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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완전 웃기잖아!
난 배를 잡고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비질이 맹렬해질수록 내 어깨는 더욱 크게 출렁거렸다. 이건 올림픽 중계일 리가 없다. 올림픽을 패러디한 쇼라면 몰라도. 올림픽은 그거 아니냐.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 의지가 캐치프레이즈 아닌가? 하지만 이건 뭐. 시종일관 던지고, 쓸고, 닦는 것뿐. 파이팅 할 의지를 한순간의 비질로 말끔히 없애 버린다. 보면 볼수록 힘이 쪽쪽 빠진다. 이것의 정체는 뭘까. 세계 시민의 대축제, 인류의 대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는 어떤 집단의 몸부림, 지구인을 한순간에 바보집단으로 만들고자 하는 외계인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 28p
올림픽 정신은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아닌가? 그런데 이건 뭐지? 하는 주인공 차을하의 어리둥절해 하는 생각이 재미있다. 항상 ‘이것은 이래’하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낯설게 다가올 때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마주침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고정관념에 갇혀있었는가를 알려준다.

「가열찬 비질이 끝나자 맷돌은 원 안으로 쏙 들어갔다. 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맷돌은 원 안에 들어 있던 다른 색 맷돌을 힘차게 튕겨 버렸다. 볼링 핀이 스트라이크로 쓰러질 때처럼 상쾌했다. 중년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쓱 들어 보였다. 중년 여자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환하게 웃고 젊은 남녀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아빠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아빠는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쩐지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 같았다. 다른 밀도로 적용되고 있는 중력에 의해 몸이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주위는 달 착륙의 순간처럼 고요했지만 내 가슴은 옥토끼가 방아를 찧듯 콩닥거렸다.」 29p
비웃듯이 보고 있던 경기에 의외로 빠져들어 세 게임을 연속해서 보게 하는 그 무엇.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이고 세상의 낯섦을 발견하는 순간일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고 나를 둘러싼 규칙이 허물어 질 때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새로운 것이 어느새 자신의 삶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며루치와 산적이 그리고 컬링이 주인공의 삶에 마구 쳐들어 온 것처럼…. 달의 반대편처럼 내가 생각지 못한 삶의 이면이 있고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 주인공에게는 충격과 함께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컬링을 처음 만났을 때 세게임을 연속으로 보고, 컬링동호회에 계속 나갔던 것 아닐까?

주인공이 살았던 세계의 규칙과 방식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대회에 나갈 계획이다. 이 말이지?˝
˝그래, 실컷 말했는데 이제야 알아들었구나? 소년, 너도 파이팅의 기쁨을 누려 보라고.˝
˝뭐, 국가 대표라도 될 셈이냐?˝
“어, 너 국가 대표가 꿈이냐? 열심히 하면 될 수도 있지.˝
며루치가 벌쭉 웃었다. ……
˝그럼, 뭐냐? 혹시 체육 특기자 같은 걸로 대학 가려는 거냐?”
˝무슨 벌써 대학씩이나? 겨우 고1인데 벌써 인생을 결정하기에는 좀 이르지 않냐?“
짐작대로다. 이 녀석은 마이너다. 일군 뒤에 물러나 마냥 벤치에 앉아 있는 이군 선수 같은 녀석들, 교실에도 일군과 이군은 엄연히 존재한다. 인생을 결정한다기보다는 슬슬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빠른 집단, 그 세계라면 나도 살짝 한 발 담그고 있는 터라 모르지는 않는다.
˝그럼 뭐냐? 대학도, 국가 대표도 아니면 컬링은 왜 하는거냐?˝
˝너 은근히 따지는 스타일이다? 네 세상은 대학과 국가 대표 두 개뿐이냐? 참 지루한 인생을 살아왔군, 소년,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 봐. 백날 말해 봤자 입만 아프지. 너도 하고 나면 알게 될 거야.”
“……”
“뭐, 우리가 그렇다고 막 급하고 그런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거니까.”
“취미?”
“그래, 취미. 약간 그런 느낌이니. 동호회 같은 거.”」 32~33p

‘세상이 대학과 국가대표 뿐이냐는 질문과 참 지루한 인생을 살아 왔군’ 하는 며루치의 말에서 반박하는 데 머뭇거린다. 고 1인데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마이너라는 증거.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계의 규칙이다. 이 대화에서 십대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보게 된다. 대학과 성공. 일부는 치열하고 일부는 무기력하게 줄을 지어 달려간다. 무기력한 쪽이 지루할까? 아니 한곳만 바라보는 치열함에도 지루함이 있다. 방향표지판만 보고 달리는 고속도로처럼. 주인공이 강산에게 왜 나를 컬링동호회에 데려갔냐고 질문하자 강산은 “너 진짜 살기 싫은 표정이었으니까”라는 대답을 한다. 담담하고 시니컬한 말투와 생각때문에 놓쳤던 주인공의 무기력감을 강산의 말로 알려준다. 이것을 알아본 것은 강산이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경험했던 감정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유력한 주니어 야구선수로서 성공을 위해 달려가다가 그만두게 되었을 때의 사라진 세상. 자신이 경험한 것이었기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숨통을 트일 수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한 단어로 표현된다.
‘그냥’

