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식탁 위의 한국사 -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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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잡식동물의 딜레마'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이 먹는 음식이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득력 있는 말이다. 책은 잡식동물로서 음식에 대한 인간 선택의 딜레마가 두뇌와 사회성 발달. 그리고 음식에 대한 금기, 윤리에 영향을 미쳐 도덕성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렇다면 좀더 지역적으로 가서 비록 우리가 글로벌하긴 하지만 훨씬 압도적으로 자주 먹는 한식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으론 이렇게 되어야 맞지만 사실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진 책은 이 책 '식탁 위의 한국사'였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순전히 이 책의 옆에 있었기에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잡식을 먼저보고 이책을 나중에 보게 되었다.

 책은 20세기 한국음식의 변천과정을 고찰하고, 그렇게 된 시대적 원인을  잘 들여다보고 있다. 다 읽고난 느낌은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꽤 유구한 역사를 가졌을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해왔던 우리 음식들이 기껏해야 그 역사적 연원이 조선후기 정도이고 상당수는 현대에 이르러 생겨났다는 점이다. 당연히 내가 모르는 음식은 없지만 그 역사적 변천과 원인 발생시점은 모두 다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거나 예상을 빗나갔다. 특별히 좀 인상적인 것만 뽑아봤다.

 

1. 삼계탕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딱봐도 꿩이 닭보다 낫단 이야기인데, 이 속담은 실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게 아닐지 모른다. 조선시대 닭은 꿩보다 귀했다. 소와 비슷한 경우인데, 닭은 달걀을 낳는 만큼 함부로 고기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고기로는 사냥으로 잡는 꿩을 많이 사용했고, 가격도 꿩이 더 쌌다고 한다.

 그런 것이 일제 강점기 대대적인 양계사업으로 닭의 수가 현격히 많아지며 크게 변한다. 닭이 많아지면서 닭백숙 같은 음식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 여기에 인삼이 추가되며 삼계탕이 아닌 계삼탕이란 음식이 나타났다. 인삼은 그냥 먹는 수삼(유통기한이 겁나 짧다), 껍질을 벗겨 말려낸 백삼, 그리고 껍질채 찐후, 말린 홍삼이 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백삼이 귀하고 냉장고가 없어 인삼을 넣기 힘들어 닭을 강조한 계삼탕이 었다가 냉장고가 발달하여 유통이 크게 계산되어 인삼을 손쉽게 넣을 수 있게 되자 인삼을 강조한 삼계탕이 되었다고 한다.


2. 육개장

 개장이란 음식도 한번쯤 들어본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육짜가 붙은 것이 육개장이므로 당연히 개장이 원조가 된다. 보통 나중에 파생한 단어에 추가적으로 뭔가 붙기 마련. 그럼 개장은 무엇일까? 예상대로 보신탕이다. 조선시대 개장은 매우 흔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애완견 애호가는 있었기에 개장에 개고기 대신 다른 것을 넣는 시도가 육개장의 시작이다.

 이 육개장은 소고기 도축을 사실상 금지했던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나서야 본격화되었다. 여기에는 88올림픽등 개고기에 대한 혐오를 보이는 다른 나라 문화권에 눈치보기도 한 몫했다.


3. 우리가 먹는 배추는 사실 중국배추다.

원래 김치는 배추김치만이 아닌 다양한 채소를 총동원한 절임음식이었다. 배추는 귀했던 만큼 중심이 아니었고, 그랬기에 배추김치는 김치중 으뜸이었다고 한다. 원래 김치에 사용한 배추는 우리 토종인 조선배추였다. 조선배추는 우거지가 많이 나고 감칠맛이 특징이어서 사랑받았지만 속이 좀처럼 차지 않고 수확량도 적어 동결이 약하고 귀했다. 반면 중국배추인 호배추는 동결에 강하고 속이 꽉찼으며 생산량도 많았다. 물론 우거지는 적고 맛도 없다. 하지만 결국 수요를 뒷받침 하기 위해 호배추가 많이 경작되었고, 어느새 우린 조선배추 맛은 아예 잊고 살고 있다.


4. 남한에서 돼지고기는 인기가 없었다.

 원래 남한 사람들은 1960-70년대만해도 압도적으로 소고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평안도나 황해도등 북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남한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로는 이렇다할 조리법이 없고 안좋은 속설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당시 남한에서는 돼지고기를 한약과 함께 먹으면 머리가 희어지거나, 기생충이 많아 잘못 먹으면 죽을 수 도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고 한다. 어쨌든 지나친 소사랑으로 소고기 값이 폭등하고 사회 문제가 되자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돼지고기 조리법을 개발하고 소비촉진 정책을 벌였다. 그 결과 1980년대에 이르러 족발집이나 보쌈집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급기야는 돼지고기를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삼겹살 이야기가 책에 없는게 아쉬운 대목.


