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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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읽는 책들을 전공으로 읽어놓고도

그애(세실리아)는 집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나 읽으면서 케임브리지에서 삼 년을 허송세월하고 돌아왔다. 오스틴이나 디킨스, 콘래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서재에, 그것도 전집으로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읽는 책들을 전공으로 읽어놓고도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219쪽)

‘할 수 없다’에 500원. ‘하면 안 된다’에 1000원.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중고등학교 때, 늦어도 대학에 다니면서 읽었던 책들을 나는 대학 다니는 내내 읽지 못 했고, 그에 더하여 읽지 않았다. (‘바빴다’고 말하고 싶으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터, 나는 ‘바빴다’는 수동적 표현보다는 ‘읽지 않았다’는 적극적인 표현을 선택하겠다.) 움베르트 에코의 계산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 정확히는 나흘에 한 권꼴로 ‘고전’을 섭렵한다 해도 사람들이 말하는 고전, 이름난 고전들을 죽기 전까지 다 읽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에 나는 지금이라도, ‘전공’을 대하는 자세로 열심히 오스틴, 디킨스, 콘래드를 읽어볼까 하면서도, 생각해보니 그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게 생각난다. 그래서, 다시 ‘심심풀이’로 읽어볼까 생각해보면,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루이스 보르헤스가 어디 ‘심심풀이’로 읽히던가, 하는데 생각이 미친다. 이도저도 할 수 없다.

책상 위, [속죄]부터 시작한다.

2.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521쪽)

속죄의 ‘장본인’이라 할 만한 브리오니는 자신이 보았던 모든 장면, 그 장면을 보았을 때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 소설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을 좌지우지하는 작가적 위치에 익숙했던 브리오니는 현실에서도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한다. 범인에 대한 확신이 없었음에도, 유일한 비판적 목격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을 얹는다.

소설가에게는 속죄가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은 조금 이해되지만, 글쎄, 브리오니에게도 속죄가 필요하지 않을까.

브리오니, 그녀에게 속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3. 브리오니

13살. 늦둥이 귀여운 막내.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 소녀. 오빠 앞에서 멋진 연극을 선보이고자 사촌 동생들을 닦달하는 그녀. 아직 아이지만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하는 그녀. 브리오니.

연극의 ‘o'도 모르는 철없는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고 연극 연습에 몰두중인 브리오니에게 쌍둥이와 친척 언니 롤라 얼굴의 주근깨는 그야말로 ’치명적‘ 난관이다.

분명한 것은 브리오니처럼 머리칼이 검은색인 아라벨라가 주근깨가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나거나 주근깨가 있는 외국 백작과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일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근깨가 있는 여관 주인에게 다락방을 빌리지도, 주근깨가 있는 왕자님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도, 주근깨가 있는 신자들 앞에서 주근깨가 있는 사제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릴 것 같지도 않았다. (23쪽)

'주근깨 emergency'를 간신히 극복한 브리오니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건 브리오니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이 연극의 여주인공 자리를 롤라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브리오니는 ‘자신’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아라벨라’로 상상하지 않았건만, 노련한 롤라의 말솜씨에 넘어가 여주인공 자리를 롤라에게 빼앗기게 된다. 브리오니는 크게 상심한다.

(엄마의) 드레스가 롤라의 몸에 잘 맞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엄마가 무정하게도 그런 롤라의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 것을 상상하면서 브리오니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집을 뛰쳐나가 산울타리 아래에서 나무 열매를 먹고 살면서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겨울날 새벽 커다란 참나무 둥치 옆에서 맨발로, 아니면 분홍색 리본 끈이 달린 발레화를 신은 채 아름답게 죽어 있는 모습으로 턱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나무꾼에게 발견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30쪽)

여주인공 자리를 빼앗겨 버린 억울함과 고통.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꿈꾸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브리오니는 집을 뛰쳐나가, 맨발 혹은 분홍색 리본 끈이 달린 발레화를 신은 채로 턱수염 덥수룩 나무꾼에게 발견되는 제 모습을 상상한다. 희비극이 엇갈리고, 시공간을 초월한다.

