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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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해 마노아님한테 생일선물로 받은 책인데, 10월 후애님과의 경복궁 만남 상경 길에 읽었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노희경 극본의 드라마에 빠져들어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곤 뒤늦게 왜 사람들이 노희경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우리집에선 막내 탄생에 얽힌 얘기가 자주 거론된다. 나는 결혼전부터 아이가 많으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생활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까 셋째를 낳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의 섭리로 우리에게 와야 될 생명이었는지, 둘째가 17개월이고 임신주기도 아닌데 덜컥 품게 되었다. 임신을 확인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아는지 뜬금없이 백설기가 먹고 싶어 이웃 아짐들하고 쌀 걷어서 떡을 해 먹었는데, 그게 입덧이었던 거다. 백설기를 먹은 덕분인지 삼남매 중에 가장 뽀얀 아이를 낳았다.^^

문제는 셋째 임신과 더불어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덜컥 그만두었고, 대책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두번째여서 좀 겁을 줄 양으로 "대책없이 직장을 덜컥 덜컥 그만두니, 어떻게 셋째를 낳겠느냐?"고 위협했었다. 그때 우리 남편은 진지하게 받아 들여 "어떻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냐? 평생 책임질테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했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비화를 들려줬더니 '셋째는 아빠가 살려낸 목숨'이라며 자주 입에 올리게 된 것이다.

어쩌면 상처가 될 얘기를 이렇게 대놓고 하냐고 큰딸이 퉁박을 주고, 막내도 같이 웃다가  "나 상처받았어."라고 하지만, 정말 아이를 지울 마음을 가졌다면 드러내놓고 우스개로 삼지 못할 테니까 내 양심에 걸리지는 않는다. "너는 우리에게 '덤'으로 온 선물이야! 엄마아빠가 이혼하지 않은 건, 셋째가 있기 때문이지."라는 말로 치하를 한다. 이혼만이 해결인 듯 감정이 극으로 치달을 때 '애를 셋이나 두고 이혼하는 건 미친짓'이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까. 그땐 정말 치열하게 미워했는데, 지나고 보니 '미움도 사랑'이었다는 걸 알겠더라.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걸 깨달은 건 훨씬 이후의 일이었기에, 노희경이 주장하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노희경 탄생 비화를 읽으며 울컥 눈물나서 지하철 환승 구간을 지나 동대문까지 갔었다. 딸이라고 윗목에 밀어놓고 젖도 주지 않은 엄마는 할머니가 그랬다며 거짓말을 지어냈지만, 엄마의 죄의식을 이해하고 보듬은 노희경은 이미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다. 

   
  그때 내 어머니의 나이는 서른한 살의 꽃다운 나이. 자식은 여섯에, 남편은 남만 못한 남자. 힘도 들었겠다. 자식이 짐스럽다 못해 원망도 스러웠겠다. 없었으면 천번 만번도 바랐겠다. 굳이 출생 즈음의 이야기는 안 해도 되는 걸 거짓말까지 해가며 나에게 해준 건, 죄의식이었겠다. 너무도 미안해서였겠다. 이후에, 나를 참 예뻐라 했으니, 그것으로 다 됐다.(32쪽)  
   

'어른이 된다는 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어지고 투덜거리지 않게 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상처받을까 봐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속성을, 자기 체험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하는 그녀가 예쁘다. 

그녀의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녀가 어떤 철학과 소신으로 드라마를 썼는지는 알겠다. ’드라마라고 무조건 재밌어야 하는가? 드라마를 왜 소설보다 한 수 아래로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성찰하며 시청률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인간을 말하는 드라마를 만든 표민수씨와의 만남은 찰떡궁합인것 같다. 오십 중반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그녀는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엄마로 그 한을 풀어내는 듯하다. 젊은날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돌아가시기 전 수발을 들며 화해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이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게 사랑하기에도 부족할진대, 우리는 미워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돌아보며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도 갖게 하는 책이었다. 2009년에 맘껏 사랑하지 않았다면 2010년엔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살자. 새해에는 더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노력을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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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1-14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드라마를 가끔 보면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등장하는 '엄마'들을 각별하게 그려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상처에 얽매여 사는 사람과 극복한 사람과는 참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군요.