왜 세상에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항상 목적이 있어야 할까?
‘그냥’ 이란 단어에 대학이나 성공이란 의미는 없다. 바로 그 그냥이 아이들의 숨통이 툭 트이도록 해주는 것이다.

「“왜 하는 거냐, 컬링?”
“그게 …… 중요하냐?”
“듣고 싶다. 왜냐?”
“그냥.”
“그. 냥.”
“숨통이 툭 트이더라. 왠지 모르지만, 그냥.” 」 276p

주인공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바지에 똥을 싼 기억을 자신이 혼자서 무엇을 하는 아이가 되게 한 계기로 기억한다. 화장실에서 기다려도 엄마와 선생님은 오지 않고 혼자서 차가운 물에 뒤처리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제법 의젓하게 바지를 빨고 뒤처리를 했다고 말하는 주인공. 이후 매순간 혼자서 무엇을 하는 아이가 되었던 외로운 아이.

나는 화장실에서 홀로 일처리를 하는 주인공을 그려보며,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을 어떻게 지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혹시 미처 나의 눈과 손이 닿지 않아 외롭게 내버려둔 시간이 있었을까? 학교라는 새롭고 두려운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가 겪을 두려움에 대해 당시 나는 조금 무지하거나 무감했던 것은 아닐까? 주인공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갔던 일, 실내화를 잃어버려서 맨발로 다녔다는 이야기들이 오버랩 되며 나를 기다렸던 짧은 시간동안 아이는 기분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잊어버린 듯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겪은 기다림과 불안했던 기억은 어딘가에 기억으로 남아 있겠지! 갑자기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은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자라주어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외롭고 무기력한 주인공에게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마이너의 세계에서 그냥의 세계로……^^.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해 보이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고 있다. 컬링. 이 어둠 속,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달려간다. 함께하기 위해서. 아마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컬링, 우리는 하고 있다. 」 279p

아이들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컬링. 함께 하는 친구들. 목적이 없어도 그냥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아이들. 이 책을 읽으면 내 숨통도 트이는 것 같고 내가 그냥 함께 하는 독서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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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황영미

「체리새우 블로그를 다른 아이들이 본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비공개로 설정해 두었지만 가끔 반발심이 생긴다. 깨어 있는 척이고, 깨끗한 척이고, 그 기준을 누가 정하는 거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일단 선비질, 진지충 딱지부터 붙이는 거 아닌가. 가곡 좀 좋아하면 안되나? 케이팝 좋아하면 애국자고, 가곡 좋아하면 진지충인가?
…… 라고 외치고 싶다. 학교 방송실 마이크에다 대고 말이다. 그럼 당장 전교 아싸로 등극하겠지. 아! 나는 매사 이런 식으로 토 달고,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 한다.」 24p

이게 진짜 체리새우의 블로거 다현이의 모습이다. 체리새우를 자신의 블로그 이름으로 한 이유도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굳건한 생명체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해서이다. 다현이는 중학교 2학년. 한참 친구가 세상인 나이이다. 1학년 때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다현이를 설아가 병희, 아람, 미소의 무리에 소개했고 ‘다섯 손가락’이 되었다. 왕따가 되는 것이 두렵고 이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현이는 자신의 취향을 버리고, 눈치를 보고, 친구들에게 자주 선물을 하며, 무리한 부탁도 다 들어준다.

2학년이 된 다현이에게 온 큰 시련은 왕따인 은유와 짝이 된 것. 그것도 아람이가 싫어하는 노은유와…. 과제를 위해 시후, 해강, 은유와 한 조가 되면서 설상가상! 은유의 집에 모여 함께 과제를 해야 하는 날 핑계를 대고 빠지지만 운명처럼^^ 빵집에서 만나고, 그들은 은유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날 다현이는 은유에게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 또한 모임의 후반전을 혼자서 이불킥 할 게 분명한 말들을 혼자서 떠들게 된다.

