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식인의 길, 육두피아 - 한국의 인텔리겐치아, 육두품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정영훈 지음 / 팬덤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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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이들을 저자는 육두품이라고 한다.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한계. 

결국 신분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까진 올라가지만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어떤 한계를 지닌 존재, 그것이 육두품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대와 끊임없이 불화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어떤 이는 시대를 변혁하려고 하고, 어떤 이는 시대에 영합하려고 하고, 어떤 이는 시대에서 벗어나려 하기도 한다. 이들을 모두 육두품이라 칭하지만, 저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육두품은 아무래도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육두품인 듯하다. 그리고 육두품들의 세상인 육두피아에서 그가 원하는 육두품들은 이 세 종류의 육두퓸을 모두 말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육두피아란 무엇일까? 

처음에 이런 육두품으로 세 명을 불러내고 있다.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이들을 삼최라고 하고, 이들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온 신라 말기의 지식인. 서로 삶이 달라 최치원은 은둔생활을, 최승우는 견훤의 편에, 최언위는 왕건의 편에 선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을 통해 육두품은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때의 육두품과 21세기의 육두품에 대하여. 

여기서 한 가지 정말로 우리는 육두품이 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두품이라는 존재는 어떤 목표를 뚜렷이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든 자신의 일이 사회지도층의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꼭 상위 몇 %가 되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두가 육두품이 되는 사회를 육두피아라고 했는데, 이게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육두피아라, 모두가 지식인이 되는 사회라는 건가? 모두가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로 대우받는 사회라른 뜻인가? 이 개념에 대한 실질적 내용은 독자가 채워야 할 몫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음에는 육두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몽주, 정도전, 정약용을 불러내어 조금씩 논의를 구체화해나간다. 이들의 논의에서 21세기의 육두품은 '지식과 자본을 많이 가진, 그러면서도 풍부한 정신 세계를 향유하는 자'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지식과 자본을 많이 가진이란 말은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룬 사회, 제도를 구현해야 한다는 말이고, 풍부한 정신세계란 나만이 아닌, 인간만이 아닌, 자연과 우주와 인간을 아우를 수 있는 정신세계를 지닌 인간이란 뜻이리라. 결국 육두피아는 모든 국민이 경제적인 고민이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제도가 갖춰진 사회에서 풍부한 영성을 지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육두품이라고 다같은 육두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육두피아에 살 육두품은 누구와 같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역시 독자가 채워야 할 몫일밖에. 

그 다음에 또 불러내는 세 명은 이익, 신채호, 박은식이다. 이들을 불러내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의 정통성에 대해,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앞에서 정리한 내용에다 실현의 과정에 대한, 방법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면 육두피아란 정통성과 정의가 넘치는 사회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머스 모어, 사마천, 정도전을 불러내 육두피아에 대해서 더 자세한 논의를 하려 한다. 이들이 꿈꾸었던 세상과 지금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구, 조만식, 조봉암을 불러내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적어도 육두피아를 꿈꾼다면 남북문제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불러내 남북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통일을 위한 노력을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통일논의는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 자신도 이 저자의 논의에 덧붙여 우리들의 논의를 첨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이 남 얘기가 아닌 우리 얘기가 되고, 어느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 된다. 이렇게 되어야지만 충격이 덜 할 테니까. 

끝부분은 언뜻 보면 사족같지만...저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육도사를 불러내 함으로써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세 명씩(마지막 장은 빼고) 불러내 이야기를 해서, 어느 한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이들의 논의가 치밀하게 전개되지 못한 관계로 이들의 대화에 숨어있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많은 것이 나타나 있지 않기에, 대화를 통해서, 또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작가가 꿈꾸는 육두피아가 어떤 것인지, 내가 꿈꾸는 육두피아는 어떤 것인지 덧붙여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을 죽 따라가는 것이 아닌, 그건 아닌데, 아냐, 여기에 이런 내용을 더 붙이는 훨씬 좋을 거야 하면서 읽은 맛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즐거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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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미래 논쟁집 2
이창곤 쓰고 엮음, 신광영 감수 / 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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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코퍼스웨이트가 쓴 "핸드메이드 라이프"라는 책을 참 감명깊게 읽었다. 아니 감명깊었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보다는 행복한 삶이란, 진정한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며 읽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이 책에서 디자인이란 말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술가들이 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완벽한 모양을 얻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를 디자인이라고 하고, 이 디자인은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작용한다고 한다. 그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미래의 세상을 디자인 하는 일에 참여할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게 될 때, 그리하여 자신들의 노력이 정말 환영받고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 누구나 참여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훌륭한 디자인은 연장이나 그릇이나 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식, 친구,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을 고르는 일 등에 다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훌륭한 디자인을 가족, 공동체, 학교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생각을 더 밀고 나가 그는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나는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나라를 디자인하는데 우리도 참여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나라가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삶에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우리 삶을 규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정치인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정책을 펴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라를 디자인하는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나라를 디자인하는데 참여하는 국가, 그런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정치인들도, 정당들도 나름대로 복지국가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이를 나라를 디자인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 논의에 참여하지 못 하더라도 내 생각과 맞는 정책을 어느 정당이 내놓는지를 살피고, 그 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나라를 디자인하는데 참여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리 속에서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정당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내놓고 집권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싿. 

