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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 - 대니얼 힐리스가 들려주는 컴퓨터 과학의 세계 사이언스 마스터스 14
대니얼 힐리스 지음, 노태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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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힐리스 저, 노태복 역, 2006, 270쪽, 사이언스북스
부제 : 대니얼 힐리스가 들려주는 컴퓨터 과학의 세계

그렇지 않아도 작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게임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바 있기에 ‘생각하는 기계, 컴퓨터’인 ‘인공지능’ 이야기가 담겨 있는 <생각하는 기계>를 몇 년 만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컴퓨터의 근본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출간된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대니얼은 컴퓨터의 원리가 한없이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고 말한다.

“컴퓨터 한 대에 들어 있는 부품의 개수는 라디오에 비하면 훨씬 많지만, 부품들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은 훨씬 더 단순 하다.”(12쪽)

 

저자는 ‘기술’보다는 ‘아이디어’가 ‘컴퓨터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아이디어는 컴퓨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전자 기술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보통은 컴퓨터를 트랜지스터와 전기 회로로 만들지만, 컴퓨터 구성 원리에 따르기만 하면, “밸브나 수도관 심지어 막대와 줄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컴퓨터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원리다! 컴퓨터에 관한 가장 놀라운 점은 기 술보다는 핵심 원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원리에 관한 책이다.”(12쪽)

 

<생각하는 기계>는 대니얼의 설명처럼 아이디어에 관한 책이다. 따라서 컴퓨터 활용법 내지는 컴퓨터를 만드는 기술(롬, 램 디스크 드라이버 등)에 관한 대다수의 책들과는 다르다. 이 책에서는 컴퓨터 과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설명하거나 적어도 간략히 소개한다.

불 논리, 유한 상태 기계, 프로그램, 컴파일러와 인터프리터, 튜링 보편 기계, 정보 이론, 알고리듬과 알고리듬의 복잡성, 휴리스틱, 계산불능 문제, 병렬 컴퓨터, 양자컴퓨터, 신경 네트워크, 기계어, 자기 조직화시스템 등을 말이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에 나오는 아이디어들을 이 전에 접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 과학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이상, 각각의 아이디어를 전체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컴퓨터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아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연결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위치 1개를 켜고 끄는 물리적인 동작에서부터 자기 인식 병렬 컴퓨터가 행하는 학습과 적응능력까지 컴퓨터 과학에서 다루는 아이디어를 연결한다.

 

대니얼은 블록 쌓기놀이의 일종인 ‘팅커토이’라는조립용 완구로 어린 시절 오목게임과 비슷한 간단한 게임을 하는 ‘팅커토이 컴퓨터’를 만들었다. 어떻게 어린 아이가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린 대니얼이 컴퓨터의 근본원리를 훤히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대니얼이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그 근본 원리는 바로 ‘보편 구성 블록’과 ‘불 논리 (boolean logic)’다.

 

역자는 이 근본 원리를 적용하면, “재료나 제작 수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굳이 전자 장치가 아니어도, 기계 장치나 장난감 완구, 물놀이 기구 그리고 생체 분자로도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컴퓨터든 컴퓨터를 컴퓨터가되도록 만든 이 근본 원리를 이 책을통해 손에 넣을수 있다. 어쩌면 컴퓨터를 만들어낸 근본 원리가 세상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만물의 근본원리와 통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근본은 근본끼리 통하니까 말이다."(6쪽)

 

<생각하는 기계>의 1장에서는 컴퓨터의 근본원리와 이를 어떻게 손에 잡히듯이 구현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불 논리(boolean operations), 비트, ‘유한 상태 기계 (finite-state machine, FSM)’, ‘보편 구성 블록’의 개념을 다룬다. 3장이 끝날 무렵에는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 논리 : AND, OR, XOR 와 NOT 연산자. 한 개의 비트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정보의 최소 단위량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 아니오, 활성화와 비활성화, 참, 거짓 등… 두 가지의 가능한 값 중 하나만을 표시하는 것과 같이 단지 1과 0만을 저장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연산에서 다른 비트들과 또는 스스로와 결합하는 비트 연산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산을 이 분야에 공헌을 한 수학자 George Boole(1815-1864)의 이름을 따서 불 연산-논리-이라고 부른다.)

(유한 상태 기계 :  컴퓨터 프로그램과 전자 논리 회로를 설계하는데에 쓰이는 수학적 모델이다. 간단히 ‘상태 기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한 상태 기계는 유한한 개수의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오토마타, 즉 추상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계는 한 번에 오로지 하나의 상태만을 가지게 되며, 현재 상태(Current State)란 임의의 주어진 시간의 상태를 칭한다)

(보편 구성 블록 : 논리 함수와 논리 블럭 그리고 유한 상태 기계의 집합. 이 요소들을 이용하면 컴퓨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4장 에서부터 6장 메모리에서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핵심 요소들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특히 4장에서 소개한 ‘튜링 기계’의 보편성과 ‘양자컴퓨터’의 가능성도 주목할 만하다.

(튜링 기계 : 수학적 모형의 일종으로, 특수한 테이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계이다. 튜링 기계가 사용하는 테이프 위에는 테이프 머릿기호를 바탕으로 기계가 인식하거나 기록할 수 있는 기호들이 있다. 작동 방식은, “42번째 상태에서 0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1을 쓴다. 1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17번째 상태로 간다. 17번째 상태에서 0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1을 쓰고, 1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6번째 상태로 간다”와 같이 유한한 개수의 기초적 지시문으로 이루어진다.)

(양자 컴퓨터 : 얽힘(entanglement)이나 중첩(superposition) 같은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자료를 처리하는 계산 기계이다. 고전적인(전통적인) 컴퓨터에서 자료의 양은 비트로 측정된다. 양자 컴퓨터에서 자료의 양은 큐비트로 측정된다. 양자 계산의 기본적인 원칙은 입자의 양자적 특성이 자료를 나타내고 구조화할 수 있다는 것과 양자적 메카니즘이 고안되어 이러한 자료들에 대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기한다.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빠를 수는 있지만, 기존 컴퓨터로 풀 수 없는 문제는 양자 컴퓨터 역시 풀 수 없다. 충분한 시간과 메모리가 주어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7장과 8장에서는 ‘병렬 컴퓨터’와 ‘학습형 컴퓨터’에 대해 논의 한다. 실제 컴퓨터 과학자로서 수많은 컴퓨터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 과학의 현재와 미래가 생생히 조망되어 있다.

