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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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완성한 한 사람의 흔적

오직 한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서 볼 때 무모하다 이야기하리만치 그 한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한 삶의 지표가 보인다. 잘 아는 사람이 볼 때도 알 수 없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야 오즉할까? 하지만 그들로 인해 보통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일이 가능한 것이며 그런 사람들의 삶이 모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의 울림을 주목하는 것에 의해 험난한 길을 개척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매번 부러움과 경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안타까움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혹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오는 측은함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한길을 간사람 중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이 빛을 발하는 사람은 만나는 설렘은 생각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사진작가 김영갑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김영갑의 삶과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김영갑은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아직 자신에게 남은 온힘을 다해 갤러리를 만들고 그 갤러리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그를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가 생의 마지막을 살았던 곳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와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제주도가 한자리에 모인 공간 ‘김영갑 갤러리 모두악’이 그곳이다.

 

미련하리만치 한길을 걸어간 그의 삶은 가난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외부의 눈에 보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가 사랑한 그곳을 지키고 만들고 가꿔간 제주도는 그에게 특별한 장소다. 사진작가 김영갑을 있게 한 곳, 제주도는 그의 삶과 작품세계의 전부였다고 본다. 가슴 절절하게 써내려간 그의 고백은 독자들로 하여금 안쓰러움과 부러움, 때론 연민의 마음을 불러 오지만 그 길을 걸었던 김영갑의 내면도 그랬을까?

 

해가 뜨면 카메라를 챙겨들고 바다로 들판으로 산으로 오름으로 길을 떠났고 해가지면 자신의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와 또 밤을 세워가며 필름을 인화하는 시간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지났다. 필름값을 마련하기 위해 밥을 굶고, 버스비를 아껴 사둔 필름이 습기에 곰팡이로 버려야할 때는 배고픔보다 더 힘들었다는 고백에선 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말린 제주도의 힘든 생활이지만 김영갑에게는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그를 제주도에 붙잡아 두었을까? 어떤 사람은 그가 이어도를 훔쳐봤기에 신의 노여움을 타 벌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에게 미래였기에 자신의 온 생을 바쳤던 김영갑에게도 제주사람과 같은 미래였을 것이다. 그 이어도로 표현되는 제주도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김영갑의 삶에 투영되어 제주도의 자연을 그 답게 담아낸 것이라 본다.

 

온 생을 다해왔던 일에서 타의에 의해 밀려 났을 때 오는 절망감을 겪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삶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김영갑도 병마에 걸려 그토록 열망했던 사진찍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병을 고치기 무수한 노력을 했지만 더 이상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또 온힘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있는 갤러리 모두악에 담겨있다. 그가 남긴 사진 20만장과 그 사진과 사람들은 만나게 하는 공간이 남아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하여, 그토록 사랑했던 사진은 생생하게 그의 마음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두 번 읽게 만든다. 사진집이라는 특성이 사진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이지만 그의 고백을 읽어가다 보면 글이 주는 감동에 빠져 사진을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그의 마음과 공감하는 사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씩 사진을 보며 글에서 얻는 김영갑의 마음으로 사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 사진은 분명, 다른 느낌으로 남아 오랫동안 제주도와 김영갑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비참한 삶을 살다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고 그 길에서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이룬 사람이다. 하여,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오늘도 그가 남긴 사진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음이 바로 확고한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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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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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날개를 찾자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바다라는 물로 둘러싸인 섬은 고립을 대표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섬이라는 말은 때론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되지 못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섬을 고립시키는 것이 물이라고 한다면 그 물은 섬과 섬을 이어주는 또 다른 수단인 것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작가 김연수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벽과 그 벽을 통과하여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우리’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어떤 것일까에 접근하고 있다. 이야기의 출발은 입양아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과 섬처럼 존재하는 사람들의 ‘단절’이 불러온 현장을 직면하며 겪게 되는 상황을 그려가고 있다. 한국의 남해바다 진남에서 태어난 카밀라 포트만은 미국으로 입양되어 백인들 사이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녀는 양어머니 앤의 죽음과 양아버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 출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여섯 개의 상자를 통해 ‘기억’과 만나게 된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카밀라 포트만에게도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의 바닷가 진남을 찾아와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해당된다.

 

이 소설은 다양한 시공간을 담고 있다. 21세기 현재의 미국과 한국, 일본과 방글라데시와 1988년의 바닷가 도시 진남이 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진실’은 언제나 자신의 상황에서 만들어 온 상황인식의 한계를 가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방해하거나 오해하게 만든다. 주인공 카밀라 포트만(정희재)과 엄마 정지은의 시점을 오가며 자살한 정지은과 연결되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만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에는 입양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자식의 성공을 위한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신발공장의 엄마, 1988년 한국의 상황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엄마와 일본의 할머니가 등장하며 다르지만 같은 그 무엇이 있다.

