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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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는 꼼수다' 멤버 4인 중 마지막 주진우 기자가 발간한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했던 나꼼수... 작년부터 이어진 나꼼수의 활약상에 대한 보답으로 책을 구입했는데 벰버 4인의 책 <닥치고 정치>, <달려라 정봉주>, <보수를 팝니다>, <나꼼수 에피소드>, <주기자>까지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꼼수다'가 MB정권의 폭압이라는 조건 보다 멤버들 스스로의 내공과 노력에 의해 탄생하고 유지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꼼수는 4.11 총선에 선수로 뛰어들면서 인기가 많이 시들었다. 김용민 후보는 낙선했다. 야권의 패배에 일조했다는 비난도 제기되었다. 민주통합당도 나꼼수도 열성지지자들은 '사실상 승리'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선수와 응원군은 역할이나 움직임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나꼼수가 4.11 총선에 직접 뛰어들어 쓰라린 패배감을 맛보았던 것이 나꼼수의 도약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는 김어준식 화법으로 독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털고 정치에 다시금 관심을 유도한다. 나꼼수가 인기를 얻기 전에 발간했다. 한국정치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세력들이 어떤 생각으로 정치판에 몸담고 있는지, 유명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와 보수 및 진보세력에 대한 평가를 담았다. 자신이 친노세력이고 문재인씨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이유를 밝힌다. 소위 '좌파'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정봉주의 <달려라 정봉주>는 나꼼수에서 끝없이 '깔때기'를 들이대는 정치인 정봉주가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통합당 내의 대다수 정치인보다 훌륭하다. 주관을 가지고 있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줄 아고, 계파와 대세에 휘둘리지 않으며 대중적이기까지 하다. 장래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용민의 <보수를 팝니다> 역시 나꼼수의 김용민을 다시 보게하는 책이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던 김용민이 어떻게 진보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보수진영 속에서 자란 덕분에 보수세력이 어떤 자들인지 잘 알고 있다. 정치평론가로서의 자질도 엿보인다. 다만, '4.11총선은 사실상 승리'라는 생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심판이나 관객과 선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배운 것이 좋은 경험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한다. 이것은 신념이 아니라 간지다"

 

나꼼수에 출연하기 전까지 주진우 기자는 그쪽 판에서만 이름난 군소매체의 기자에 불과했다. 그는 최근 우리사회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지은 장면들을 되돌아보며, 기사를 쓰던 당시 상황과 현재에서 바라보는 의미를 되새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무도 몰랐던 야화를 탐정에게서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는 사실 기자라기보다 탐정이라는 이름이 더욱 잘 어울린다. 그만큼 그는 디테일에 강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특종캐치실력과 취재실력을 갖춘 그는 취재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과 추적과정의 에피소드 등의 개인적 이야기도 함께 털어놓는다. 나꼼수 방송에 배경으로 깔리는 '누나야~'가 괜한 삽입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취재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그동안 우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대형사건들의 전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과 권력계층이 어느 정도의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맞서며 얻은 경험을 들려주는 저자를 통해 두려움 없이 사회의 병든 곳을 들추고 약자에 편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아래는 주기자의 삶의 자세를 말해준다.
저자는 사실 기자라기보다 탐정에 가깝다. 사람들이 주진우 기자에게 가장 흥미로워 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어떻게 다른 기자들이 만나지 못한 사람을 단독으로 만나고, 매번 특종을 하는지에 그 취재기법에 대한 궁금해한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가는지, 어떻게 취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비교적 개인적인 이야기는 ‘꼼꼼한 뒷얘기’에 담았다.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성격의 꼭지들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재조합하는 시사성과 판단력, 감춰진 이면을 듣는 충격과 공분, 그리고 사회의 어둠 속에서 온몸을 던져 싸우는 배트맨의 실사판과 같은 주진우 기자의 캐릭터, 라는 세 가지 읽을거리를 동시에 준다.

 

"내 짱돌쯤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거 안다 / 꽃길이었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 뜨거울수록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 하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 혼자 피하면 쪽팔리는 거다 /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거다 / “넌 정말 나쁜 새끼야.”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 그래서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진실을 파묻지 마라 / 나는 17살 주진우다"

 

