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 개정판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 한문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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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삶과 죽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말에 조금씩 공감이 된다. 여성 없이 남성이 존재할 수 없고 '너'가 없이 '나'가 존재할 수 없으며 질병 없이 건강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진리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가까운 주변 여성들을 접하다 보면 여성들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크고 작은 자잘한 신체적 불편함이나 질병을 겪고 있다고 기억한다. 남성들의 불편함이나 질병은(내가 남자라 그렇겠지만) 보통 사건사고에 의한 상처나 감기, 과로나 과음에 의한 질병, 고혈압이나 스트레스 등이 주요 증상이었고 신체내부적 특성에 따른 질병은 없다고 생각했던 반면, 여성들에게 그 이외에 나타나는 생리불순이나 소화불량, 냉증, 근종 등은 '여성이라는 다른 신체적 체질이나 성격' 때문이라라 짐작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감성적이고 민감하고 비활동적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다른 질병의 원인일 것이라 생각해 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그런 평소의 생각과 추론이 지극히 무지에 의한 선입견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남성들이 자연이 준 그 자체로 정상적으로 생활하면 큰 병치레를 하지 않을 수 있듯이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그동안 '다르게' 생각했던 여성들의 질병과 증상은 '남녀 차이'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남녀 차별'이라는 수 천년 동안 이어져온 사회문화적 구조에 의해 '여성들에게만' 발생한 것이었다. 여성을 도구화하고 차별해온 것은 동양에 비해 서양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저자는 여성의 많은 질병이 "남성중심의 중독된 사회구조의 산물"이다고 말한다. "여성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과 내면의 자아를 무시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이유는 남성중심의 중독된 사회구조 속에서 어려서부터 자신의 욕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겪는 모든 문제는 그 사회의 문화적인 환경과 관계가 있다." 저자는 특히 여성의 모든 질병이 여성성이 부정되는 남성중심의 중독된 사회구조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자기 내면, 즉 몸의 지혜를 믿고 그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독자는 초경부터 폐경에 이르기까지,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여성이 겪게 되는 온갖 상처와 질병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원인, 그리고 그 치유법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많은 여성들의 실제 사례와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여성들이 위안을 얻고 자연스럽게 치유의 단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저자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여성성'을 회복할 때 질병의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제 모든 여성이 치유를 통해 진정한 정체성과 욕구를 드러내고, 여성성을 회복하고, 스스로 결정한 방법에 의해 여성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여성의 자궁과 유방은 질병을 통해 계속해서 슬픔의 메시지와 경고를 보내올 것이다." 

"여성의 모든 질병은 가슴에 묻혀 표출되기를 기다렸던 감정의 분출이다. 몸이 그 타고난 영성靈性으로 여성 자신의 관심을 끌어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증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질병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여성의 질병은 치료가 아닌 치유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처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힘은 여성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몸과의 화해를 통해 우리는 어떤 병원이나 의사보다 안전하게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몸의 지혜, 내면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그 내면의 목소리를 믿고 귀기울일 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저자의 주장에 많은 신뢰가 드는 이유는 서구사회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의학을 전공한 후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했던 저자가 스스로 서양의학의 한계와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체를 분리되고 독립된 신체가 아니라, 자연이나 사회에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사회구조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인체 내부에서도 수 많은 상호작용과 연계작용을 통해, 또 무의식과 정신적인 상황에 반응하면서 질병과 건강이 균형이 유지된다는 견해를 피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성들의 몸에 증상이 나타날 때 그것을 단순한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이상이 있음을 자신의 
의식(정신, 또는 자아)에게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 당장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과거의 어떤 사건과 사고, 경험과 강박관념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이상을 통해 치유해 달라고 애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몸의 기억과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증상만 처치할 경우 그 증상은 또 다시 동일하게 또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하여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치유법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서양의학(한국 대부분은 의원과 병원의 방식)의 접근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과 대화를 통한 치유, 식이요법, 대체요법, 기공과 마사지, 침과 뜸, 자연요법 등 자연적이고 자기치유적인 방법을 우선시, 중요시하고 필요에 따라 서약식 의술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제1부 '몸의 지혜 혹은 내면의 인도자 만나기'에서 남성중심의 중독된 사회구조에 의한 온갖 편견들을 지적하고 모든 여성의 타고난 몸의 지혜, 내면의 인도자에 대해 설명한다. 여성의 몸과 질병에 관한 이전의 잘못들을 바로잡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여성의 육체와 정신, 진정한 치유를 만나는 장. 세부적인 질병의 문제들에 접근하기 앞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2부 '질병의 원인, 그리고 진실과 치유'에서는 초경에서부터 폐경기에 이르기까지 자궁, 난소, 외음부, 질, 자궁경부, 유방 등 각 부위별 질병과 그 원인, 치유법 등 거의 모든 여성 질병에 관한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다. 저자는 특히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이나 편견들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한 여성이 일생 동안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생리학적 증상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진실과 그 진실 속에 담겨있는 몸의 지혜를 강조한다.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의학적인 접근과 함께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어 매우 유용할 뿐 아니라 그 정보의 방대함이 여성건강에 대한 종합백과라 할 만하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이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몸의 지혜 중 일부임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제3부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다'에서는 의학적인 치료 외에도 식이요법에서부터 운동과 습관, 그리고 치유를 위한 마음가짐과 자세에 이르기까지 치유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치유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외에도 다양한 실제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어 모든 여성이 자신의 처지와 조건을 떠나 보다 쉽게 치유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한다. 저자는 특히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며, 여성의 건강과 치유가 한 개인이 아닌 사회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강조한다.