(병렬 컴퓨터 : 동시에 많은 계산을 하는 연산의 한 방법이다. 크고 복잡한 문제를 작게 나눠 동시에 병렬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며, 병렬 컴퓨팅에는 여러 방법과 종류가 존재한다. 그 예로, 비트 수준, 명령어 수준, 데이터, 작업 병렬 처리 방식 등이 있다. 병렬 컴퓨팅은 오래전부터 주로 고성능 연산에 이용되어 왔)

(학습형 컴퓨터 : 되먹임 시스템과 뉴런 네트워크, 자기 조직화 시스템 등을 이용하여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이 부여된 컴퓨터로서 병렬 컴퓨터로 가능하다. 자동 항법 장치나 복구 매카니즘 등은 학습형 컴퓨터의 사례다.)

“컴퓨터의 능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킬 이 연구들이 어떠한 마인드를 바탕으로 어떻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이러한 연구와 관련된 독자라면 이 장에서 나름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7쪽)

마지막장은 1장과 더불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컴퓨터는 더 이상 인간이라는 주인이 명령하는 지시만을 묵묵히 수행하는 하인이 아니다. 컴퓨터도 생각하는 능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명체처럼 진화할 수도 있다고 대니얼은 말한다.

한낱 기계장치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단순한 공상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현장 설계자의 관점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니얼은 컴퓨터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일반적인 주제 몇 가지 있다고 설명한다. 그 첫째가 ‘기능적 추상화(functional abstraction)’의 원리다.

“이는 원인과 결과의 계층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 원리가 여러 단계에 걸쳐 반복적으로 적용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하위 단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세세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계층구조의 어느 특정 단계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는 이해하기 쉽다. 기능적 추상화의 원리로 인해 아이디어와 기술은 별개가 될 수 있다.”
두번째 주제는 ‘보편 컴퓨터’의 원리다. 이는 세상에는 오직 한 종류의 컴퓨터만 존재함을 뜻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의 관점으로 볼 때, 모든 종류의 컴퓨터가 동일하다는 뜻이다. 컴퓨터 장치는 트랜지스터, 막대 , 줄, 신경 세포 등 무엇으로 만들든 하나의 보편 컴퓨터로 환원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가정이다. 왜냐하면 프로그램만 제대로 짜면 인간의 뇌처럼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세 번째 주제는 첫 번째 원리와는 어떤 의미에서 반대라고 할 수도 있다.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설계와 프로그램 작성법, 즉 기존에 표준으로 여겨졌던 공학적 접근법과는 동떨어진 전혀 새로운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지면 정상적인 설계 방법이 소용없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방법은 매우 흥미롭다. 컴퓨터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준 ‘기능적 추상화’의 원리가 결국에는 취약성과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만다. 이 약점은 정보처리 기계의 어떤 근본적인 한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계층 구조의 설계 방법이 갖고 있는 한계일 뿐이다.

그 대신에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설계 방식을사용하면 어떨까? 즉 하향식 제어(top-down control) 구조가 아니라 많은 단순한 상호작용들의 축적을 통하여 시스템 특성이 창발적으로 출현하도록 하는 방식은 어떨까? 그처럼 진화된 방식으로 설계된 컴퓨터는 생물이 가진 견고성과 융통성을 동시에 가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러한 희망을 품어 볼 수는 있다. 이 접근방식은 아직 제대로 정의조차 되어 있지 않고, 어쩌면 끝내 실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주제다.”

 

<생각하는 기계>를 읽다 보면, 대니얼이 2006년에 이미 10년 후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게임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한 셈이다. 그러나 알파고가 바둑 게임에서 이세돌을 이기기는 했어도 <생각하는 기계>의 출간 당시 대니얼이 연구하고 있던 주제인 ‘생물이 가진 견고성과 융통성을 동시에 가진 컴퓨터’는 아직 요원한 상태로 보인다.

그리고 역자가 지적하듯이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출현이 인류에게 던진 질문인 ‘인간 또는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도 궁리 중일 뿐이다.

“현재 뇌과학 연구의 발전, 인공지능 연구의 가속화와 시뮬레이션 기술의 심화, 생명 진화의 이론 등이 컴퓨터라는 실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동향을 볼 때, 머지 않아 실현될지도 모를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출현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바로 ‘인간 또는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에 관해서도 나름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컴퓨터 사용법이나 컴퓨터의 구성 장치를 설명하는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컴퓨터의 원리나 기능에 대한 전문서적들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컴퓨터의 근본원리와 그 기능을 손에 잡힐 듯이 다룬 책은 참으로 드물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현재와 미래를 현장 개발자의 시각으로 생생히 탐구한 점도 경이롭다."(8쪽)


대니얼은 마지막 장인 9장 ‘생각하는 기계의 진화’에서 과학자 또는 인류가 ‘인공 지능’을 만들어낼 가능성과 현실성을 굳게 믿었다.

“나는 우리가 지능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전이라도 인공지능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 는다. 내 생각에는 지능의 창조는 아마도 자세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일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지능이 출현하도록 여건을 마련 해주면 되는 것 같다. 즉 그 과정은 기계를 공학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케이크를 굽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에 좀 더 가까울 듯하다. 인공 지능을 공학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지능이 출현할 올바른 조건들을 마련하면 된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기술상의 성취는 공학의 한계를 뛰어 넘는 도구의 발명, 즉 이해가능한 것 이상을 창 조하게 해주는 도구의 발명이라고 해도 좋으리라."(327쪽)

 

하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읽은 후 필자는 대니얼의 예측과 기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능’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창조’나 ‘발명’이라고 주장해온 중요한 것들, 즉 원자, 광자, 양자, 유전자 등 물리적, 화학적 요소와 현상들은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초부터’ 원래 존재하던’ 것이었다. 인류는 ‘존재하던’ 것을 ‘발명’이 아니라 ‘발견’했을 뿐이다.(이것은 ‘창조자’나 ‘신’과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인간의 ‘지능’이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이 작동하는 물리적, 화학적 바탕은 마찬가지로 ‘태초부터’ 존재하던 물질에 기반하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지능’은 현재 인류가 직접 볼 수 없는 ‘원소’ 물질에서 시작하여 수십 억년의 진화를 거쳐 발달해왔고 앞으로도 발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지능’ ‘인류의 진화’는 대니얼과 같은 과학자들이 아직 바라보지 못하는 특성이 다수 존재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명체’와 ‘우주적,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특징, 그리고 ‘인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라는 특징이다.

