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 무한경쟁시대의 착한 대안, 협동조합 기업
스테파노 자마니 & 베라 자마니 지음, 송성호 옮김, 김현대 감수 / 북돋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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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몬드라곤> 시리즈 두 권 이후 다시 읽는 협동조합 이야기...
<몬드라곤> 시리즈가 <몬드라곤>이 스페인에서 어떻게 태동하고 성장하고 위기를 극복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다룬 책이라면, 이 책은 서구사회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어떤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자랐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협동조합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도 협동조합의 경제학적 접근과 지배구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몬드라곤> 시리즈가 스페인의 고유한 사회문화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서구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근대사회의 형성 시점이 늦었던 스페인은 협동조합의 태동 역시 중부 유럽보다 늦었다.

<몬드라곤> 시리즈는 스페인의 특정 지역인 바스크에서 특출한 인물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열정과 집념으로 '몬드라곤'이라는 구체적 협동조합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 시작한 협동조합이 금융, 서비스, 농업, 유통, 연구개발, 대학까지 이어지고 그룹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요즘 세계 최대의 기업이 우스울 정도였다. 협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과 발전동력이 이름 그대로 자조와 협동임을, 그리고 그 구체적인 결과가 '해고 없는' 기업,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조직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사회문화적인 밑바탕에 자조와 협동이라는 관념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과 협동조합 방식의 기업에 뛰어들기 위해 조합의 주체들이 오랜 시간 협동조합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내 주변에서 유행처럼 불어오는 협동조합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경우 자조와 협동, 배려와 합의와 같은 문화보다 조급함과 성공신화, 무한경쟁과 시험, 투쟁과 편가르기를 익숙하게 접했고 그 속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우리사회 저변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문화, 신자유주의를 부분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책은 <몬드라곤>과 달리 협동조합 전반에 대한 현황과 유형,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념과 철학, 발전역사, 지배구조 등을 알려준다. 협동조합의 원리가 무엇이고, 세계의 협동조합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협동조합이 번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 간의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해 성장해온 기업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논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주식회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물론 저자가 주식회사라는 제도와 형태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 기업'은 무한경쟁, 승자독식, 양극화 등 '1%의 탐욕'이 빚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대안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는가 하면 우리 국회 역시 2011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해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의 물꼬를 텄다.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으로 경제 효율의 단순 논리를 뛰어넘는다"

"협동조합은, 다른 사람의 재산에 손대지 않는다. 강탈하지 않는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비밀 결사를 만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아도 된다. 폭력에 빠지지 않는다.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다칠 일이 없다. 공짜로 받거나 특혜를 구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와 거래하지 않고, 근면한 사람과의 신뢰를 깨지 않는다. 구걸하거나 비열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자조와 자립이다.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으로 정당한 자기 몫을 누린다."(협동조합의 역사, 1906)

우리는 보통 기업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주식회사를 떠올린다. 농협마저도 기업이란 느낌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생경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저자인 자마니 부부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볼로냐는 경제 활동의 40%가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협동조합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 성장해온 기업 형태이며, 특정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론적으로 협동조합은 어찌 보면 두 얼굴의 야누스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차원이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기업이다. 동시에,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경제 주체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직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협동조합은 설명하기도 접근하기도 어렵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몬드라곤> 시리즈를 읽은 후 깊은 인상을 받고 비지니스를 생각할 때마다 협동조합 방식을 생각하기는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지만...ㅋ)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지만, 저자는 사실 협동조합은 오히려 주식회사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기업은 산업혁명 시기에 생겨났지만, 서로 연대하고 가난을 배려하는 문화는 그 수 세기 전부터 있었다. 중세 사회에서는 상인과 장인 같은 생산 계층이 모여 각자의 이해를 협력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길드와 상인회의소 조직을 만들었다. 생산 계급에 속하지 못하거나 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병원, 보육원, 공공대부기관, 빈민보호소 같은 조직도 세웠다. 이런 조직들은 시장의 관계망 속에 운영되면서도, 어떤 구성원도 배제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었다. 상장 회사 같은 '자본주의' 기업 형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였다.
사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동네에서 민중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던 '두레'나 '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말살시켜 버렸지만...ㅠ