순오기 2010-01-14 23:39   좋아요 0 | URL
드라마에 등장하는 '엄마'의 모습은 모두 각별하군요. 그녀는 분명 상처를 극복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해요.

메르헨 2010-01-14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살지 않았는데 살아보니 그냥 다 괜찮더라구요.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것도 다...때가 되니까 괜찮아지더라구요.
아...특히 가족간의 감정이란게 미움은 정말 한때였다는걸 ... ^^
노희경씨의 에세지 아직 못 읽었어요.
그의 작품은 현실적이면서도 가슴을 좀 후벼파기도 하고...글도 그런가
싶어서 혹 아니면 어쩌나 싶어서...순오기님 리뷰를 보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듭니다.^^

순오기 2010-01-14 23:40   좋아요 0 | URL
어른들 말씀에 '세월이 약'이라고 했지요.^^
그냥 가볍게 부담없이 읽기 좋은 책이 에세이니까~ 주르르 보기 좋아요.^^

치유 2010-01-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말씀이 맞는것 같아요..진짜로 그렇게 맘 먹었더라면 미안해서라도 아이에게 그런 말 못해주겠지요??덤으로 온 선물로 인해 지금 행복하시고 미워할수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엇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사랑이었단란걸 알고..인생이 이런건가봐요..
님의 리뷰 제목이 맘에 콕 와 닿아요..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인생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미워하진 말자..맘에 새기네요..

순오기님..새해 들어 처음으로 댓글 남기네요..
새해 더욱 좋은 일들로 행복하시길..

순오기 2010-01-14 23:42   좋아요 0 | URL
우리 막내는 어딜가도 사랑받을 캐릭터에요.^^
진정한 사랑은 치열한 미움을 겪어봐야 아는 것 같아요.
배꽃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나날이 행복하시기를...

마노아 2010-01-14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온몸으로 글을 쓴다고 느끼는 작가들이 있기 마련인데 노희경씨가 꼭 그랬어요. 책은 드라마보다 오히려 울림이 덜했지만, 그 진심은 그대로 전해졌지요.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인 것을, 우리가 가슴으로 체득해야 할 진리예요. 자꾸 망각하니, 자꾸자꾸 더 자각해야 해요.

순오기 2010-01-14 23:44   좋아요 0 | URL
나는 고두심이랑 배종옥이 모녀로 나오는 거는 몇 버 봤는데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에 빠지면 매일 같은 시간에 거기 얽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잘 안봐요.ㅜㅜ 마노아님 덕분에 좋은 책 잘 봤는데 리뷰는 엄청 늦었지요.^^

같은하늘 2010-01-15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아이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못보고 반납했는데... 순오기님 리뷰를 보니 다시 빌려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순오기 2010-01-15 03:26   좋아요 0 | URL
가볍게 읽기 좋아요~

. 2010-01-1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어른되면 이해할지도 모르지.
근데 엄마 저번엔 '엄마가 진심으로 했으면 이런 말을 했겠니'이 말 안 했는데 요즘 한다..?ㅋㅋㅋㅋㅋ

순오기 2010-01-16 02:06   좋아요 0 | URL
사랑하는 우리 셋째, 엄마가 진짜 그런 맘 먹은 적은 결코, 없다고 말했었는데...막내가 없었다면 사는 재미를 많이 모르고 살았을 거야! 엄마가 사랑하는 거 설마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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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골든글로브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과  2009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 음향상까지 8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굉장한 광고에도 영화를 놓치고 말았다. 덕분에 원작소설을 보는 즐거움은 한껏 누릴 수 있었으니 오히려 영화를 못 본게 고마웠다. 450쪽이나 되는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잡으면 손에서 놓기 어렵다. 책을 읽는 동안 중독 수준이 알라딘 접속도 안 했다면 이해되려나.^^ 

비카스 스와루프는 인도의 현직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두 달 만에 집필했다니 정말 놀랍다. 아마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묘사한 신들린 집필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5년 발표된 후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우리나라 등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그 인기와 명성에 걸맞게 파리 도서전 독자상, 남아프리카 부커상, 벤저민 프랭클린 상 등 여러 문학상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책 속의 람 모하마드 토마스처럼 작가에게도 행운이 따른 듯하다.   

