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필이면 왜, 오늘 이 책을 읽게 됐을까? 아침에 남편한테 집을 담보로 빌린 돈 10년 만기라 갚아야 된다고 집을 팔자는 말을 들었는데... 일단 3천만원만 갚으면 나머지는 연장해 준다지만 3백도 없는데 3천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나 형제한테 손벌리기도 싫지만, 손벌린다고 선뜻 돈을 내어줄 사람도 없을 거 같고...

동전꾸러미 세 개랑, 1달러짜리 지폐가 들어 있는 마요네즈 통 하나 남기고 사라져 버린 조지나의 아빠 덕분에, 동생이랑 엄마 똥차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 조지나는 친구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한다. 우리도 빚을 못 갚으면 집을 팔던지 해야 될 상황이라 이 책을 보며 두어번 눈물이 났다. 미국 전역을 울리고 웃긴 가족소설로 30초마다 키득거리게 한다고 극찬했지만, 오히려 개를 훔쳐야 되는 상황이 짠하고 애처로웠다. 조지나의 심리와 행동에 포커스를 맞춘 무리없는 진행과 따뜻함이 초등고학년이 읽어도 좋겠다.

열한 살 소녀가 집도 없이 차 속에서 숙제하고 잠자는 상황을 받아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는 열심히 일하지만 집을 얻을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조지나는 낡은 빈집에서 주인 몰래 살자는 엄마에게 소리친다.
 "엄마면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거잖아, 자기 애들을 소름 끼치는 낡은 집에서 재우고 맥도날드 화장실에서 씻기는 게 엄마야?" 

그래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고 싶지 않겠냐? 상황이 안 좋고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뜻대로 못하는 거지. 예전에 우리 딸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엄마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걸 어린 딸이 어찌 알겠냐. 그래도 조지나 엄마는 씩씩하게 남매를 책임지고 잘 버텨나간다. 조지나는 빨리 집을 마련하기 위해 사례금 500달러를 두둑히 줄만한 개를 훔쳐내기로 작정한다. 이름하여 집 장만하기 프로젝트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다.   

4월 5일부터 노트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조지나 헤이즈 지음’ 이라고 써놓고 단계별 방법과 규칙들을 정리해 나간다. 어이없지만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학교가 끝나면 누나 옆에 딱 붙어 있는 동생에게 개를 훔쳐야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을 받고 협력자로 받아들인다. 날마다 단계별 규칙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모든 조건에 딱 알맞을 윌리를 발견하고 훔치는데 성공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떠돌이 무키 아저씨의 등장으로 문제가 생긴다.

"살면서 뒤에 남겨 놓은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때로는,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다." 


자신의 신조를 들려준 무키 아저씨는 곳곳에 흔적을 남기며 조지나가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열한 살 소녀의 깜찍한 프로젝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무키 아저씨 말씀처럼 양심의 울림에 따른다. 조지나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5월 3일, 누구에게도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개를 훔치면 안된다며 막을 내린다. 이로써 열한 살  소녀 조지나는 궁색한 환경의 고통을 훌쩍 뛰어 넘어 성장한다. 그리고 살집을 구하는 해피엔딩~~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5-03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3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혼모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혼모의 딸 주홍이가 미혼모가 되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쥐를 잡자>의 작가 임태희, 소설적 구성이나 주제를 밀도 있게 그려 각인된 그녀는 1978년생의 젊은 작가다. 사람이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는다는 톡톡 튀는 발상은 그야말로 짱이다. 이런 참신한 발상은 좋았는데 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냉큼 다가오진 않았다.  

