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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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서 찾는 희망
생활의 공간을 도시주변 시골로 옮겼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이 아침 풍경이다. 도시에선 잠에 빠져있을 시간인데 어김없이 눈이 떠지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중첩되어 보이는 고만고만한 산이지만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을 정도다. 그 시간에 일어나 가꾸기 시작한 텃밭도 돌아보고 아침공기를 마시는 시간이 제법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사한지 어느덧 두어 달이 되어가면서 기분으로는 정착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일요일, 일찍 눈을 뜨고 그대로 길을 나섰다. 마을 논과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뒷산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보기 위해서다. 일찍 밭에 나온 할머니와 인사도 나누며 처음으로 걸어보는 길이다.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 그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 설레는 마음이다. 5분여를 걸어 갈림길을 만났다. 산길로 이어진 곳과 마을을 감싸고도는 길 중 어느 길로 가볼까? 이번엔 마을 외곽을 둘러싼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논과 밭, 대나무 숲 길가에 핀 여러 가지 들풀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자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엔 산길로 들어서 뒷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길이 있는지 모르기에 뒷산 아래 저수지로 이어진 길이 있다면 마을 둘레길 과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앞산은 멀다. 멀기에 멀리 조망하며 느끼는 느낌이 좋다. 하지만, 뒷산은 그런 앞산과는 사뭇 다른 맛을 전해준다. 하여 뒷산은 가까이 느껴진다. 거리상으로도 가깝기에 더 가까이 하고 싶은 산이다. 달뜨는 밤이면 달이 지는 산이기도 하기에 그 뒷산으로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뒷산에 깃든 넉넉함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가보지 않아 모르지만 등산로도 없어 보이고 약수터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뒷산이 정겨운 것은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만만해 보이기도 해서다. 

도시에 살던 때, 가끔 오르던 뒷산은 제법 시끌벅적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곳이어서 사람이 많고 가까이 있는 뒷산엔 등산로가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말로도 통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뒷산이 하하하’다. 저자는 이런 저런 글로 이미 지명도가 있는 중견 건축가 이일훈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뒷산은 서울과 경기도 경계를 이룬 만만한 동네 뒷산이다. 자그마한 산에 약수터가 여럿 있어 그 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곳은 ‘지양산’이다. “앞산은 보는 산이지만, 뒷산은 동네를 품은 산”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뒷산은 나를 품고 있기에 ‘아늑함’을 느끼고 때론 ‘만만함’ 마저 일어난다. ‘만만하다’는 말은 거리감이 덜하며 언제 어느 때 찾아도 반겨줄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기분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 일 없을 것같이 겉모습 조용한 약수터도 사람이 꼬이는 곳이라 별별 일이 다 있다. 하긴 모이는 사람 없이 물만 나오면 약수터가 아닐 것이다. 근본적으로 약수터는 사람의 터다” 

그런 곳에 약수터가 있다. 그것도 세 곳이나 말이다. 저자는 그 약수터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주변 환경을 살피고, 자연환경에 눈길을 주며, 시간을 거슬러 사람들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으뜸이다. 그곳은 사람들의 삶의 공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곳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닮았고 또 담고 있다. 단연, 약수터를 중심으로 이뤄진 곳이기에 약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다. 약수터 풍경은 곧 사람 사는 모습의 축소판인 것이다.  

그런 뒷산에서 저자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약수터를 찾는 사람들의 속내가 무엇인지가 우선일 것이다. 약수터는 물이 목적인 것처럼 보이는 외양이지만 물이 전부는 아니다. 저자가 뒷산 약수터를 주목하는 이유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음용수로 부적합이라는 판정을 받는 순간 몰렸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 그 약수터가 부적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약수터가 존재하는 뒷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욕심까지 저자는 그 속에서 사람의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자연과 멀어지며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에게 찾아온 것은 각종 현대병이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감이며 이를 가장 만만하게 보여주는 곳이 뒷산이고, 뒷산에 있는 약수터다. 이렇게 사람이 만만하게 찾는 곳에서부터 오늘을 치유하고 미래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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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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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닌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자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에 암자가 하나 있다. 현대인처럼 편리성과 빠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나 보다. 건장한 사내의 걸음으로도 한 시간여 산길을 올라야 비로써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절집은 오롯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곳에 어떤 인연이 되어 화창한 봄날 오후 한나절을 꼬박 그곳에서 보냈다. 숲속 여기저기 피어나는 들꽃, 절 집을 지키는 전나무 사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스님의 귀한 차 한 잔보다 발아래 펼쳐진 세상이 더 눈에 들어오는 마당에서 서성이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이 더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을 절집으로 이끄는 것을 따로 있었다. 절집을 나서기 전 소박한 이미지의 주지스님과 함께한 저녁공양시간은 그간 여러 절집에서 맛보았던 절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깔끔한 식단에 몇 가지 음식이 놓이고 차분한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독 손길을 잡는 것은 장아찌였다. 맵고 짠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로썬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맛깔 나는 음식에 스님과 함께하는 공양시간의 어려움도 잊고 자꾸만 손이 간 것이다. 절집을 나서는데 스님의 미소가 자꾸 뒤통수를 간지럽던 기억이 생생하다. 