복지국가를 아파트 단지 건설로 치환을 하고 생각을 해 보면 각 정당들이 내놓는 복지국가의 모습은 아파트 건설현장에 있는 조감도라 할 수 있다. 조감도, 얼마나 멋있게 그려져 있는가. 완공된 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게 잘 나타나 있다. 이 조감도를 보면 이 아파트가 어떻게 건설될지를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그래서 첫째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진보정당들은(우선은 진보정당으로 한정한다. 복지국가 담론이 진보 진영에서 먼저 시작했고, 보수 쪽의 복지국가 담론보다는 진보 진영의 복지국가 담론이 더 내 맘에 들기 때문이고, 이 책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지국가에 대한 조감도를 잘 그려낼 필요가 있다. 많은 국민들은 세세한 정강들을 살피기 보다는 우선 한 눈에 들어오는 정책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감도만으로 아파트가 건설될 수 없다. 조감도는 완성된 모습을 보여줄 뿐 어떻게 완성이 될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조감도를 실현시킬 구체적인 설계도가 필요하다. 이 설계도가 없으면 건설은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진보 진영에서는 둘째, 조감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설계도를 작성해야 한다. 이 설계도는 의료, 교육, 노동, 육아, 노령사회, 여성, 장애인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한 결과물이 구체적인 정책들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정책들은 과거 정부의 복지정책들을 참조로, 또 다른 나라의 경우를 참조로 해서 만들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면에서 스웨덴의 예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의 복지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이 정책들의 공과를 철저히 검증해서 현재에 맞는 설계도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설계도에 따라 이제는 내부 인테리어도 필요하다. 인테리어를 할 때도 역시 계획이 필요한데, 생필품, 사치품의 구분이 필요하다. 복지국가에서는 생필품에 해당하는 것들은 국가가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필품이고 사치품인가? 여기서 진보 진영의 세 번째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인테리어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그것은 많은 논의와 논쟁을 거쳐서 결정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확정하는 것, 이 것이 두 번째 설계도를 더욱 더 정치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제 조감도-설계도-인테리어 고민까지 했으면 계획은 다 섰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면 실행이 안 된다. 누가, 언제, 어떻게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행할 주체가 서야 한다. 건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시공사가 있고, 감리사가 있고, 시공사는 언제까지, 누구와 어떻게 공사를 하는 등등의 일들을 결정하지 않는가. 복지 국가를 추구하는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네 번째로는 누가 ,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진보 정당들의 대연합을 통해서,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짜피 지금의 현실에서는 국가는 정당들의 정책들을 통해서 운영이 되므로, 주체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어떤 정당이냐, 진보 정당이어야 한다. 어떤 진보 정당? 여기서 이 책은 큰 틀에서 같은 목표를 지닌 정당들이 진보 대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보수 정당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은 세수의 투명성, 세수 조정, 부패 척결, 공공성의 증대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노동자, 농민들의 단체, 시민 단체들의 지지도 끌어내야 한다.  

이런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아파트 건설에서도 홍보가 중요하듯이 진보 정당들도 홍보가 중요하다. 자신들의 정책을 아무리 잘 세웠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홍보를 잘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서, 기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책이 국민들의 행복을 이끌어 준다는 홍보를 해야 하고, 여론을 형성해 내야 한다. 이러한 홍보를 통해서 많은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이 지지가 나중에 정책을 실현하는데 든든한 힘으로 작용할 테니까.

