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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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범도

송은일 지음 | [바틀비]

 



우리는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해준 독서


 

저 산 아래에는 나의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적이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싸워야할 것인가?’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유해가 봉인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잃고 타국의 숲 속에서 싸워야 했을 그의 고뇌와 결의를 막연히 상상해보았다. 그가 아내와 큰 아들을 적으로부터 구하지 못한 단장의 슬픔을 삼키고 국경을 넘은지 113년 만에 귀환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제작년의 3·1절 기념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기로 했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들었을 때만해도, 나는 장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소설가 송은일의 나는 홍범도를 읽고서야 장군의 업적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개인으로서 그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소년 홍범도는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 홍범도는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와 일본에 부역하는 상관의 명을 거부할 줄 알았던 까닭이다. 바람에 휘지 않으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그는 부당하게 참수형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 있는 다른 인물의 도움으로 청년 홍범도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야할지 분명히 깨닫고 행동에 옮긴 인물이었다.


홍범도의 연보를 보면서 그가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십 수 년 전에 이미 국내에 들어온 일본군과 대적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여러 계층에서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기득권자들과 엘리트 계층은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했던 이들도 생겨났다. 오히려 더 이상 기댈 데 없는 사람들,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싸웠다. 특히 포수가 많았던 함경도에서의 저항이 거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봉오동을 품은 산 속에서 나날이 강해지고 거대해지던 적군을 보고 홍범도 장군은 수없이 회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기어코 시작하고 이어나간 사람은 위태로운 나라와 가족의 운명 속에서도 떳떳한 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전우들의 신뢰와 결의로 끝끝내 이긴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 테다.


소설을 읽으며 홍범도와 나의 시공간에 가로 놓인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를 상상해보았다. 그의 결단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나라와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기에 그만큼 더 고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을 얻은 무적의 장군이었지만, 그 역시 거대한 세계사의 물결과 국제 정치의 역학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무장해제 요구에 불응하여 많은 동지들이 전사하고 러시아군에 강제 편입되었던 자유시 참변을 비롯하여,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수송열차를 타야 했을 장군과 고려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홍범도는 머나먼 타지에서 고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서거했다. 만약 그의 부대가 무장해제 당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면 해방을 맞지 않았을까? 질 수밖에 없었던 싸움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운명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고뇌했을까.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 소식을 접하고 소설을 읽으며 새삼 우리 근대사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패배의식과도 같은 잔재를 내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같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작가의 고백은 현재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 역사에 대해 앞으로 더욱 알아가자고 격려하는 말로 들렸다. 의연하게 싸웠던 조상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절실히 잡아야할 호시기는 어쩌면 그릇된 역사관의 영향을 받은 패배의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호시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던 셈이다. 우리 후손에게는 나라를 침탈한 적들과 떳떳하고 용감하게 싸운 선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총을 들고 싸운 이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사람들 또한 기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군은 의병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 부분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일군에 대항하여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연합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인 5천 여 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 벌어질 일본군의 대량학살과 비인간적인 만행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희생당한 양민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해방을 2년 남기고 서거했던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까지 장군의 묘역을 지켜온 고려인들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세대를 이어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들이다. 지난여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서거 이후 유해 발굴 작업 시까지 정성을 다해 묘역을 관리해왔던 고려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대가 우거진 척박한 타지에서 땅을 일구고 벼농사를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자랑스러운 동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내에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묘역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려인들에 대한 역사도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역사엔 고난과 애환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간직해온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과 독서를 계기로 그와 의병들의 업적뿐만 아니라 이들을 도왔던 많은 양민들의 희생,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온 고려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은 후손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테다. 우리의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보고, 올바른 길을 한 발씩 내딛는 일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이는 우리는 누구였고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 "내가 잡아볼까 하는 호시기는 조선을 향해 총질 해댄다는 왜국 종자들입니다." (34)

