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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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님이 추천하기에 중학교 구입도서 목록에 넣었고, 도서실에 책이 들어와 읽게 되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내겐 결말이 허무했지만, 내밀한 심리를 잘 그려낸 작품이라 읽는 재미는 있었다. 놀라운 것은 열아홉 살의 작가가 두번째 쓴 작품으로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란다. 아쿠타가와상이 어떤 위치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의 반응은 굉장했다고 한다. 작가가 고등학교를 막 빠져나온 생생한 느낌과 체험을 잘 살려낸, 부담없이 읽기 좋고 소통을 얘기하는 주제도 좋았다. 

과학시간 미생물을 관찰하기 위해 다섯 명씩 조를 짜라고 했지만, 어떤 조에도 속하지 못하고 남는 자리에 끼여 앉은 하츠와 니나가와. 그 둘은 다른 아이들을 유치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스스로 고독을 즐긴다. 외톨이인 하츠가 불쌍해 끼워주려는 중학교 때 친구였던 키누요의 배려를, 마음에 없는 수다에 끼어들기 싫어 억지 소통을 거부한다.  

그러나 같은 외톨이 니나가와가 보는 패션잡지에 나온 모델 올리짱을, 중학교 때 만난 적이 있다는 것으로 니나가와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니나가와의 관심 대상은 오로지 올리짱 뿐이라 그녀와 관계된 것이 아니면 어떤 얘기도 나눌 수 없다. 이런 니나가와가 얄밉지만 이상하게 그에게 끌리는 하츠는 관계맺기를 시도한다.  

오로지 고독하게 종이만 찢어대던 하츠와,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패션잡지만 보는 니나가와의 관계맺기는, 올리짱이란 모델을 매개로 위태위해하게 진행된다. 올리짱의 공연티켓을 사러 밤새 줄섰던 니나가와는 감기로 무단결석하게 되고, 그런 사실을 모르는 하츠는 병문안을 간다. 그후 올리짱의 공연에 키누요까지 셋이서 동행한다. 키누요는 니나가와가 하츠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고, 오히려 하츠가 니나가와에게 관심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이성친구로 발전하는 건 아니다. 그런 무관심에 하츠는 니나가와랑 제대로 소통하고 싶어서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었던 것이라 이해됐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그들의 내면을 엿보기하는 맛을 준다고 할까, 2층에 독립된 공간을 갖고 자유롭게 사는 니나가와가 부럽기도 하고, 거기에 드나드는 하츠와 모종의 관계로 발전하는 건 아닌가 기대감을 갖기도 했지만 허무하게 끝나서 아쉬웠다. 그러나 올리짱을 보기 위해 거칠게 다가갔던 니나가와는 비로소 자신과 올리짱의 관계가 소통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츠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게 되었거라고 그 이후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남겨줬다. 문장이 참 감각적이라고 느껴지는 곳들이 많았는데, 다음 문장은 이 책의 주제를 담은 문장이라고 볼 수 있을 듯.

   
 

 전율이 흘렀다. 포화 상태의 기분은 진정되기는커녕 만지는 것만으로도 터질 듯 아픈 여드름처럼 미열과 함께 점점 더 부풀어 오른다. 다시 올리짱의 세계로 돌아가버린 그 등짝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보고 있으니 숨결이 뜨거워진다. 이, 어딘가 쓸쓸하게 움츠린, 무방비한 등을 발로 걷어차버리고 싶다. 아파하는 니나가와를 보고 싶다. 갑자기 솟아오른,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이 거대한 욕망은 섬광과도 같아서 일순 눈앞이 아찔했다. 순간, 발바닥에, 등뼈의 감촉이 확실하게 느껴졌다.(66쪽)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분명, 나와 그는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토록 아름답게, 하늘이, 공기가 파랗게 물들어 가는 곳에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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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7-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목이 참 멋집니다.
학창 시절엔 친구 문제로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배려와 사귐을 배우는 거겠죠.

