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별곡 푸른도서관 2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왕부루'로 만난 박윤규 작가의 천년별곡은 '시소설'로 분류된다. 표지의 주목나무가 멋지고 뭔가 굉장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펼쳤다. 아~~ 이런 형식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단숨에 읽었다. 119쪽이란 얇은 두께라 읽기도 부담없고 술술 읽힌다. 천 년을 기다린 주목나무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면서 천 년의 우리 역사가 담겨 마치 한 편의 서사시로도 읽힌다.

학창시절 만났던 가시리의 '위 증즐가 태평성대' 사모곡의 '아소 님하' 청산별곡의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정읍사의 '어긔야 어강됴리 아흐 다롱디리' 쌍화점의 '더러듕셩 다리러디러'  서경별곡의 '아즐가 위 두어령셩 다링디리 다링디리' 동동의 '아으 동동다리'등 후렴구의 음악적 여흥이 살아나 전통 시가문학을 맛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시가문학의 정서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신라로 짐작되는 천년왕국이 망하자 후궁의 딸이었던 공주는 어머니와 같이 호위무사의 도움으로 궁궐을 빠져 나와 태백산 골짜기로 간다. '아즐가, 그 때 내 나이는 열여섯 살, 내 가슴은 봄날 목련 봉오리처럼 부풀었고 그는 수줍게 움츠린 내 꽃술을 햇살처럼 톡 건드렸지요'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결코 길지 못했다. 적에게 잡힌 아바마마를 구하려 가는 그를 잡지 못하고 '천 년을 살다가 죽어도 다시 천 년을 서 있는 장군봉의 주목나무처럼 기다린다'말에 그는 반드시 돌아오겠다 약속한다.

공주는 태백산 장군봉 산마루 가장 높은 곳에 주목나무가 되어 돌아올 낭군을 기다린다.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이정표가 되며 새들이 깃들이기도 한다. 이백년이 되었을 때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일월검법을 익히려는 청년이 찾아와 검법을 완성하고 떠난다. 정채봉의 오세암에서 모티브를 취한 듯한 동자꽃 아이에게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열매도 떨구어 준다. 이렇듯 세월이 흐르는 대로 찾아오는 그들에게서 낭군의 모습을 찾으며 기다린다.

주목나무 나이 오백 살, 고려가 망하고 이젠 조선 개국이런가! 일편단심을 맹세했던 선비는 일편단심을 지키지 못한 늙은 목숨을 끊으러 온다. 칠백 살이 되었을 땐, 섬나라 장수가 태백산에 몰려 있는 정기를 끊어야 이 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베러 찾아온다. 주목나무는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정기를 끌어 모아 섬나라 장수를 굴복시킨다.

이렇듯 우리 역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어낸 주목나무는 구백 년의 기다림에 지쳐 미움과 원망의 독을 품는다. 주목나무가 힘을 잃자 나라는 동쪽 섬나라가 삼켜버렸고, 그 후엔 두 동강이 난 전쟁으로 산과 들도 태워버린다. 겨레끼리 편을 갈라 싸우며 온통 미움과 원망으로 썩어 문드러진 주목나무와 운명을 같이 한다.

주목나무는 정신을 차리고 '사랑할 때는 천 년도 하루 같지만 미워하면 하루도 천 년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동안은 언제나 빛나는 청춘이지만 미움과 원망을 품으면 금세 늙고 만다' 는 것을 깨닫는다. 전쟁의 막바지에 쫒겨 숨어든 소년병사를 나무 둥치 동굴 속에 품으며 비로소 천 년 전 손을 흔들고 떠났던 사랑을 확인한다. 그날 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사라지고 주목나무와 소년병의 영혼은 몸에서 빠져나와 천 년의 기다림과 천 년의 그리움으로 한 마리 봉황이 되어 날아 오른다.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풀어낸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소설이었다면 이런 감동을 맛보긴 어려웠을 것 같다. 압축으로 긴장미를 살리고 빠른 전개로 천 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기다림과 그리움을 완성한 결말은 애절하면서도 장엄하다. 우리 역사를 주목나무의 사랑으로 멋지게 풀어낸 수작이다. 청소년 이상 모두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 특별히 우리 시가문학을 공부하는 전공자들이 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글이 있음을 감사하며 읽을 책 '뚜깐뎐'
뚜깐뎐 푸른도서관 25
이용포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로 한글날이 562돌이 되었으나 영어 몰입교육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때에, 우리의 한글사랑을 되새겨 볼만한 책이 나왔다. 바로 청소년 소설 '느티는 아프다'로 알려진 이용포 작가의 '뚜깐뎐'이다. 중국의 문자를 최고로 알던 조선조 우리글이 홀대받던 연산군 때, 우리글 사용을 금지하고 서책을 불태웠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적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다. 작가는 20년 전  떠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10년 전 1,200매의 원고로 썼고, 다시 2년을 다듬고 다듬어 원래의 절반 분량으로 출판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20년 동안 작가의 가슴에서 숙성되고 곰삭았을 이야기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감동이 왔다.

