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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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권을 전부 들고 갈지 한 권만 들고 갈지 잠시 고민하다 세 권만 가방에 담았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사인을 아버지의 해방일지한 권만 받을까, 아님 세권 다 받을까,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 사인해주려면 피곤할텐데 하는 걱정과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책들을 계속 사서 읽었던 흥분 사이에서. 결국 나는 세권을 내놓으며 한권만 해주셔도 되요라는 소심한 부탁을 했고, “세 권 다 해드려야죠” “빨치산의 딸두 권은 염치가 없어서 못 가져 왔어요” “염치라뇨.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라는 대화를 나누며, 세권의 책에 작가 사인을 받았다.

 

작가는 구례에 내려간 계기와 그곳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시골 정착기를 소재로 한 단편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즐거운 나의 집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내려간 고향 마을사람들은 두 모녀를 수시로 방문하며 이것저것 가져다주신다고 한다. 그래 뵈도 마음은 ‘city girl’인 작가는 불편했다고 한다. 빨치산 부모님 덕에 타인에 대한 경계가 몸에 배어서 그것이 성격을 형성했다고, 지금도 여전히 한 사람을 삶에 들일 때 오랜 시간이 든다고. 구례에서 산 시간동안 그 긴장과 경계가 조금은 희미해진 듯 보였다. 빨치산의 딸이후 작품들이 종종 그곳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 아니고 실록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증언을 기록함으로 자신이 누구의 딸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것에 치열함이 느껴진다. 작가가 고백하듯, 그 때는 자신이 누구의 딸인가(아버지의 해방일지224p)”가 중요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철학을 공부하고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알게 되면서 나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카인의 표지가 부끄러운 것도 죄스러운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오히려 내게 가장 순결한 이름을 물려준 것이었다. 친일파의 딸도 아니고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매판자본가의 딸도 아니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여성이 봉건적 인습에 묶여 있을 때 떨쳐 일어나 빨치산이 되었던 어머니의 딸이었다. 나의 지리산, 내 이름처럼 나는 가장 깨끗하고 건강한 핏줄을 이어받은 민중의 딸이었다. 나는 비로소 이승만 이래의 독재정권이 부모님에게 덧씌운 허물을 벗겨내고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혈연적인 정뿐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에서 조국의 아들딸로 부모님을 일떠나게 했던 시대의 모순들은 자식인 내 시대에 와서 오히려 심화된 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을 내 부모 역시 했으려니 하는 생각은 혈육 이상의 애정으로 부모와 나를 결속시켰다.(빨치산의 딸163-64p)”

 

작가는 구례라는 곳에서 변화하고 가벼워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가볍게 풀어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곳의 생활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인상적인 짧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딸의 기억 속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너무 진지해서 헛웃음을 웃게 한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심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13p)”


그들의 대화는 종종 혁명과 민중에서 맺어진다. 그렇게 웃고 넘어가지만, 그 에피소드에 감춰진 노혁명가가 붙들고 있는 신념을 얼핏 보게 되어 마음 아프다. 그러기에 화자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244p)”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질게 뻔한 싸움인 줄 알면서도 지는 편에서 싸웠다. 그리고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진지일색인 아버지의 말은 블랙코미디처럼 들린다. 웃기지만 슬프고, 가볍지만 무겁다.

 

구례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전장이다. 패한 전쟁터. 그 전쟁과 패배는 그녀에게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를 안겨주었다. 방황하던 고등학생 시절, 하루 동안의 가출을 기억한다. 무작정 집을 나와 걸으면서, 구례를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었다. 그런 그녀를 쫓아온 작은 아버지가 고만 가자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209p)” 하던 몇 마디는, 작은 아버지도 떠나고 싶어서 그 길을 걸었고, 떠나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두 사람은 아무 실랑이도 없이 되돌아간다. “워쩌겄냐. 가야제(208p)”하며 가야할 곳, 그래서 돌아설 수밖에 없던 장면이 어느 인생에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딸에게 구례는 기이하고 오랜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163p)”이었다. 이 감옥같던 인연들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것이고 아버지 자신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모여든 사람들, 바로 그 인연들로 인해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순간의 아버지를 만난다. 장례식장을 찾은 빨치산 시절의 동지들, 죽은 동지들의 자녀들, 좌파와 우파 친구들,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다문화 가정의 모녀, 그리고 전쟁 때 살려준 순경, 베트남 파병 상이(傷痍)군인 노인 등,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촘촘한 그물망(239p)”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181p)”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동창생부터 철물점 사장, 과일 가게 사장, 지물포 사장 등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 박선생이 하루에 몇 번씩 들락거리며 데리고 왔다. 조선일보 애독자 박선생과 매일 만나 투닥거리면서도 왜 만나냐는 핀잔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p)”라고 아버지는 대답했었다.