이랬던 브리오니가.

13살 어린이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범죄 현장을 목도하게 되고, 계속되는 오해 속에서 또 다른 범죄 현장의 증인이 되어, 위험하고 음산한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가 된다.

브리오니의 유아적 상상력, 모든 사건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욕망, 로비에 대한 풋사랑. 이 모든 것이 소설 속 비극의 원인 중 한 가지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비극의 가장 원초적 이유는 브리오니의 이런 마음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아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리오니는 지금보다 언니를 더 사랑한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265쪽)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는 언니. 바로 이 순간, 이 세상 가장 큰 비극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언니.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 수 밖에 없는 언니. 그런 언니를 바라보며 브리오니는 ‘지금보다 언니를 더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즉, 언니의 불행이 그녀의 사랑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브리오니는 불행에 빠진 언니를 보며 더 큰 사랑을 느끼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불행에 빠진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에 빠진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각각한 것,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감각한 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세실리아는 왜 불행해졌는가. 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가. 그건 브리오니 때문이다. 브리오니 때문에 그녀가 사랑했던 세실리아는 불행해졌다. 하지만, 불행해진 언니를 보고, 브리오니는 더 큰 사랑을 느낀다. 언니의 불행은 자신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언니의 불행은 브리오니의 사랑을 증폭시킨다.

브리오니가 생각하는 사랑, 그녀가 세실리아에게 느끼는 사랑,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4. 로비

부유한 가정의 세실리아, 브리오니와 남매처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던 로비. 그도 이제는 옥스퍼드대 장학생으로서, 의대 지망생으로서 멋지게 성장했다. 하지만, 더 성숙해지고, 더 당당해진 로비는 괴롭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다. 그는 괴롭다. 그는 고통 속에 있다.

물론 세실리아는 그와 말을 나누려고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원했다. 그것을 가져야 했다. 설사 더 고통스러워진다 해도. (119쪽)

세실리아와 만나는 것을 상상하며, 그녀의 차가운 반응을 예상하며, 그녀와 말을 나눌 수도 없다는 걸 생각하며, 로비는 고통스럽다. 로비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았다. 미안하다, 로비.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원했다. 그것을 가져야 했다. 설사 더 고통스러워진다해도. (119쪽)

로비의 얼굴을 대면한 세실리아는 그를 문밖으로 내쫓지 않는다. 그녀는 서재로 들어간다.

그녀는 램프 옆을 떠나 서재의 책꽂이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도 방 안으로 더 걸어들어갔다. 그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191쪽)

더 큰 고통을 맞닥뜨리기 위해 세실리아를 찾아간 로비는 이제, 서재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간다. ‘그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나도 없다. 그는 멀어지는 그녀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그녀 옆에 있을 뿐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5. 세실리아

로비와 세실리아의 서재 장면은 정말 ‘두고 두고 회자될만한 명장면‘이라는 [빨간책방] 이동진씨의 말에 김중혁 작가는 입을 맞춘 듯, 정말 그렇다고 연신 동의했다. ’나도 이 장면이 좋았어요.‘라고 말해도 되나, 내심 부끄러워 하면서도,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아이패드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도 그 장면이 좋았어요."

그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두 사이에 놓여 있던 미묘한 무언가가 사라지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오랜 친구사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장벽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예전의 자기들 모습이 신경 쓰였다. 최근 몇 년 동안 둘 사이가 어색해지고 심지어 불편해지기까지 했지만, 어린 시절 친구라는 사실은 오랜 습관처럼 늘 따라다녔기에, 그 장벽을 부수고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194쪽)

남매같이 지내던 두 사람이 서로를 불편하게 여긴다.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던 두 사람. 친구에서 이제 막 연인이 되려는 로비와 세실리아. 자신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괴로운지 알지 못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한다.

“네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잖아. 무슨 일인가 일어났어, 그렇지 않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바로 코앞에 뭔지 모를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야. 그게 무엇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내 앞에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어.”

