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성의 공동체
이병창 지음 / 먼빛으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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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21세기 사회변혁을 위한 철학적 무기 <자주성의 공동체>

이병창 저, 2071. 3., 430쪽, 먼빛으로


 

이병창 전 교수는 동서양 철학을 함께 연구한다. 국내에 드문 경우라 한다. 특히 그는 대다수 철학계 학자들과 달리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에 나서는 제반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규명하려 노력한다. 그만큼 마음이 따뜻한 철학자다. 또한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후에 오히려 본격적으로 ‘현실’에 대한 철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2015 도서출판 말)와 <현대철학 아는 척하기>(2016 팬덤북스)에 이어 2017년에 이 책 <자주성의 공동체>를 출간했다. 대학에서 못다한 철학 연구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출간한 책과 마찬가지로 <자주성의 공동체> 역시 연구의 출발점은 현실이었다.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한국의 사회경제적인 현실은 처참하다. 그 처참한 현실의 실체는 ‘빈익빈부익부’라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분열, 자산과 소득의 ‘빈부격차’다. 이 교수는 사회경제적인 분열 못지 않게 마음의 분열 즉, 정치사상적인 분열도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나는 최근 마음이 아팠다. 우리 사회의 분열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경제적인 양극화로 등장한 사회적 분열이다. 그에 못지않게 정치 영역에서도 분열이 극심하다. 보수도 진보도 어김없이 분열을 겪고 있다. 분열은 창조의 원천이 되기보다 극심한 파쟁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분열이 어느덧 우리 마음속까지 파고든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분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분열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나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분열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라는 사회 체제에 있을 것이다. 분열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특징인 파편화 때문이다.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먼저 우리 마음속의 분열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9쪽)


 

이병창 교수는 정치사상적 분열의 원인을 탐구했다. <자주성의 공동체>는 한국사회의 정치사상적 분열의 원인을 철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연구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분열된 원인을 21세기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서 찾았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미래의 한국사회를 위한 철학적 방향을 모색한다. 그가 최근 연구하는 철학의 방향은 책의 제목 그대로 ‘자주성의 공동체’ 철학이다.


 

<자주성의 공동체>는 1부 ‘자주성의 의미’에서 이 교수는 우선 자주적 의지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여기서 자주성의 정치적 의미와 윤리적 의지가 구분되며, 자주적 의지를 욕망과 대비하여 서술한다. 욕망과 자주적 의지의 대비 속에서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이 비판된다.

이어서 2부 ‘자주성의 역사적 형태’에서는 자주적 의지의 다양한 역사적 형태가 다루어진다. 여기서 운명과 의무감(자율성) 개념 그리고 낭만주의적 양심(자발성) 개념이 다루어지면서 그 한계가 지적된다.

마지막으로 3부 ‘자주성의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자주적 의지로서 사랑의 정신을 살펴본다. 바울의 사상 그리고 동학의 사상이 다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런 종교적 공동체 정신을 극복하고 자주성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학적인 길, 유물론적인 길을 모색한다.


 

2017년 현재 한국사회에 가장 만연되어 있는 철학 사조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미국 등 서구 주류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대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1990년대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의 학계와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계와 경제계 그리고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역을 점령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자세한 철학적 이론은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와 <현대철학 아는 척하기>를 참고하면 좋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핵심 개념은 ‘자유’와 ‘욕망’, ‘선택’과 합의’, ‘보편’과 ‘평화’ 등이다.


 

이병창 교수는 먼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핵심 개념과 주요 논리를 비판한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지배했던 1980년대 중반 이후 30년 간 미국과 서구사회는 지구 전역에 폭력과 침략전쟁, 총기난사와 테러, 의심과 배제, 이주민과 갈등을 증폭시켰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자유’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 자유는 진짜 자유가 아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에 그친다. 그 결과 자유는 다만 상상에만 머물며 실제로 의지를 지배하는 것은 ‘욕망의 힘’이다. 즉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욕망의 제한 없는 해방’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발생적인 힘이지만 외적인 자극이나 내적인 충동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사회적 현실이 이리저리 변동함에 따라서 욕망도 춤추니, 개인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가조차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하여 ‘합의의 공정성’을 소리 높여 떠들지만, 공정성이란 말로만 그칠 뿐이다. 공정성이라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감추는 구실에 불과하다. 서로 불신하는 가운데 어제 합의했던 것도 오늘 깨어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평화’와 ‘상호존중’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다니지만 그것은 ‘폭력’을 감추는 장식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배제하면서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니, 미국사회에서 난무한 무차별 총기 난사가 이를 입증한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 ‘보편적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제국주의적 침략이 모든 폭력의 원조다. 이로부터 전쟁 이주민과 노동 이민에 대한 유럽 인종주의자의 ‘테러’가 나온다.”(10쪽)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환영하고 편승했던 서구의 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폭력과 전쟁과 테러만을 가져오자 이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1세기에 등장한 들뢰즈와 데리다, 라캉과 지젝 등이 제기한 ‘생명력’의 철학 개념이다. 그러나 이병창 교수는 ‘생명력’ 개념을 비판한다. ‘생명력’ 개념이 수동적인 의지인 ‘정념’의 수준에 머무르며, ‘개인’ 차원의 의지에 그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한때 억압과 차별을 제거하자는 아름다운 말이었으나 신자유주의 시대, 현실의 파편화가 극단화되자 자기의 내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유는 말뿐이었으며 실제로는 욕망이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걸쳐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철학적 시도가 등장했다.

최근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20세기 초 모더니즘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은 근대 계몽주의를 비판하면서 과학과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결과 본질을 직관하는 계시, 꿈, 무의식, 환상 등에 기초한 다양한 모더니즘이 발전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들뢰즈의 철학과 라캉-지젝의 철학은 모더니즘의 부활이라 간주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보자. 거슬러 올라가자면 19세기 초 셸링은 칸트의 의무 개념을 극복하고자 생명력 개념을 제시했다. 칸트는 도덕법칙을 그 자체로서 따르는 의지를 순수의 지라 했다. 그는 순수의지(자유의지)를 의무 또는 자율적 의지라고 보았다. 그러나 순수의 지는 강제적이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셸링은 칸트를 비판하면서 순수의지 대신 양심의 개념을 제시했다. 양심은 도덕법칙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며 동시에 도덕법칙을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양심이 인간에게 가능한가가 문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셸링은 미분 기하학에 나오는 미분적(differential) 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생명체에도 미분적 힘이 내재하며 이를 ‘생명력’이라 했다. 생명력은 스스로 실행하는 자발적 능력이다. 셸링은 이를 통해 양심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셸링이 제시한 생명력 개념은 20세기 초 베르그송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고 20세기 후반에는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부활했다. 들뢰즈 역시 생명에 내재하는 미분적 힘을 핵심적인 개념으로 삼는다. 생명력은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자발적으로 실행될 수 있으므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들뢰즈 철학 연구자가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생명력 개념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와 그로부터 유래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점을 회의한다. 왜냐하면 생명력 개념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 개념은 수동적인 의지인 ‘정념’의 수준에 머무르며, ‘개인’ 차원의 의지에 그친다. 정념의 수준에 머무르기에 생명력은 자기도 어쩔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행동한다. 또한 생명력을 아무리 고양하더라도 개인의 차원에 그치는 한, 개인의 힘으로 시대의 어둠을 극복할 수는 없다. 개인의 생명력은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절망과 도피 또는 자학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11~12쪽)


 

이병창 교수는 자유주의의 문제는 ‘자유’라는 개념이 철저하지 못한 데 있었으니,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유’라는 개념을 더 철저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이 교수는 ‘자주성’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욕망의 선택’인 ‘자유’는 ‘도덕적 결과주의’에 빠지지만 ‘행위를 실행하는 즐거움’이 목적인 자주적 의지는 ‘도덕적 행위주의’에 기반한다.