 

신우형, 복례누이, 복희누이, 상욱아. 총을 쏠 때마다 손이 떨려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네. 총구를 하늘로 겨눠도 재수 없으면 떨어지는 내 총알에 누군가 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누구도 내 총에 죽는 일만 없기를 날마다 기도한다네.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게. 살아서, 꼭 살아서, 다시 만나세.(48p)”

 

빨치산 형제자매 친구들에게 미군식량과 함께 남긴 박선생의 편지는 가슴 아픈 우리의 현대사를 시사하고 있다. 더불어 사람은 그가 제일 낫다고 했던 아버지의 말을 납득하게 된다.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이 현대사와 연결되어있고,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하기에, 아버지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다.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있고, 남 탓만 하던 작은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딸은 아버지의 말이 이해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42p)” 하고.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전혀 알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봉건잔재 극복과 구습 타파와 혁명을 논하던 아버지는 산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했다. 아버지는 사상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잊은 세상과 권력에 대항해 떨쳐 일어났던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266p)”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화자 고아리는 아버지 장례식 마지막 밤 그동안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고,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생각해보지 않았음을 자각하며 눈물 흘린다. 아버지가 수감된 시간, 잃어버린 그 6년 동안 자신이 그 이전의 삶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단 것만 생각했다. 그러나 사무치게라는 말은 감옥에 갇힌 긴긴밤을 그리워하며 보냈던 아버지에게 어울리는 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작가는 이 소설을 가볍게 쓰기 위해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했다. 무게를 덜어내도 덜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늘 하루의 삶이 밥 먹고 사람을 만나고 농담을 주고받는 가벼운 일상이어도, 그 일상을 둘러싼 시대가 슬프면, 눈물이 서리게 마련이다. 세상은 이미 훌쩍 한계를 넘었지만, 여전히 해방 전후의 한계와 맞서 싸우는 중인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둔 자식의 통렬한 반성이다. 가볍게 쓴다고 해서 그것이 가볍게 읽혀지겠는가.

 

왜 나는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이 책을 읽게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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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3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이창래 작가에게
사인 받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답니다.

사인을 다 받고 싶었으나...
다 욕심이지 - 그래도 두 권은
받았으니 다행이지요.

오오 가볍게 쓰기 ! 그렇지 않
아도 저희 독서 모임에서도 비
슷한 이야기를 했답니다. 역시!

그레이스 2023-04-03 20:02   좋아요 1 | URL
ㅎㅎ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공감하실거라 생각했습니다.
^^

서니데이 2023-04-03 1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 사인 받으셨군요. 다 가지고 가셔도 아마 좋아하셨을거예요.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전에 나온 책들도 재출간되는 것 같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하루되세요.^^

그레이스 2023-04-03 20:04   좋아요 3 | URL

소재에 대한 질문했었습니다.
아주 좋은 대답을 들었구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23-04-03 20: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대구 올해의 책 열 권 중 한 권에 선정됐어요.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구가 보수의 성지로 악명 높지만, 근현대사로 되돌아보면 빨치산들이 활동했고, 그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지역이기도 하죠.

그레이스 2023-04-03 21: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세상도 변하긴 하죠. 더디게 느껴지지만...!
정지아 작가 책이 뜬다고 하니, 구례분들은 오히려 빨갱이 얘기가 팔리다니 무슨일인가 하신대요.

새파랑 2023-04-03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인본 멋지네요~!! 세권을 가지고 지하철을 타고가서 사인을 받는 그레이스님의 열정이 너무 멋집니다 ^^ 요새 이 책이 핫하군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4-04 05:15   좋아요 1 | URL
아마 좋으실거예요
핫 한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4-06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해방일지>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b

그레이스 2023-04-06 13:55   좋아요 1 | URL

다들 그러신듯요
여러 입장에서 여러 의미를 얻게 되는 책입니다.