컴퓨터나 기계와 달리 동식물과 인간은 모두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이다. 살아 숨쉬는 것과 죽음은 생명체에게는 동시에 존재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 시작되는 셈이다. 무생물체인 기계와 컴퓨터에게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부분이다.(그래서 작가와 영화감독들이 상상한 것이 바로 그런 생명체를 숙주로 하여 미래에 존재할 것 같은 공상영화 ‘매트릭스’다.)

‘현재진행형’ ‘우주적 사회적 존재’라 함은, 인간은 홀로 존재하고 진화하고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지구-달이라는 태양계 시스템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존재이며 태양계는 거대한 은하계 시스템 속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인간은 집단을 이루며 서로 소통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게 진화할 수 있었고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다. 이러 부분 역시 기계나 컴퓨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니얼이 <생각하는 기계>에서 다룬 불 논리, 유한 상태 기계, 프로그램, 컴파일러와 인터프리터, 튜링 보편 기계, 정보 이론, 알고리듬, 휴리스틱, 병렬 컴퓨터, 양자컴퓨터, 신경 네트워크, 자기 조직화시스템 등은 인간이 ‘사회적, 조직적’으로 컴퓨터에게 입력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는 오랜만에 읽는 과학도서다. 보관 중인 책과 서평을 정리하다가 2010년 경 읽은 것으로 분류해 놓았던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중에서 <생각하는 기계>의 서평이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
출판사 사이언스북스가 2000년대 중반에 시리즈로 출간한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21권 중 14번째 도서였다.

 

[2017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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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서평]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저, 김진준 역 <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를 읽고 / 2005. 12., 752쪽, 문학과사상사

이 책은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전세계 인류의 불균등한 삶과 생활을 이루어살고 있는 이유, 더 나아가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대량 학살한 이유를 진화생물학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이래 진화론은 유전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사회생물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가운데, 진화론은 그 과학적 객관성과 타당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경우 정치적, 인종주의적 목적으로 '악용'되어 왔다.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인종주의적 설명이 아닌 다른 과학적 분석으로 가능할까?
"왜 어떤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의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왜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인들에 의해 도태되고 말았는가.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는가.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명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저자는 위 질문에 대해, 광범위하게 나타난 인류 역사의 경향을 실제로 만들어낸 환경적 요소들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그는 뉴기니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에서부터 현대 유럽인과 일본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인간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
이 책은 서구인들에게, 그리고 서구인들의 편견에 물들어 있는 한국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인류가 아직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13,000년 전 석기 시대가 화석과 유물로 남겨놓은 흔적들을 분석하면, 그때부터 각 대륙에 살고 있던 인류 사회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중동지역), 중국, 중앙아메리카, 미국 동남부와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야생 동식물을 일찍부터 가축화.작물화한 사실은 그 지역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앞설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왜 밀과 옥수수, 소와 돼지, 그리고 현대의 주요 작물이 된 농작물과 가축들은 특정 지역에서만 작물화? 가축화되었을까? 저자는 그 원인이 관습도, 인종차도 아닌 환경임을 밝힌다. 다시 말해 기후와 지리, 위도, 강수량 등 환경이 대륙 간 인류 문명의 발달 속도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곳곳에 정착한 이후 서로 고립된 상태에서 수백 ~ 수천 년 간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여 사회를 이루고 살아감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고 다른 양식의 생활과 정치사회 제도를 구성했던 것이다.

즉, 인류 역사에서 문명이 다르게 전개된 것은 각 대륙의 민족 또는 인종이 인종적, 유전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인간종의 이동 과정과 각 대륙의 환경 및 조건의 차이에 맞게 적응해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환경에 적응해 왔던 인류의 문명이 상이하게 발달한 과정에서 특히 '총기'와 '병균'과 '금속'이라는 무기를 매개로 하여 역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일단 수렵 채집 단계를 넘어서 농경을 하게 된 사회들은 문자와 기술, 정치제도(중앙집권), 사회제도뿐만 아니라 사악한 병원균과 강력한 무기들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한 사회들은 질병과 무기의 도움으로 다른 민족들을 희생시키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했다. 지난 500여 년간 유럽인이 자행한 비유럽인 정복은 이러한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간 후 질병과 전쟁으로 95%의 원주민이 죽고 만 것이다. 일단 앞서게 된 유라시아 대륙은 지금도 세계를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책의 서두에 자신의 연구결과가 "과거의 대량학살을 미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닐 뿐더러 미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말에 회의가 든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류의 문명과 행위를 '생물학적 범위'로 분석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생물학적'이라는 설명은 다분히 인간의 의지나 집단적인 세계관의 반영이라기 보다 동물적인 또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근거한 행위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식량생산과 인구의 증가, 그에 따른 중앙집권적 제도와 무기의 발달이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침략하거나 학살하는 근거로 제시했는데, 생물학적인 이유라 할 수 있으려면 침략한 민족이나 인종이 식량 부족 또는 거주지 부족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는 그렇다는 근거나 증거는 없다.