순오기 2009-07-21 19:14   좋아요 0 | URL
제목처럼 살다보면, 누군가의 등짝을 바로 차주고 싶은 적이 있겠죠?^^
학창시절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건 일종의 특권이라 생각해요. 지나고 나면 그런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는 않으니까요.ㅋㅋ

무스탕 2009-07-2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놓고 아직 안읽었어요..;;
순오기님 리뷰보니 더 읽고싶어졌어요. 빨리 읽어야징~~ ^^

순오기 2009-07-21 19:15   좋아요 0 | URL
사놓고 못 읽는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습니까?ㅋㅋ
우리도 많아요~ 술술 잘 읽히니까 어여 읽어보세요.^^
 
예비중학생에게 좋은 종교 이해를 돕는 책
시간에 대한 진지한 물음, 그 해답이 여기에~
세상을 보는 창, 언어
생각을 담는 그릇 문자 인류의 작은 역사 3
실비 보시에 글, 다니엘 마야 그림, 선선 옮김, 장영준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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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작은 역사 시리즈 3편 '생각을 담는 그릇 문자'는 다른 책보다 조금 어렵다. 내가 산만한 일처리로 몰입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래서 대상을 초등 고학년이 아닌 중학생 이상으로 추천한다.  

우리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잣대가 바로 기록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문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내고, 발전시킨 과정과 다양한 문자를 접할 수 있는 역사책이라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푸른숲의 이미지 로고로 쓰는 문자를 창조한 지혜의 신 '토트' 이 책에서도 나온다. 책날개에 있는 토트를 스캔받았다.^^ 사람의 몸에 올빼미 혹은 부엉이 같은 머리를 가졌다는 토토는 필경사를 지켜 주는 신이며, 이집트이 태양신 '라'의 서기이기도 하다. 그는 신들의 왕인 라가 결정한 것들을 기록하고 실해하는데, 사람들은 토트가 기록한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문자는 크게 보아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로 나눌 수 있다. 우리 한글은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표의문자라고 배웠다. 쐐기문지와 상형문자, 마야문자와 결승문자라는 것도 들어본 기억은 난다. 이 책은 문자의 형성부터 변천 발전과정과, 양피지와 파피루스에 필경사들이 한자씩 써 넣었던 것도 나온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올랐다.^^ 



문자의 발명이 생각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라면, 인쇄술의 발명은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자의 발명은 결국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으니 중세의 필경사에서 고려의 금속활자와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을 가져왔다. 20세기 인쇄술의 혁명은 금속활자 시대를 끝내고 사진식자 시대를 가져왔다. 인쇄술의 발달은 정보 전달의 속도가 빨라졌고 신문이나 잡지 같은 언론 매체의 힘을 거대하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출판은 인간의 모든 지성을 나타내며, 문명 그 자체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오늘날은 컴퓨터 시대다. 읽기와 쓰기 뿐 아니라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은 죽지만 문자는 영원히 남아 인간의 역사가 된다. 문자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이 있었겠는가 반문이 필요없을 만큼 문자는 인간사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발명품이다. 

말미에 '으뜸가는 우리 문자, 한글'을 부록으로 두어 한글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유네스코는 1997년 10월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정해 보호하고, 1990년에는 '세종대왕상'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문맹퇴치에 공을 세웠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고유 언어를 발전시킨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해마다 10월 9일 한글날에 수여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도 한글이 지금 존재하는 문자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했는데,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도 도태되어 사라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의 정신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우리 글을 지키려면 바른 글쓰기를 일상에서 실천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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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
    from 엄마는 독서중 2009-07-26 22:15 
    인류의 작은 역사 시리즈 1첫번째인데 제일 마지막으로 보게 됐다. 잘게 나누어진 챕터와 멋진 판화 같은 그림이 곁들어져 가독성이 뛰어나 6학년이나 중학생에게 좋겠고, 읽고 나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그 이유를 살피며 전쟁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역사 이래 발생한 전쟁을 살펴 보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한다는 아니러니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평화를 이루려는 그 마음이 평
 