이 책에세 정통시사활극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지난 십여 년간 우리사회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지은 장면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노건평 게이트를 비롯한 참여정부 때 벌어진 대부분의 게이트, 신정아 사태, 장자연 사건, 순복음 교회 세속,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 특검, 에리카 김과 BBK메모 특종, 그리고 최근 나경원 1억 원 피부과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 등 최근 10년여 간 우리 정치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 현장에 늘 그가 있었음이 '나꼼수'를 통해 알려진 셈이다. 정봉주 전의원 못지 않은 주기자의 인기는, 팬들이 성역 없이 ‘우리 편에서’ 싸우는 살아 있는 기자의 발견에 놀라고 또 환호를 보낸 것이다.
주 기자를 직접 따라다니는 듯한 긴장감 넘치는 추적극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통시사’란 말은 장식적인 수사가 아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사건의 전말,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그는 ‘자 봅시다’라며 그만의 시각과 경험에서 나오는 팩트 추적으로 뉴스에서 본 사건들의 실체를 파고든다. 주 기자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를 지배한 기득권과 권력계층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능하며, 뼛속까지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언젠가부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전혀 언론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사와 논조에서 균형과 공평함은 커녕, 사실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조작이 난무한다. 언론이 아니라 권력인 것처럼 행사한다. 돈과 권력에 미친 몇 사람이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재벌을 꿈꾼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들에게 저널리즘은 없다.
하지만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소위 '진보언론' 역시 "저널리즘이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 많은 기사들은 직접 취재나 검증 없이 취재원으로부터 받아쓰기로 이루어진다. 담합과 작당이 눈에 보인다. '진보 상업주의'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재벌과 광고주의 영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조중동을 비판하면서 조중동을 닮아가고 있다. 주기자의 반이라도 따라갔으면 한다. 주기자는 감성적이고 착하지만, 그렇다고 김어준이나 다른 멤버처럼 '묻지마 친노'도 아니다. 그는 팩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이 부당한 특권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독립을 소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달려든 거다, 검찰은 정권의 개가 되고 싶었다. 개 노릇 그만해도 된다니까 안 예뻐한다고 물어뜯은 거다. 검찰 조직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참여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추진했다. 하지만 바로 무산됐다. 제도 개혁 없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순진했다. 아니 무능했다. 문재인 이사장도 마찬가지다."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에 대한 양심선언을 결심하고, 언론의 취재가 시작됐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가장 그리고 열성적으로 움직인 것도 공무원이었다. 대검찰청, 청와대, 정부 고위 관료가 삼성의 논리로 김변호사를 매도하고 삼성을 두둔하고 나섰다. 한 정부 고위 관료는 김 변호사를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론을 펴기 위해 시사인 편집국을 찾은 삼성 홍보팀 고위 간부는 그 관료와 똑같은 논리를 폈다. 어휘마저 비슷했다."

 

"나는 참여정부를 많이 비판했다. 애정을 가지고 마구 돌을 던졌다. 청와대에 미리 알리고 걸러가며 썼지만 아무튼 참여정부의 게이트 기사를 계속 썼다. 안희정씨와 관련된 나라종금 사건, 이광재 실장과 관련된 썬앤문 게이트, 신례륜 전의원이 관련된 굿머니 사건... 굿머니 사건은 신 의원이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받은 사건이다. 사건의 제보자 김진희씨는 청문회에 나가 스타가 됐다.
노 전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는 사람 좋은 시골 영감이었다. 하지만 순박한 만큼 정치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이었다. 대통령 당선 후 나에게 전화해 아들의 취직청탁을 할 정도였다. 아는 "어르신, 절대 그런 말 하시면 안된다"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래 알았다"라고 흘려들었던 것 같다. 노건평씨에게서 계속 빨간불이 들어왔다. 첫 알람은 경찰청에 건 인사청탁 전화였다. 두 번째는 국세청에 전화건 인사청탁. 두 번째는 기사가 나가고 문재인 민정수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가 잘 정리하겠습니다." 나도 알겠다고 하고 의견도 드렸다. 이후에도 노건평씨 관련 정보를 청와대에 몇 번 알렸다. 주변에 전담 마크맨을 두고 관리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 청와대는 아주 무능했다. 결국 비극은 건평씨에게서 시작됐다. 처남 민경찬 게이트가 터졌고, 건평씨는 세종증권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민경찬 게이트는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의 인사청탁 건이었고, 남사장은 결국 자살하여 노 전대통령 탄핵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런 일이 반복된 원인을 노무현 정부의 인사에서 찾는다. 노무현은 진보개혁 세력에서도 변방이었다. 동교동계를 비롯한 민주당 주류에게 놀림과 핍박을 받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다음에도 내부에서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참여정부에서는 DJ쪽 사람들이 배제됐다. DJ를 지탱하던 진보개혁 세력의 주류 학자군, 재야군까지 소외됐다. 사람이 너무 없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따라오리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안 움직였다. 결국 대선에서 이회창쪽에 줄을 선 사람들을 그냥 썼다. 어떤 사람을 발탁했는지 청와대는 알지도 못했다. 임명장을 받은 사람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참여정부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뒤통수를 친 예는 셀 수도 없다. 송광수, 임채진, 김홍일, 이인구, 김성호, 운진식, 허준영, 어청수..."

 

"참여정부 인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홍석현 회장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시절 미국대사관 정치 파트 누나들하고 친하게 지냈다. 하루는 한 누나가 참여정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인이 중앙일보 홍석현과 월간조선 조갑제라고 말했다. 내가 비웃자, 그녀는 정색하면서 "대통령이 홍석현 회장을 너무 좋아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그 순간 청와대는 삼성과 허니문이었다. 특히 홍석현 회장에게 사랑의 작대기를 날리고 있었다. 신문쟁이들은 안다. 중아일보에허 노 대통령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2004년 12월 홍석현 회장을 주미대사로 임명한다. 그가 천 여개의 차명 계좌를 만들어 262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것을 알고도,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위장 전입을 한 것을 알고도, 불법 대선자금을 심부름하고 검사들에게 떡값을 뿌린 안기부 엑스파일의 실체를 알고도, 무엇보다 민주 보다 독재 편에 서고, 국민보다 재벌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도 홍석현 회장을 임명했다."