이상한 것은 자신이 다섯 손가락 아이들과 수다를 떨 때 그런 말을 했다면 분명 야유가 쏟아졌을 텐데 시후와 해강이 은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은유와 시후 해강이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다섯 손가락 친구들과는 거리가 생기는 것을 느끼며 다현이는 두려움과 갈등을 겪게 된다. 다신 왕따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람이가 은유를 싫어하는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되었고, 또 아람이 또한 자신이 가진 상처를 가리기 위해 신경질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진지한 이야기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시후, 해강, 은유. 해강이가 만들어 온 맛없는 김치전을 맛있다고 먹어주는 시후와 해강이. 자기가 알고 있는 친구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지만 아람이 특히 설아와 멀어지는 거리 때문에 다현이는 괴롭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177p
온유가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다현이에게는 세상 진지충 같은 이 말이 마음을 때린다(뼈 때린다고 하지 아마… ㅋㅋ). 본인이 왕따임을 알았을 텐데, 은유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유는 체리새우였던 것이다.

다현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쓴다.

「5월 14일
어떤 친구가 말했다.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라고.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된다고.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게 친구라고.
이 말이 계속 생각난다.」 191p

다현이는 여기에 스스로 댓글을 단다. 친구는 동등해야 하는데 자신은 자주 무시당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자초한 듯하다고. 친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했다고.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기 어렵다고. 이제는 선물 주는 버릇, 눈치 보기, 거절 못하는 태도를 버리고 당당해지자고…!

홀로 서있는 나무 같은 존재. 사실은 어른들인 우리도 잘 안 된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많은 영향을 받고 내가 어떻게 보여질까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산다.

우리 몸은 가시적이다. 즉 보여 지는 대상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보여 진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보여 지기 원하는 모습’이 생겨난다. 이것이 타인의 관계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충돌을 겪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진지함을 싫어하는 대개의 아이들처럼….) 이 갈등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규정할 때 나는 계속 불안하고 불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사회적 존재로 만들지만, 때로는 저항하고 싶게도 한다. 이러한 저항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우리는 내 속에 자리 잡은 타인의 시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넘어 새로움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 53p 「보여진다는 것」 김남시

우리가 상처받고 아픈 상황은 아이들도 겪는다. 이 아이들은 연약하고 더욱 상처받기 쉽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한참 친구들과 행복한 기억을 남겨야 할 때,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자신의 방안에 갇히게 되는 아이들의 사연을 때때로 듣는다. 때로 상처를 받지만 바르면 상처가 아무는 마***. 후**과 같은 연고는 다현이 엄마나 은유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제발 너희들에게도 햇살과 같고 바람 같은 친구가 있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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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가 된 폴 블릭은 손자 루이의 얼굴에서 어릴 때 보았던 형의 표정을 본다. 그리고 폴이 8살이던 해에 10살이던 형 뱅상의 죽음을 떠올린다. 침착하고 확신에 차 있으며 사랑받던 형. 빨리 형보다 더 강해지고 싶었던 폴은 유년의 한 복판에서 상실을 경험한다. 그와 함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던 독점에 대한 욕망이 숨길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경험으로 상처를 입는다. 형의 물건 사륜마차 모형을 훔치는 것. 그것이 형과 함께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될까봐. 아버지는 형의 카메라 브라우니 플래시 코닥을 건네주었다.

그의 기억은 1958년 TV로 축구시합을 보며 프랑스를 응원했던 형과 보낸 마지막 여름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사적인 사건들은 1958년부터 시작하여 프랑스의 현대사와 함께 씨실과 날실로 쉬지 않고 직조된다. 드골, 퐁피두, 데스탱, 미테랑, 시라크 대통령의 시대와 함께 사춘기, 사랑, 결혼, 자녀, 일, 사별, 상실, 파산 등의 폴 개인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유년시절, 드골을 비판하고 옹호하는 두 파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던 친척들의 식사자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 와 형제들에 대해서 당시 프랑스와 닮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시대 우리 가족은 이러했다. 불쾌감을 주고 고루하고 반동적이고 너무나 슬픈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라는 나라와 닮아 있었다. 수치와 가난을 극복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나라. 농무를 경멸하여 그들을 노동자로 만들고, 그 노동자들에게 기능적이지만 추한 건물로 꼭 들어찬 괴상한 도시를 건설하게 하여 지금은 아주 부자가 된 이 나라와 닮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의 기어 박스는 삼단에서 사단으로 바뀌었다. 나라 전체가 가동 증속창치로 변속된 속력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고 할만 했다.
이러한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 샤를 드골과 총리 퐁피두 사이에 끼어 있는 소심한 청소년의 경우엔 특히 더 그랬다.…」 32P

