 사람의 중요성을 감추려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끝까지, 소설을 반 이상이나 읽어갈 때까지, 에마의 배필을 찾아내지 못한 거다. 에마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채지 못한 거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나같은 사람, 꼭 나같은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 

에마는 즉각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몇 분간 속으로 생각을 되씹으며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몇 분으로 충분했다. 그녀와 같은 정신은 일단 의혹을 품으면 급속한 진전을 보게 마련이었다. 그녀는 모든 진실을 문득 감지하고, 인정하고, 확인했다.... 한 가지 생각이 쏜살같이 에마의 뇌리를 스쳤으니, N씨가 자기 말고 누구하고도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591쪽) 

 

자기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해리엇이 그 사람을 연모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음을 알았을 때, 에마는 비로소 알게 된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란 걸 말이다.  

참아 줄 수 없는 허영심으로 그녀는 모든 사람의 숨겨진 감정을 자기가 안다고 믿고, 용서할 수 없는 교만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조정하겠노라고 나댔다. (598쪽) 

현명한 중매자를 자처한 에마, 정작 자기의 앞가림은 하지 못한 셈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기를 결정하면서 기대했던 것, 바랬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1. 단편소설이나 시보다 장편소설에 대해 부가되기 마련인 사회적 목적, 즉 소설이 개혁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일말의 주장에 대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어떻게 답하는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21 제인 오스틴, [에마], 216쪽) 

 

 


2. 작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이 층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작은 거실 한쪽에 놓인 일인용 책상에 앉아 소설들을 써 나갈 때, 글을 쓰는 여자 제인 오스틴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는 어떠한가? (작품 해설, 704쪽) 

3.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에마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한편 가장 비호감인 인물에게조차 공감을 표시하는 일, 즉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운 것이 분명한 이 어려운 작업을, 제인 오스틴은 어쩌면 이리 유려하게 해낼 수 있었는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21 제인 오스틴, [엠마], 219쪽)   

4. [에마]의 배경이 되는 영국 귀족 사회에서, 결혼이 가능한 또는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가문 사이, 사회적 지위간의 층위는 얼마나 다양한가? 

그런데, 나는 하나도, 단 하나도 대답을 찾지 못 했다. 

내가 알아냈던 건, 에마가 자신이 누군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끝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마처럼 소설 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소설 바깥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나도, 에마가 정말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마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책 뒤쪽을 펴보기 전까지는 정말, 까마득히 몰랐다는 거다. 

고전의 위대한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내가 이 에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진짜 남자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채 간다고 해서야 그 사람이 자기 사람임을 눈치채는, 책 뒤쪽을 펼쳐봐야 내용을 알게 되는,   

내가 바로 에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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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1-2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가 재밌어요~ 내가바로에마다 ㅎ 이런 맛과 멋에 태그다나 보다~
써머셋 모옴이 쓴, 작가 비평전이라고 해야 하나 대여섯명의 작가에 대한 평전을 썼는데,,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이라는 책을 보면, 제인 오스틴이 있는데 ㅋㅋ~ 참 맛나게 읽은 책 중 하나죠... 책 비주얼은 두껍고 글밥 많은 게 하품나게 생겼는데요~ 혹시 읽어보셨을 수도 ㅎㅎ

온다 리쿠의 흑과 다의 환상을 보면, 주인공이 네명인데, 그중에 한명 세스코라는 여성이 있어요~
어릴 떄는 소심했고, 친구도 없었는데,,, '친구'를 바라지 않으면서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세쓰코에게, 심히 반했었죠~

"친구, 우리는 이 말에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고 살아왔을까. 이 악의 없고 진부한 말을 중얼거릴 때, 누구나 가슴 속에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을 품을 것이다."라고 내레이션하는 세스코...

눈썹을 찡긋찡긋하면서 능란하게 대화를 뒷받침하는 세쓰코의 쾌활함....ㅋㅋ ㅇ 이여성도 작중 수다대마왕인데~ ㅋㅋ

단발머리 님 이야기 듣고 있으니까 생각나서뤼..

단발머리 2014-01-24 09:04   좋아요 0 | URL
icaru님, 말씀하신 서머셋 모음이 썼다고 하는 책은 처음 들어봤어요. 외국 쪽에서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연구가 많은것 같아요. 갑자기 영화 <제인 오스틴 북 클럽>도 생각나고요. 아직 못 봤거든요.