5. 일본에서 유래한 김밥

 어릴적 소풍에는 김밥이 단연 최고 도시락 거리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과 어제 있었던 학교비정규직 파업으로 학교현장에는 많은 학생들이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왔다고 한다. 때문에 나 역시 오래전부터 김밥을 당연시 우리 음식으로 여겨왔는데, 이상한 점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초밥집에 가면서부터였다. 초밥집의 다른 초밥은 당연히 일본음식같은데 김초밥이라는 김밥과 똑같이 생긴 음식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당시 우리것을 따라하거나 비슷한게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책에 의하면 김밥은 원래 일본 음식은 노리마키스시에서 유래했다.

 

6. 빵집의 등장

 빵집은 일제 강점기부터 본격화 되었다. 당시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빵을 파는 빵 행상이 주 공급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밀가루가 귀해 빵은 그다지 쉽게 접할 음식은 아니었다. 한국 전쟁후 미국이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위해 한국에 대규모의 무상원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의 밀가루가 들어왔는데 이 때부터 빵도 본격화되었다.

 이은희 박사는 그 당시 빵집이름에는 세가지 경향이 있었다고 분석했는데 이부분이 재밌다. 우선 신흥당, 신라당, 유성사, 유정사처럼 당이나 사로 끝나는 일본식 이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빵집의 지명이 그대로 이름인 경우도 많았다. 창원, 서울제과 같은게 그런 식이다. 마지막은 외국 유명지역명을 그대로 딴 경우다. 파리. 리스본, 뉴욕제과점, 독일빵집이 그런 것들이다.

 빵의 공급은 행상에서 빵집, 그리고 대규모로 밀가루가 넘치고 수요가 늘어나며 삼립식품이나 샤니 같은 대규모 공장으로 이어진다. 이런 공장들은 1980년대까지 국내 빵시장을 지배했지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빵과 케이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소비 변화가 일어나며 전문제과점에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이 전문제과점들은 오늘날의 프렌차이즈 빵집으로 이어진다.


7. 한국음식의 프렌차이즈화

저자에 의하면 지금의 한국음식은 프렌차이즈가 지배하고 있고, 그 결과는 몰개성화다. 우리나라프렌차이즈의 시작은 1980년대로 맥도날드가 한국에 진출할까 고심중, 롯데리아의 성공을 보고 뒤늦게 뛰어든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코코스나 TGI같은 레스토랑도 등장한다. 더불어 한국음식자체들도 프렌차이즈화가 시작되었는데 대부분 사업이 본격화되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음식점은 메뉴가 밥과 반찬으로 다양하게 제공되는 형태여서 메뉴표준화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국수류나 족발, 보쌈, 빈대떡 같이 간단하면서 표준화가 가능한 일부 메뉴가 성공적으로 프렌차이즈화했다고 본다.

  이런 프렌차이즈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해 아이엠에프로 인한 자영업자의 지나친 증가, 그리고 프렌차이즈에 대한 잘못된 성공신화의 유행으로 마치 벽돌찍어내듯 골목자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프렌차이즈는 음식점마다 갖고 있던 독특한 손맛을 없앴다는 점에서 음식의 몰개성화에 한몫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1980년데 산업화와 더불어 교통이 편리해진것도 원인이다. 이로 인해 음식의 지역적 특색이 점차 사라졌고, 5천만의 입맛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경상도에서는 경상도 만의 전라도에서는 전라도 만의 지방특색을 그 지방에서만 느낄수가 있었다. 지금은 전국 어딜가도 비슷하다.


책은 내가 언급한 것보다 훨씬더 많은 한국음식을 다룬다. 내가 술을 한좋아해서 인상을 못받아서 그렇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희석식 소주나 막걸리, 약주등의 변천도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유일한 단점은 읽을수록 배가 고파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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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쓸신잡>에서 황교익 씨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많이 먹게 된 이유를 알려줬어요. 그 이야기 속에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닷슈 2017-07-01 16:12   좋아요 0 | URL
뭔지 궁금하군요 아마 먹을게 없어서일거같은데 한번봐야겠군요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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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잡식동물의 혜택은 무진장한데, 우선 먹을 수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여러 생물에게서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니 칼로리 섭취도 높고, 환경변화에 강하다. 하지만 고민스럽기도 하다. 여러가지를 먹을 수 있다보니 무엇을 먹어야할지 고민이기도 한 것이다. 당장 우리가 숲에 떨어져서 무언가를 채집하고 사냥해서 연명해야 한다면, 정말 많은 고민이 들 것이다. 특히 여기저기 핀 버섯과 열매들을 보고 말이다. 또 만약 모르는 동물을 사냥했다면 이걸 어떻게 먹어야하지 어떤 부위를 먹어서는 안될지 정말 고민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잡식동물의 딜레마이다. 여러면에서 먹을 것은 많은데 그 안전을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전한 음식섭취를 위해 인간문화권에서는 엄격한 요리 방법, 사냥이나 채집에 있어 상대 생물에 대한 윤리나 금기를 발달시켜 왔다고 책은 말한다.  잡식이 두뇌발달과 더불어 우리 본성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윤리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한평생 유칼리툽스 잎만 먹는 코알라는 먹을 것에 대해 일말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하나에서 모든 것을 얻어야 하므로 긴 소화관이 필요하며 소화관만으로도 부족해 그 안에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들과 공생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고기만을 먹는 육식동물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의 선정에 고민이 없지만 몸은 알아서 그 소정의 먹을 거리에서 모든걸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 딜레마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뜻하지 않게 현대판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불러왔다. 마트에 가면 먹을 것 천지이고 이 모든 것은 무척 안전해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심지어 그 원형이 무엇인지 혹은 어디서 왔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가공되거나 여러단계를 거친 것이다. 원산지란 사실상 오늘날 추적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또한 최근에는 유전자 조작까지 벌어지고 있으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화학첨가물이 함께하기도 한다. 때문에 인간은 마트에서 다시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 어떤 것이 안전한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게 건강에 좋은지 고민인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에 대한 무지와 막연한 믿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넘어가곤 한다.