 

“자유는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자유는 마음속의 가능성이다. ‘자주적 의지’는 마음 속에 선택된 욕망 즉 ‘가치’를 실제 행위로 실행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자주적 의지의 방식은 욕망의 방식과 다르다. 자유주의가 결국 복귀하고 마는 욕망은 충동적이다. 즉 욕망은 항상 최종 결과를 얻는 것 또는 이를 통해 얻는 쾌락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욕망은 결과를 향해 충동적으로 달려간다. 이와 달리 자주적 의지는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충실하고자 한다. 자주적 의지는 가치에 충실한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 결과의 만족이 아니라 ‘행위를 실행하는 즐거움’이 자주적 의지의 목적이다. 욕망은 ‘도덕적 결과주의'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결과만 도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주적 의지는 ‘도덕적 행위주의'라 볼 수 있다. 행위를 하는 과정, 하나하나의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13쪽)


 

이병창 교수는 넓게 보면 칸트의 ‘순수의지’ 개념이나 셸링의 ‘생명력’ 개념도 자주성의 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모두 결과보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의지나 생명력은 개인적 차원의 의지, 정념에 머무르는 의지이다. 이런 의지로는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을 극복하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이 교수는 자주성의 더 고차적인 형태를 모색한다.

그는 이런 더 고차적인 자주성은 정념을 극복하는 ‘능동적 의지’이어야 하며 또한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공동체 정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직 공동체의 힘을 통해서만 역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지렛대의 받침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념을 넘어선 능동적 의지만이 흔들림이 없이 새로운 역사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공동체 정신의 단초를 기독교의 ‘성령’의 개념과 동학사상의 ‘모심’의 개념에서 찾았다.


 

“이런 공동체 정신은 우선 기독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사랑 정신은 종교적 사유에 지배되고 있다. 종교적 사유의 기초는 창조주라는 신 개념이다. 마르키온은 이런 창조주 개념을 부정하면서 그에 대치되는 ‘성령’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이를 통해 기독교의 사랑 정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울은 율법을 비판한다. 율법은 도덕적 규범을 실행하는 데서 ‘훈육’의 방식을 사용한다. 훈육은 행위를 처벌하거나 보상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훈육이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나 훈육을 강화할수록 욕망도 강화하고 강화된 욕망은 도덕을 더욱 자주 위반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이 오히려 죄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바울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믿음이란 곧 ‘성령과의 합일’이다. 성령이 사랑의 정신이므로 믿음이란 사랑의 정신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가 죽음으로 실천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다.

사랑은 흔히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라 말한다. 사랑의 정신은 무엇이든 스스로 실행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얻는 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정신은 자주적인 의지이며, 자발적인 생명력보다 더 탁월한 능동적인 자주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율성이나 자발성은 어디까 지나 개인의 의지에 머무르는 것이다. 반면 사랑의 정신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정신은 흔히 말하는 정념의 사랑과 구별된다. 정념의 사랑은 대가를 기대하는 사랑이며 한 개인, 한 가족, 한 민족에 대한 사랑에 그친다. 그러나 성령의 정신인 사랑은 한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정신은 자신이 곧 공동체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공동체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짊어지는 정신이다.

자주적 의지의 최고 형태는 ‘사랑의 정신’이다. 사랑의 정신을 통해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사도 바울의 삶 속에서 구현되어 있다. 사도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그가 「로마서」를 쓴 이유는 로마 교회에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고린도서」를 쓴 이유도 고린도 교회에 베드로파와 바울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었다.”(14~15쪽)


 

이병창 교수는 사도 바울의 사상을 통해 동학사상을 재발견하게 된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새로운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열어 나가고 있었다. 바울의 ‘믿음’ 개념은 동학사상에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바울의 ‘사랑의 정신’은 동학사상에서 모든 사람을 천주로 모시라는 ‘모심의 사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바울의 사상과 동학사상에 차이도 있다. 바울의 믿음이 ‘성령과의 합일’을 우선시하는 것이라면 동학사상에서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이웃을 통해 천주를 발견한다. 전자가 수직적 관점이라면 후자는 수평적 관점이다.

이 교수는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사랑 정신이나 동학사상에서 모심의 정신은 역사적으로 망각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망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성령과의 합일’ 또는 ‘수심정기’라는 믿음 개념이 수동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믿음 개념은 다시 창조주 개념을 불러들인다. 이 신은 처벌하고 구원하는 신이니 이를 통해 율법과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독교의 사랑이나 동학사상에서 모심은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고, 사회적 실천을 결여한다. 기독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너무나도 모호하고 비역사적이다. 동학의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는 개념 역시 신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공동체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창조주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능동적으로 나오는 것에 의존해야 한다. 또한 사랑의 정신으로 결합할 공동체는 막연한 이웃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인 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실현되는 역사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 글이 목표로 하는 지점은 바로 이런 물음에 있다.”(16쪽)

이병창 교수는 결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함을 통해 그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지만, 마르크스는 역사과학을 통해 객관적인 역사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런 역사 법칙에 기초하여 그는 새로운 역사의 이념을 발견했다. 그것은 ‘프롤 레타리아의 해방’이라는 이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실천의 문제에 부딪혔다. 마르크스주의도 ‘욕망’과 ‘자유에만’ 기초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여 역사의 이념을 실천하려 했다. 그것이 레닌의 ‘전위(前衛) 정당’ 개념이며, 이 정당 개념은 부르주아 정당을 모방했다. 하지만 이런 전위 정당은 역사적 실천을 통해 드러났듯이 종파주의와 관료주의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이런 종파주의와 관료주의는 아방가드르 정당이 욕망에 기초하고 유기적인 구성을 강조하는 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실천의 원리가 나와야 했다. 이는 과학적으로 인식된 역사의 이념을 실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념 공동체를 의미한다. 어디에서 이런 실천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에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욕망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욕망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가장 근본적인 주장이 아닌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인간론은 자주적 공동체 정신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이병창 교수는 세 가지 차원에서 대답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자주적 공동체 정신과 결합했던 역사적 실천 사례와 자주성의 이념 공동체에 이르는 이론적인 가능성 그리고 ‘유적 존재’라는 마르크스의 인간론이다.

“하나는 이미 역사적인 실천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자주적 공동체 정신과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노농혁명군인 ‘홍군(红军)’이 ‘만리장정(萬里長程)’에서 보여주었다. 1930년대 동만에서 전개된 항일 유격대의 투쟁 역시 이런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입증한다.