 

"나는 참여정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문재인 이사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참여정부의 한계를. '문재인이 문제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2인자였다. 대통령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청와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 자리는 손에 흙도 묻히고 피도 묻히면서 끌고 가야하는 자리다. 진흙탕 정치판에서 역사를 위해 전진했어야 하는 자리였다. 적을 달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면서. '딜'을 하면서 말이다. 어떻게든 한 발짝이라도 전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4대 개혁입법이 줄줄이 좌절됐다. 사람 좋고 깨끗한 문재인 실장.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문재인 실장이 맡은 자리는 사람이 좋아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잘못했가는 평가에 대해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조중동이나 수구세력이 못하게 막아서 그렇지"라고 답하곤 한다. 그건 무능하가는 말밖에는 안된다."

 

"2008년 이명박과 검찰, 언론에 뭇매를 맞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 측이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했을 때, 나는 문재인 실장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더러운 플레이에 단호하게 대응을 했어야 했다. 문재인 실장은 심성이 착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검사들은 진흙탕에서 더러운 싸움을 하는데 문 실장과 주변 사람들은 정도를 지키려고만 했다.
나는 문재인 실장과 그 주변의 대응 방식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꼿꼿하고 멋있고 다 좋다. 좋은 사람인 거 다 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동네 불량배들한테 훈계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 같다. 그런 사람이 훈계하면 시골 불량배가 말 듣나? 나는 맞붙어 싸워햐 한다고 생각한다. 헌데 참여정부쪽 사람들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싸움에서 너무 무기력했다."
 
아무튼 나꼼수 멤버 4인의 책을 다 읽고나니 주진우 기자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멤버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주기자다. 정보 없이, 팩트 없이 어떻게 시사방송이 가능하겠는가.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활동하면서도 전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넉넉하다.
언론, 삼성, 검찰과 경찰, MB정부, 친일파, 사회적 약자들까지 주진우 기자는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맞서면서 얻은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를 대신해 진흙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주진우 기자는 신념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쪽팔리니까’, 혹은 ‘우리라도 이래야지 안 그러면 어떡하겠어 뭐’ 이런 식이다. 주진우 기자가 살아온 인생은 나름 고단했고, 앞에도 진흙탕길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는 신념이 아닌 태도로 움직이기에 비장하거나 결연하지 않다. 밝고 따뜻하게 웃으면서 계속 간다. 이 사회의 병든 곳을 도려내고, 아픈 사람을 찾아 치유하려고. 그래서 이 책은 정통시사활극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책은 감춰진 진실의 폭로가 아닌, 대한민국의 가치와 염치에 관한 보고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가치와 염치에 관한 보고서다. 두려움도 거칠 것도 없이 행동하는 양심 있는 기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사회악을 환멸하되 사회에 절망하진 말자. 우리 사회에 이런 기자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강자에게는 당당함으로, 약자에게는 겸손함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 이상과 정의 그리고 진실을 위하여는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 꽃 길이었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뜨거울수록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김어준, 정봉주, 김용민과 골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앞이 훤히 뚫려 있지 않았다. 감옥으로, 그래서 지금은 그냥 잡혀가는 데 같이 가는 거다. 내 입장에서는 몇 회 하고 빠지는 게 제일 멋있어 보이고, 내 일로 돌아가기에도 좋다. 근데 같이 가는 거다. 의리 때문이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지금은 모든 전투를 이겨야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분명히 깨질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렇고 나꼼수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 혼자 피하면 쪽팔리는 거다.
나는 안다. 세상을 뜻대로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웃으면서 가겠다. 철들지 않고 살다 소년으로 가겠다. 오늘도 비굴하지 않은 가슴을 달라고 기도한다."(p.346)
 
[ 2012년 9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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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 - 문재인의 힘
문재인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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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의원은 어찌보면 안철수 원장과 같은 '정치 초보'라 할 수 있다. 본인 스스로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을 엮임한 후 2008년 낙향하여 변호사 활동에 전념했고,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작년 후반까지 활동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 스스로 책 속에서 밝혔듯이 정치활동이란 직업 정치인이 여의도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 누구나 개인으로서 생활 속에서 '시민 정치'를 해나가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여의도 바깥의 시민정치가 활성화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임은 누구나 이성적으로는 동의하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도 퇴임 후 수시로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후보는 그런 자신을 직업 정치의 일선으로 내몬 것은 이명박 정부라고 말한다. 마치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나선 것이 이명박 정부의 폭압정치 때문이라는 것과 비슷하다.
 