'뚜깐뎐'은 똥뚜깐에서 낳았다고 뚜깐이란 천한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수많은 여자들의 대명사 같은 뚜깐이 주인공이다. 어려서 선채로 오줌을 누기도 했던 당찬 그녀가, 나라말이 핍박받던 때에 남몰래 글을 배운다. 사부에게 '해문이슬-해를 물고 있는 이슬'이란 고운 이름을 받아 시문을 썼다는 설정하에, 딸에게 대물림되는 서책과 시문이 적인 비단 한 조각의 진실을 밝혀가는 이야기다. 하나 남은 비단 한조각의 시문을 물려받은 제니가 사는 현재는, 고도의 기술문화를 자랑하는 '한글창제 600년'이 되는 2044년 6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별볼일 없는 허섭쓰레기 같은 천조각 하나를 엄마의 유물이라고 전하며 몇만 달러의 가치가 있을거라는 엄마의 새아들 캐빈의 말에 솔깃한 제니는 뚜깐뎐을 만난다.

뚜깐뎐의 소제목마다 인용된 해문이슬의 시문은 정축년(1517년)부터 을사년(1545년)까지 이어진다. 뚜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구성되었기에 시대순으로 나오진 않는다. 작가가 지어낸 시문일진대 마치 그 시대에 지어진 시문을 보듯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잠시 감상하시길......

한 걸음 앞서 진 곳을 짚어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고
깊은 산골 외로이 걸을 때 말벗이 되어 주던
괴팍한 늙은이의 지팡이
타락한 세상을 꾸짖어 땅을 때린다
할(喝)!

뚜깐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시문을 먼저 선보이고 시문이 어떻게 쓰여졌을지 짐작케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임금의 잘못을 꾸짖는 벽서가 붙으므로 우리글이 핍박받았음을 보여주고 중세국어와 가장 가깝다는 전라도 말의 구수함을 맛볼수 있다. 사랑으로 엮어졌으면 좋을 듯한 바우뫼와 뚜깐의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좋고, 오로지 글을 배워 연모하는 서진도령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뚜깐의 마음도 귀하게 읽힌다. 뜰에봄의 신분을 위장한 것에서 멋진 반전을 기대했는데 서둘러 마무리 된듯한 아쉬움은 작가가 품은 이야기를 절반으로 줄인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글이란 것은 임금이 금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즉, 많은 백성들이 쓰는 데에는 도리가 없는 게야. 물론 총명하고 명민한 성군이 나서서 나라말 쓰기를 권장하고 스스로 익힌다면 훨씬 빨리 유포되겠으나 아무리 임금이 쓰라고 권장하고 법으로 정한다 해도 그 백성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뿐인 게야. 글이란 이런 것이지. 임금만 탓할 것이 아니라 백성 하나하나가 각성해야 하느니라. (뚜깐뎐 149쪽)  
   

나라말을 박해하던 일은 조선 중기의 역사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은 더 교묘한 수법으로 아니 더욱 노골적으로 '영어공용화'니 '영어몰입'이니 떠벌리면서 우리글을 박대하는게 현실이다. 중국을 사대했던 조선처럼 미국과 영어를 사대하고 마치 속국이나 되는 양 우리글을 소홀히 하는 한국인에게 던지는 사부의 말씀이다. 오늘의 현실과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 대목에서,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소리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끄럽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우리글이 홀대받던 조선조에 민초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한글사랑에 더 마음을 써야 하리라. 내 자식 영어공부 시키는 일에만 불켜지 말고, 우리말 우리글로 된 아름다운 작품을 읽고 다듬는 일에 마음을 써야겠다고 불끈 다짐하는 독서였다.