협동조합은 오늘날에도 활발히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을 수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총 8억 명에 이른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로 이들 국가에서는 국민 절반이 조합원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일본이 꼽히고, 놀랍게도 미국 역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조합원이다. 모든 경제 부문으로 협동조합이 진출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협동조합이 왕성한 부문은 농업 및 식품 가공, 소매업, 그리고 은행 및 보험 쪽이다.
뉴질랜드 경제를 끌어가는 최대 기업, 폰테라(낙농)와 제스프리(키위)도 협동조합이다. 리오넬 메시의 FC바르셀로나, 미국 언론의 대표주자 AP통신, 캘리포니아 오렌지의 대명사 선키스트, 프랑스 최대은행 크레디 아크리콜, 이런 세계적 기업들도 협동조합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협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는 나라가 뛰어난 경제 발전과 복지 수준을 동시에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조직 형태로 폄하 받아왔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라는 두 가지 기업 형태를 효율성 측면에서 비교하는 것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관점은 모든 인간을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로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다른 가치와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나아가,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오히려 저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협동조합이 가진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사회의 민주화이다. 생산 현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의 민주화를 강화하고 지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이 책에서는 '정부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화된다면, 기업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는 똑같이 정당화된다'라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말을 소개한다. 민주적 원칙이 오직 정치에서만 적용되는 한, 그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일 수가 없다. 좋은 사회라면, 시민이자 유권자로서는 민주적이고,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는 비민주적인 그렇게 당황스러운 분열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2012년은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지난 6월(?)에 서울시청 앞 시민과장에서는 우리나라 협동조합들이 모두 모여 며칠 동안 기념식과 행사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국회를 통과한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2012년 12월부터는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법제도가 미비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협동조합 설립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새로이 제정된 법은 그 내용이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는 물꼬를 트는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전혀 다른 접근과 방법으로 우리들이 간혹 꿈꾸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실험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과 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뢰, 협조, 상호주의, 공평함, 민주주의, 양질의 고용, 자율적인 삶 등...

[ 2012년 8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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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재발견 - 소셜미디어, 대한민국 정치의 판을 바꾸다!
유창선 지음 / 지식프레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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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경제형편 상 밥벌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오래도록 치과를 다니면서 몸도 불편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적극적 관심을 보여온 정치사회 부분에서도 이렇다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4.11 총선에서 야권은 단일화를 하고서도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고 통합진보당은 13석이라는 역대 최대 성적을 올리고 나서 '내분과 당권투쟁'이라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날씨도 점점 더워져 체력도 말이 아니고...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명의 '괜찮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유창선씨다. 과거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잘 몰랐는데 유창선씨는 나름 괜찮은 정치(시사)평론가였다.


5월 2일 통합진보당 조준호 전대표가 언론에 터트린 '비례투표 부실,부정선거 사태'가 의혹을 넘어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 일방적으로 도배되면서 사실로 '규정'되어 버렸고 하루아침에 통합잔보당이 '부정선거당'이 되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을 이어가면서 그나마 존재하는 정당들 중에서 중산층, 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고군부투해온 진보정당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진보당 내에서도 스스로 '자학'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정파간 극단적 대립과 사생결단의 당권투쟁이 벌어지고 진보 미디어는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카더라'라는 당내 정보를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진보정당 중 또 다른 하나인 진보신당과 소위 진보지식인이라는 인사들까지 합세하여 통합진보당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데 일조했다. 그 과정에는 조금의 애정도 자그마한 신뢰도 느낄 수 없었다.
유창선씨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달을 때 제3자적 시각으로 냉정함을 가지고 정치평론을 진행한 편이다. 대립하는 양측 입장에서는 그의 평론 내용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유창선씨의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그의 글을 몇 차례 읽었음에도 그의 평소 철학과 의견이 궁금하여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는 이 책 <정치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사회가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시대'를 맞아 기존의 정치지형이 변화되고 있음을 애기하려고 했다. 그는 2009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소셜미디어 시대'로 접어들었고,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킹메이커는 SNS라고 결론을 내린다. 즉 그는 SNS를 통해 한국정치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SNS가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뉴미디어로서의 기술적 가치를 넘어, 이제 시대적인 흐름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SNS가 유통하는 정보를 숙의가 덜 된 여론으로 폄하하거나 그 가치를 논하는 일은 '더 이상 쓸모없는 소모전'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SNS가 촉발시킨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나 튀지니지의 재스민 혁명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증명하는 사례들임을 제시한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치러졌던 분당을 보궐선거나 10.26 서울시장 선거는 결국 SNS의 영향력이 당락을 좌우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래서 각 정당들도 선거철만 되면 SNS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올해 치러진 4.11 총선에서는 상대적으로 SNS의 영향력이 기대만큼 폭발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이 역시 스마트폰의 보급률 등을 감안해 지역별로 살펴보자면 결국 "수도권에서의 SNS 영향력은 막강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바야흐로 SNS가 대세를 결정짓는 소셜선거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SNS의 핵심은 바로 ‘소통’이다. 소통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인터넷 미디어는 SNS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권력의 억압과 통제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SNS에 열광했다. SNS에서의 정보는 단지 여론을 형성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결국 오프라인의 시민행동으로까지 촛불처럼 타오르며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권력은 더 이상 올드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으로서 여론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소통’의 문제이다. 이제 소통하지 않으려는 지도자와 정치가는 결코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는 단순히 집권 여당과 보수, 권력에 지배당하는 올드미디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나아가 진보의 소통 방법,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소통을 가로막는 SNS 사용자들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SNS와 소통을 기본 주제로 하면서도 한국 정치의 주요 현안과 인물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평가한다. 왜 시민들이 그토록 '나꼼수'에 열광했고 '나꼼수 현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꼼수'의 4.11 총선 출마를 어떻게 볼 지, 보수와 미디어와 종편과 SNS의 관계에 대해, 5월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올해의 주요 정치인인 안철수 리더쉽, 문재인과 안철수, 소통 부재의 리더쉽 박근혜,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고 있는 '빠'의 정치문화에 분석하고 비판한다. 특히 가장 소통에 능해야 하는 진보가 기성 정치권 만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던진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지도 신뢰도 끊어진 통합진보당의 참화'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뼈아프다. 그는 현재의 재앙이 '4.11 총선을 앞둔 졸속통합의 과정에서 이미 잉태한 것'이고 이번 사태가 '서로 다른 정치문화가 낳은 충돌'이라고 규정하면서 합리적인 절차와 해법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뢰와 의리의 회복이 혁신의 첫 걸음'이라고 제안했지만 이 책이 발간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그의 제안은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 속에서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저자 유창선은 현재 날카로운 시선, 속 시원한 비평으로 유명한 정치평론계의 스타 논객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블로그(www.yuchangseon.com)와 트위터(changseon), 페이스북, 인터넷 개인방송(afreeca.com/sisatv)을 넘나들며 온라인 공간에서 전방위적 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1인 미디어의 선봉장을 스스로 자처했고 이 책은 그런 그가 SNS 시대의 대한민국 정치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MB정권이 들어서기 이전, 그는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섭렵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던 정치평론계의 스타 논객이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과오와 오류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의 펜을 들이댔다. 하지만 MB 정부의 블랙에 걸려 마이크를 빼앗긴 불운의 평론가가 되었다. MB 정부가 들어선 뒤 KBS에서 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퇴출당한 저자는 마이크를 빼앗기며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위기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글하지 않고 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1인 미디어 개척자로서 빼앗긴 마이크를 되찾으며, 그는 여전히 대중들 속에서 재야 평론가로서의 발언을 지속해 왔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글 하나로 하루 방문자가 60만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며 파워 블로거 반열에 올랐고, 2010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 부문 대상, 아프리카 TV의 베스트 BJ 등 거침없는 미디어 활동을 통해 지금은 5만 팔로워 군단을 거느린 논객이 되었다. 비록 지상파 방송은 아니어도 그는 SNS를 통해 수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치 뉴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SNS의 현장 한복판에서 그동안 미디어의 혁명과 변화를 직접 체감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미디어 시대의 우리나라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유권자들과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어떻게 SNS에 대해 어떤 태도와 노력을 해야할 지 분명하게 애기해 주고 있다.