이 책을 먼저 모든 여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물론 남성들도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딸과 아내, 누나와 동생, 어머니, 주변의 여성 지인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행복과 건강을 누리는데 함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2012년 6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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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7:38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아파야 산다 - 인간의 질병.진화.건강의 놀라운 삼각관계
샤론 모알렘 지음, 김소영 옮김 / 김영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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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년 넘게 계속되는 치과 치료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처음 치과 치료를 시작한 개인 치과병원을 시작으로 그동안 개인 병원 3곳과 대학병원 한 것을 거쳐 지금 최종 대학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서양의학과 병원 유형에 대한 내 기존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이반 일리히의 선견지명을 느끼기도 하고 공공시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 사태의 가장 크고 기본적인 책임은 오로지 내 몫이지만...ㅋㅋ

내 주변 사람들 중 사고가 아닌 각종 질병이나 유전병으로 일찍 죽거나 현재 치료 중인 사람이 제법 존재한다. 지금도 선배 한 명은 간암으로 간을 이식받아 매일 다량의 약물을 투여하고 '모르모트'를 자처하고 신종 약물투입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선배 한 명은 최근 복부암 말기 판정을 받아 한창 함암치료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처자식이 있고 착하고 좋은 이들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하늘의 뜻을 알기 시작한' 나이, 즉 이제 막 우리나이로 쉰 살이 되었다.


인간은 왜 아플까? 왜 어떤 사람은 끔찍한 병에 걸려 일찍 죽는 것일까? 인류를 괴롭히는 수많은 유전병과 당뇨병, 말라리아, 콜레스테롤, 빈혈, 낭포성섬유증 등은 왜 생겼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진화'란, 우리가 생존하여 번식하는 데 유리한 유전형질을 좋아한다. 우리를 허약하게 하거나 건강을 위협하는(특히 번식이 가능하기 전에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 형질은 싫어한다. 생존이나 번식에 우리한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을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즉,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유전병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유전자가 왜 수백만 년이 지난 후에도 유전자 풀에 남아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문제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1억 7천만 명의 당뇨병을 예로 들어보자. 당뇨병은 인간의 몸과 설탕, 특히 포도당이라는 혈당과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먹은 음식에 함유된 탄수화물이 분해될 때 생성되는 포도당은 살아가는 대 없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다. 뇌에 연료를 공급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수이며 필요할 때 에너지를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당뇨병은 1형, 2형, 3형이 있는 걸로 알려져있다. 쉽게 1형은 소아 당뇨병으로, 2형은 성인 당뇨병으로, 3형은 임신 당뇨병으로 애기한다. 당뇨병의 원인으로는 유전 요인, 감염, 식습관, 환경 요인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알려져 있고 인류는 아직 명확한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학계에서는 유전 요인이 1형 당뇨병은 물론 특히 2형 당뇨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1형과 2형 당뇨병은 주로 지리적 기원에 따라 그 분퐁에서 큰 차이가 있다. 1형 당뇨병은 북유럽 후손에게 훨씬 더 흔하게 나타난다. 핀란드가 전 세계 아동 당뇨병 비율 1위, 스웨덴이 2위, 영국과 노르웨이가 공동 3위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로구이 비율은 점점 떨어진다.