서머셋 모음이 썼다고 하면, 웬지 믿을만 하겠는데요. 사실, 제인 오스틴 작품, 읽은게 얼마 안되네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몇 개 안 되는데... 참, 그렇죠?

수다대마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재미있군요. 멀리갈 것도 없이 제가 '수다대여왕'인 관계로다가... ㅋㅎㅎㅎㅎㅎㅎㅎㅎ
 

 


 

 

 

 

 

 

 

 

 

 

 

 

 

 

읽고 있는 소설이 이해되지 않거나, 어렵거나, 재미 없을 때 (써놓고 보니, 세 가지가 한 가지 경우다.) 작품 뒤의 해설과 작가 연보를 읽는다. 번역한 분의 해설이 실려 있는 경우도 있고, 유명한 문학평론가나 소설가의 해설 또는 감상이 실려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도움을 받아야 근근히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작품 뒤에 해설이 없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데, 나를 도와주는 손길이 없다. 

작품에 대한,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해없이 읽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는 세계사를 매우 잘했으나 (잘 외우고, 잘 찍었으나),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것 같다. 안 배운 것이냐, 배우지 못한 것이냐. 그래도, 읽어나간다. 소설은, 이미 그 자체로서 완벽한 하나의 세계,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쭉쭉 읽어나간다.  

어쨌든 넌 가면을 쓰지 않은 채 그 말을 쓴 거야. 그렇게 해서 적어도 우리는 네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거지. 우리는 네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나는 당을 위한 얼굴, 또 하나는 다른 것들을 위한 얼굴, 그런 식이지. 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이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똑같은 소리를 여러 차례 늘어놓았다. 농담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일 뿐이었고 그저 당시 내 기분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등등. 그들은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57쪽)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책을 읽어가는 중간 중간, 아,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일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소설 밖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니체식 선언과 철학적 논쟁 속에서 제목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책의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농담'이라니, 농담? 

책을 끝까지 읽은 지금은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이지만, '농담'이 아니고, '농담'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들을 잘 한다. 나는 사랑이 자기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낸다거나 그 시작을 나중에 신비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그것이 그렇게 돌연히 불붙은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 어떤 예시 같은 것이 있었다. 루치에의 본질, 아니 ― 아주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면 ― 나중에 루치에가 내게 어떤 사람이 되었는데 그 루치에의 본질, 나는 그것을 한순간에 즉시 깨달았고 느꼈고 보왔던 것이다. 마치 누가 밝혀진 진리를 가져와 보여주듯이, 루치에가 내게 가져와 드러내보인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100쪽) 

 

참, 멋있는 문장이다. 원문을 읽을 수 없으니, 더하기고 빼기도 어렵지만, 이런 문장으로 여자에게 다가간다면 어떤 여자가 마다하겠는가, 그런 생각이다. 

그녀의 삶 속에서는 세계동포주의와 국제주의, 철저한 경계와 계급 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의에 대한 논쟁들, 전략과 전술이 동반된 정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았다. (106쪽)  

내 앞에는 이제 전속력으로 비상하는 역사의 날개 아래 가리워져 있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잊혀져 있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107쪽)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가치들, 역사 속에서 각 개인의 역할, 의무와 헌신, 논쟁과 투쟁,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장소는 '사랑이 시작되는 곳', '일상'이다. 루드빅이 사랑하는 루치에가 있는 곳, 잊혀져 있었으나 이제 다시 살아난 비밀의 장소, 일상이 바로 그런 장소이다.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232쪽) 

중간쯤 읽었을 때였나, 소설 속 가난하고 소박한 여인 루치에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괴로워, 나는 책읽기가 힘들었다. 그만 읽을까 하다가, 조금 아쉽기도 해서 이것까지만 읽고, 이제 밀란 쿤데라 작품은 읽지 말자, 나 자신과 약속을 하고는, 책을 끝까지 읽어나갔다. 

끝까지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나는 407쪽에서 413쪽까지 이어지는 놀랍고도 황당한, 약간 웃기는 데도 정작 웃을 수는 없는,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굴욕적인게 분명한 이 신기한 에피소드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나는 또 결심하게 된다. 