저자가 예로 든, 1835년 뉴질랜드 북부섬에 살던 마오리족 일부가 채텀 제도에 살고 있던 모리오리족을 공격하여 거의 멸족시킨 것은 환경과 조건의 차이가 아니었다.
저자는 두 종족의 차이를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와 잉여생산물에 의한 무노동 집단의 탄생, 그리고 높은 인구밀도로 영토와 식량을 둘러싼 경쟁에 익숙한 마오리족이, 낮은 인구밀도 조건에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위계질서가 약하고 싸울 줄 모르는 모리오리족을 공격하여 멸족시킨 것이다. 이것은 결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황, 즉 생물학적인 전개과정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그러한 마오리족의 침략 행동은 말 그대로 '비인간적'인 행위이고 마오리족이 아직 '인간성'을 취득하고 계발하지 못한 짐승 수준의 제도와 문화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설명을 고려하더라도 마오리족은 높은 생산성에 근거하여 집단 내부에 잉여생산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종족을 학살한 이유가 식량부족일 수는 없다. 더많은 잉여생산물과 권력, 그것을 위한 영토의 확장인 것이고 다른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존중하지 못하는 문명상태, 즉 '필요'에서 벗어난 동물이지만 아직 '문명'이라 할 수 없는 경계상태의 인류가 '학살'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1532년 신성로마제국(스페인)의 피사로 군대 170여명이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8개월 동안 포로로 붙잡고 그의 군대 8만 여명을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집단 학살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성로마제국 사람이나 군대를 처음 접하는 잉카 제국의 황제와 잉카인들에게 피사로는 거짓말로 화해와 친선을 위한 만남을 제안(만남 전에 미리 공격 준비를 한다)했고, 스페인 군대에 소속된 기독교 수사는 기독교의 존재도 모르는 황제에게 성경을 강요하여 갈등을 유도했다. 피사로는 잉카 황제를 8개월 동안 볼모로 붙잡아 놓아 스페인으로부터 추가 파병할 시간을 벌었고 잉카 제국으로부터 엄청난 몸값을 받은 후 나중에 황제도 죽였다.
피사로와 기독교 수사는 잉카 제국을 공격한 이유를 "하느님과 그의 성스러운 신앙을 만민에게 알리기 위해"라고 주장다.
즉, 신성로마제국이 잉카제국을 학살한 이유는 진화생물학으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인류가 동물에서 인간종으로 변화되는 가운데 과도기에 해당하는 '오만과 독선'이라는 '종교적 질병', 즉 인류의 정신적, 문화적 질병 중의 하나라고 분석해야 한다.(이러한 종교적 질병은 이슬람제국과 십자군전쟁에 이어 현대 사회에도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물론 더 오랜 기간을 살펴보면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은 무기의 수준, 유럽으로부터 전염병의 전파, 금속문화 등도 연관이 있다.
즉 저자는 "왜 스페인은 잉카 제국을 침략했는데 잉카 제국은 스페인을 침략하지 못했나?"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그 원인을 환경과 조건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총, 균, 쇠>라는 무기, 병균, 금속, 그리고 문자 등이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그리고 잉카 제국이 스페인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무기, 병균, 금속이 하나의 인간집단(종족, 민족)이 다른 집단(종족, 민족)을 공격할 때 승리하는 이유는 될 수 있지만, '공격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격하고 정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당하고 고의적인' 것이다.
만약 저자의 논리가 절대적인 진리라면 인류는 앞으로도 전쟁과 학살, 침략과 정복으로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인들이 "종교의 전파"를 공식적인 공격과 점령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제 의도는 더많은 권력과 부, 영토를 위한 식민지 확장이었고, 그것은 봉건귀족과 자본가들의 탐욕과 착취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 탐욕과 착취욕이 잉여생산물에 근거한 것인지. 잉여생산물에 기초한 착취계급과 그들 사이의 살인경쟁인지, 종교에 근거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다시 말해, 당시 유럽인들은 자신들은 고귀한 인간이고 다른 민족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나 노예로 생각했던 '미개인'이자 '짐승같은' 동물집단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20세기 들어서까지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백 만명을 서로 죽였고 그 뒤에야 조금씩 '공존'과 '인간성'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전쟁과 증오에 불타는 미개한 종족이 미국과 이스라엘, 한국에 남아있지만...
오히려 처음 만나는 인간집단에게 호의를 보이고 친선을 도모한 아메리카 인디언과 잉카인들, 모리오리족과 다른 대륙의 민족, 종족들이야말로 수백 ~ 수천 년 전에 서유럽보다 먼저 '인간다운' 문화와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유럽은 자신들끼리 두 차례의 거대 살륙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 민중들을 학살한 후인 20세기 중반을 넘어서 비로소 공존과 공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인종 우월주의, 국가 우월주의에 사로잡히거나 금융자본과 군수자본 등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 갈등, 착취, 학살은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저자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인간집단이 대를 거듭하면서 만들어 낸 정치사회 제도와 문화는 천양지차이지만, 다른 제도와 문화가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집단적으로 학살한다는 자연스러운 또는 과학적이거나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는 환경와 조건에 적응하면서 각 인간집단이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내기 시작한 인류의 문명 또는 문화는 더 이상 진화생물학이라는 범주만으로 연구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 문명의 역사적 발달 과정이 인종적, 유전적 차이가 아닌 환경과 조건에 따른 적응적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총, 균, 쇠, 정치제도, 문자'라는 요인만을 중심으로 문명을 분석하면서 서구의 제3세계 학살이라는 결과를 해석하려 하다가 오히려 서구의 학살을 일면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독후감이다.

참고로, 이 책 개정판의 후면에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특별 증보면이 추가 수록되어 있어서 소개한다. 이 증보면에서 저자는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추적했다.
여기에서 저자는 유전적 분석, 각종 화석과 유물에 대한 분석 결과, 언어학적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일본의 현생 인류는 한반도 인류에서 확산된 결과이며 식량생산과 문자, 언어 역시 한반도에 기원을 둔 것임을 밝힌다.
세부사항은 블로그에 정리(http://blog.daum.net/hy2oxy/8691593)

[ 2013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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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의 승리 -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존 올콕 지음, 김산하.최재천 옮김 / 동아시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 자연선택이 동물의 사회 또는 사회적 행동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서평] 존 올콕(john Alcock) 저, 김산하, 최재천 역 <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The Triumph Of Sociobiolog >를 읽고 /  2013. 03., 383쪽, 동아시아

인간이 40억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 과정에서 탄생한 생명체 중의 하나이고, 역사적 진화의 소산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인간만을 따로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절름발이일 수 있다. 인간이 구성하여 유지하고 있는 '사회'라는 집단 시스템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신이 던져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진화생물학과 더불어 사회생물학에 관심이 많다. 기존 사회과학은 너무 인간을 '별종'으로, 또는 동물과 상관 없이 분리된 '품종'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은 별도의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분류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사회생물학을 "자연선택이 동물의 사회 또는 사회적 행동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동물의, 어떤 행동을 연구하는 것일까?