저자는 유전 요인이 조금이라도 있는 병이 특정 개체군에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면 진화와 관련되어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오늘날 질병을 일으키는 형질의 어떤 속성은 진화 과정에서 그 개체군의 조상이 생존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빙하 증거를 토대로 연구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11만년 동안 급격한 기후변화가 20여건 있었고 기후가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은 지난 1만 1천년 정도뿐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만 4천 년 전에 시작된 마지막 빙하기가 북유럽에 닥쳤을 때 이 빙하기가 시작되는 데 불과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고 빙하기(어린 드라이야스)의 존속 기간도 겨우 3년 만에 끝났음을 알린다. 당연히도 북유럽 인구는 급감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남은 것은 확실하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났을까? 인간을 비롯하여 동식물이 추위에 대처하기 위해 수분을 없애고 당분을 높이는 것이 스스로가 선택할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것은 포도주의 생성법, 개구리의 동면, 인간이 추울 때 오줌을 싸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유전 요인의 근거는 이러한 특징(수분의 과도한 제거와 도농도 혈당)아 있는 질병에 유전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약 1만 3천년 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빙하기에 가장 많이 유린된 후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혈색증과 콜레스테롤 질병, 빈혈, 낭포성섬유증 등의 질병을 수 백만년에서 수만년 전까지 진화해온 인류가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유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미생물이 인간의 몸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고 기후변화나 식물, 지구의 조건과도 연관을 미치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저자가 애기하고자 하는 결론은 생명이란 창조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상태에 있다는 것과 이 세상에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점, 그리고 우리와 질병과의 관계는 종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경외심을 픔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억에 남는 문장 :


- 진화란 경이로운 과정이지만 완벽히자는 않다는 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적응이란 대개 일종의 타협이다.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공작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꼬리 덕분에 암컷에게 매력을 발산하지만 이 때문에 더 쉽게 천적의 눈에 띈다. 인간은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큰 뇌를 담을 수 있는 두개골이 있지만, 이러한 골격구조로 인해 태아의 머리가 엄마의 산도를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연선택은 특정 식물이나 동물을 '개선'하는 적응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현재 환경에서 어떡하든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새로운 전염병이나 천적, 빙하기 또는 현재 상황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개체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자연선택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형질로 직행한다.(/ '빙하기를 이겨낸 당뇨병' 중에서)

-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어떻게 인간과 더불어, 인간 곁에서, 인간 몸속에서 진화를 거치면서 인간에게 그리고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한다면, 이러한 질병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방법과 더불어 이들을 인간에게 득이 되도록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기니충 같은 끔찍한 기생충의 전염 통로를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유사 이전부터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콜레라, 말라리아를 비롯한 질병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결국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사명에 매진하려 한다. 기니충, 말라리아 원충, 콜레라균이 그렇고 물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차이점이자 인간에게 크게 유리한 요소가 있으니, 인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세균과 인간' 중에서)


[ 2012년 5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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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와 규칙 - 스티븐 핑커가 들려주는 언어와 마음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9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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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부터 읽기 시작한 출판사 '사이언스 북스'의 번역도서 [사언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19권의 마지막 책을 마침내 읽었다. 흐흐흐... 흐믓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아무튼 만 2년이 걸린 셈이다. 처음 우연하게 진화론을 공부할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찾던 중 발견한 시리즈 16 <진화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2년 동안 19권을 틈틈히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데다가 책 두께가 무려 750쪽에 달하려 읽기로 마음 먹는데 몇 달이나 걸린 것 같다.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ㅋ (실제 영어권에 대한 언어학이라 어렵긴 하다...ㅠ)

