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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읽는 책들을 전공으로 읽어놓고도
그애(세실리아)는 집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나 읽으면서 케임브리지에서 삼 년을 허송세월하고 돌아왔다. 오스틴이나 디킨스, 콘래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서재에, 그것도 전집으로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읽는 책들을 전공으로 읽어놓고도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219쪽)
‘할 수 없다’에 500원. ‘하면 안 된다’에 1000원.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중고등학교 때, 늦어도 대학에 다니면서 읽었던 책들을 나는 대학 다니는 내내 읽지 못 했고, 그에 더하여 읽지 않았다. (‘바빴다’고 말하고 싶으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터, 나는 ‘바빴다’는 수동적 표현보다는 ‘읽지 않았다’는 적극적인 표현을 선택하겠다.) 움베르트 에코의 계산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 정확히는 나흘에 한 권꼴로 ‘고전’을 섭렵한다 해도 사람들이 말하는 고전, 이름난 고전들을 죽기 전까지 다 읽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에 나는 지금이라도, ‘전공’을 대하는 자세로 열심히 오스틴, 디킨스, 콘래드를 읽어볼까 하면서도, 생각해보니 그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게 생각난다. 그래서, 다시 ‘심심풀이’로 읽어볼까 생각해보면,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루이스 보르헤스가 어디 ‘심심풀이’로 읽히던가, 하는데 생각이 미친다. 이도저도 할 수 없다.
책상 위, [속죄]부터 시작한다.
2.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521쪽)
속죄의 ‘장본인’이라 할 만한 브리오니는 자신이 보았던 모든 장면, 그 장면을 보았을 때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 소설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을 좌지우지하는 작가적 위치에 익숙했던 브리오니는 현실에서도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한다. 범인에 대한 확신이 없었음에도, 유일한 비판적 목격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을 얹는다.
소설가에게는 속죄가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은 조금 이해되지만, 글쎄, 브리오니에게도 속죄가 필요하지 않을까.
브리오니, 그녀에게 속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3. 브리오니
13살. 늦둥이 귀여운 막내.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 소녀. 오빠 앞에서 멋진 연극을 선보이고자 사촌 동생들을 닦달하는 그녀. 아직 아이지만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하는 그녀. 브리오니.
연극의 ‘o'도 모르는 철없는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고 연극 연습에 몰두중인 브리오니에게 쌍둥이와 친척 언니 롤라 얼굴의 주근깨는 그야말로 ’치명적‘ 난관이다.
분명한 것은 브리오니처럼 머리칼이 검은색인 아라벨라가 주근깨가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나거나 주근깨가 있는 외국 백작과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일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근깨가 있는 여관 주인에게 다락방을 빌리지도, 주근깨가 있는 왕자님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도, 주근깨가 있는 신자들 앞에서 주근깨가 있는 사제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릴 것 같지도 않았다. (23쪽)
'주근깨 emergency'를 간신히 극복한 브리오니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건 브리오니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이 연극의 여주인공 자리를 롤라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브리오니는 ‘자신’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아라벨라’로 상상하지 않았건만, 노련한 롤라의 말솜씨에 넘어가 여주인공 자리를 롤라에게 빼앗기게 된다. 브리오니는 크게 상심한다.
(엄마의) 드레스가 롤라의 몸에 잘 맞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엄마가 무정하게도 그런 롤라의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 것을 상상하면서 브리오니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집을 뛰쳐나가 산울타리 아래에서 나무 열매를 먹고 살면서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겨울날 새벽 커다란 참나무 둥치 옆에서 맨발로, 아니면 분홍색 리본 끈이 달린 발레화를 신은 채 아름답게 죽어 있는 모습으로 턱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나무꾼에게 발견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30쪽)
여주인공 자리를 빼앗겨 버린 억울함과 고통.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꿈꾸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브리오니는 집을 뛰쳐나가, 맨발 혹은 분홍색 리본 끈이 달린 발레화를 신은 채로 턱수염 덥수룩 나무꾼에게 발견되는 제 모습을 상상한다. 희비극이 엇갈리고, 시공간을 초월한다.
이랬던 브리오니가.
13살 어린이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범죄 현장을 목도하게 되고, 계속되는 오해 속에서 또 다른 범죄 현장의 증인이 되어, 위험하고 음산한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가 된다.
브리오니의 유아적 상상력, 모든 사건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욕망, 로비에 대한 풋사랑. 이 모든 것이 소설 속 비극의 원인 중 한 가지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비극의 가장 원초적 이유는 브리오니의 이런 마음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아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리오니는 지금보다 언니를 더 사랑한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265쪽)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는 언니. 바로 이 순간, 이 세상 가장 큰 비극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언니.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 수 밖에 없는 언니. 그런 언니를 바라보며 브리오니는 ‘지금보다 언니를 더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즉, 언니의 불행이 그녀의 사랑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브리오니는 불행에 빠진 언니를 보며 더 큰 사랑을 느끼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불행에 빠진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에 빠진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각각한 것,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감각한 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세실리아는 왜 불행해졌는가. 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가. 그건 브리오니 때문이다. 브리오니 때문에 그녀가 사랑했던 세실리아는 불행해졌다. 하지만, 불행해진 언니를 보고, 브리오니는 더 큰 사랑을 느낀다. 언니의 불행은 자신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언니의 불행은 브리오니의 사랑을 증폭시킨다.