이 책 제목이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이지만, 내용은 어떤 복지국가라기 보다는 복지국가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 우리나라의 사례,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복지국가론 비교를 통해 맨 마지막 장의 제목이 한국형 복지국가를 향하여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기자가 자신의 생각과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정리하고, 또 직접 인용하기도 해서,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조감도-설계도-인테리어-홍보의 과정이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이 책은 시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조감도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설계도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이 책을 읽은 뒤 이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참고 서적들을 참조해야겠지.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우리도 복지국가를 디자인하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데 있다. 아니 참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데 있다. 정치는 정치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는 활동이다. 참여하기 위해서 알아야 한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내가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이 책을 읽으며 밑그림을 한 번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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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인터뷰 특강 시리즈 7
공지영 외 지음, 김용민 사회 / 한겨레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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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쁨에게 

얼마 전에 신문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성인들 한 해 평균 독서량에 대한 기사였지. 난 10권이 조금 넘는다고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8권이라는 기사도 있고, 16.6권이라는 기사도 있더구나. 어떤 기준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통계가 달라지겠지만, 많은 쪽으로 잡아도 한 해에 우리나라 성인들이 읽는 책은 17권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지. 여기에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 중 3.5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는데... 

한 해 17권이면 한 달에 1.5권도 채 안 된다는 얘기거든. 이것을 하루로 환산해 보면 책 한 권을 대략 300쪽이라고 하고, 한 달을 30일로 잡으면 하루에 15쪽을 읽은 셈이 되지. 하루에 15쪽이라, 보통 한 쪽을 읽는데 1분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하루에 15분 정도 책을 읽은 셈이 돼. 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데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을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령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 여자 어른들 경우를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직장에서 퇴근해서는 제2의 직장생활이라는 각종 회식이 기다리고 있고, 회식을 벗어난다면 온갖 승진시험에 책을 읽을 겨를이 없을 거야. 출근 시간에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으면 된다고? 어림없는 소리지. 그건 삶에 여유가 있었을 때나 가능한 소리지. 하루 종일, 사실 법에는 8시간 노동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어른들 중에 8시간 노동하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지. 특히 생산직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 시간 내기 힘들어. 힘들게 노동하고 와서 얼마 쉬지 못 하고 다음날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운이 좋아 앉게 된다면 짧은 시간 잠을 청하게 되지. 아니 잠을 청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이 감기게 돼. 서 있을 땐, 세상에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어떤지 출근시간에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거야. 책을 읽을 공간이 나지 않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간신히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든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가 없어.   

그럼 집에서 일을 하는 전업주부는? 역시 마찬가지지. 아침부터 남편, 아이들 챙기고, 집안 청소하고 또다시 식사 준비하고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게 되지. 잠시 남는 시간, 곤한 몸을 쉬게 하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참 배부른 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지.  

이렇듯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개인이 게을러서도, 책 읽기를 싫어해서도가 아니라,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높은 곳으로만 남들을 밟으면서 기어오르는 애벌레들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일등주의라는 괴물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 일등주의가 승자독식주의로 가면서 1등이 아닌 사람은 살아남지 못 한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지. 그래서 결코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이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미리 고민했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말을 따온 제목처럼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냈지. 강연 내용과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읽기에도 편하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여섯 명이 강의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는데, 한 명이 빠지고, 다섯 명의 이야기만이 실려있지. 하긴 뭐 꼭 여섯 명이 모두 책에 실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책 읽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어. 

노회찬 진보신당 전대표부터 시작하여, 비클라움이라는 예스맨프로젝트를 실시했던 사람, 소설가 공지영, 일본사람 마쓰모토 하지메, 그리고 김규항까지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자신만이 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 

노회찬 부분은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말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면서 읽었어. 진보가 나름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는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거부하고,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10만 명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중요하지. 우리나라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 동아리로 나누어져 있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지만, 최근에는 진보대통합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진보는 힘없는 사람들, 하위계층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목표의 공통점 밑에 어떻게 그 사회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대동소이이고, 그러니 합치되 자신들의 색채를 잃지 않아야 하니 화이부동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진보들은 이 두 단어를 명심하고 자신들의 정책들을 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우리는 일등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노회찬과 관련해서는 조국,오연호의 "진보집권 플랜"이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 그리고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적인 학자 글이나, 톨스토이, 간디,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들의 책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예스맨 프로젝트의 비클바움의 글을 읽으면서는 외국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명의보정(Identity Correction)이라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냥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한 행동을 우리 사회에도 응용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말야. 이게 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견해낸 행동이 아닌 것이, 일본에서는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풍자니 해학이니 하는 행동들이 있었으니, 현재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만 누가 언제 어떻게 행동에 돌입하느냐가 중요하겠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거든.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의 행동을 그 말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총연맹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들 단체의 명칭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야. 나는 실행도 못 해보고, 머리 속에서만 생각해 보고 낄낄거렸지만 혹 알아, 누군가가 나타날지. 