짧은 이야기로 수많은 뚜깐이들의 애환을 다 담아내긴 어려워도 핍박받던 시대 민초들의 우리글 사랑을 통해, 현재 우리의 한글 사랑을 되짚어볼수 있었다. 세대를 단절시키는 인터넷 용어나 우리말 줄여쓰기의 폐해도 있지만, 한 나라의 언어는 그 시대와 같이 진화 변용되고 있음에 아름다운 우리말 가꾸기에도 마음이 쓰인다. 한글창제 600년 후인 2044년의 제니처럼 영어로 읽거나 말하기가 쉽고, 한글은 통역기나 낭독기로 대신 읽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작가의 장모님이 어렵게 글을 배워 사위에게 보낸 편지가 이 소설을 쓰고 다듬는데 자극이 되었다며, 장모이신 '김금순여사'께 이 소설을 바친다는 작가후기는 읽을때마다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막내 사우에게!
밥 잘묵고 싸우지마고 의좋게 잘 사시게. -장모가 쑴'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08-10-25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날이 562돌이 되었다니 정말 놀랐어요. 저도 한국 사람인데 이걸 모르다니 참 부끄럽습니다. 반성 좀 해야겠어요.
책 이름이 참 재미 있어요. 나중에 꼭 구입을 해서 봐야겠어요.

순오기님 제가 시대물을 쓰고 있는데 혹시 글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도서가 없을까요? 예를 들어 조선에 관한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데 어떤 도서가 좋은지 마땅하게 생각이 안 나서 말입니다. 만약에 아는 도서가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순오기 2008-10-25 13:45   좋아요 0 | URL
이런 건 역사선생님들이 댓글 달아주면 좋겠네요. 제가 별로 아는 게 없어서리~ 좀 생각해보고요.^^

노이에자이트 2008-10-2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 님 아는 거 많던데...

순오기 2008-10-26 04:33   좋아요 0 | URL
추천 좀 해주세요~ 전문이시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10-26 16:20   좋아요 0 | URL
웬 전문? 하하하...순오기 님도 책 많이 읽으셨잖아요.

순오기 2008-10-27 00:36   좋아요 0 | URL
후애님을 위해서 시대물에 도움이 될만한 도서 추천하는 테마를 열어야겠어요.^^ 그땐 사양하지 말고 추천해주실거죠?

마노아 2008-10-2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모님 편지 짧은 글귀가 뜨겁네요. 어렵게 글 배워 사위에게 전해준 한 마디, 아름답고 귀해요. 문득,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오르네요. 한글 사랑, 나라 사랑, 우리 사랑이에요. ^^

순오기 2008-10-26 04:34   좋아요 0 | URL
장모님 편지를 볼때마다 눈물나요~~ 강풀 작가는 내가 접한게 없어서...ㅜㅜ

행복희망꿈 2008-10-2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님의 글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오랜만에 한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자세한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는 요즘 책을 읽고나도 정리가 잘 안되요. ^*^

순오기 2008-10-26 11:55   좋아요 0 | URL
장모님의 편지가 찡~울리죠.
나도 책읽고 서평 쓰는게 점점 부담스러워요.ㅜㅜ

후애(厚愛) 2008-10-27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때문에 순오기님께도 물론이고 노이에자이트님께 폐를 끼친 것 같아 송구합니다^^ 바쁘신데 제가 괜히 추천을 해 달라고 한 것 같아서 더욱 송구합니다^^; 그리고 신경 써 주시어 감사합니다. 꾸벅^^

순오기 2008-10-27 09:52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들은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라 이 정도 부탁은 식은죽 먹기예요.^^

글샘 2008-10-2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창제 1443년, 반포 1446년... 2044년은?

순오기 2008-10-29 02:50   좋아요 0 | URL
^^아직 확실하게 바꿔 지키지 않으니까, 오인하고 있는 날짜라도 우리가 배운 그대로 1444년으로 계산하고 쓴 것이겠죠.

글샘 2008-10-2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강풀의 만화를 아직 못읽으셨다니... 오늘 밤새서 보세요. ^^
http://cartoon.media.daum.net/series/index.html?cId=5 여기 가시면 순정만화부터 이웃사람까지 있습니다. 바보랑 그대를사랑합니다 보고 우실걸요~~

순오기 2008-10-29 03:04   좋아요 0 | URL
강풀만화~~~ 바보랑, 그대를 사랑합니다. 우선 하나씩만 보고 즐찾에 올렸습니다. 울거라고 하니까 보기가 겁나네요~ㅜㅜ
 
초정리 편지 (양장)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 562돌 한글날을 맞아 기념으로 다시 한번 올린다. 공휴일이 아니라서 한글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뭐 하루 논다고 한글날의 의미를 새기는 이들도 많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도 한글날과 관련된 책이라도 읽으면서 마음에 새긴다면 그도 족하리라 생각하며 추천한다.

