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

모래밭 위에 무수한 화살표들,
앞으로 걸어간 것 같은데
끝없이 뒤쪽을 향하여 있다

저물어 가는 해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드센 바람 속을
뒷걸음질치며 나아가는 힘, 저 힘으로

새들은 날개를 펴는가
제 몸의 시윗줄을 끌어당겨
가뜬히 지상으로 떠오르는가

따라가던 물새 발자국
끊어진 곳 쯤에서 우둑하니 파도에 잠긴다

*손택수의 시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다. 앞만 보고 가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실은 걸어온 뒤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뒤를 돌아보는 일, 꽃이 피고 새가 날며 내가 오늘을 사는 힘일지도 모른다. 지금 누리는 봄도 다 겨울 덕분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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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차심

차심이라는 말이 있지
찻잔을 닦지 않아 물이끼가 끼었나 했더니
차심으로 찻잔을 길들이는 거라 했지
가마 속에서 흙과 유약이 다툴 때 그릇에 잔금이 생겨요
뜨거운 찻물이 금 속을 파고들어가
그릇색이 점점 바뀌는 겁니다
차심 박힌 그릇의 금은 병균도 막아주고
그릇을 더 단단하게 조여준다고……
불가마 속의 고통을 다스리는 차심,
그게 차의 마음이라는 말처럼 들렸지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은 잔에선
차심만 우려도 차맛이 난다는데
갈라진 너와 나 사이에도 그런 빛깔을 우릴 수 있다면
아픈 금 속으로 찻물을 내리면서
금마저 몸의 일부인 양

*손택수의 시 '차심'이다. 시간이 쌓일 수 있는 것은 틈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나 관계 속 상대방에게도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를 수 없다. 차심만 우려도 차맛이 나듯 틈에 쌓인 시간으로도 알 수 있는게 사람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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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봄은 자꾸 와도 새봄

사랑은 지루하지 않죠. 지루한 건 사랑이 아니예요
아무리 지루한 풍경이라도 사랑 속에 있을 땐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사랑은 그러니까
습관이 되어도 좋아요. 중독이 되어도 괜찮죠
파도는 지치지 않잖아요

봄은 자꾸 와도 자꾸 반복되어도
여전히 새봄이잖아요
꽃은 자꾸 펴도, 자꾸 졌다 피길 버릇해도
물릴 일이 없잖아요

절망이 습관이면 곤란하죠. 반성도 버릇이면 곤란하죠
사람이 절망과 반성의 기계가 된다면
그처럼 속상한 일이 어딨겠어요

사랑 속엔 결고 버릇이 될 수 없는 절망과 반성이 있거든요
그러니 사랑에만 중독이 되기로 해요 우리
자꾸 와도 새봄인 봄처럼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기로 해요

*손택수의 시 '봄은 자꾸 와도 새봄'이다. 시간에 익숙해져 감정이 무뎌지지 않기로 하자. 자꾸 오는 봄을 언제나 설렘으로 맞이하듯 사람도 봄을 맞이하듯 하자. "자꾸 와도 새봄인 봄처럼"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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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驚蟄이다.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절기다. 개구리야 진즉 나왔으니 잘 적응했을 테고 새로 나온 싹들도 볕을 향해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봄이 봄 같지 않은 것은 계절 탓이 아니다. 움츠러든 마음이 미처 봄을 안지 못하기에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넓어진 거리만큼 자연을 들이면 어떨까 싶다.

안개의 포근함으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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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꽃단추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손택수의 시 '꽃단추'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는 것, 단정함이 주는 맛이 삶의 깊이를 대변한다. 조금은 부족한듯 틈을 열어두어야 숨을 쉴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단추와 단추 사이 그 틈이 있어야 꽃이 핀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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