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방통행로에 대해 생각해보자. 벤야민은 책의 헌정사에서
1924년 카프리섬에서 알게 된 러시아의 공산주의자 아샤 라치스가..
자신의 내면에 길을 뚫은 엔지니어라고 밝히면서 이 책거리를 ‘아라치스 길‘이라고 불렀다. 라치스를 통해 생생하게 접한 혁명을 향한길은 되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일방통행로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한편 벤야민이 ‘일방통행로‘라는 제목 이전에 붙였던
‘통행차단‘ 이라는 제목은 앞에서 언급한 의미와는 정반대로 일방통행로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암시한다. 방향을 바꿀 수 없이 달려온 일방통행로의 막다른 지점에서 통행차단이라는 표지판을 만난다면? 이경우 일방통행로는 지금까지 일방통행으로 달려오던 지배의 역사를의미하게 되면서, 표지사진은 지배의 역사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칠수 있음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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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동일성에서 유사성, 도구로서의 언어에서 매체로서의 언어, 연속성에서 불연속성, 역사학에서 고고학, 상징에서 알레고리, 진보사관에서 메시아주의로의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했다.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하나의 체계로설명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비평을 통해 그때그때 파편적으로 제시한다. 그 때문에 "벤야민의 사상을 체계화하고자 한다.
면, 그것은 그의 고유한 서술방식 - 메타포와 유희, 핵심을 찌르는 인용과 이미지, 사유 모티프의 변주 및 새로운 정의 - 을 제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파편화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벤야민이 추구한 것은 이론의 수미일관성도 아니지만,
심미적인 효과를 위한 글쓰기도 아니다. 도시산책자의 사유가 일견산만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일체의 총체화 가능성을 부정하는연속성의 숭배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벤야민 글의 저류에는 시대의 위기 상황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 파국의 중단을 향한 정치적파토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 P14

진실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상태에서 돌연 누군가에게 한 대맞은 듯 급작스럽게 내쫓기기를, 시끄러운 소동, 음악소리 혹은 도와달라는 소리 따위에 화들짝 놀라 깨어나기를 바란다. 누가 참된 작가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경고음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글을 쓴다는것은 그러한 경고음을 작동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경고음을 작동시키면 귀여운 오달리스크가 이것저것 마구 뒤섞여 있는 규방, 즉 우리 뇌의 상자 안에서 벌떡 일어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을 거칠게 낚아채어깨에 두르고 눈에 띄지 않게 우리 앞을 빠져나가 사람들에게 도주한다.(『선집 1, 148쪽)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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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쓴 ‘발터 벤야민’의 삶과, 사상, 저서에 관한 기록이다. 원래는 그녀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책에 브레히트나 야스퍼스, 브로흐 등 철학자나 문인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던 편을 따로 떼어내서 출판한 책이다. 역자 이성민은 이전에 나온 ‘한나 아렌트’의 작품들의 번역에 대해 잘못된 점을 많이 발견했고, 다시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을 생각 하던 중 그 일환으로 이 한 부분을 번역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의 구판을 갖고 있어서 읽어본 나는 복문과 인용문들에 막혀 뒷부분에 배치되어 있는 「발터 벤야민」까지는 가보지도 못했던 터라 반가웠다. 역자 서문을 읽고 첫 번째 챕터를 읽으면서, 번역을 지적한 의미는 가독성의 문제가 아니라 저자의 문장을 훼손하지 않아야 함을 주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벤야민의 글은, 시적 은유가 많고 인용으로 가득 차 있어서, 변증법적 논리가 필요한 비평과 철학 글에 적합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글도 만만치 않다. 인용들로 이어지고 은유들로 채워진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 줄을 여러 번 읽어야 했다. 페이지마다 밑줄로 채워져 있다. 인용과 인용 사이의 조사만 빼고 다 밑줄을 그었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그 부분이 중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이해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소리 내서 읽고, 하이픈과 주절을 분리해서 읽고, 반복해서 읽고, 각주를 다시 읽고... 결국 며칠에 걸친 이런 행위 속에서 일정량의 페이지들은 넘어가고 오늘 마치게 되었다.
끝까지 읽었다는 뿌듯함은 잠시 뿐, 분절된 지식과 흩어진 단어들이 떠돌고, 리뷰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읽기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결국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 일단은 발터 벤야민에 관한 다른 책(『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을 읽고 다시 읽기로 했다. 그럼 조금 더 이해가 빠르겠지. 이게 다 ‘한나 아렌트’로부터 시작된 독서 이벤트다.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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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9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도서들을 이해하기 힘든게 언어때문인 점이 많은듯해요. 옛날에 읽었던 철학책에서 도대체 한 문장이 안끝나는거예요. 복문 복문 복문의 연속.... 읽다가 다시 돌아가서 주어를 또 찾아야 되는... 이게 프랑스철학이었는데 프랑스어에서는 이런 식의 복문이 가능하대요. 그쪽 사람들은 또 쉽게 그걸 읽고요. 우리랑 언어구조가 달라서 번역서들은 더 읽기가 힘든듯....