 

다락방님테레사님의 안내에 따라 다음은 [불멸]이다. 신난다.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때, 그 때 바로 구입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래저래 미루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최고의 구성인데, 가격도 너무 착하다. 
 
알라딘 다이어리도 블랙, 알라딘 머그컵도 블랙이 왔다. 폼난다.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알라딘 달력. <세계의 작가들> 달력이 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그 달력이다. 


 

 

 


1년 12개월 중 제일 멋진 사진이다. 내가 어제 [농담]을 읽어서 이 사진을 고른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겠으나), 내가 본 바 이 사진이 제일 작가다운 작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더하여 가장 섹시한 작가 사진이기도 하다. 사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의 그윽한 눈빛에 어디에 시선을 둬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불멸]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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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1-08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달력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고 친구한테 보낸다고 포장해놨거든요. 그런데 올리신 사진을 보고 포장 뜯을 뻔 했어요. 이 달력은 내가 갖자, 하고 말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간신히 참았네요. 쿤데라님 멋지십니다 ㅠㅠ

단발머리 2014-01-09 08:12   좋아요 0 | URL
아, 이 아름다운 달력을 친구분에게요? 정말 다락방님 마음이 아름다우셔요~
쿤데라님, 진짜 멋지요?
소설 속에서 나온 사람이 소설을 쓰네요.
아흐.....

icaru 2014-01-0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다른 달력을 받았네요~ 도서관이나 책장 앞에서 하는 퍼포먼스가 주류를 이루는 사진들이던데 아쉽~
쿤데라 아저씨 야위보이네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심지어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도 봤던 거 같고요,, 농담도 읽었는데,,,
아 그게 벌써 20년 전이라,, 숙제라서 읽었구요 ㅠ
읽은 책인데, 워낙 한참전이었다는 핑계를 앞세우고,
더하다 덜하다 할말이 없을 때가 제 자신이 젤 찐따~ 같이 느껴지는데,,,
ㅋ 지금 이 순간도요... ㅎㅎ

일전에 지식인의 서재 은희경 편에서, 내 인생의 책 몇 권을 꼽은 가운데에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 라는 책이 있었어요.
이 책읽고, 은희경 작가는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그러니까 습작을 시작한 계기가 되는 작품이라던데요~
그래서 호기심에 구입했는데, 쉽게 시작이 안 되더라고요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것두 같은데

단발머리 2014-01-09 08:16   좋아요 0 | URL
icaru님, 저 완전 깜놀해서요. 정말 죄송하지만, 저도 모르게 연식추정 들어가서요.
20년 전에 읽으셨다고요? 완전 옛날이네요. 20년 전에, 저는..... 음.....
저희 선생님은 이런 훌륭한 숙제를 내주시지 않았답니다. 갑자기, 급 슬퍼지네요.
선생님의 도움이었다면, 저도 20년 전에 읽었을텐데... 쩝..

[생은 다른 곳에]는 처음 들어보는 책인데, 찾아보니, 번역이 '안정효'네요. 은희경과 함께 일독을 부르는 이름이네요. 기억해두어야겠어요.^^

레와 2014-01-0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농담]을 매번 잡았다가 몇장 안 읽고 던져놓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어요.
단발머리님 글을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ㅎㅎ;
이번에도 포기하믄.... ^^;;;;


반가워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4-01-10 08:02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레와님.
저도 읽다가 포기의 유혹 2번 있었는데, 다 읽고다니, 다시 읽고 싶어지는...
한 오년 후쯤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제 방에서 뵈니, 너무 반가워요. 레와님~~
앞으로 자주 뵈어요^^

2014-01-09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10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a 2014-01-0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서재라는 책을 읽고 농담이랑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읽고 싶었는데 단발머리님 리뷰를 보니 더욱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4-01-10 08:08   좋아요 0 | URL
헤헤, 감사해요, mira-da님.
사실, 저는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인생이라, 처음인 책이 무척 많아요.
조금 창피하긴 한데, 근데, 다 처음이라 재미있고, 신나요.