 이런 종류의 무지에 대해 경각심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세가지 음식 사슬을 이야기한다. 산업적 음식사슬, 전원전 음식사슬, 수렵채집적 음식사슬이다. 음식 사슬이란 기본적으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만들어낸 칼로리를 그걸 하지 못하는 다른 생물에게 칼로리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책에서 산업적 음식사슬부터 시작하여 전원적 음식사슬,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렵채집적 음식사슬의 현장을 실제로 경험하고 성찰해나가면서 문제점을 짚어 냄과 동시에 인간이 음식사슬의 수혜자로서 다른 생물에게 가져야할 가치나 태도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고찰해나간다.

 책은 우선 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풀과 인간이 일종의 연합을 맺었다고 본다. 사람은 널리펼쳐진 풀밭을 보면 묘한 안정감과 평안을 느끼는데 이것은 인간과 풀의 오랜 연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수렵채집사슬 시절 풀은 초식동물과 인간 양자에게 이점을 제공했다. 풀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풀은 우선 초식동물에게 뛰어난 맛과 영양을 가진 풀잎을 제공했다. 풀밭에 초식동물이 자연스레 모여들자 인간은 이런 초식동물의 고기를 풀밭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풀밭이 잘 자라야 고기도 쉽게 얻게 되므로 인간은 풀이 잘 자라게끔 불을 지르고 이를 통해 나무를 제거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때문에 풀은 이런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초식동물의 강한 이빨과 불을 이겨내는 깊은 뿌리와 근두를 발달 시켜왔다. 그 덕에 풀은 불과 초식동물의 일차섭취에서 빠른 시간안에 회복한다.  

 전원적 음식사슬의 시대에서는 또 다른 풀들이 등장한다. 이 풀들은 영양분이 많은 씨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거 풀이 초식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칼로리를 전달하는 사슬에서 이젠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사슬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풀은 대개 여러해살이인데 영양분이 많은 씨를 제공하는 풀들은 모든 영양을 씨에만 투입하기 위해 아예 한해살이로 변모한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풀과 인간의 연합이 바로 농경의 시작이다. 전원적 음식사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산업적 음식사슬의 이야기는 이 한해살이 풀들중 아메리카에 서식하던 독특한 종에서 시작한다. 아메리카가 원산지인지라 다른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늦어졌는데 이 녀석은 바로 옥수수다. 옥수수는 쌀이나 밀과는 다르게 씨앗들이 껍질에 여러겹으로 둘러쌓여 있어 아예 스스로 번식이 안되는 종이다. 껍질에 쌓인 옥수수를 땅헤 묻으면 동시에 알들이 발아하여 하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모두 땅속에서 썩어버린다고 한다. 어찌보면 가장 인간에 의존하는 셈이다.

 옥수수는 다른 어떤 풀보다도 산업자본의 입맛에 알맞게 진화하여 선택받았다. 우선 옥수수가 곧고 단단한 줄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는 단위면적에 가장 많은 개체를 재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옥수수는 화석연료로 만든 비료와 합성화학 약품에도 매우 잘 적응하여 산업적 농업에 알맞았다. 더욱 무서운 점은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부분이다. 농업회사들은 매번 옥수수 종자를 비싼 가격에 농가에 팔곤하는데, 이 씨앗을 심으면 옥수수로서 좋은 품질을 가진 잡종 1세대가 수확된다. 하지만 옥수수의 특성상 이 잡종1세대의 종자를 심어 수확한 잡종 2세대는 부모세대들이 갖고 있던 상품으로서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지 못하면 모습도 다르고 생산량도 적다. 이런 옥수수의 형질은 자연스레 대규모 다국적 농업회사에 막대한 지적재산권수익을 보장해주었고, 다른 소작농들이 그들에 종속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이처럼 옥수수는 산업자본의 입맛에 매우 잘 맞게 진화한 작물로 이로 인해 산업적 음식사슬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먹는 양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공산품이나 사치품과는 달리 먹는 것을 파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때문에 산업자본은 옥수수를 이용해 다른 여러가지를 행한다. 옥수수로 치즈와 기름, 감자프라이를 만들고 심지어 건전지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알아낸다. 또한 단맛을 내는 액상과당으로 변모하여 각종 음료수에도 사용되게 된다. 과거 코카콜라는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병에 적은 용량으로 주로 유통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은 액상과당이 설탕을 대체하게 되자 코카콜라는 가격을 내리는 멍청한 짓 대신 대용량으로 매출규모를 오히려 늘리는 선택을 한다. 이게 1984년인데 우리나라에도 이로부터 몇년정도 지나서 1.5L들이 콜라가 팔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처럼 현대의 가공식품중 옥수수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의 머리카락을  성분조사 하면 무려 60%이상이 옥수수에서 비롯한 물질로 판명된다. 특히 이 증상이 심한 북미인들을 책은 '두발 달린 콘칩'이라고 까지 말한다. 참고로 책에서 언급한 식품별 옥수수 함유비율은 다음과 같다.