동물 중에서 일부다체제나 일처다부제는 흔한 편이다. 그리고 일부일처제로 진화한 동물 중에서 '혼외정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호기심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조류의 한 종인 붉은날개지빠귀는 왜 기회만 있으면 배우자 몰래 옆 동네 수컷과 교미하는 것일까?
파트너가 좋은 둥지나 충분한 정자를 제공하는데도 암컷은 은밀한 ‘혼외정사’를 찾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한때 새는 ‘일부일처제’의 전형으로 여겨졌지만, 일부일처제로 보이는 여러 종에서 암수 모두 번식기 동안 여러 개체와 교미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회생물학자가 핵심적으로 의문을 갖는 점은 짝이 있는 암컷(그리고 수컷)이 둥지 짓기, 먹이 찾기 등 유용한 일을 할 시간에 굳이 혼외교미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일부일처제를 하지 않는 붉은날개지빠귀 암컷의 혼외교미 파트너가 암컷의 새끼에게 여분의 음식을 주거나 포식자로부터 보호해줬다면, 파트너를 여러 명 거느리는 성향을 가진 암컷은 그렇지 않은 암컷보다 더 많은 자손과 유전자 사본을 남겼을 것이라는 설명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과거 암컷들의 성적 정절의 차이가 종의 진화를 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붉은날개지빠귀나 다른 명금류 암컷이 여러 수컷과 관계를 맺는 그 밖의 이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므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완전하게 검증이 된 가설은 없다. 게다가 붉은날개지빠귀에서 혼외교미의 적응적 가치에 대한 중요한 예측 중의 하나는 매우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한 연구는 여러 수컷과 교미하는 암컷의 번식성공도가 일부일처제 암컷의 번식성공도보다 높았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연구는 정확히 정반대의 결과를 보고했다. 결국 이 다윈적 수수께끼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다른 사례로 '개체 또는 개체군의 희생'이 있다. 동물이 자신의 유전적 성공을 기꺼이 희생하는 행동은 다윈에게는 수수께끼였다. 해밀턴은 유전자와 유전적 발달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다윈의 생각을 발전시켜 극단적 이타주의에 따른 유전적 결과에 집중했다. 극단적 자기희생, 예를 들어 불임 개체가 자살로 집단을 방어하는 행동 등은 거의 항상 가족 안에서 일어난다. 
가장 좋은 예는 척추동물 중에서 개미 집단과 가장 가까운 특징을 보이는 동물인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의 벌거숭이 두더지쥐이다. 털이 없고, 작고, 피부 본연의 색을 띤 이 요상하게 생긴 동물의 집단 대부분을 이루는 불임 일꾼들은 복잡한 굴들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하 벙커에서 생활한다. 통상 70~80마리로 이뤄진 집단에서 단 하나의 암컷만이 최대 세 마리의 수컷과 번식한다. 나머지는 이 극단적 소수를 위해 노동하며 때로는 굴을 침범한 뱀에 맞서 죽음을 감수하기도 한다.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이 집단은 거의 전체가 가임 지배자들의 자손으로 이루어져 있어, 위험한 뱀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죽는 일꾼 쥐는 자신과 매우 가까운 친척을 위해 희생을 치룬 셈이다. 집단 내의 유전적 연관도는 형제자매 또는 어미와 아들 간의 근친상간에 의해 더욱 높아질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자손이 부모의 특정 대립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을 연구하던 사회생물학자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진화적 가설을 제기하면 그 행동이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도덕적인 비판이 가해진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도덕적인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선택으로부터 도출되는 도덕적인 교훈이란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생물학적 분석은 인간의 사회행동에 대한 중립적인 설명을 제공할 뿐이며, 정당화나 도덕적 진단, 무엇이 ‘마땅히’ 어떠해야 된다는 규범적 선언이 아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가 강간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생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위험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반드시 듣게 되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강간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사회적 또는 ‘도덕적’ 인자를 제거하는 행위는 강간을 정당화할 것임에 분명하며,” “강간을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과 분리시켜 적응적 의미를 담아 격상시키는 것은 환원주의적이고 반동적이다”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물론 ‘진화적인’과 ‘도덕적인’이라는 두 가지 수식어가 갖는 의미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생물학적으로 적응적인 형질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옳다는 결론에 이르게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강간은 성적 동인의 자연적인 현상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보통 강제적 성관계에 대한 페미니즘의 일반적인 시각은 증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근거에 기초한다.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은 자신의 저서 <의지에 반하여 Against our will>에서 “모든 강간은 힘의 행사일 뿐이며,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 상태에 두기 위해 행하는 의식적인 위협의 과정에 더도 덜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즉 강제적 성관계에 대한 페미니즘의 기본 입장은 강간이 성보다는 힘에 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남성권력을 보존하는 것이 목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영향으로 여성을 지배하고 위협하려는 욕구가 강간범의 행동 동인이다.

그러나 강간범의 절대다수가 발기된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사정할 정도로 성적으로 흥분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강간에 성적인 동기가 전혀 없다는 생각은 상당히 반직관적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강간범의 행동과 성적 욕망은 관련이 없다고 확신한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많은 이들이 성적 욕망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기므로 강간도 어떤 의미에서 ‘자연적’이라고 여김으로써 사회가 강간범을 용인하는 것을 페미니스트들이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강간이 누군가를 수치스럽게 하려는 단순 명백한 범죄적 행위라고 하면 아무도 강간범을 용서하거나 이 행동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강간에 ‘자연적인’ 원인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싶은 것이다.

같은 목적을 위해 강간이 다른 생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순전히 인간만의 현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예 순수하게 문화적인 현상으로 강간이 특정 사회의 남성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고 주장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을 교육해서 강간에 대한 남성 이데올로기를 바꾸어 문제를 제거해버리면 된다. 실제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단지 남성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특정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몇몇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암컷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교미하는 행동은 곤충에서부터 침팬지, 오랑우탄, 기타 영장류에서 많은 사례가 수집되었다. 예를 들어, 사막 풍뎅이(Tegrodera aloga) 수컷이 암컷을 옆으로 눕히려고 거칠게 몸싸움하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이에 성공하면 수컷은 암컷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경으로 암컷의 생식기를 더듬거리다가 때로는 삽입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수컷이 얼마든지 점잖은 방식으로 구애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에 수컷은 작은 사막식물을 먹는 암컷의 앞으로 조심스레 와서 자신의 더듬이로 암컷의 더듬이를 쓰다듬어 자신의 머리 앞에 난 두 개의 홈으로 인도한다. 둘은 몇 분이 지나도록 서로 마주본 상태에서 암컷은 계속해서 먹이를 먹고 수컷은 계속해서 더듬이를 쓰다듬는다.
즉 인간이란 종만이 강간 또는 강제적 성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인간행동의 전문가로 여긴다. 사람들은 '인간행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깊고, 다른 사람의 동인이나 의도를 분석하는 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더 잘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생물학은 이 분석에 진화적 측면이라는 색다름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런 인류의 가장 고유한 특징이자 자랑스러운 유산인 문화에 사회생물학자들이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굴드가 사회생물학 분야와 학자들을 수년간 계속 비방해왔기 때문에 갈수록 더욱 심했다. 이 과정에서 굴드는 사회생물학이 사회적으로 유해하며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치부하고자 하는 여러 페미니스트와 사회과학자들과 동맹을 형성했다. 그러나 비사회생물학자에 의해 가장 자주 제기되는 비판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오해와 혼동에 기반하고 있다. 