청소년들의 심리와 현상을 잘 포착해 솜씨 있게 풀어내, 중2 우리 막내는 많이 공감된단다. 아이들의 치기어린 대화나 패션 쇼핑 행태, 친구들과 싸운 후 자기 편이 되어 달라고 상대를 흉보고 하소연하는 게 딱 저희들 모습이란다. 푸른책들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는, 버스를 타면 일부러 교복 입은 아이들 옆에 가서 그네들의 호들갑에 귀를 연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는 가게에도 따라 들어가 보고,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한마디라도 더 주워들으려고 학교 가서 앉아 있다 오기도 한다고 했다. 아이들 소리에 마음의 귀를 기울였기에 그네들이 공감하는 청소년을 그려냈구나, 이해가 됐다. 

어떤 책을 읽어도 나는 항상 엄마 마인드가 작동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나'의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가는 생활에도, 부모를 속이려면 얼마든지 눈속임 할 수 있는 이들의 능력을 부모들은 알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아이들이야 학원을 다니지 않고 사설 독서실에도 가지 않았으니, 24시간 감시카메라가 돌아가는 감옥소에 보내지 않은 것을 고마워 하라고, 나는 뻔뻔하게 큰소리 치는 엄마다.^^ 독서실 입실 시간도 총무만 구워 삶으면 얼마든지 변칙이 가능하다는 아이들. 집에서는 교복차림이나 엄마 맘에 드는 점잖은 차림으로 나서도, 화장실을 거치면 일순간 변신하는 아이들. 학원비나 문제집 값에서 빼돌리고 꿍친 돈으로 쇼핑을 즐기는 아이들의 실체를 그 부모는 알고 있을까? 이웃들은 다 알아도 그 부모만 눈 멀고 귀 먹었다는 건, 내 주변에서도 발견하는 일상이다. 

교복을 입은 채 쓰러져 잠들었던 나는 깨어나면서 "이런, 세상에! 교복이 나를 입고 있잖아." 중얼거린다. 그때 마음 속에 울리는 '기묘한 속삭임'인 '그 녀석이 달라 붙는다. 아마도 작가는 녀석을 등장시켜 나의 솔직한 속내를 보여주려 한 듯하다. 아니면 녀석의 소리는 화자의 진술에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장치인가 생각되었다. 하여간 녀석의 등장으로 소설은 살짝 복잡하게 꼬이지만 심심하거나 밋밋하지 않게, 동대문상가로 쇼핑 나간 다섯 여학생의 일요일 하루를 펼쳐 놓는다. 

나와 '옷 사러 갈 때만 펄펄 나는 애(날개옷), 나의 멋쟁이 패션 요원 K(요원 K), 리더형 인간(리더), 남자 친구 있는 애(애정과다)'까지 다섯 친구다. 옷장엔 '언제나' 입을 만한 옷이 없기 때문에, 비밀과 거짓말과 작전을 동원한 패션 쇼핑이 필요하다. 아이들마다 개성과 취향이 다르지만 혼자 결정하기 곤란할 땐, 친구의 조언이나 결단이 도움 되기도 한다. 쇼핑을 하는 와중에도 들려오는 녀석의 소리와 옷들의 소리에 옷이 사람을 입고, 옷이 사람을 거부하거나 선택한다는 걸 확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을 진지한 주제로 펼쳐갈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리더와 요원 K의 싸움으로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고 결말도 아쉽다. 그래도 건질만한 구절이나 맘에 드는 대사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표출했구나 짐작해본다. 

'교복만큼 확실한 족쇄는 없다'(10쪽) 

"난 그냥 무난한 옷을 입어. 외로운 건 질색이거든. 튀는 건 어쨋거나 외로운 거니까. 외로움도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난 고독을 즐길 줄 모르고 상처 받는 일이 무척 겁이 나. 굳이 나를 왕따시킬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옷 입을 때 신경을 쓰는 거야. 아마 다들 그럴걸?" (83쪽)  

"핵심은 자신감이야.자신감도 일종의 옷이거든.그 옷은 사람의 결점을 커버해 줄 뿐 아니라 결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주기도 하지." (82~3쪽)

"우리니까 너 같은 인간도 입어 주는 거야. 우리가 조금만 까다로웠어도 어림없지." (107쪽) 