“넌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거야. 그렇다고 말해줘.” (193쪽)

이런 두 사람의 관계에서 결정적 한 방은 세실리아의 것이다. 세실리아에게 키스한 것은 로비이지만, 로비로 하여금 그녀에게 키스하게 한 것은 세실리아다. 결정적 한 걸음은 세실리아의 발걸음이다. 그녀는 용감하다.

묘하게 비슷한 장면이 생각난다. [목사의 딸들]에서 루이자와 알프레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내가 가길 원하세요?” 그녀는 반복했다.

“왜요?” 그도 다시 물었다.

“난 당신과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요.” 허파가 불로 가득 차 숨이 막힌 듯한 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그는 혼돈의 고통 속에 자기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마치 허공에서 멈춘 듯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 그들의 영혼이 잠시 동안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129쪽)

이 장면에서도 결정적 한 방은 루이자의 몫이다. 물론 사회적 신분 차이에 의한 알프레드의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솔직했다는 점에서 역시 그녀의 한 걸음이 결정적이다. 그녀는 용감하다.

6. 추천과 강제 사이

예전에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은 거의 실시간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는데, 프로그램에 나와서 ‘책을 읽자’고 침튀기며 이야기하는 교수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매체의 글을 통해 ‘책은 그렇게 읽혀서는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강제하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나도 ‘강제하는 책읽기’에는 반대하지만, 실제 딸롱이에게 여러 책들을 추천하기는 한다. 추천과 강제 사이는 참 미묘한데, “한 번 읽어봐~“하고 말했을 때는, ”싫어, 재미없을 것 같아.“라는 답변이 나올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2번, 3번 정도 추천할 수는 있지만, 억지로 읽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책 제목’이라도 익숙하게 해서, 다른 통로, 이를테면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그 책을 추천했을 때, ”어, 나 저 책 본 것 같은데...“하며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책과 책의 제목, 그리고 책표지를 ‘노출’시키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나는 [빨간책방]을 좋아하고, 남자들의 수다를 좋아하지만, 추천한 책 전부를 읽지는 않는다. 재미가 없어보이면 방송만 듣고 읽은 걸로 퉁친다. 그런데, 이 책은 워낙 칭찬과 명성이 자자해 도저히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알라딘에서 발빠르게 50% 세일할 때까지만 해도 읽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계속해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50% 세일할 때 구입하지 않은 것이, 내내 아쉬웠다.

그래서, 저번주의 추천책 [다섯째아이]는 50% 세일을 시작하자마자 과감하게 결제버튼을 눌렀다. 이번의 추천도 즐거운 책읽기로 이어질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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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5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6-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원했다. 그것을 가져야 했다. 설사 더 고통스러워진다해도. (119쪽)
이 문장 정말 좋네요!
여기저기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슬쩍 보긴 했는데
제대로 정독한건 이번 리뷰가 처음입니다.^^

단발머리 2014-06-26 09:46   좋아요 0 | URL
아하... 아무개님의 숱하게 많은 '처음' 중에 제가 하나의 '처음'이 될 수 있다니, 너무 기쁩니다.*^^*

사실, 이 소설이 다 연애얘기는 아닌데요, 전쟁터에서 팔, 다리 날아가고,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가 변기 청소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무섭고, 더럽고, 크고, 대단해서 제가 리뷰로 정리를 잘 못했어요.
제 리뷰는 협소한 리뷰입니다~~ 참고해 주세영~~~
 
[eBook]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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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조국 교수 신작 e-book이 이번 주의 무료, 무려 ˝무료 e-book˝이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최신간을 무료로 받아보니, 미안하면서도..... 신난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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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1. 문학동네 vs 민음사

 

 

 

 

 

히트작이 많은 출판사들답게 입구쪽,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부스가 있었다. 역시나 제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할인율로 보자면 큰 혜택은 없어보였는데, 문학동네에서 사고 싶었던 책 [대성당]은 마침 다 판매되고 없었다. appletreeje님의 리뷰를 보았더라면 [버들치]를 사왔을텐데, 시집 이름이랑 시인들 이름만 읽어보다가 그냥 돌아섰다.