이 책은 실제 연구 사례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 핵심 오해사항들을 다룸으로써 사회생물학적 접근법이 인간은 물론, 개미에서 영양에 이르는 기타 사회적인 동물을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자료로서 관심과 존경, 찬사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성적 질투심, 여성의 아름다움, 남녀 성의 차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 강간, 간통, 집단학살 등 인간을 주제로 한 여러 사례들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며, 과학과 이데올로기적인 반론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쟁에서 마침내 사회생물학자들의 승리를 외친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가 역자 후기에서 조언하듯 책에서 제기하는 기존의 인문사회학적 문화 연구에 대한 비판과 사회생물학적 인간문화 연구의 실효성에 대한 비교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에 대해 좀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야만이 기존 서구식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가능할 것 같다.

[ 2013년 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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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은 왜? -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의 연금술 과학전람회 2
마르코 라울란트 지음, 정수정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서평] 마르코 라울란트(Marco Rauland) 저, 정수정 역 < 호르몬은 왜? :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의 연금술 Feuerwerk der Hormone >을 읽고 / 2007. 03., 279쪽, 프로네시스


이 책은 인류의 자연과학(자) 또는 과학기술(자)의 섣부른 이해나 사용이 본의 아니에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의 뇌에서 분출되는 신경전달물질, 즉 호르몬이 인간의 기분이나 몸의 상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화학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이야기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호르몬의 영향은 주로 간단한 동물실험이나 일부 실험대상 인간을 활용한 표본 실험 결과이다. 그리고 그 실험 결과는 주로 뇌 스캔의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왜 성공하면 행복감이 들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 위,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뇌에서 뇌 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 전달물질이 분비되면, 행복과 쾌감중추라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신경 호르몬인 도파민은, 중뇌의 작은 영역에 엘도파 아미노산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뇌의 명령을 받아 분비된다."고 해답을 제시한다. 그 해답의 근거는 "이러한 뇌의 메카니즘은 동물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다."는 것이며, "이런 결과는 원숭이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 확실히 (뇌에서)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질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p.18)로 말한다. 또한 "인간은 니코틴과 알코올 그리고 코카인과 같은 마약류를 복용하여 도파민 수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서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하고 중독된다. ... 일중독이나 섹스중독과도 같이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행위'에도 중독될 수 있다. ... 도파민은 쾌락과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위험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p.26)라고 추가로 설명한다. 비슷한 사례는 계속된다.
"자동차에 열광하는 열 두 명의 남성을 선발하여 ... 뇌 스캔 분석 결과, .... 도파민을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성화 ....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성관계를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처럼 무엇인가를 즐기거나 욕망할 때 분비된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스포츠카도 즐거움과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p.29)
"(실험 결과) 애견인이 개와 함께 있을 때, 애견인이나 개 모두 혈압이 떨어졌다. 이는 개와 사람이 똑같이 기분이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구진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페틸에틸아민 수치가 20% 가량 상승했다는 점이다. 페닐에틸아민은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경험했을 때 분비되는 '행복호르몬'이다. 예컨대 가슴 설레는 멜로영화를 볼 때 페닐에틸아민 분비가 늘어난다."(p.32)

그런데 호르몬이 그런 작용을 하는 근거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뇌 스캔 결과이다. "기분 좋은 순간(웃음)에 도파민의 분비를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되었다."(p.27) 하지만, 저자의 설명으로는 기분이 좋거나 행복한 상황이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키는가? 아니면 도파민의 분비가 기분을 좋게 하는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갈이 먼저냐?'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또는 기분이 좋은 기분이 뇌에서 도파민을 방출하고 그 도파민이 다른 호르몬과 연결작용을 하면서 혈압을 낮추거나 호흡과 맥박을 빠르게 하거나 신경을 전체적으로 이완시키는 대신 눈과 입 주변의 근육을 움직여 웃음짓게 하거나 미소짓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저자는 여러 종류의 호르몬을 연관관계 없이 기분 상태와 연결짓는다. 기분이 좋을 때 뇌에서 분출하는 '행복호르몬'은 페닐에틸아민이기도 하고 도파민이기도 하고 세로토닌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 분비되는 것이고 함께 분비될 때는 어떤 경우일까? 호르몬의 분비량은 무조건 많은 것이 인체에 좋은 것인가?

저자와 같은 과학자들, 특히 상품생산과 관련되어 있는 학자들의 위험성은 호르몬과 인체를 단순하게 연관지으면서 인공 호르몬으로 인체를 조작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는 데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한 두가지 호르몬의 과잉이나 결핍이 우울증과 같은 인체의 병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후 의학적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기도 한다. 마치 중세의 흑사병이 물과 생활의 위생상태가 불량인 상태로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이 근본 원인인데, 불결한 환경에 몰려드는 쥐가 병균을 옮기는 것으로 착각하여 쥐만 박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라 할 수 있다.(물론 저자 자신도 인간의 심리 상태와 호르몬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인간의) 활홀한 행복감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전달물질은 50여 가지가 넘는다."(p,210))

"사람들의 감정의 기복은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세로토닌이라는 작은 분자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뇌 전달물질로 뇌에 정보와 소식을 전달해줄 뿐만 아니라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로토닌은 체내에 10mg 정도가 흐르는데 이 가운데 1%만이 신경전달물질로 뇌에 존재한다. 나머지는 위와 장에 머물며 소화를 돕는다."
"뇌에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면 기분도 좋아진다. 기분이 좋을 땐 세로토닌이 뇌의 기분중추를 활성화시켜 편안한 기분과 만족감을 느끼게 만든다."(p.33)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세로토닌이라는 전달물질이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세로토닌은 바나나, 파인애플, 딸기와 같은 과일에 순수한 형태로 들어있을 뿐 아니라 참깨나 우유, 쌀, 초콜릿에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음식물을 통해 섭취된 세로토닌이 직접 뇌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 뇌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다른 생화학적인 메카니즘이 필요하다."
"당이 함유된 식푸을 먹으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품을 통해 당이 생성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세로토닌 생산이 더 빨라진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때 초콜릿이나 쿠키 또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단 음식을 먹으면 어떤 약을 먹는 것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p.38)
"따듯한 봄날 햇볕을 쬐거나, 여름휴가를 떠나 아름다운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있으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가 빛(2500럭스lux 이상)을 보면 뇌에서 세로토닌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 겨울에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겨울철 세로토닌 결핍을 특히 심하게 느끼는 경우이다. .... 그렇다면 겨울철과 초콜릿의 높은 상관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따듯한 남쪽 지방 사람들이 우중충한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보다 우울증이 적고 더 정열적인 것이다."(p.42~43)