먹을 걸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하며 절집의 절밥에 대한 관심은 더해만 간다. 무엇이 절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맛, 의미, 추억 등 제각가의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온 오랜 시간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절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우리 시대 작가 마흔 아홉 명의 절밥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이다. 2006년부터 ‘불교문화’에 연재된 원고를 모아 엮은 책이다. 성석제, 구효서, 윤후명, 권지예, 윤대녕, 이순원, 공선옥, 김영현, 임철우, 김사인, 안도현, 신달자, 박남준, 곽재구 등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해인 수녀와 김진 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발표하는 시가 한 가지가 아니듯 이들의 종교 역시 불교로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인연으로 절집에 머물고 절밥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불교에서 밥에 대한 의미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공양계이다. 공양에 앞서 함께 외우며 공양하는 동안 밥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세기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내 놓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겹쳐 말하고 있다. 그만큼 공양계에 담긴 의미가 공감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무엇을 먹든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의 의미를 맛에 앞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마흔 아홉 명이 절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밥’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뿐 아니라 세상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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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록 - 죽어서 가는 길, 증보판
하순천 지음 / 대도대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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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후 보다 현실의 삶이 충실하자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은 피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생명이 끝나는 죽음이 그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할 것이지만 대부분 피하지 못하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것도 죽음 이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또한,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감감한 현실이 죽음이후 에 대해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종교를 비롯한 무속이나 사이비로 표현되는 많은 집단들이 등장하고 알수 없어 두려운 사란들의 마음을 이용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나 과학의 진보로 인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분야에서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분야는 미지수로 남아 있어 종교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에 따라 선택하는 종교도 다르고 각 종교마다 배타적인 분위기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알 수 없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고 지금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이 제법 눈에 띄게 출간되기도 한다. 이 책 ‘인비록’ 역시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우선 종교와는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감찰사’라고 부르고 있는 저자는 유불도의 가르침에 통달하여 정관법으로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은 세계와 죽음이후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경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저자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하늘도라고 하는 수련을 접하게 된 배경과 수련의 과정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밝힌다.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경험과 더불어 성장과정에서 겪은 정신과 육체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하늘법 수련으로 이끌어준 도사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 사후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전생과 현생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자신의 체험한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놓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관심을 갖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펼쳐 놓고 있기에 더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펼쳐내는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은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하고 내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또한, 유불도, 삼도의 가르침을 통달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늘도에서 이야기하는 기도와 수도방법이 마치 유불도의 다양한 이야기와 민간신앙의 부분을 차용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물론 목자들의 몫일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분명 인간의 수명은 늘었다. 이대로 간다면 100년은 거뜬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죽음을 맞이할 순간에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바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더 큰 관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면 사후세계도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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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과학을 탐하다 - 우리가 궁금해 하는 그림 속 놀라운 과학 이야기
박우찬 지음 / 소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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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과학자들의 발명품이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사고의 전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하나 둘 따지고 보면 그 새롭기만 한 것은 앞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혈을 기울려 만들어 온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처럼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말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분야가 예술분야가 아닌가 한다. 예술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시간과 싸움하며 만들어내는 예술품 모두는 순수하게 그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가가 살았던 그 시대의 모든 학문의 총화가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질적 전환을 이룬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하면 서양미술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은 미술사를 따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양미술이 차지하면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서양미술이 오늘날처럼 이러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다양한 사조를 형성하며 눈부신 예술작품을 남긴 서양의 예술가들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점은 무엇보다 특출한 예술가의 독창적인 노력도 물론 중요한 것이 되지만 더불어 서양의 물질문명의 변화와 발달이 큰 몫을 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술, 과학을 탐하다’는 서양미술에 근간을 두면서 미술작품에 담긴 과학의 성과를 찾아내고 미술이 다양한 사조를 형성하며 발달해온 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있다. 이야기의 순서는 미술과 과학의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이 미술표현기법의 변화과정이다. 저자는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일’을 미술의 꿈으로 보았다. 하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표현기법이 당시의 과학의 성과와 결합하여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내고 그 꿈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책의 이야기 흐름은 미술사조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새로운 표현기법의 필요성이 과학을 원하고 있었다는 점, 그런 미술가들이 과학의 성과와 만나 당시까지 실현할 수 없었던 한계를 차례로 극복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삼차원의 현실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에 실감나게 옮기란 대단히 어려운 점이었지만 이를 해결해간 것이 바로 과학의 성과를 도입한 결과 때문이다.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의 도입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화폭에 담아내기에 성공한 화가들은 그것에 멈추지 않고 이차원의 평면을 실체감을 불어넣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이상화 시킨 것이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현실의 직접적인 재현을 이룰 수 없었다. 

