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문화를 품다 - 벽을 허무는 소통의 매개체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문화 견문록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이현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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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도 가깝지도 않지만 늘 함께하는 술

나에게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평소 술과 친하지는 않지만 술 문화에는 마음을 열어두고 있던 나에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술은 하나의 장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제약이니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느 날 자주 만나던 지인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제의했다. 그 사람은 옳거니 오늘은 마음껏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술자리에 나왔지만 그야말로 한 잔에 그치는 나를 두고 다시는 같이 술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 후 그 사람과 우연이라도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술잔을 건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여전히 술과 나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 때는 술 마시는 양을 늘려 보고자 애를 쓴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허사였기에 이젠 더 이상 술과 씨름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후 가장 아쉬운 점이 사람들과 소통의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술과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술 문화는 그렇게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간혹 그 한잔이 생각날 땐 혼자서 한잔씩 하곤 한다. 그렇게 술이 주는 순기능은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이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리라 생각된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식주와 관련된 무엇 하나 사람들의 일상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문화와 떨어질 수 없다. 어느 것을 선택해서 그와 관련된 역사를 찾아본다면 모두가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술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술만큼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술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소주’와 ‘맥주’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맥주, 문화를 품다’는 그런 술중에서 맥주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역사와 맥주의 상관관계를 찾아가는 책이다. 약관의 나이에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회사인 산토리에 입사하고 이후 맥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미 ‘맥주전래’와 같은 책을 펴냈던 저자 ‘무라카미 미쓰루’는 이 책에 맥주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술의 역사를 거슬러 가면 5천 년 전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까지 올라간다. 술과 사람들의 인연이 그토록 깊다는 말일 것이다. 이후 식량재배 기술이 늘고 또 자연 속에서 발효되는 곡식을 살피는 과정에서 맥주에 대한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 술을 만들고 이 술이 종교와 결합되며 전쟁이나 민족의 대이동에 의해 전 세계로 펴지게 되는 과정을 찾아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 맥주의 역사를 찾아본다. 특히, 이는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유럽에서 맥주의 변천사는 곧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서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한다. 종교의 본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도원과 맥주의 관계 그리고 2000년대 말에 와서 중국의 맥주회사 세곳이 세계 10대 맥주회사에 올랐다는 점이다. 또한 이제 갖 100여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맥주가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이제는 술이라고 할 때 소주와 맥주로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발전해온 과정도 흥미롭다.

 

술과 친하지도 않고 그다지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리 가깝게 다가오지 않지만 맥주를 주테마로 살피는 인류의 역사는 흥미롭다. 술을 팔아 재정을 확보하면서도 때론 금주령으로 단속하고 건강에 해롭다고 절재를 요구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술이지만 그래도 술은 각박한 사람들의 삶에 쉼과 여유를 주는 훌륭한 매개자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맥주와 인류의 공존은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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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 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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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이 불러온 문학의 꽃, 유배문학

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그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점이 자신의 의지와 결부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 보장받는 사회적 관계에서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찾는다. 그렇기에 사회로부터 단절은 한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런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되는 경우는 범죄를 저질러 강제로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런 강제적 사회 단절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다분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자신과 반대편에 선 사람을 중상이나 모략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내는 유배를 보낸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한 경우는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겠지만 유배 또한 그에 못지않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정치는 곧 자신의 삶이었기에 그 사회로부터 강제적 퇴출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실로 막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하여 정치적 비중이 큰 이유로 유배를 가는 경우 한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졌다. 그래서 오늘날 유배의 유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곳이 한양에서 먼 남해안의 바닷가나 섬 등지다.

 

다양한 이유로 이런 유배를 떠난 사람들은 그 다양한 이유만큼 또 다른 모습의 유배생활을 보냈다. 어떤 이는 자신을 유배 보낸 임금을 향한 끝없는 구애의 글을 보내기도 했고, 좌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고, 좌절과 외로움을 문학이나 학문의 연구에 전념하는 것으로 풀기도 했으며 다른 이는 유배간 곳의 지역적 특수성이나 풍속 등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학문적 성과나 김만중의 소설, 윤선도의 시문학이 그런 반증이 될 것이다.