- 기억나는 문장 :


"나는 방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인 만큼, 할 말은 하되 어느 편에 속하지 말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불문율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노력은 정권이나 그 하수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유창선이라는 사람은 MB 정부와 코드가 다르고, 따라서 정부를 비판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 껄끄러웠던가 보다. 자신들 편이 아니면 방송에 나올 수 없다는 야만적 폭력이었다. 도대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근거조차 없이 마이크를 빼앗고 한 사람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폭력이 어떻게 버젓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인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현실이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자신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을 막기 위해 책을 불태우는 분서갱유를 했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방송을 장악하고 마이크를 빼앗는 일을 저질렀다. 나의, 아니 우리의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p.26)


"나꼼수 같은 방송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배려할 이유도 없다. 나꼼수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안 들으면 그만이다. 팟캐스트에 일부러 들어가서 다운로드 받지 않으면 나꼼수를 들을 일이 없다. 원하는 사람만 듣게 되어 있는 것이 팟캐스트 방송이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들으면 되는 일이다. 구태여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게까지 마음에 들 방송을 만들 책임은 없다. 자기들이 언제 나꼼수 방송에 스튜디오라도 한 번 빌려준 적이 있는가. 그들은 나꼼수의 공정성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이는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이다. 나꼼수의 내용이 편파적이더라도 그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요즘 세상에 가카만 깐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가카를 찬미하는 미디어가 보호받듯이, 가카를 까대는 미디어도 당당하게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 그것이 곧 표현의 자유이다."(p.64)


"왜 그럴까. 보수는 태어날 때부터 SNS에 둔감하게 태어난 것일까.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존재하는 SNS 능력의 격차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SNS의 환경 자체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우선 한국에서 SNS가 급성장한 배경을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SNS는 기존의 올드미디어에 대한 불신 위에서 성장하였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언론의 편파성과 불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대안 미디어로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바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같은 SNS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언론에 비판적인 진보층이 SNS의 중심을 이루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2011년 9월 한국광고주협회가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SNS 이용자 가운데는 진보적 성향이 보수적 성향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p.151)


