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본성을 확인해 가는 시간
나 이외에 누군가 알더라도 상관없지만 소중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만 가면 숨 막히는 아찔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이나 스스로가 정한 규칙에 얽매어 한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시간에서 조차 스스로에게 너그러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무슨 거창한 곳은 아니다. 때론 수시로 변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공간이다.

가까운 공원의 나무의자, 인적이 드문 골목길 한 모퉁이,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숲속 오솔길 그것도 아니면 자동차 안.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그 곳이다. 이런 곳의 공통점은 혼자라는 것이다. 비록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그곳에 있는 시간만큼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할 그 무엇이 아니기에 혼자라는 것이다. 또한 멀리 가지 않아도 되기에 조금만 여유를 부린다면 언제나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휘황한 거리에는 ‘나’라는 광고 문구가 넘치건만 왜 갈수록 나를 잃어버리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나의 실종에 불안하면서도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하는 기이한 닫힌회로. 출구 없는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을까.”

작가 김선우에게 그렇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는 곳이 남인도의 영적 공동체 ‘오로빌’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그곳을 벼르고 별러 찾아갔다. 작가가 찾아간 오로빌은 ‘새벽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이상을 꿈꾸던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에 의해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1968년 첫 발을 내디딘 이래 현재까지 40여 개국 2천여 명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출신, 나이, 학벌, 직업 등 우리들이 일상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는 곳이다. 누구나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면서 나는 나, 너는 너, 이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가 공존한다. 

오로빌에 발을 딛는 작가는 조심스럽다. 방문자라는 신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치 잘못 자신이 내린 어떤 선입감이나 편견으로 인해 오로빌의 가지는 본래의 모습을 왜곡 또는 훼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여, 사람은 물론 나무며 풀, 곤충 등 그곳 오로빌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마음 쓰며 공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움츠러드는 이방인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선다. 함께 일하며 놀고 자신을 누리는 시간 동안 그들과 하나가 되어 보인다.

저자 김선우의 눈에 비친 오로빌은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열망과 강한 의지의 결과가 시간에 익어가는 동안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는 등 지금도 완성으로 가는 중이라고 보고 있기에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인이 가지는 외로움의 거의 전부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관계에 매어 있으면서 그로부터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 바로 그 자리가 외로움의 출발이 아닌가 싶다. 늘 함께 살아가지만 그 살아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벽을 두르고 닮아가려고 하는 생각이 사람들을 외로움으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현실에서 작가처럼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이렇게 주변사람이나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현실이다 보니 오르빌의 사람들이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 거름을 만드는 일, 사람들에게 안마를 해주는 일,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밴드 마스터, 비온 뒤 흙탕물을 뒤집어쓴 나뭇잎을 닦아주는 일 등 이 모든 일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곳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사회적 장치나 남의 시선을 넘어선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오로빌이라는 것이다.

무엇하나 확정된 것이 없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다. 이것 아니면 곧 죽을 것 같은 것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보는 것, 이것이 작가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우리들에게 보내는 마음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의 모든 마음이 담긴 도서관의 모든 것
오랜 꿈이 이뤄지는 중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벽을 탈출하여 넉넉함이 있는 시골생활을 꿈꿔 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시골집을 장만하고 수리중이다. 집을 수리하며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나만의 서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대가 낮은 평지 마을이라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멀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마루에 앉아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오래된 한옥의 본체를 살기에 불편함만 줄이는 선에서 수리하고 마당 한 쪽에 서재 공간을 만들었다.

기존 담장을 이용하여 바닥을 고르고 기중을 세워 판넬로 지붕과 남은 벽을 마무리 하고 한쪽은 유리로 마감을 하니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10여 평이 조금 넘은 이 공간을 이제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마음부터 설렌다. 아파트 거실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러고도 남아 이 방 저 방에 쌓여 있는 책으로 채워가는 멋진 공감연출이 기대된다. 판자로 책장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5000여 권의 책을 분류해서 하나 둘 채워 가면 그 공간은 앞으로 살아갈 집의 생활중심이 될 것이다. 비록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서재의 이름도 붙여주고 마음 나눌 벗들이라도 가끔 찾아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그곳은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공간의 크고 작음도 상관없이 책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놓은 책이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은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저자가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어가면서 도서관의 역사를 비롯하여 도서관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서관의 기원에 대해 추적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련,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 이 모든 것은 저자가 도서관과 관련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이러한 축을 바탕으로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책과 도서관, 누구도 찾지 않은 책일지라도 사람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해 온 것이 도서관이다. 이렇듯 도서관이 갖는 고유한 기능에서부터 역사적 변천과정, 사회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르고 있다. 아무리 시대적 환경이 변하더라도 도서관이 갖는 그 역할은 그렇게 큰 변화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오늘날 전자책이라는 편리하고 시간성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는 도구가 발달하면서 출판시장이나 책의 유통 경로에 그리고 도서관이 가지는 근본적인 기능에 구조적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자의 견해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용 환경의 편리성이 종이책보다 월등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장 사이를 거닐거나 책장에 자리 잡은 책의 제목만으로도 여행이 충분하며 묵은 잉크냄새가 베어나는 종이책 중심의 도서관이 주는 향수는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빼곡히 들어선 책장들 사이로 숨겨진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어떤 도서관들이 존재했고, 어떤 이유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런 도서관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자가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서관에 대한 감성적 표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도서관을 어떻게 꾸미고 이용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얻게 되는 감정상의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흐름이 한결 정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책이 우리 고통을 덜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읽어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를 수 있다. 책이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중략) 잘 쓰인 책이라도 이라크나 르완다의 비극을 덜어줄 수 없지만, 엉터리로 쓰인 책이라도 운명적으로 맞는 독자에게는 통찰의 순간을 허락할 수 있다." 