 
같은하늘 2009-07-0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의 작은역사 시리즈 참 괜찮은것 같아요...
찜해 두었다가 나중에 우리아이 크면 보여주고 싶은데...
그 사이 더 좋은 책이 나올라나...^^

순오기 2009-07-07 01:21   좋아요 0 | URL
분명 더 좋은 책이 나오겠죠~ ^^
옛날에 엄마가 좋은 그릇은 딸들 시집갈 때 준다고 안쓰고 아껴뒀는데~~ 결국 유행이 지나 시집갈때 줄 수 없었다지요.ㅋㅋ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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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라니!!
학교 독서회의 신참들이 소화하기엔 좀 버거울 듯해서, 내공 있는 독서회 토론도서로 좋을 것 같아 어머니독서회의 8월 토론도서로 선정했다. 독서회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은 환상적인 궁합으로 읽고나면 다들 뿅~ 빠져버릴 것 같다.^^ 

표지 그림이 영화 '인도차이나'의 한 장면 같은데...맞나? ^^ 아마도 건지섬으로 들어가는 줄리엣을 모델로 한 것 같다. 

 
495쪽에 달하는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주고 받은 편지와 메모와 전보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런 형식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기 전까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50쪽을 넘어가면서 손에서 놓지 못할만큼 빠져들었다. 와아~~ 오호~~와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완전 몰입의 경지였다. 



영국의 남단과 프랑스 노르망디 사이 채널제도에 있는 건지 섬은, 프랑스에 더 가깝지만 영국 왕실 소유의 자치령이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영국 침략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독일군이 점령하면서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살얼음판을 딛게 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외부로부터 모든 것이 차단되고 식량보급마저 끊긴 참담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그런 삶을 유지하는데 독서모임인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 활동은 눈이 부셨다.  

 

소설은 두 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이지 비커스태프란 필명으로 칼럼을 써 유명인사가 된 줄리엣이 건지 섬의 도시에게 받은 편지로 시작된,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의 문학에 대한 논의와 전쟁이 남겨 놓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이에 양념처럼 끼어 드는 마컴 레이놀즈의 줄리엣을 향한 연서도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일찌감치 마무리된다.^^ 

감자껍질 파이 클럽의 자유로운 활동은 우리 독서회에서도 따라해 볼만한 방식이다. 문학과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들이 위기상황에서 엘리자베스의 순발력으로 급조된 '감자껍질 파이 클럽'에 참여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학을 이야기한다.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는지는 읽어보시라.^^ 세네카에서 세익스피어, 찰스 램과 브론테 자매 및 제인 오스틴을 거론하는 해박한 전개는 작가의 역량이겠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진짜일까? 깜짝 놀랐던 오스카 와일드의 등장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전쟁과 독서모임, 아이러니지만 그런 모임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은 고통속에서도 아름다웠다. 건지 문학회의 중심이었던 엘리자베스는 당당한 여성이었다. 독일장교를 사랑했던 그녀는 당당하게 아이를 낳았고, 탈출한 소년병을 숨겨준 죄로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지만 그녀의 딸 키트는 건지섬의 아이로 모두가 함께 키운다. 자기 삶에 당당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편지로 드러나는 건지 섬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들과 험담과 비아냥을 일삼는 모습까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얘기하지만 건지섬의 아름다움만큼 빛나는 휴머니즘은,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삶에 희망을 품을만하다. 키트를 키우며 도시의 사랑을 확인한 줄리엣의 해피엔딩에 덩달아 행복하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사랑의 조건을 무엇에 둘 것인지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야 할 선남선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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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09-06-1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는 무슨 요리와 관련된 책이 아닌가 했어요... 무식~~^^
독서모임 클럽의 이름이 왜 "감자껍질파이클럽"이 되었는지 급 궁금해지는데요...
책을 보도록 여운을 남겨주시는군요...^^

순오기 2009-07-07 01:27   좋아요 0 | URL
하하~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하지요.^^