배유안 선생님의 '초정리 편지'는 출판사 창비의 2006년 제10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짜장면 불어요'와 같이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06년 겨울 책따세 추천도서였고, 2007년 우수문학도서로도 선정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작품이다. 초등고학년이면 재미있게 읽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책이 양장본으로도 출판되어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추천되었다.^^

우리 한글은 24개의 모음과 자음으로 무려 11,172자를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발명품이다. 가로, 세로의 직선과 네모, 동그라미 가지고 못 만드는 글자가 없는 자랑스러운 문자다. 과학적이며 우수하다고 세계가 인정한 우리글이 우리나라에서는 홀대를 받는 듯하다. 글로벌시대라며 우리글도 미처 깨우치지 못한 꼬마들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느라, 우리글이 뒷전으로 밀려난 현실이 안타깝다.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우리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은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이제 한글날을 맞아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을 기리고 우리글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세종대왕이 초정리로 눈병을 치료하러 갔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훈민정음을 만든 후 실험했을거라는 작가적 상상을 더하여 그려낸 이야기구조가 상당히 흡인력 있다. 토끼 눈 할아버지가 된 세종대왕은 초정리에서 만난 장운에게 글을 가르쳐주었고, 장운은 누이 덕이와 오복에게도 알려준다. 그 후, 드난살이를 떠난 누이와 편지로 소식을 전하는 대목은 참 감동적이다. 또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석수장이로 대궐 공사장에 간 장운이가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느라 바닥에 쓴 글자를 보고 토끼눈 할아버지인 세종대왕과 만나는 장면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실제 있었던 일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이 있고, 어영부영 묻어가면서 남 잘되는 꼴은 못보는 시기쟁이도 분명 있는데, 이런 이들이 초정리편지에도 등장한다. 장인정신으로 돌확을 만드는 장운이는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정신과도 겹쳐졌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고운 마음씀씀이도 우리네의 소박한 정이 묻어 나와 좋았다.

어린 백성을 미쁘게 여기사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뜻을 아주 잘 담아낸 작품으로, 이 책은 이야기단락을 ㄱ,ㄴ,ㄷ으로 표시하며 끌어간다. 간간이 나오는 편지에선 지금과 다른 훈민정음 창제 때의 표기를 볼 수 있는데, 그때의 표기에 풀이를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이야기만으로도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지만, 한 면에 그려진 그림이 어찌나 고운지 우리 산수화를 보듯 그림에도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책을 읽고 나서 그림만 주욱~~살펴보는 맛도 아주 좋다.

이제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니라서 많은 사람들이 잊고 지내기 쉽지만, 한글날은 여전히 국경일이다. 또한 UN의 유네스코에서 까막눈(문맹) 퇴치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수여하는데, 이것은 한글의 가치와 공적을 국제적으로 인정한 상징으로 우리의 큰 자랑거리라 할 수 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뜻을 기리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세계가 우수하다고 인정한 한글을 바르고 곱게 쓰며 아끼고 사랑합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두 가지로 나와 있다. 초등 고학년이라면 프레드릭 바크의 에니메이션 그림으로 나온 책이 좋을 듯하고, 중학생이라면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

물론 내용이야 같지만 번역자와 삽화가 다르고 편집이 다르다. 이 책은 나무를 심은 사람 엘제에르 부피에 노인 이야기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다각도로 조명한 이 책의 가치와 작가에 대한 해설이 차지한다. 따라서 중학생 정도라면 이런 작품해설과 작가에 대해 알아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한 삽입된 판화의 강렬한 느낌도 인상적이다.



