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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풋내기들」
항상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심장 전문의 허브는 자신의 두 번째 아내 테리의 첫 번째 남편에 대해 이야기한다. 허브는 미치광이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테리는 그 미치광이의 사랑도 분명히 사랑이라고 말한다. 설사 그것이 미친 사랑이라 해도 말이다. 너무나 사랑해 자신의 사랑을 폭력으로 강제하는 사랑도, 사랑이 떠난 후에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 그 미치광이의 사랑도 사랑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단편 속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문장을 보면 말이다.
로라는 서른다섯으로 나보다 세 살 어리다. 서로 사랑한다는 점 외에도,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같이 있는 게 즐겁다. 로라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379쪽)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점 외에 서로 좋아하고 같이 있는 게 즐거운 사이, 그런 사랑. 사랑하기만 하는 사랑 역시 가능은 하겠지만 그런 사랑이 오래갈 수 있을지, 혹 그 사랑이 끝난 뒤에라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이 특별한 단편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은, 언제나 사랑타령인 허브의 이런 질문이 아닌가 한다.
여하간 난 한때 전처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겼고 아이도 낳았어. 근데 이젠 꼴도 보기 싫거든, 정말로. 어떻게 생각해? 그 사랑은 어떻게 된 걸까? 그냥 지워지기라도 한 걸까,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처럼? 그 사랑이 어떻게 된 건지 난 그게 궁금해. 누가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384쪽)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지구상에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지나쳐간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 사람, 내 눈 앞의 한 사람, 바로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거다. 그 사람이 특별히 잘생겨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특별히 잘나서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거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거다.
김훈은 이렇게 썼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 있는 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
(출처 : 로쟈의 저공비행, <문학동네 산문집을 떠올리다>, 2013년 11월 28일)
위의 글은 ‘로쟈님’의 서재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 번 읽은 후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그리워한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다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 사랑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허브는 말한다. 내가 전처를 사랑했던 건 정말 확실한데, 그런데 그 사랑은 어떻게 된 걸까?
우리 중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 이런 얘기 해서 미안 –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에게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상대는, 남은 배우자는 얼마 동안은 애도하겠지만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고 조만간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될 테고, 그럼 이 사랑이라는 것도 – 맙소사,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어? – 그것도 다 그저 추억으로 남는다는 거야. 추억조차 안 될지도 몰라. 어쩌면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도 모르지. (385쪽)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에 사랑이 더 소중한 건지도 모르겠다.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물었지만, 아니다. 그건 그가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사랑은 변한다. 시작되고 끝난다. 활짝 피고 그리고는 진다. 영원한 사랑이란 건, 불멸의 존재가 아닌 인간에게는 여하튼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사랑이 뭔지 얼마나 알겠어? 허브가 말했다. ”뭐 그건 내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내가 보기에 우린 사랑에 순전히 풋내기들이야.“ (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