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7일부터 시작된 아들 중학교의 원어민강사 홈스테이를 접었다. 처음엔 담임샘의 부탁에 '애들 영어 공부에 도움 될'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주변에서 음식은 어찌하고, 대화는 어찌할거냐, 영어는 자신있냐? 질문이 많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의 대표격인 아줌마 순오기인지라, "지가 한국에 왔으면 한국음식 먹는거고, 지가 한국말 못하는거나 내가 영어 못하는거나 피장파장인데 뭐. 사전 갖다 놓고 통하며 돼, 것도 안되면 만국공통어 '바디랭귀지'가 있잖여!" 이러면서 겁없이 시작했다.
뭐~ 처음 한달은 좋았다. 흑인이라고 걱정하는 교감샘 말씀에 열린사고를 자부하는 순오기, 그게 뭐 문제겠나 싶었다. 애들에게 한마디라도 건네게 하려는 맘에 통역도 시켰고, 것도 아니면 지는 영어사전 찾아 디밀고, 나는 한영사전 찾아 디밀어가며 나름 소통이 됐다. 문제는 이 친구가 한달 월급을 받으며 생겼다. 17일 월급을 받자마자 주말이면 여행다니느라 피곤한지, 학교 갔다 돌아온 오후엔 거의 잠을 자고, 깨워서 저녁 먹이면 바로 샤워하고 외출했다 심야에 들어왔다. 어딜 가고 무얼하는지... 처음엔 어디가는지 언제 오는지 물었지만 그도 매일 묻기가 그래서 말았다. 이러니 아이들과 얼굴을 대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일부러 간식 시간을 만들어 식탁에 둘러 앉아도, 우리애들도 입도 뻥긋 안하고 이 친구도 침묵이었다. 하긴 관심이 있어야 궁금한 게 있을텐데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싫어하던 아들녀석도, 영어를 많이 배우지 못한 민경이도 물어볼 말이 없는거다. 이 친구도 여행을 목적으로 왔기에 한국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한 주에 한 두번이라도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하길 원한다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대답하고 몇 번은 해 주었다. 같이 영화 본 '조디악' 얘기도 나누고, 뉴욕타임즈를 복사해서 아이들에게 읽히고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너 댓번 하더니 나중엔 시간을 바꾸고 제대로 안했다. 그렇다고 홈스테이 가정에서 영어지도를 요구할 수없이 계약되어, 그들도 '도덕적 의무'로는 받아들이지만 안 해주면 그만이다. 음~~~~게다가 음식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이슬람이라 금지식품도 많지만 입에 맞는 볶음밥이나 튀김류와 닭요리 같은 건 그런대로 잘 먹지만, 새로운 음식이나 완전 한국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3개월 지나 학교에 다른 가정을 구해보라 말씀드렸다. 처음부터 이 친구가 약속을 소홀히 하는 통에 별로 좋게 여기지 않던 교감샘은, 내가 홈스테이를 관두면 올려보낸다는 것이다. 이럴 땐 맘 약한 순오기,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애들에게 시간을 내달라는 요구만 수용하면 그대로 하겠다고 양보했다. 교감샘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성주맘이 홈스테이를 그만두겠다 한다." "왜, 홈스테이를 안한다는 거냐?" "애들 영어공부 도움될까 하는데, 니가 그 역할을 안 해주니 그만둔단다. 한국사람들도 먹고 살만해서 영어 아니면, 굳이 외국인 홈스테이 안한다. 음식 까다롭지, 말 안 통하지, 문화도 다른데 뭐가 좋다 하겠느냐?" "좋다, 그럼 요구대로 잘 해주겠다." 대충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 덕에, 잘 해보겠다며 아이들과 시간을 정하더니, 딱 두번 더해서 모두 여덟 번으로 끝났다. 참, 미국인 치곤 약속이행이나 성실성이 상당히 부족한 친구다. 그래도 난, 이 친구 갈때 선물이라도 해줄까 공부한 횟수대로 일만원씩 아들 통장에 적립했으니... 결론은 8만원만 굳었다.^^
이 친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의 글이 될 것 같아 '홈스테이 이야기' 카데고리를 만들어 놓고도 몇 번 올리고는 할 수 없었다. 음~ 이 친구가 특별한 취향을 가졌는지라 피해를 주는 것은 없지만, 생활방식과 문화가 다른지라 어울리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홈스테이 2주쯤 지나 본인의 취향을 '왕의 남자' 영화얘기를 하며 고백했다. 언제부터, 왜?라는 내 질문에 웃으면서 "16`th, I don`t know."라고 답하는 그가 나름 귀여웠다. 게다가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외롭게 자랐고, 새엄마에게 별 사랑을 못 받아 그렇게 되었는가 짠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만 알고 우리 애들이나 남편에게, 학교에도 말하지 말라 했다. 아직 한국사회는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아이들도 이상하게 생각하며 '여자같다'는 말을 자주 했고, 늘 핸드백을 메고 칼라플한 옷을 입고 엉덩이를 흔들며 뻔질나게 드나드는 그를 보며 주변 사람들도 짐작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협력교사와 여선샘들이 이상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이면 '호스트맘이 이야기 하자며 집으로 오라고 했다.'