배움이 없는 가난한 웨이터가 TV퀴즈쇼에서 열세 문제를 척척 맞추며 십억의 상금을 거머쥐게 된 열일곱 살 청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퀴즈쇼와 교차 진술된다. 상금을 주지 않으려는 방송국의 음모로 그는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하고, 알지도 못하는 변호사가 그를 구하러 나타난다. 그가 어떻게 모든 답을 알게 되었는지 자기 삶을 들려주며, 퍼즐을 맞추듯 수수께끼가 풀린다. 교묘하게 짜맞춘 문제와 그의 삶이 엮어내는 반전이 놀랍다.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돼 지루할 틈이 없으며, 그의 삶과 퀴즈쇼의 문제가 기막히게 잘 짜인 소설적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신부님 손에 거둬져 힌두교와 이슬람, 카톨릭 세 종교를 담은 이름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 불린다. 일곱 살까지는 신부님 손에서 곱게 자라며 글과 영어를 익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성당을 떠난다. 그 후 전전하게 되는 주인공을 따라 인도의 슬럼가 다라비와 델리 등 그의 동선에 따라 거침없이 진행된다. 신부님의 죽음 이후 꼬이기 시작하는 토마스의 삶은, 인도 사회의 밑바닥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고아원 관리자들의 부패, 돈 있는 자들의 욕심과 비열함, 국민에 봉사해야 할 정치가와 경찰들의 썩어빠진 행태는 우리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선이란 탈을 쓰고 행해지는 조직폭력배에게 잡혀 구걸해야 하는 아이들, 그 틈바구니에서 용케 도망쳐 나온 살림과 토마스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비록 열두 살의 어린 나이지만 자기 삶에 용기있게 대처하는 모습은, 아이들을 과잉보호하지 말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신부님에게 배운 글과 영어는 그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성당에서의 성장과정이나 그 후 겪는 인생살이가 결코 만만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사람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된다.

누군가를 돕기 위한 일이 사람을 죽게 하고 그 두려움에 도망쳐 새로운 삶을 살지만, 토마스는 같은 상황이 와도 역시 똑같이 행동 할 것이다. 그의 행운은 늘 손에 잡으면 빠져 나가는 마술 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가 퀴즈쇼에서 모든 답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마지막에 그를 구하러 온 변호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그가 얻은 행운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그 삶의 결과였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행운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내게 찾아 온 소중한 인연들을 어떻게 했는냐에 따라 결국은 행운을 가져 온다는 감동이 밀려온다. 읽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을만큼 몰입한 멋진 소설이었다. 영화를 못 봤지만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고 하니까, 아직 책을 못 봤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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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0-01-1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지도 모르고 영화관 갔다가 다 보고 나서 제목을 몇 번이나 물어 보았던 영화!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순오기 2010-01-17 21:40   좋아요 0 | URL
나는 영화를 못 봤으니까, 영화 제목을 따른 개정판보다는 원제목인 Q&A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똘레랑스 포로젝트 1권, 2권, 8권>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빅뱅과 거북이 - 우주 탄생 똘레랑스 프로젝트 1
아나스타시야 고스쩨바야 지음, 이경아 옮김, 표트르 페레베젠쩨프 그림 / 꼬마이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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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똘레랑스 프로젝트 1015'는 10세에서 15세를 대상으로 만든 책인 듯하다. '사람들 사이에 관용과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과 다른 것은 무조건 미워하고 공격하는 현상을 사회가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소개하는 글 7쪽)로 만들었다고 한다.  