수진샘 2009-07-0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느낌이 참~~ 좋은 책인데다가 '여희숙'샘이 소개를 해주셔서 아무 갈등없이 즉시 구입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책이 좀 두껍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점이 많이 아쉬웠던 그런 책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고 싶긴 한데 다 읽기는 할까? 하는 생각에 선뜻 선물도 못했네요. 늘 주저주저 해서요. ^^

순오기 2009-07-07 01:27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분들에겐 선물해도 좋을 책이죠.^^
 
따끈따끈한 책 100도씨~ 최규석을 만나다!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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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2년 전 오늘, 엄마랑 아빠는 뭐했어?" 
"100도씨 리뷰에 쓸거니까 읽어 봐!"

어제 서울광장으로 가면서 보낸 큰딸의 문자에 대한 답이다. 이 문자가 아니었어도 눈물흘리고 울컥거리며 100도씨를 보는 내내, 그때 나는 뭘했는지 되짚으며 곱씹었다. 뜨거웠던 그해 6월, 시위에 동참하거나 지지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살고 있었지만, 내 자식들이나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100도씨 25쪽에 나온 것처럼 미안함을 가질 뿐이다.  

79학번이어야 했지만 여상을 나온 내게 대학은 사치와 허영의 대상이었다. 어릴때부터 수재로 꼽혔던 오빠조차 대학을 접고 돈벌어 동생들 학비를 댔으니 꿈도 못 꿀 일이다. 친구들이 대학다니며 화려한 청춘을 누릴 때, 나는 고3때 실습갔던 회사에서 경리과가 아닌 총무과로 발령나 사장 비서의 커피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총무과 업무분장엔 나오지도 않은 심부름이나 하는 그 참담함은 나의 자존감을 난도질했다. '이런거 하려고 어렵게 공부했나? 이놈의 회사를 때려쳐야지!' 자존심이 상해 탈의실에서 찔끔거리면서도 걷어차고 나올 순 없었다. 엄마 아버지는 더한 고생을 하셨기에... 

 

광주를 짓밟고 정권을 차지한 전두환이 국민우매화 정책으로 국풍81을 열었을 때, 나는 더 작고 초라한 개인사무실에서 경리를 보고 있었다. 커피심부름이 죽을만치 싫어 사표를 냈지만, 나를 받아줄 그럴듯한 기업은 없었다. 취업과 동시에 적금을 들어 한달도 실업자로 살 수 없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없었다. 그때 받은 월급이 7만원이었다. 월급명세도 찍히지 않은 편지봉투에 넣어준 그 돈을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이것도 상처였던 듯.

사무실에서 남는 시간은 신문을 뒤적여 가정교육과 주부일기를 스크랩하고, 엄청나게 두꺼운 삼국지를 읽으며 나를 위로했다.  


그때 스크랩했던 것을 지금도 갖고 있다. 아마도 이 스크랩과 부모님의 영향이 내가 엄마로 사는 일에 가치를 부여했을거라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 키우면서도 어떤 육아서나 교육서보다 애정있게 본 추억의 스크랩이다.

 

개인사무실에서 작은 건설회사로 옮겨 눈물겨운 돈을 받아 드디어 300만원의 적금을 타서, 집살 때 보태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으니 내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되면 돈이 부족해 맘먹은 대로 입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럭저럭 유아교육을 귀동냥하고 82년부터 정식 유치원도 아닌 사설학원에서 일하면서 자격지심을 극복하는 일은 실력을 쌓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잘 생각나지도 않지만 종이 접기, LABO, 꽃꽂이, 레크레이션 지도자 과정등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조건 배웠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책사고 배우는 일에 다 써버리는 내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니 분수에 맞게 살아라!"
"내 분수가 뭔데? 이건 엄마의 분수지, 내 미래의 분수는 이게 아니야!" 

지금까지 내가 엄마한테 내지른 말 중에 가장 아프고 부끄러운 말이다.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어쩔 수없이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려 생선다라를 이고 다녀야 했던 엄마한테 딸년이 한 가멸찬 말을 당신은 잊었을까 아니면 가슴에 담고 있을까?  