서니데이 2023-04-09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4-09 22:27   좋아요 2 | URL
북플이 계속 안들어가지더니 로그아웃되고 다시 로그인 해서 들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04-16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아버지의 해방일지] 못 읽었는데 그레이스님의 친필 사인본을 3개나 눈으로 음미하는 호강을 미리 하네요
[~해방일지] 읽을 때 그레이스님, 페이퍼가 생각 날 것 같아요.

부모로 읽다/자식으로서 읽다가 어떤 뉘앙스의 말씀이신지 직접 읽어보고 느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4-16 20: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님의 리뷰 기대할께요.~♡

임승수 2023-05-3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2023-05-30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땡이 2023-11-0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저도 딱 글쓴이님 제목처럼 평을 하고 다녔었는데 친구들 선물사러 들어왔다가 댓글보고 100% 똑같은 마음에 댓글남기고 갑니다. 가볍지만 무겁고, 웃기지만 슬프고. 거기에 더해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보면 비극인 듯한 이 가벼운 책이 얼마나 무겁게 마음에 남는지... 빨치산의 딸도 나중에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레이스 2023-11-07 10:38   좋아요 0 | URL
예~
같은 마음이시라니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별세 소식을 이제야 보고, 펼쳐든 이 책의 첫페이지에 ˝책을 쓴 작가는 죽습니다˝ ˝저도 그런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노작가 입니다˝라는 문장이 들어온다.

읽어야할 책이 쌓여있지만 오늘은 이 책이 읽고 싶다.








저의 책 《책이여, 안녕!>의 제목은 러시아의 소설가 나보코프가 발표한 대표작 《선물》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책 속 주인공은 영원히 살지만(작중에서는 죽는다고 해도), 책을 쓴 작가는 죽습니다. 죽기 전 자기가 쓴 책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지요.
저도 그런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노작가입니다. 게다가 저처럼독서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간은 제가 읽어온 책에게도 마음을 다해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제 인생의 책‘이라 할 만한 이런저런 책들과 이별하는, 그러면서 가능하면 여러분께 그 책을 건네드리는 그런 의식을 치러보고자 합니다.  - P9

우리는 예술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고 상실을 상대화하여 살아남고자 합니다(제 경우는 문학 혹은 소설을 통해서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미 지나간 것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그 괴롭고 무거운 의미에 대해서도 늘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년에 이르러 소설을 구상하고, 젊은 동료로부터 악의가 뻔히들여다보이는 조롱을 받으면서, 그래도 초고를 써나가는 제 옆에는이미 상실하기 시작한 것들과, 과거가 되어가는 것들의 참으로 강렬한 찰나적 실재감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떠난 동시대예술가, 사상가, 아울러 더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거의 끝나가는 저의 시대를, ‘과거의 파토스‘로서 진중하고 깊이 있게 와 닿도록 하는것이기도 합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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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28 0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는 어머니가 준 마크 트웨인 책 《허클베리핀》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이 여기에 있어요 아홉살에 그 책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지 생각하다니, 정말 그때 마음대로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에 겐자부로 책은 이 책 한권만 본 것 같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3-28 06:39   좋아요 1 | URL
우연히도 마크 트웨인 재독 중이었습니다.^^

서곡 2023-03-28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뇌의 이상을 갖고 태어난 큰아이...염려와 격려하는 마음을 안고 눈 감으셨겠지요. 명복을 빕니다.

그레이스 2023-03-28 09:51   좋아요 1 | URL
ㅠㅠ
작가가 남겨놓은 책을 읽는 것으로 추모를 대신합니다.

베터라이프 2023-04-06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참혹한 역사에 대해서 아주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었던 분이 오에 겐자부로였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정상인이 별로 없는 일본 지성사회에서 저런 분이 다 있구나 싶었죠. 그나저나 그레이스님의 이 글을 보니 문득 구해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들어가보니 절판된 모양이네요 ㅜㅜ

그레이스 2023-04-06 18:34   좋아요 2 | URL

그렇더라구요.
가끔 중고 책방에 올라오긴 하던데요.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마크 트웨인 지음, 린 살라모 외 엮음, 유슬기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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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틀어 보기의 장인, 해학과 풍자의 대가다. 유머작가로서 자부심도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의 미시시피 모험 소설들이 더욱 예사로 읽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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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4-06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 책이네요. 품절ㅠ