"안철수의 말은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가 편을 가르고 싸우는 한국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양자 사이의 소통과 상호 보완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안 교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 혹은 지식인들이 한국 사회의 이념적 대립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소통 혹은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 왔다. 그러나 그 같은 문제 제기는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우리의 정치 환경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성적인 대화와 소통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치의 중요한 고비마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이념적 대결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보수는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색깔론까지 들먹이며 진보를 공격해 왔다. 이에 진보 또한 방어적 차원에서 맞공격을 하곤 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화해가 불가능한 적대적인 세력으로 늘 자리해 왔다."(p.214)

 

"노빠(노무현), 유빠(유시민), 박빠(박근혜), 황빠(황우석), 나꼼수빠,... 우리사회에서 '빠'라는 문화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의 무오류성에서 기반한다. '그'는 언제나 옳고, 설혹 잘못이 있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아닌 대결을 벌이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반대편과 같은 사람들로 간주한다.
그러나 세상에 무오류의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바른 방향을 추구하는 정치인이라 해도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항상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은 것이라 해도 모든 것을 눈감아 주고 우리끼리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식의 사고로는 국민을 이해시킬 수 없다.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
'빠' 문화 현상은 이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빠' 문화적 사고에서는 저편과 이 편만이 있을 뿐이고,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여러 다야한 입장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편이 아니면 곧 저쪽 편으로 간주하는 것이 '빠' 문화적 사고이다. 아무리 우리가 함께 지지했던 인물이라 해도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옳은 자세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조차도 저쪽 편만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식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하는 것은 이분법적 폭력일 뿐이다."(p.243)


[ 2012년 7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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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같은 그녀
이정희 지음 / 학고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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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국회의원 총선거 준비단계에서 개인적, 집단적 기득권을 양보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단일후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진보신당을 포함한 전체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애초 목표였던 교섭단체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여 통합진보당의 조직력의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권단일후보 협상을 성공리에 끌어낸 정치력에 대한 내 평가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통합진보당의 어설픈 '3자 통합'과 유기적이지 못한 정당운영구조, 당원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내부 관료주의, 불안정한 내부 의사결정구조 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통합진보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 책은 지난 3월 그런 정치력을 보여준 이정희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발간했다고 하여 구입한 것이다. 이미 예비후보에 출마한 친구 등 정치인이 발간한 책 여러 권을 구입했지만 출판기념회 또는 개인적인 인연이 아닌 나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구입한 첫 번째 정치인 저서였다. 그리고 연이어 유시민,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김문수 등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한 책을 읽은 후에 한꺼번에 서평을 써보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치인의 책을 구해서 읽는다는 것이 여간 마음 먹기가 쉽지 않았다. 세미나 교재나 내가 개인적으로 독서계획을 세운 책을 읽기도 시간이 빠듯했다.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일정이 더 가까워져야 몸이 움직이려니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5월 2일 '통합진보당 부실,부정선거 의혹 사태'가 발생했고 지금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5월 한 달은 가히 '광기'의 시기였다. 확인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부정과 부실 의혹'이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라는 공적 조직을 통해 '사실'로 규정되어 전사회로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하루아침에 통합진보당은 '부정선거당'이 되었고 비례후보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사퇴 요구'에 직면했으며 '선 진실규명 후 사퇴여부 결정'을 내세우며 이를 거부한 4명, 특히 당선자 신분인 2명은 본인들의 구체적인 잘못도 없는 상태에서 '부정하고 비도덕적인 정치인'으로 매장되었다. 이정희 대표 또한 그 과정에서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었다. 진실은 필요 없었다. 바닥 아래 내동댕이 쳐진 통합진보당의 도덕성과 신뢰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만이 요구되었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그리고 그 이후 과정에서도 우리사회 내부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광기'와 '파시즘'과 '차별의식'을 목격했다.
참담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정의와 진실, 인간존엄성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등 서구 근대사회가 수 백년 동안 피를 흘리며 쌓아온 인류의 지성이 이제 겨우 60여년 밖에 안된 한반도 남단에, 그것도 '쟁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인류의 지성을 우리 스스로의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고통과 좌절과 희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정희 전대표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차츰 우리들 속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부활할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난 과정에서 그녀의 정의와 진실을 향한 그녀의 진정성, 이념이나 정파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과 소중함을 사랑했던 그녀의 진정성, 희생과 상처를 스스로 감수한 그녀의 진정성을 내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김준식의 문학이야기 http://www.djjb.kr/html/6_2.html]를 참조하시길.. 나는 문장력이 짧아 진정성을 표현할 수가 없으니...ㅠ) 나 뿐 아니라 수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진정성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희는 동년배의 일반적인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피아노를 잘 쳤던 어린 시절, 두부공장을 하며 평생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 해마다 여름이면 물이 차올라 주인집으로 피신했던 지하 단칸방 생활. 가족 여행은 물론 외식조차 쉽게 할 수 없는 가난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이를 위해 아버지 두부공장의 철제 책상에서 공부했다. 그녀가 대학입시를 준비할 당시에는 그래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기였다. 1987년 당시 학력고사 인문계 여자 전체 수석으로 서울대 법과대학에 합격했다. 24년이 지난 최근에는 이정희와 같은 중하층 서민의 자식이 서울대에 가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도 뜻밖의 열등감이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내내 신문 한 장 읽지 않고 사진선다형 문제만 풀며 단순하게 살아온 나에게 대학과 사회로 열린 문은 육중하고 거대했다. 열등감을 느꼈고 많이 긴장했다”(p.40)고 고백한다. 6월 항쟁을 겪으며 민주주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내면의 궁핍’이 컸다.
그 궁핍을 채우고자 이십대의 이정희는 땀 흘리는 노동 현장의 삶을 열망했다. 하지만 그 노동의 일상이 낯설고 두려웠다. “겨울에도 따뜻한 물로 매일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집을 떠나 찬물조차 쓸 수 없는 곳”(p.42)으로 가는 게 두려웠노라고 토로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1980년대를 살았던 대다수의 '건강한 대학생'들의 두려움이자 부채의식이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수의 대학생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노동현장으로 투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의 좌절감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고 내면의 궁핍을 채워나간 계기는 여성운동이었다. 여성운동의 이론과 경험을 공부하고 공감하면서 비로소 알고 싶은 것이 생겼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녀는 십대의 마지막 시간과 이십대의 절반을 여성운동을 하면서 보냈다.
한편, 가족은 오늘의 이정희를 있게 한 또 다른 힘이었다. 이 책에는 평생 두부공장을 하며 일만 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 열한 살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과의 연분홍빛 연애, 공동육아와 대안 학교를 통해 키워낸 두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몇 년 전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빠짐없이 드러나 있다. 특히, 일하는 엄마로서 제때 아이들을 챙겨 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절절하다. 그래서 가족은 그녀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존재,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의 뿌리가 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고마운 존재”(p.69)다.