실력을 쌓는 일에 올인한 덕인지 나름대로 인정받아 직장과 인천YMCA 활동, 교회에서 유치부와 고등부 교사 및 성가대를 하는 것 외엔 한눈 팔지 않았다. 성격상 무엇을 하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으로 자기만족이 될 때까지 몰입했다. 86년 여름, 훗날 내 아이도 키우기 싫을만큼 질려서 유치원을 그만두고 꽃꽂이 레슨을 시작했다. 87년엔 교회도서관에서 일했고, 무슨 일을 맡으면 완벽을 기하느라 날새우기 일쑤였던 습관이 지금도 심야족으로 살게 한다. 당시 다니던 교회는 교사만 200명이 넘었는데 최고의 교사로 뽑혀 지방에서 주는 상을 받아 보람과 자긍심으로 충만한 내 인생 최고의 해였다.



100도씨를 보며 다섯 번이나 울컥했지만 한 집안의 장남으로 데모하고 싶어도 동참할 수 없었던 영호 형, 영진에게 심정적 동질감을 느꼈다. 박종철의 죽음에 울분을 토하던 아저씨들에게 자본의 단물이나 빨고 있다가 흘리는 눈물이라며 질타하는 대학생에게 그는 한마디 한다. 

   
  밥숟갈 떠넣기 바쁜 사람한테 이런 소리 듣기 싫겠지만... 학생들 보기엔 우리가 위선자나 변절자로 보이겠죠. 그래서 변절자는 같이 울면 안돼요?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만 슬퍼하고 분노할 자격이 있는 건가요?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얻는 게 도덕적 우월감 말고 뭐가 있어요? 같이 슬퍼하는 사람들까지 밀쳐내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주제넘은 소리 미안합니다. 뭐,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학교 다니던 동생이 지금 빵살이 하고 있으니... 너무 고깝게 듣진 마세요.  
   

86년 오빠가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자, 공장에 다니던 남동생을 설득해 대학에 보냈다. 제대로 대학 물을 먹지 못한 나는 Y에서 접했던 역사배우기와, 교수들의 강연이나 백기완의 책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같은 것들이 내 사상과 시국을 보는 전부였다. 시위는 대학생들의 일로 생각했고, 나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서 내 자식들이나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지만 동참하지 못한 미안함을 갖고 산다. 그 후 결혼해 삼남매를 낳았고 막내가 기저귀를 떼고 두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79학번이 아닌 97학번이 되었다. 막내에게 "엄마 뭐하는 사람이야?" 하고 물으면 자동으로 나오던 "공부하는 사람" 이라는 대답은 나를 즐겁게 했었다. 89년 이후 광주에서 살면서 내 자식들이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갖지 않게 사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작년 촛불문화제부터 동참한 큰딸은 가기 싫고 힘들때도 있고, 또 현장에서 요즘 대학생들 왜 그러냐고 대놓고 질타하는 어른들한테 짜증도 나지만 나중에 '그때 나는 무엇을 했나? 부끄럽지 않기 위해 동참한다' 고 말한다. 

 

대학생이 된 영호는 폭도의 난동으로 알았던 5.18의 진실을 깨달으며, 반공 교육에 철저히 세뇌되었던 청소년기를 벗고 시위에 동참한다. 아들 영호가 잡혀가면서 국가의 가르침대로 왜곡되게 알았던 엄마도 운동권 엄마로 변신한다.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주의의 열망이 개인의 삶에 전이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타고난 시대와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의식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 동참한 엄마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영호는 박종철의 죽음을 보며 흔들린다. 처음엔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면 정말 세상을 바꿀 것 같았는데, 이 싸움이 끝이 없을 거 같아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때 옆 감방의 아저씨가 들려준 말은 최규석작가와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외치는 말로 접수된다. 우리는 지금 몇 도씨에 머물러 있을까? 99도까지 올라오긴 했을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흔들릴때마다 지금이 99도다.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권인숙씨에게 가한 성고문과, 물고문으로 박종철을 죽이고도 '탁 치니 억했다'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권의 도덕성과 직격탄으로 이한열을 죽이는 정권을 보며 마침내 사람들은 100도씨로 끓어올랐다. 