민음사에서는 버지니아 울프 노트를 (노트는 많이 있는데 T.T), 알라딘 노트보다 조금 더 크고, 얇았는데, 하나 샀다. 5,000원. 마음에 든다. 

 

  

2. 세계 속의 한국 작가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표지는 여러 나라의 표지가 요모조모 다 예쁘다.

 

 

 

바쁜(?) 일정으로 먼저 집에 간 딸애에게 사진을 보며주었더니,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싶다고 했다. 나도 전에 읽었는데, “어린이가 읽어도 되겠지?” 하며 빌려다 주겠다고 했다. 

 

 

 

3. 김중혁 작가

짜잔~~ 토요일의 하이라이트. 이벤트는 이미 마감된 걸 알고 있었지만, 김중혁 작가를 실제로 보고 싶어 이벤트홀로 향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맨 뒤에 서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키가 큰 관계로다가 김중혁 작가가 아주 잘~ 보였다.

작가에 대한, 소설가에 대한 환상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 일테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사람의 속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독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도 성실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4. 내년에는 평일 오전에 리스트를 준비해 노려보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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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6-2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 스케치하고 갑니데이~~~
매년 갔었는데, 올해는 어떻게 못 가봤어요~ 작년에 갔을 때,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선생님 할 때 뒤에 앉아서 듣다가 나왔던 기억 나네요 ^^;;;;

단발머리 2014-06-23 13:5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두 번째인데, 재미있었어요.
책을 많이 샀으면 좋았겠지만, 아, 가방이랑 신발이랑...
내년에는 운동화에 백팩 매고 갈려구요^^

2014-06-23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4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4-06-2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지니아노트 샀어요^^ 안에 줄이 없어서 맘에 들어용^^

단발머리 2014-06-24 09:21   좋아요 0 | URL
그렇게혜윰님, 진짜 버지니아 울프 좋아하시는군요. ㅋㅎㅎ
저도 예쁜 노트들 중에서, 그래도 버지니아, 하면서 그걸 골랐거든요.
저도 줄 없는 노트 좋아하는데..... 어쩜...

그렇게혜윰 2014-06-24 10:0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받은 수많은 노트들의 줄을 볼 때마다 쓰는 걸 망설이고 있어요 ㅠㅠ

단발머리 2014-06-24 15:45   좋아요 0 | URL
알라딘 관리자님~~ 보고 계시나요?
제발 참고해 주세요~
저희는 줄노트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무선노트를!!!
 
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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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팔랑팔랑 팔랑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그 이야기를 쉽게 믿는다. 그렇대~ 하면, 에이, 설마?가 아니라, 대부분 아, 그래~~ 하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셰익스피어, 누가 셰익스피어를 모르나.

4대 비극, 다 읽지는 않았어도 알기는 알지. (제목만 아는 것도 아는 걸로 친다.)

오셀로, 그래, 그 이야기.

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오셀로]를 읽지 않았었는데, 네이버 앱에 올라온 [오셀로]에 대한 글 한 꼭지를 읽게 되었다. 음, 맞아, 그래 그렇구나. 근데 글을 참 잘 썼네. 누구지? 맨 밑에 이렇게 쓰여 있다. 김/연/수.

아, 김연수가 쓴 글이구나.

누가 셰익스피어를 모르나. 4대 비극을, 오셀로를. 하지만, 김연수가 이렇게 격찬한 작품이라니. 나도 읽/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말을 진짜, 잘 듣는 편이다.