문제는 그런 자주성의 이념 공동체에 이르는 이론적인 가능성이다. 다행히 헤겔의 절대정신 개념이 이런 가능성을 밝혀 주었다. 헤겔은 주체라는개념을 통해 개인적인 의지 속에 이미 공동체 정신이 내재한다고 보면서 이를 ‘절대정신(絶對情神, absoluter Geist)’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성령 개념에 해당된다. 헤겔은 절대정신이 소외되면서 신 개념이 출현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 역시 청년기에 헤겔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으니 그의 인간론 가운데서도 헤겔의 절대정신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인간론 가운데 ‘유적(類的) 존재(Gattungswesen)’라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마르크스에게 두 인간론이 있다. 하나는 사회관계 속에서 욕망하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유적 존재 즉 ‘자주적 공동체 정신’이다. 이 두 인간론은 하나로 통합된다.”(17~18쪽)


 

이병창 교수는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역사 인식’의 측면과 ‘역사적 실천’의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개념과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지닌 인간’ 개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 인식의 측면에서는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다. 역사를 만드는 다수 대중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이념을 실현하는 혁명적 실천은 이념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은 자각된 소수이며, 이들은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런 자주적 공동체 정신에서 나오는 이념 공동체만이 역사의 이념을 실현할 힘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이론적 인식에서 인간론과 실천적 차원에서 인간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구분을 통해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개념과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지닌 인간’ 개념이 공존할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인식된 역사적 이념과 실천적으로 파악된 자주적 공동체 정신이 결합될 수 있다.”


 

이병창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간이 자주적 공동체 정신에 이르는 길은 역사적 실천을 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진정으로 갈망하는 사람이 ‘인민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얻을 수 있으며, ‘인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짊어지는 혁명가가 탄생한다.

“진정으로 절망한 자만이 간절하 게 바란다. 이런 간절한 바람은 창조주나 메시아의 힘에 의존하게 하지 않는다. 이 간절한 바람은 오직 ‘인민의 힘’을 철저하게 믿게 한다. 인민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얻는다. 바울이 사도는 신 앞에서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주장하듯, 혁명가 역시 인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짊어지는 존재이다.”(18쪽)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전세계의 ‘가진 것 없는’ 대다수 인민들의 희망도 사라지는 듯 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가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한 ‘혁명적 철학’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에 태동한 자본주의 체제가 21세기 자본주의 체제와 다르듯이, 19세기 중반에 마르크스에 의해 태어나고 20세기 초반에 레닌에 의해 상종가를 쳤던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고수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도 사회체제의 역사에서도 적합하지 않다.

소련과 동구뿐 아니라 현존하는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사회주의를 표방하거나 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관계없이)은 과거의 혁명 사상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된다.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모택동주의, 게바라주의, 볼리바리아니즘은 당시 시대와 현실에 적합할 수 있지만, 변화하는 인류와 사회경제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주성의 공동체>는 새로운 사상을 찾지 못해 혼란스럽과 좌절하는 철학자들과 혁명가들에게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과 체 게바라 이후 세상과 사회를 바꿀, 소외되고 빼앗긴 전세계 인민들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혁명 사상을 위해 이병창 교수의 ‘자주성의 철학’은 시사하는 점이 많을 수 있다. 사회변혁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주성의 공동체>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출발했지만 보편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 이병창 교수는 국내 철학사상이나 철학자만 다룬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철학도서’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철학이라면 떠오르는 ‘개념’과 ‘이론’과 ‘철학자’와 각종 ‘철학사조’를 상당수 다룬다. 따라서 평소 철학에 관심이 없었거나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는 저자의 문제제기와 논리를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다.

필자 역시 이미 이병창 교수의 저서를 여러 권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각 책의 논리와 주제의식과 철학이론을 따라잡기가 여의치 않다. 여러 번 읽어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자주성의 공동체> 서문을 읽어보면, 이병창 교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에서 자주성의 공동체 철학에 이르는 논리적 과정이 잘 요약하여 정리되어 있다. 서문과 비교하면서 본문을 읽으면 철학적 논의 비판의 중심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주성의 공동체>에 대한 필자의 세부적인 학습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3661 를 참고


 

[2017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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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위기 - 현대 중국의 경험과 도전, 1949~2009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오쿠무라 사토시의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를 읽은 후, 뭔가 부족한 점이 많아 중국근현대사 과정 중에 전개된 세부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을 알아보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 원톄쥔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21세기의 첫 번째 1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현대사의 전과정을 경제사의 시각으로 다시 정리한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그의 저서에 호감이 가는 이유는, 그가 대학 졸업 후 정책 연구에 20년 이상 종사하며 이론과 현장을 결합하는 실사구시의 실천적 태도를 견지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데올로기적 선입관 없이 중국 경제의 실상과 발전 경로를 통찰하였다는 출판사의 소개 때문이다.(실제 그의 책을 읽어보면 사회주의 사상이론의 흔적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저자는 중국 경제와 발전 방향에 대해 혁신적인 논의를 펼치면서도 농민과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낮은 곳으로 향했기 때문에 나름 성찰의 결과를 내놓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톄쥔은 이 책에서 중국이 서구의 현대화 및 도시화로 대표되는 발전 경로로 설명될 수 없는 특징과 메커니즘을 지녔다고 보고, 그 경로를 똑같이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와 논리가 <여덟 번의 위기>의 핵심 내용이다.

원톄쥔은 중국 건국 이후 60년 동안 중국에 '여덟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당대 중국의 주요 사건들은 원톄쥔이 경제사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놓은 현대사의 지평 위에 그 좌표를 찍어보면 대부분 이 '여덟 번의 위기'에 겹쳐진다.
1958년에 시작된 대약진과 그로 인한 파멸적 재난, 1966년부터 고조되어 1968년에 정점을 찍은 문화대혁명의 혼란과 그것에 이어진 대규모 상산하향(上山下鄕),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문혁의 종결과 개혁개방이라는 극단적 변화와 더불어 진행된 권력 교체, 1989년에 중국공산당의 집권 기반을 뒤흔든 천안문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원톄쥔은 1949년 이후 중국에서 발생한 경제적 위기를 크게 여덟 차례로 분석했고, 각 위기를 시기에 따라 분류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1956~1976년 동안 외자와 외채로 인한 공업화 초기에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1958~60년에는 소련의 투자 중단으로 인해, 1968~70년에는 '삼선 건설' 중의 국가전략 조정에 따른 경제 위기가 일어났고 1974~76년에 세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이때 마지막 '상산하향'이 전개되었다.
1978~1997년 동안에는 개혁개방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내발적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1979~80년. 개혁개방에 따른 도시지역의 경제가 '경착륙'하였고 중국 지도부는 '잠농'에 의존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1988~90년에는 내재적 메카니즘에 의한 다섯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또다시 '잠농'으로 비용을 전가하였고 이로 인해 '농민공'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3~94년 여섯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하였으나 도시와 농촌이 공동으로 위기 비용을 분담하였고 중국경제는 외향형 경제로 전화하게 된다.
1997~2009년 동안에는 세계 경제에 깊숙히 편입한 중국경제에 외래행 위기가 발생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에는 중국정부에 적극 금융과 시장에 개입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때 제4차 외자도입이 실시되었고 중국 국내의 생산능력 과잉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 여덟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중국정부는 마지막 경제 위기마저 '연착륙'시켰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무려 여덟 차례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원톄쥔은 그 비결을 농촌에서 찾았다. 경제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와중에 중국정부는 광대한 농촌 지역을 매개체로 이용하여 연착륙을 실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중요한 원인은 농촌이 노동적령 인구 5억 명을 보유한 저수지 역할을 했고, 그 저수지의 근간인 농촌 토지재산 공유제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농촌의 기본 제도를 바꾸지 않은 덕분에, 2억 4,000만 농민 가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손바닥만 한 땅이나마 위험 없는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300만 이상의 촌락공동체가 예비토지/촌락공동 체기업 및 기타 여러 사업체를 보유하여, 심각한 부정적 외부효과의 비용을 내부화하여 처리할 여력이 있었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농민공들은 단순히 농업노동에만 종사하지 않고, 능력이 되는 대로 각 가구나 촌락공동체 내부의 여러 공업 및 부업과 기타 각종 사업에 참여했다."(74쪽)