  

학생들의 시위를 외면하던 사람들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학생들은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비로소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한몸 기꺼이 바쳐 민주화를 이루겠다던 학생들의 열망은 드디어 100도씨로 끓어오른 시민들의 동참으로 이어진다.



뻔뻔하던 정권은 드디어 6.29선언으로 항복의 백기를 든다.  



오랜 피흘림의 댓가로 얻어낸 건 소중한 백지 한 장~ 하지만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되고 한눈을 팔면 낙서가 될 뿐인 백지 한 장~ 그 백지를 제대로 썼는지는 역사가 평가하리라. 

6월 민주항쟁계승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 최규석은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단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자신이 아는 것도 없고 배알이 꼬이는 이유도 있지만,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현대사의 보충교재로 배포된다니 청소년들에겐 하나마나한 소리라도 꼭 해야되기에 수락했다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 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만화가 최규석은 참 곧고 정직한 사람같다.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모습이 그렇고 실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런 것 같다. 아들에게 이런 만화가를 꿈꾸었다는 내게, 만화는 너무 고생하니까 시키지 말라며 ’강풀 작가 어머니가 아들이 작업하는 걸 사흘 지켜보곤 울면서 내려갔다’는 말로 대신했다. 스케치만 연필로 하고 색칠은 컴퓨터로 하지만 너무나 힘든 작업이라니까, 만화를 보는 독자들은 주루루 흝어보고 줄거리만 파악하는 수준의 독서는 하지 말기 바란다. 칸 하나에 그 장면을 담고 압축한 글밥으로 전해야 될 말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뇌했을지 헤아리면 대충 술술 넘어갈 순 없으리라. 100도씨를 보면 무거운 주제를 만화적인 재미도 갖추고 역사적 사건과 역사의식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거라 짐작된다.   

나는 어려서 충청도 시골에서 우리 아버지가 갖고 있던 표지도 떨어지고 너덜너덜한 4.19 사진집을 보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역사의식과 불의에 저항하는 작은 정의감을 갖게 된 것도 그 사진집 덕분이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이런 부모 마인드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도 전염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감히 권면하는데, 지금 자녀가 있거나 앞으로 부모가 될 생각이라면 반드시 100도씨를 소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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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09-06-1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군요...

순오기 2009-06-12 08:27   좋아요 0 | URL
쓸데없는 주절거림이 길었지요.
몇 번 수정해도 여전히 길어요~ ㅜㅜ

마노아 2009-06-1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먹하고, 또 막막하고 그렇습니다. 100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외치려면, 99도까진 올려놓아야 가능하겠지요. 갈 길이 먼 우리에요.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순오기 2009-06-12 08:26   좋아요 0 | URL
갈 길이 멀어요~~ 다같이 힘을 내야지요. 아자아자~

꼬마요정 2009-06-1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보면서 어찌나 가슴이 절절하던지 어제 집회에 참석해서 목소리를 내고 왔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면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해서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판만 할 수 없잖아요.. 지금은 99도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우리는 해 낼 거에요!!

순오기 2009-06-12 08: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건 아니지 싶어요.
99도까진 올랐을까요? 조금만 더~~~~~

웽스북스 2009-06-1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낮에 이 글 읽으면서 많이 뭉클했어요.
저 순오기님께 땡스투 두번이나 날렸어요-

그러고보니 날아간 그 선물에 잘못 써 있던 이름인 그 ㅅㅅㅊ 교수님께도
순오기님께 땡스투한 100도씨를 보냈었다는 ㅋㅋ 이런 재밌는 우연이 ㅎㅎ

순오기 2009-06-12 08:25   좋아요 0 | URL
핀트가 안 맞은 주절거림이라서 좀 부끄러워요~ ㅜㅜ
100도씨 땡스투적립금이 쌓이는 중이예요. 감사~ ^^
저도 민경이 담임샘이 사회과라서 선생님 보시고 학급문고로 두시라고 아침에 민경이한테 보냈어요. 이런 책은 청소년들이 읽어야 해요. 강추~

