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실까?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하나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시인의 시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실까?'다. 꽃을 보는 시작은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 때문이었다. 꽃을 찾아다니다 보니 문득, 내 안의 무엇이 그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이 전해준 말 '네가 꽃이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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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탐라유람기
짠물을 건너는 마음에 장마 온다는 것은 염두에도 없었다. 볕 나면 좋고 비 오면 또 비 오는데로 특별한 맛과 멋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저없이 나선 길이다.

우산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로 비 내리는 바다는 속내를 다독이기에 안성마춤이다. 땅나리와 눈맞춤하기 위해 땅과 거리를 좁히는 동안 쉴 사이 없이 환영 퍼레이드를 펼치는 비행기가 꽃을 대신 해도 아껴두었던 웃음을 꺼내느라 가는줄 모른다.

거문돌들의 뾰쪽한 마음들이 속내를 감추지 않는 바닷가다. 한라산을 내려온 바람은 바다 특유의 묵직한 기운을 날려주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가볍게 돕는다. 참나리, 갯장구채, 해녀콩, 갯쑥부쟁이, 흰엉겅퀴, 개맥문동ᆢ 피고지는 꽃들 사이에 단연 돋보이는 황근의 은근한 미소가 첫눈맞춤 그때보다 더 환한 미소로 가슴을 뛰게 했다. 지난해 통째로 마음을 훔처간 황근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탐라유람의 팔할은 이룬 셈이다.

곶자왈을 품고 있는 올티스의 길고 긴 여름밤은 벗들과 꽃피운 이야기의 향기는 담장을 넘어 바람과 어울리고, 거문오름을 바라보며 새벽에 시작된 산보는 드넓은 차밭 구석구석 발도장을 남겨야한다는 사명이라도 받은듯 끝날줄을 모른다.

녹차의 향과 맛을 닮은 주인부부의 정갈한 아침상은 한치와 갈치국으로 육지에서 건너온 이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꽃에 대한 애정은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교래폔션의 뜰은 언제나 정겹다. 유독 이뻣던 지난해 금꿩의 미모를 잊지 못해 지나치지 못했던 마음에 환한 꽃등이 켜진다.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화분들은 탐라 특유의 꽃들로 넘치고 꽃을 나눠주는 눈가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반가운 미소다.

오지 못한 벗들을 잊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라는 뜻이었을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잠시 들렀던 베게엔 낯선 꽃들이 식물을 수준이다. 양치식물과 이끼를 주제로 한 정원과 특유한 구조는 머리속에 담아두었다.

한라산의 속살을 보러 길을 나섰다. 잦아든 비로 한결 가벼워진 걸음을 실꽃풀 무리들이 반긴다. 내린 비로 폭포를 배경으로 서서 쏴, 앉아서 쏴, 누어서 쏴, 연사, 점사ᆢ 꽃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마음들이 분주하지만 누구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누려본 이들만이 갖는 느긋함이다.

꽃쟁이들은 대부분 먹는 것에 대해 주목하지는 않는다. 늦은 점심인지라 탐라 벗들이 마음이 쓰였나 보다. 맛집을 찾았는데 대기열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일요일 쉬는 집들이 많고 두리번거리다 정을 나눈다.

이별은 짧아야 한다고 했던가. 늘 건너 간 것보다 건너 온 것이 더 풍성하다. 비행기 창문으로 인사를 건네는 비를 뒤로하고 오른 하늘은 솜털구름으로 가볍다. 이내 짠물을 건너올 벗들과의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꽃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벗들의 마음이 이토록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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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서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공광규 시인의 시 '얼굴 반찬'이다. 반찬 투정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일까. 밥맛이 없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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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잃어버린 문장

푸장나무 향기가 풋풋한 마당
쑥대를 태우며
말대방석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별과 별을 이어가며 썼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 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던 문장
어머니의 콧노래를 받아 적던 별의 문장

푸장나무도 없고 쑥대도 없어
밀대방석을 만들던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 무릎마저 없어
하늘공책을 펼칠 수도 읽을 수도 없는 문장

별과 별을 이어가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 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덕 그 문장이.

*공광규 시인의 시 '잃어버린 문장'이다. 내겐 할머니의 다독임으로 기억되기에 잊혀진 목소리를 더듬는다. 없어진 것들은 내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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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말밤나무 아래서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당신 수다야”라고 대답했던 사람이죠

아침 햇살 살결과 이른 봄 체온
백자엉덩이와 옥잠화 성교
줄장미 생리하혈과 석양의 붉은 볼
물봉선 입술과 대지의 살 냄새를 가진 사람이죠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죽음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간결하게
“당신을 못 보는 것이지”라고 대답했던 사람이죠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말밤나무 몸통과 말밤 눈망울
말밤나무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죠

*공광규 시인의 시 '말밥나무 아래서'다. 내게 이 바람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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