작년 민주당이 '혁신과통합'이라는 정치단체와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이 되었을 때 문재인 후보는 공식적으로 직업 정치인으로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부산에서 당선되었고, 6월 19일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이 책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후 자신의 철학과 이념, 비전과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막연히 행정부의 권력을 보수진영에서 되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통하여 정치가 바뀌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는 뜻이다. 책 속에서 그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여 사람이 먼저인 세상,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숨 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경쟁과 승자독식, 강자지배의 사회원리가 과거의 낡은 시대정신이자 방식이라면, 새로운 시대정신은 개방, 공유, 협동, 공생의 새로운 사회원리를 통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이했던 것은 3부 ‘참여가 힘이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즈음하여 국민들로부터 접수한 메시지들을 선별하여 담은 '듣고 싶습니다'와 문재인이 직접 올렸던 트윗을 골라 담은 '트윗 초보 문재인'이 실려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후보가 '소통'을 시대정신이나 주요한 정치철학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후로 유권자들에게 SNS를 통하여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에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그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트위터를 통해 '새정부에서 대통령 명령 1호'를 무엇으로 할지 의견을 묻는 등 SNS를 정치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에서 문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은 매우 포괄적이다. 정치 부분에서는 통합의 정치, 지역주의, 검찰개혁, 외교, 안보, 남북문제, 평화를 다루고 있고, 경제 부분에서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포용적 성장, 협력적 성장, 사회적 경제, 에너지, 과학기술, 국책사업, 통상, 농업, 금융, 하우스푸어, 세금, 균형발전을 다룬다. 사회 부분에서는 일자리 혁명, 노사관계, 언론, 공영방송, 복지, 주거복지, 고령화, 여성, 어린이, 교육과 학교, 창의력에 대한 정책을 제시한다. 손학규 후보처럼 자신의 지향하는 이념적, 이론적 정책노선을 제시하고 이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사항들은 모두 짚어내고 있다. 특히 하우스 푸어와 주거권, 고령화 사회, 학벌만능주의와 문화예술 창작분야에 대한 언급은 손학규 후보나 김두관 후보가 짚어내지 못한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내용대로 새정부가 정책을 펼친다면 '제2의 참여정부'라는 우려는 말끔히 해소될 것이고 2017년 정권을 재창출될 것이라 믿는다.
정책 부분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대연정' 같은 정치공학적인 시각에 그친 점이다. 그리고 역사인식에 근거한 국익 관점의 안보관이 보이지 않는 것, 경제민주화에 있어서의 논리적 연결성의 부족, 지역균형발전과 부동산 폭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문 후보를 지지하는 연구집단이나 학자들, 과거의 관료 출신들이 많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브레인 집단이 좀 엉성하거나 문 후보 스스로가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와 과오를 뛰어넘겠다"라고 다짐했다. 책 속에는 참여정부의 성과와 과오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고 각 챕터마다 필요할 때마다 거론하는 식이다. 그것들을 모아보면, 참여정부의 성과로는 정치의 민주화, 당당한 외교, 남북 평화와 경제협력, 국가 균형발전, 언론자유, 복지 등을 제시하고 있고, 참여정부의 한계와 과오로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너무 쉽게 휩쓸려 갔다",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 등 민생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검찰개혁 실패, 부동산 폭등 등을 말하고 있다.
그가 참여정부의 성과로 제시하는 부분 중에서 정치의 민주화, 국가 균형발전, 복지 등에 대해서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특히 나는 지역주의와 정당정치, 정치민주화와 관련하여 2003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비록 2004년 탄핵과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했지만 노 전대통령은 집권여당이 잘못된 길로 나가도록 하는데 크게 일조한 셈이고, 소수당이었던 집권여당을 붕괴시켜 버린 셈이었다. 그 여파는 노 전대통령 집권 내내 부담으로 작용했고, 참여정부의 정책이 힘을 받는데도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2007년 대연정 제안의 경우도 어처구니 없는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대연정은 정치민주화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노사모를 시민정치세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과 집권여당과 거리를 두면서 집권여당의 정당정치 강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은 큰 실책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도 청와대 참모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참여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했다. 하지만 그 방법론은 긍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행정부를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중심으로 지방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일부 긍정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하드웨어적 발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나 서울로 전국의 권력과 부가 모여드는 것은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이유로 발생한다. 그 중 교육과 문화, 일자리와 소득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 강화와 예산배분도 문제가 된다. 광범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설득과 동의를 통해서 균형발전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지 공무원이라 하여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고 강제로 행정부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균형발전이 4~5년에 끝날 것이 아니라면 차기 정부와의 연계성도 중요한데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행정도시와 기업도시, 혁신도시, 그리고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임대주택 공급부족은 참여정부 집권기간이 해방 후 부동산이 폭등한 시기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후보의 정책 중에서 김두관 후보나 손학규 후보보다 돋보이는 부분은 정치부분에 있어서 '소통과 참여'이다. 그는 "이제는 평상시에도 정치와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해서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 보다 한 발자욱 더 앞서가는 태도라 할 수 있다.(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 한미FTA, 해군기지 등의 소통 부족과 처리과정의 미숙함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ㅠ)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은 '소통과 참여'라는 화두를 던진 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치부분에서 소통과 참여를 이루어낼 것인지에 대한 복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SNS 행보를 지켜보면 'SNS를 통한 소통과 참여'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SNS가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결국 방법은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각계각층의 시민조직의 활성화라 할 수 있다. 특히 계파정치와 대의원 정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소속 정당인 민주통합당의 기층 조직 활성화를 통한 유권자와의 소통과 직업군에서 50%를 넘는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율 10%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 농민과 중소자영업자, 중소기업인, 실업자, 청년학생, 학부모. 문화예술인 등의 자발적인 조직화를 어떻게 유도하여 정치에 반영할지에 대한 장단기의 정책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SNS와 국민선거인단은 유권자의 참여부족에 대한 임시적인 방편이 될 수 있지만, 그런 방법이 계속되면 정당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자발적인 각계각층 조직 수준에서 어떻게 그 조직이 동일한 직업과 계층을 대변하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도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네덜란드 노사 교섭 방식처럼...)