브리오니가 생각하는 사랑, 그녀가 세실리아에게 느끼는 사랑,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4. 로비
부유한 가정의 세실리아, 브리오니와 남매처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던 로비. 그도 이제는 옥스퍼드대 장학생으로서, 의대 지망생으로서 멋지게 성장했다. 하지만, 더 성숙해지고, 더 당당해진 로비는 괴롭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다. 그는 괴롭다. 그는 고통 속에 있다.
물론 세실리아는 그와 말을 나누려고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원했다. 그것을 가져야 했다. 설사 더 고통스러워진다 해도. (119쪽)
세실리아와 만나는 것을 상상하며, 그녀의 차가운 반응을 예상하며, 그녀와 말을 나눌 수도 없다는 걸 생각하며, 로비는 고통스럽다. 로비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았다. 미안하다, 로비.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원했다. 그것을 가져야 했다. 설사 더 고통스러워진다해도. (119쪽)
로비의 얼굴을 대면한 세실리아는 그를 문밖으로 내쫓지 않는다. 그녀는 서재로 들어간다.
그녀는 램프 옆을 떠나 서재의 책꽂이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도 방 안으로 더 걸어들어갔다. 그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191쪽)
더 큰 고통을 맞닥뜨리기 위해 세실리아를 찾아간 로비는 이제, 서재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간다. ‘그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나도 없다. 그는 멀어지는 그녀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그녀 옆에 있을 뿐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5. 세실리아
로비와 세실리아의 서재 장면은 정말 ‘두고 두고 회자될만한 명장면‘이라는 [빨간책방] 이동진씨의 말에 김중혁 작가는 입을 맞춘 듯, 정말 그렇다고 연신 동의했다. ’나도 이 장면이 좋았어요.‘라고 말해도 되나, 내심 부끄러워 하면서도,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아이패드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도 그 장면이 좋았어요."
그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두 사이에 놓여 있던 미묘한 무언가가 사라지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오랜 친구사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장벽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예전의 자기들 모습이 신경 쓰였다. 최근 몇 년 동안 둘 사이가 어색해지고 심지어 불편해지기까지 했지만, 어린 시절 친구라는 사실은 오랜 습관처럼 늘 따라다녔기에, 그 장벽을 부수고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194쪽)
남매같이 지내던 두 사람이 서로를 불편하게 여긴다.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던 두 사람. 친구에서 이제 막 연인이 되려는 로비와 세실리아. 자신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괴로운지 알지 못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한다.
“네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잖아. 무슨 일인가 일어났어, 그렇지 않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바로 코앞에 뭔지 모를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야. 그게 무엇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내 앞에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어.”
“넌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거야. 그렇다고 말해줘.” (193쪽)
이런 두 사람의 관계에서 결정적 한 방은 세실리아의 것이다. 세실리아에게 키스한 것은 로비이지만, 로비로 하여금 그녀에게 키스하게 한 것은 세실리아다. 결정적 한 걸음은 세실리아의 발걸음이다. 그녀는 용감하다.
묘하게 비슷한 장면이 생각난다. [목사의 딸들]에서 루이자와 알프레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내가 가길 원하세요?” 그녀는 반복했다.
“왜요?” 그도 다시 물었다.
“난 당신과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요.” 허파가 불로 가득 차 숨이 막힌 듯한 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그는 혼돈의 고통 속에 자기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마치 허공에서 멈춘 듯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 그들의 영혼이 잠시 동안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129쪽)
이 장면에서도 결정적 한 방은 루이자의 몫이다. 물론 사회적 신분 차이에 의한 알프레드의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솔직했다는 점에서 역시 그녀의 한 걸음이 결정적이다. 그녀는 용감하다.
6. 추천과 강제 사이
예전에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은 거의 실시간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는데, 프로그램에 나와서 ‘책을 읽자’고 침튀기며 이야기하는 교수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매체의 글을 통해 ‘책은 그렇게 읽혀서는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강제하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나도 ‘강제하는 책읽기’에는 반대하지만, 실제 딸롱이에게 여러 책들을 추천하기는 한다. 추천과 강제 사이는 참 미묘한데, “한 번 읽어봐~“하고 말했을 때는, ”싫어, 재미없을 것 같아.“라는 답변이 나올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2번, 3번 정도 추천할 수는 있지만, 억지로 읽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책 제목’이라도 익숙하게 해서, 다른 통로, 이를테면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그 책을 추천했을 때, ”어, 나 저 책 본 것 같은데...“하며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책과 책의 제목, 그리고 책표지를 ‘노출’시키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나는 [빨간책방]을 좋아하고, 남자들의 수다를 좋아하지만, 추천한 책 전부를 읽지는 않는다. 재미가 없어보이면 방송만 듣고 읽은 걸로 퉁친다. 그런데, 이 책은 워낙 칭찬과 명성이 자자해 도저히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알라딘에서 발빠르게 50% 세일할 때까지만 해도 읽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계속해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50% 세일할 때 구입하지 않은 것이, 내내 아쉬웠다.
그래서, 저번주의 추천책 [다섯째아이]는 50% 세일을 시작하자마자 과감하게 결제버튼을 눌렀다. 이번의 추천도 즐거운 책읽기로 이어질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