(소다수100%, 밀크셰이크 78%, 셀러드드레싱65%, 치킨 너겟56%, 치즈버거52%, 프렌치프라이23%)

 하지만 산업적 음식사슬에서는 이로도 모자랐는지 옥수수를 사료로 쓰기 시작한다. 사실 앞서 말한 가공보다 사료로서의 쓰임이 먼저다. 이 기술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육식어종인 양식연어에게까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옥수수를 먹일정도라고 한다. 경악스런 사실이지만 일단 책에서 주로 문제삼는 동물은 소다. 소는 반추위를 갖고 있고 함께 공생하는 미생물들을 통해 풀에서 칼로리를 얻을 수 있게 진화한 놀라운 생물이다. 사람은 이런 소에게 비싼 풀대신 싸구려 옥수수를 먹이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소에게는 질병이 생겨난다. 우선 고창증이다. 옥수수에 전분이 많고 섬유질이 적다보니 소가 특유의 트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가스배출이 일어나지 못해 더부룩하게 속에 가스게 차게되고 이게 폐를 압박하여 나타나는 질병이다. 다음은 산중독이다. 인간의 위와는 다르게 소의 위는 중성이다. 그런데 옥수수를 섭취하면 소의 위는 산성화한다. 이 때문에 소가 사료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50일정도라고 한다. 소에게는 이외에도 옥수수로 사료를 바꾸어 빨리 덩치를 키우기 위해 젖을 빨리 떼는 고통이 주어지며, 좁은 사육환경등으로 갖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로 인해 질병에 취약해지므로 소에게는 많은 종류의 약물과 항생제가 자연 처방된다. 인간이 최종소비자로서 이를 먹게 됨은 물론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본래 소고기에는 오메가 6지방산과 오메가 3지방산이 1:1로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옥수수를 먹고자란 소는 오메가 6지방산이 과다해지며 종국에는 10:1의 비정상적인 분포를 보이겐 된다. 원래 몸에 좋은 소고기가 심혈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식품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음식사슬의 폐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간이 화학적으로 질소고정에 성공한 이후 산업적 음식사슬의 농업에서는 대규모로 비료사용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농경은 과거 태양에너지에 의존하던 것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것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게 된다. 책에서는 농업의 발견이 인간이 최초로 경험한 자연상태로부터의 타락이라면 화학비료의 발견은 두번째 타락이라는 말로 이런 세태를 극적으로 잘 비유한다. 농부들은 비료를 필요이상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결국 생산량에 대한 압박과 불안때문이다. 여분의 질소는 기화하여 산성비로 변모하거나 질산암모늄이 아산화 질소로 바뀌어 지구 온실가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잔류비료는 물에 녹아 아질산염이 되고 이게 인체에 들어갈 경우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산소부족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심장에 선천적 질환을 갖는 청색아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산업적 음식사슬은 농부도 가만두질 않았다. 앞서 말한 지적재산권으로 인한 산업자본에의 종속은 물론이고, 옥수수농업만을 자발적으로 강요당하는 형국에 놓여있다. 대개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자는 공급량을 줄이는 선택을 하기 마련인데, 농부들은 오히려 생산을 늘려나간다. 다른 상품의 경우 가격이 떨어지면 판매량도 어느정도 늘기마련이나 인간이 먹는 농산물은 수요가 비탄력적이라 그렇지 못하다. 거기다 농부들의 농장가족경제는 계속되는 경영난을 타계하기 위해 어려 중장비투자로 상당부문 빚을 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항상 일정현금이 필요하기에 가격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대규모 생산을 유지해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처럼 산업적 음식 사슬은 그 종사자인 농부에게는 빚을, 소비자인 인간에게는 현대판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자연생태계에는 환경오염을, 가축들에게는 강제적 유전자 변형과 인간과 공생관계를 맺긴 했지만 동물로서 최소한의 동물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비극적 삶을 강요하고 있다. 이득을 보는 주체는 오직 산업자본 뿐이다. 이런 산업적 음식사슬에게데 내세울게 하나 있긴 한데, 바로 저렴한 공급이다. 지금처럼 싼 달걀과 닭고기 등의 육류, 곡식가격은 산업적 자본하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엔 숨겨진 가격이 있다. 파산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부가 산업적 자본에 종속되게 만드는 국가의 보조금, 환경오염으로 인한 비용, 그리고 비만등 건강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들이다. 이런 엄청난 비용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전원적 음식사슬에서 산출되는 유기농 음식이 오히려 저렴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전원적 음식사슬에서는 옥수수를 사료로 쓰는 것을 중단하고, 원래대로 풀을 사료로 쓰며 동물에게 풀을 뜯고 본능에 따라 노니는 동물다움의 자유를 허락한다. 때문에 열악한 환경과 질병을 막기 위한 항생제등의 남용도 없고 비료의 사용도 거의 없다. 이는 방목에 기반한다. 저자에 의하면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소가 뜯은 풀은 영양균형 회복을 위해 먹힌 양의 잎만큼 뿌리부분을 포기한다. 이 포기한 뿌리 부분은 흙속의 박테리아, 균류, 지렁이가 이용하여 갈색의 부식토로 바뀌어 토양의 건강함을 유지한다. 또한 죽은 뿌리가 있던 자리는 벌레, 공기, 물의 통로가 되어 표층을 형성하기도 한다.