기획의도는 훌륭한데 주대상으로 삼은 10~ 15세의 청소년들이 잘 읽을지는 미지수다. 우리집 막내는 문자중독 수준인데도 2권 '가족'만 읽고 다른 책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15세)니까 이해 못할 건 없는데 그닥 보고 싶지 않단다. 표지를 봐도 칙칙한 색깔에 시리즈물의 특징인 꽂았을 때 '뽀대'나는 양장본이라 십대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우리 아이들의 평가는 '엄마들이 혹해서 우리 아이가 이런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사들이고, 왜 이 책을 안 읽느냐고 구박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란다.^^ 종이도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을까, 종이를 낭비한 거 같은 아쉬움도 있다. 아무리 기획의도가 좋고 내용이 훌륭해도 주대상인 독자가 외면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원작을 그대로 한국어판으로 냈는지 모르지만, 10~ 15세의 관심을 끌수 있는 가벼운 표지와 펼쳐보고 싶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편집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치면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키릴이란 아이가 언덕 위 이상한 집에 호기심을 갖고 잠입하는 도입부는 충분히 흥미롭다. 마치 추리 소설처럼 긴장되고 박사님 집에서 만나는 신비한 것들은 환타지 같다. 키릴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을 깔고 가는 진행이 똘레랑스를 표방한 책답다 생각된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제때에 실수를 인정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는 키릴 엄마의 가르침은,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아서 배시시 웃었다.^^

1975년 이 집에 딱 한번 찾아왔던 영국소녀가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며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을 지칭해 웃음을 유발하고, 키릴이 쓰러뜨렸던 무화과 나무가 세계수였는데 그로 인해 강도 8.7의 지진이 발생해 해안 지역 쓰나미로 수천명의 사망자와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사마일 게오르기예비치 박사님의 이야기는 관심을 집중시킨다. 

거미가 공격할 줄 알고 겁을 먹고 도망치다 무화과나무를 쓰러뜨렸던 키릴의 얘기를 듣고, 우리가 일으키는 문제의 반은 잘 모르거나 낯선 것을 대할 때 더럭 겁부터 먹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는 말은 공감이 된다. 박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납득이 가지 않으면 반론을 제기하거나 질문하는 키릴은 제법 야무지다. 이세상은 누가 창조했을까? 왜 이 세상을 만들었을까? 신들은 왜 사람이 필요했을까? 등등 처음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우주탄생 신화를 설명해 간다. 고대부터 사람들이 사는 지역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창조신화가 생겨났다. 현대 과학으로 증명된 신화의 세계는 각기 다르지만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어떤 창조신화든 우주의 근본인 알 세계수를 상징하는 의미들이 숨어 있다. 그 알은 현대 과학의 빅뱅 이론과도 연결된다. 아이돌 그룹 '빅뱅'은 잘 알지만 과학이론 '빅뱅'을 잘 모르는 청소년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박학다식한 청소년이 되어 학습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우리도 학창시절 즐기던 토론주제였는데, 여기서도 키릴과 사마일 박사님은 진지한 대화로 풀어나간다.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할머니 친구가 지구는 거대한 거북이 등에 딱 붙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누차 설명한다. 우리의 믿음이 진리라고 확신하는 태도가 훨씬 위험하다고 말한다. 사마일 박사님의 임무는 누구의 신화와 믿음이 옳은지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의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것이든 나만 옳다는 주장은 평화와 균형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세상이 창조된 대사건은 민족마다 다른 창조신화를 만들어냈고 현대고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관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이 책은 소개글에서 밝혔듯이 나와 다르고 낯선 것,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한 것을 알려주고 깨우쳐서 이유없이 적대적인 마음을 품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인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똘레랑스 시리즈가 1015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깨는 설명이 간간이 끼어들지만 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부록으로 달려온 똘레랑스 다이어리는 날짜가 써 있지 않은 월간계획표와 위크리, 메모장과 용돈 기입장이 있어, 청소년들이 스케쥴 맟 자기 관리하기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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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장난>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못된 장난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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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태어난 아이, 우리의 주인공 스베트라나 올가 아이트마토바는 열네 살이다. 기차에서 출산을 도와준 두 여자의 이름이 스베트라나와 올가였기에 그 이름을 붙였다. "인생에는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말하는 스베트라나는 키 173센티에 O형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학생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이주한 엄마와 새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실업학교에 다니던 스베트라나는,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한 명의 통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고 엘리트만 다니는 '에를렌호프 김나지움'으로 전학간다. 무한한 가능성과 행복을 꿈꾸며 전학 간 아이가 불과 4개월만에 킬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진술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에를렌호프 김나지움 아이들은 가정이 깨져 부모로부터 기숙사에 버려졌다고 생각한다.이혼으로 가정이 깨지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김나지움 아이들은 스베르타나를 괴롭히는 못된 장난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통학하하는 스베트라나를 질투하고, 자기들과 신분이 다른 가난한 이방인 주제에 공부를 잘하고 적응도 잘해서 왕따 시킨다. 명품만 걸치는 아이들은 스베트라나의 옷이 싸구려라고 대놓고 무시하고 모욕을 주며,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듯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다. 이방인이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스베트라나는 아이들과 같은 소속감을 갖고자 집착한다. 그애들과 똑같은 명품을 걸치면 친구로 받아줄까 싶어 도둑질을 한다. 덜덜 떨며 처음 물건을 훔치던 스베트라나는 점점 대범해져 옷과 신발, 벨트, 운동화, 향수 등 필요한 모든 것을 훔친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헛간에 숨겨두고 등하굣길에 갈아 입는다. 