전, [카프카의 서재]라는 책을 찾아볼려구요. 날씨가 춥네요. 즐건 하루 되세여~~

icaru 2014-01-1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남의 서재에서든 내서재에서든 좌측 달인 엠블럼 볼 때마다 주렁주렁이란 님의 표현이 떠오르네요 ㅎ
네이버 지식인 서재의 댓글들을 쭈욱~ 보면서,,, 혹시 단발머리 님 글도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제 감식안으론 못 찾겠던데,,, 혹시 다셨어요?ㅎ 역시 내용이야 둘째치고, 정말 후끈후끈 달아올랐더라고요~ 그렇게 말들이 향연하는 댓글란... 다른 서재인물에서 봤든가??

단발머리 2014-01-11 18:25   좋아요 0 | URL
지식인의 서재에는 제 글이 없는데, icaru님 말씀대로 한 번 올려 볼까요?
저는 댓글다는게 가능한지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강신주님이 좋기는 한데, 사실 좀 부담스러워요.
좋은데, 부담스러운.... 이런 오묘한....^^

2014-01-10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11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15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01-17 07: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icaru님 한 번 찾아볼께요~~ 아, 보고시프당~~~~~

노이에자이트 2014-01-1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는 남녀관계에 대한 명언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그런 문장을 모아놓은 명언집 같은 것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했죠.싸이월드에 특히 많이 퍼나르고...쿤데라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까지도.

단발머리 2014-01-17 07: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사실 저는 '밀란 쿤데라' 이름에서부터 너무 매력적이라 생각했는데, 얼굴 보니, 더더 좋아지는 신기한 일이 생기더라구요. 소설은 뭐, 제가 말할 것도 없네요.

그런게 유행했었군요. 저는 인터넷도 좀 느린 편이라, 잘 모르고 있었네요^^
 


너무 늦어 올리지 말까 하기도 했지만, 아직 2014년 첫 주, 아직 4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괜찮다고 판단, 내가 뽑은 2013년 작년의 책을 골라본다. 2013년의 책이라 함은, 2013년에 출판된 책만으로 한정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뽑은, 2013년 내가 읽은 책 중에 기억하고 싶은 책으로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1. [레 미제라블 1, 2, 3, 4] 그리고 [레 미제라블 5] 

 

 

 

 

 

 

 

 

 

 

 

 

 

 

 

 

권수가 주는 부담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실 두께도 만만치 않았다. 2002년 [토지] 이후로 여러권으로 된 소설들을 자연스레 피해왔지만, [레 미제라블]은 꼭 읽어보고 싶어, 야심차게 도전했다. 자신으로 오인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장발장'임을 밝혀야 하나 고뇌하는 장발장의 모습이 그려졌던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파리의 하수도에 관한 설명 내지 안내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장발장', '코제트'. '마리우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는데, 책을 닫은 후에는 '테나르디에'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당신은 파렴치한이다! 당신은 거짓말쟁이고, 중상자고, 악당이다! 당신은 그분을 고발하러 왔는데, 그분의 무죄를 증명했어. 당신은 그분을 망신시키고자 했는데, 그분을 찬미하는 데밖에 성공하지 못했어. 그리고 도둑놈은 당신이야!... " ([레 미제라블 5], 467쪽) 

코제트를 구박했던 사람, 마리우스를 절망으로 빠뜨렸던 사람이 후에는 장발장의 탈출을 도와주고, 마리우스의 생명의 은인이 장발장임을 밝혀주다니, 이런 악인도 쓸모가 있었다. 쓸모라고 쓰고 나니, 웬지 이상하다. 이런 악인도 나름대로 자신의 몫이 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이런 악인도 가끔 착한 일을 할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2.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도중에 읽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스런 부분이 심히 많았다.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가 순화된(?) 쉬운 언어로, 주변의 비근한 예들로 철학과 인문학을 설명하고 있지만, 맨얼굴의 강신주가 말하고 싶은 진짜 철학, 진짜 인문학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란 결국은, '맨얼굴의' 그리고 '당당한' 인문학이다. 