 

박진욱의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는 그런 유배생활을 했던 한 사람의 흔적에서 출발하고 있다. 200여 년 전 남해로 귀양 간 류의양이 유배지에서 보고 겪은 일을 기록한 ‘남해문견록’을 발견하고 그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남해의 과거와 현재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후의 기록이다. 13일간의 도보와 자전거로 남해를 돌아다니며 만남 유적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담은 것이다. 저자의 발길이 닿는 곳으로는 김만중과 관련된 남해향교와 유배지 노도, 고려 말 성리학자 백이정의 사당인 난곡사, 벽작개의 암각화, 양아리 고대문자 암각화, 조선시대 남해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 미조항, 최영 장군과 관련된 무민사 등이다.

 

글을 풀어가는 저자의 느긋함과 넉살이 지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낫선 여행객을 맞이하는 시골 노인네들의 외로움이 보이고 매립으로 변해버린 해안선이 바꿔놓은 섬사람들의 일상을 포함하여 기능을 다해가는 정자나무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산성의 흔적들이 사람이 없어 비어가는 농촌과 섬마을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 박진욱의 풍부한 역사에 대한 지식은 유배와 관련된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저자의 열정이 지나친 것인지 간혹 잘못된 상식도 전하고 있다. 가뭄이 들면 나무들이 물을 내 놓는다는 말은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뭄이 들어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물로부터 대다수의 영양분을 얻고 있는 나무가 그 생명과도 같은 물을 내 놓겠는가?

 

정치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다분히 정치적 이유로 유배를 떠나야 했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앞 만보고 달려가는 질주가 미덕인 현대사회에서 일부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관계를 성찰해 보는 시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또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하는가? 일상에서 떠남이라는 모습은 같을지언정 강제와 자발적이라는 출발점이 다르기에 그 순기능 역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들의 유배에서 일상에서 떠나 자신을 돌아봄을 유추해 내는 것이 억지라고는 볼 수만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를 통해 유배가 가지는 의미와 그 결과를 비롯하여 현재 남해라는 곳의 주소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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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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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 남자의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스님, 배우, 야구선수로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세 남자의 이야기에서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존재함을 느꼈다. 스님이야 깨달음을 위해 출가하고 그동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 시간이 많아 삶의 지혜를 밝혀줄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고 배우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해야 하기에 많은 생각을 하엿을 것이고 이런 경험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야구선수라고하면 마운드에 서서 던지고 치는 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단순한 삶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편견을 확실하게 깰 수 있었다. 이날 모인 사람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과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멋진 삶을 살아가는 차인표 그리고 메이저리그 진출로 한국 야구사를 새롭게 쓴 박찬호가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의 따스한 대화에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앞만 보고 바쁘게 질주하기만을 살기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서 보면 일탈일지도 모르는 것이 멈춤에 관한 것이다. 이 멈춤을 바로 자신을 돌아보며 현재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발점으로써의 기능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멈추면 비로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열린 가슴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을 발견했다. 시‘연탄길’이나 어른을 위한 동화‘연어’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가 그 책이다. 이 책은 안도현 삼십 여 년의 문학 활동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담은 글들 중에서 골라 엮었다고 한다. 시인 안도현은 한국 현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 것을 시와 산문이라는 문학 형태로 옮겨온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발표하는 글들에서 독자들은 삶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에는 삶은 너무 가볍다, 그때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내 마음의 느낌표,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자 등 다섯 가지의 테마로 엮인 글들이 있다. 각 테마의 제목에서 보듯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이 삶이다. 삶, 답이 없다”(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처럼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안도현 시인이 문학 인생과 자연인으로써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며 느낀 감정이 살아 있다.