공지영의 글을 읽으면서는 소설의 운명에 작가의 운명을 걸고 있는 그녀에게서 존경스러움을 느꼈고, 그녀의 말처럼 소설이 대중에게 영합하는 장르라면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즉 가치가 개입돼 있는 대중에의 영합이라면 참 훌륭한 작가이지 않을까 싶었고, 그녀가 쓴 소설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공지영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들의 삶을 드러내고 그들의 삶에서 우리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게 하는 작가 공지영을 말이야. 그녀가 한 말 중에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신의 생각, 말, 내면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 너무도 당연한 말같지만 다시 한 번 마음에 들었지. 그래 우리가 1등만을 바라보고 살 때 나타나는 내 얼굴과, 1등이 아닌 뒤에 있는, 밑에 있는 존재들에 애정을 갖고 함께 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내 얼굴은 천양지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할까. 앞으로도 그녀가 많이 팔리는 소설(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까)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 

말이 점점 길어지네. 짧게 쓰려고 했는데 말야. 이번에 마쓰모토 하지메. 이 사람이 하는 일을 우리 말로 어떻게 옮겨야 하나? 빈민운동, 가난뱅이들의 몸짓... 참 뭐라 하기 힘드네. 하지만 그가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닌 뒤쳐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뭐라 이름붙이든 말야. 그는 운동을 진지하게 목숨걸고 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한다고 해. 운동하는 방식이 변한 거지.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면서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이건 내 즐거운 삶이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지. 우리나라 80년대까지 운동권은 희생이라는 개념을 머리속에 달고 살았거든. 그래서 변절(?)한 사람이 많았는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은 그런 희생이란 개념이 없어. 그게 좋아. 그냥 자기 삶인 거야. 즐거운, 내가 좋아서 하는. 우리나라도 이런 가난뱅이들의 역습이 있기도 하지.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서 예술 공간을 마련한다든지, 한 집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주거운동을 한다든지 말야. 이런 운동은 남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여유에서 온다고 생각해. 결국 1등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죽어라 달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감과 여유가 나올 수가 없지. 이런 공감과 여유는 행복을 옆으로 옆으로 전파하는 특징이 있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자세지. 

이제 마지막 김규항이네. 이 사람, 사람들은 보통 B급 좌파라고 불러. 본인 말에도 나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지식인(이 말이 뭐하다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그가 어느 정도 왼쪽에 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냐를 보면 되고, 그의 말이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면 되지. 난 개인적으로 이 사람, 참 좋아하는데, 이 사람 글을 읽을 때마다 불편해져. 나는 아직도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못 하고 있거든. 그래서 많이 불편해. 이 사람 글을 읽으면 자신의 추악함을 비춰주는 거울을 앞에 놓은 기분이야. 들여다 보았을 때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얼굴이 정면으로 드러나는 그런 거울. 그래도 가끔은 이 사람 책을 읽어. 불편하지만 반성할 수 있으니까. 조금은 나 자신이 변해갈 수 있으니까. 김규항은 이 책에서는 교육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 하지. 결국은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거고,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를 운영해. 희망을 어린이에게서 발견하고, 우리 어린이들이 잘 자라서 이 사회를 이끌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다고 생각해. 이렇게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바꾸어가려는 모습을 여러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냥 독일 교육에 대해 쓴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든지,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을 읽든지,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을 읽든지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결국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1등이라는 한 방향만 보고 달려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정리될 수 있겠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내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짓밟아서는 안 되는 사회겠지. 이런 사회에서도 과연 성인들이 책을 잘 안 읽을까. 아마 그러지 않을걸. 오히려 많은 책들을 읽고 많이들 토론하고 그러겠지. 그래서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 나의 걸음을 걷되,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책이지. 

한 번 읽어 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실천하면서. 

추신 :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박의상이란 사람이 쓴 일등육이란 시를 봐. 우린 그런 일등육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치!