이정희의 삶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고 인권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이는 어떤 거창한 명분이나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착하게 살자’라는 삶의 신조를 ‘정말 끝까지’ 지키려는 우직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정치는 모든 것을 거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며,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편이다. 하지만, 소수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으로 살아온 지난 4년간의 뼈저린 경험을 통해 힘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진보 집권의 생각이 움텄다. 그것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겪은 쌍용자동차 파업 같은 슬픈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쌍용차 사태 이후, 힘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집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생겨났다. 다시는 이런 전근대적인 인권 유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들과 싸우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정리해고 앞에서 무기력한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는 정부를 만들고 싶었다.”(p.126)
이런 슬픈 패배를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내린 정치적 선택은 통합진보당의 결성이었다. 더 이상 밥상 위에 놓인 ‘소금’처럼 제한된 역할이 아니라, 진보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밥상 자체를 새로 차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통합진보당을 통해 옳은 것이 반드시 이기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정의, 자유, 평등, 인권, 평화, 민주주의, 경제 개혁, 복지 등과 같은 공동체의 기본 가치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그 지향점을 노동 존중 평화복지국가로 제시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발간한 지 3개월 만에 통합진보당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그녀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져가는 듯이 보인다. 그녀는 지난 5월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스스로 안고 '침묵의 형벌'을 자처했다. 그녀는 지금 이 책 속에서 꾸었던 꿈의 크기와 높이보다 더 커다랗고 깊은 어둠 속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과정을 복기할 것이다. 나는 그녀가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과 책임을 외부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찾아내기를 바란다. 모든 과정은 상대적이과 상호작용을 통해 벌어진 일이지만 언제나 자신이 그 전개과정에서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번 기회를 스스로가 더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낙관적이고 강해지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그녀 스스로가 말했듯이 정치는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권력과 돈으로 잠시 힘은 가질 수 있지만, 그 무엇으로도 끝까지 함께하는 마음은 얻지 못한다. 마음은 오직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그 마음들을 모아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나는 믿는다.”(p252)  
 
[ 2012년 7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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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바겐, 북한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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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건 작년 12월 10일이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것은 그 뒤부터 대략 18~19일 뒤였다.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루어졌고 요즘 미국과 북한 핵무기 제거와 에너지, 식량 등에 대해 협상이 한창이다. 한국정부는 예상대로 북미협상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남북대화는 올해 안에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될지 여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인 것 같고...

