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홍신 세계문학 11
존 밀턴 지음, 안덕주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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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삶

인간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요인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는 종교적인 것과 떨어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원죄의식과 같은 종교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놓고 말하지 않아도 또 하나의 그것은 자신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준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이는 둘 다 생명의 탄생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면서 생명의 근원에 어떤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주목한 문학작품들은 많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버질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등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성과 악과 같은 삶 속에서 빈번하게 갈등하게 만드는 요소들과 무관하지 않다.

 

존 밀턴의 ‘실낙원’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160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성직자의 꿈을 품었으나 당시 국왕의 종교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시인으로 진로를 바꾸고 신학과 고전문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다. 자신이 살던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와는 달리 급진적인 성향으로 정치적 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과 인간의 관계 등을 통해 자신이 바라본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품으로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실낙원, 복낙원, 투사 삼손 등이 있다.

 

‘실낙원’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서사시로 그렸다. 아담 이전의 영원한 과거부터 아담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 일어난 일로 에덴을 사이에 둔 천국과 지옥이 주 무대로 그려진다. 총 12편으로 구선된 실낙원은 천사였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여 지옥에 떨어진 사탄이 복수를 꿈꾸는 세력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다.

 

지옥의 광경과 사탄의 영웅적인 풍모, 사탄군과 천사군이 하늘에서 벌이는 전쟁, 천지창조 장면, 천체의 화려한 운동 장면, 천국과 지옥 사이의 심연의 공간 ‘혼돈’의 모습, 환상적인 에덴낙원의 모습 등을 그려가는 웅장하고 세밀한 묘사는 존 밀턴의 문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보통의 서사시가 그렇듯 일상의 언어와는 거리를 둔 의식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서사시가 보다 웅장하고 우아하며 이야기 전반에 독특한 느낌을 불어넣고 있다. 이러한 문체의 사용은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장애요소이기도 하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생활방식이나 신을 바라보는 가치관 등이 변했다는 점도 작품을 작품으로만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이 동반한다는 점도 작품을 대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피조물로 창조된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어쩜 원천적으로 유혹에 노출된 것은 아닐까?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한 원죄는 결국 피조물을 창조자의 범주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에 인간이 삶 속에서 갈등하는 요소 또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포와 절망이라는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은 살아있는 동안 함께할 동반자이기에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일상을 꾸려나가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을 잃어버린 인간이 마음속에 낙원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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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 가까이 미술관이 있다는 것은 어쩜 행운일 것이다. 시골로 이사를 결정하면서 주변에 미술관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는 옥과미술관이 그곳이다. 도립전라남도옥과미술관이 정식 명칭이다.

 

옥과미술관은 아산 조방원 화백이 평생동안 수집한 간찰 5770점, 서첩류 99점, 설리대전 목각판 939점과 부지 4200여평을 1988년에 기증하여 설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외 소장품으로 백제, 통일신라시대 암 수막새 6점, 고문서 2점, 전라남도 중진작가 작품, 역대 전라남도 도전 대상 수상작품 80여점, 탁본 44점과 함께 1996년 9월 문을 열었다. 1층은 광주 전남ㅣ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의 전시회를 여는 공간이며 2층은 아산 조방원의 작품과 기타 소장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지금은 2012 광주시립미술관 양산동 창작스튜디오 발표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기간은 2012. 11. 24~2013. 1. 31까지다. 참여작가로는 김명우, 김형진, 박세희, 이성웅, 이재덕, 이진희, 임현채, 허수영, 브라이언 헌터, 이하윤 등이다.

 

*도립전라남도옥과미술관

  전남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산 1-3

  전화 : 061-363-7278

*관람시간

  3월~10월 : 09:00~18:00, 11월~2월 : 09:00~17:00

 

 

옥과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사찰 성륜사다.