이 출판사의 [사언언스 마스터스 시리즈]는 영국 굴지의 출판 그룹인 오리온 출판 그룹의 회장 앤서니 치텀(Anthony Cheetum)과 세계적인 출판 에이전트 존 브록만(John Brockman)이 공동 기획한 이 시리즈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과학 저술가 ’제러드 다이아몬드’, 베스트셀러 화학 저술가 ’피터 앳킨스’, 뛰어난 우주론 해설가 ’폴 데이비스’, 고인류학의 대가 ’리처드 리키’, 암세포의 발생 과정을 밝혀낸 ’로버트 와인버그’,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평가받은 ’에른스트 마이어’와 ’리처드 도킨스’, 인지과학의 개척자 ’대니얼 데닛’, 공생 진화론의 창시자 ’린 마굴리스’ 등 과학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에는 인류의 최신 현대과학의 성과가 집대성되어 있다. 시리즈를 읽는 동안 양자물리학, 양자색역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실험유전학, 계통발생학, 물리화학, 생물물리학, 양자핵물리학, 뇌과학, 고인류학, 인지과학, 분자유전학, 지구과학, 기후학, 생리학, 언어학, 신경과학, 양자중력이론, 세포생물학, 지구시스템과학, 천체물리학, 수리과학 등의 최신 흐름과 자연과학 상호간의 연관성, 현대 과학자들이 해결한 문제와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 최신 쟁점들을 알 수 있었다.
 
이 책 <단어와 규칙>은 인지언어학과 진화론에 기초하여 언어와 마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특수한 현상 하나를 선택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조사해 보고자 했다. 그 현상은 언어를 공부하는 모든 학생에게 악몽이나 다름없는 (영어 및 영어계통 언어의)규칙 동사(~ed)와 불규칙 동사(see - saw - seen)다. 규칙 동사와 불규칙 동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언어를 발명했던 선사 시대의 부족들로부터 뇌를 촬영하고 유전자 염기 배열을 판독하는 새천년의 과학 기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사례 연구는 수학적 아름다움과 언어라는 인간의 기이한 능력의 결합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상한 단어나 표현의 논리적 근거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크로스퍼즐을 완성하거나 재치 있는 농담을 이해했을 때와 비슷한 지적 만족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단어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언어(영어계통)가 아날로그인 세계와 부분적으로 디지털인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핵심고리임을 주장한다. 사람들이 세계와 마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을 언어의 광대한 표현력으로 메우고 있으며, 이 언어의 광대한 표현력은 단어와 규칙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진화론의 가장 거대한 뼈대는 자연선택적 논리에 의한 일종의 규칙(생존과 번식에 유리함을 추구하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연성에 근거한 현상이 아닌 나름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규칙성이 단어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방대한 자료와 연구결과를 살펴보면서 단어의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뇌과학의 발달로 인해 그동안 미지의 영역이었던 뇌관련 질환과 언어 사용능력의 원인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단어는 일종의 패턴이라는 형식보다는 우리들 마음속의 사전에서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으로 일관되게 연결된 거대한 규칙에 의해 인간에게 기억되고 떠오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고대영어와 현대영어를 비교할때 고대에 그토록 많았던 불규칙동사들이 현대에 이르러 급격하게 감소한 원인을 일종의 자연도태로 볼 수 있고 좀 더 확장하여 이러한 불규칙동사를 규칙형의 돌연변이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규칙과 불규칙을 분리하여 패턴적으로 인용해 사용해왔다는 패턴연상망 기억보다는 거대한 규칙형 안에 불규칙이 존재했다는 규칙성을 보여줌으로서 다윈사고의 확장이 그대로 적용됨을 다시한번 확인하여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존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하여 매일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내는 영어권 국가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의 기원과 변화과정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연구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더군다나 언어학을 인지과학과 연결하여 인지언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할 뿐 아니라 진화론 속에서 언어를 연구하는 태도는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을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하기 보다 해가 지날수록 외래어와 외국어가 말과 글 속에 파고들고 이미 존재하는 수 많은 아름답고 고유한 한글마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초,중,고교에서 뿐 아니라 대학과 사회 각 분야에서도 한글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엿보이지가 않는 상황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애쓰고 한국에서 대학 교수를 채용하는데 '영어 강의'를 테스트하는 서울대학교를 생각하면 한 숨이 절로 난다. 정말 그런 식으로 영어국가를 따라간다고 해서 한국이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가? 차라리 한글을 더욱 연구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미래에 우리의 고유성과 창조성과 경쟁력을 가져오지 않을까?