이 책은 한 여행자가 고산지대에서 만난 노인 엘제에르 부피에의 이야기다. 그는 아들과 부인을 잃고 혼자 고독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남들이 불평불만할 때에 조용히 수만평의 황무지에 도토리를 심는다. 정성껏 고른 도토리를 심는 일을 거르지 않으며, 30년 후엔 굉장한 참나무 숲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했다. 그는 도토리 10만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는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신의 뜻에 따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햐~ 이런 소망으로 도토리를 심는 사람,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다. 개발 논리로 환경을 마구 파괴하던 인간들은 이제야 환경보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노인은 이미 1910년부터 나무를 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떡갈나무 뿐 아니라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 숲도 이루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에 놀라며,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직 묵묵히 나무라는 희망을 심고 행복을 심었다. 그가 심은 나무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물이 흐르자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 집을 짓고 삶을 일구어 간다. 한사람 두사람 돌아오기 시작해 집단을 이루고 후에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엘제에르 부피에 노인이 심은 나무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숲이 저절로 생겨난 줄 알고, 오직 한사람 노인을 만났던 여행자만이 그 사실을 알 뿐이다. 그는 조용히 산림전문가였던 친구에게만 알려주었고 그가 노인을 만나러 갔을 때는 20킬로쯤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다. 굉장한 숲을 이루었어도 쉬지 않고 나무를 심은 노인은 숲의 창조자였다.

엘제에르 부피에 노인은 1947년 바농 요앙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1910년부터 나무를 심었으니 그의 말대로 신이 데려가기 전까지 30년 이상 나무를 심었다. 한 사람의 실천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실화로 감동과 존경으로 뭉클거린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송이 2008-10-0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초등고학년용 <나무를 심는 사람>도 좋더군요.^^
이 책도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08-10-07 00:26   좋아요 0 | URL
아웅~ 뽀송이님, 바쁜데 여기까지 다녀갔군요.^^
그림책 나무를 심은 사람이 보기에도 좋고 그림이 있어 이해도 잘 되지요.

길가에있는코스모스레빨게졌데요 2008-10-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나무를심은사람>은 학교에서 들어본적이있는데ㅋㅋㅋㅋ

순오기 2008-10-09 07:14   좋아요 0 | URL
학교에서 들어보셨으면 이제 읽어보면 되겠네요~ 꼭 읽어보세요!^^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박흥용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가 최규석에 필이 꽂혀 페이퍼를 줄창 써댈때, 마노아님이 박흥용 만화가를 추천했다. 검색해 보고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이라 구입했는데 이제야 책을 읽었다. 우리집에선 남편이 제일 먼저 읽었고 그 다음엔 아이들이 읽었다. 이 만화는 6~70년대 시골이 배경이라, 바로 내가 살았더 시대 이야기다. 마치 내 고향을 옮겨 온 듯한 풍경과 우리 동네서도 있었던 이야기 같다. 우리 세대는 추억을 더듬는 여행이지만 청소년들은 부모님 세대 이야기로 접수하면 좋을 듯하다.

이 만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여러분은 빨간 잠자리가 왜 '고추잠자리'가 되었는지 아시나요?^^



하하하~~ 이건 맛보기일 뿐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따로 나오는데, 위 그림이나 아래 그림을 보고 외설스러울거란 기대는 접어주시라. 학교에 입학하면 광목을 끊어다 책보자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난 책보를 허리에 묶고 다니다 3학년 때 아버지가 노오란 캔디(?) 같은 소녀가 그려진 가방을 사와서 어깨에 힘주고 다녔다. 애들은 그 가방 한번 들어볼려고 줄서서 비위 맞췄고...책보자기를 어깨에 걸쳐 맬 수 있는 6학년 소년의 야릇한 첫사랑을 떠올렸다면 역시 배신을 때린다. ㅋㅋㅋ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는 소리를 모스 부호로 바꾼 제목이라고 한다. 뭔가 있을 듯 말듯하면서 끝내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로, 브레히트의 '낯설기 하기' 기법으로 독자가 관객임을 잊지 않게 환기시켜 준다는 해설이 들어있다. 하지만 소년의 추억여행을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았다.

만화책이기에 그림부터 살펴보면 사진을 그대로 쓴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올 만큼, 디지털 붓으로 일일이 그린 것이라 밝힌다. 물론 부분 복사해서 합성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배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몇 번씩 그림 파일을 날려서 머리에서 전 작업이 사라질 때까지 며칠씩 놀다가 다시 했다니 그 수고를 짐작할 만하다. 사실적인 배경에 걸맞는 여주인공을 실사로 하고 싶었으나 배우 최아무개의 초상권 침해가 문제될 수 있어 바꾸었다지만 간간히 실사로 등장하고 있어 느낌이 새롭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1969년(이라고 기억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는 설명) 시골동네에 라디오를 스피커로 틀어주던 시대 이야기라 나보다 더 나이가 들었나 싶다. 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촌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라디오를 갖고 있었으니까.^^ 동네마다 있을 듯한 부자 영감의 젊은 첩이 등장해, 소년 화자의 싯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스피커가 비만 오면 말썽을 부리고, 어디에서 끊어졌는지를 알기 위해 자전거로 발전시켜 통신하는 법을 알려줘 소통을 즐기게 했단다. 전류를 이용한 통신의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공부도 시켜주는 아주 유익한 만화다.ㅎㅎㅎ