완전 아줌마 몸매인 나를 거부하지 않고, 나를 입어주는 옷에게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지지 않는 노래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봉기작가는 내가 사는 곳, 대학의 문창과교수다. 새혼가정을 소재로 한 '실험가족'의 작가로 알고 있다가, 2007년 11월 이금이 작가의 광주대 강연으로 전화 통화도 하고 만나뵈었기에 친금함이 더했다. 마침 동화로 등단한 후배가 대학원에서 공부중이라 교수님을 모시고 사진도 찍었다. 그 후에 만나는 교수님의 신작이라 더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판타지 소설이나 너무 비현실적인 작품보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100년도 훨씬 전에 흔적없이 사라진 이스터 섬 부족의 역사를 전한 방식이, 문자가 아닌 '노래'였다는 데 감동을 받았다. 우리도 구전되는 노래로 당시의 시대상이나 생활을 연구하고 밝혀내지 않는가! 언어학자의 기록으로 남겨진 태평양 작은 섬 부족의 역사가, 한국의 작가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그야말로 판타스틱하다!^^  

작가의 친구가 오클랜드 대학교의 인류학 자료 보관소에서 발견한 언어학자의 기록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멋진 소설로 탄생했다. 언어학자의 기록은 이스터 섬의 거대 석상 모아이(Moai)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액자형식을 취하여 화자인 작가가, 언어학자의 기록에 나오는 족장과 부족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언어학자에게 노래로 전달되었는지 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피의 역사를 보여준다.  

처음 파도에 밀려온 이방인 '회색늑대족'에게 친절을 베푼 '제비갈매기족'은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했지만, 삶의 방식이 달랐던 두 부족은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했다. 제비갈매기족의 친절로 목숨을 건지고 살 터전을 얻은 회색늑대족은, 그들을 힘으로 지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자연에서 먹을 것을 취하며 욕심부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던 제비갈매기족은 노예로 전락했다. 회색늑대족은 귀가 큰 장이족으로 불리고 제비갈매기족은 귀가 짧은 단이족이라 칭한다. 장이족은 우기의 빈 시간에 단이족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거대 석상을 만드는 노역을 시킨다. 그들은 좋아했던 석상을 장이족의 얼굴을 본딴 거대 석상을 만들어 세우며 공포에 질린다. 지배자의 권위와 피지배자의 복종을 요구하는 거대 석상은, 섬 주민의 피와 죽음의 노역으로 늘어간다.(현재 남아있는 거대 석상은 900여기가 넘고 큰 것은 무게 75톤에 높이는 21미터에 이르며,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석상 분묘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수차례 바뀌었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두 부족 사이에 태어난 혼혈족들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노예로만 살아간다. 그 중에 한 사람 '괴상한 소리'는 '발과 입이 없는 자'를 만나,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평화로웠던 섬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의 평화롭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음이 큰 슬픔으로 다가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마침내 그는 노래를 부르는 자가 된다. '나는 이리 들었노라~'로 시작되는 섬의 역사를 노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똑같은 분노와 증오를 넘어 슬픔과 그리움으로 한 마음이 된다. 그들은 노래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노예 노동을 폐지하고 무기를 거두어 바닷 속에 던져 버렸으며, 그동안 자행된 살육으로 죽은 자들의 유골을 거두어 장사 지내 주었다. 또한 장이족과 단이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모두 귀걸이를 달아 귀의 크기를 같게 했다.