[ 2012년 5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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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지음 / 지식산업사 / 199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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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수학 및 자연과학 교양서를 주로 읽을 때 구해서 책꽂이에 두었다가 지난번 이 책의 저자인 장회익 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을 읽은 후 찾아보았다. <공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철학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가끔 궁금했다. 특히, 학문간의 통섭이나 '온생명' 이론에 대한 저자의 완성된 생각이나 결론이 아니라 저자의 초기 문제의식을 짚어보고 싶었다.
1989년에 처음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그나마 저자의 초창기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연구결과물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이 배출해 낸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답게 설득력이 있다. 조금 어렵지만..ㅎ

전체적인 내용은 과학의 학문적 구조와 과학적 인식의 성격, 그리고 과학을 통해 인식된 우주와 그 안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생명과 인간에 대해서 다루었다. 저자는 그 두 가지 주제가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하나의 고리를 통해 연결된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즉, 우리는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면서 다시 과학이란 인간이 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되며, "과학이란 인간이 지닌 제약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 또한 과학이 전해주는 지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설명은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유사 이래 인간이 창조해 온 모든 지식과 결과물은 인간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어랜 인간의 역사와 진화과정 속에서 함께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일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과학 또는 기술은 중립적이다"라는 말도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최고학부를 졸업한 486 세대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공계를 졸업한 이들에게...  내가 보기에 자연과학을 전공했거나 응용과학을 전공한 상당수의 486 세대들은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현재 중~고위급 실무책임자나 결정권자가 되었음에도 스스로의 혁신과 학습을 게을리하면서 과학기술 문명과 지배세력의 자발적, 타율적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기술이나 지식이 결코 중립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의 세계관이나 의식의 프레임의 한계 내에서 존재함을 역설한다.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자신이 아무리 수학, 화학, 물리학, 핵물리학, 컴퓨터공학, 생명공학, 건축토목학, 전기전자공학, 재료공학 등을 수 십년 공부했다 하더라도, 또 인문사회과학 각 분야에서 특정 학문을 오랫동안 전공했다 하더라도 학문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시야나 역사적, 문화적 시각을 보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 대해, 다른 이들의 시각에 대해, 사회의 진화흐름에 대해, 사람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꾸준히 알려고 하고 대화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전공과 학문과 직업의 정당성과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 더 그 분야에 종사하였다고 하여 다른 분야의 관계자나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있고 자신만이 옳다고, 틀리자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자 교만이고 결국 스스로를 망치게 될 것임을 분명하다.


저자는 과거 인류가 자연이라는 위력적인 존재 앞에 공포와 굴종의 수동적 생존을 지속하면서 그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힘든 투쟁을 겪어 왔다면, 지금은 자연의 공포와 굴종에서 벗어난 대신 또다시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지배세력 앞에 예속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지배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새로운 문명의 정체부터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일차적 실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졔적 지식'이라 한다면 다시 과학과 이것이 빚어낸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저자는 '메타과학'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적 도약은 바로 과학을 발판으로 하여 메타과학으로 올라서는 도약을 의미하며, 이는 "인류가 과학기술 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문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과학의 논리구조와 연구방법을, 정합적이고 사실적인 하나의 이론체계가 구성되는 과정을 '양태'와 '실태'라는 구분과 '의미기반'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의미기반'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과 칼 포퍼의 '체계변형에 대한 입장차이'를 비교하면서 제시,검토한다. 
의미기반은 "시간 공간 내에 존재하는 어떤 임의로운 대상에 대하여 그것의 물리적 ‘특성’을 표상하고 그것의 ‘상태’를 서술할 어떤 일반적 방식들"로 정의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서술공간, 서술모형, 서술양식에 따라서 다른 의미기반을 가진 과학이 존재한다. 의미기반이 다른 과학은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대표적으로 고전역학의 의미기반으로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어서 그런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온생명'에 대해 설명한다. '온생명'은 '생명체가 온전하게 자기의 삶을 보존하며 영위할 수 있는 독립된 단위'를 말하는데,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물질계가 하나의 온생명임을 의미한다. 즉 우주 속 어디에 있더라도 태양과 지구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지구의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온생명은 하나, 또는 생물체의 군집인 개체생명과 그것을 제외한 보생명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온생명을 구성하고 있다.