“책이 그렇게 좋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딱히 설명한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의 이 말 한마디면 해결될 수도 있을 듯싶다. 이것으로도 다 말하지 못한다면 “그냥 읽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마음 다해 무엇에 흠뻑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주는 깊고 무거운 감동을 다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 무척이나 덥지만 그 더위를 책과 더불어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책이 주는 무한 감동의 세계와 그 책이 살아가고 있는 도서관이 가지는 의미를 말이다. 아직 지붕에 벽체만 완성된 서재지만 그 안에 담겨질 세상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서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소설
송수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이 위험하다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일에 대해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지난 일이 오늘의 일에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끊임없는 가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한 가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살피고자 하는 사람의 생애를 걸쳐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뜻과 마음이 담겨있는 그가 남긴 글이 주목된다. 글은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글에 대해서도 역사를 보는 것처럼 무엇을 어떻게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얻고자 하는 것 또한 커다란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송수경 작 ‘위험한 소설’이 바로 그러한 예증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조선 중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참을 당했던 허균(許筠, 1569~1618)이 남긴 ‘홍길동전’을 두고 역사적 가정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기억되는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에 대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길동이 집을 나가 도술을 익힌 뒤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던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며 이후 변조참의에 제수 받고 신하의 예를 다한 후 이상향 ‘율도국’을 세워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 ‘위험한 소설’이란 바로 허균의 ‘홍길동전’을 지목하고 있다. 홍길동전에 담겨 있는 사상적 배경이 당시 조선 중기의 사회정치적 배경에 대해 반하는 내용이기에 역모에 해당한다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허균이 쓴 홍길동전과 이를 각색한 홍길동전이 따로 존재하며 당시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누군가 각색한 홍길동전이라는 것을 이 작품의 기본적 틀로 삼고 있다.

이런 전재 하에 교산 허균, 부안의 기생 매창, 매창의 연인이었던 촌은 유희경 그리고 이들 주변인물들인 허균의 벗 후오자 등이다. 광해군 10년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한지 수년이 지난 후 숙부 허보와 외손자 필진은 몰락한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자 허균의 역모죄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 때문이라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허균이 살아생전 매창과 촌은 유희경과 교류하며 자유인으로 살던 시기와 허보와 필진이 누명을 벗기고자 하는 시기가 공존하며 진행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하자는 유희경과 그 무리들과는 결코 다른 생각을 지녔던 허균을 바라보는 매창은 안타까운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홍길동전을 지을 것을 권한다. 연인 유희경과는 달리 허균과 나눈 문우지정이 남녀의 감정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허균의 선택은 홍길동이 어떤 인물로 성격 지을 것인지에 그 답이 있음을 알고 홍길동전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그 홍질동전은 각색된 채 사람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오고 말았다.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마음에 막힌 데 없이 자연 그대로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삶을 살고자 했던 자유인 허균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허균의 모습을 무엇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라는 시각과 시대와 불화를 겪은 지식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남긴 홍길동전에 담겨 있는 시대의 부조리를 비평하고 100년 앞을 내다본 세상을 꿈꾼 것은 당시로써는 용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당시 이런 사상적 배경이 담긴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것은 정치상황의 복잡성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허균이 살았던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을 겪은 후 급격한 혼란에 휩싸인다. 당시를 살았던 허균으로써 무엇을 보았을까? 그가 품었던 꿈과 열망은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근원의 중심에는 개인적인 삶과 백성과 사회의 앞날을 희망으로 이끌어갈 힘의 원천인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상 환자 - 허원주 수필집
김호남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글, 무엇을 담아야 할까?
지방자치제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로 어수선했던 지난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를 담당하시면서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글을 쓰신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쓰신 글이 실린 문학지를 나눠주시면서 글쓰기에 도전해 보라고 한 것이다. 딱히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잊고 살았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제자의 불편한 일로 다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도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보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뒤돌아 가셨던 분이다. 그때도 여전히 자신의 글이 실린 문학지를 놓고 가셨다.

