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素'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서예가 박덕준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안으로만 파고드는 소리로 가만히 읊조린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소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다시 1년을 더한다. 1년 전 그날이나 다시 1년을 더하는 오늘이나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다르지 않다.

종이에 스며든 먹빛과 글자가 가진 독특한 리듬에서 한 폭의 그림의 실체를 봤다. 이 글자 소素가 가진 힘도 다르지 않음을 안다. 쌓인 시간의 무게를 더한 반영反映이 지금의 내 마음자리일까. 항백 박덕준 서예가의 소素를 그 자리에 다시 놓는다.

파아란 하늘빛 닮은 차가운 공기가 성급하게 얼굴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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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 7주,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조금은 다른 일상이라 이 변화를 순조롭게 적응하는 몸 보다 불편함으로 주춤거리는 것은 마음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더딘 첫날을 보냈다. 바람은 적당하고 볕은 좋았고 가벼운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 역시 좋았지만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치과를 다녀왔다. 몸의 긴장이 풀리기엔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몇번을 더 통과해야하는 강요된 시간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내내 눈맞춤한 달의 위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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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가을 끝자락의 오후 볕이 좋다. 낙엽을 떨군 뜰의 나무들도 볕의 온기를 가득 담고 겨울 채비를 마무리 할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왼팔도 더딘 일손을 돕기에는 충분하다.


뜰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여름엔 왕성하게 자라지만 한번도 꽃을 피우지 못한 수국을 위해 겨울옷을 입혔다. 어느 한해는 구멍이 숭숭뚫린 차광막을 씌웠더니 용케도 딱 한송이를 피웠다. 그후로는 꽃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감으로 매년 두껍거나 얇은 비닐로 덮어주어도 꽃은 볼 수가 없었다. 하여, 올해는 짚으로 엮은 것을 구해다 옷을 입힌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올 봄 제주에서 꽃친구가 보내준 황근도 걱정이다. 수국보다 더 따뜻한 기온이 필요한 식물이라 깎은 잔디로 줄기를 덮어주고 그 위에 옷까지 입혔다. 다시, 돌아올 봄과 여름을 기대한다.

이제서야 계절의 갈무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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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시인이 되어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내 가진 것 시인이라는 이름밖엔 아무것도 없어도
내 하늘과 땅, 구름과 시내 가진 것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이 되어
혼자라도 여럿인 듯 부유한 마음으로
이 세상길 걸어가네

어쩌다 떨어지는 나뭇잎 발길에라도 스치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이라 여기며
냇물이 전하는 마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없는 은총이라 생각하며
잠시라도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에 가까이 가리라
나를 채찍질 하며

남들은 가위 들어 마음의 가지를 잘라낸다 하지만
나는 풀싹처럼 그것들을 보듬으며 가네
내 욕망의 강철이 부드러운 새움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체온으로 그것들을 다듬고 데우며 가네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사람과 짐승, 나무와 풀들에 눈맞추며
맨발이라도 아프지 않게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이기철의 시 '어쩌다 시인이 되어'다. 혼자가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누구든 무엇 하나라도 가슴에 품고 산다. 그것이 가슴에 온기로 남아 혼자가 아닌 세상을 산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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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쏟아내던 비도 멈췄다. 하늘은 미적거리며 드러내야 할 속내가 있는 듯 스산한 바람과 함께 어둡고 흐리다. 비 오면 차가워져야 할 날씨가 봄날의 온기다. 계절과는 어긋나 보이니 어색하기만 하다.
처마 밑 곶감이 수난을 당한다. 바람의 리듬 사이로 볕의 온기를 품고 특유의 색과 맛을 잉태하던 곶감이 흠뻑 젖었다. 다시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할 볕을 기다린다.
살랑거리는 바람의 위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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