그레이스 2023-04-06 13:54   좋아요 1 | URL
ㅎㅎ
품절이더라구요 ㅠ
 
톰 소여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3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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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피조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진지하게 끄적거리는 일에 집중하기로 서약했다는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필명:마크 트웨인)은 인쇄공,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 광부, 주식 투기꾼, 언론인 등의 직업을 거쳐 저널리스트이자 유머 작가로 명성을 얻는다. 그의 작품 안에는 그의 이런 이력이 인물과 사건의 소재로 등장한다. 사진 속 그의 모습에는 유쾌함과 당당함이 서려있다. 정작 그는자식을 둘이나 잃고 파산을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순회강연으로 부채를 갚은 것을 보면, 청중의 사랑을 받는 뛰어난 입담의 소유자였음이 짐작된다. 입담 뿐 아니라 그에게서 후광처럼 비치는 유쾌함 때문에 환영을 받았을 것 같다.

 

다른 청소년 문학들과 마찬가지로 완역된 버전을 다시 읽게 되면, 어린 시절에는 놓치고 간 내용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를 생략한 책들도 많고, 설사 완역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해학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담장 페인트칠 사건자신이 벌로 받은 페인트칠하기를 놀이로 가장해서 친구들에게 댓가를 받고 미션을 클리어 하는은 톰의 뻔뻔하고 얄밉고 기발함 때문에, 아직도 톰소여의 모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장() 마지막 부분에 붙인 작가의 말은 가히 철학적이다.

 

톰은 이 세상이 그렇게 공허하지만은 않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행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어른이건 아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이 책의 저자처럼 현명하고 훌륭한 철학자였다면, 노동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되면 조화를 만들거나 물레방아를 밟아 돌리는 일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리라. 영국에는 여름철에 하루 일정으로 사두마차를 몰고 30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다니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다. 그런 특권을 얻기 위해 꽤 많은 돈이 드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신사들이 그런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다면 그 일은 노동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곧 그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37p)”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톰은 노동을 뛰어넘는 놀이의 힘을 경험했다는 것인데, 작가의 이 첨언은 요한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떠올리게 한다. 생각의 흐름은 방드르디의 원시적 삶에까지 이른다.

 

인전 조라는 인물은 작품 중 긴장과 갈등을 가져다주는 인물이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이다. 그는 악행을 일삼고, 살인을 저지른다. 톰과 헉은 그의 범죄현장을 목격함으로 사건에 휘말린다. 그로 인해 톰과 헉은 아이들이 할 수 없는 모험을 한다. 그런데 인전 조라는 인물이 단순한 악당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몇몇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도로 폭행을 하는데, 그 복수의 이유가 아주 상세하게 그의 말로 기술된다.

 

이걸 포기하고 이 마을에서 영원히 그냥 떠나가라고?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몰라. 전에도 말했고 지금 또다시 되풀이해 말하네만, 난 저 여자의 돈 따위는 관심 없어. 그건 자네가 가지라고. 저 여자의 남편이 나에게 몹시 못되게 굴었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치안 판사로 있으면서 걸핏하면 나를 부랑자로 몰아 유치장에 처넣었거든. 어디 그뿐인 줄 알아. 그건 새 발의 피야! 말채찍으로 나를 마구 갈기기도 했어! 감옥 앞마당에 세워 놓고 검둥이처럼 나를 말채찍으로 때렸단 말이야!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앞에서! 말채찍으로 때렸다고! 이제 알겠어? 그놈은 나한테 실컷 못되게 굴더니만 그만 뒈져 버렸어. 하지만 그놈의 여편네한테라도 분풀이를 해야겠단 말씀이야.(334p)”

 

그 마을에서 그가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유를 부여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에서 작가의 비판의식을 읽게 된다. 그 대륙에서 벌어진 폭력의 역사를 계승한 자들의 차별과 멸시와 착취를 고발한다. 그러기에 작가는 살인을 저지른 인전 조의 마지막을 비참하고 불쌍하게 그리고 있다.

