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와 제국 - 식민지말 문학의 언어, 생명정치, 테크놀로지 What's Up 9
황호덕 지음 / 새물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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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본의 식민지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책들은 그 장르를 불문하고 참으로 다양하게 나와 있다. 이 책 역시도 언뜻 보면 그런 책들의 일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특별히 식민지말 문학의 언너, 생명정치, 테크놀로지라는 세 분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책과는 달리 어떤 역사적 흐름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딱 식민지말이라는 그 당대의 특정 시대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총 4장에 걸쳐서 3가지의 주제어에 맞는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1장에서는 먼저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화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었고, 존재해 오고 있다. 우리에겐 우리 고유의 단군 신화가 있어서 우리 민족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드높이는 것처럼, 식민지말의 일본에 나타났던 혹은 일본이 주장하고자 했던 신화를 들여다 봄으로써 그들이 식민지배의 통치와 정치에 대해 신화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혹은 그 시대의 신화는 일본의 천황제에 어떤 작용을 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에 대항한 반신화론과도 같은 우리나라 학자들의 신화론을 함께 게재함으로써 보다 폭넓은 이해의 장을 마련한다.

 

2장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라는 제도를 확고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언어를 어떤 식으로 지배하고, 나아가 그 지배를 바탕으로 우리민족을 지배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장에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예로 들어서 한 나라의 언어와 학문, 언론을 지배함으로써 종국엔 그들의 삶까지 지배하고자했던 일본의 제도를 엿볼 수 있으며, 우리 나라의 사례 이외에도 일본의 제국주의의 피해국이였던 중국의 사례를 함께 접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는 실제 채만식, 이광수, 김사량의 소설을 분석하여 식민지말 일본어의 지배로 인한 작가들의 전향과 저항 정치를 동시에 볼 수가 있다. 더이상 일본어는 외국어가 아니며, 국어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서 일본의 정치에 저항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전향한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저항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 분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이나 그 운영을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원리로서의 메커니즘적 접근과  그에 따른 필요로 등장한 기술 지배 즉, 테크놀리지적 접근에 대한 서술이다. 흔히들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식민지배를 했다는, 자신들의 지배로 우리나라의 기술과 산업이 발전했다는 면피적 주장과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말하고자 하는 일부 식민지하의 지배자들과 지식인, 또는 그들을 포함한 일본측의 주장이 다분히 녹아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많이 다루어진 시대에 대한 쉽지않은 주제들을 가지고 책을 써내려 갔고, 그 내용 역시 쉽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과 언어와 사회, 그리고 기술 지배(테크놀리지)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 흐름과 각 문제계(問題系)들의 유기적 연결이 자연스럽게 어울어진다. 또한 과거의 이야기를 그 속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분석과 파악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 인식과 그에 대한 고찰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과거청산이라는, 양국의 재정립이라는 산재해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나름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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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 속 파인더
반지현 지음 / 하얀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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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있을 지언정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책이 바로 로맨스 소설이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 사이 사이 중간 중간 로맨스 소설을 읽어 줘야만 한다. 로맨스 소설은 내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중독이기도 하다.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정말 로맨스소설이라는 장르 속에서나 가능한 사랑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내 마음도 조금은 말랑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난 로맨스 소설이 참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가 로맨스 소설에서 잠시 손을 놓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유 또한 바로 로맨스 소설이라면 믿겠는가?

 

로맨스 소설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비현실성은 감안하고, 신데렐라 스토리는 베이직이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을 선택할 때는 어느 정도는 다른 책들과 비슷한 느낌의 분위기도 감안해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을 감안해도 이 책은 실망이다. 여기 저기의 책들에서 들어 봄직한 있은 듯한 소재와 스토리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참신성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책의 앞표지 이미지나 뒷표지에 소개된 약간의 책 내용을 보고 기대감에 읽었던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준 책이다.

취중에 다른 동의 자신의 집과 같은 호수를 찾아가서 잠이 든 서아와 서아가 무단침입한 집의 주인인 아준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뭔가 재밌는 사건이 발생할 것 같은데 그 아웃라인만 벗어나면 그 배경과 스토리는 모든 것이 식상하다. 전형적인 악녀인 아준의 옛 여자친구인 예린이 나오고, 예린은 둘 사이를 훼방 놓고, 서로를 사랑하는 서아와 아준은 그런 예린의 계획된 훼방에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잊지 못하다 우연이라는 인연으로 다시 만나 행복해진다는 전형적이지만 결코 달달하지도 가슴 뭉클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이렇게 밍숭맹숭한 로맨스 소설을 읽고 나면 당분간 로맨스 소설을 끊고 싶어진다. 너무 많이 읽어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가님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은 딱 그 정도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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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삼순
지수현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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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라를 지키고 있는 우리의 현빈이 주원앓이로 대한민국을 휩쓸기전에 이미 삼식이라는 무지하게 친근한 이름으로 먼저 현빈앓이를 주도하던 때가 있었다. 이 책은 드라마 MBC 드라마〈내 이름은 김삼순> 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전국이 삼식이와 삼순이 열풍으로 들뜨기 전에 이미 읽었었고,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다시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에 책장정리를 하다 다시 꺼내보게 된 책이기도 하다.

 

예전에 로맨스 소설이 지금처럼 문학의 한 장르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한 드라마는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수현 작가님이 이러한 것들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는 이전보다 더 많이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 방송을 보면 원작의 향수를 기대하던 팬들은 때로는 실망을 때로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드라마가 워낙에 well-made인 경우여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다시 읽으니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각색을 통해 전혀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 경우라고나 할까.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는 드라마의 감동이 더 큰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비주얼적인면을 글에서는 그 느낌이 적고, 드라마에서 특히 그 감동을 더해주었던 삼순이의 나래이션을 들을 수 없었던 점도 아쉽긴 하다.