 

* 인상깊은 문단 :

 "이처럼 '선'과 '악'의 관념에 비추어 흔히 '우리편'과 '상대편'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구획관념은 더 깊숙히 인간의 본능 속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선조가 특히 맹수글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적인 생존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인간의 진화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편'과 '상대편'의 철저한 구분의식이 대단히 유...
용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이 쉽게 짐작된다.
외부의 적과 대결하는 데 집단적인 협동을 중요한 무기로 사용해 온 인류의 선조는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을 본능 속에 간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일단 본능 속에 새겨진 이러한 성향은 지교적 짧은 문화 발전과정의 기간 내에 특별한 수정을 받기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 이던의 문화발전 기간 내에서는 특히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것이 유용한 방향의 기능을 해왔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역기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러한 성향은 '운동경기'라는 특별한 행동양식을 통해 묘한 절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스포츠'라는 극히 무의미한 행동양식이 현대사회에서 불길같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주는 현실적 독소를 대부분 제거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보면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비교적 이른 유년기에 이미 발현되기 시작하여, 이것이 곧 '선'과 '악'의 관념과 결부하여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의 구분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념은 물론 성장과정의 진행과 더불어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사회의식 경향은 그 바탕에 깔린 본능적 구획성향과 함께 거의 누구에게나 일생 동안 그 사고 및 행동양식을 지배하게 된다.

아것 이외에도 인간의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기본 요소들은 특히 성장과정을 통해 인간 심성의 심층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그의 모든 사고 및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이를 의식적으로 수정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바로 이러한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가 현대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들이므로, 이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가치이념으로 대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 2012년 3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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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생명, 인간 - 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6
장회익 지음 / 돌베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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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저서로는 작년 4월 <공부의 즐거움>(2011, 생각의나무), <이분법을 넘어서>(2007, 한길사)를 읽은 후 세 번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나는 '온생명'에 대한 개념을 앍고 있었다. 오래 전에 '온생명'에 대한 내용을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제목은 기억할 수가 없다. (오래전에 읽었기 때문에 남겨 놓은 서평도 없고...ㅠ)
아무튼 그 때 '온생명'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서구 중심의 현대물리학 이론이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하는 생명, 생명현상, 생명체계에대해 크게 공감했었다. 내 생각에으로도 대기 중의 산소, 지구 상의 물 등 비생명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명체'가 독자적으로 '생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박테리아 같은 무수한 원시생명체가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고서 인간의 소화작용을 돕는 등 생명활동에 영향을 끼치는데 어찌 인간이 '스스로' 또는 '혼자'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한국의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중진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학문의 통합과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과학철학 연구에 주력했다. 그러면서 과학자의 시선으로 폭 넓은 인문학적 주제들을 연구했다. 그 결과 탄생한 '온생명' 이론은 생명과 자연의 본질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사회와 문명 문제에 대한 혜안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양립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나'와 물질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그 답을 얻기 위해 칸트의 철학을 출발점으로 삼아 물질, 생명, 인간에 관한 현대 과학의 논의를 거친 후 다시 칸트의 철학으로 되돌아 오는 선순환적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가 처음 칸트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약 40년 전의 일로, 그때는 물리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자는 의도에서 칸트의 철학을 학습했는데, 지금은 같은 이유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논의로 이 책을 출발하는 것이다.

1장 [칸트 철학과 현대 물리학]에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여기에 몇몇 본질적인 수정을 가함으로써 이것이 현대 물리학의 메타적 구조를 이해할 이론적 토대로 활용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특히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재해석해 칸트 철학이 지닌 현대적 의미를 찾아내고, 현대 물리학의 철학적 바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다.