 

작가는 이처럼 섬으로 존재하는 사람과 그 사람들의 기억을 연결하는 장치로 ‘아카이브’를 마련한다. 아카이브가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화하여 한데 모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 둔 파일’이라고 한다면 이는 단절된 사람과 기억의 파편들을 이어주는 단초로 작용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은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것......’으로 말하며 작가는 자신이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가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쓰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어쩜 작가는 쓰지 못한 이야기가 아닐까? 입양아가 겪게 되는 혼란과 자신의 엄마를 찾아간 곳에서 만난 진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사람들의 기억 속 진실은 한계를 가진 섬으로 존재하며 섬은 결국 육지를 향한 외침을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육지를 향한 이 외침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소통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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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무엇인가?
홍순래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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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여전한 미지의 세계

선조들이 남긴 문학작품이나 예술 작품을 보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특히, 그림 속의 상징들은 그 상징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살아오며 만들어 온 상징체계이다. 곧 문화의 일 측면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행복, 다산, 입신양명, 장수 등 인간이 바라는 욕망을 자연의 일부로 투영하고 그것에 담은 소망을 상징으로 만들어 온 곳이다. 그렇기에 이런 상징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면 당시의 문화나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그림이나 문학작품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꿈 역시 다양한 상징체계를 갖고 있으며 그 상징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게된다는 점이다.

 

이는 동서양을 구분 짓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가지는 특별한 능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꿈이라고 하면 우선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양이나 한국에서는 꿈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하고 서양의 심리학에서 보다 과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접하게 된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간 꿈에 대한 접근이 미신이나 점과 같이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에서 빗겨난 지점에서 주로 언급되어 온 현실이 반영되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불안한 심리적 상황에 접했거나 낮 시간 동안 무거운 경험이 남아 잠자는 시간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보통 꿈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범주에서 꾸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민족은 꿈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예지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자신의 앞날이나 범위를 넓혀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해 미리 알려주는 것으로 꿈은 다양한 상징체계를 통해 꿈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꿈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며 그것을 해석하기에는 그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어 보인다. 자신이 꾼 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늘 궁금하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고 적극적으로 꿈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책이 어문학사에서 발간한 홍순래의 ‘꿈이란 무엇인가?’이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꿈에 대한 이해와 해설, 꿈해몽의 ABC, 꿈의 전개 양상에 따른 실증적 사례, 꿈의 주요 상징에 대한 이해, 해몽의 신비성, 꿈에 대한 상식, 역사와 문학속의 꿈’으로 엮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꿈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양의 꿈에 대한 해석에 친근한 사람일지라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례를 접하다 보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친근감으로 다가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꿈에 대한 이해를 심리적인 측면을 비롯하여, 신체 내 외부의 이상 일깨움, 창조적인 사유활동으로써의 꿈, 계시적 성격의 꿈, 예지적 꿈 등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또한, 꿈은 무지개처럼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상징적으로 전개되는 점에 관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실증사례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 대해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쉽게 이해되면서 어떤 문학작품 못지않게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꿈의 해석에 대한 인식에 전환점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인 것은 꿈과 인간의 관계다. 불길한 꿈을 꾸고 난 후 드는 느낌이나 예지몽으로 미래를 이해하는데 한 가닥 끈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삶은 오리무중이다. 이 지점이 어쩌면 현실의 무거움을 이겨내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은 풀지 못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도전해야할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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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해부도감 - 집짓기의 철학을 담고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주는 따뜻한 건축책 해부도감 시리즈
마스다 스스무 지음, 김준균 옮김 / 더숲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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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거공간을 점검한다

시골집으로 이사하면서 책을 둘 곳이 없어 서재를 짓기로 했다. 안채와는 별도의 공간에 조립식 판넬로 짓는 것이지만 그 공간이 완성 된 후 책을 정리하고 이 공간을 활용할 생각만으로도 이미 공간은 완성된 것처럼 기분 좋게 시작했다. 가로 새로 9m에 5m 공간에 두 면은 기존 외벽을 활용하고 서쪽을 향하는 한 면은 통으로 창을 내기로 했다. 난방과 단열이 문제로 제기되었지만 바닥엔 전기 판넬로 기본난방을 하고 특히 단열에 신경 써서 내무 목공사를 마쳤다. 여름에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라 겨울 한 철을 지내고 나 봐야 단열과 난방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난방은 장작난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널따란 창문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시야가 확보되어 무엇보다 좋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책장을 들어놓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 책장을 활용하기로 하면서 책장 높이에 맞춰 실내공간의 높이를 계산했는데 지분 단열공사에서 오버된 공간이 책장을 세울 수 없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책장을 잘라 새로 조립하는 야단법석을 떨고 난 후에 탁자와 기타 가구의 위치를 정하고 간신히 책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여름에 공사를 시작해 사계절을 지냈다. 난방도 단열도 생각보다 양호하여 이 공간은 이제 이 집의 주요활동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몇 가지만 더 추가하면 서재로, 사랑방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작은 공간이지만 직접 지으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창문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공간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유리로 마감한 창에 대한 아쉬움이다. 건축에 관한 지식이 그저 고등학교 기술수업에서 공부한 것이 전부였기에 상식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다면 이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에 지어진 작은 시골집과 서재로 구성된 집은 이후 내가 살아가며 가꿔나갈 삶의 공간이 될 것이며 이 공간은 시간이 흐르며 쌓여질 기억으로 채워질 것이다.