이렇게 인문정신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정치가나 자본가, 혹은 멘토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저 자신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정신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우리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용기가 있는가? 당신은 주인으로서의 삶을 감당할 힘이 있는가? (595쪽)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근래에 가장 핫한 책이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지만, 읽어야할, 읽고 싶은 고전의 리스트를 잔뜩 안겨준 책이기도 하다. 끝까지 다 읽었으나, 다시 시작하게 하는 책이다. 다시 말해, 정말 좋은 책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단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이 삶을 향한 의지를 강화시켜 준다면, 다시 말해 내 삶에 경쾌함을 준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반대로 삶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켜 내 삶을 우울하고 무겁게 만든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514쪽) 

 

 

 

 

 

 

 

 

 

 

내 삶에 경쾌함을 주는 '좋은 사람' 강신주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선생님, 존경합니다."로 운을 떼보려 했으나, 어렵쇼? 실제로 만나고 보니, "선생님~"하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12월초 벙커에서 있었던 현악사중주 철학 콘서트에서 찍은 강신주의 모습이다. 세 시간 전에 도착해 앞에서 셋째줄에 앉았음에도 친구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은 생각보다 별로다. 맨 앞줄의 어떤 분, 사진기 좋~은 어떤 분이 찍으신 그 날의 다른 사진도 가져왔다. 겉으로는 "선생님~ 존경합니다." 표현 못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으로는 내 맘을 전하고 왔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3. [패니와 애니]

 

 

 

 

 

 

 

 

 

 

 

 

 

 

D.H 로렌스의 심오한 세계를 나는 잘 모르고, 그의 작품도 읽어본게 없어서, 이 작품이 그의 첫번째 작품이다. 찐한 분홍의 책표지가 너무 마음에 든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난 네 어머니뻘이라고 해도 좋을 나이야. 어떤 면에서는 이제껏 네 어머니였어." 
"그건 문제가 안 돼요." 그가 말했다. "머틸다 사촌은 내게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결혼해서 캐나다로 나가요. 그게 좋을 거예요. 날 만졌잖아요."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몸이 떨렸다.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너무 망측해!" 그녀가 말했다. 
"뭐가요?" 그가 반박했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213쪽) 
 
창비의 세계 문학의 다른 책들에게도 자꾸 눈길이 간다. 창비는 독특한 표기가 특징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말로 내가 처음 듣는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도 특징이지만, 가장 특장점은 눈길을 끄는 표지이다. 색상과 색감이 주는 특별성. 일단은 집에서 자고 있는 [돈 끼호떼]를 깨워봐야겠다. 

4.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2013년 알라딘서재를 말 그대로 뜨겁게 달구었던 다락방님 '이유경'씨의 따끈따끈한 책이다. 하루에 두 챕터씩 아껴서 읽다보니, 아직 페이퍼도 쓰지 못 했다. 새 책을 받아들었을 때, 손에서 느껴졌던 묘한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줌파 라히리, 로맹 가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던 상대들도 떠오른다. (26쪽) 

위의 아름다운 내용의 연장선장에서, 나도 다락방님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나는 3년 전쯤에 순오기님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울기엔 좀 애매한]을 선물받은 적이 있었음에도, 책선물을 주고 받는 알라딘서재의 모습이 먼 나라 일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다락방님의 리뷰를 보고, '재미있겠다, 이 책을 찜하겠다는' 나의 댓글에 다락방님께서 그 책을 내게 보내주셨다. 정성스럽게 쓴게 분명한 손글씨 연하장에, 향기 그득한 헤즐넛향 원두커피까지 같이 해서 말이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나중에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닌 밤중에 진지한 결심까지 하게 됐다. 

다락방님, 진짜 고마워요~~  


5. 서재의 달인  

이전부터 서재의 달인이셨거나, 서재의 달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은 상관이 없겠다. 나는 제대로 글을 올린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꽤 오랫동안 알라딘서재를 들락거렸다. 자주 들어와 글을 읽고, 책들을 둘러보고 그렇게 한다.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달고 계신분들, 특히나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세 개, 다섯 개 주렁주렁 달고 계신분들이 참 좋아보였고, 또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참, 부러웠다. 

올해 순오기님 페이퍼를 통해 나도 '서재의 달인'에 선정된 것을 알고는 너무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일에서, 내가 부러워하던 한 가지를 얻게 되어서 말이다. 