 

브라반시오    절대로 대담하지 않았고

                   너무나 잠잠하고 조용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을 붉히던 처녀였어. 그런데 그 애가

                   본성과 연령과 나라의 차이와

                    평판과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겁나서 쳐다보도 않던 것과 사랑에 빠져? (44쪽, 97-102행)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시오는 딸의 정신이 가출해버려 무어인과 결혼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본성과 연령과 나라의 차이를 극복한 사랑의 힘. 브라반시오는 그러한 사랑의 힘을 믿지 않는다. 노골적인 무시와 참기 어려운 모욕 앞에서도 오셀로는 자기는 데스데모나를 거짓으로 유혹한 게 아님을,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밝힌다.

오셀로           그녀는 제게 고마워했고 이르기를

                   그녀를 사랑하는 제 친구가 있다면

                   제 얘기를 하도록 가르쳐주는 것만으로

                   그녀에게 구애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 귀띔 받고 나서 제가 말을 꺼냈지요.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 때문에 절 사랑했고

                   전 그녀가 그 위험을 동정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쓴 유일한 마법입니다. (47쪽, 174-181행)

 

 

 

이 때, 자신과 데스데모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셀로는 얼마나 침착한지, 얼마나 당당한지, 얼마나 의연한지. 눈으로 보이는, 확연히 구별되는 그의 외모 이면에 단단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오셀로의 내면을 확인하게 된다. 데스데모나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함이, 실로 마땅하다.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을만큼 멋진 사람이다.

오셀로가 왜 그렇게도 쉽사리 또는 어렵사리 이야고의 유혹에 넘어갈까, 라는 문제는 비평가들의 관심거리였다. 오셀로의 본성은 질투와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브래들리Bradley는 사태 진전의 주원인을 오셀로 밖에서, 즉 이야고의 탁월한 계략에서 찾고, 리비스Leavis는 반대로 오셀로 안에서, 그의 무지와 자기 자신과 데스데모나에 대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만족감에서 찾는다. 그 밖에도 고다드Goddard는 그 이유를 그가 애초부터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꿈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호니그맨Honigman은 그것을 오셀로의 <아주 특별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불안감>으로, 그리고 맥앨린든McAlindon은 그것을 <오셀로의 예외적인 성품과 상황뿐만 아니라 좀 더 의미심장하게는 보편적인 인간성 안에 있는 세력들 사이의 불균형>이라고 설명했다. (작품해설, 오셀로의 사랑과 이분법의 비극, 214쪽)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에 더해야 할 말이 뭐 있겠냐마는, (하면서 끝내 한 마디 더하고 마는) 내가 보기에 오셀로가 이야고의 유혹에 넘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마는 것은, 완벽하게 존재해야하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강박 때문인 것 같다.

본성과 연령, 나라의 차이와, 평판을 뒤로 하고, 맺어진 자신의 사랑. 충실한 아내, 자신에게 존경과 사랑을 끊임없이 보내는 아내에게, 그는 완벽한 사랑, 완벽한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

데스데모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완벽하다고 믿는 오셀로는 자신에 대한 데스데모나의 사랑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고에 의해 일말의 의심이 그의 마음에 심겨졌을 때, 물을 주고, 햇볕이 비추도록 그 불화의 씨앗을 돌보는 이는 이야고가 아니라, 오셀로 자신이다. 파멸의 원인이 오셀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파멸의 과정에서 오셀로가 자신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사랑을 의심으로, 연정을 질투로 바꾸어 버린 것은 차치하더라도,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처단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은 특히 더 아쉽다. 복수, 처단, 응징을 위해 뛰쳐나가는 오셀로가, 두 눈이 벌개져 이야고의 속임에, “그래, 그래.”하는 오셀로가 너무 불쌍하다.

오셀로, 왜 그렇게 서두르나요?

왜 그렇게 서두르나요, 오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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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영어 - 한국인은 왜 영어를 숭배하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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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어.

라고 하면 정말 할 말이 많다. 5장 정도는 거뜬히 채울 수 있을 만큼 숱하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려니, 영어 전문가도 아니고. 괜히 머쓱하다.

