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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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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희망을 품고 세상을 맞이하도록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이 말에 대해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떠나지 못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가 한 사람에 대해 주목하는 무엇을 보고 그것만을 크게 생각하면서 대하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야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준 가장 처음의 관계인 가족이라는 범주에 든 모든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전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라는 것 때문에 감내해야할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적 관계인 사람들의 사이는 일정한 규범과 규칙이 있다. 그것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반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범주로 들어오면 그러한 인간관계에서는 기본이 되는 많은 것들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가족이기에 사회적 관계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무한 애정과 헌신이 있는 것을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존재하고 더 강화된 모습으로 표현되기 위해서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한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에 따라 다양한 규정을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을 감싸주는 울타리’, ‘쉼의 안식처’, ‘삶의 근원이 되는 힘’ 등이 아닐까 한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가족 구성원에게 가족의 의미는 다소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가, 삶의 가치가 변화된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아직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책 ‘히든’은 바로 그런 가족의 의미와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모든 부분에서 잘 나가며 부모의 온갖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언니와 그 그늘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동생이지만 둘 사이는 돈독한 자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한 살 차이 고등학생인 두 자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자매에게 일어난 일은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 

‘히든’은 열여섯 살 소녀가 영아유기 및 살인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5년을 복역 하던 중 모범수로 가석방되면서 시작된다. 가족에게 버림 받은 시간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살았던 소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미 지나간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바꿀 수도 있지만 다시 시작하는 삶은 얼마든지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말이다.

살인자로 살아가던 소녀가 가석방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일하는 곳이 서점이다. 그 서점에는 입양한 5살 난 남자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음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알게 된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강에 유기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녀의 5년 전 이야기가 하나 둘씩 밝혀지며 한밤중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고등학생 딸아이가 임신하고도 출산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부모,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살았던 앨리슨, 언니의 그늘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한 동생 브린, 오빠의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그 책임을 더 안은 차메인, 가족과 자식에겐 관심 이 오직 자신의 삶만을 살아간 차메인 엄마, 자식을 갖고자 온갖 노력을 하지만 불임으로 인해 결국 아이를 입양한 클레어 등 이들이 5살 난 남자아이 조슈아를 사이에 두고 가족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왜? 아이를 출산하고도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는지, 언니의 출산 과정에 참여하면서 아이를 강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동생의 선택, 동생의 잘못된 선택을 알고도 모든 것을 자신으로 일로 안고 감옥행을 선택한 언니, 오빠의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던 동생 등 등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그려가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페이지를 더할수록 혼란스러웠던 사건의 실마리가 잡혀간다. 

미혼모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사회적 문제로 된지 오래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와 엄마의 사회적 존재로써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세이프헤븐 영아 보호법’ 미국의 법률적인 장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생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법률적 보호 장치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가족이라는 범주에 속하면서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와 그 구성원 간의 공감과 소통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족은 무엇이든 가능하게도 하지만 때론 가족이기에 아무것도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이 둘의 경계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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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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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지금 갈게 
지금 내가 사는 도시로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나는 자식이 눈에 밟혀 기어이 할머니를 보내고 말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간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부모님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내내 나무처럼 살아오던 할머니는 낯선 도시에 하나 둘 적응하면서 손자가 집에 오는 시간이 궁금하여 시계 보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커다란 숫자가 박힌 시계를 마련하고 숫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몇 칠을 보낸 후 할머니는 드디어 시계에 표시된 숫자를 알게 되고 늘 그 시간에 들어오는 손자를 위해 밥을 준비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숫자는 가슴에 담아두고도 늘 안타까운 손자를 맞이하는 소중한 신호가 되었 것이다.

그 손자가 학교를 마치고 성장하여 결혼할 때까지 이어진 할머니의 도시생활은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했으나 늘 평생을 살아온 시골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소망이셨다. 10여년을 함께 살던 손자와 떨어져 시골로 가신 할머니는 손자가 집을 찾을 때 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곳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묻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건강을 잃어가며 정신을 놓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언제나 반기며 잡아주는 할머니의 손은 먼 나라로 가신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으로 엄마를 대하고자 하지만 마음속 무게가 커서인지 늘 먹먹한 가슴이다. 전화통화 속에서 느끼는 목소리에서 하루가 다르게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은 아마도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내 삶 때문이리라.