서구 역사가들이나 중국 관련 전문가들은 지금껏 대약진운동이든 문화대혁명이든 개혁개방이든 천안문사건이든 오로지 선정적인 정치적 시각으로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또는 좌우 냉전구도나 이념적 경쟁구도로 사고해 왔다. 국내외 독자들 역시 그런 설명의 결과물로 얻어진 이미지를 중국의 실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원톄쥔이 '여덟 번의 위기'로 재구성한 중화인민공화국 60년을 살펴보면 서구 세계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부실한 것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편집증적인 독재 권력의 무모한 정책으로만 여겼던 대약진, 마오쩌둥에 대한 광신에 사로잡힌 젊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이해했던 홍위병 운동, 중국공산당 내 실용주의적 세력이 집권하여 정책을 합리적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결과라고 여겼던 개혁개방, 독재적 권력에 항거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규정했던 천안문사건 등은 모두 그 이면에 경제 위기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사건이었고, 그런 원인을 이해하고 해당 사건에 접근하면 각 사건의 실체는 지금껏 독자들이 생각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문혁 시기 홍위병들의 무정부적 폭력 행위의 주요 원인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광기나 광신이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당시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른 재정적자와 도시공업 위기로 인해 최악으로 떨어진 청년 취업률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렇다면 권력이 선택한 해결책은 현실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는 청년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상산하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가 괴물처럼 여기는 홍위병 청년들의 심리가 오늘날 월스트리트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나 편의점 알바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420쪽)

원톄쥔이 제시한 중국의 경제 위기 극복에 대한 이론은 중국공산당과 학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 추이를 예상하면서 중국 경제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을 몇 가지 대안을 책의 초반에 제시한다.
중국은 20세기에 10%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이 몇 년 전부터 한 자릿수에 멈춰 섰고,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추동력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저자의 분석과 대안이 중국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농촌과 농업경제가 떠올랐다. 한국의 농촌과 농민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도시와 공업의 성장을 위해 저곡가와 저투자로 희생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의 역대 위정자들이 미국정부의 조언만을 받아 서구 경제에서 성과를 보인 '수출공업 중심의 경제개발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밀어붙인 도시 만능, 수출 만능, 공업 만능, 재벌만능, 세계화 만능, 성장 만능의 사회경제 시스템의 결과는 농민 뿐 아니라 도시민에게까지 도달했다.(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는 변함이 없다.) 부동산값과 저임금, 빈부격차와 자살률 등 수많은 나쁜 통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201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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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쓴 중국 현대사 - 전쟁과 사회주의의 변주곡
오쿠무라 사토시 지음, 박선영 옮김 / 소나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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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탄생한 이래 지난 수천 년 내지 수만 년 동안 한반도와 접해 있던 중국은 음으로 양으로 한반도의 한민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2017년 현재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현재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으며, 근대 조선(한민족)의 두 후예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영토의 동북 방면을 접하고 있다. 중국과 조선은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는 혈맹 관계라 할 수 있다. 또한 발해만과 황해를 사이로 대한민국과 접해 있으면서 국교 관계를 체결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 국가체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시점에 반식민지 처지에서 독립한 후 국민당과의 내전을 거쳐 1949년 사회주의 혁명과 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사회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 중국의 영토(토지)는 대부분 국유 및 집체 소유이며, 국가경제의 주요 기간 산업 역시 상당 부분 국가 소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기준으로 할 때, 중국의 국가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라 할 수 있다.(사회주의 체제를 정의하는 학자에 따라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사회주의 체제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국가사회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로 정의하기도 한다.)

 

오쿠무라 사토시는 중국의 사회주의를 기존에 다수를 차지한 이론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이론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토시는 전통 중국 사회의 해체기에서부터 국민국가의 형성기의 좌절,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성격과 정책, 중일 전쟁의 주·객관적인 조건과 전쟁 수행 과정에서의 중국 국민당의 기본 노선과 공산당의 노선, 공산당의 중국 통일과 한국 전쟁, 그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대응 방식 및 이후 냉전 체제 속에서 취했던 여러 정책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실패와 실책을 지적한다.

또한 대약진 정책과 그 실패 후의 조정 정책, 마오저똥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했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신사고와 개혁·개방 그리고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대내외적인 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대후방 정책을 폈던 국민당의 항일 전쟁기의 전략이 중국 사회주의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 국가에서 치러졌던 대 자본주의 열강과의 전쟁이 사회주의의 건설을 왜곡시키고 국제적 냉전이 이러한 일시적 왜곡을 체제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토시는 사회주의를 "공업화가 상대적으로 지체된 지역에서 파시즘적인 전체주의 국가의 침략을 역사적으로 경험하면서, 그에 대응하기 위하여 파시즘보다 더 철저하게 전체주의적인 국가 방위 형태로 취해진 극단적인 총력전 태세, 바로 그것"이라고 정의한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사회주의화되었던 현대 중국의 경우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사토시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국공 내전에서 발전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승하여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되는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이후에도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는 국제 정세의 부침에 따라 변화해 갔으며, 국제적인 긴장 완화에 따라 붕괴되었다.

그의 시각은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베트남이나 북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소련이나 베트남 역시 전쟁 시기 또는 그 직후에 사회주의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냉전이 종결된 오늘날에는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중국과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토시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기에 앞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수립한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와 ‘실재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구분한다. 또한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는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무언가 시도하는 것이 사회주의”(26쪽)이며 “인간이 시장 원리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25쪽)이라고 구분한다.

그러면서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의 현실은 1) 사회적 소유라는 명분 속에서 이루어진 당의 생산 수단 소유, 2) 계획 경제라는 명분 속에서 이루어진 극단적 통제 경제, 3) 국가에 의한 착취와 형식적인 평등 분배, 4) 공산당의 일당 독재, 5) 비자율적인 일원적 통합을 주요 특징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수립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정의한다.

 

사토시의 “전쟁과 사회주의의 부침”이라는 관점은 사회주의 체제의 형성과 확산, 그리고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저자의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중국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평가, 자본주의 체제의 관점,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등 자신의 관점과 이론을 전개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여러 개념과 주장이 엉성하고 부실하며 논리적, 종합적이지 않다.

 

사토시는 자신의 정의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 전통사회에 대한 분석, 국민국가로의 지향,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과 갈등, 일본의 침략과정, 미국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순으로 중국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과정을 짚어본다. 여기서 그는 주로 일본 안에서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논문을 이용한다.