 방목의 또 다른 이점은 환경의 건강함의 지표이기도 한 종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풀들사이의 경쟁과 종의 차이로 풀밭에는 다양한 길이의 풀들이 존재한다. 초식동물은 이중 당연히 눈에 띄는 긴풀을 우선적으로 먹기 마련이며 그 결과 작은 풀들이 햇빛에 노출되어 성장이 촉진되고 풀밭 전체에 닿는 햇빛의 총량도 증가한다. 풀들중 콩과 식물들은 토양에 질소를 고정하여 땅 아래로는 이웃풀에 영양을 공급하고 땅위로는 가축에 질소를 공급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전원적 음식사슬은 산업적 음식사슬에 비해 비용도 결국 더 저렴하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순환적 자연생태계가 된다. 또한 단위면적당 곡물과 가축의 생산량 역시 산업적 음식사슬의 생산량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전원적 음식사슬에서도 저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동물을 죽이는 일이었다. 전원적 음식사슬에서는 동물은 비교적 마음껏 동물다움을 누리며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 옥수수 사료에 의한 질병도, 좁디 좁은 환경도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뒤편에서는 도축하는 날이면 하루에 수백마라의 동물이 도축된다.

 그래서 작가의 눈은 자연스레 채식주의로 향하며 마지막 음식사슬인 수렵채집사슬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채식주의자들의 육식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작가의 심기를 무척 어지럽힌다. 오랜 고민끝에 수렵채집사슬을 통한 직접 동물의 사냥과 그 동물의 해체 및 요리, 그리고 식물의 채집과정을 통해 작가는 이 답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 도덕에 대한 성찰이기도 한데, 저자가 보기엔 인간의 도덕이 종이 아닌 개체의 권리에 기초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인간과는 다르게 개체하나하나 보다는 종으로서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한 동물에게 이 도덕이 적용되기가 용이치 않다. 또한 인간 도덕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처리하기 위해 만든 인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법칙이 인간 사회에 제대로 된 지침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불완전한 도덕 체계는 자연세계에 대한 올바른 지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도덕에 기초한 채식 주장은 결국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인간처럼 다루어 그 개체로서의 권리를 챙기는 것 보다는 종전체로서 동물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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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지식인마을 37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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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는 진화론과 불교를 알았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떠오른 질문이었다.

이 책은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한 권이다. 총 40권인데 올초에 1권인 '진화론도 진화한다 다윈&페일리 편' 읽으며 그 존재를 알았다. 이 책은 37권이다. 꽤 괜찮은 프로젝트 같아서 책을 사고 싶었지만 보관할 공간도 없고 해서 직장내 도서로 다행히 구입이 되었다. 곧 직장을 옮길 예정이라 빨리 읽어야 하는데 읽어보니 역시 철학은 쉽지가 않았다. 다른책을 보며 무려 1주일 이상을 질질 잡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어느정도 이해가 된 것 같지만 솔직히 니체는 아니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인생론을 대학초년에 읽은 적이 있었다. 워낙 부정적이지만 그걸 부인할수 없어 우울하게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 짧은 이해와 기억 탓에 그래도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라고 하면 음 그래 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는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대표 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다.

 여기서 표상은 마음 또는 의식에 현전하는 것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칸트는 세계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주관성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관찰하는 세계는 그 자체가 아닌 주관이 무척 들어간 표상인 것이며 인간종 전체가 같은 표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마다 다른 표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종과 개가 파악하는 세계는 감각기관의 차이로 완전 다른 표상을 갖고 있으며 같은 인간이라도 색맹인 사람과 아닌 사람의 표상은 완전히 다를수 밖에 없다.

 어쨌든 세계는 개개인의 주관에 따른 표상이고, 따라서 이 표상은 개개인의 이성적 인식이 아닌 직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직관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각적 육체에 근거하는 것인데 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의지이다. 의지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이 표상이므로 표상은 곧 의지에 근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표상들은 모두 의지의 객관화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진화론 냄새가 좀 풀풀난다.

