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나무들은 때로 붉은 입술로 말한다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고뇌하고 분노하는 시간도 끓는 생이다
기다림만이 제 몫인 집들은 서 있고
뜨락에는 주인의 마음만한 꽃들이
뾰루치처럼 붉게 핀다
날아간 새들아, 어서 돌아오너라
이 세상 먼저 살고 간 사람들의 안부는 이따 묻기로 하고
오늘 아침 쌀 씻는 사람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햇빛이 우리의 마음을 배추잎처럼 비출 때
사람들은 푸른 벌레처럼 지붕 아래서 잠깬다
아무리 작게 산 사람의 일생이라도
한 줄로 요약되는 삶은 없다
그걸 아는 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간다
반딧불 만한 꿈들이 문패 아래서 잠드는
내일이면 이 세상에 주소가 없을 사람들
너무 큰 희망은 슬픔이 된다
못 만난 내일이 등 뒤에서 또 어깨를 툭 친다
생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고통도 번뇌도 힘껏 껴안는 것이 생이다
나무들은 때로 붉은 입술로 말한다
생은 피우는 만큼 붉게 핀다고

*이기철의 시 '나무들은 때로 붉은 입술로 말한다'다. 시간을 겹으로 쌓아가는 생명의 근본은 피가 붉듯 '붉음'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모든 생명들의 자잘한 일상이 모여 그 붉음을 잉태할 것이다.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또가원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벼락 부자가 되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지난 10월 중순, 바다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진만 보면 "와~ 바다"를 외치는 주인의 마음을 곡해한 카메라가 울진 동해바다로 가출을 감행한 후 돌아 오지 않았다. 그 후유증으로 주인은 아직 부자연스러운 몸짓에 갇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꽃이 진 계절이라 눈에 보이는 꽃이 뜰의 국화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꽃보면 의례 카메라를 들이대던 그런 날들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손 보다 마음이 먼저 들썩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있을 때보다 더 간절함을 달래려고 애써 안그런 척 하며 뒤숭숭한 마음으로 위안 삼는 중이었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 시간 차이를 두고서 두대의 카메라가 내게 왔다. 바다로 가출한 카메라가 꽃단장하고 돌아오기 전까지 심심한 손 위로 해주라고 앞서서 보내고 가져온 마음이 꽃보다 향기롭다. 다 꽃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만나는 곳마다 꽃자리다.

나름대로 손에 익히다 보면 어느덧 꽃시계는 섬진강에 매화 필 때가 될 것이다. 마음은 벌써 은근히 스며드는 매화향기에 취하듯 그리운 이들과 함께할 날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섬진강 책사랑방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헌 책방 대우'(since1978)가 옮겨 온 자리다. 섬진강가 모텔을 개조해 3층까지 책이 빼곡하게 자리 집았다. 1층엔 '북카페 선'도 운영 중이다.

시간의 흔적을 품은 책들을 일삼아 구경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다소 어지럽게 놓이고 책장에 박힌 책들 속에서 옛 기억 소환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첫 방문 기념으로 글을 쓰고 시진을 찍는 사람 이지누의 책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2004 샘터사) 을 손에 들었다. 표지를 넘기자 "2004. 5. 18 예일 신경외과병원 입원실에서..."라는 연필 글씨가 책이 걸어온 흔적을 짐작케 한다.

몇몇 책은 마음 속으로 찜 해두고 왔으니 종종 들러 새로운 인연으로 맞이 할 날을 기약해 둔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책 제목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처럼 "섬진강 책 사랑방"이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쌓인는 공간이길 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 있고 눈밝은 지역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섬진강 책사랑방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로 46
T. 061)782-38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_읽는_하루

꽃잎은 오늘도 지면서 붉다

오늘 내 발에 밟힌 풀잎은 얼마나 아팠을까
내 목소리에 지워진 풀벌레 노래는 얼마나 슬펐을까
내 한 눈 팔 때 져버린 꽃잎은 얼마나
내 무심을 서러워했을까

들은 제 가슴이 좁고 산은 제 키가 무겁지만
햇빛 비치는 곳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삶도 크고 있다

길을 걸으며 나는
오늘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걸어간 길의
낙엽 한 장도 쓸지 않았다

제 마음에도 불이 켜져 있다고
풀들은 온종일 꽃을 피워들고
제 마음에도 노래가 있다고
벌레들은 하루 종일 비단을 짠다

마른 풀잎은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따뜻하다
나는 노래보다 아름다운
풀꽃 이름 부르며 세상길 간다

제 몸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
제 사랑 있어 세상이 밝다고
꽃잎은 오늘도 지면서 붉다

*이기철의 시 '꽃잎은 오늘도 지면서 붉다'다. 지면서도 붉은 나뭇잎을 보러 분주한 사람들의 마음자리에도 붉음이 내려앉았다. 그 붉음이 옅어질까봐 해마다 반복적으로 붉은 꽃을 찾고 붉은 단풍을 밟는다. 올해도 붉었을 그대 마음자리가 여기에 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선 재미가 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 일이라 손 놀림 따라 써지는 글씨가 신기할 따름이다. 과정의 7부 능선을 급하게 지나왔다. 급한 과정과는 달리 아직은 마음이 느긋하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과정 이후의 일은 또 방법이 생길 것이다. 

손에서 놓지 않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