 

문을 열어젖히자 어슴푸레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의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인전 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로운 바깥세상의 빛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문틈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대고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가련한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짐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톰을 가슴이 뭉클했다. 그 사람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377p)”

 

주인공 톰 외에 중심 되는 인물은 단연 허클베리 핀이다. 그들의 미시시피강 모험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이벤트다. 무인도에서의 며칠간 생활에서 보여준 톰의 기지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헉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성격은 당시 성인들의 위선과 탐욕을 드러내는 효과를 거둔다. 허클베리 핀과 달리 조 하퍼와 톰 소여가 느끼던 죄책감이 어느새 사라지는 장면에서 그들이 받은 교육이 그러한 기초에서 이루어진 무너지기 쉬운 것임을 시사한다.

 

마침내 많은 주민들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흥분에 짓눌려 비틀거렸다. 혹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세인트피터스버그와 인근 마을에 있는 모든 유령의 집을 찾아다니며 마루의 판자를 모두 뜯어내고 주춧돌마저 파헤치며 샅샅이 뒤졌다. 그것도 나이 어린 아이들도 아닌 어른들이 그랬던 것이다. 그 중에는 꽤 점잖고 현실적인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톰과 헉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그들을 칭찬하고 또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이들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들의 말이 그렇게 존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사람들은 그 말을 하나같이 존중하고 되풀이했다. 두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간에 모두 특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두 아이는 평범한 말이나 일상적인 행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과거 역사까지 들추어내서는 그것을 특별한 독창성의 표시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마을 신문은 그 아이들의 삶에 대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400p)”

 

일상으로 돌아 온 두 소년은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다시 산적단을 만들고 비밀서약을 하며 앞으로 있게 될 모험을 예고한다. 어쩌면 이 서약은 오염되지 않으려는 맹세로 보이기도 한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앞으로 하게 될 모험의 주인공은 허클베리 핀이다.

 

작가의 비판이 예리하다. 이야기 사이사이 작가의 메시지를 교묘하게 숨겨놓는 재치와 필력 때문에 그것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매끄럽게 읽혀진다. 해학과 풍자가 한수 위라는 진리를 새삼 확인한다. 작가의 표현처럼, 웃음을 주기위해 진지하게 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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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3-25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학생때 읽어본거 같은데 기억은 전혀 안나네요 ㅋ 별 다섯개라니 단순 청소년 문학이 아닌가 봅니다~!

모험 시리즈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그레이스 2023-03-25 12:30   좋아요 1 | URL

단순한 청소년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당시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금서가 되기도 했다고 읽었습니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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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쳤다.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2년 동안 안부를 몰랐다는 당황스러움을 감추려 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톤이 높아진다. “어떻게 지냈어요?”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그녀는 그냥 그렇죠.”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아파트 주차장에 조금 더 머물며 좀 더 자세한 안부를 물었다. 당시 힘들었던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된 듯하나, 누군가를 원망하던 마음이 냉랭하게 얼어붙어 있다. 이내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마지막 만남을 떠올리게 했다. 맞다. 그 기억 때문에 문득 생각이 나도, 먼저 연락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문제를 말하면서 화를 내고 있었고, 그 분노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의 마음은 움츠러들고 뒷걸음질 쳤다. 콘크리트 벽처럼 냉랭해진 마음 앞에 절망감을 느끼면서, 조만간 만나 차라도 한 잔 하자며 헤어졌다. “심리적으로 조금이라도 불편한 건 절대 참아줄 수 없다는 이유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우연적 타자 취급을 받은 적도 역사상 없었다(25p)”는 작가의 말을 기억하면서.

 

사나운 애착에서 작가 비비언 고닉의 어머니는 타인의 문제에 개입하고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작가가 살던 브롱크스는 게토였다. 그들 스스로가 만든, 보이지 않는 높은 담장 안의 공동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이웃 부부의 성생활까지 알 정도로 울타리가 없는 삶을 살았다. 이웃의 가정사에조차 조정자로서 군림하는 어머니에게 작가는 경외심과 부끄러움, 분노 등이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에게서 타인들과 분리되지 않은 생활로 인한 애증과 환멸을 읽는다.

 

이제 그녀는 뉴욕 시내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낯선 이의 눈에 되비치는 자아를 찾아(13p)” 거리를 걷는다. 걷다가 브롱크스 시절의 사람들과 우연히 만난다. 그 만남은 그녀에게 과거의 기억들을 가져다준다. 자신의 존재를 관통하는 엄마의 애착은 여전히 그녀에게 어려운 주제다. 서로를 참을 수 없어 싸우고 생채기를 내며 엄마와 걸었던 길들을 홀로, 때로는 둘이서 걷는다. 친구와, 때로는 엄마와.