성륜사는 2003년 입적하신 청화(淸華)스님이 1990년에 창건하여 대웅전, 지장전, 금강선원, 일주문, 정운당 등이 완공되었다고 한다. 설산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곳에 고만고만한 크기의 법당들이 자리잡고 있어 사찰을 거닐면 품속에 안긴 듯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특히 지장전의 문살은 형형색색 화려함 속에서도 단아함을 느끼게 하여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보곤한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겨울 산사의 고즈넉함을 전해주고 있다. 눈길을 헤치고 사찰을 찾은 불자들의 공부하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 온다. 추운 겨울 눈까지 내려 험한 길을 나선 이들의 가슴 속에 무엇이 담겼을까? 부처님의 지혜로 벅찬 현실을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산길을 내려 오는데 지난 늦가을 온 계곡을 넘쳐 흐를 정도로 향기를 내어 놓았던 은목서의 향기가 전해 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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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홍신 세계문학 9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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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문학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역사가 실재했던 사람의 지난 흔적을 살펴 그 속에서 삶의 본질을 추구해 가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문학은 작가에 의해 상상의 공간이라는 가상현실에서 인간형을 만들고 그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학 속에 그려지는 다양한 인간형은 작품의 무대가 되는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사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조건’의 작가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미술사가로 인도차이나의 크메르 유적 도굴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중국의 국민당과 손을 잡고 베트남 독립 운동, 중국 혁명 초기 광둥 국민당 정부에 참가하는 등 중국과의 인연을 맺었다. 앙드레 말로는 소설가이면서도 나치 정권에 대항하는 반나치즘 투쟁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한 작가이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이다.

 

‘인간의 조건’은 바로 작가의 그런 중국과의 인연으로 구상된 작품으로 1927년 상하이 쿠테타 당시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을 배경으로 한다. 빈손이나 한가지인 봉기군들이 무기를 탈취하는 과정을 그려가며 소설은 시작되고 있다. 테러리스트이면서 언제나 행동을 우선시하며 인터내셔널의 노선조차 거부하며 폭탄을 안고 장제스의 자동차에 뛰어들고 권총으로 자살하고 마는 첸, 북경대학 교수 지조르와 일본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테러리스트의 고독을 집단적 행동과 우애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기요, 직업혁명가로 기요의 죽음 뒤 고독에 빠지지만 그 안에서 위안을 삼는 카토프, 가족 때문에 혁명에 뛰어들지 못하고 고뇌하는 벨기에인 에멜리크 등이 주인공이다.

 

혁명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그려가는 ‘인간의 조건’은 투쟁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독, 번뇌, 갈등과 화합 등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념에 의해 인간이 지향해가는 삶에서 겪는 갈등,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욕, 혁명이라는 극단의 과정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세력 등 사회구조적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도 제기한다.

 

‘인간이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막연하나마 인간의 존엄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명을 사상이나 이념을 위해 또는 인류애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초개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생명의 의미는 무엇일까? 멀지않은 시대 우리 사회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버려 사회 정의나 민주주의 실천에 기어코자 했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어쩜 우리는 그들이 목숨을 버리며 얻고자 했던 것의 결과를 누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관계를 벗어난 삶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존재로써 인간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는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선배들의 삶에서 얻은 지혜의 혜택을 누리며 사는 후배들의 당연한 도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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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내리기 시작한 눈이 잠든 사이 온 세상을 자신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번 겨울 두번째 내린 눈이 이렇게 많이 와 올 겨울은 눈 풍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는 풍년이 든다고 하니 이 추운 겨울도 그리 시린 가슴은 아니다. 풍성한 내년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본체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저 멀리 나무 한그루는 감나무로 잎을 떨군채 동네 새들의 놀이터로 활용된다. 저 감나무는 앞 풍경을 바라보는 기준범으로 작용하여 멀리 관음사가 깃든 검장산으로 시선을 이끈다.

 

서쪽으로 난 서재의 넓찍한 창으로 앞산 눈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고 오후 내내 따사로운 햇살이 서재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따로 난방하지 않아도 될만큼이다.