그럼에도 남한의 99% 민중들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간단하거나 편한 문제는 아니다. 당장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라는 정치적 견변기를 거쳐야 하는데 남한 내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들을 기초로 하여 유권자들이 정치적 선택을 해야하는 와중에 북한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천안함 사건'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으로써 우권자들이 과거에 비해 좀 더 성숙하고 냉정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철저하게 남북대결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온 냉전수구세력들은 여전히 '북한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함으로 경계한 않을 수 없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진단과 올바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유권자나 정치인, 지식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반도가 1945년 남북으로 갈라진 것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남북간 긴장과 대립은 지구촌 세계에서 20세기에 벌어진 특유의 '이념과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북의 99% 민중들은 지난 66년간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저버린 이념과잉에 희생된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념과잉이 진화되어 1인 독재, 새습독재, 일당독재로 진화하면서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냉전수구세력과 1% 개득권 세력에 의해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일이나 예멘 등 이념과잉을 극복한 국가,민족들과 달리 남북 스스로 이념과잉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잘못과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임은 정치인들과 가득권자들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2012년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아직도 이념대립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그리고 20세기 이념과잉의 대척점에서 시작된 분단은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체제'의 대척점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까지 든다.(대부분의 정치가들과 학자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개념이지만...) 하지만 남북의 기득권 독점자들이 서로의 협력보다 대결을 통한 정치적 욕구를 위해 대립하면서 남한은 미국에 점점 종속되고 북한은 점점 중국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가 펴낸 북한 문제 분석서다. 연구소측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3대세습, 핵개발 등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북한 정권이지만, 그에 대한 남한의 대북강경책이 현재의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도 심화, 남한의 대미 교섭력 약화, 북한 독재체제 강화, 대중 관계 악화 등 해결하기 어려운 더 큰 문제를 야기한 현실에 주목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플리바겐식 접근법’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 할 수 상생의 솔루션을 제안한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발표하는 정부나 공공연소의 관련자료나 깊이와 분석력이 턱 없이 모자라는 재벌 편향의 연구소들의 부실한 자료에 비해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정한 책의 제목은 나로서도 조금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했다. '플리바겐(Plea-Bargain, 사전형량조정제도)'은 남북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플리바겐'은 ‘사전형량조정제도’라 불리는 법정 용어로,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거나 사건해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할 때, 그에 대한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이다. 미국에서는 웬만한 조직범죄나 마약 관련 사건에 플리바겐 제도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소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사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이 낯선 용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차갑게 식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실용적, 미래지향적인 대북정책을 펴는 데 ‘플리바겐’이 적절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플리바겐'을 "인질을 숨겨놓은 연쇄 살인범에게 인질을 살리기 위해 형량을 낮추는 협상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상황을 남북 대치상황으로 대입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질'은 남북의 99% 민중(남한경제와 국가안보도 포함해 생각해볼 수 있을 듯..)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유에 대해 북한측과 남한의 일부 사람들은 불공정하고 부당한 비유라고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가 생각할 때, 남북 대결상황에 대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 남한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플리바겐'이 그나마 현실적인 관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연구소측이 정한 이 책의 목차는 연구소가 애기하고자 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1부는 '대한민국, 북한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문제를 잘못 푸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제2부는 '북한경제, 시장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 지도부가 화폐개혁 실패 등의 경제적 난관을 헤치기 위해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밖에 없는 '시장경제'와 그로 인해 오히려 취약해지는 경제적 통제력에 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마지막 제3부는 '북한정치, 경제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북한 지도부가 정치적인 장악력을 잃어가는 딜레마를 설명해 주고 있다.

2008년 2월 대통령 취임 후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형적인 적대정책으로써 지난 정권 시기 어렵게 만들어온 남북관계를 몇 걸음 뒤로 후퇴시켰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은 대부분 중단되었고, 금강산 관광 사업도 멈추었으며, 대북지원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와 적대적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북한 정권과의 협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은 인민들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도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김정일 부자를 중심으로 한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금강산에서는 남한의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했고,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요구한 채, 남북 협력과 대북 지원을 대부분 중단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시도는 남한에게도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김정일 체제는 결국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였으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고 있다. 우리 최대의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북한의 중국 의존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FTA 추가협상에서 보듯, 대미협상력도 급격이 약화되었다. 만에 하나, 현재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의도한 대로 김정일-김정은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도, 쏟아지는 난민과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남북한 모두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소와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딜레마의 빠진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점진적인 남북 협력의 확대와 북한의 개혁/개방, 그리고 남북 격차 해소와 남북통일로 이르는 경로이다. 이를 위해 세계정세 속에서 북한 정권의 지속 가능성, 북한 지하자원 개발, 대중 의존도 심화, 북한 내부의 변화 압력, 통일비용의 실체 등 다양한 북한 관련 현안들을 연구하여 그 근거들을 제시하는 한편, 북한 경제의 흐름과 메커니즘, 북한 주민들의 경제생활과 2000년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분석을 통해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 가능성을 엿본다.
이와 같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플리바겐'식 접근법은 남북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여-야, 진보-보수가 대북정책을 두고 벌이는 지루한 대립을 끝내고 발전적 내일을 그릴 수 있는 확실한 대안임을 강조한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남북통일에 대해 찬반의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5천년의 동질성을 간직한 같은 민족이기에,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후손들이 더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경제와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통일이 지상목적이 됨으로써 과정에 무심해지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대한 우려, 통일방안이나 방식에 대한 논란과 이해관계로 인해 그 속에 담겨있는 정작 제일 중요한 인간과 평화가 무시되는 것 때문에, 통일이라는 형식 보다 평화와 화해, 협력, 안정, 상호존중, 자립 등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애 앞으로 적어도 100년 정도는 평화체제 속에서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통일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은 서너 세대 이후의 후손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현재의 구성원들은 남북분단과 남북대립의 당사자이자 희생자들이고 통일에 대한 결정에 따른 장단점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감당할 몫이기 때문에...
 