그는 중국의 전통사회가 ‘개별주의적 사회’이며 ‘느슨한 통제와 다원적 지배’ 체제라고 분석한다. 중국 전통사회의 ‘공동체’ 전통과 ‘봉건적 유교적 통제’를 완전히 무시해버린 셈이다.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토지와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인 중국 전통사회는 당연히 대가족 제도, 마을 단위 공동체가 대다수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의 사회 현실과 체제에 대한 사토시의 여러 가지 분석과 평가는 부실한 편이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사토시의 정의를 각각 비판해 보면 아래와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소유’는 개념적인 이론일 뿐 현실에서 구현된 바가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도해보아야 한다. 먼저,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일 수도 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공산당(노동당, 사회당 등 집권정당)의 소유가 될 수도 있다.(실제 토지 중 중국의 주요 생산수단은 공산당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소유다.) ‘사회적 소유’에 대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사적 소유의 집중에 의한 노동의 소외과 빈곤’이다. 생산수단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계급에게 집중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대안인 셈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 또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 소유’에 배치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참고로 사회주의 국가는 군대가 국가나 정부에 속하지 않고 당의 통제를 받는다. 중국도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는 당이 국가의 주요 활동을 ‘지도’하는 체제이다. 저자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공산당 독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이데올로기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그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계획 경제’의 취지는 생산과 소비가 예측되지 않는 무한 경쟁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과잉생산과 과소생산이 반복되어 경제가 붕괴되고 노동자와 인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계획 경제’는 곧 ‘집행 경제’이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계획을 수립하게 되면 그에 따라 국가와 정부, 협동농장과 공장이 집행하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기본적인 지도와 통제는 수반될 수밖에 없다. ‘자유방임’을 거부하는 체제가 계획 경제의 집행을 ‘방임’할 수는 없지 않는가.

‘국가에 의한 착취’는 더욱 불가능하고 비논리적인 개념이다.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다. 중국공산당이 생산과 투자와 분배에 실패할 수는 있지만, 중국이라는 국가가 노동자와 인민을 착취한 후 그 착취한 부를 소유할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착복할 수도 없다. 다만, 국가의 관료나 공산당의 관료의 부패는 가능하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 역시 정부와 당 관료의 부패 때문에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공산당 일당 독재’는 자본주의식 정치시스템과 개념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사회주의 체제는 ‘일당 독재’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자농민의 독재를 위해 공산당을 설립하고 공산당에 의해 국가 전체가 지도되는 시스템이니 당연히 공산당이 주요 의사결정을 행환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이라는 당적 체계와 전국/지방인민대표자대회라는 대의(입법)기구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공산당 간부와 인민대표자들은 선거로 선출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와 정당 체계처럼 정치인이 직업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홍보비를 쏟아부어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자본가와 기득권 집단의 광고에 기반을 둔 상업언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정치체제는 자본이 투입되고 자본 증식에 이용되는 일종의 ‘연극’이자 ‘드라마’일 뿐이다. 돈이 없는 개인이나 집단(계급)은 정치권에 진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는 양당체제든 다당제든 자본가들과 기득권자들이 서로 정치권력을 다투는 수준의 기득권 정치체제일 뿐이다. 따라서 공산당이 "아무런 제도적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공산당이 전체(모든 인민)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간판”이라는 사토시의 주장은 단지 비난하고 싶은 시각일 뿐이다.

‘비자율적인 일원적 통합’은 사회주의 정치와 사회문화 활동에 대한 몰이해와 비난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생존과 정치혐오로 인해 50%도 안 되는 투표율로 당선되는 자본주의 정치체제가 90%가 넘는 인민들의 정치참여를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자유’라는 억지스런 문장을 꺼낸 것이다.

 

사토시의 접근이나 이론 전개에 동의하기 어려웠음에도 그의 결론 중에서 필자가 공감한 대목이 있다. 전쟁이나 제국주의적인 위협이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 즉 중국이나 북한, 쿠바 등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온존시킨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이 제국주의 개입,공격 정책에서 벗어나고 일본이 군국주의(제국주의) 부활을 포기하게 되면 중국과 북한, 쿠바 등의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명확하게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자의 예상은 정반대이지만, 사토시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조속히 폐기하기를 바란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은 부당하고 불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사토시의 섣부른 규정과 낙인은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초반부에 사회주의에 대한 저자의 사상적, 철학적, 이론적 표현이 80년대 반공주의 교과서와 뉴라이트 세계관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어 읽어내기가 불편하기도 했다.

중국 전통사회에 대한 그릇된 평가도 그렇지만 ‘전쟁과 사회주의’라는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사토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과 투쟁 과정을 배제해버렸다. 일제 식민지에 대한 항일투쟁 과정과 일제의 패망 이후 중국의 정치권력에 대한 경쟁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을 경합했다.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소농 및 빈농)이 주축이었고, 국민당은 자본가와 대지주가 중심이었다. 국민당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

결국 두 계급간의 대결, 두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간의 쟁투에서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긴 것이다. 만일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이겼으면 사토시가 “전쟁과 자본주의”라는 관점으로 중국 근현대사를 썼을지.

사토시는 일제와의 전쟁시기에 국민당과 공산당이 연합하였고, 일제 패망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있었음을 간과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토시의 관점이 간과한 점은, 중국 전통사회와 근현대사 과정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목숨을 던져 저항하며 투쟁했던 수많은 인민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공산당원들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토시는 중국의 인민과 중국사회가 일제의 침략이나 전쟁 그리고 미제의 간섭과 개입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총력전’을 벌이고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사토시는 100년의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지지해줄 일본 내 중국학자의 관련 논문을 인용하기만 했을 뿐, 반대의 관점과 논리 또는 공산당과 인민들의 주체적인 노력을 들여다볼 의사도 의지도 없었다.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투쟁’이고 ‘현재를 고집하는 세력과 미래를 추구하는 세력의 투쟁’이라는 기본적인 관점마저 버렸다.

 

필자는 공부모임 때문에 읽었던 이 책,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를 헌책방에 되팔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아파트 단지의 폐지재활용 용기에 버렸다.

 

[2017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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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평화를 상상하다
최진섭 지음 / 역사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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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작가는, 사진작가가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가’로 알고 있던 필자에게,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먼저 오랜기간 조사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일께워준 예술가이자 운동가이자 학자이다.

 

그는 <자본론>을 사진 주제로 잡은 1998년 이후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2년 동안 통신강의로 <자본론>을 공부했다. 사진집과 출판물인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한강하구>, <민통선 평화기행> 등을 작엽했던 10년 넘는 기간 공부를 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연구를 거듭했다. 2008년부터 촬영과 편집을 시작한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의 경우 2014년 하반기에나 출간됐다.

그동안 목숨을 걸고 지뢰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홀로 유엔사 철폐를 주장하며 3천 리 길을 걷고, 국가보안법에 맞서 48일간 단식하고, 한겨울에 여의도에서 임진각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는 월간 《말》 편집국장, 《좋은엄마》 편집인을 역임한 최진섭 〈도서출판 말〉대표가 이시우 작가와의 역사기행에서 3년간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담집이다.

최 대표는 2011년부터 기회가 날 때마다 이시우 작가가 해설을 맡은 파주, 철원, 양구, 강화, 제주 등의 기행에 동행했다. 이시우 작가의 이야기는 한반도의 분단문제, 미군의 군사전략, 유엔사, 유라시아 체계, 독립운동사, 양명학 등을 넘나드는 내용이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사진 작업을 한 비무장지대, 미군, 유엔사, 한강하구, 국가보안법, 제주도 등에는 하나같이 한국현대사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내포돼 있다.