나는 문재인 후보가 한국정치에 필요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으로 검찰개혁과 현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 '친노'로 불리는 노무현 전대통령 지지자들의 결집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본적으로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는 그 지지자들을 대변한다. 그 힘은 이번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07년 대선 실패와 2008년 총선 실패의 책임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의리'와 '청렴', '신뢰'와 '일관성'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나는 그것이 바로 '문재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한계도 분명하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으로 유권자들에게 일부 용서가 되었지만, 객관적으로 누가 뭐라 하더라도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였다. 그 실패로 인하여 이명박은 어부지리로 당선되었고, 지난 5년 동안 중산층과 서민들은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가 몸담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부 5년간 유권자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만큼 가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4.11총선에서 부산 낙동강 벨트에서 홀로 살아남았고 자신의 당 뿐 아니라 야권 전체가 패배했다. 한명숙 대표 - 이해찬 대표로 이어지는 '친노' 진영은 민주통합당 내부의 권력을 잡았지만, 그 권력을 토대로 광범위한 주변 세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고 소수세력과 중도층을 우산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과 서민들 역시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식으로 문재인 후보와 지지세력이 움직인다면, 후보 경선 과정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으로 나타나는 정치세력과 지지자들, 유권자들을 끌어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 단일화에서 참패하거나 대통령 본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할 수 있다. 그는 지지자들, 특히 열성 지지자들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에서 상생과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상생과 통합의 경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적대적이거나 마타도어 식으로 경선이 이루어지면 결국 문재인 후보 자신에게는 마이너스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경선 후에도 방법은 있다. 가진 것을 놓으면 된다. 만약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 측근들을 설득하여 대선 기구의 주요 직책을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야권단일후보 경선 과정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양보할수록 단일후보로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걱정하기 보다 '친노진영'이라는 집단을 경계한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독과점을 느끼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탄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 2012년 9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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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 손학규의 민생경제론
손학규 지음 / 폴리테이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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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영국정부의 복지정책 구호였던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스웨덴 사민당의 선거구호였던 '국민의 집'이 떠올랐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에 누군가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는데 충분히 공감이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짤리지 않기 위해, 밀려나지 않기 위해,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저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인들...
사실 한국의 역대 선거에서 이런 단순명료한 구호로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을 제시한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학규 전대표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지 못하거나 본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한국 선거에 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렇다면 손학규 전대표는 어떻게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물해줄 수 있을까? 그는 그 해결책을 '진보적 자유주의’의 기초 위에 세운 ‘공동체 시장경제’라고 제시한다. 우리사회는 1945년 해방 후 지금까지 오로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후 한국인, 한국의 상층인사들이 미국의 힘을 동경하고 미국식 번영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이끌어 왔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일반 국민들 역시 그런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더 이상 ‘미국의 길’은 아니다. 미국식으로 안된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일반 국민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유럽의 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까지 우리 나라에서 정당이나 후보가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 뿐이었다. 거대 정당인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역시 알맹이가 없는 반공민주주의니 대중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복지주의니를 외쳤을 뿐 그것을 합리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실제 정책은 보수주의에 다름 없었고 신자유주의였다. 나는 민주통합당의 역사에서 손학규 전대표가 최초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의 이론적 기초를 ‘진보적 자유주의’로 정의하고, 그 내용을 ① 정의, ② 복지, ③ 진보적 성장의 가치를 묶는 ‘공동체 시장경제’라고 말한다. 최장집 교수는 추천글에서 "반면에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가치를 말한다. 자유와 평등,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고, 거기에 덧붙여 정의와 공정함, 공동체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의 적극적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진보적 토대와 사회적 권리를 확대.강화하겠다는 분명한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는 주저하는 자유주의 혹은 보수적 자유주의의 내용을 가지면서 겉으로만 진보성을 과시하는, 그간 야당이 보여 준 전형적 패턴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p.8~9)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공동체 시장경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손 전대표는 책의 2부 '정의.복지.진보적 성장을 위한 실천 방안'에서 각각의 가치에 맞는 세부 목표와 정책 과제를 자세히 다룬다. '정의'의 가치는 재벌 개혁과 상생 경제, 그리고 노동 개혁으로, '복지'의 가치는 보편 복지와 생활 복지, 그리고 일자리 복지로, '진보적 성장'의 가치는 균형 성장과 혁신 성장, 그리고 평화 성장으로 설명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여야, 무소속의 어떤 후보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이론적 배경과 짜임새 있는 정책이 돋보인다. 가장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책에서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경제정책들을 단순하게 국민을 더 잘살게 하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방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런 경제정책들을 우리 사회가 기득권을 깨고 계층을 넘어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방안으로 보고 있으며, 정의로운 경제를 통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p.35)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 유럽의 경험을 강조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내지 언론들도 그런 가치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대부분은 미국적 범위 안에 있다. 일자리를 말하면서도, 그래도 노동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의 전횡을 비판하면서도, 그래도 자유 시장 원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서민을 강조하면서도, 그래도 도덕적 해이는 안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더 이상 미국의 길이 아니고 유럽의 길이다.’를 주장하는 그는 독특하다.
손학교 전대표는 바로 '유럽의 길'을 말한다. 그는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럽으로 정책 여행을 다녀왔다. 네덜란드에서는 '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스웨덴에서는 '복지'가 왜 성장과 함께 갈 수 있는 발전모델이 될 수 있는지, 핀란드에서 본 '교육'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하면서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 영국에서 본 '의료'는 복지국가의 틀 안에서 공적 의료체계가 가진 장점을 살리면서 비효율을 줄여갈 수 있었는지, 스페인에서는 '협동조합'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1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여정이었기에 그가 얼마나 속속들이 각 나라의 정책의 핵심을 얻어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을 위해 그 정책의 선진국으로 배우러 가는 자세는 인정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저녁이 있는 삶’이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노동단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구도를 반대하는 가치"이고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국민 행복 복원 프로젝트’다"라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 내가 잘살기 위해선 누군가는 못살아야 한다는 이분법, 내가 옳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는 이분법이 그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충분히 절감되는 이야기다.
강준만 교수가 민주통합당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왜 손학규 전대표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전체적으로 책 속에서 손 전대표에게 아쉬운 점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과거 및 현재 행보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에 자신이 몸담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본인도 두 번이나 당의 대표를 엮임했다. 그럼에도 그 정당은 지금까지 괄목한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유권자들에게 제대로된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수정당이라는 변명으로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지 못했고, 이렇다할 제도적 성과를 내오지도 못했다. 또한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승리한 후 집권한 지방정부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과 자신이 유권자에게 지지를 구하려면 미래에 대한 비전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반성, 사과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이 집권 후 어떻게 자신의 정책을 성과적으로 추진할 지에 대한 방법론이 부족해 보인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본과 노동, 수도권과 지방 등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는 정치사회 집단의 이분법을 해결할 것인지, 유권자들로부터 거의 절망에 가까운 불신을 받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유권자와 서민들의 희망과 참여를 어떻게 불러올 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이 많이 답답했다. 
 