[ 2012년 3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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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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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3월 3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Ca'에서 'C'로 한 단계 내렸다. C등급은 무디스가 평가하는 투기 등급 채권 가운데서도 최하에 해당한다. 무디스는 민권 채권단이 그리스 채무를 천 70억 유로 낮춰 주기로 한 채무조정 합의로 인해 그리스 국채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등급을 낮췄다. 앞서 그리스 민간채권단은 2천억 유로의 그리스 국채에 53.5%의 손실률을 적용해 천 70억 유로를 탕감해주고 나머지를 새로운 장기채권으로 교환하기로 그리스와 합의했다. 이번 사태는 유럽 주요국들이 그리스의 디폴트를 염려한 결과이도 하고 역으로 이러한 구제금융이 주요국의 금융기관에 부담을 주어 주요국의 재정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유럽의 경제위기가 전개될 수 있을 지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지난 1997~1998년 동아시아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억한다면 현재 유럽발 금융위기, 재정위기는 자칫하면 히로시마 핵폭탄이나 쓰나미 수준의 파괴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정부, 정당과 기업 뿐 아니라 언론,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도 이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학계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괜찮다'만 연발할게 아니다. 언론 역시 커다란 사건이 발생할 때에만 간헐적으로 기사로 다룰 뿐 심층적인 분석기사를 내보내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이 책은 반갑고 고맙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정부연구소나 재벌연구소의 자료를 불신하는 내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 비'와 같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예전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대외 불균형과 달러 기축통화제의 모순이 해결되어야 하며, 금융시장을 포함한 자산경제 부문에 대한 규제가 적절한 수준으로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시스템의 문제와 함께 '사람의 문제'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념에 빠져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잘못된 정책실패를 남발해온 각국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 역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정치권의 무능과 부정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1년 뉴욕의 '오큐파이' 시위가 이에 대한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민주주와 시장경제가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결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이다.
 