고 자주 집에 가는 이 친구가 이상했던지, 교감샘이 지나치게 잘해주지 말라며 전화하셨다. 헉~~ 이럴수가! 그 시간에 난, 방과후학교 수업가기 때문에 집에 없는줄 이 친구도 아는데 그런말을 하다니... 교감샘은 물건 간수 잘하라며 걱정하시기에, 우리집은 만날 열어놓고 다녀도 가져갈 거 없어요. 그보다는 다른 면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시라 했더니 '비밀'로 했던 그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국내 여행이나 일본여행도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기에, 핸드백을 메고 다닌 이유가 00심볼이라 그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아이들은 어떤 상상을 하는지 혐오감을 갖게 되어, '우린 홈스테이하면서 '인종에 대한 차별과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만 생겼다'는 말로 간결하게 요약했다. 그래서 내 의도와는 다르게 홈스테이가 영어공부에도 국가가 부르짖는 '세계화'에도 별 도움이 안 되었으니, 끝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겨울방학 전 교감샘께, '한 겨울에 나가라 할 수는 없으니 2월까지만 하고, 3월은 신입생 가정을 구해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이 친구는 1월 21일 새벽에 미대사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3월에 오겠다며 떠났고, 학교에서는 홈스테이가정을 구하기도 어렵고 이 친구의 처신도 맘에 들지 않으니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할 수없이 일년을 계약하고 데려 온 한미교육위원회에선 데려다가 과천지역으로 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남겨둔 짐을 가지러 3월 1일에 온다기에 내가 딸 때문에 인천에 가니, 주소를 알려주면 택배로 보내주겠다 했더니 3월중에 시간내서 내려온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런줄 알았는데, 그제 저녁 7시쯤 한 친구가 '버논'을 찾는 전화를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집에 간다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아직 안 왔다고 전화를 끊었는데 혹시, 이 친구가 살짝 다녀갔나 싶어 방문을 열어보니 그의 짐이 없었다. 헉~~~이럴수가!! 아무리 우리가 문을 안 잠그고 다닌다고, 오후에 모두 학교 간 사이에 살짝 다녀가다니~~~ 몰상식하고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잘했든 못했든 그래도 만 5개월을 지 빨래 해주고 음식해 주었는데 이렇게 뒷통수를 치는거야!'
교감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이 친구 끝까지 말썽이라며 교육위원회에 연락하겠단다. 이 친구가 신발장에 넣어 둔 여름슬리퍼는 챙겨가면서, 남기고 갔던 빨래감을 빨아 행거에 걸어 둔 겉옷은 가져가고, 서랍장에 넣어 둔 속옷이랑 대형타올, 츄리닝 바지는 안 가져갔다. 나야 기분은 별로지만, 혹시라도 지 옷가지를 우리가 탐나서 숨긴 줄 알까봐(^^) 기어코 택배라도 보내야겠다. 별로 이쁘게 생활하진 않았지만, 그 친구 입장에선 우리가 이해안되고 영어도 못하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싶어서...꿀꿀하긴 해도 한국가정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길까봐 홈스테이 6개월을 상큼하게 정리하고 싶다.
요기까지 썼는데, 마침 교감샘이 전화를 주셨다. 남긴 옷은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까지 같이 산 그 친구를 보면 역시 철저한 개인주의자 미국놈답게, 한국에 대한 존중도 부족하고 지가 먹으려고 지 돈 주고 산 것은 쓰레기통에 버릴지언정 우리와 절대 나누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식탁에 사 놓은 것은, 심지어 '즐거운 인생'을 보고 우리 남편이 짠해서 모처럼 사왔던 '자이리톨껌'도 그 친구가 가져가서, 우리 남편은 구경만 하고 고맙다고 말만 했을 뿐이다.ㅠㅠ 그래서 결론은 한미교육위원회 전화를 알려주시면, 전화해서 그동안 만족스럽게 못해줘서 미안하고 옷가지를 택배로 보내겠다고 했다. 국제적인 문제에선 개인이 국가의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걸 우리도 경험한지라, 이렇게라도 마무리하면 그래도 이 친구가 지 잘못을 알고 생각을 좀 바꾸지 않을까 싶다.
*홈스테이 본래의 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뒤늦게 영어공부 해야겠단 마음으로 영어공부 책 몇 권 사들인 것으로 족하련다.
바로 요 책이 뽀송이님 리뷰를 보고 산 것^^
그리고 서평단으로 뽑혀 아주 아주 늦게 도착한 '하루 30분 텔미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