이 책은 엄마 홍영녀와 딸 황안나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엄마는 자식들 몰래 평생 한이었던 글을 배우고 나서 자신의 속내를 일기장에 남겼다. 어느 날 불쑥 딸의 눈에 띄어 딸이 엄마의 속내를 알게 되고 그런 마음에 공감한 사람들에 의해 책으로까지 발간되게 되었다. ‘만학으로 한글을 깨치고 80세에 첫 책을 펴낸 96세 어머니 홍영녀, 그 어머니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해 세상을 울린 72세 딸 황안나’는 우리 모든 자식들의 마음을 대신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엄마, 나 또 올게’를 읽으며 할머니와 엄마가 한꺼번에 눈앞에 어른거리게 된다. 우리들의 모든 할머니와 엄마의 가슴 속 깊은 한 곳에 있었을 진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유명세를 탄 주인공들이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는 엄마와 딸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엄마나 나이든 딸이나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이었으며 자식들을 안위를 위해선 아까울 것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딸이면서 동시에 엄마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부르면 당장이라도 반가운 얼굴을 할 할머니와 엄마가 계시지 않더라도 가슴에 남은 부모에 대한 마음이 있기에 내가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고무신을 닦아 / 햇볕에 내놓았다. / 어딜 가보게 되지 않으니 / 신어보지도 않고 / 또 닦게 된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태생적인 마음자리가 아닌가 싶다. 신어보지도 못할 고무신을 닦고 또 닦는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졌을 마음의 무게가 얼마일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을, 정든 고향집 음식처럼 천천히 맛있게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는 추천사를 전해주는 이해인 수녀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엄마, 나 도 올게’라는 말을 가슴속에서 울리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이 책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대신하는 듯 붉은 진달래가 피어있다. 진달래 화가 김정수의 그림은 엄마를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을 화면으로 불러온 듯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책의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 하여 지난 시간 마음 다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첫머리에 부모님에 대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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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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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 간송미술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책 속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만들었던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사설박물관이라고 하는 그곳은 한해 두 차례만 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살며시 속내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마음이 가득담긴 책을 통해 알게 된 ‘간송미술관’이라는 곳이다. 

‘간송미술관’은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33세 때 세운 것이다. 196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박물관인 이곳은 여타의 박물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듯하다.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의 독보적인 산실 역할을 해온 곳으로 관련자를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박물관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1934년 북단장에 이어 1938년 보화각을 건립하고 우리문화재에 대한 연구 복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다. 설립자의 뜻에 따라 현재 북단장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보화각은 부속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훈민정음 원본 등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을 포함한 5천여 점의 문화재를 수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을 세운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시절에 태어나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위창 오세창과, 월탄 박종화 등과 교류하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일본으로 유출되는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는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또한 동성학원 설립을 비롯하여 보성중학교를 인수하여 인재양성에도 앞장섰으며 고고미술동인회 등의 활동으로 ‘고고미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고 했던 그의 뜻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책 ‘간송 전형필’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민족 문화에 대한 침탈이 극심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무엇을 해야 했는지, 한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후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전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가문에서 태어나 성장배경을 가졌지만 그것에 안주하거나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보여준 삶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간송 전형필의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식민지 청년으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던 전형필에게는 막대한 유산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다스한 애정과 탁월한 식견을 가졌던 스승과 동지들이 있었다. 그는 다른 문화재 수집가들과는 다른 그만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본이 결코 넘볼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며 후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을 들여서라도 우리 땅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그가 보여주는 우여곡절은 때론 미소를 때론 가슴 절절한 아픔을 전해준다. 

‘전형필은 밤이 새도록 《훈민정음》을 읽고 또 읽었다. 만들어진 지 500년 만에 발굴된 보물 중의 보물이었고, 전형필이 수집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성취한 대발굴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다가는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집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했다.’

세상의 눈에서 멀어져야 문화재를 지킬 수 있다는 스승의 오세창의 말은 묵묵히 자신이 정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으로 다가섰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남긴 큼직한 발자국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확인하게 만들어 주는 삶이라는 생각이다. 큰 나무 기슭에는 온갖 새들이 둥지를 튼다고 한다. 큰 나무로 다가오는 전형필의 삶은 5천여 점의 문화재가 남아 우리들에게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고 있다.