이로써 피의 역사는 끝나고 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족장이자 제사장인 '큰 목소리'는 그들의 저주이자 상처였던 거대 석상을 모두 눕혀서 영원한 평화를 얻으려 한다. 하지만 일곱 번째 이방인의 침입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왔다. 서구 열강들이 노동력을 얻기 위해 노예사냥을 온 것이고, 이스터 섬 남자들은 모두 노예선에 끌려가 질병으로 죽거나 강제 노역으로 죽어갔다. 살아남은 족장 '큰 목소리'는 오클랜드의 농장으로 팔려갔고, 거기서 슬픔에 잠겨 노래하는 소리에 감동한 주인집 아들 헨리와 친구가 된다. 열두 살이던 헨리에게 끊임없이 부족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후에 헨리는 언어학자가 되어 그 노래를 추억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이로써 '큰목소리'가 간절히 원했던 부족의 역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노래로 남았다.   

인간의 욕심과 폭력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현재도 다르지 않다. 있는 자들이 더 가지려고 없는 자들의 것을 빼앗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온갖 비리와 추악함도 날마다 반복된다. 권력의 주체가 바뀔 때마다 드러나는 비리와 부패에 치를 떨면서도 반복되는 그 짓을 막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과 폭력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저주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모름지기 꿈과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폭력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던 부족의 노래는 인간의 선한 마음을 되돌리는 힘이 있었기에 위로가 된다. 대중가수의 노래에 열광하는 우리에게도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인간 본연의 심성을 되찾아 줄 노래가 필요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9-04-27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아이' 하니까 박민규 작가의 '핑퐁'이 떠올라요. 무척 흥미가 생기는 책이네요.
첫번째 사진은 순오기님이 안 보여요. 사진 찍고 계셨나요?

순오기 2009-04-27 03:15   좋아요 0 | URL
핑퐁을 못 봐서 몰라요~~ ^^
저기는 내가 낄 자리가 아니었으니 사진을 찍었지요.ㅋㅋ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는 Thirteen Reasons Why (13개의 이유, 왜?) 이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루머'가 결국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갔음을 증언한다. 해나를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행실이 바르지 않은 것으로 소문 난 해나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클레이 젠슨이, 죽기 전 녹음한 해나의 테이프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나가 제시한 규칙은 '듣는다, 전달한다' 두 가지로 전달이 안 될 경우 복사본이 공개된다는 것이다. 테이프 속 해나의 상황과 테이프를 듣는 클레이의 현재 상황이 진술되는 방식이라 긴장감이 더했다. 

진실보다는 루머에 더 솔깃하고 빠르게 퍼뜨리는 인간성을 고발한 제이 아셰르의 소설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간 즉시 작가의 홈피가 마비되고, 연속 64주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 셀러였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것 같다. 루머 때문에 자살한 최진실 씨를 비롯한 연예인의 죽음에, 나는 죄없노라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두들 최소한의 책임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청소년들은 잘못된 성 의식과 루머의 폐해가 생생히 드러난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친구들의 무책임한 언행이 해나 베이커에게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준 13명에게 자신이 왜,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는지? 그들이 해나의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지는 테이프를 듣는 클레이 젠슨처럼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고, 충격과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무심코 뱉은 말 한 마디, 별 생각없이 한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독이 될 수 있음에 언행에 신중하고 조심해야겠다는 걸 절감한 독서였다.

루머의 시작은 저스틴 폴리가 해나와 나눈 첫키스를 부풀려 헤픈 아이로 퍼뜨렸고, 알렉스 스탠달은 1학년 최고의 엉덩이 리스트에 해나를 올린다. 해나에 대한 루머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진실보다 루머를 믿는 친구들은, 해나에 대해 수군거리고 함부로 취급해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해나는 루머의 출발과 그 과정을 샅샅이 진술하면서 13명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과 그 결과를 담담히 진술한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없다면 굳이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며 자살을 선택했지만, 마지막까지 누군가 눈치채고 잡아 주기를 바랬던 해나가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이 책은 루머와 더불어 청소년의 이성교제와 스킨십의 문제도 드러난다. 스킨십의 수위가 이미 성인들과 같은 행태를 보여주는 이 소설이 외국의 경우라고 마음 놓을 수 없다. 이 책에 표현되는 고등학생들의 스킨십이 우리 청소년들도 덜하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우리 집 뒷편에 아파트와 주택단지, 초.중학교가 공유하는 공원이 있다. 노인들이 게이트 볼을 치고, 배드민턴 코트와 체육시설이 있어 잘 활용되는 공원이다. 그런데 이곳을 관리하는 총각한테 들은 이야기는 너무 충격이었다. 공원 화장실 두 곳의 쓰레기통에 팬티가 무수히 버려진다는 거다. 처음엔 왜 팬티가 버려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더 놀란 건 비싼 팬티라면서 찾을 수 있냐고 관리자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왜? 쓰레기통에 버린 팬티를 찾으려 할까? 한장에 5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팬티라 엄마가 알면 혼난다고, 팬티를 찾으러 오는 상황이 중고딩 아이들의 현실이란다.ㅜㅜ