초등학교에서 정규 영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 특별 활동 시간을 통해 영어 알파벳을 익혔던 초등시절부터 시작해서, 문법 작렬 중학교 영어,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느닷없이 만나게 된 수능영어. 듣기 평가 대비 수업과 독해 아닌 지문빨리읽기 및 정답 골라내기 연습 시간들. 대학. 영어. 대학영어. 취업. 영어. 취업영어. 그리고, 상표법. 영어. 상표법 영어. 외국 클라이언트. 영어. 서신 영어. 그렇게 초등 4학년 때 만난 영어는 취업 후에도 여전히 생활의 일부였다. 이런 시가 생각난다.

언제나...

영어는

나의 꿈,

나의 이상,

나의 소망,

나의 연적,

나의 원수,

나의 숙제이다.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겠다. 내가 지은 시다. 영어에 대한 내 애증은 끝이 없다. 한이 없다.

[지적생활의 방법]의 저자 와타나베 쇼이치는, 학교 영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교양 있는 영어 교사’의 요건으로 ‘자유 시간에 영어 원서 읽는 것’을 꼽았다. 그렇다. 나는 훌륭한 영어 교사가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되기 어렵겠지만, 나는 ‘자유 시간에 원서를 읽는 사람’이었다. 그걸로, 만족하고 싶었다. 그정도면 족했다. 회사에 다닐 때도 그리고 퇴사 후에도 자유 시간에 원서를 읽는 것,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그 소설이 아주 어려운 책이 아니라면), 소설가가 쓴 언어 그 자체로 읽을 수 있는 것을 기꺼워하며, 그렇게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더 큰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름부터 어마무시한 유아 영어.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하고, 뛰어난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고들 했다. 당장, 아이를 가르쳐야 했다. 아이는 아직 한국어도 어색한, 18개월이었다.

내가 영어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어떻게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나.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영어 교육서와 관련 육아서를 주구장창 읽어가기 시작했다. 동화책 영어, 놀이 영어, 미술 영어, 끝이 없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내가 찾은 결론은 이 책이었다.

 

영어 학원을 보내지 않고도, 영화 보기와 원서 읽기만으로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이 책의 주장은 이미 10년 이상 많은 어린이들과 그의 부모들에 의해 그 효과가 입증된 터였다.

그래, 우리도 이렇게 해보자. 시작은 있었으나,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대로, 책대로 실행하는 건, 정말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전 세계 유일무이 한국의 열성적 엄마와 엄친아, 엄친딸의 환상 조합이라면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 우리집은 잠수네 흉내내기로 근근히, 지내오고 있다.

18개월이었던 아이가 지금은 5학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내가 보기에는 읽기도 듣기도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아이는 계속 자기가 영어를 못한다고, 반 친구들에 비해 한참 못한다고 말한다. 그저께 밤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게임을 설명할 때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늘어간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 ‘한국인은 왜 이렇게 영어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1816년 최초의 영어 교육부터 시작해서, 영어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인식되어 왔다. ‘영어의 달인’으로 불리웠던 이승만은 출세 도구로서 영어를 십분 활용했다. 해방정국에는 영어가 가히 공용어의 위치를 점했고(60쪽), 이른바 ‘통역정치’가 열리게 된다.

미군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해방정국에서 가장 강력한 생존 무기는 단연코 영어였다. 영어를 할 수 있는 통역관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해외 유학을 했거나 국내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해방 전에는 친일파, 해방 후에는 친미파 노선을 걸었다. (61-2쪽)

 

1960년 4·19 혁명 이후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 역시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79쪽)이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하에서 수출 전쟁을 치루기 위해 영어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각 회사마다 자체 영어 교육을 실시하는 건 물론 사설 영어 학원들이 학생과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초등학교 대상 영어 교육에 대해서는 강한 국민적 반대 정서가 있었다. (86쪽)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 1986학년도 대학 입학 학력고사부터 영어가 선택에서 필수로 바뀌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영어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되었으며, 1988년 서울 올릭픽이 이러한 추세의 전환점이 되었다. (95쪽)

지금은 바야흐로 세계화시대. 영어 광풍이 세차게 불고 있다. 토익, 토플 시험에 쏟아 붓는 막대한 비용, 조기 유학, 초중학생 대상 캠프형 고액 과외, 영어 마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올인, 영어에 올인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학년 때는 놀아야 돼!“를 외치던 용감한(?) 엄마들도 2학년 학기 초부터는 바쁘게 영어 학원 정보를 교환한다. 어디는 파닉스가 강하더라, 어디는 회화가 강하더라. 어디는 영어유치원을 2년 이상 다닌 아이들이라야 적응할 수 있다더라. 학원 이름도 모르는 나는 그냥 웃지요~ 하고 만다.