이제 나도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갖게 되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겠다는, 초긍정적, 건설적 생각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자였던 '공지영 작가님'의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아닌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대상을 수상했다는 전화를 끊고, 볼에 와닿는 한겨울의 바람이 차갑지 않아, 나는 내가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렇다. 
내 볼에 느껴지는 한겨울의 바람이 차갑지 않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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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1-0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친구도, 강신주 선생님과 그의 강의와 책을 좋아하거든요. 강의나 책 자체는 좋아해도, 사람까지 좋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라면서 ㅋ ~ 보니까 다담주 힐링캠프에도 나오시나 보던데요 ^^

저도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날, 마침 마음이 옹졸해져 있을 일이 있었다가는, 소식 접하고 혼자 조용히 마음이 강같이 흘러넘치는 경험을 했더랬어요 ^^;;;;

단발머리 2014-01-07 12:00   좋아요 0 | URL
icaru님 안녕하세요~~ 강신주님 팬이 많으셔요. 참 기쁘고도 슬픈, 소식입니다.
다담주 힐링캠프에 나오신다는 소식은 정말, 빅빅빅 뉴스예요.
좋은 소식 감사드려용!!

전 처음이라, 넘넘 기쁘네요. 한 열 개 정도 모아서, 왼쪽에 주렁주렁 열매처럼 달고 싶어요. ㅋㅎㅎ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의 상영 시간표와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이들 방학 전 마지막 행사가 불발되려는 순간, 검색의 여왕 H언니가 비교적 가까운 영화관에서도 이 영화를 상영한다는 걸 알아냈다. 사인 받은 시험지를 놓고 가 집으로 돌아온 딸롱이를 학교로 돌려보내고, 눈이 안 떠져 학교에 안 가겠다는 아롱이 손을 끌어 교문 안으로 밀어넣은후, 빛의 속도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상영 시작 5분 전이었다. 조조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가능한 송강호를, 송우석으로 보려고 했다. 어차피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 짧은 변호사.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요트 타던 송우석 변호사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질 터였다. 그렇게 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영화 보러 같이 갔던 언니들에게 말했다. 

"언니, 저, 눈화장은 안 했지만, 울지는 않을 거예요. 렌즈도 꼈고. 아무튼 안 울거예요." 

그렇게 하는게, 아무래도 속이 편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자주 입으셨다는 체크 자켓을 입은 모습으로 화면에 나타난 송강호를, 법정에서 제 정신이 아닌 모습으로 변론하는 송강호를, 하얀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서 있는 송강호를, 송강호를 노무현 대통령님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되는 순간을, 나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의로운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고 싶다'며 열정적으로 연설하던 그를, 
간발의 차로 이회창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노란 물결로 가득찬 민주당 당사 앞에서 "지금은 당원분들 한 분, 한 분 손잡고 싶습니다."라고 떨며 말했던 그를,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 페달을 돌리던 그를, 
'대통령 일 열심히 할 때는 그렇게 욕을 하더니만, 그냥 노니까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하네요."하며 크게 웃던 그를,   
수십대의 자동차로도 부족해 헬기까지 동원해 소환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여줘야했던 그를, 
'원망하지 말라'며 그렇게 떠나간 그를,
 
그의 모습을 송강호가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난 그걸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암담한 시대, 제일 많이 배운 사람들이, 제일 비열한 수법으로 약자를, 사람을, 국민을 억압하고 옥죄일 때에,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그렇게 싸워 보겠다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송강호의 대사는,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 다 보여줄 수 없었을 그의 삶의 고통과 불안을 두려움과 분노를 내게 전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는 권력의 폭압적 행태를 앞에 두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관에 앉아 있는 것이다. 영화표를 사서 영화관에 들어가 그 영화를 보는 것, 관객수 1인의 수를 올려주는 것, 오직 그것 뿐이기에, 난 그렇게 했다. 두 시간이 힘들었다. 영화 보는 내내 자꾸 목이 말랐다.  

영화를 만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의 삶을 영화로 표현해낸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영화배우 송강호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영화 '26년'을 찍은 영화배우 진구에게 시나리오가 안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이런 흉흉한 시대에, 송강호씨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연기로는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한 배우지만, '정치적이다', '편향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 영화배우로서의 운신의 폭이 확연히 줄어들 것임에도 송강호씨는 크게 용기를 냈다. 

송강호씨의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번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변호인' 출연의 결정적 한 방은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 아니라, 송강호 아내의 것이다. 