 

건축에 관한 책은 여러 권 읽었다. 이 책들은 전통주택과 전통마을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실제 건축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거해부도감’처럼 건축과정에서 고려되어야할 내용을 담은 책을 읽었더라면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주거해부도감’은 집의 구조와 설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는 책이면서 건축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일반인 누구나가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을 재조명할 수 있는 시각의 전환이 주목되는 책이기도 하다.

 

현관의 기능, 계단의 활용, 문의 역할, 주방기구의 배치, 침실에서의 가구배치 등과 같은 살아갈 사람들의 활동공간에서 만나게 될 문제에서부터 공간 속에서의 사람들의 동선과 공기의 흐름, 도로와 인접성에 따른 집의 방향이나 주차장 배치 등 건축과정에서 실제로 만나는 문제에 대해 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살필 수 있는 저자의 기본 시각은 건축물이 주인이 아닌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생활에 맞춰져 있다. 이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거공간에 담겨진 사람들의 삶의 지혜와 그것이 출발하게 된 시작점에서 다시 보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리하여 ‘집의 모든 공간과 배치에는 그 나름대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수많은 도감이 건축을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엔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비교한다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생활하며 불편함이 느껴지는 자신의 주거공간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이 책에 실린 예를 통해 비교하며 알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필요에 따라서는 새롭게 가구배치를 하는 것처럼 간단한 것도 있지만 벽에 구멍을 내는 것이나 처마를 이어내 공간을 넓히는 것처럼 다소 복잡한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진 공간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그 공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늘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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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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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후보들은 연일 공약을 발표하며 미래는 희망과 함께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현실성 있는 정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조건과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각 후보가 속한 정당이나 개인들의 성장과 그간 정치적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후보를 선택하고 선택된 지도자에 의해 한국이 처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혼탁한 정치, 암울한 민생, 불평등한 외교, 외래문물의 수용, 교육정책의 혼란 등 수많은 현안은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200여 년 전 조선후기를 살았던 실학자들 역시 당시 자신들이 살아가던 조선의 현실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했다. 시대와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맞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바람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점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심에 ‘북학의’의 박제가가 있었다.

 

임용한의 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바로 그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살피는 책이다. 조선후기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이덕무 등 실학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박제가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에 대해 사실적 접근을 해가고 있다. 박제가의 출생과 성장, 청년시절 그리고 관료생활 등 그의 사적인 모습과 규장각 검서관과 현감 등 관료생활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민초들의 생활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승지를 지냈던 박평의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는 신분의 벽에 갇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상황에 절망하지만 어릴 때부터 탁월한 통찰력과 판단력, 방대한 학식과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났으며 고분고분하지 않고 직설적인 성격 등에 의해 자신의 뜻을 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시대를 함께 나눈 이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백탑파로 칭해졌던 박지원, 이덕무, 유득경, 이희경 등이다. 이들과의 교류는 시대와 신분의 한계에 머물러 신세한탄만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에 의해 이들 중 박제가와 이덕무를 포함한 백탑파 4인방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된다. 검서관 등용은 가난했던 생활이 안정됨을 의미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꿈꿔온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펼칠 기회를 만난 것이 되기도 한다.

 

박제가는 네 번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이 안고 있던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이 북학의라고 볼 수 있다. 북학의는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우리 것을 버려야 한다는 ‘중상주의’ 개혁을 중심에 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제가의 이런 앞선 주장은 당시 기득권 층 뿐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이었다. 국수주의적 경향성이 농후했던 당시 상황에서 다소 과격한 사상을 담고 있는 북학의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 책은 조선후기 실학자와 백탑파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점들을 담고 있다. 박제가와 이덕무, 이서구, 백동수 등과의 교류나 처가인 이순신 후손들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정약용과 박제가의 교류도 비교적 자세하게 밝히고 있어 조선후기 선각자들의 삶과 인적 교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밝히며 그의 외침을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의미로 되살려 내고 있다. 더불어 17~18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들에 대해 구조적 모순과 한계라는 시각을 통해 살핀다. 막연하게 생각되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의 삶과 비교하며 무엇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하는지 또한 알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는 나라와 백성의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관심을 가졌던 박제가의 외침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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