 

시인의 눈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섬세하며 따뜻하고 때론 용감하다. 그렇기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할 말이 시로 표현되어지며 독자들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소통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 책에 안도현의 아포리즘이라는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인다. 안도현에게 있어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은 시이며 그의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청년에서 이제 중년을 넘어선 시인의 삶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삶에 쫓겨 내 주변에서 사라졌던 사소하고 다양한 대상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연말연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앞날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에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지천명을 맞이한 마음에 별 다른 감흥이 있지는 않아 다소 민망하기도 했다. 간혹 멈춤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이 멈춤에서 얻은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그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돌아보며 내일을 생각하는 시기에 자신을 성찰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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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내 서재의 깊은곳에 머물던
햇볕이 산너머로 사라진다
조심스래 어둠이 스며드는시간
창문에 뭔가 부딪치는 소리ᆢ뭘까?

... 이름모를 한무리 새들이 날다
유리창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만다
급히 창문을열고 나가
꼼짝 못하는 새를 본다
이처럼 가까이서
새의 눈을 본 것은 처음이다

정신을 차리는지
움직임이 보이고
이제 황급히 날아간다

다 행 이 다


그저ᆢ아무일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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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 - [건축학개론]에 담긴 나를 위한 공간의 재발견
구승회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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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시간이 머무는 곳

통섭은 여전히 유효하며 날로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우리시대 화두라 할 수 있다. 전문적인 각자의 분야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면서도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이를 통해 새로운 주제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해 간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통섭을 굳이 학문이나 학자들의 엄격한 기준으로 기반이 되는 곳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모든 분야로 확대 할 때 통섭이 지향하는 바를 구체화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과 영화 어쩜 이처럼 다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한 편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시켰다. 2012년 다소 버거운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동안 가슴을 적셨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왔던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이 주인공이다. 흥행영화의 성과를 이어 받아 영화 속 ‘서연의 집’을 건축한 건축가 구승회의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이라는 책으로 영화와 건축의 이채로운 만남이 불러온 시너지 효과를 만나는 기회를 갖는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건축의 공통분모는 많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헤어지고 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 집을 짓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묻힌 기억과 현재의 감정이 담겨지는 영화는 ‘서연의 집’이라는 공간에 그대로 담긴다. 작은 오해로 인해 큰 강을 건넜던 두 사람은 새로 짓는 집이라는 공간 속에 자신들의 기억을 서로 몰래 새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축학개론’의 ‘서연의 집’은 감독과 건축가의 오래된 인연으로 시작된다. 같은 대학 건축과를 함께 다니고 이웃에 살며 소주잔을 나눈 묵은 세월이 영화 속 ‘서연의 집’이라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를 매개로 저자 건축가 구승회는 영화 속 ‘서연의 집’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건축가로 살아오며 느낀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인 기억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정릉과 창신동 골목길, 누하동 한옥집, 수유동 시장 골목, 개포동 아파트 옥상 위의 하늘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은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의 기억을 함유한다. 이런 공간들을 통해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공간들이 가지는 의미들을 말한다.

 

이 책은‘건축학개론’의 ‘서연의 집’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점은 3부의 ‘공간은 무엇, 공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법’에 담겨있어 보인다. 기억이 숨쉬며 살아있는 곳은 생각속의 상상의 그 무엇만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무주공산 속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과 함께하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는 그곳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추억이라는 것도 공간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계단이 왜 위로의 공간이 되는지, 대문 밖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에 어떻게 발 디딜 것인지, 지루하고 강요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 등 저자는 이런 공간의 순기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게 한다. 또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온 건축가들과의 인터뷰에서 건축가도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는 곳이 있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다 지난해에 시골집을 마련하며 마당 한 쪽에 조그마한 서재를 지었다. 단열과 난방만 그럭저럭 해결하고 책과 책상을 배치하여 이제는 안정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좋아하는 책을 보고 악기를 연주하며 때론 아무런 생각 없이 창밖 풍경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살아가는 동안 이곳에 쌓일 시간의 흔적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이런 감정이 건축가인 저자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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