최 대표는 해박한 지식에 기초한 이시우 작가의 해설을 들으며, 기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과 그의 미학, 사진관, 세계관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 대담집을 엮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지, 한 사람의 의식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그리고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세상에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가? 이시우 작가의 남다른 점은 지행합일(知行合一)에 있었다.”(대담자의 서문 중에서)  

 

이시우 작가의 작품활동은 ‘인터넷’과 ‘첨단’과 ‘과학’에 의존하는 21세기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무색하게 한다. 명색이 사진작가인데 그에게는 그 흔한 DSLR 카메라 한 대 없다. 오래된 필름카메라와 누군가 안쓰러운 마음에 전해줬다는 소형 콤팩트(똑딱이) 카메라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최진섭 대표는 “이시우 작가는 사진을 발바닥(그는 발가슴이라 말한다)으로 찍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민통선 지역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고, 미군을 주제로 사진 작업 할 때는 남한의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의 거의 모든 미군기지를 탐사하고 다녔다. 강화에 있는 집에서 작업실까지 오고갈 때도 왕복 서너 시간의 거리를 항상 걸어 다닌다. 걸으면서 사색하고, 공부하고, 사진을 찍는 그를 ‘길 위의 도인’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며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아픈 것을 껴안은 채 작업하는 사진작가, 고독할수록 ‘주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이시우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 책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시우 작가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뢰 그리고 유엔사령부와 유엔체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는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비무장지대가 남한의 관점으로 보면 변방에 불과하지만 세계체제의 관점으로 넓혀보면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의 중심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위치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체계 차원에서 그렇죠. 비무장지대와 인근 지 역은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분단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지만, 세계 차원에서 보면 2차 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유엔체계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죠. … 그런데 38선은 한반도의 분단선일 뿐만 아니라 세계체계의 균열선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다음날 38선 문제는 한반도 문제가 아닌 세계 문제가 되어버리죠. 이것이 김일성을 곤란에 빠뜨린 구조였습니다. 남북교류의 확대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무너뜨리겠다는 구상은 한반도 차원에서만 보는 단견이죠. 세계 차원이나 유엔 체계에서 보았을 때 비무장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는 유엔군사령부 해체입니다.”(36쪽)라고 설명한다.

 

이시우 작가가 지뢰 사진 작업에 초점을 맞추게 된 계기는 한 외국인 때문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대인지뢰 금지캠페인(ICBL)의 조디 윌리엄스를 알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조디 윌리엄스가 수상 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해서 왔습니다. 한국 비무장지대의 지뢰가 세계 무대에서 최대쟁점이 되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노벨상수상자는 대사급 대우를 받는다고 해요. 조디는 지뢰피해자를 꼭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민통선 사진 찍으면서 지뢰피해자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서 안내를 맡게 됐죠. 조디는 강연료로 전부 의족을 사서 지뢰피해자들에게 선물했어요. 한국의 지뢰피해자가 최초로 한국 언론에 노출된 날이었죠. 부끄러웠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외국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요. 빚진 느낌으로 그때부터 지뢰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44쪽)

 

[관련기사] “대인지뢰금지 캠페인 돌입, 조디 윌리엄스 방한…국내 여론 형성
관심”

http://sarangbang.or.kr/kr/info/hrinput/hr_content.html?seqnum=5515&page=247&key=publishday+between+880815600+and+949244400&order=1

 

이시우 작가에게 비무장지대와 지뢰, 민통선과 유엔사령부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현재’를 옥죄는 분단체제가 드러난 장면들이다. 분단체제가 마음에 들어오면 지뢰피해자로, 민통선 주민들의 고통으로, 미군범죄로 발생하는 한국인에게 상처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치열하게 조사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으며, 국내외 학계에서 부실한 연구상황을 넘어 스스로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출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철원평야의 철새’를 촬영했고,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에 들어가 ‘철원 월정리역 못’과 ‘지뢰꽃’ 등을 촬영했다. 비무장지대로 시작한 그의 연구는 체계와 구조를 따라 한강하구와 유라시아, 주한미군과 정전협정, 국가보안법과 분단체제, 유엔사령부와 유엔체제, 그리고 오키나와와 한미일군사동맹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최진섭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의 연구 결과는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보통의 박사급이나 교수급을 몇 단계 초월한다.

"그의 책에는 웬만한 학술논문보다도 많은 수백, 수천 개의 각주가 달려 있다.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대담집은 이시우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미학 강의록인 동시에 그의 저작과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입문서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아픈 것을 껴안은 채 작업하는 사진작가, 고독할수록 ‘주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이시우 작가의 작품세계가 이 책에 담겨있는 셈이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는 이시우 작가의 사진 작품과 연구활동의 세계는 ‘어둠의 미학’ ‘가슴의 미학’을 향한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 철학, 그리고 실천은 어려우면서도 가슴 속에 깊이 남는 무언가가 있다.

서구 학계에서 들여온 국내의 ‘미학’ 개념이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죠.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이 사회의 중심도 아프고 소외된 곳이며, 또한 세계의 중심도 전쟁과 기아의 고통이 끊이지 않는 곳이 아닐까요. 아픔이 있는 곳이야말로 사회와 세계의 문제가 집중된 곳이고, 그곳의 문제가 풀릴 때 사회와 세계의 모순이 해결될 것입니다. 몸의 중심이 심장이나 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중심은 청와대나 국회이고, 세계의 중심도 백악관이나 미국이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 또한 나름대로 중심의 이유가 충분하지만, 어느 자리에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가에 따라 미학관은 크게 달라질 거예요. 아픔과 소외, 낯선 것을 미학적으로 통합한 개념으로 어둠이란 개념을 선택했죠.”(279쪽)

 

-인상 깊은 문장-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은 세계혁명이 이루어져야 조선의 독립도 달성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빨치산부대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가서 싸웁니다. 분단과 함께 대륙을 무대로 한 운동의 감각이 소멸되고 말았어요.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에 의해 생겼고, 정전협정은 한국 전쟁의 산물이며, 한국전쟁은 유엔이 유엔헌장을 왜곡하면서까지 개입한 최초의 전쟁이에요. 유엔체계의 모순이 가장 집약된 사건 중의 하나가
한국전쟁시 유엔군사령부입니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를 파면 세계체계의 모순이라는 광맥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역. 분단, 세계라는 틀로 비무장지대를 봐야 좀 더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35쪽)

 

"한국전쟁 때 지뢰를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처음 매설한 장본인이 미군이거든요. 당시 기록에 따르면 지뢰를 계획에 따라 매설하고 지도를 작성하여 나중에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급박한 전쟁 상황과 공포가 작동하여 지뢰를 뿌리면서 후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시 반격하며 그 길을 통과하다가 과거에 살포했던 지뢰에 미군 스스로 사고를 당하기도 하죠. 그리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와 전혀 관계도 없는 민통선 지역에 대거 지뢰가 매설됩니다. 대소봉쇄전략이란 것이 한반도 지뢰매설작전으로 적용된 것이죠. 그리고 미군 나이키 미사일부대가 있던 후방 40여 개의 산정상 방공포대에도 기지 방어용으로 지뢰가 매설되었는데, 홍수로 유실되어 산 아래 주민들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죠."(51쪽)