나도 중학교 2학년 4월에 충청도 시골에서 인천으로 전학했기에, 스베트라나에게 완전 감정이입이 됐다. 전학 초기에 똑똑해 보이는 이*우에게 친구하자고 쪽지 보냈다 거절당했고, 짝꿍이던 68번 윤*실 외엔 다른 아이들의 친절을 받지 못했다. 교과서가 달라 배우지 않은 인수분해 숙제를 못했을 때, "애들은 뭐 알아서 하는 줄 아냐? 다들 베껴내는 거야!"라면서 복도에 나가 무릎 꿇게 했던 주*동 선생님은 지금도 용서하지 못한다. 나의 자존심이 한없이 뭉개져, 인정받기 위해선 공부를 잘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촌닭 같았던 내 눈엔 아이들이 다 잘나 보여 엄청 떨었던 5월 중간고사에, 비교적 좋은 성적을 얻어 비로소 아이들에게 존재감을 인정받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35년 전이라 지금 아이들보다는 순진했을 텐데도 전학생이 무리에 끼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저런 감상으로 스베트라나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두 번이나 펑펑 울었다.

청소부의 딸이라는 걸 알아버린 김나지움 아이들은 사람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짓들을 저지른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극치를 보여주는 인터넷 카페에 올려진 스베트라나의 사진과 글, 삭제하거나 댓글을 달 수 없는 스베트라나가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수시로 보내는 비열하고 혐오스런 문자와 사이버 스토킹은 똑똑한 스베트라나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는 스베트라나는 점점 마르고, 열성적이었던 공부에도 의욕을 잃는다. 수업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못된 장난을 피하기 위해 쉬는 시간은 화장실로 숨어들거나, 식당에도 가지 않고 도서실로 도피한다.

똑똑하고 활달했던 스베트라나는 불과 4개월 만에, 아이들의 왕따와 사이버 스토킹에 몸과 영혼이 파괴된다. 스베트라나에게 유일하게 잘해주는 라비가 심각한 상황을 알고 돕겠다고 말했지만, 스베트라나는 이미 아무도 믿지 못할 만큼 지쳐버렸다.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으로 라비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기대어 울 수 없었다. 아~ 라비의 말처럼 선생님께 모든 걸 다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다고 맘을 졸였다. 최진실씨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사이버 스토킹의 폐해를 알기에, 스베트라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는 사람, 우는 모습을 마음 놓고 보여주어도 괜찮은 사람이 없다면 누구든 끝장이다!"(267쪽)  
   

라비가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지만, 스베트라는 마지막 도피처였던 헛간까지 아이들이 알아버렸기에 이미 끝내기로 작정한 후였다. 스베트라나는 도둑질을 고백하고 학교를 나와 철길에 몸을 눕힌다. 하지만 스베트라나의 죽음을 허락지 않고 목숨을 건져 낸 손길이 있었다. 아슬란 위츠귈은 달리는 기차에서 던져 버린 아들녀석의 비싼 가방을 찾으러 나왔다가 스베트라나를 구한다. 아슬란은 한 생명을 구한 알라신을 찬양하고, 스베트라나는 옷을 가다듬고 머리빗을 찾는다.  

그 후 아무도 못된 장난을 하지 않는 안전한 곳, 킬 병원 정신병동에서 지난 일을 기록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한다. 인생이란'앞으로'만 살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새기며, 엄마 아빠와 프랑스 여행길에 오른 행복한 마무리에 마음이 놓였다.  

