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군가의 세기 - 탈서구 시대, 이제 아시아가 답할 차례다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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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하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한 나라의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부분 경제적인 부의 축적 정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0여년의 역사는 분명 미국을 선두로 한 서구 사회였음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세계의 중심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다양한 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라는 책의 저자 ‘담비사 모요’는 향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경제국으로 그 중심이 변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나라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한 것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의미 있는 전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아시아를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패트릭 스미스의 ‘다른 누군가의 세기’는 서양인의 눈으로 아시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시아를 주목한다. 저자 패트릭 스미스(Patrick Smith)는 여러 언론사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20여 년 이상을 아시아에서 생활하며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가 서구 세력과 만나 변화해 가는 과정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누군가의 세기’란 20세기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미국의 세기라 될 것이라 했던 ‘헨리 루스’의 말을 뒤집는 주장으로, 그동안 일반적 시각이 서구 또는 아시아로 나뉘는 이분법을 벗어난 그 누군가가 새로운 시대를 혼란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 ‘다른 누군가’가 어쩌면 아시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다.

패트릭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근대 아시아의 역사를 볼 때 서구의 침략적 속성이 강하게 드러난 외압에 대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전통적인 문화를 지켜나가려는 아시아 각국의 노력이 서구의 물질문명에 의해 굴복되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이 어떻게 근대화되어갔는가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아시아 각국이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서구의 물질문명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저자가 중점적으로 살피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는 같은 방법과 내용으로 서구의 세력과 만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국 문화와의 충돌’은 어Esj 방식으로든 겪었다는 것이다. 이점은 이후 아시아 역사에서 서구와 아시아를 구분하고자 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아시아를 살피는 저자의 시각은 한 나라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다. ‘근대성’에 대한 시각으로 각 나라를 볼 때도 일본에서 만난 지식인과 중국에서 만난 사업가, 인도의 젊은 학생들과의 대화를 나열하며 독자들이 스스로 그 공감하는 것과 차이를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무엇을 비교 분석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제지표나 통계자료 등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 속에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는 근대화 과정에서 무조건 서구의 방식을 따라했다고 평가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마치 맹목적으로 서구를 따라하는 것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경제적 성장을 이룬 아시아 각국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들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로부터 서구와 아시아를 구분하는 과정에 아시아의 역사를 부정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이는 아시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데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서구의 물질문명을 따라가기 급급한 모양새였더라도 그 과정에는 분명하게 아시아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 세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충고도 엿보인다.

저자가 주목하는 아시아 국가 중 인도는 독특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낙후, 계급과 종교문제 등 가난한 나라로 비춰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IT산업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도는 전통 문화와 서구적 가치관, 자본주의의 발달이 인도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인도는 배타성보다 포용성을 보인다. 저자는 이 점을 이후 아시아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근대 아시아의 중요한 고민은 분명 물질문명의 혁신적 개혁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혼란, 가치판단의 기준, 정체성의 위기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는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서구의 시각을 벗어나 아시아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열린 시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서구화는 일반적인 의미의 서구 지향도 아니다. 오직 미국을 모방하는 미국화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미국 역사에 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극히 편협하게 해석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추천사에서 보여준 장하준 교수의 말이다.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의 경험과 우리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슷한 과정을 겪어오면서도 이들 나라들은 자신들에 적합한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정책에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다가올 세기에 그나마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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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인격이다 - 품격을 높이는 우리말 예절
조항범 지음 / 예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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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나에게로 안내하는 통로 - 말
보기와는 딴판인 사람이 있다. 그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사답게 보이는 사람 중에는 간혹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외인 사람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는 아마도 그 사람이 하는 말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품격이 담겨 있다.’ 이 모든 말은 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속담들이다. 눈 뜨면 말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그 말로 인해 생기는 온갖 불상사를 겪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에 대해 유독 많은 경계의 말들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말의 중요성에 못 미치는 언어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뻔쯤 심각하게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를 반영하고 사람들이 변하는 것처럼 말도 자연스럽게 앞서거나 따라가거나 하면서 말에 담긴 의미가 변한다. 오랫동안 써와서 너무나 익숙한 말이지만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현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 중에서는 그 어원이나 의미와는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경계하고 말이 가지는 중요한 기능을 제대로 살펴 사용해야할 필요성이 더 강하게 제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인격이다’라는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발간되었다고 보인다. 국어학자인 저자가 평소 자신과 아는 사람들 그리고 방송매체에서 사용되는 말들을 듣고 잘못 사용되는 언어생활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에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상사가 차마 지적하지 못하는 우리말 예절’, ‘직장 상사도 모르는 우리말 표현’, ‘승진하려면 꼭 알아두어야 할 상황 표현’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철저하게 현대인의 현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구성으로 보인다.