 의지는 세가지 동인을 갖고 있어 원인과 자극, 동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원인은 주로 무기물에 작용하고, 자극은 식물, 동기는 동물에 작용한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하니 3가지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동물이지 인간에게 있어 의지의 근본은 두 가지이다. 바로 욕구의 충족인데 이는 모두 개체를 유지하는 것, 종족을 번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생존과 번식의 욕구가 의지인 셈인 것이다.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이란 자연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걸어놓은 마법의 지배하에 있다고 말했다는데 마치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말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의지로 인해 인간은 한없이 고통받는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것은 결핍된 행성에 동물로 태어난 이상 한계가 있는 것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어처구니 없게도 정관이다. 세계는 의지와 표상의 산물이고 내가 이걸로 인한 고통과 번뇌는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한발 물러서서 파악하는 것이다. 마치 불교의 해탈같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해결에서 더 나아가 동고란걸 주장한다. 자신이 이런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났음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내가 해탈했어도 같이 사는 이웃이나 가족이 고통스럽다면 나의 해탈은 실로 무의미하고 이기적일수 밖에 없다. 이런점에서 주장하는 것이 다른사람의 고통도 이해하고 나와 같은 길로 이끌어가는 동고이다. 이 역시 상당히 불교적이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불교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셈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보기에......) 그래서인지 쇼펜하우어가 불교와 진화론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불교는 확실하진 않지만 알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진화론 같은 경우 다윈이 종의기원을 발표하기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나왔으므로 가능성이 없었다. 물론 다윈이 그 저서를 만들어놓고도 거의 10년이상을 썩힌 만큼 다윈과 친분이 있었다면 알았을수도 있겠지만 국적이 다른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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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1871년에 냈죠. 멘델이 유전법칙을 1865~1866년 사이 냈지요. 멘델의 유전 법칙을 알았다면 다윈이 그런 식으로 유전(부모 형질의 융합)을 말할 수 없었죠. 그 이론에 따르면 돌연변이 등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물론 멘델의 법칙이 수학공식에 가까워 수학을 잘 몰랐던 다윈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란 추측도 있지만요^^;
많은 이론들을 보며 ‘그가 이걸 알았다면‘ 싶은 게 많아 저도 생각을 덧붙여 보았어요^^

닷슈 2017-06-22 16:3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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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도서 분야는?

자신은 없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의 수험서적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1위는 소설, 2위는 여러 종류의 감성 에세이들 그리고 3위는 여행도서라고 생각한다.(아마 4,5위는 각종 투자서적과 아직 위력이 좀 남아 있는 자기계발서적이 아닐런지)

 그러나 이들 셋은 불행히도 내가 가장 기피하는 도서종류이기도 하다. 정말 인생과 세계를 잘 바라보고 담아낸 소수의 것들이 아니라면 대개 일시적인 감정소비나 고양정도로 끝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론 인생에 강제라는 것이 부여되는 일이 있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강제가 항상 나쁜 결과만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인생은 이상하다.

 여행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여행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작스레 휴가가 생긴다면 누군가는 다른 지역이나 외국으로 떠나겠지만 난 집에서 책을 보거나 게임할 확률이 대단히 높은 인간이다. 물론 세계와 다른 지역에 호기심은 왕성하다. 타고난 문과체질에 학생시절 잠 안오면 보는게 세계지리부도였고 수능때 선택한 사회과목도 세계지리였다. 웬만한 지리와 나라 문화는 적당히 알고 있으니 백문이불여일견이 아닌 정말 백문만 하는 사람인 셈이다.

 그럼에도 작가 김민철의 여행 책은 내 마음에 어느정도 훅 들어왔다. 이름이 저래서 믿기 힘들겠지만 자꾸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이 분은 여자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일단 시작은 마음에 안들었다. 다들 그러하듯 유럽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유럽을 무척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주구장창 유럽만 가는게 웬지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웬지 그네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이미지에 농락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대주의 같기도 하고, 엄청난 돈이 드는데 그만한 가치는 정말 있는지 의아하기 때문이다.(더욱 이상한 것은 한국인들은 유럽은 많이 가면서 미국관광은 좀체 가질 않는다. 그리고 관광은 많이 가면서 좀처럼 유럽에 이민은 많이 안간다. 그러면서 미국엔 많이들 살러간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사진들이 이상했다. 대개 여행책들에는 유럽의 유명건물들과 명소,맛집들이 즐비한데 책의 사진들은 마치 한국의 뒷골목 사진같은게 대개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럽에서는 비교적 가난한 편인 포르투갈의 사진이  많아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강했다. 책에서 작가는 남들의 별점이 가득한 그러한 여행이 아닌 자신만의 별을 만드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은 여행지에서 평소 바쁜 생활에 치여 느끼지 못한 사람냄새와 평안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여느 사람들 처럼 이곳저곳 명소를 찾아다니고 맛도 제대로 못보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패키지 여행처럼 이러저리 스스로를 끌고다녔다고 한다. 비싼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한 여행이니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오랜 여행의 내공은 작가가 여행지에서 일상을 찾게 만들었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유럽의 명소나 좋은 곳에 대한 정보는 전혀 얻을수 없다. 대신에 진정한 여행의 마음가짐을 엿보게 되는 것 같다. 때문에 여행책은 어이없게도 한국 망원동에서 마무리된다. 작가가 살고 있는 곳인데 가장 사람냄새 나는 일상이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여행지에서 가장 용이하게 써먹은 말은 그 나라 인사법도 문화에 대한 이해도 아닌, "What's your favorite?"이었단다. 뭔가 갈만한 장소를 물을때, 그리고 뭔가 먹을 만한 곳을 고를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매우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단순한 질문에서 어찌보면 그 사람의 삶을 파고들어 가치를 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도 외국인이 식당을 물을때 그렇게 물어본다면 정말 진지하게 최선을 다할 것 같다.