저자는 우리는 머릿속에 설혹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본인 스스로 완전한 것으로 여기는 내용들, 즉 ‘앎의 틀’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형성된 이러한 틀은 실제로 인간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지적 과정을 생각할 때 기존의 ‘앎의 틀’과 ‘앎의 체계’, 곧 오감을 통해 새로 공급되는 내용(정보)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물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앎의 틀’을 바탕으로 해서 물질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담아내는 ‘앎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와 함께 고전 물리학과 고전역학이 물질세계에 대해 일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것을 모두 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앎의 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앎의 틀’ 즉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명확한 설명은 불가능하기에, 결과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이 같은 오늘날의 과학 상황에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철학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혜안들이 번쩍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나타난 그의 인식론은 전통적 의미의 형이상학이라기보다는 과학에 대한 메타이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며, 실제로 칸트는 뛰어난 과학자였다고 주장한다. 이때 칸트 철학의 중요한 특징은 지성과 감성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인데,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면 지성은 ‘앎의 틀’, 감성은 ‘앎의 체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생명, 그리고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하고 복합적인 주제로 나아갈 때도 앎이라는 주제를 논의의 중심에 놓는다. 저자는 칸트 이후 우리가 얻은 중요한 교훈은 ‘앎의 틀’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물론 체계적인 학습 과정에 넣을 수는 없겠지만, 여기서도 근본적으로 심화된 가설이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저자는 물리학에 관한 한 양자역학뿐 아니라 고전역학까지 아울러 적용하는 앎의 틀 설정이 가능함을 보였으며, 이를 더 넓은 학문 분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신이라고 밝혔다. 

2장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에서는 물리학을 통해 밝혀진 물질의 존재 양상을 바탕으로 생명이라는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살핀다. 또한 우리의 일상적 생명 개념이 매우 불완전한 것임을 지적하고, 의미 있는 개념으로서의 생명은 낱생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생명을 통해서, 그리고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임을 밝힌다.

‘생명’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또 이 점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지구상에 있는 여러 물리적 대상들 가운데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살아 있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성격, 다시 말해 ‘살아 있음’을 특징짓는 성격을 ‘생명’이라 부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대상들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아 있지 않은 상태’로 전이되는 현상을 보고, 이를 일러 ‘죽는다’ 또는 ‘생명을 잃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뜻 보아 별 탈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생명 개념이 실제로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살아 있는지의 여부를 통해 우리가 판단하는 ‘생명’의 존재 여부는 불확실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생명현상, 곧 ‘살아 있음’을 가능하게 해 주는 요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또 무엇까지 구비되면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이러한 것이 구비되어 이것들이 일으킬 현상이 ‘살아 있음’이라 불릴 그 무엇에 해당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은 서로 간에 긴밀한 연결망을 이루면서 그 안에 ‘생명현상’을 이루어 낼 이 전체 체계를 하나의 실체로 파악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생명현상이 자족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기본 단위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를 저자는 우리가 기왕에 지녔던 생명 개념과 구분해 ‘온생명’(global life)이라 불러 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온생명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저자는 ‘온생명’은 “더 이상 분할하면 생명현상으로의 존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생명이 갖추어야 할 필수 단위임과 동시에, 더 이상 외부로부터의 결정적인 지원이 없이도 생존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명이 지니는 자족적 단위이기도 하다”고 역설한다. 이때 하나하나의 세포들은 ‘온생명’ 안에서 ‘온생명’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때에 한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의 조건부적 단위이며, 이를 ‘온생명’과 구분해 ‘낱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많은 생명 연구가 실패를 거두고 있는 것은 온생명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생명을 낱생명적인 관점으로 파악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온생명’은 개별적 생명체(낱생명)가 다른 생명체와 갖는 모든 관계를 포괄하는 총체로서의 생명이며, 온생명이 기존의 생명 개념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구상에 나타난 전체 생명을 하나하나의 개별적 생명체들로 구분하지 않고 그 자체를 하나의 전일적(全一的) 실체로 인정한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가 제시한 온생명 사상의 강점은 기존의 자연과학의 성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여기에 인문학적 사유를 겸해 생명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구도를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근대 기술 문명이 낳은 환경 위기에 직면해 생명 존중과 지구 생태계 보전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우리에게 일깨우는 데도 매우 적절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3장 [물질과 의식의 양면성]에서는 생명체가 중추신경계를 비롯한 일정한 하드웨어를 마련할 때, 이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가 형성되고 이것이 지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드웨어의 내면성이라 이를 수 있는 ‘주체의식’이 출현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물질과 의식의 양면성에 대해 깊이 있게 검토한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물질이 가장 먼저 존재하고, 거기서 생명이 출현하고, 그 가운데 다시 인간이 태어난다. 그러나 인식론적으로 보면 인식의 주체인 ‘나’가 먼저 있고, 나의 의식을 통해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와 물질은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물질과 의식을 설명하는 데 있어 받아들이기 힘든, 대단히 문제가 많은 주장이라고 지적한 다음, 인간이 물질세계를 의지적으로 움직이는 아주 묘한 존재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 나갈 수 있는 상황을 인간이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누리는데, 어떻게 물질이 이렇게 구성되어 자유의지대로 살 수 있게 뒷받침까지 해 주는지, 인간은 ‘굉장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여기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은 온생명과 낱생명 간의 긴밀한 연결망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연관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은 각각 세포나 조직 같은 낱생명적인 의식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전체가 서로 엮어지고 유통이 되면서 마치 온생명이라는 하나의 큰 그릇이 담긴 내용물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온생명 전체로 보면 하나의 큰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하겠지만, 각각의 낱생명 입장에서 보면 하나로 연결된 전체 의식의 한 복사본에 다시 자체 특성을 가미한 변이본을 지니게 되는 셈”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전체로서는 온생명 의식을 이루는 가운데, 그 안에 다시 서로 간에 많은 유사성을 지니면서도 또 독자적인 양상을 유지해 가는 낱생명 의식이 나타나며, 이러한 여러 층위의 의식들이 서로 간에 관계를 맺으면서 ‘의식세계’라고 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다시 말해, 생명의 진정한 모습은 온생명과 낱생명 간의 긴밀한 연결망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온생명 이론은 물질현상을 전제로 하는 가운데 생명현상을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된 이래 은하들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 태양을 비롯한 항성들이 형성되었다. 항성들은 우주 안에 가장 흔한 물질인 수소 원자핵들이 모여 에너지 면에서 조금 더 안정적인 헬륨 원자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분의 에너지를 내뿜는 거대 핵융합반응체다. 이는 천체물리학적으로 가능한 현상이며, 우리가 알다시피 우주 안의 수많은 별들이 모두 그렇게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지구, 성간 물질 등 별이 아닌 많은 다른 물질들이 또 있다. 이런 보편적 현상들을 모두 인정한다고 할 때, 생명이라는 것은 이것들이 어떻게 되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우리의 관심사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얻은 것이 온생명이다.