‘전화를 끊을 때 “들어가세요”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수고하다”라는 말도 조심해서 써야 한다.’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사회적 관계에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올바른 말하기를 실례를 통해 설명해 주고 있다. 이처럼 말의 사용에서 중요한 언어예절이나 그 의미를 잘못알고 시용하는 말들 그리고 말하는 요령 등을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찾아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렇게 대인관계의 중요성이 대두된 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고 개별화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인간관계에서 예절은 중요하다. 그 예절의 대부분은 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가 중심에 있다. 친구, 직장, 가정,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흔하게 접하는 일상에서 격식에 맞는 말 사용에 대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알찬 내용으로 가득하다.

시대를 불문하고 말은 말하는 사람의 품격과 사람됨의 깊이를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마디라도 사려 깊게 판단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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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강제윤 글.사진 / 홍익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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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나?
강제윤이라는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몇 년 전 제목에 이끌려 손에 든 책이 저자의 ‘숨어사는 즐거움’이었다. 심상치 않은 제목의 이 책은 저자가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간 후 둥지를 틀고 쓴 글 모음이었다. 숨어산다는 것,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숨겨야 했는지 그 사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숨어서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의 무엇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얻었다는 것으로 읽혔기에 그 마음에 담긴 것에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정착하는 듯싶었던 고향 보길도를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청년시절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희망을 가슴가득 안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 과정에서 옥고도 치렀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야 할 터전에 대한 심한 몸부림을 치더니 다시 2005년 어느 날, 문득 떠돌며 살고 싶은 열망에 이끌려 다시 고향을 떠났다. 무엇이 그를 고향에서 떠나 떠돌이 삶을 살게 한 것일까? 사람들의 곁을 떠나 바다 위 떠도는 섬들을 순례하게 만들었는지 속내가 궁금하다. 

이제 그를 부르는 수식어로 ‘섬 순례자’가 익숙해졌다. 3면이 바다인 이 땅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인도가 500여개가 된다고 한다. 그 섬을 하나 둘 발품 팔며 걷고자 하는 저자는 지금까지 200여개의 섬을 그렇게 다녔다. 이 책은 바로 섬을 둘며 걷는 동안 보고 느낀 섬과 섬사람들 그리고 저자 강제윤의 이야기를 담아 온 책이다. 출발부터가 섬을 소개하여 사람들을 불러오게 만들고자 하는 관광안내서가 아니기에 그의 섬 이야기는 단순해 보인다. 육지 사람들을 유혹해 그들을 불러드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 먼 기억을 아니다. 섬과 섬사람들이 지금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 말이다. 풍어의 시절 섬들은 고기잡이배들과 그 배들을 따라 함께 온 사람들이 성시를 이룬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무분별한 욕심이 불러온 결과 고기가 떠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떠났다. 사람들이 사라진 섬에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역사마저 사라지고 있다. 남은 것은 패선과 쓰러져가는 집, 모래사장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몸으로 담은 노인들의 허한 마음뿐이다. 섬을 순례하는 저자의 발길엔 일정한 흐름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섬 순례기를 볼 때 남해에서 서해로 그리고 다시 남해로 이어진 몇몇 섬들을 발길 가는대로 걸어간 흔적이 담겨 있을 뿐이다.

‘섬에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밤하늘 가득히 쏟아지는 별을 가슴에 품어본 적이 있는가. 별이 나에게 길을 묻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섬에서 섬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 저자의 눈과 가슴으로 순례자는 묻는다. 독자도 어느 때인가 비슷한 질문을 한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늦가을 쯤 서해 위도라는 섬의 이름 모를 항구 등대아래서 밤을 지새우며 보았던 달과 별, 그 밤하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가야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가는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인이자 별이 길을 물었다는 저자의 이 책에는 순례자의 눈길로 바라본 섬과 섬사람의 마음으로 담은 풍경이 담겨 있다. 사진이 주는 매력적인 이야기는 섬을 가슴에 담고 있는 독자들에게 글과는 또 다른 이야기로 대화를 시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삶을 자처한 저자의 발길은 언재쯤 멈출까?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의 삶처럼 저자나 우리들이나 지구를 찾아온 영원한 순례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섬을 걷는다고 당장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걸어가는 그 길에서 웃고 울며 늘 자신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밤하늘의 별들이 저자에게 길을 묻듯 우리 또한 그 별에게 길을 물어보며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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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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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승자는 될 수 없다. 그럼 누구? 
우리나라의 모든 요소에서 미국을 배재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후 점령국처럼 우리나라에 온 미국의 영향아래 우리의 현대사는 쓰여 진 것이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졌다는 것이다. 군사, 경제, 정치, 교육 등 한 나라를 구축하는 기본 틀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후로도 그 영향력이 지속되어 왔다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운명에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후폭풍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모습을 너무도 많이 닮은 우리나라는 그럼 어떤 미래를 그려가야 하는가? 