BRINY 2009-06-1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은 이미 알라딘 주문을 해버려서 다음 달에 사려구요. 정말 이런 만화 형태의 책이 청소년들에게 잘 먹히더라구요. 수업시간에 주절주절 설명하느니 이런 만화형태의 책이 한명이라도 더 먹혀요.

순오기 2009-06-12 17:46   좋아요 0 | URL
그러죠~ 사회과 선생님들이 가르치고 보여주면 진실을 알아가겠죠.
중고등학교에 학급문고로 다 넣어주면 좋을텐데~~ ^^

같은하늘 2009-06-1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얘기에 마음이 뭉클하네요...
다시한번 이 책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오기 2009-06-12 17:47   좋아요 0 | URL
우리 시대는 어렵게 살았으니 대개 비슷한 상황이었을 거예요.
100도씨는 당근 사셔야지요~ ^^

소나무집 2009-06-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대단한 순오기님이에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 드려요.
님 덕분에 저도 대한민국 원주민이랑 100도씨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저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못 하는 사람인데
요즘 드림스타트에서 독서지도 자원봉사랑 숲해설 공부를 새로 시작해서 몸과 마음이 분주하네요.

순오기 2009-06-12 17:48   좋아요 0 | URL
독서지도, 숲해설~~ 다 매력적인 일이네요.
나는 문화유산해설사가 되고 싶긴 한데~~~ ^^

damon 2009-06-1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감동적인 리뷰입니다.

순오기 2009-06-12 17:4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beam 2009-06-1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보다 리뷰가 더 뭉클할 정도로 아름다운 리뷰입니다. 좋은 글 감사! 100도씨 님 때문에라도 꼭 사야겠어요!

순오기 2009-06-12 17:49   좋아요 0 | URL
글쎄요~ 동참하지 못한 변명이 너무 장황했지요.ㅜㅜ
100도씨 꼭 보세요~ 더불어 대한민국 원주민도!^^

두유 2009-06-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집니다 ^_^

순오기 2009-06-13 21:42   좋아요 0 | URL
제가 아니고 최규석과 100도씨에 주시는 찬사로 접수해요.^^

.. 2009-06-14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찡하네요.
저는 아직 20대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 아이에겐 어떤점을 배우고 보이게 해줄까 그런생각하거든요.
제 후배가 학원선생님을 하는데,
거기 초등학생중에 한 명이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애가 있데요.
그런데 공부는 잘하는 데, 아이의 심성이 문제가 있다고 저에게 말해주더군요.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감성도 없고(아픈 동물을 봐도 무감각 하다던가)
제일 마음에 쓰였던 일은, 촛불문화제였다고 하네요.
어린 아이 입에서는 상상도 못할 소리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미국산소 문제와 용산참사 등으로 국민의 열기가 뜨거웠을 때,
그 초등학생 입에서는 그 사람들을 미친빨갱이라고 하고,
전두환을 영웅으로 생각한다고, 전두환 팬카페까지 가입했다고 그랬다네요.
심지어는 전두환 팬카페에서 뭐라고 적혀있는지 모르지만,
민주화운동이 거짓이라고 그 초등학생한테 말했나봐요.
그러니까 저런일은 아예 애초부터 존재하질 않았다나..
그 말을 듣고 그 후배가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공부는 잘하는 데, 아이가 저렇게 될 때 까지 부모는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요즘 아이들보면 학교와 학원에서 거의 80%를 보내는데,
아이의 부모라는 사람은 아이를 잘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 집에서랑 학원,학교에서 이중인격처럼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가 많다고 하더군요.
한 남자아이는 같은 학원의 여자아이 신발을 훔쳐서는,
나무밑에 파뭍고, 다른 친구들을 때리고 다녀서 문제가 되어서
부모를 불렀더니(사실 학원에서 학교도 아닌데 규제하기가 참 힘들다고 합니다)
부모가 한다는 소리가, 우리아이인데 학원선생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는둥,
우리아이는 절대 그런 짓 일부로 안한다.
다 쟤들이 맞을 짓 하니까 맞는거고, 거짓말 보태서 말한거다.
뭐 이런식으로 말했다고 하더군요...
참 씁슬했습니다.
부모도 모르는 아이들의 행동을, 방관하는 부모님들..
블로그 주인님처럼 좋은 부모가 있으신 반면,
내새끼 애낄줄은 알면서 정작 아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지
진심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어보여요.
학교,학원에 찌들려서 제대로 의사소통이라곤 오직 컴퓨터로 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전 너무나 불쌍하고 불행해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행복희망꿈 2009-06-1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가서 빨리 구매해야겠어요.
저와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여형사 2009-06-25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팥죽한그릇 2015-11-26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여기서 읽은 리뷰 중에 가장 글 맛이 좋습니다.ㅎ
 
