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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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머리를 띵- 때리는 소설을 만났다. 너무 뒤늦게 읽긴 했지만, 변명하자면 이 책이 발간되고 화제가 되었을 때 그저 작가의 특수한 위치에 기댄 책이려니 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이민2세대인 수지 박. 그녀의 부모님은 5년 전 과일가게를 운영하다가 총에 맞아 살해당했고 그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하나뿐인 언니 그레이스와도 연락이 끊긴 그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통역사라는 건조한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어느 미국인 유부남의 애인 노릇을 하며. 그녀는 어떤 계기로 부모의 죽음을 본의 아니게 추적하게 된다.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면서도 상당히 문학적 수준이 높았다. 문장은 짧고 단단했다. 한국 이민자들의 삶이 손에 잡히듯 그려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기다려진다.

중고로 구입했는데 겉의 표지를 벗기니 검은 천으로 쌓인 단단한 속 장정이 나왔다. 아주 멋졌다. 정말 책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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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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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년은 1984년의 약간 다른 지점에 놓여 있다. 달이 두 개인 곳, 리틀 피플들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려 하는 곳. 거기에 덴고와 아오마메가, 쓸쓸한 놀이터에서 두 개의 달을 바라보고 있다. 10살 때 손을 잡은 이후로 한번도 조우하지 못한 두 사람. 소설 속에서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된다. 얼마 전 읽은 <좌안>, <우안>을 생각나게 하는 구성이다. 

하루키는 예전부터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데 능숙했다. 아주 현실적인 캔버스 위에 양 사나이라든지 고양이 킬러라든지 하는 기묘한 인물들이 현실적인 인물들의 사고를 진전시키거나 방해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소설에도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라는 가상의 존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리틀 피플을 받아들이는 리시버, 전달하는 퍼시버라는 개념도 낯설다. 이러한 요소는 하루키의 작품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어떤 문장과 묘사들은 너무 훌륭해서 베껴쓰고 싶을 정도다. 귀찮아서 관뒀지만. 특히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를 눈에 보이는 다른 것으로 쉽게 대치하는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자연스럽고도 기발한 묘사의 대가다.

'소설 리라이팅'이라는 소재도 흥미롭다. 내용이나 주제는 너무 우수한데 문장력이 엉망인 소설을 전문작가가 고쳐 쓴다,라. 데뷔 당시 형편없는 문장력으로 평단의 논란이 있었던 배수아가 생각난다. 하지만 난 그녀의 엉성한, 보기 드문 문장이 좋았다. 그게 그 소설의 매력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리라이팅이 유효한가는 고찰할 만한 문제다.

문학사상사 책 치고는 표지나, 내지, 장정, 제본이 꽤 좋은 퀄리티였다. 특히 겉표지를 벗겨냈을 때의 흰 표지의 질감이 무척 아름다웠다. 책의 흡입력은 역시 대단해서 잠들기 전에 300페이지씩 읽기도 했다. 아쉬웠던 건 후반부와 결말이었다. 소설이 2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는 "이렇게 끝나버리는 거야? 3권까지는 나왔어야 될 책인데..."라는 황당한 생각도 들었다. 

뭐 대체로 재미있었고 아름다웠고 유익했던 작품이다. 하루키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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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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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를 좋아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비롯해서 몇 권은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화제가 되는 작품을 피해가기가 때로는 힘들기 때문. 이 책은 무진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부분에 주목하는 작가다. 그것도 능력이겠지.

문장이나 서사는 상당히 전통적인 방식에 기대고 있다. <무진기행>의 앞부분을 연상케하는 무진이라는 도시에 대한 묘사도 그러하고. 소설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힌다. 워낙 소재가 민감해서 아이들에 대한 동정이 절로 생겨나기도 하고. 자애학원의 임시교사로 방관자의 입장이던 주인공이 점점 사건에 몰두해가며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도 공감이 간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교장을 비롯한 악당들이 평면적으로 '너무 나쁘다'는 점은 좀 짜증이 나지만. 

소재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꼼꼼히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꽤 존경스러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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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펭귄클래식 45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이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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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은 영화나 연극, 애니메이션 등으로 여러 번 제작된 작품이다. 나 또한 책으로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담인 줄로만 생각했던 이 소설은 읽어보니, 생각보다 꽤 문제작이었다. 좋은 의미로! 

소설은 인간소녀 웬디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웬디와 두 남동생은 어느날 밤, 창문으로 날아들어온 피터팬과 조우하고 그를 따라 모험의 세계로 떠난다. 피터팬의 세계는 귀족 출신 해적 선장 후크와 꼬마 요정 팅커벨, 인디언 부족들, 시계를 삼킨 악어, 피터팬을 추종하는 인간꼬마들의 세계. 웬디가 이전에 살았던 엄마, 아빠, 평화로운 집의 심심한 세계와 달리 늘 악의와 위협과 귀찮은 일거리들이 널려 있는 곳 '네버랜드'는 흔히 이야기하는 환상적인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웬디는 그 네버랜드에서 꼬마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하면서 갑자기 성장한다. 그러한 과정이 모험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피터팬의 캐릭터가 제법 심술궂고 철없고 제멋대로인데 웬디를 이를 포근하게 감싸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 피터팬이 엄마가 된 웬디를 찾아오는- 아, 거기서 조금 아주 조금 슬퍼졌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내용은 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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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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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소공녀>는 어릴 때 동화로 읽고 처음 접한다. 부잣집 소녀가 갑자기 가난뱅이로 전락해 기숙학교에서 갖은 구박을 받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갑부가 된다는 이야기의 틀만 기억하고 있었다. 

주인공 소녀를 묘사하는 방식이, 소설이라서인지 무조건 아름답고 훈훈하지는 않다. 어찌 보면 지독히 자존심 강하고 고집센 사라- 이 아이는 아무리 헐벗고 초라해져도 자신의 공간에서는 환상을 불어넣으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황당한 소녀이기도 하다. 이렇듯 동화와 달리 소설에서의 사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라 흥미를 더해준다. 무척 배고픈 상황에서도 어느 빵집에서 공짜로 얻은 빵 5개 중 4개를 거지소녀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1개로 만족하는 모습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소녀들의 세계에서는 항상 리더와 추종자와 따돌림이 존재한다. 그러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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