[2] "우리는 각자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껏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키면서 일본을 몰아내야 합니다." (109)

[3] "모든 전투는 적의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어로써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공격으로써 승리하는 것이다." (151)

[4] "눈 내린 벌판을 갈 때,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 일이다. 오늘 네가 간 자취를 따라 뒷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리니." (242)
- 여천이 신계사를 떠날 때 의성 대사가 건네준 족자의 글

[5]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적진에 가서 빌붙는데 누구는 무기를 치켜들고 적진으로 돌진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가." (284)

[6] "구국일념 의병 전사 어디 있나. 어디에 있나.
하느님도 임금 영웅도 우리를 구제치 못하리.
우리는 다만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리. 자유를 누리리.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일제강도 무찌르고 우리나라 되찾으리. 꼭 찾으리.
간절한 의지 불굴의 용기로 싸우리. 빛나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303)
- 홍범도의 풍산 의병대가 붙인 의병 모집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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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D.H.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오영진 옮김 / 열화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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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D.H.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

D.H. 로렌스(D. H. Lawrence) 지음 | 오영진 옮겨엮음 | [열화당]

 



‘D.H. 로렌스의 탄생 136주년,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느낀 것들

 


오늘(2021911)‘9·11사건이 발생한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지만,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D.H. 로렌스의 생일이기도 하다. 지난달에 그의 자전적 에세이 귀향을 읽고 미뤄두었던 독후 기록을 간단히 남겨본다. 그는 136년 전(1885) ‘오늘영국 중부지방 노팅엄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45년간의 짧은 생을 누리다가 프랑스의 방스 지역에서 사망했다. 그는 평생 폐렴으로 고생했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로렌스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 하나는 부인 프리다를 만난 일이다. 로렌스는 27살이던 1912년에 노팅엄 대학 교수 어니스트 위클리의 부인 프리다 위클리를 만났다. 같은 해에 프리다는 저명한 교수 남편과 세 아이를 포기하고 로렌스를 따라 평생 함께 한다. 로렌스의 사후 5년 째 되던 1935년에 프리다는 새 애인을 방스로 보내 로렌스의 시신을 화장한 뒤, 뉴멕시코 주 로키 산맥 자락에 위치한 카이오와 목장으로 가져오게 했다. 이 목장은 로렌스와 프리다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다. 프리다가 사망한 후 두 사람은 이 곳에 함께 묻혔다.


 

에세이 모음집 귀향은 로렌스가 생전에 일간지나 잡지 등에 기고하여 발표한 글들을 국내의 영문학 전공자가 선별하여 번역한 결과물이다. 이 에세이집은 자세한 정보 없이 로렌스에 대한 관심만으로 찾은 도서였기에, 큰 기대 없이 읽었다. 내가 보기에 이 에세이들은 인간 로렌스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로렌스의 내밀한 생각과 문제의식을 그의 목소리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꼼꼼하고 충실한 번역자의 주석은 기대이상이다. 로렌스의 작품이나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책머리에 상세한 로렌스의 연보와 다양한 사진은 반가운 자료들이었다. 이 책에 실린 로렌스의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28(1913)의 청년 로렌스의 모습이다. 병색이 짙고 앙상하며 침울한 눈빛을 하고 날카롭게 렌즈를 응시하는, 잘 알려진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 사진에는 평생의 반려자가 될 프리다와 막 만나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자전적 소설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후 찍은 당당한 모습의 로렌스가 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눈망울로 의기양양하게 렌즈를 바라보는 로렌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책에는 6편의 비교적 짧은 자전적 에세이와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라는 다소 긴 에세이가 담겨 있다. 근대화의 한 복판에 선 문인으로서 그의 에세이에는 비판적인 관찰과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자전적인 에세이에서 로렌스의 시선은 날카롭다. 또 목소리는 줄곧 솔직하며, 때론 격정적이다가 우울해지기도 한다. 귀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고향의 전원지대를 이야기할 때 풍경의 아름다움과 풍경이 주는 신비한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반면 근대화로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선, 사라져간 인간의 삶에 대해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드러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고향에 대해 우울감을 토로한다. “내 고향 지역으로 가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66)라고 말이다. 근대화와 고향, 그리고 상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할 때 중요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로렌스의 에세이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은 그가 버릇처럼 지니고 있던 계급에 대한 자의식이었다. 그가 계급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일종의 분열적인 자의식이 느껴질 정도다. 하층노동자(광부) 아버지의 자녀로서 글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된 로렌스는 세간의 기준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인 셈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그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민중에 대한 공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정신적 귀족주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귀족 혹은 신사 계급이 되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나온 노동자 계급에도 진정으로 속하기 어려웠다. 계급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일종의 경계인이었던 것이다. 고향의 전원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타지에서 살 때보다 오히려 고향에 불편함을 느꼈던 경계인. 청년이 되어 고향을 떠난 이후 20년 가까이 부유하듯 방랑생활을 했던 로렌스는 계급의 어느 쪽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접할 때, 작가의 관점과 의식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계급 문제를 염두에 둘 수 있겠다.