 마무리하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관광을 와서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이상하다. 가장 비싼 택시를 타기 일쑤이며, 가장 맛없으면서도 비싼 식당에가고, 영화나 드라나 촬영지에나 가며, 가이드에게 이러저리 끌려 별로 대단치도 않은 곳에서 돈만 많이 쓰고 무던히 보기 위해 기다리다 돌아간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외국에서 하는 관광일 것이다.

 한국에 대해 잘아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관광을 한 사람이 한국에 대해 정말 맛을 보고 갔다고 할 수 없다. 재래시장도 가보고 이런 저런 싼 한국음식을 먹어보고, 되지도 않는 한국어로 심지어 주인과 가격흥정도 해보고, 관광객인 좀처럼 찾지 않는 골목의 숙소에 머물며, 한국인의 일상을 엿보고, 그 동네의 술집도 가보고, 어쩌다 그 주인집에 초대도 받아보는게 진정 그 나라를 어느정도 맛본걸 것이다. 작가가 한 것이 바로 이런 여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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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06-20 01:19   좋아요 0 | URL
역시그렇죠

오거서 2017-06-20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을 마구 다니고 비싼 택시를 타고 비싼 식당에 가고 핫 플레이스 탐방 등,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닷슈 2017-06-20 08:5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cyrus 2017-06-2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지인들은 여행 경비가 싸다해서 일본을 자주 가요.

닷슈 2017-06-20 08:58   좋아요 0 | URL
부산살면 대마도는 쉽게 갈수있을거같습니다 대마도방언으로 바지가 우리말바지더군요
 
SF의 힘 - 미래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대담한 통찰 10
고장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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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나에게 SF는 그저 어릴적 재밌게 본 공상과학 만화영화정도, 그리고 인터스텔라 같은 최근에 본 몇몇 영화가 생각나는 정도였다. 동심을 잃은 어른에게 SF는 그저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함일 것이다. 마치 잃어버린 산타할아버지 같다고 할까. 책을 다 읽고 보니 생각보다 SF가 내 삶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다스베이더도 실은 SF다. 정말 좋아하는 에일리언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SF책은 거의 보지 않았는데 책 SF의 힘에는 정말로 많은 SF책이 등장한다. 어찌 이리 한권도 보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몇년 전에 한권본게 생각난다. 제목이 '멀리가는 이야기'였는데 몇개의 재밌는 단편이 모인 책이었다. 함께 읽고 이야기한 지인은 그 상상력에 놀라면서도 문학적 가치는 부족하다고 평했다. 그에 동의했지만 SF는 SF나름의 독특한 가치가 있는게 아닐까. 책'SF의 힘'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책은 무려 10가지 주제를 다룬다. 모두 미래과학기술과 관련한 것이어서 어찌보면 이 책은 SF를 빌려 미래를 논하는 책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세계화, 유전공학, 세계의 멸망, 인간수명의 연장, 우주개발, 외계인, 초능력 등이다. 가장 재밌게 본 부분은 외계인 부분이다. 생각할 거리를 제법 던져주었다. 재밌는 부분은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대응방식, 외계인의 모습, 외계인은 사실상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모두 외계인이라는 주제와는 다르게 인간중심적인 면을 느낄수 있었다.

 책에 의하면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에서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4가지로 분류한다.

1. ET의 경우처럼 평화롭게 잘 지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고, 외계인이 평화적이어도 인간의 호전성으로 분쟁이 나는 경우가 SF의 대부분이다.)

2. 갈등이 일어나지만 결국 인간이 승리한다.

(가장 많은 경우인것 같다. 대부분의 SF에서 고전하지만 결국 인간이 승리한다. 아마도 인간본성이 가장 바라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이겨서 여전히 최상위포식자로 다른종을 지배하는 것. 이 경우 대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경우가 절대다수인데 상대편이 지구로 이동할수 있고, 우리는 갈수 없다는 측면에서 사실 게임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이기곤 하는데, 우리의 바이러스에 외계인이 당하거나 심지어 우리의 형편없는 기술수준에서의 컴퓨터 바이러스등에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총균쇠에서 보았듯 상대지역으로 갈수 있음과 없음으로 인한 현격한 과학기술의 차, 그리고 더 발달한 문명이 바이러스도 더 셀수 밖에 없다는건 이미 역사에서 경험한바 있다.)