 

그녀는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청해 듣는다. “엄마 그 얘기 좀 해봐.”하고. 노인들의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 작가는 글의 소재를 생각하며 듣고 있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보는 순간에 우리 인생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까?(사나운 애착93p)”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엄마의 딸이다. 사람들의 잘못을 똑 부러지게 지적해야 하고, 사랑의 성배를 찾았던, “엄마가 원판이면 그녀는 현상본(70p)”이었다.

 

어릴 적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제조해낸 울분을 붙들고 있었던 어리석음을 깨우친 순간, 그녀는 이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아는 게 없어.(122p)”라고 엄마의 말을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렇게 그녀는 길을 걸으며 기억하고, 엄마인 자신과 화해하고, 엄마와 화해하는 길을 걷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미완의 과제임을 받아들이면서.

 

그녀가 갈수록 사회 변두리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응어리진 쓰린 가슴을 달래기 위해 도시를 가로지르는 산책(20p)”은 습관이 되고, 자신과 타인을 읽는 응시가 되고, 글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더 조용하고 깨끗하고 널찍한 동쪽을 걷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번잡스럽고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서쪽에 와있는(120)”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삶이라는 것에 주체가 있다는 느낌(120p)”이 든다. 군중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거리에는 폭언과 무례함, 폭력의 위험도 존재한다. 동네 약국 대기석은 낯선 남자를 큰소리로 웃게 하는 넉살 좋은 수다를 떠는 장소다. 한 겨울 꽁꽁 언 빙판 길은, 손을 내미는 작은 친절을 통해, “난감한 상황에선 누구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고, 그 광경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손을 내밀 의무가 있다는 평범한 인식(41p)”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그렇게 거리에서 삶의 통찰이 이루어진다. 산책에서 돌아온 그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몸짓이 보이도록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들은 그녀의 동행, 근사한 동행이 된다. 그녀에겐 사랑과 우정으로 이어진 한 시절의 동행들, 친구와 애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는 사람들보다 함께 하느니 차라리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밤을 선택한다. 홀로 외로움을 즐기며 글을 쓰는 편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녀에겐 그녀를 아주 잘 아는 친구 레너드 한 사람과의 통화면 족하다.

 

이제 더 이상 블롱크스와 같은 장소는 그녀의 도시에도 나의 도시에도 없다. 도시는 변했고 과거의 장소는 사라졌다. 그곳으로 이어진 다리는 현재의 산책길처럼 걸어서 건널 수 없다. 개인의 삶에 밀고 들어오는 타인의 침범은 우리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 주지만 불가해하게도 우리는 그 외로움을 포기하길 망설인다.(105p)” 아마도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블롱크스와 같은 장소에 머물게 될지 모르겠다. 앨리스의 요양원처럼. 거기서 다른 종류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암담하고 쓸쓸한 이야기인 듯하나, 많은 지인들이 앨리스를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준 것을 그녀가 죽은 후에야 알게 된 것처럼, 생각보다 세상엔 사랑이 넘치고(89p)”, “다들 마음을 쓴다(90p)”.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을 쓰는 것, 도시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 일을 길 위에서 했다. 익명의 군중들과 동행하고 있는 그녀의 걷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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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3-18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아는 이 도시를 자주 산책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말잘보내십시오 ~

그레이스 2023-03-18 09: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곡님 잘 아시는 도시가 궁금하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서곡 2023-03-18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도시도 기회 닿는 대로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 가 봐야겠습니다 ㅎㅎ 네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8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역시 그레이스님!👍
다들 리뷰가 한 편의 에세이로 읽힙니다^^

그레이스 2023-03-18 23:11   좋아요 2 | URL
저도 이 리뷰 쓰고 다른 분들거 하나씩 읽고 있는데 다들 너무 잘 쓰셔서.. 전 명함도 못내밀겠어요ㅠ

책읽는나무 2023-03-18 17:11   좋아요 2 | URL
아니에요!
그레이스님의 글도 넘 좋습니다.
잘 쓰셨습니다^^
다들 잘 쓰시긴 했는데, 다들 막상막하라...누가 뽑힐지? 저도 기대가 큽니다.

제가 꼭 무슨 심사위원이 된 마냥~ 읽고 있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