포토리뷰 대회
26년 3 - 완결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7년 5월
절판


26년 3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꿋꿋이 살아야 했다는 후안무취의 그 인간. 재판을 받을 때도 꼿꼿이 고개 쳐들고 있던 그 인간에게 양심을 바란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만화로 그 인간을 응징한 강풀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단죄하고 처단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야 하건만, 우린 만화로 대리만족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는 3편,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 김일병과 마일병은 같은 상황에서 갖게 된 죄의식을 반대로 해결한다. 광주학살의 정당성이 없는 그 인간을 처단하려는 김일병과 그 인간이 한 일이 옳은 것이어야먄 자신도 정당하다는 논리로 그 인간을 끝까지 지키기로 작정한다. 반복되는 저격사건에 촉각이 곤두선 경호실장은 문제의 주차타워를 주목한다.

당신의 권력욕 때문에 양민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는가? 나는 반드시 당신의 대답을 들어야 한다. 개새끼야~ 대답을 회피하지 말고 대답하라, 난 당신의 대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 절규하는 김갑세회장. 오직 이 인간을 대면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기업을 키웠다. 바로 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

주차타워의 사격선수 미진, 바로 지금 사격하라~~ 타앙~~~~~

이분이 했던 것은 역사였다. 26년 전 광주에서 우리가 했던 일도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을 보호해야 한다. 이분이 잘못된 것이라면 나의 모든 과거도 잘못된 것이니까!!
역사를 해석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김갑세와 마상열은 극과 극을 달린다.

쏴라~~ 지금이다! 쏴버려~~~ 쏴버리란 말이다!!!!!

용서를 해주고 싶어도 용서를 비는 자가 없어서 용서할 수 없는 건 비극이다. 26년 전 자신이 죽였던 자의 자식을 다시 죽이는 마실장, 평생을 저 아이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었으니 자기만의 방법으로 용서를 빌어라!

김갑세 회장을 모시고 그 인간의 집에 사설 경호원으로 들어 간 그들은, 김주안의 명령에 따라 경호대상을 바꾼다. 그 인간에서 김갑세회장으로~~ 손에 땀을 쥐게 되는 순간이다.

단돈 29만원 밖에 없다는 그 인간의 말을 듣고 이 만화를 구상했다는 강풀 작가, 광주학살 최종 책임자를 겨눈 저격수의 총알은 그를 뚫을 것인가~~
역사가 심판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심판하고 응징해야 될 일이다. 오늘도 꿋꿋이 황제처럼 버티고 사는 그 인간이 제 명을 다 산다면 죽어간 그들은 얼마나 억울한가? 그들의 피흘림의 값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긴장과 스릴, 스토리의 탄탄한 짜임과 그 인간을 응징한다는 재미를 더한 26년은 이렇게 저물었고 29년도 벌써 절반이 지나간다. 만화로만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만족해야 하나? 또 하나의 숙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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