청소년 소설에도 죽음으로 끝내는 작품이 점점 많은데, 스베트라나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본래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김나지움 아이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개과천선 했을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김나지움 아이들도 상처받은 아이들이니 따뜻하게 품어줘서 사랑을 느끼면 좋겠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청소년들이 이 책을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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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바람 2009-12-21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과 영혼이 파괴되는 잔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런 왕따,스토킹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것 같아 가슴 아파요.스스로 의연하게 견뎌내고 주변사람들이 따뜻하게 감싸주면 좋겠어요

순오기 2009-12-21 17:42   좋아요 0 | URL
왕따나 사이버 스토킹은 본인이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다는 게 문제지요. 우리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지요.

소나무집 2009-12-2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얘들 전학시켜놓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먼 곳에서 전학 왔다고
호감을 보이며 잘 지내는 것 같아요.
님도 전학의 아픔이 있었군요.
저도 시골 중학교 다니다 천안으로 여고 가서는 비슷한 일 겪기도...

순오기 2009-12-21 17:43   좋아요 0 | URL
전학은 참 두려운 일이기도 해요~ 적응을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까요. 선우랑 지우는 잘 할테니 걱정마셔요! 제가 보증합니다.^^

카스피 2009-12-2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어린아이가 어른들보다 좀더 잔혹한 데게 있다고 합니다.뭐 일종의 성악설이라고 할수 있는데,그런것을 잡아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할수 있지만 요즘 어른들이 안하니 아이들이 비뚤어 질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순오기 2009-12-24 01:39   좋아요 0 | URL
갈수록 어른도 아이도 잔혹해지는 거 같아요.ㅜㅜ
 
<10대, 세상을 설득하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10대, 세상을 설득하라 - 가슴속 열정과 의지로 세계를 사로잡는 기술
이정숙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이렇게 친절한 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필요한 것을 골라서 소화되기 쉬운 유동식으로 만들어 준 친절한 책이다. 

우리가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말을 잘하면 어떤 상대라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말하여 내 말에 동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생기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또한 무조건 영어부터 잘하려다 보니 서툰 우리말 때문에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말도 옳은 말씀이다. 모국어를 잘 알면 이해력이나 표현력이 좋아서 영어도 늘고,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 내용이 중요하다. 

말을 잘해야 능력을 인정받는 시대에 사는 우리, 말하기 실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다는 것에 일단은 안심이다. 왜 우리가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지,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만한 오락 오바마, 윈스턴 처칠,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로댐 클린턴, 리처드 브랜슨을 비롯해, 안철수교수와 강인선 기자까지 사례를 들어가며 설득한다. 그들은 말을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자신에게 적용해보면 좋을 듯하다. 

나의 생각을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쉽고 자연스럽게 듣는 사람이 즐거워 할 말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소한 것도 관찰하고 잡다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풍성한 대화거리를 만들고, 입 밖으로 소리내 연습하거나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듣는 사람이 즐거워 할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보다는 '너'를 많이 사용해 공감을 끌어내고, 껄끄러운 말도 매너있게 해 상대가 존종받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상대의 약점이나 험담을 피하고, 상대의 성격이나 상황을 파악해 농담의 수위를 조절하라며 10대들의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도왔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하기의 핵심 기술은 무엇일까? 10대들의 상황에 맞게 수업시간 발표하기, 발표를 듣고 질문하기, 질문에 대답하기, 토론을 잘하기 위한 방법도 제시했다. 한 줄 세우기의 성적보다 말하기 실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 말하기 실력으로 인생의 무대를 바꾸고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꼼꼼하게 읽고 적용해 볼 만한 책이다.

정치인들이 미국의 문제점을 말할 때, 미국인의 위상을 되찾아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 준 오바마의 연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힘있는 연설과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은 윈스턴 처칠.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말하며 설득력을 갖춘 오프라 윈프리. 브룩클린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구경하며 혼자 중계방송을 연습한 래리 킹. 평생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으십니까?라는 말로 대기업 코카 콜라 사장을 사로잡은 애플사의 청년 스티브 잡스. 말하기 능력으로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 이들에게 한 수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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