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겨울 숲에서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안도현의 시 '겨울 숲에서'이다. 숲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 겨울의 본분이다. 여기에 눈을 보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속내를 다독여 주기도 한다. 마침 내리는 눈으로 겨울 숲은 편안하겠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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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신년시

닭이 울어 해는 뜬다
당신의 어깨 너머 해가 뜬다
우리 맨 처음 입맞출 때의
그 가슴 두근거림으로,
그 떨림으로

당신의 어깨
너머 첫닭이 운다
해가 떠서 닭이 우는 것이 아니다
닭이 울어서 해는 뜨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처음 눈 뜬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울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울었기 때문에
세계가 눈을 뜬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하고 나하고는
이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
더도 덜도 말고 냉수 한 사발 마시자

저 먼 동해 수평선이 아니라 일출봉이 아니라
냉수 사발 속에 뜨는 해를 보자

첫닭이 우는 소리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세상의 끝으로
울음소리 한번 내질러보자

*안도현의 시 '신년시'다. 새해 새로운 마음들이 모여 새로운 시간을 열어간다. 밤사이 차가워진 냉수 한 사발 마신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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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和중화

그대 마음에 늘 평화가 함께 하기를

*새 모양의 유인遊印과 함께 얻은 두인頭印이다. 두인은 글씨나 그림의 첫 머리에 찍는 도장을 말한다.

중용中庸에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하고, 이미 일어나서는 모두 중中으로 돌아가도록 조절하는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中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道다.

*우여곡절과 함께 부침이 심한 한해를 보냈다. 표면상으로야 일상의 그 첫머리에 놓인 것이 꽃花이겠지만 한발 들어가 보면 벗友이 있었다.
깨지고 찢기고 갇힌 시간이었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마음의 동요는 없었다. 과정에서 놓친 것이 무엇일까?

새해 첫날, 그 첫머리에 올해의 화두 삼아 중화中和를 새긴다.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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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짧았던 한해도 없었고 이토록 길었던 한해도 없었다. 격리에서 벗어나자 다치는 일이 있어 꽤 오랜시간을 갇혀 살았다는 것이야 개인적인 일이라 그러려니 하겠지만 거리 두기를 서로에게 강요하는 시간에다 새로운 세상으로 한걸음 내딛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무거운 마음들이 힘겨워한 끝에 겨우 건너온 시간이었다. 그 끝자락에서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인사 건네던 나무 품에서 맞이하는 해를 본다.

다시 날은 밝았고 밝아온 그 시간의 중심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어제도 그래왔고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으며 내일이라고 다르지 않으리라. 어설픈 마음이 애써 구분하고 구분한 그 틈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끝과 시작이 따로 있지 않다. 여전히 그 길 위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뭇사람들의 어께에 기대어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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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꽃을 드리는 이유

끝없이
정말 끝없이
여기가 천국의 끝이거나
한 것처럼
오만해질 것

그리하여
어느 날
눈 화안하게 트여 오는
순정한 지평 하나를 볼 것

*곽재구의 시 '꽃을 드리는 이유'다. 밤사이 눈이 왔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그대로 꽃이다. 이 꽃을 드립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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