 

“수평적으로 보면,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항쟁이 시작되었죠. 그 해 4월 9일 예루살렘 서쪽 야신 마을에 이스라엘 지하테러조직인 이르군의 기습으로 아랍주민 250명이 사살됩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민중지도자 가이딴이 4월 19일 암살되면서 내전상황으로 돌입하고요. 지구의 반대편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은 1947년 트루먼독트린으로부터 준비된 사건들입니다. 수직적으로 보면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미군정 교범은 제주도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까지 그대로 적용이 됐죠,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콜롬비아 등 유엔참전국들의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합니다. 오키나와 역시 마찬가지였죠. 세계차원의 냉전이 각국의 내전과 겹쳐 진행되다가 한국전쟁이란 꼭짓점으로 수렴되는 형상을 보여요. 제주 4.3은 제주만이 아닌 세계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냉전의 단면이었죠."(236쪽)

 

[ 2017년 6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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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 철학자 이병창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
이병창 지음 / 도서출판 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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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창 저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를 읽고, 2014, 308쪽, 도서출판 말

 

한국현대사는 항상 마녀사냥이나 종북몰이가 있어왔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에 대한 집단학살이나 '빨갱이 사냥', 죽산 조봉암에 대한 사법살인,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의 김대중에 대한 낙인찍기, 수많은 간첩사건 조작과 국정원 댓글공격, NLL 논란 등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를 통해 직접 이득을 취하려 했던 수구 보수세력이 민주 진보세력에게 가했던 공격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주 진보세력 내부에서 상대방에 대해 종북몰이를 하거나 마녀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사태는 2012년부터 2년 동안 벌어졌다. 당시 통합진보당과 국회의원 이석기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의 특징은 수구보수와 대치하고 있는 민주 진보세력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병창 교수의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출현한다. "어째서 그들이? 그들 자신이 오랫동안 보수우익으로부터 같은 공격을 받아왔지 않은가? 여전히 보수우익에 대한 연대투쟁이 간절하게 필요한 시절에 어제까지 동지였던 그들이 자학적으로 공격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특히 이 교수는 학자로서, 사상가로서 개인에 대한 의문이나 문제가 아니라 현상의 바닥에 일정하게 흐르며 개인이나 집단이 말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사상적, 문화적 특징에 주목해야 했다.

 

철학자와 철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이병창 교수가 공개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할 게기였다. 그는 그런 마녀사냥과 종북몰이 속에서 파시즘이 등장하던 시기의 반유대주의의 냄새를 맡았고, 그 때문에 분노했다. "그런 분노가 나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현실에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이병창 교수가 대략 2년간 언론과 인터넷 등에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물음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당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를 비판하는 글을 써나가는 가운데 서서히,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답을 찾게 되었다. 여기 모인 글은 그렇게 찾은 답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내렸던 답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제시하는 물음이다. 내가 출판에 동의한 이유는 나의 물음을 좀 더 분명하게 제시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째서 민주 진보세력 내부에서 같은 동지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가 이뤄졌는가? 그들이 파시스트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자기 파괴적 공격의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병창 교수는 민주 진보 세력 내에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가담했던 자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했다. 그들 가운데 대표자 격인 유00은 참여민주주의라는 상표를 즐겨 달고 다녔다. 그들은 때로는 친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다른 일부는 민중 운동권이며 자칭 사회민주주의 세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색깔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냈다. 그것은 그들이 '자유'와 '합의'라는 개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철학, 즉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의 개념에 부합한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로 규정했다.

"나는 이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아메리카노’는 커피의 한 종류에 불과하고 그저 취미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메리카노는 독특한 정치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치 ‘홍대 앞’이나 ‘강남 스타일’이 고유한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메리카노는 진보당 비례경선 사태 당시 유00이 언급함으로 자유주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나는 바로 이런 아메리카노로 상징되는 자유주의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본다."

 

하지만 이병창 교수가 이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언급한 이유는 단순히 이름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시 말해 이 개념이 진보당에 대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가담했던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의 원인을 밝혀주는 설명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에게서 어떤 전도(顚倒)를 보았다. 자유를 앞장서서 옹호하는 자유주의자가 오히려 자신과 다른 타자를 배제하고 박해하는 배타주의자로 전도되었다. 나는 이런 전도가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의 원인이라 본다. 이런 전도는 외부의 유혹이나 강제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전도는 자유주의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합의라는 개념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전도라고 파악한다. 즉 마녀사냥과 종북몰이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필연적 결과였다."

 

"나의 주장에 대해 독자들은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독자들은 나의 주장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한때는 스스로를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 또는 친노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자유와 합의라는 개념을 좋아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들이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나섰을 때 정말 당혹했다. 그런 사태들을 통해 나는 서서히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을 지닌다.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장점과 단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장점, 바로 그 때문에 단점이 생겨난다. 마찬가지이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장점을 지닌다. 바로 그 장점 때문에 단점이 발생한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필연적 전도이다."

 

이병창 교수는 이들의 정치 행위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한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헌법 안의 진보"가 어떻게 헌법상 '정당의 자유'를 부정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유주의자가 왜 궁극적으로 국가적 폭력에 기생하게 되는지" 철학적 논리적 필연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종북몰이가 언제 어디서 유래했으며 어떻게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아 손을 잡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또한 '반북 진보주의자'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조어가 의미하는 바와 반북 진보주의자의 피해망상이 민주 진보세력 내에 조성한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2012년부터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에 가담한 여러 유명 인사와 지식인, 정치인들이 보여준 '철학의 빈곤'과 '조중동 적폐 언론'과의 일시적 동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이병창 교수의 결론은 "친노를 넘어서고,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의 철학적 배경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진실과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진영의 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자, 친노가 거듭나는 첫걸음은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한다"라고 제안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무제한적 무책임한 비판(비난)'과 '차별과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현상은 정치권에만 존재하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폄하, '김치녀'나 '기레기'처럼 일부 사람이나 집단의 특성을 과도하게 일반화시키는 현상 등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의 중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체쳐놓고 진행되는 강자와 약자의 갈등 문제 또는 갑을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양비론" 역시 무관하지 않다.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에 대한 필자의 챕터별 소감과 비평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hy2oxy/8693623)를 참조...

 

[ 인상 깊은 문장 ]

 

"다시 말하지만, 인민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므로 그것에 따라서 정당도 자발적으로 새로이 출현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다양해야 한다. 만일 이런 영역에 법이 개입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정당은 되고 저런 정당은 안 된다고 법이 미리 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법은 현실이므로 현실을 옹호하는 보수적 정당만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윽고 정당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새로운 정당의 자발적 생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일 법이 나서서 정당을 제약한다면, 결국 인민의 의지 자체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게 될 것이니 민주주의라는 형식 자체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대선 이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중산층 이하의 몰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사회적 좌절이 심화됐다. 대선의 패배 이후 그들에게 가능성이 열리지 않았다. 그 결과 몰락한 중산층이나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 청년 등으로 이루어진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증가되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바로 일베의 토대가 아닐까?

객관적으로 이들이 룸펜 프롤레타리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순진성과 기계적 반복성은 나치의 돌격대와 동일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베는 파시즘의 원초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베에 대해 대증요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나치 돌격대의 폭력을 사회적으로 부각시키자 오히려 나치 돌격대가 성장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그들은 논리나 이유,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논리나 정치적 고려를 통해 대응할 수도 없다.