[ 2012년 9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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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부터 -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김두관 지음 / 비타베아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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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에 이어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통합당 후보 중 첫 번째로 김두관 경남지사의 생각을 글로 읽었다. 뒤이어 손학규 전대표와 문재인 의원의 책도 읽었다. 정세균 전대표의 책을 읽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정 전대표가 지나온 정치 경력과 행보가 대통령 후보에 나설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내 자신의 판단 때문이다. 진보정당에서 후보가 출마할 경우 대권 후보의 책을 추가로 읽을 계획이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책을 대선 전까지 읽을 생각이 없다.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 자체가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와 한 몸으로 이 땅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모두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물론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때가서 읽을 생각이다. 박후보 스스로가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공약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이미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유언이다. 올해는 그 유언 만큼이나 시민들이 많이 깨어난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이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개인적으로 절반이 넘는 숫자는 민주통합당 조직에서 확보한 기존 선거인, 당원 명부와 여타 방계조직의 명단일 것이지만, 수 십만 명은 시민된 자격으로 스스로의 생각으로 신청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대해 항간에 여러 가지 소문과 주장이 많다. 그런 소문과 주장이 일축되려면 정당이 모바일 경선의 시스템과 절차, 관리체계를 좀 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정당이 조직하는 숫자보다 유권자 스스로 신청하는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올해 대통령 선거가 지난 대선과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독특한 유권자들의 열망과 후보 양상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권 후보들이 모두 자신의 대권 출마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정치철학, 정책, 현안에 대한 입장, 미래비전 등을 일찍 책으로 출간하여 유권자들에게 약속하고 검증하고 소통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 나라의 정치가 발전하는 데 아주 고무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미리 정책을 밝히고,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후보의 선택에 영향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가 자신이 책으로 약속한 바를 지키는지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정착되면 적어도 정치가 예측 가능하고, 정치에서 거짓말과 위선이 곧바로 드러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번 대선이 정당 간 대결보다 인물 간 대결로 치우쳐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소신, 비전과 입장, 정책 등을 제시하는 것이 어쩌면 유권자에 대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과 더불어 안철수 원장의 <안철수의 생각>과 손학규 전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 그리고 문재인 의원의 <사람이 먼저다>를 읽었다. 그리고 적어도 책에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 각 후보들의 철학과 주장, 정책과 비전 등을 알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이나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일목요연하게 각 후보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직업이 언론 기자나 전문가, 학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김두관 지사가 대선에 출마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그가 직접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건 아닌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김두관 지사의 경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보이는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내 생각이 그다지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하게 성장한 인물이다.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 전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노무현 전대통령보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렇듯이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그렇고 그런 학벌을 갖추었다. 그리고 서른 살에 고향 마을의 이장으로 시작해 군수와 장관, 도지사를 엮임했다. 노무현 전대통령보다 더 굳굳하게 영남지역의 두터운 지역주의 장벽에 도전했고, 경상남도 도지사로 당당하게 선출되었다. 그가 책 속에서 밝힌 두 번의 남해 군수 활동은 모범적이고 헌신적이었다. 도지사 역할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도지사로서 검증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남해 군수에 재선한 것처럼 경남 도지사에 재선한 후 대통령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 도지사를 중도에 그만두고 대선에 출마한 것은 원칙적으로 유권자인 도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전국 유권자의 검증도 마치지 않았다. 60년 넘게 굳어진 지역주의 장벽은 그렇게 쉽게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유권자들은 과거처럼 무지몽매하지 않다. 자질과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출신과 학벌과 지위를 묻지 않고 지지하고 열광한다. 그것은 과거에 노무현 전대통령을 통해, 최근 안철수 원장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김두관 지사가 성공적으로 경남 도지사 임무를 수행하고, 재선에 성공하면 아마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대권 후보 대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토대 없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의욕은 오히려 자만심과 과욕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후자로 보았다.(차기 대권의 징검다리로 생각하여 이번에 출마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책 속에서 나타나는 김두관 지사의 개인적인 소신과 자질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의 어머니가 물려준 "언덕은 내려다 봐도 되지만 사람은 절대로 낮춰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그의 사람을 대하는 기본 자세를 갖추도록 이끌었다면, "입은 평소에는 닫혀 있지만 귀는 항상 열려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경청의 정치인이 될 자질을 갖추어준 것이다. 정치는 서민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듣고 챙기는 것에서 시작되며, 정책 또한 서민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결국 99%를 위한 정치와 정책,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국가운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아래에서부터>로 정하고 자신을 '서민대통령'으로 제시한 것 같다.
그가 책 속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정책으로 과거에 실행했거나 앞으로 제시하는 것들도 매우 참신하고 타당해 보인다. 남해 스포츠파크, 공원묘지, 주치의제도 등이 그것이다. 연대와 협력, 소통에 대한 그의 자세와 성공사례도 우리 정치권에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남해 군수와 경상남도 도지사로 일할 때 대부분의 지방의회가 여소야대이었음에도 끈질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무난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김두관 지사는 이 책의 부제로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를 붙였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도 서민들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자신의 롤 모델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으로 제시할 만큼 그가 서민을 위해 정책을 펴고자 하는 의욕과 방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 책 속에서 어떻게 신자유주의가 우리 나라에 밀어닥쳤는지, 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실패했는지, 정치권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민주주의와 복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제시하지 못한다. 엄청나게 꼬일대로 꼬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자리, 언론, 교육, 안보, 사회적 약자, 지방분권 등에 대한 해결대안이 제시하지 않았다. 왜 자신이이어야 하는지 명쾌하고 구체적인 주장이 불분명하다. 한 마디로 종합적인 정책, 즉 콘텐츠가 없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가 아직 공부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욕과 방향만 가지고 할 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텐데...
 