우리 아이들이 지금 이렇게 무너지고 망가져 간다. 부모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아이들을 방치하기 때문인지, 혹은 오직 공부만 중요해서 그들의 행실을 간섭하지 않는 건지... 이제는 내 아이만 잘 보호하고 곱게 키우면 되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함부로 자란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된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에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성인이 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내가 사는 이 곳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이라, 부모가 방치하고 경제활동에 매달리기 때문에 생긴 특별한 현상일까? 이야기를 들은 날은 심란해서 잠을 못 이뤘다. 루머에 생명의 끈을 놓는 일도 안타깝고 성 의식과 행태도 위험수위를 넘었기에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걱정 놓을 날이 없다.ㅜ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9-04-2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는 낭만적으로 보이는데 내용은 심각하군요. 요즘 아이들이 우리 때와 다른걸 들라면요. 남의 얘기를 너무 쉽게 한다는 것, 우리도 역시 어릴 때 그러했을 것이고 또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사람 많지만 그 강도가 많이 심해요. 결국 그런 카더라라는 얘기로 언제나 싸움이 일어나고 확대돼요.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어떤 상처를 줄지에 대해 무감각하다고 할까? 어른들 잘못이겠죠?

순오기 2009-04-26 14:22   좋아요 0 | URL
심각의 도가 넘어 치명적이죠.ㅜㅜ

마노아 2009-04-2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어요. 바뀐 제목이 오히려 더 현실감을 주네요. 그런데 공원 팬티 사건 너무 충격적이에요ㅠ.ㅠ

순오기 2009-04-26 18:1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바뀐 제목이 훨씬 다가오죠~
여기뿐이겠어요~ 그러니 아기를 낳아 화장실에 버리는 일도 생기는 거라고요.ㅜㅜ

다락방 2009-04-2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순오기님.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잠실 교보에 갔다가 확 끌려서 사 읽게 된 책이죠. 우리는 한마디 말도 생각없이 내 뱉지만 그것이 가져올 영향을 생각한다면 한번쯤 더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타인의 겉모습만으로 그를 섵불리 평가해서도 안되고 말이죠.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물론 우리 모두도 더 신중해져야겠지만 말입니다.

순오기 2009-04-26 18:16   좋아요 0 | URL
예~ 이 책 읽곤 정말 뜻없이 뱉은 말 한자락도 누군가에게 독이 되고 생명을 앗는 일이 된다는 걸 실감했어요. 신중해야지요~ 말조심도 해야되고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 왔어... )의 파블로 네루다 이야기. Pablo Neruda(1904. 7. 12~1973. 9. 23)는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의 이름을 딴 필명으로 쓰다가 이름을 바꾼 칠레 시인으로,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그가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에서 거처할 때 그의 전담 우편배달부였던 마리오와의 관계를 유쾌하게 그렸다. 이 책은 메타포의 진수를 보여주는 언어들의 유희가 즐거웠고, 세상 모든 것에서 메타포를 발견하여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시로 표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편배달부 마리오 히메네스는 열일곱 살로 첫 눈에 반한 소녀 베아트리스의 사랑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났고, 친절한 네루다는 뚜쟁이가 되어 베아트리스 엄마의 허락을 끌어낸다. 네루다와 마리오는 메타포로 시작하여, 마리오 아들의 대부도 되어 주고 네루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 벗이며 동지로서 우정을 나눈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며 칠레 국민에게 사랑받은 네루다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소설로 유쾌하고 잔잔한 감동이 출렁인다. 