 

눈으로만 바라보기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신발은 고쳐신고 길을 나선다. 이번엔 저수지 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앞 눈경지와 옥과 인근의 농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저수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저수지 위쪽으로 사람의 흔적이 없기에 산에서 내려온 깨끗한 물이 고여 맑기만 하다. 가까이 물이 있어 사람 살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봄이나 가을 물안개의 근원지이지만 지금은 포근한 눈 이불을 쓰고 얼어 있다. 멀리 연산에 머리에서 내려오는 눈 담은 구름이 밀려 온다. 마을 안길을 걸어 저수지까지 오는 것도 힘이 든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걸음걸이를 자꾸 더디게 만드니 말이다.

 

저수지 위쪽까지 걸어가는 동안 제법 큰 동물발자국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인다. 간밤 눈을 피해 마을로 내려온 동물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동물이 이런 발자국을 남긴 것인지...더 올라가자 곧 답이 나온다.

 

지난 초겨울 벌을 친다는 사람이 저수지 위쪽이 콘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벌통을 늘어 놓았는데 그 벌 키우는 아저씨와 함께 사는 개의 발자국이였다. 큼직한 개 두마리가 경계하는 몸짓으로 짖고 있다. 올가오는길 내려온 사람 발자국이 있었는데 아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저수지를 건너가는 조그마한 다리가 있는데 그 부근에 정자가 있다. 여름철 사람들이 모여 추름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 바로 앞 소나무가 눈을 뒤짚어 쓰고 저수지를 지키고 있다. 마치 저수지의 수호신처럼 말이다.

 

 

늦가을 올랐던 연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로 접어든다.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올라가다 지나온 길을 돌아 본다. 눈 위로 처음 발자국을 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누군가는 처음 눈길을 걸어갈 때는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올 사람들을 생각하여 똑바로 가라고 했지만 자꾸 미끄러지는 발걸음에 비틀거리기만 한다. 이래서야 뒤따라올 사람들이 헷갈리기만 할 것 같다. ^^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과 함께 게곡물로 더위를 식혀준 곳이지만 지금은 계곡도 산길도 눈으로 덮혀 있다.  

 

나무며 길 위에 쌓인 눈이 며칠전 내린 눈과 같지 않다. 묵직한 느낌으로 착 가라앉았다고 해야 할런지...하여 소나무며 대나무 잎에도 쌓인 눈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눈은 많이 왔지만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고 수분을 많이 담고 있어서일까? 길 위를 걷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산 정상으로 가는 길 초입에 있는 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눈을 머금은 구름과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서이다. 길을 돌아 다시 저수지까지 내려왔는데 올라올때 만난 개들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이 와서 이제는 집으로 들어간 것일까?  

 

 

저수지 전너편 능선을 올라 다시 저수지를 발 아래두고 연산을 본다. 올라올때 본 것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이제 마을 옆 호남고속도로가 보이는 정상으로 올라간다. 급경사를 올라가야 하는데 지팡이가 없어 죽은 산죽나무 한가지를 집어 들었다. 지팡이 삼아 의지하고 올라갈만 하다. 내집 서재에서 바라보면 사야를 가리고 있는 산의 뒷편으로 가는 길이다. 그곳에 올라가면 정자하나가 있고 그곳에선 순천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고속도로 건너편이 전남과학대학이 있는 옥과다. 비록 면소재지이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있어 젊젊은이들이 많은 곳이다. 군립도서관에 아직까지도 대장간이 남아있는 시골장까지 열려 사람살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사진의 가운데 오른쪽 얼핏 보이는 마을이 내가사는 연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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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2-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남이신가요. 정말 평지밖에 보이질 않군요!
저렇게 소복히 눈이 쌓이 평지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하고 꽉 찬 느낌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2-2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광주는 눈이 별로 많이 안 와서 오전에 기온이 올라가니 많이 녹았어요.
옥과는 광주와 가까와서 그런지 아파트가 꽤 많더군요.
혹시 무진 님 사는 곳이 오산인가요?