4장 [나와 너 그리고 우리 - 삶과 앎]에서는 낱생명의 주체로서 우리에게 친근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성격을 온생명의 주체인 ‘큰 나’와의 관계를 통해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이성이 출현하는가를 살핌으로써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칸트의 철학으로 되돌아와 선순환적 논의를 시도한다.

앎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삶의 세계를 정신의 차원에서 재구성해 현실 세계에서 부딪칠 여러 삶의 단편들을 예행 또는 반추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능이라 말할 수 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앎이라고 하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가장 소중한 내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앎의 성격 또한 삶의 양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앎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눈으로 보아서 알고, 남에게 들어서 알고, 책을 읽어서 안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부지런히 보려 하고, 들으려 하고, 읽으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최근 알려진 학습 이론을 인용해 인간의 정신 활동 중에서 가장 필수적인 ‘앎’의 과정에 대해 쉽게 설명한다. 인간이 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아서 알고, 남에게 들어서 알고, 책을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고의 상대성 원리'를 통하여 주체-객체의 관계에 대한 앎, 통합적 지식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과정은 끊임없는 선순환적 과정을 거치겠지만...


저자는 서구 학문에 기초한 기존 자연과학이나 인문사회과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인식체계와 생명체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언듯 저자의 이론을 접하면 소위 '허접'하고 단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저자가 제시하는 대물지식, 대생지식, 대인지식의 개념이나 낱생명, 보생명, 온생명의 개념이야말로 인간이 자신과 외부의 존재에 대해 통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서구의 학자들과 생태운동가, 서구의 인식방법론과 인식체계 내에서 공부한 국내 학자, 지식인들들은 나와 너와 우리, 인간과 자연과 우주에 대해 종합적으로 사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학문방법론 자체가 서로간의 연관성 자체를 무시하고 쪼개고 나누고 해석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서구의 사고체계, 프레임,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것이 21세기에 새로운 방향을 찾고 창조하는 츨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보는 많으나 유익한 정보를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날의 정보 홍수 속에서, 부적절한 외래어나 수사를 남발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게 자신의 정신세계와 학문 세계를 그려 낸 이 글의 가치가 더더욱 빛난다. 저자의 학문적 무게는 깊이 있는 통찰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라는 출판사의 추천사에 깊이 공감했다.

[ 2012년 2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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