마지막에는 이런 영어 광풍이 ‘호러’로 선회한다.

<동아일보> 2002년 2월 5일자에 따르면, “혀와 혀 밑바닥을 연결하는 막(설소대)를 절개하면 혀가 길어져 R과 L 발음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학부모도 있어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Y 병원에는 하루 5건의 수술 신청이 접수되고 있고 실제로 하루 1,2건씩 수술이 이뤄진다는 것”. (149쪽)

 

영어 광풍의 ‘광’은 ‘미칠 광(狂)’이 분명하다.

‘영어 망국론’

“한국에선 영어가 ‘종교’나 다름없죠”

‘복지 예산 깎아 영어 교육’

“영어가 입에 붙은 ‘아륀지’ 정권”

제목만 읽어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그의 결론을 나름 정리해본다.

1. 근본적 개선 방안은 있을 수 없다!

영어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의 반영일 뿐이다. (225쪽)

근본적 개선 방안은 있을 수 없다! 그걸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다시 문제는 내부의 치열한 경쟁이다. 영어는 그런 경쟁의 변별 도구로 동원된 것일 뿐이다. (227쪽)

영어는 한국 사회의 기본 작동 방식의 문제다. (230쪽)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고밀집 한국 사회에서, ‘이웃과의 비교’가 삶의 주된 행동 양식이 되는 한국사회에서, 강한 타인 지향적 인정 욕구를 갖고 있는 한국인 사회(228-9쪽)에서 영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2.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

영어 전쟁과 입시 전쟁은 동전의 양면관계, 아니 한 몸이다. 영어 전쟁은 입시 전쟁과 직결되어 있는 ‘서열 정하기 게임’이며, 그래서 영어 전쟁은 우리의 숙명인 셈이다. 오늘도 영어 전쟁을 비판하고, 개탄과 한숨을 쏟아놓더라도 내 자식만큼은 영어 공부 열심히 시키는 게 대안 아닌 대안으로 만인의 공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는 것은 영어 광풍이 바꾸기 어려운 한국인의 정체성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232쪽)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진보 쪽에서도 ‘대안’이 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먼저 진보파도 이러한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야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할 자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234쪽)

3. SKY를 소수 정예화하자

영어 문제를 대학 입시 문제와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강준만 교수는 ‘SKY 소수 정예화’를 주장한다. 물론 그에 대한 사회 각 계의 반발은 실로, 대단하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가. 대안은 없는 것 같다. 강준만 교수의 ‘대안’만을 ‘대안’ 없이 비판하고 있다.

강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죽어도 SKY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은 어차피 극소수다. 그들의 자율 결정은 존중해주자. SKY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 아니 사수를 하더라도 장한 일이라고 격려해주자. 중요한 건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취하는 태도다. SKY의 독과점 파워가 약해지면서 대학 서열의 유동화가 일어나면 대학에 들어가서도 다시 한 번 경쟁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주목해 보는 게 옳지 않을까? (240쪽)

 

그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또 내가 그의 주장을 조금 거칠게 이어붙인 면도 없지 않다.