 

삼순이라는 이름을 개명하는 것이 인생이 목표라고 말하는 자신이 하는 파티쉐의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의 삼순이와 사랑을 잃어 버리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 버렸던 장도영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사랑이야기가 은근하게 다가오지만 그닥 큰 감동은 느낄수가 없었던 소설이다.

 

가끔은 말이지 청출어람이라고 원작보다 더 잘난 드라마 덕분에 원작이 묻혀 버리기도 한단 말이지... 지수현 작가님의 글 중에서는 그 임팩트가 약간 약한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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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캔들
이희정 지음 / 여우비(학산문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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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이에 과연 우정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로맨스소설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바로 요런거다. 수년동안 친구로 지냈는데 알고 보니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일 뿐이거나 어느 한쪽이(남자쪽이면 더 좋다.) 오랫동안 짝사랑을 하는 것 말이다.

왠지 더 애절하고 가슴아프지만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땐 더 기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라디오 스캔들 속의 정우수는 한물간 아이돌 출신의 비인기 시간대의 라디오 DJ이다. 그의 우월한 유전자는 숫한 여성들의 대쉬를 받게 하고 그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때로는 즐기기까지 한다. 물론 다 이유있는 생활이다.

 

그리고 새벽시간 작업을 핑계 삼아 커피한잔과 함께 매일 우수의 라디오를 듣는 그의 소꿉친구 민재린. 언제가 대박날 날을 꿈꾸며 로맨스 소설에 매진하는 엄연한 작가다. 그녀에게 우수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두 모친들의 친분으로 친구먹은 말그대로 뼛속까지 친구다.

 

남녀간의 우정은 결국 두 사람 모두가 서로의 성(性)을 인지하지 못할 때나 가능할 것이다. 동성친구와는 다르다곤 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겐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없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 어느 한쪽이 서로가 그어놓은 선을 손톱만큼이라도 넘어서는 나는 날에는 이미 우정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아슬아슬 곡예를 하는 우수 역시도 섣불리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만으로 밀어 붙여 그나마 발 딛고 있는 우정이란 허울마저 벗어야 할까봐서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내가 50을 줬으니 상대도 나에게 50을 주면 딱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내가 그보다 더 주어도 상대는 덜 주어도 뭐라할 수 없고, 아예 주지 않아도 나무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많이 사랑하는 약자의 비애라고나 할까.

 

사랑에 승자와 패자가 어디있겠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사랑에도 승패가 존재하는 법. 우수 역시 재린에게 자신을 친구가 아닌 남자로 인식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DJ로 있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그녀와 자신만이 아는 추억으로 서서히 그녀를 사로잡는 것이다. 이른바 가랑비 작전.

한차례 퍼붓고 마는 소나기가 아니라 서서히 옷 젖어드는 줄 모르는 가랑비처럼 그렇게 라디오라는 가랑비를 무기로 그녀를 자신에게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너무 잘난 남자와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그 잘난 남자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라디오 사연을 빙자해서 오늘도 On Air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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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 과학과 사회, 두 문화의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다
강윤재 지음 / 궁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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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년 전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기극이 있었다. 이름하여 "황우석 사건"이 그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이 결국 사기 사건으로 번지며, 국민들의 신망과 황교수의 연구에 기대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넘어 허탈함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동안 과학이란 것은 그저 연구실에서 새로움을 창조하여 세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데에만 주목하면 되었고, 일반인들도 과학이란 그들만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리고 점차 발생하는 과학 기술을 통한 사회 문제의 대두로 인하여 우리는 더이상 과학이 중립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다룬다. 과연 과학자란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무관하며, 면제부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부터 실제 과학자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탄생한 과학 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서까지 심도있게 논쟁을 펼치고 있다.

 

초반부에서 과학(자)과 사회의 관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중반부에서는 역사 속의 유명했던 과학논쟁을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갈릴레오와 종교계의 논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읽어 볼 수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현대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라 불릴만한 과학논쟁들이 나온다. 최근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전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가히 농업혁명이라고까지 불리던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논쟁, 과학발전으로 위기가 가해지고 있는 세계 기후에 이르기까지 어디하나 쉬우면서 가벼운 논쟁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전세계적이자 현대적이자 나와 내 아이들의 미래가 함께 걸린 논쟁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읽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과학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자 역시 그 기술의 사용으로 인한 2차적 효과에 대해서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개발한 과학기술의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그 책임으로부터까지 면피를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더이상 과학은 연구실 속의 전시물이 아니며, 과학자 그들만의 성과물도 아니다. 이미 과학은 사회를 만났으며, 둘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둘 사이가 동지든, 적이든지 간에 이미 그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필요관계를 인식했고, 실행단계에 들어 간 것이다. 그예로 우리들의 일상 속 곳곳에서 과학은 자리를 잡고 있고, 더이상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 퇴보하거나 이 상태로 머물러 있는 다는 것또한 상상할 수 없다.

 

누군가 예측하지 않아도 과학은 분명 지금보다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 사회적 영향과 책임의 영역도 점차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사회에서의 책임에 대한 명분도 스스로 높여야 할 것이다.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오늘도 연구실에서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쏟아 부으며 과학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꿈과 열정과 땀이 베인 과학이 사회의 악의 축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러한 논쟁들이 그저 탁상공론에 머무르는 일회성의 논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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