이 책은 자연과학에 대한 학문적, 실질적 관심이 아니라 단순히 호르몬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유익한 편이다. 호르몬에 대한 유익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의 열 배, 여성의 에스트로겐은 남성의 네 배"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율에 따른 검지와 약지의 길이 차이의 상관성 : 검지가 약지보다 짧은 사람이 반대의 경우보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다. 즉, 소위 '남성적'이라 할 수 있다."
"에스트로겐이 증가하면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농도가 증가하여 폐경기의 여성(에스트로겐 감소)은 세로토닌 농도가 줄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스킨십은 대표적인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에스트로겐의 분비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여성의 옥시토신 수용체가 남성에 비해 5배이기 때문에 여성이 스킨십에 민감하다."
"여성의 세로토닌 수치는 월경 직전에 가장 적어진다. '월경전증후군'은 여성 중 30%가 경험한다."
"테스토스테른은 35세 이후 매년 1%씩 감소. 60섹에 절반 정도로 생산이 줄어든다. 물론 개인차가 있으며 유전, 식습관, 스트레스, 질병 등에 따라 달라진다.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로 만성피로, 발열, 수면장애, 우울증, 성욕감퇴, 발기부전, 기분나쁨, 체중증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실험 결과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는 페닐에틸아민, 엔도르핀, 도파민이 치솟고 세로토닌이 결핍된다. 따라서 행복감을 느끼는 동시에 우울증, 강박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페닐에틸아민은 식욕억제제와 유시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배고픔을 억제한다."
"연애 초기의 실험 참가자들은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처럼 세로토닌 수치가 정상적인 사람보다 40% 정도 낮다. 강박장애처럼 한 가지(사람)에 몰두하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또한 비판적인 행동과 관련된 뇌 부위 활동도 억제시키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연애 초기의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독신 남성이나 연애기간이 긴 남성에 비해 40%나 낮고, 여성은 비교 상대보다 2배나 높다. 따라서 이들은 싸우지도 않는다."

"애인과 헤어지면 페닐에틸아민과 엔도르핀 수치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금단증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대신 도파민이 더 증가하고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증가한다. 흥분제와 욕망을 자극하여 과격한 행동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도 늘어나 밤잠을 못이룬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모든 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즉, 실연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섹스를 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남녀 모두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증가한다. 여성은 일부 늘어나지만 남성의 경우 5~10배 증가한다. 바소프레신은 테스토스테론의 성욕 촉진작용을 돕고 테스토스테론보다 더 부드럽게 작용하려 남성이 부드럽게 접촉하도록 이끈다. 여성은 에스트로겐과 옥시토신이 증가하여 성적인 접근을 용이하도록 만든다."
"성관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자는 바소프레신의 농도가 떨어지고 남녀 모두 옥시토신의 분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옥 시토신 양이 최대치에 이르면 오르가즘에 도달하게 된다. 절정에 달하면 도파민과 앤도르핀처럼 천연 '환각제'와 프로락틴 같은 호르몬의 농도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바소프레신은 항이뇨작용과 더불어 수면을 촉진하는 작용을 하고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엔도르핀이 몽롱하고 기분 좋은 환각상태를 단들기 때문에 남성들은 성관계 후 빨리 잠들 가능성이 크다."

"사랑의 감정에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몸 속에는 수백 가지 다양한 관계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호르몬의 기능과 상호작용, 그리고 무수한 유발인자의 실체를 더듬어 찾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을 단순히 생화학적인 작용에만 국한시킬 수 없도록 만든 것 같다."(p.249)

[ 2012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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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정신세계
피터 톰킨스 외 / 정신세계사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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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생각한다. 식물도 감정이 있다. 식물도 인간에게 반응한다...
이런 주장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해방 이후 근대식 제도교육을 받은 대다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은 학교에서 '이동성'을 큰 기준으로 동물과 식물을 구분하고, '감정과 생각'을 기준으로 동물과 사람을 구분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단순히 배웠기 때문이기 보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드러난 사실은 우리의 상식과 많이 다르다. 저자들은 식물도 동물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얼핏 아는 상식과는 다르게, 과거 학자들 중에서 식물이 움직이고 영혼도 있다고 주장한 이들이 존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말했고, 18세기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은 모든 덩굴손들은 독자적인 운동 능력을 갖고 있다고 증명한 바 있다. 철학자 괴테와 슈타이너는 식물이 서로 반대인 두 방향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뿌리는 중력에 끌리듯 땅속으로 파고들고, 가지는 반중력에 떠밀리듯 허공으로 뻗어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서부터 식물이 단순히 살아 숨을 쉴 뿐만 아니라, 상호 교감도 나눌 수 있는 존재, 즉 혼과 개성을 부여받은 창조물이라는 철학자들의 직관을 받쳐 줄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기 시작했다. 많은 탐구자들과 과학자들이 새로운 자연학과 초자연학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증거와 실험들에 대해 말해준다.