[ 2012년 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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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산업의 멸망
김인성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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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IT 강국'일까? 한 때 전세계가 한국이 'IT 강국'임을 인정하였다. 2000년 전후에 한국은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속도를 바탕으로 반도체와 IT산업 점유율, 초고속통신망, 인터넷 가입자, 온라인 시장, PC 보급율, 창업과 취업과 기술력 등에서 가장 앞서나갔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몇 년 만에 사라졌다. 
스마트 폰과 SNS, 디지털 방송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IT산업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IT 산업은 가장 노동 착취 분야이고, 하도급 불공정 거래 분야이고, 소비자 약탈 구조이며 활력은 커녕 독점과 폐쇄성으로 질식당하고 있다. '웹(Web) 2.0' 시대를 거치면서 전세계가 도전과 실험으로 새로운 영역과 기술, 시장과 콘텐츠를 창출하는 가운데 한국의 IT 분야는 '웹2.0'의 시대정신이자 방향성이고 사업방식인 '개방, 공유, 참여'을 내버리고 탐욕스러운 독점과 이윤에 안주하였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폐쇄와 독점으로 얼룩진 한국 IT산업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이 책은 ‘IT 강국’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한국 IT산업의 진실을 파헤치고 폐쇄와 독점으로 얼룩진 업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IT 붐’이 일어났던 초창기부터 업계 최전선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해온 저자는 "진보는 IT에 있다"라는 화두를 가지고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TV에 걸쳐서 새로운 흐름에 뒤처진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터넷 업체는 국내시장 독점을 위해 세계 표준을 무시하여 스스로 수출을 포기했고, 이동통신사들은 음성통화로 얻는 이익을 위해 신기술 개척을 포기했다. IPTV 사업자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일부러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근간에는 IT산업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버린 정부와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아이러브스쿨과 사이월드의 아이디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변형되어 한국시장을 급속하게 장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IT산업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기존 재벌들의 못된 사업태도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버렸다.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기업행위가 아니라 천박하고도 부도덕한 '장사치'로 전락한 것이다.

IT분야 칼럼리스트이자 저자인 김인성은, 잘못된 정책과, 얽혀있는 각종 이해관계, 폐쇄적 구도가 소비자의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며, 마케팅과 판매에만 급급해 IT현장에 주목하지 못하는 국내 산업 동향이 결국 IT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모바일 업계와 IPTV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분석과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한국의 희망적 미래와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는 한국 인터넷 환경을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촌스러움’으로 규정한다. MS 윈도우에서만 가능한 전자상거래의 이면에는 보안 프로그램을 둘러싼 이권이 얽혀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인터넷 실명제’로 언론의 자유를 통제했고 실명제에 발이 묶인 인터넷 서비스는 해외 진출을 포기했다. 부당한 규제에 반발해야 할 포털은 오히려 권력에 순응하며 광고 수익을 위해 자사 데이터를 우선하는 불공정한 검색 기준을 적용하고, 내부 데이터 축적을 위해 사용자의 콘텐츠 무단 이용을 부추겼다. 