 
연구소는 이 책을 통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전이된 이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실물경제위기가 재정위기로, 재정위기가 통화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하여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폭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와 함께 읽으면 좀 더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 그리고 그 한계와 대응방향에 대해 알 수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세 의해 '위기의 재구성'은 어떻게 분석되었을까?
10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지 불과 3년 만에 또 다른 금융위기의 파고가 전세계를 덮치고 있다. 지난 번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전세계가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지자, 각국은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과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의 재정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했다.
원래 미국과 유럽 각국은 재정적자를 감수해서라도 경기를 부양시킨 후 경기가 회복되면 늘어난 세수로 구멍난 재정을 메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회복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도 너무나 미약했다. 실업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실물경제의 회복세도 미미한 상황이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도 전에 나중에 터졌어야 할 재정 문제가 너무나 일찍 터져버렸다는데 있다. 말하자면 금융기관과 가계 및 기업 등 민간부문의 엄청난 손실을 정부가 재정적자로 한꺼번에 떠안는 바람에 공적채무가 폭증하여 국가마저 파산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의 PIIGS(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국가들이 대외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재정위기(sovereign risk)에 처하게 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2막이 열리고 있다. 각국은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 다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앞날을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론 사태를 계기로 국내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한다는 신념이 깨어진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은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 가계의 과다차입과 과소비 및 부동산투기, 자유방임적 금융자유화를 배경으로 한 증권화 파생상품의 남발, 달러 기축통화제 유지를 위해 무리한 달러 강세정책 남발에 기인하는 대외 불균형 심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2007년 여름에 이 세 가지 요인들의 모순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서브프라임론 사태로 불리는 부동산투기 버블 붕괴가 시작됐고, 이것이 글로벌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2008년에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터진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융위기, 실물경제 위기, 재정위기, 통화위기 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미국은 비록 글로벌 민간금융기관들이 빠르게 이익을 회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은행들의 가계 및 기업대출은 줄고 있고 주택 시장은 더블딥에 빠져 있는 양상이다.
눈을 유럽으로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PIIGS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 등 상당수 국가들도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언제든지 유럽발 제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로부터 2011년 이후 세계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정부의 재정동원 능력이 사실상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 공적채무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해 더 이상 정부 재정적자 확대에 의존해 경기를 떠받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에 최후 수단으로 2010년 후반부터 FRB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통화증발을 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통화증발책이 기대한 만큼의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통화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화증발책은 각국의 인플레이션과 물가위기를 가져오게 되고 물가위기가 심화되면 각국의 경제 자체가 무너지고 정치권 마저 붕괴될 가능성을 높인다.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경제 전체로 막대한 차입을 통해 부동산투기 거품이 발생한 것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등이 과다차입을 통해 부동산에 자전(自轉)거래 투기를 한 결과 부동산자산 과잉으로 2007년부터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하여 더 이상의 가격상승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장부상으로는 차입한 만큼의 부동산자산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가치가 하락하여 90년대 재벌 대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 등 부동산 투기자들도 파산위기로 몰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품붕괴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이를 정부와 공기업 등 공적부문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문학적인 채무 증발을 통해 억지로 떠받쳐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계속 떠받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나 명분이 거의 소진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한국경제는 거품 붕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벌써 거품붕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과다채무의 대가로 경제 전체로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공공요금이나 가격인상, 증세 등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인플레의 역습 그것이 바로 과다채무에 의존한 거품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경제 전체의 총 금융채무 분석 결과를 종합해보면, 한국 경제의 총 금융채무는 2010년 9월말 현재 6,840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명목GDP의 6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심각한 채무과다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채무 증가 추이를 보면, 정부부문은 2009년부터, 공기업은 2008년부터 부채가 폭증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개인과 민간기업의 부채는 2008년까지 급증한 후 2009년부터 정체를 보이고 있어 공적부문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경제가 2009년부터 공적부문의 부채 증가에 의존하여 성장해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간부문의 부채가 2005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8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한 후 2009년부터 정체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투기 및 거품 붕괴와 맞물려 있음을 의미한다. 2009년부터 민간부문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됨에 따라 공적부문이 채무 증가를 통해 거품 붕괴를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경제대통령'이라는 포퓰리즘으로 당선되었지만 그 이전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보다 더 무능하고 부정한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일본은 환율방어를 통해 국내 물가를 안정시켜 왔음에 비해 이명박 정권은 통화량을 부불펴 화폐가치를 떨어지게 만들고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율방어를 방치하여 국내물가의 폭등을 불렀다. 결국 일반 국민들은 그동안 물가인상이라는 '간접 세금'으로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준 것 뿐이다. 그런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 수출 대기업은 매출과 순이익을 높여 주주와 오너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고용은 늘리지 않고 비정규직만 양산하여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들을 배신해왔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할 지 갈피를 못잡고...
 
그렇다면 결국 일반국민들, 유권자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하여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조직할 수 밖에 없다.
 
* 인상 깊은 문단 :
"한국은행의 5만원권 발행은 화폐가치와 관련한 정부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09년 6월 5만원권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주요 화폐경제 지표들이 조 단위를 넘어 경 단위로 넘어갈 형편이고 기존의 1만원권 화폐로는 화폐 발행비용 및 관리비가 많이 소요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5만원권 발행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거액의 현찰 뇌물수수가 용이해져 부패가 심해질 수 있고,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5만원권 발행은 물가관리와 화폐가치 방어 실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고 원...
화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면 굳이 교역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주부들의 체감물가를 들 수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장을 보러 나갈 때 10만원 정도만 있으면 시장이든 할인점에서든 어느 정도 넉넉하게 물건을 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물가가 폭등하여 몇년 전에 살 수 있었던 물건의 절반 밖에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5만원권 발행은 한국은행과 정부가 물가관리와 화폐가치 방어에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5만원권 발행이 정책적인 업적으로 선전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가가 낮아져 적은 돈으로도 보다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고액권이 만들어져 비싸진 물건을 편리하게 지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0~90년대 부동산 버블붕괴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환율방어에 성공해 낮은 물가를 유지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230엔 전후 수준에서 1995년 플라자 합의로 145엔으로 급락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는 평균 111엔 전후 수준을 유지했으며, 2010년부터는 80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한때 일본 내 물가상승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 1엔짜리 동전도 1980년대 소비세 시행과 함께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장기불황이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를 꾸준히 상승시켜온 것이 일본 경제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정부와 관료, 정치권은 말로는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거 무시하면서도 정부정책의 수준은 일본 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원화는 8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484원 수준이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IMF사태 직전까지는 평균 783원 수준으로 올랐고,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이전에 비해 약50% 가량 올라 달러당 1,157원을 기록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원화 환율 인상으로 도망가는 경제운용 형태를 바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2003년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환율 약세 정책은 양적 경제성장을 보다 쉽게 실현시켜 준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상당한 부작용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 약세정책은 통화량 증발정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가상승과 분배문제, 성장잠재력 저하 등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 기업이 유리해지는 대신 수입물가가 비싸져 장기적으로 내수침체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환율 약세정책은 사실상 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물가상승이라는)세금을 걷어 수출기업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지, 경제규모에 걸맞는 고액권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2012년 3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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