그냥 무시하자. 그들이 배설하는 쓰레기나 낙서를 스스로 즐기도록 내버려 두자. 중요한 것은 오히려 배가되는 사회적 좌절이다.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급증하는 사회적 현실에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줄어든다면 일베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진경은 들뢰즈, 가타리의 프랑스 무정부주의 사상으로 전향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진경의 ‘수유너머’가 탄생했다.

이런 전향과 더불어 그는 갑자기 마르크스주의를 깡그리 부정하고 만다. 자신의 말대로 사회가 변했으므로 운동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좋다. 그렇다면 과거 교조적이었던 자기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보기에 사실 이진경의 교조주의는 변함이 없다. 교조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그는 마르크스를 교조로 삼았다. 이제 그는 들뢰즈, 가타리를 교조로 삼을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교조인가가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교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순수 교조주의자이다. 그에게는 마치 어머니나 신처럼 교조가 필요하다."

 

"자유주의자는 타자(the other)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 그는 타자를 처음에는 막연하게 자신과 동일한 존재라 본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메리카노냐, 다방 커피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본질에서는 동일한 존재야! 내가 자유를 욕망하듯이 그 역시 자유를 욕망하지! 자유란 보편적 가치이니까.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처음에 너무나도 관대하게 말한다. 차이를 인정하자. 그리고 서로 대화하자. 그리고 합의하자.

실상 이들의 관대함은 상대방이 자기와 동일한 존재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관대함이다. 자유주의자는 곧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낯선 타자에 부딪히게 된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슬람 종교적 독재에 부딪힌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는 자기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북한의 세습에 부딪힌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낯선 타자에게 강제적으로 투사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의 눈으로 볼 때 이슬람 국가와 북한의 국민은 독재자의 억압에 의해서 자신의 근본적인 욕망에 대해 말도 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자는 억압된 국민을 자기가 대변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낯선 타자인 독재자에게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슬람이나 북한의 통치자들이 독재자인가 아닌가에 대해 이 자리에서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문제는 ‘독재자냐 아니냐’하는 판단은 어디까지나 자유주의적 개념 틀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의 개념 틀이 모든 나라에서 유효한 틀인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논리가 종북몰이 논리로 전도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의 배후에 있는 생존의 두려움이 아닐까? 그들은 무리, 다수 속에 끼어들어 가야만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무리 속에서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안전하다는 쾌감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 이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다수, 무리 속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가 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화하는 반이념적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로 변질하는 이 기막힌 사건을 우리는 지난해 종북몰이에서 여실하게 보았다. 이 종북몰이에서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해하게 된다.

종북몰이란 실상 자기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자기의 두려움이 외부의 적, 섬뜩한 타자라는 환상을 낳는다. 종북몰이란 두려움이라는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이다."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남들이 불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보자. 이제 재판도 막바지에 이르러 사건의 실체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종북몰이에 혈안이 된 조중동조차 포기한 사건, 기소를 유지해야 할 검찰도 신이 안 나는 사건이니 그 결과야 어련할까?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동 속에 정작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빠져있다.

이석기 의원이 제기한 문제를 보자. 그것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 결론이야 어떻든 간에 이런 문제 제기는 귀중하다. 앞으로 진보주의를 사유하는 누구도 그 문제 제기를 피해나가지 못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진보 세력은 남북의 통일에 대해 침묵한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남북은 답답한 대결을 이어갔고, 그 사이에 단 한 번의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은 이런 답답함을 뚫어 보려는 어떤 적극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게야 남북 간의 긴장된 대결이 그 자신의 생존 조건이다.

그러니 사사건건 일을 비틀어 남북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대결을 조장하는 게 그들로서는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진보가 기초하고 있는 바로 그 민중이 아닌가?

그런데도 진보는 지난 5년 동안 이 답답한 국면을 해소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진보는 마치 남북의 통일 문제가 정권의 특권인 것처럼 멍하니 바라만 보았고, 그저 정권이 교체되기만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진보가 이 모양이 되었나?

결국 의지의 문제이다. 진보가 통일 문제에 대해 5년 내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진보의 의지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진보로서 발목이 묶인 점도 없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같은 진보 세력 내부에서부터 종북이라는 악의적인 비난이 악성종양처럼 자라났으니,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세력은 감히 숨조차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우선 몸이라도 챙기기 위해서 일단 오해를 불러일으킬 일을 피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남북의 대결이 악화함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중권 교수는 이제 국회의원의 사상을 검증하자고 한다. 북한에 대해서, 북핵과 삼대 세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그것을 밝힌다면, 그에 따라서 그가 종북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공직자의 의무에 이웃나라의 내정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을 고백하는 게 포함되는 것인지. 그러면 공직자는 의무적으로 일본의 자민당에 대한 입장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관한 입장과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도 고백해야 하는 것인지. 누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백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진중권 교수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건 나는 모른다. 내가 맡은 임무는 그저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기야 그다음은 진중권 교수가 맡은 일은 아니다.

그가 찬사를 받으면서 심사석을 떠나간 다음에 그 자리로 찾아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먼저 조중동이 나타날 것이다. 조중동은 준엄하게 선언할 것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종북파인 당신이 있을 곳은 저기라고. 이 땅에서 떠날 때까지 우리는 나발을 불어 당신의 숙면을 방해할 것이라고.

그리고 조중동이 떠난 그다음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한 번이라도 국정원에 끌려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 70년대 초 박정희에 의해 자행된 사상전향 공작의 그 끔찍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더 잘 알 것이다."

 

"종북몰이꾼은 종북주의자를 맹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과 체제에 동조하는 바보로 본다. 하지만 실상 그들 자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상대방은 허위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닐까? 자기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다른 사람은 허위라고 맹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파시즘적인 것이다. 그것이 소위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이다.

현대의 모든 철학들은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낯선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낯선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대화와 토론이다."

 

"자유로운 합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곧 그 한계를 누설하고 만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합의란 그 형식상 이미 자기 모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논리적 사유를 전개해 보자.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서 형성되는 일반의지는 개인의 개별적 의지를 넘어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반의지는 그것을 담지 할 구체적인 개인의 의지가 없다면, 단순한 추상적 관념에 불과하게 된다. 만일 일반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 개인이 일반의지를 담지하게 한다면, 이번에는 개인이 자기의 사적인 이해를 일반적 의지로 주장하는 전도가 일어난다.

쉽게 말해서 자유로운 합의가 독재로 전도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합의라는 조건 자체가 만들어내는 필연적 결과이다. 그런데 자유로운 합의의 자기모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사유를 여기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밀고 나가 보자. 일반의지를 담지하는 자가 개별자라면 일단 모든 개별 시민이 그 자격을 갖게 된다. 그와 동시에 모든 시민은 서로 다른 시민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을 예감한다. 그러므로 서로서로 의심하는 가운데 다만 혐의가 있다는 의심 때문에 서로를 죽이게 되는 일반적인 공포가 출현하게 된다.

이미 루소적인 일반의지, 즉 자유로운 합의의 자기모순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실현되었다. 헤겔은《정신현상학》에서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를 평가하면서 의심 때문에 마치 배추 밑동을 자르듯 사람의 모가지가 잘렸다고 말한다.”

 

[ 2017년 5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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