다만 내가 그의 주장에 찬성하는 이유는, 어차피 언론과 정치를 포함한 각계의 사회 지도층이 SKY 출신에 의해 독식되고 있다면, SKY의 독과점 파워를 약화시켜, 즉, 그들의 몫 자체를 작게 만들어, 타대학의 사람들도 사회 지도층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19살 결심이, 19살 머리가, 19살 성적이 남은 미래 전부를 결정해버리고 마는 작금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하고도 비교적 실현가능한 방법이라 믿어지기 때문이다.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

하... 책을 다 읽고 보니, 대한민국은 영어 광풍에 몸서리치는데, 나는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리하더라도, 아직까지도 학교 다녀와서 레고 캐릭터를 가지고 상상놀이하고 있는 아롱이와 파닉스를 할 테냐. 그렇다고, 5학년 딸롱이와 문법책을 팔테냐. 에라, 나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가히 다산 정약용에 필적할 만한 놀라운 저술량과 저술 속도로 한국 사회를 거의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계시는 강준만 교수님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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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6-1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SKY의 독과점 파워를 어떻게 하면 약화시킬수 있을까요?

2.대안이 없으면 닥치라는 이야기는 틀렸다고 '김규항'씨가 그러던데. 맞는말 같아요.
대안이 없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더 나빠진다는 뭐...그런..

3.영어는 제겐 제 뱃살과도 같죠.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면서 항상 제게 붙어 저를 무겁게 만드는 아흑......

단발머리 2014-06-17 08:55   좋아요 0 | URL
1. 글쎄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SKY 독과점 파워를 약화시켜야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그 쪽 사람들은 그럴 의지가 별로 없을테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딱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구요.
결국엔 입시 문제인데, 이게 우리 나라에서 제일 풀기 어려운 문제 아닐까 하네요.

2. 저는 강준만 교수님께 하트 뿅뿅이라서요, 한국의 현실을 이렇게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러한 악조건하에서 그래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강준만 교수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안 없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조금 얄밉기는 하지만요. 김규항씨 말도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말해야죠. 그 대안도 별로다~~~^^

3. 저번주부터 운동을 시작했거든요. 뱃살 공략 하기 스트레칭인데요.
워낙 운동을 안 해서, 2번 했는데, 몸이 막 쑤시고 아픈거 있죠.
영어는 뱃살보다 더 무서워요.
방법이...... 없어서..... 아응...

아무개님~~ 그 고양이 잘 치료받고 있지요~~

icaru 2014-06-18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영어! 내 영어가 아니라, 자식 영어 ㅠㅠ)
정말,,, 밤새워 침튀겨 이야기해도 해법이 안 나오는 ㅠㅠ)

다른 건 몰라도,,, 주변에서 지켜보고 제가 겪은 것들을 버무려 낸 작은 결론은,
어릴 적 그러니까 유아와 초등 저학년의 영어 교육은 기회 비용 측면이 있어서, 영어에 시간 투자하거나 참여시킬수록 그림자 부분의 댓가를 치뤄야 하는 거 같아요. 그것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거죠~
그 시기에 잘 놀아야 하는 지점, 재미있는 한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 그밖에 다른 것들...

단발머리 2014-06-19 08:56   좋아요 0 | URL
ㅋㅎㅎ 밤새워 침튀겨 얘기해도 답이 없지요~~

그런데, icaru님 기회 비용과 그림자 부분 이야기는 저도 완전동감이예요.
영어 공부를 안 시킨 것에 대한 변명이 아니구요^^
주위에서 영어 잘 하는데, 한국어 약한 아이들 이야기가 들리더라구요.
영어를 잘 하면 좋겠지만, 한국어를 더 잘해야한다는... ㅋㅎㅎ

순오기 2014-06-1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에 할 말 별로 없어요.
하고 싶은 놈은 하고 하기 싫은 놈은 하지 말자.
영어 아니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자.
아쉬울 땐 잘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해결하자. 등등
이런 정도가 내 수준이니까요.ㅋㅋ

단발머리 2014-06-19 11:05   좋아요 0 | URL
ㅋㅎㅎ
하고 싶은 놈은 하고 하기 싫은 놈은 하지 말자.
영어 아니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자.
아쉬울 땐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해결하자.

하나같이 구슬같이 빛나고, 실제생활에 유용한 말씀들이예요.
등등에 있는 것도 다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