프레이야 2012-12-2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화리,라고 하셔서 제가 아는 그곳인가 했어요.^^
반갑습니다. 덕분에 눈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보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평화로운 풍경이 참 고맙습니다.^^
제가 사는 곳엔 어제도 눈이 오지 않았어요. 대신 비가 좀 내리다 그쳤지요.
 
아시아의 작은 마을 - 어느 날 문득 숨고 싶을 때
조현숙 지음 / 비타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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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독이는 쉼의 여행

무엇이든 다 특유의 표정이 있다. 보통의 경우 생명이 있는 동물들에게서 표정을 읽지만 보다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의 표정일 것이다. 친한 사람이든 처음만나는 사람이든 말 보다는 그 사람의 표정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어쩜 사람 사귐의 일반적인 경향성이 아닌가 싶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만남의 성격과 내용이 결정되는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정은 사람에게서만 중요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길 날마다 만나는 길거리의 표정, 자동차, 사무실, 길거리 가로수를 비롯하여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내가 사는 곳의 표정도 있다. 이런 표정은 고정불변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수시로 변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사람의 일상에 영향을 주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이렇게 영향을 주는 도시의 표정에 그리 민감하지 못하다. 늘 익숙한 풍경에 젖어든 까닭이리라. 이런 도시의 표정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처음 방문한 사람이 느끼는 것이 다를 수도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색다른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요즘은 여행의 트렌드가 많이 달라졌다. 관광이나 유흥이 주된 여행에서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휴식과 은둔’의 시 공간을 찾아 가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기에 머물며 느끼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이 어쩜 여행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런 여행의 트렌드에 맞는 여행에세이를 만나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 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숨고 싶을 때’라는 부제를 단 조현숙의 ‘아시아의 작은 마을’은 바로 그런 여행에세이다. 삶에 지쳤거나 버거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나 사랑의 배신에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 쉼이나 숨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때 그런 여행자를 안아줄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바로 그곳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이든 할까 말까를 망설일 때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라고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이라면 떠나라고 한다. 이것은 어쩜 미래에 저당 잡혀 오늘을 허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삶의 메시지가 아닌가도 싶다.

 

‘아시아의 작은 마을’은 저자가 지난 10년간 아시아 전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이 주는 온기와 정취에 위안 받아온 곳들 중에 가장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곳들을 골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그곳에 숨어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내닫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누리라는 것이다.

 

이 여행에세이에는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와는 동떨어진 곳들이다. 루앙프라방, 씨판돈, 바간, 만달레이, 인레, 말라카, 빠이, 꼬묵, 우붓, 무이네, 티베트, 타이둥, 포카라 등 현대 문명과는 다소 거리를 둔 아시아의 10개국 19곳의 마을들은 머물러 있기에 좋을 정도로 시간이 멈춘 곳들이다. 시간이 멈췄다는 것은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어쩜 어색한 공간이며 머물기에 부족함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쉼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나 그런 경험을 하고 싶은 예비여행자들이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일 때 바로 이곳이야 라고 알려주고 있다.

 

여행은 편안한 쉼이나 여유를 만끽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때론 커다란 충격 속에서 느낀 감정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저자가 티베트에서 경험한 천장의 모습은 그 어느 여행에세이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담고 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먹먹한 가슴을 안고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했던 그 경험은 저자에게 자신 내부로 향한 깊은 성찰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특별한 경험 때문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저자는 시간이 멈춘 이곳들에서 안정과 평안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마을이 주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머무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표정이 그 주된 이유라는 것을 알고 한 층 더 가까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여행의 의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마을의 표정에서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책은 삶에 지쳤거나 버거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말없이 곁에 머물러 주는 친구처럼 든든한 삶의 동반자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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