그 후, 서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소식도 듣지 못하다가 지난 선거에 교육위원으로 출마하신 것을 알고 선거 사무실로 찾아가 뵈었다. 선거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거홍보물이 아니라 두 차례나 내 앞에 내 놓으시면서 내게 글을 써 보라고 권했던 그 문학지였다. “선생님 여전히 글을 쓰고 계시나 봐요?” 하는 제자를 보면서 “넌 아직도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고 있느냐?”며 옛 기억을 더듬으셨다. “잊지 않으셨어요. 이제야 그때 선생님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비록 선거에 당선되지는 못하셨지만 여전히 글을 쓰시며 지역 문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이제는 가까이서 뵐 수 있다.

억지를 부려서 꾸며내는 글이야 어쩌다 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숙제를 풀 듯 힘들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 ‘가상 환자’를 쓴 저자 허원주님은 자신 나름의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았고 글쓰기와 열애중인 사람으로 보인다. 

수필집 ‘가상 환자’에는 ‘독일 사우나’, ‘변비’, ‘나쁜 남편’, ‘가상 환자’, ‘의사 본색’ 등을 비롯하여 ‘글쓰기의 부끄러움’ 까지 총 스물 네 편의 글이 담겨 있다. 그가 쓰는 글에는 병원 의사로 또 대학 교수로, 아버지, 남편으로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상황묘사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읽어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아마도 글쓰기와 열애중인 것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허전함이 있다.

“그의 문장에는 절창이 없다. 왜? 그는 경험사실주의적인 사고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경험 없는 관념의 생성을 철저히 사양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기가 막힌 명장면은 연이어지지만 심오한 관념적 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종완의 허원주의 글에 대한 평가다. 글 한 편 써내지 못한 사람이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다. 글은 왜 쓰는 것일까? 글이라고 하면 분명 자신이 쓴 것이지만 발표하고 나면 그 글을 읽는 독자의 글이기도 하다. 그 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공감하며 소통되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글에는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무엇이 필히 담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수필집 ‘가상 환자’는 글쓰기의 출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오한 관념적 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글쓴이의 무엇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이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강여호 2011-07-0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특히 수필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현학적인 글들을 접하게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발표하고 나면 독자의 글이 되는 게 책인데....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관념적 문구로 가득찼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지....비록 블로그지만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더위와 함께 시작한 6월
조금씩 책 읽는 것도 더위에 지친 것인지
쉽지 않았던 시간이다. 

--------------------

11-121(2011-6-1)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
이태혁 저 | 경향미디어 | 2011년 05월

11-122(2011-6-2) 상실의 풍경
조정래 저 | 해냄 | 2011년 02월

11-123(2011-6-3)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2
손광섭 저 | JY진양문화 | 2008년 11월

11-124(2011-6-6)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최성일 저 | 연암서가 | 2011년 05월

11-125(2011-6-7) 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
스티븐 베이커 저 | 이창희 역 | 세종서적 | 2011년 04월

11-126(2011-6-10) 간송 전형필
이충렬 저 | 김영사 | 2010년 05월

11-127(2011-6-10) 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 황안나 공저 | 조화로운삶 | 2011년 05월

11-128(2011-6-13) 히든
헤더 구덴커프 저 | 김진영 역 | 북캐슬 | 2011년 06월

11-129(2011-6-14)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소래섭 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05월

11-130(2011-6-14)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김도경 저 | 현암사 | 2011년 04월

11-131(2011-6-15) 깍두기 삼십대
조한웅 저 | 소모(somo) | 2011년 05월

11-132(2011-6-15) 사유 속의 영화
이윤영 편역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04월

11-133(2011-6-16)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선재 스님 저 | 불광출판사 | 2011년 05월

11-134(2011-6-17) 낯익은 세상
황석영 저 | 문학동네 | 2011년 06월

11-135(2011-6-18)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수 로우 저 | 신윤하 역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05월

11-136(2011-6-20) 진시황 프로젝트
유광수 저 | 김영사 | 2008년 03월  

11-137(2011-6-21)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다케우치 가오루 저 | 박정용 역 | 전나무숲 | 2011년 05월

11-138(2011-6-22)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일레인 N. 아론 저 | 노혜숙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04월

11-139(2011-6-23) 천 년의 침묵
이선영 저 | 김영사 | 2010년 01월

11-140(2011-6-24)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담비사 모요 저 | 김종수 역 | 중앙북스(books) | 2011년 06월

11-141(2011-6-26)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강제윤 저 | 홍익출판사 | 2011년 05월

11-142(2011-6-26) 말이 인격이다
조항범 저 | 예담 | 2009년 01월

11-143(2011-6-27) 다른 누군가의 세기
패트릭 스미스 저 | 노시내 역 | 마티 | 2011년 05월

11-144(2011-6-29) 야쿠비얀 빌딩
알라 알아스와니 저 | 김능우 역 | 을유문화사 | 2011년 05월

11-145(2011-6-30) 트럭 드라이버
임강식 저 | 부광출판사 | 2011년 06월

--------------------
기억에 남는 책

간송 전형필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다른 누군가의 세기
야쿠비얀 빌딩

나름 세운 목표량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숙제를 다 하지 못한 부담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책을 왜 읽고 있나를 생각하는 7월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