여기에서 미술이 과학을 꿈꾸게 된다. 수학, 사진, 역동학, 광학 등의 힘을 바탕으로 실재하는 것을 만지듯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대 관건은 질감의 표현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빛에 대한 탐구가 요구되었다. 나아가 순간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운동성과 시간을 평면에 재현하기에 이른다. 이후 미술과 과학의 만남은 분석과 상대성이론, 정신분석을 넘어 구조와 속도, 사차원, 무의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오랫동안 미술의 꿈이었던 현실의 재현이 실현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처럼 미술과 과학의 만남은 현대 사회의 화두가 되는 통섭이나 융합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지지만 내가 주목하는 점은 서양미술이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꿈을 이뤄가는 동안 동양의 미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이를 저자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산업혁명을 비롯한 급속한 사회의 변화가 이를 담고 표현하려고 했던 미술로 이어져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쳤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양은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양 미술에 대한 번역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드물게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저자가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집필한 저술이다. 저자의 글쓰기는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과 더불어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다. 미술에 관심 있고 서양 미술사조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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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의 향기 - 스물여섯 가지 향기를 간직한 사랑이야기
이수광 지음 / 미루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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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사랑을 통해 조선을 보다
인간의 영원한 화두는 사랑이다. 역사 이래 사랑으로 인해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는 경우를 볼 때 분명 그 특별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사랑의 모습 중에서 단연코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일 것이다. 수도 없는 문학작품 역시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대신할 위안거리로 삼기도 한다. 

남녀 간의 사랑 중에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이뤄지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나 사랑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례가 아닐까? 그렇게 이루지 못한 사랑의 모습은 대부분 남자들에 의해 초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남성중심주의 사상이 의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역사적 경험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을 것이다. 

이 책 ‘조선 여인의 향기’는 바로 조선이라는 사대부,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신분사회를 살았던 여인들의 사랑을 담고 있다. 조선에서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선 신분사회의 팔천으로 구분되어 사회적 멸시와 냉대를 받았던 천민의 삶 그것과 비교해도 많은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험난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중에도 인간이 가지는 본성일 이성에 대한 마음을 있었으며 사회적 한계로 인해 더 애절함을 담기도 했던 것이다. 

여인들의 사랑을 매난국죽(梅蘭菊竹)으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국화의 깨끗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대나무의 푸르른 향기를 간직한 여인을 각종 문헌이나 설화 등을 조선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용재총화, 청파극담, 문소만록 등 기록한 다양한 책에서 가져와 출처를 밝히며 저자 이수광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들이다. 신분이나 나이 등을 초월한 모두 스물여섯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조선의 여인은 어떤 삶은 살았을까? 조선 여인의 삶을 관통했던 것은 조선을 유지했던 기본 사상인 유학이었다. 유학의 기본이념은 효와 예였다. 이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었기에 남성과 가부장적인 의식을 배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여인들의 삶에 그대로 관철되어 부모와 남편, 자녀에 자신을 희생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러한 삶이 여인들의 생활을 구성하였기에 조선 여인들의 사랑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애절함이나 애틋함은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근간을 벗어난 사랑을 꿈꾼 사람도 있고, 남편을 향한 마음이 넘쳐나는 이야기, 천한 신분이지만 남성을 향한 마음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버렸던 사람, 기생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이름을 떨쳤던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야기 중 등장하는 남성이지만 주인인 여인이지만 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임금을 감동시킨 남자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여인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조선 여인들의 구구한 삶을 조명하고 싶어하고 있다. 사랑을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간에 그 사랑의 모습 속에서 당시를 살았던 부인, 노비, 기생, 애인들의 삶을 얽어매었던 사회구조적 모순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그 어떤 사랑도 당사자 외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그 무엇이 있다. 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땔 수 없는 인간 본성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환경이나 조건 등을 따지며 지고지순한 사랑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랑의 근본에는 변함을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여인들의 사랑에서 역설적이지만 그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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