"한국의 인터넷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글 같은 검색 전문 사이트가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콘텐츠 생산자와 사이트들이 성장하여 새로운 비지니스가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왜 불법복제를 막아야 할까요? 왜 창작자를 우대해주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까요? 
인터넷 시대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모바일과 TV 분야는 또 어떤가. 순수 국산 원천기술인 ‘와이브로’를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국내 통신사들이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설비투자를 미루며 국산 기술을 죽이고 있다. 또한 이익을 위해서는 고객을 이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비용을 가입비 및 기본료로 다 회수했음에도 여전히 가입비와 기본료를 받고 있다. 또한 비용이 들지 않는 문자메시지 등에 요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최근까지는 자유로운 무선인터넷 사용을 막기 위해서 사용자 환경을 일부러 제한했다. 휴대폰 제조사는 해외와 다른 기준을 적용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스펙 다운'한 제품을 오히려 더 비싸게 판매했다.
미래를 주도할 기술로 불리는 스마트TV의 일종인 ‘IPTV’에도 문제가 많다. IPTV 사업자들은 HD영상을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HD에 한참 못 미치는 화질의 영상을 전송하고 있다. 열린 TV인 스마트TV에서 IPTV 사업자들은 시청자에게 자신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만 보기를 강요하고 있다. 또한 ‘망 중립성’이라는 네트워크의 기본 원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면서 망을 독점하고 있다. 물론 기업들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근간에는 IT 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 정부가 있다. 참여정부가 망치기 시작한 IT산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확실하게' 끝장내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은 정액제라서 컴퓨터로 무엇을 하든 추가비용을 받지 않둣이 무선인터넷이나 이동형인터넷(핸드폰) 등도 정액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핸드폰 문자를 주고받는 데는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20원씩이나 받는 것은 통신회사의 어마어마한 폭리라는 것과 음성통화에 이토록 비싼 시간당 요금을 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동통신 업체들이 당장의 이익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앞선 우리의 기술을 사장시켜 국제경쟁력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깨달아야 합니다.(정부는 방조하고 있고 무능하죠)"

"이동통신사들은 초기 설비투자비 회수를 위해 받던 기본료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돈은 이미 다 회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료를 없애지 않고 있으며 이 돈은 그대로 통신사의 수익이 되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전 세계시장에서 호평받는 국내 제조사의 휴대폰에서 통신사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능을 제거한 소위 '스펙 다운' 제품만을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끈 LG의 풀터치폰인 '아레나폰'. 그러나 국내에 출시되면서 무선랜, 3.5파이 이어폰단자와 GPS를 제거했으며 동영상플레이 기능을 삭제하고 8GB 내장메모리를 0.03GB로 줄이고 LCD 사양까지 낮추었습니다."

"통신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용자들이 어떤 불편을 겪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160바이트의 문자메시지 국제규격 표준을 80~90바이트로 제한한 후 그 이상의 메시지는 독자규격의 MMS을 이용하여 추가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4G이동통신 규격으로 와이브로를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와이브로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LTE와 함께 4G표준으로 동시채택이 유력시되고 있으며 막대한 설비투자를 통해서 이미 상용서비스를 실시중. 장비개발도 완료했고 운영노하우도 있기때문에 해외수출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책이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왜곡된 한국 IT산업 구조가 '웹2.0' 시대에 부응하여 이제라도 '개방과 표준'을 중요시한다면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의 표준을 지킬 때 수출의 활로가 열릴 것이며 구글 같은 공정한 검색 사이트가 나와서 포털 외부의 사이트들이 자생할 수 있어야 인터넷 생태계도 활성화할 것이다. 이동통신사는 와이브로에 적극 투자하여 새로운 표준을 주도해야 하며 휴대폰 제조사는 국내 소비자에게 질 좋고 싼 제품을 제공하여야 한다. IPTV 사업자들은 망을 개방하고 콘텐츠 제작자와 상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한 스마트TV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콘텐츠 마켓, 플랫폼까지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의 노력만으로 한국 IT산업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예전의 ‘IT 839’ 같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일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비자는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며 기업과 정부가 옳은 길로 가도록 지속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국산품 애용'과 '애국심'으로 한국 기업을 감싸기만 했을 때, 그들이 결국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기업, 정부, 소비자의 노력이 없다면 머지않아 한국 IT산업은 일부 대기업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차라리 당분간은 애플과 구글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 말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진보는 IT에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전자상거래 시스템과 무선인터넷 요금에 변화가 일어났듯이 우리도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혁신은 한국 사회를 이끄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한국 IT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개방과 표준'이고, 폐쇄된 IT 환경을 개방하고 더 나아가 세계의 표준을 이끌 수 있어야 한국 IT산업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진보가 IT'에 있다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저자가 오랫동안 IT업계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IT업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결국 이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것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 역시 잘 알것이다. 난 저자의 주장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IT가 뜻하는 '개방과 공유, 협력과 참여'를 의미한다고 본다.

"아이폰으로 인해 통신사들의 경쟁이 가열되어 드디어 데이터 완전무료요금제가  출시되었으나 사용료는 아직도 비쌉니다. 사용자들은 통신사들을 압박하여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대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스카이프 같은 인터넷전화를 와이퍼이뿐만 아니라 3G에서도 쓸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 책은 막연하게 독점기업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팜플렛이 아니다. 저자가 정부부처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깨우쳐줄 뿐 아니라 정부부처가 앞으로 어떻게 정책방향을 잡아야할 지 안내해주고 있다. 독점기업들 역시 국내의 독점,착취이윤에 만족하다가 해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해 업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방향도 제시한다. 저자는 기업이나 자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향해 다가가는 경영자들과 주주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내가 무관심했던 산업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한국 정보통신산업(ICT :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에 대한 깊숙한 식견과 탁월한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막연하게 특정산업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가족, 지인, 시민들 모두에게 밀접한 인터넷과 통신비, 일자리 분야라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할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

지난 5월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 사태는 정치와 잔보정당에 대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처음 알게 해주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 역시 저자인 김인성 교수가 통합진보당 2차 진상조사위에서 온라인분과를 담당하여 제출한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와 김인성 교수는 이번에 알게된 많은 양심적인 전문가, 실력있는 전문가, 이성적이고 용감한 지식인 중에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 2012년 8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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