일등육을 남긴 소를  / 나는 안다 / 그는 틀림없이 / 1등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것이다 / 
그리고 좋은 / 1등 목장에서 / 1등 축우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 1등 사료를 먹고 /
빈둥거리며 잘 살았을 것이다 /
그러다가 / 남들보다 빨리 / 120킬로가 되자 / 재깍 / 도축장에 끌려와 / 살이 찢기고 뼈가 쪼개졌다 / 그때 / 1등소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 1등육이다! 

              - 박의상 '일등육'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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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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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라고 해서 교육에 관한 글들만 실리지는 않았다. 교육 분야로 분류를 할까 사회 분야로 분류를 할까 망설이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교육은 사회의 한 분야이고, 하워드 진이 역사학자라는 생각을 하면 이 책은 단지 미국의 교육문제를 다룬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단지 미국만의 문제일까.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는 아닐텐데, 우리가 미국의 교육이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하고, 미국 사회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는 않을 테니까. 

대담 글도 있고, 어떤 매체에 기고한 글도 있고, 다른 책에 실렸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실은 글도 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며 계속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됐다. 비교만이 아니라 그렇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는 학교에서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쳐 뛰어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자본이 바라는 학생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거기서 희망을 찾는다. 즉 학교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강요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지배층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을 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마치 그람시가 말한 지식인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전통적인 지식인도 있고, 진보적인 유기적인 지식인도 존재한다는 설명과 유사하다. 그렇담 학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역사를 가르치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민중들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이다. 그 예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에 불과하는 사실을, 즉 역사란 사실들의 집함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고, 그런 태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국 언론들의 문제점, 연방수사국의 문제점 등을 말하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들이나 기관들이 얼마나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지. 신문들을 보라. 일방적으로 어떤 한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로지 그 집단의 이념만을 주장하고 있어,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처럼 객관성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그들이 지배층이 아닌 민중들의 이익을 보살피게 하려면 그들의 정체를 꾸준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우리나라도 최근에 정치인 사찰부터 민간인 사찰까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있지 않았던가. 그 기관들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도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갖춰야만 할 이유가 또 한가기 생기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을 보라. 세상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매체에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오로지 나오는 내용은 잘사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이나, 소비행태, 그냥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시간때우기식의 내용만 나오지 않는가. 기껏 가난한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구조적 문제를 집단의 힘으로, 단결해서 해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시혜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스로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학교 마저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오직 대학이라는 공간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때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정확한 용어의 정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스맨 프로젝트에서 나온 명의보정이(Identity Correction)이란 말을 실천해야 한다. 보수가 무엇인지, 수구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우파와 좌파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언어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승자독식이라고 바꿔본다면 경쟁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대대수 사람들의 삶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는다. 얼마나 다른가? 또 사회적 사실을 예로 들면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부르는 사람과 광주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사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사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참 명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이지만, 그의 글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며,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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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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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재미있다기 보다는 슬프다. 슬프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현실이다. 얼마전에 용산 2주기가 지났다. 그동안 무심히 세월만 보내고 있지는 않았던가. 

70년대 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일명 난쏘공)이 이미 몃 십년 전의 일이지만, 그것이 과거로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지금도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두리반에서는 제2의 용산이 되풀이 되고 있고, 이것이 두리반뿐만이 아니라, 팔당댐 유기농 단지 농민들이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등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마천루들이 일반 서민들의 삶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고 있으며, 힘들게 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눈물 위에서 세워지고 있으니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역사는 되풀이 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꼭 용산을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슬프다. 

만화라는 매체는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그림을 통해서 시각을 자극하기도 하고, 생략된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단절된 그림들을 통해 단절된 모습을 연속성으로 살려내는 연습을 하게도 한다. 이와 더불어 만화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도시빈민이나 재개발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6명의 작가가 나름대로 그린 작품을 죽 읽어나가면 도시빈민의 삶에 대해서, 철거민들이 왜 그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지를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 그것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 작업을 만화로 해낸 만화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읽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여기 사람이 있다"와 "밥과 장미"를 읽으면서 이 책이 다시 생각이 났다. 그냥 머리 속에 간직하기 보다는 한 번 글로 정리를 해봐야 더 오래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생각. 그리고 남들의 눈물 위에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우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  

그래 적어도 우리는 남의 눈물은 내 눈물이고 남의 웃음은 내 웃음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에 있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둘이 된다는 그 말대로 내 주변을 살펴보는 연대성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발견이 우리의 삶의 소중한 자산이고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책에 참여한 만화가들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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