한때 간송미술관에서 근무했던 오주석의 빛나는 글이 나올 수 있고 그 글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높은 이상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간송 전형필의 일생을 통한 민족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매년 봄과 가을 10만 명 이상이 찾아가는 곳, 한국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국립중앙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곳을 만들어 온 간송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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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 - Man vs. Machine
스티븐 베이커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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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왓슨’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 것일까?
세상은 상상하고 꿈꾸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스티븐스필버그의 상상력이 돋보인 ‘우주전쟁’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상상하고 꿈꾸는 세상에 그 한계는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예전엔 꿈속에서나마 상상하는 정도에 그쳤던 일들을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누리고 있는 것이 많다. 하늘을 날고 보이지 않은 사람과 실시간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며 심지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누리며 마치 현실처럼 느끼며 생활하기도 한다. 내 기억 속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 상상속의 세계는 이제 많은 부분에서 현실의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변해가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한 생각 속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람을 대신할 인공지능 컴퓨터가 당당하게 자리 잡아 있다고 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실로 무지막지한 공간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컴퓨터다. 이제 일상생활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그 컴퓨터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이 책 ‘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에 등장하는 주인공 ‘왓슨’을 보면서 상반되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IBM에 의해 만들어진 ‘왓슨’은 ‘deep blue’라는 컴퓨터 후속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체스게임에서 인간을 이긴 컴퓨터 이름이 ‘deep blue’였다. 체스라는 게임의 특성상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승리를 확보된 출발이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물론 ‘deep blue’라는 컴퓨터를 개발하던 당시에는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한 성과를 이어 IBM의 야심작이 ’왓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왓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텔레비전 퀴즈 쇼 ‘제퍼디’에서 인간과 대결하여 승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인간이 꿈꿔왔던 ‘인간을 대신할 기계’에 대한 꿈에 있어서 획기적인 성과라 평가받았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구성된 이후 이미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그것을 비교분석하고 목적한 바에 가장 근접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인간보다 더 빠른 정보에 대한 처리 능력을 가진 컴퓨터로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컴퓨터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2011년 2월 16일에 벌어졌던 ‘왓슨’과 인간의 대결은 인간이 이룩한 역사, 문화, 예술, 대중문화, 과학, 스포츠, 비즈니스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학문적 업적에 총체적으로 접근한 항목이었다. 여기에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기반이 되는 감정이나 개념화되어 개별적인 의미를 가지는 질문까지 포함되어 있다. 즉 실 생활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이 가지는 감정이나 언어의 인지과정에 대해서 도전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고 그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에게 승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똑똑한 컴퓨터에게 한 가지 효용이 있다면 노래하기, 수영하기, 사랑에 빠지기 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수한 일을 마음껏 즐기도록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간을 이긴 기계의 출연을 바라보며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에 대한 기대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이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위의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삶을 보다 더 의미 있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날로 지능화되어가는 기계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인간을 대신할 기계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상황은 결코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역사의 교훈에서 보듯 이는 결코 낙관만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만들어 온 온갖 문명의 이기에서 인간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떠나지 않은 질문 하나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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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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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시각으로 본 과학책 읽기
즐겁게 읽는 책이지만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다. 때론 책장을 넘길수록 복잡하고 머리 무겁게 하는 책은 멀리 던져놓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편식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좋은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것 역시 그렇다. 이런 의무감에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책을 접하고 나서 드는 생각이 바로 모든 책으로 즐거운 독서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역사, 문화재, 예술, 인문분야 등의 책을 읽어오며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즐거움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도전해 보지 못한 분야의 책을 접하며 혼돈상태에 빠진듯하다. 내게 그런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이다. 자칭 인문주의자라 칭하고 싶은 저자 최성일이 자신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인 과학책을 읽어오며 그 책 속에 담긴 이야기와 자신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적절하게 조합하고 있는 책이다.

과학은 역시 어렵다. 자주 접하지 못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서른아홉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관련된 서적을 읽어가고 있다. 단순히 읽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해석 책을 읽어가며 느낀 생각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읽어간다. 

어쩜 이렇게 과학지식이 풍부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저자의 박학한 과학지식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저자가 흥미 있게 읽었던 책, 다시 봐도 명품인 과학책, 책은 이렇게 발간되어야 한다. 등 자신이 읽은 책마다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피력하고 있다. 당돌하게도 느껴지는 저자의 과학책 읽기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굳이 과학책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어가며 이렇게 솔직하고 당당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운 점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관심 가지고 읽어 왔던 책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저자의 이야기를 직시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독서는 계기가 중요하다. 책에, 독서에 처음 빠져드는 것부터 그렇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 읽을 책을 고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무작정한 마구잡이식 책읽기는 흔치 않은 일이다. 하다못해 베스트셀러라는 손쉬운 계기라도 붙잡아야 한다. ‘(읽은) 책이 (읽을) 책을 낳는다’는 독서 속설에 기대는 게 매우 바람직하긴 하다.‘

독서에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난 계기가 중요하겠지만 외부적 작용이라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책이 책을 낳는 독서의 방법은 매우 유용함을 몸소 느끼기도 했다. 과학책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분야에서건 독서를 하는 올바른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기본적 속성은 비판적으로 대상을 본다는 점일 것이다. 비판정신이 사라진 인문학은 그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과학책 읽기를 시도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책읽기만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래야 책을 읽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과학은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심판한다. 관찰로써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과학 발견의 원리는 과학의 범위를 ‘관찰이 가능한 문제들’로 제한한다. 따라서 과학에서 가능한 질문 틀은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같은 것이지 당위와 가치 판단과 관련된 물음은 다루지 않는다.‘

과학의 연구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기반이 되는 과학에 대한 생각은 그리 자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과학하면 어렵다는 선입감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제목만으로도 머리를 흔들게 만드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과학책들은 위의 저자의 말처럼 아주 기본적인 관심에서부터 출합할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관찰은 ‘인간(인식주관)이 사물이나 현상(인식대상)을 능동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유의 깊게 바라보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학문으로써의 과학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는 과학에 국한된 자세가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접하는 모든 것에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벅찬 내용이지만 과학의 출발부터 현주소까지를 담고 있는 책들을 보면서 과학책 읽기에 도전할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솔직한 심정은 그것보다는 책읽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의 서평을 통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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