 내가 본 이 책의 백미는 세 곳에서 발견된다. 초반 네루다와 마리오가 '메타포'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시가 무엇인지 독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인용한 대화는 필요 부분만 발췌했다.^^

"메타포,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당장 포구 해변으로 가, 바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메타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간단한 시 한 수에 그렇게 절절매서 어떻게 노벨상을 받으시겠어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예요!"

두번째는 마리오의 장모가 된 베아트리스 엄마, 과부 로사 곤살레스 부인의 직설적인 성 묘사는 그 모든 메타포를 압도한다. 마리오를 몰래 만난 후 그가 한 메타포에 퐁 빠져버린 딸에게 하는 엄마의 말이다.^^ 우석균씨 번역인데, 과부가 인용한 속담이 얼마나 맛깔나는지 번역자에게 박수를!

"넌 지금 풀잎처럼 촉촉해. 후끈 달아올랐을 때에는 약이 딱 두 가지밖에 없지. 교미나 여행. 강물은 자갈을 휩쓸어 오지만 말은 임신을 몰고 오는 법이야. 가방 싸!"  
"기막혀! 남자애 하나가 내 미소가 얼굴에서 나비처럼 날개짓한다 그랬다고 산티아고에 가야 되다니."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그리고 세번째는 아옌더 정부에서 프랑스 대사가 되어 파리에 간 네루다씨가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를 녹음해 보내라고 했을 때, 마리오가 녹음한 그 모든 소리들과 마지막 10분을 장식한 마리오의 갓 태어난 아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의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그것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칠레의 정치적 배경을 두고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잔잔한 감동과 긴 여운으로 남긴다. 자신의 철학과 민중의 염원을 시로 읊어낸 네루다 이야기를 연극과 라디오 극으로 만들었고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해설을 보며, 작가 스카르메타가 네루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이 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송이 2009-04-2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거 영화로 봤네요.^^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영화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역시~ 순오기님의 서평 좋아요.^^

순오기 2009-04-23 19:43   좋아요 0 | URL
영화는 못 봐서 글샘님이 올려준거로 볼려고요~~
초반만 조금 봤는데 언제 시간내서 집중해야지요.^^

프레이야 2009-04-2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게야 요새 이 책 읽고 있어요.^^
저 위에 오타 발견 ㅎㅎ
내 시를 표절하라고(표정하라고,아니고요^^)

순오기 2009-04-23 19:42   좋아요 0 | URL
헉~ 지금 막 수정하고 나오니 댓글이 달렸네요.ㅋㅋㅋ절묘한 타이밍!

프레이야 2009-04-23 20:10   좋아요 0 | URL
우히힛!! 저녁식사는 하셨어요? 오기언니^^
전 감자튀김이랑 백세주 한 잔 했어요.

순오기 2009-04-23 20:53   좋아요 0 | URL
아침에 말아논 김밥이 많이 남아서 저녁까지 먹었어요.
막내가 컴 차지해서 이제 댓글 달아요.^^

오월의바람 2009-04-24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제목이 <일포스티노>였어요. 이탈리아 영화였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95년도인가 96년도 작품인데... 보고 나서 수업시간에 아이들도 보여주고 했는데 정말 좋았어요 시에 대해 이야기 할때마다 생각나는 작품이죠.

순오기 2009-04-25 00:47   좋아요 0 | URL
오월의바람님, 사진리뷰전에서 많이 본 이름이네요. 반가워요~~
일포스티노, 글샘님이 시랑 같이 올려줘서 즐감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