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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한자와나오키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한자와나오키 3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충격이었다. 사이다 같은 책 속 대사를 큰소리로 읽으면 느낌 그 통쾌함이란!! 그래서 '이케이도 준'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금융경제를 다룬 소설을 흠뻑 빠져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경제 소설의 재미를 알려준 이케이도 준은 관심 작가가 되었고 얼마 후 이케이도 준의 신간 <일곱 개의 회의>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일순위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닉의 자회사 도쿄덴코. 어느 날 직장 내 괴롭힘 고발에 대한 안건으로 위원회가 열리고 안건은 인정이 되어 임원회에서 결정이 났다. 그 안건은 사카도와 핫카쿠. 실적 좋았던 최연소 영업 1부 과장 사카도는 인사부로 대기발령이 결정되었다.
핫카쿠의 무기력한 회사원의 전형 같은 사람인 만년 계장이며 나이는 쉰 살이다. 회의 때마다 졸고 있는 일이 다반사라 사내에서는 잠귀신 핫카쿠라고 불린다. 영업이 업무인 그는 열심히 일하기보다 시간을 때운다는 느낌이 들어 매일 과장(사카도)에게 깨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조금은 심하기는 했지만 핫카쿠가 사가도 과장을 고발했다니..
영업 1부 과장의 빈자리는 하라시마가 맡게 되었다. 언제나 이인자였던 하라시마는 이번의 승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인수인계를 받고 함께 할 직원들과 개인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핫카쿠와 대면한다. 사카도 과장을 고발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다 회사가 당면한 충격적인 사건을 알게되는데.. 그 뒷수습에 하라시마가 투입된 것이었다. 몇 명만 알고 있는 진실이 공개되는 날에는 모든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일곱 개의 회의>에서 핫카쿠는 무능한 만년 계장, 하라시마는 성실하지만 만년이등자리에서 오르지 못했던 캐릭터로 등장한다. 핫카쿠의 대사에서 직장인들의 비애. 부정을 알고도 못 본척해야 하는 자신에 대한 원망. 체념 등이 보였다. 회사에서 사원은 필요한 인재가 아니라 그저 소모품으로 여긴다는 사카도와 사노의 대사에서도 현실적인 내용이 노출되고 있다. 한때는 유능했던 핫카쿠가 열정이 식어버렸던 사건을 바로 잡지 못해 동일한 부정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그는 바로잡기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메가급 폭탄을 터뜨린다. 그럼에도 회사의 수습은 핫카쿠가 바라던 방향이 아니었다. 부정의 시초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후반부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하청업체를 후려쳐서 원가절감으로 이익을 보는 고객사의 추잡함도 어쩔 수 없는 압박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보았다.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올라가는 이의 최후를 소설에서 읽을 수 있었다.
각 챕터별로 한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응원해주고 싶었던 유이의 이야기가 담긴 '3화 결혼 퇴사'부분을 보며 에이타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유이를 힘들게 했던 닛타의 추락을 보며 아주 속이 개운했다. 사내 정치가 사노, 부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카도, 가짜 사자 기타가와의 속 사정들을 책에서 만나보자.
♣ 책 속 글귀
"나는 만년 계장에 출셋길이 막힌 월급쟁이야. 하지만 나는 자유롭게 살아왔어. 출세라는 인센티브를 외면해버리면 이렇게 편안한 장사도 없지." / 46
"회사에 필요한 인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와요. 조직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 41
"이득을 보는 건 늘 도쿄겐덴뿐이야. 우리 쪽 원가는 철저히 후려쳐서 있을까 말까 한 이익까지 뽑아가잖아. 이런 건 올바른 비즈니스의 모습이 아냐. 잘못됐어." / 76
사카도는 아무리 사내 평가가 높아져도 겸손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을 것이다. 늘 밝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좋았다. 자신의 업무에는 엄격했지만 그 엄격함을 타인에게 들이대는 경우는 없었다. 그 점에서 사카도는 기타가와보다 인간적으로 위였다. / 348
고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행위, 고객을 배신하는 행위는 결국 자기 목을 조르게 된다. 그 점을 알았기에 고객에게 무리한 판매를 하지 않았다. 고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일해왔다. 이것이 일에 대한 무라니시의 일관적인 생각이었다. /369
그래서 자신의 발밑에서 일어난 부정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거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끝까지 노력한다. 나는 똑똑하지도 않거니와 특별하지도 않다... 사카도가 지향한 것은 대립하던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한 삶이었다. / 433
겉치레의 번영인가. 진실한 청빈인가. 강도 조작을 눈치챘을 때 핫카쿠는 후자를 선택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떤 길에도 미래를 열어줄 문은 분명 있을 테니까. / 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