사랑, 섹스, 결혼, 외도. 그리고 극치의 순간에서 불구와 같은 감정의 상태를 토로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읽으며, 불편함과 소설의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계속 이런 이야기만 하고 끝내려나? 하고. 자전적 소설 같은데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을 너무 세세하게 다루고 있어 당혹스럽기도 했다. 읽어가면서 그가 항상 부딪치는 벽은 어쩌면 형의 죽음 앞에서 형의 물건에 대한 욕망이 폭로되었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그것에 놀라고 상처 입었을 것이라는 사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욕망을 억압하고, 무심하고 고립되어, 기이한 모습의 편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주의 성향의 가정에서 자란 폴이 애덤 스미스 신봉자를 자처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자 안나와 결혼한다.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 국제정세는 그의 아내와 처가의 사업을 흥하게도 쇠하게도 하고, 생태와 숲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자신의 사진가로서의 작업에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미테랑 신봉자였던 어머니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아내의 집안 사이에서 무심하고 개인적이고 고독한 삶을 산다.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보여주듯 어느 쪽에도 소속되고 참여하지 않는다. 아내가 자신의 사업에 고용되어있는 노동자들을 해고함으로 경제적 위기를 넘기려고 하자 다시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완강한 안나앞에서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철저히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신념대로 살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결혼과 성공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그를 자유롭게 할까?

「“폴, 나는 이 세상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겠어. 누군가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375p

딸을 잃고 사업도 잃은 장인의 말이다.
세상은 대통령이 바뀌고, 파업과 혁명과 전쟁이 일어나고, 정치·경제·문화 모든 것이 변화한다. 나도 몰래 규칙을 바꾼 것처럼…. 내게 친절한 것 같다가도 거센 파도가 되어 내가 탄 배를 후려치기도 한다.

폴이 프랑스라는 사회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차단하며 살았지만 결국 그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듯이 개인은 역사와 사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의 의미가 생각난다. 선택을 하고 함께 해야 하는 필요에 대해서….

아내의 죽음과 파산 후 그는 여전히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정원 일로 돈을 번다.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찾아가며 마음을 열려고 해보지만 반응이 없는 상황 앞에 절망 한다. 어느날 정원 일을 하다가 그는 문뜩 딸이 갇힌 그 광기와 자신을 가둔 그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따금 나는 마음 약하게도 마리와 나 사이에, 그러니까 그녀의 광기와 나 사이에 어떤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또 어떤 때에는 내 삶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제껏 딸과 결코 가까이 있은 적이 없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이런 느낌은 11월 어느 날 저녁에 난처하게 확인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가두고 있는 불순물을 상징적으로 벗으려고 애를 썼다.」 385p

그는 자신이 놓치며 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
그는 왜 카메라 앵글 안에 자신의 가족을 넣지 못했을까? 사물, 나무, 곤충들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셔텨를 누르지 못했을까? 그가 달아났던 카메라 앵글과 암실, 그리고 정원은 자신을 가두는 병동이었다.
폴은 딸 마리를 데리고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피레네 산맥의 어느 정상을 오른다. 그리고 그 정상에서 딸을 끌어안는다.

나의 무심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와 타인이 자유롭고 존중되기 위해서는 적당히 무심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감정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들키지 않고 숨기기 위해 나를 가두는 습관은 아닌지?
가족이나 주위의 많은 사람이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나에게 도움이나 위안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오래 걸어서 그곳에 도착했다.
내 딸을 두 팔로 안았다. 죽은 나무를 얼싸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자기 앞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는 세상 꼭대기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허무의 끝에 서 있었다.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아무 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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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에는 한계가 있다. 현행 교통법으로는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을 죽게한 여자를 처벌할 방법이 없어 같은 방법으로 보복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다.
이 상황은 법률이 그녀에게 아군이 되게 하는 것일까?

삶을 살면서 우리는 타자에게 의도치 않은 해를 입힌다. 어쩌면 함께 사는 공동체 안에서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도로 위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심코 창밖으로 던진 커피캔이 뒤따르는 차에 탄 사람을 실명하게 하고, 무단횡단이 급브레이크를 밟게 해서 운전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

살아가면서 나의 어떤 선택과 태도와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며 조심하는 태도는 도로 위 주행과 관련지어 생각되었다. 차 안이라는 장소는 개인적인 공간인 것 같지만 다른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다. 음식을 먹기도 하고, 화장을 고치기도 하고, 두사람이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 등 개인적인 행위와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같은 도로를 주행하는 차들은 주춤거리기도 하고, 급브레이크를 밟기도하고, 내 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차들의 행렬 끄트머리에서는 연쇄추돌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차를 배려하는가는 준법정신를 넘어서 그 사람의 평소 윤리의식을 평가하는 잣대가 아닐까? 평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의 태도와 별개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런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아야코처럼 자신의 몸을 던져 과연 법이 내편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보는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일이 사라질까? 줄어는 들겠지.


세라는 아야코의 얼굴을 떠올렸다. 법률은 조금만 어긋나면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던져서 법률의 분리대를 넘은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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