1966년 백스터(Cleve Backster)는 거짓말 탐지기의 사용법을 연구하던 대학 연구실에서 탐지기의 전극 하나를 열대 관목인 드러시너 앞사귀에 연결했다. 그리고 그 드러시너에게 물을 부었을 때 잎사귀가 영향을 받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무가 물을 흠뻑 빨아들이면 전도율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검류계의 저항치는 낮아지지 않았다. 대신 그래프에는 톱니 모양의 전기 흐름이 그려졌다. 나무가 마치 감정에 자극을 받은 사람이 나타내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인간의 반응을 검류계에서 확실하게 나타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그와 같은 실험 시도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른바 '백스터 효과'였다.
"백스터는 잎사귀를 불에 태워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가 불을 떠올리면서 성냥을 가져오려고 움직이기도 전에 검류계의 바늘이 급작스럽게 움직이면서 그래프의 도표가 위로 쭈욱 올라갔다. 그가 그 방을 나와 성냥 몇 개를 가지고 다시 돌아봐 보니, 도표에는 또 다른 급격한 감정의 변화로 보이는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그가 짐짓 거짓으로 잎사귀를 태우려는 시늉을 해보이자, 이번에는 전혀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식물이 인간의 의도가 정말인지 거짓인지를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 ..... 그 이후 상추, 양파, 오렌지, 바나나 등을 비롯하여 25가지도 넘는 식물과 과일들을 실험했지만 관찰한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p.20)

이와 비슷한 실험은 구소련의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연구 수준으로 진척되었다.
"뿌리를 뜨거운 물 속에 담그자, 보리 싹이 내 눈 앞에서 문자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이 식물의 '소리'는 대단히 민감한 특수 전자장치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었는데, 넓적한 종이 밴드 위에는 이 불쌍한 식물이 지르는 '끝없는 눈물의 골짜기'가 그대로 기록되어 나타났다. 단말마를 발하는 보리 싹의 고통을 말해 주듯, 기록계의 펜은 흰 종이 위에다 심한 기복을 그려 댔다. 그저 식물 자체만을 보아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잎사귀는 여전히 푸르고 줄기도 곧게 서 있건만, 식물의 '조직체'는 이미 죽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내부의 어떤 '두뇌' 세포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인도의 과학자 자가디스 찬드라 보스(Jagadis Chandra Bose)는 식물 연구를 통해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을 통합해 식물생리학을 탄생시켰다. 당시 그는 식물의 생장모습과 움직임을 무려 1억배나 확대해 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였다. 그는 자연의 다양헝 속에서 보여지는 기본적인 통일성이 있음을 밝혀냈고, "어디에서부터 물리적 현상이 끝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 생리적 현상이 시작되는지를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식물도 금속이나 동물의 근육 조직 처럼 여러 가지 자극에 반응을 보였다. 동물처럼 식물에게도 신경 조직이 있는 것이다.

비비안 윌리, 피에르 폴소뱅, 도로시 리털랙 등은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통해 식물들이 음악에 반응하고 감정을 느끼며 인간들과 교감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비비안 윌리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범의귀 잎사귀 두 개를 뜯어다 하나는 침대에, 하나는 거실에 놓아 두었다. 그녀는 한달 동안, 아침마다 일어나 침대의 잎사귀에를 바라보고 계속 살아있으라고 말하고, 거실의 잎사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달 후 그녀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거실의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한 후 썩어 가고 있었는데, 매일 관심을 기울여 주던 침대의 잎사귀는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p.38)
"전자 전문가인 피에르 폴소뱅은 백스터의 '정신 감응 장치'를 자신의 방에 설치하고 검류계와 한 그루의 필로덴드론을 연결했다. 그가 전기에 감전되는 실험을 하여 충격을 받자, 검류계의 바늘이 갑자기 뛰었다. 그 뒤에 그가 직접 전기 충격을 받지 않고 단지 그 때의 느낌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식물에게 똑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특이했던 현상은 그가 집 안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사무실이나 타지로 출장을 떠나서 고통이나 충격, 기쁨을 느꼈던 동일한 시간에 필로덴드론이 반응했다는 것이다."
"제라늄은 자신에게 물을 주고 흙을 다듬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준 사람과 자신을 비틀고 ?고 자르고 불태웠던 사람을 기억했다. 후자의 사람이 나타나자 식물의 반응 측정기의 기록계의 바늘이 아주 거칠게 움직였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이 자리를 뜨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 다가오자 제라늄은 그제서야 안정을 되찾았는지, 기록계에는 아주 평온하고 부드러운 파장이 나타났다."
"오르간 연주자이자 메조소프라노 가수인 도로시 리털랙은 호박, 옥수수, 백일초, 금잔화 등을 대상으로 2주일 동안 동일한 생장 조건 속에서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한 쪽은 고전 음악을 틀어주고, 다른 쪽은 시끄러운 록 음악을 틀어주었다. 록 음악을 들려준 쪽의 식물들은 처음 이상하게 키만 자라더니 나중에는 형편 없이 작은 잎을 내거나 발육이 아예 중단되어 버렸다. 금잔화는 2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고전 음악을 들은 식물들은 음악 쪽으로 줄기를 뻗어 나갔고, 훨씬 상태가 좋았으며 금잔화는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p.193)

저자들의 실험과 연구 이야기를 읽다 보면, 20세기 이후 현대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계는 실험 결과로 입증되는 식물 사이의 교감이나 식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해 아직 어떤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물질과 생명체에서 발하는 '오라(aura)', 식물의 '에너지장', 생물 파동과 방사성, 생물학적 플라즈마체, 토양의 자기정화, 생물학적 화학원소 중가 등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인간이 과학적 발견과 성과를 거듭하면 할수록 인간이 알아야할 대상과 목록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현실에서, 인간이 모르는 분야에서 인간이 모르는 지속적인 진화와 변화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인간의 과학이 그것을 ?아갈 수 있을까... 인류는 지구와 우주와 생명체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겸손함이 필요함체 이어 식물의 정신세계와 생물계의 오묘함은 우리가 지구의 토양과 먹거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경고해 준다.
"오늘날 대부분의 스테이크는 유독한 살충제를 뿌려서 기른, 품질 낮은 단백질이 함유된 잡종 사료를 180일간 강제로 먹여 키운 소의 고기로 만들어진다. 그 농약은 곧장 쇠고기의 지방질에 투입되어,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심장병을 일으키게 한다. 또 가축업자들은 가축의 무게를 20% 이상 불려서 수백만 달러의 초과 이윤을 얻기 위해, 가축들에게 디에틸스틸베스트(DES)를 먹이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시킨다."(p.308)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식'은 식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루면서 서로를 분리하지만, 실제 적지 않은 실험과 사례는 그러한 우리의 '상식'이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주와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미약하다.  이 책은 식물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알려준다.
식물은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창조하는, 경이로운 생명 현상을 영위함으로써 무생물과 생물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식물은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식물을 언구함으로써 식물 뿐만 아니라 무생물과 생물, 나아가 인간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유기적인 긴밀성에 대한 인식은 결국 인간의 오만을 질타한다. 사실 인류가 그렇게 자랑하는 문명의 건설은, 식물의 창조적인 생명 활동에 비하면 단지 하나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연에 대한 파괴행위 더 이상 지구와 생명체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모두가 성찰해야 할 것이다.

[ 2012년 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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