3. 갈등이 일어나지만 외계인이 승리한다.

(가장 현실적이지만 우리가 싫어하는 결론이므로 거의 없다)

4. 서로 철저히 무관심하거나 아예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

(어쩌면 실제적으로 이게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 너무 다르게 진화한 존재이니 아예 의사소통이 불가능 한것이다. 또한 서로의 존재방식이 너무달라 아예 파악하지 못할수도 있다.)


 예전부터 느끼는 바이지만 책은 외계인의 외양도 지적한다. 지나치게 지구적이거나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의 외계생물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참신하다 생각했지만 실상 아바타에 외계생물들은 매우 친구생물과 유사하다. 색만 푸른색이고 눈이나 뿔정도가 몇개 더 있을뿐 상당히 비슷하다. 제법 살벌한 외계인으로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 같은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이녀석들도 상당히 인간과 유사하게 생겼다. 실제로 이 시리즈의 초기물은 인형에 사람이 들어가 연기했다. 얼마나 인간친화적인가. SF의 외계생물이 지구 생물과 유사한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지구를 벗어나 본적이 없는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이고, 지나치게 지구적이지 않은 외계인이 SF에 등장할 경우 독자들이 이해자체를 못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암컷수컷으로 성이 고작 2개인 지구생물에 비해 성이 6개인 외계인을 다룬 SF를 소개하는데 이런걸 우리가 이해할수 있을리 없다.

 실제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우리와 매우 다를 것이다. 칼세이건은 기체행성인 목성에서 대기를 유영하는 마치 해라피 같은 녀석들을 상상했었다. 책에는 우리가 탄소기반 생물인데 반해, 다른 항성계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원소를 중심으로 한 생물이 발생 할수 있다고 본다. 거기서 나오는 외양은 정말 천양지차일 것이다.


 다음은 이방인을 투영한 외계인이다. 공교롭게도 외계인과 이방인을 뜻하는 영어단어는 모두 에일리언으로 같다. 같은 직장내 원어민의 서류를 처리해주다 에일리언으로 신분이 표시된걸 봤는데 이게 정말 맞는 표현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 이외의 외부인을 뜻하던 단어로서의 에일리언이 원조이고 외계인이라는 지극히 최근의 개념이 생겨나며 이 이방인의 뜻이 외계인으로까지 확장되었을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오히려 원조의 뜻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왔으니 이상한 일이다.

 책에서는 인간사회가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현실에 이용한 사례를 3가지로 분류한다.

1.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외계인

2. 종교적 시각에서 본 외계인

3. 인종주의 혹은 패권주의적 시각에서 본 외계인이다.

많은 SF에서 외계인은 괴물로 나오거나 불순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그 사회 외부의 적을 외계인으로 투영한 경우가 많다. 과거 70-80년데 스타워즈의 제국세력이 공산주의 세력처럼 느껴진 것은 이때문이다. 스타워즈의 제국세력의 특징은 독재의 정치체제, 붉은 색 계열의 광섬검과 블라스트 사용, 검은색의 복장 등으로 사실상 공산주의를 연상케한다. 반면 연합군은 민주주의, 파란색과 녹색 계열의 무기사용, 자유의 가치 옹호, 그리고 최후의 승리자라는 면에서 자본주의 진영을 상징한다. 일본 만화 건담 역시 그러하다. 연방군은 당연히 자본주의 세력, 지온세력은 공산주의 세력을 투영했다. 무기나 제복역시 건담은 푸른색 계열, 지온은 붉은 색이었다.


 책은 SF장르는 어떤 매체 형식에 담기건 해당사회의 역사적 고정관념과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SF는 사회의 내부, 그리고 외부세력에 대한 반응의 건강함을 읽어내는 하나의 유용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SF는 열린 문학이라고 하였다. 아직 현실성이 없는 첨단과학을 다루고, 배경이 현실이 아니기에 이를 이용해 현실을 투영하여 다양하게 비판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SF를 통해 언젠가 다가올수 있는 미래사회의 여러 미래문제에 대해 검토할 기회를 갖고 대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또한 SF의 가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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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FO를 심취한 사람들을 보면, ‘외계생명체’보다 ‘외계인’을 더 많이 씁니다. ‘외계인’이라는 단어가 ‘외계에 사는 인간’의 의미로 볼 수 있어서 ‘인간의 특성을 닮은 외계생명체’를 있을 거라는 상상력과 기대감을 가지기 쉬워요.

닷슈 2017-06-16 11:42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AgalmA 2017-06-22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과학하고 앉아있네> 팟캐스트에서 들었는데요. 외계인이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건 나름 근거가 있더군요. 지구상 생물 중 인간이 지능이 가장 뛰어난데 우주의 원소는 알려진대로 동일하게 분포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능이 뛰어나다면 인간과 비슷한 진화를 거쳤을테니 외양도 비슷하겠지 않나 하는...

닷슈 2017-06-22 16:52   좋아요 0 | URL
그런이야기도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