그레이스 2021-08-09 06:42   좋아요 0 | URL
번역서여서도 문제지만 제 독서력이 짧아서 그렇다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자꾸 이런 책을 집어들게 돼요. 언제까지 쉬운 문장에만 머물러 있을려나 싶어서...나름 도전이죠. ㅋ
이상한 것은 이렇게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부유하던 단어와 분절된 문장들이 모여 의미를 형성하더라구요.
그럴때 기분은 ... 그래서 읽게 되나봐요.^^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1-08-09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과 인덱스 표시가 많은 책이네요. 그만큼 조금 더 천천히 읽고 생각하게 되는 책이겠지요.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다음 주도 좋은 일들 가득한 한 주 되세요.^^

그레이스 2021-08-09 06:43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한 주간 행복한 일만!
 

그 세대의 유대인들에게(카프카와 모리츠 골트슈타인은 벤야민보다 겨우 열 살 연상이었다), 가능했던 반역 형태가 시온주의와 공산주의였다. 그들의 아버지들이 종종 공산주의 반역보다 시온주의 반역을 더신랄하게 비난했다는 것은 참작할 만하다. 양쪽 모두 가상에서 현실로의, 허위와 자기기만에서 정직한실존으로의 탈출로였다. 하지만 되돌이켜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벤야민이 처음에는 미온적으로시온주의를 시도하고 그다음에는 마찬가지로 미온적으로 공산주의를 시도했을 당시에, 두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은 최고조의 적대감으로 서로 마주하고있었다. 공산주의자는 시온주의자를 유대인 파시스트라고 헐뜯고, 시온주의자는 젊은 유대인 공산주의자를 "붉은 동화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 P100

벤야민은 여러 해 동안 자신에게 두 경로 모두 일어놓고 있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을 고집하고 있었고, 마르크스주의에경도된 친구들, 특히 그들 중 유대인 친구들의 의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둘 중 어느 쪽 이데올로기의 "긍정적 측면도그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으며, 두 경우 모두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상황의 비판이라는 "부정적" 요소, 부르주아적 가상과 허위로부터의 출구, 문학적이거나 학문적인 기득권층 바깥에 있는 위치였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 그것이 결국그를 어떤 고립과 외로움으로 이끌고 갈지 십중팔구생각해보지 않은 채 - 채택했을 때 그는 꽤 젊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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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대의 유대인들에게(카프카와 모리츠 골트슈타인은 벤야민보다 겨우 열 살 연상이었다), 가능했던 반역 형태가 시온주의와공산주의였다. 그들의 아버지들이 종종 공산주의 반역보다 시온주의 반역을 더신랄하게 비난했다는 것은 참작할 만하다. 양쪽 모두 가상에서 현실로의, 허위와 자기기만에서 정직한실존으로의 탈출로였다. 하지만 되돌이켜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 P100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을 고집하고 있었고, 마르크스주의에경도된 친구들, 특히 그들 중 유대인 친구들의 의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둘 중 어느 쪽 이데올로기의 "긍정적 측면도그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으며, 두 경우 모두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상황의 비판이라는 "부정적" 요소, 부르주아적 가상과 허위로부터의 출구, 문학적이거나 학문적인 기득권층 바깥에 있는 위치였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 그것이 결국그를 어떤 고립과 외로움으로 이끌고 갈지 십중팔구생각해보지 않은 채 - 채택했을 때 그는 꽤 젊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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