"당신이 아주 젊고 ‘핫’하고 최고의 지위에 있는 배우라면 모르겠다. 그렇지만 산전수전, 우주전까지 겪은 당신이 겁날 게 뭐가 있나.” 아내의 말에 송강호는 내심 놀랍고 고마웠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사실은 박찬욱 감독이 아니라 박찬욱 할아버지라도 아마 내 마음 10% 이상을 움직이기는 힘들 거다”라며 웃은 송강호는 “그러나 집사람은 별 것 아닌 말 한마디로 나를 움직였다”고 털어놨다. “내 마음의 99%를 바꿔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집사람이다”라는 송강호의 말에서는 아내를 향한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국민일보, 쿠키인터뷰, 2013. 12. 04] 

여러 사람이 용기를 내 이 영화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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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2-2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강호 씨는 2012년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해서 침체기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평도 들었는데 올해는 연말까지 흥행에 성공하는군요.

단발머리 2013-12-27 23:57   좋아요 0 | URL
네... 용기 낸 멋진 사람이 하필이면, 하필이면 연기력도 출중해서 작품을 아주 살려주네요.
본인도 아주 흐믓할것 같고요.
타이밍이라는게는 있을텐데, 올해는 송강호씨에게 좋은 타이밍이예요. 참 잘 됐어요*^^*
 

 

아침에 일어나 알라딘서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양철나무꾼님' (안녕하세요, 양철나무꾼님^^) 서재에서 강신주의 새 책이 나온걸 알게 됐다. 전에 12월에 나온다고 말했던 그 책이 바로 이 책인가 보다.

 

 

 

 

 

 

 

 

 

 

 

 

 

 

 

[강신주의 다상담 1]과 [강신주의 다상담 2]는 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팟캐스트로 다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회는 2번 듣기도 해서, 책으로는 안 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지막회 [다상담 -죽음과 종교편]이 유투브에 올라오지 않아 계속 궁금했다. 책이 나온것으로 보아, 어쩌면 동영상이 안 올라올 수도 있겠다 싶다.

 

고로, 나는 이 책을 읽어야한다. 표지 색상도 주제에 맞춰, '깜장으로다' 깔맞춤했다.

 

 

......

 

 

어제는 눈이 많이 내려 언덕길에 자리잡은 우리 아파트는 고립이 되었고, 마을 버스는 아파트 앞을 지나가지 않았고,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 바깥소식은 오직 컴퓨터로만 들을 수 있었는데.

 

바깥 소식이 궁금한게 아니고, 어제밤 <상속자들>이 궁금해 포털을 보다가, 이런 기사를 보게 됐다.

 

 

 

 

【프리토리아=AP/뉴시스】12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프리토리아 유니언빌딩 위로 무지개가 떠 있다. 2013.12.13

 

 

자신의 정적에게도 손을 내밀었던 넬슨 만델라의 마음처럼 무지개는 참 예쁘다.

 

그리고, 생각나는 또 하나의 무지개.

 

 

 

 

 

눈이 부시도록 햇볕이 쨍쨍했던 그 날, 서울광장의 무지개.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화해의 손을 내밀고 가는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그를 죽이려는 사람에게도.

 

화해의 무지개를 내어놓고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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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2-1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광장 무지개 멋지네요.누가 찍었나요?

단발머리 2013-12-17 08:5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그날 서울광장 못 간게 계속 맘에 남아요....

사실.... 다른 분 홈피에서 슬쩍....
저 이러면 안 되지요. 출처를 찾아서 붙여놔야겠네요.

단발머리 2013-12-17 09:06   좋아요 0 | URL
똑같은 사진이 웹상으로는 많은데, 제가 아이패드로 다운받은 사진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신문기사는

"노 前대통령 노제 때 서울광장에 무지개 떴다" 경향닷컴
(입력 : 2009-06-01 15:35:25ㅣ수정 : 2009-06-01 15:38:16) 네요.

다크아이즈 2013-12-16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강신주 교수님은 책 내는 기계 같아요.
세상에 자꾸 부러운 사람만 늘어가니 덧글 쓰는 이 순간도 자괴감이...
그래도 맘 바꿀게요. 좋은 책 내는 이 있으니 독자로서 행복한 거라고^^*

단발머리 2013-12-17 08:53   좋아요 0 | URL
네...
본인 입으로 독자들이 자기 책 내는 속도를 못 따라오게 하겠다 하시더라구요. ㅋㅎ
올해 출판계가 근래에 제일 바닥이었다는 기사가 많던데,
그래도 좋은 책 내시는 분들 계셔서 독자로서는 많이 행복합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3-12-19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때 무지개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