담배가 피우고 싶어 빈집 같던 소년의 집에 불쑥 찾아든 빽구두 영감의 둘째 부인이라 일컬어지는 여자. 가난에 찌든 삶이 싫어서 적당히 편히 살기 위해 택했던 부자영감과 살지만 내면엔 갈등이 많다. 통신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소리'였음을 깨닫고 인생을 되돌리는 이야기다. 그녀는 사흘을 피눈물로 통곡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녀가 동무가 되어 주었던 소년에게 모스 부호로 남긴 것은 " 내 의지가 내 눈을 가렸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그때 소년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훗날 추억 여행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아찾기의 성장통을 얘기하니까 청소년이 같이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만화다. 처음 만난 박흥용 만화가의 다른 작품도 봐야겠단 생각이 슬슬 올라온다. 이러다 만화에 중독될까 걱정스럽군.^^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기가 안 들어오던 시대...30대 초반까지는 일제시대 이야기인줄 아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순오기 2008-09-07 23:31   좋아요 0 | URL
내 고향에도 74년 8월 15일에 들어왔어요. 육영수 여사 돌아가신 날...

노이에자이트 2008-09-08 15:24   좋아요 0 | URL
오...유신이 한참이던 때군요.

순오기 2008-09-08 19:18   좋아요 0 | URL
유신이 한창이었어도 그 충청도 촌에서 우린 '대중은 김대중' 소리치며 다녔어요. 촌이지만 골수 야당이어서 박정희가 헬기 타고 다녀간 곳이었어요.ㅎㅎㅎ

노이에자이트 2008-09-08 21:49   좋아요 0 | URL
김대중...하고 돌아다니던 때면 1971년 4,27선거를 말씀하시는 듯.그땐 유신 전인데요.유신이 1972년 10월이니까요.충청도 어디실까.저는 홍성과 제천에서 산 적이 있어요.

순오기 2008-09-09 00:47   좋아요 0 | URL
딱, 걸렸군요. 윗 글에 따라 '유신이 한창이던'이라고 써 놓고 선거때 얘기를 했더니!ㅎㅎㅎ '유신만이 살길이다' 이런 구호도 있었죠.
충청도에서도 산 적이 있다니 두루두루~~ 뭘 하는 분인지 궁금한데요.^^
저는 충청도 당진이요. 그 중에서도 '한보제철'이 있는 송악이죠. 송악 인터체인지로 나가면 바로 우리 고향땅, 심훈이 '상록수'를 썼던 필경사에서 조금 들어가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9 15:32   좋아요 0 | URL
꼬마였을 때라 제 직업과는 관계없었어요.그때 정말 귀여워서 동네 이모,아줌마들이 저를 좋아라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그런데 분위기가 향우회같아요.제가 현대사 쪽 책을 많이 봐서 그 시절에 대해서 콕콕 잘 집어내죠.오....한보제철!!! 한때 신문에 많이 나왔던 그 기업이군요.

반달 2008-09-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쿄쿄쿄... 순오기님 서재에 오니 좋은 정보 얻어가는 재미가 쏠쏠하군요.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아마추어 햄입니다. 저와 아이는 전화급이라 모스 부호는 소화하지 못하고요... 제 남편은 전신급이라 요거이 소화가 될 겁니다. 하여간 꼭 살 책으로 찜합니다. 40여 년 전 과거가 어떤 신호를 보낼까요?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네요. 요즘은 책을 보며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혼란스러움을 정리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

순오기 2008-09-07 23:32   좋아요 0 | URL
아무추어 무선 햄 가족이군요.ㅎㅎ
서재인들의 리뷰를 볼 때마다 사야겠단 생각이 강렬하지만...다 사서 볼 수는 없으니까 엄선하시와요.^^

마노아 2008-09-0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찜만 하고 여직 구입은 못했어요. 중고샵 오픈하고는 신간보다 구간을 먼저 사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반드시 읽고 말 박흥용표 책이지요. 저자님 새 책 또 나왔더라구요. 엄청 부지런하세요^^

순오기 2008-09-08 19:1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때문에 알게 된 이름이지요. 다른 책은 못 봤어요~ 이 책은 내가 첫 리뷰를 올렸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