미국의 세계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20세기를 들어서며 두 차례의 세계적인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성장을 이뤄왔고 이후 세계1위국가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철옹성 같았던 미국의 금융가가 철퇴를 맞은 것처럼 흔들렸고 그 영향을 전 세계 금융가를 뒤집어 놓았다. 또한 미국 산업의 축이었던 자동차 산업의 붕괴는 미국의 앞날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미국에 대한 평가를 내 놓은 책이 바로 ‘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이다. 

다분히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그만큼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던 미국의 지위를 부정하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책이다. 그것도 미국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미국은 지난 50년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자신의 국익을 위해 부단한 압력을 행사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국 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자본, 노동, 기술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의 동력 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측면들에 대해 소홀한 결과 자신의 지위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두에 서 있던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원인이 내부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내부라는 것도 외부의 조건과 환경에 끝임 없이 영향을 받는 것이기에 달라진 외부환경에 대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지위를 흔드는 외부적 요인으로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국가들을 말한다. 잠재적 경제성장력 1위로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중국이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하며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를 전후해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경제 4국을 일컫는 브릭스(BRICS)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경제체제에 대한 기존의 틀을 크게 흔들고 있다고 본다. 

저자 담비사 모요는 향후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기존 질서의 중심인 미국과 새롭게 대두되는 세력의 중심인 중국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승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저자가 고려하는 양대 국가의 대결 시나리오는 현상유지, 중국의 후퇴, 미국의 반격, 미국의 극단적 선택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확정적인 징후를 보인다고 평가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시각은 미국이 그 지위를 그냥 내 놓을 수 없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파산하지 않고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든 아니면 더욱 강고한 기반을 쌓든 그것은 지금의 미국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국은 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이 저지른 경제 실책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위기를 솔직하게 진단하고 처방한다. 또한 세계 경제가 흘러온 거대한 흐름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해 있는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미국이 지나치게 종속적인 성장을 해온 우리 경제구조에서 미국과 중국의 양대 구조에서 그리고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경제구조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 심도깊은 고민을 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일반인이 어렵게 생각하는 경제에 대한 내용을 그것도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보는 세계의 경제 중심축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경제국들로 옮겨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도 한다. 모두가 승자는 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린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일까? 2011년 GDP 기준 세계경제대국 2위 중국, 3위 일본 사이 끼어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살아갈 방법 모색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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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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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나누는 지적 유희가 아닌가 한다. 글 속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의미 말고도 행간에 숨겨진 저자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독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는 분야나 독자와 머리싸움을 벌리는 분야가 단연 선두에 서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분야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문학이라는 분야가 될 것이다.

오래전 영화 한편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유상옥 감독의 1999년 작품으로 김태우, 신은경, 이민우 등의 배우가 출연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建築無限六面角體─秘密)’이다. 이 영화의 제작의 직접적인 배경은 이상(李箱)의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상이라는 시인의 삶과 육면각체 속에 담긴 수학적 지식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사건 등으로 긴장감이 팽배했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목되었던 것은 ‘육면각체’라는 도형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기반으로 지적 흥미를 유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선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천 년의 침묵’ 역시 이와 비슷한 주제와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에서 잘 볼 수 없는 도형이라는 수학적 테마를 소재로 하여 그려진 작품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공식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 피타고라스에 의해 규명되어졌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출발은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라는 이야기를 접하며 "피타고라스 정리는 정말 피타고라스의 정리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둘러싼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내용전개가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푹 빠지게 만든다.

작품의 무대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크로톤이다. 크로톤의 실력자로 등장한 현자 피타고라스의 학파에서 수학하던 제자 디오도로스의 시체가 바다에 떠오른다. 그의 동생 카르모스는 형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학파에 입문하고 형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히파소스를 만나 형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현자 피타고라스는 학문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권력을 잡아 이를 자신의 학파의 힘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신의 위상에 도전하는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한다. 형이 남긴 단서를 통해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모순이 있으며 이는 이미 천 년 전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과 이를 현자 피타고라스가 도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파소스는 디오도로스가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풀리지 않은 의문에 도전 ‘무리수’라는 알려지지 않은 수의 영역을 밝혀내고 이를 무기로 현자 피타고라스에 도전하게 된다. 한편, 피타고라스의 위세가 자신의 권력을 앞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귀족회의 의장 킬론은 현자 피타고라스학파를 몰락시키기 위해 시민단체와 밀약하고 음모를 진행하게 된다.

학문과 권력 상호간의 충돌, 인간의 권력 지향적인 본능, 불륜이나 동성애를 통한 육체적 욕망에 대한 갈망, 탐욕 등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관계,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잘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은 물음에 대한 묘사와 피타고라스 정리, 무한수 등의 독특한 소재를 절묘하게 조합한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인간유형의 극단은 지적욕구와 이를 이용한 세속적 욕망에 대한 갈망 등 인간의 욕망이 비극적인 결말은 불러오게 된다. "진실을 밝힌 자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따져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도가 실현된 것일까? 2,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그것과 별 차이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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