 

흔히 로렌스는 외설시비에 휘말린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곱씹어볼만한 주제를 더 발견한다. 아직 로렌스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사랑-은 하나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삶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83)라며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게는 생명을 지닌 존재의 본질적인 생기/활력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나는 생이 있는 곳에는 본질적 아름다움이 있음을 안다.”(83)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문명의 근대화가 사람들로부터 생기/활력을 앗아가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양산한다고 바라보았을 것 같다.


 

()’에 관한 주제에서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라는 꽤 긴 에세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견해를 밝힌다. 그는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이 사이비라고 일갈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가장 큰 기만이다. (...) 특히 사랑 문제에서는 사이비 감정만이 존재한다. (...) 그리고 사이비 정서로는 결코 진정한 성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어떤 것이 성이다.”(114-5)라고 말이다. 그에게 은 무엇보다 서로에게 거짓이 없고 자연스러운 그 무엇이었을 테다. 작위적이고 기만적인 문명에 대비되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이것이 곧 그가 바라보고 추구했던 ()’이면서 동시에 의 참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로렌스에게 ()’()’은 진정한 사랑이 매개가 된 동일한 대상의 두 모습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의 다른 이름이듯 말이다.


 

로렌스의 자전적인 에세이를 읽으면서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그의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과 경계인으로서 부유하듯 살았던 실제의 삶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또 계급의 어느 쪽에도 진정으로 뿌리내리고 속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 뿐 아니라 사망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귀향이라는 글에서 그는 죽어서도 부유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직감했던 것일까.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도 고려해봄직하다. 근대화로 인간이 잃어버린 진정한 삶(그리고 성)의 의미를 말이다. 끊임없이 부유하면서도 집요하게 회복하고자 추구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가치가 아닐까 싶다. 에세이집 귀향에서는 평생 안주하지 못했던 한 작가의 고독하고 앙상한 어께를, 상실과 위기에 이른 현대인의 모습과 함께 볼 수 있었다.

 


1913년 6월 26일 촬영한 사진. D.H. 로렌스(당시 28세). 1912년 아내가 될 프리다와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잠시 귀국하여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직후의 모습.





"나는 온갖 집착과 타락에 맞서 싸우며 내가 그토록 애써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생(生)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81)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생과 그 움직임에 민감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83)

"우리가 목표로 살아야 할 것은 바로 생이며, 생기, 상상력, 각성, 그리고 다른 존재와 맺는 접촉의 아름다움이다. 완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야말로 불멸이 되는 것이다." (84)

"오늘날에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이 사이비다. 다른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가장 큰 기만이다." (114)

"그러나 오늘날, 특히 사랑 문제에서는 사이비 감정만이 존재한다. (...) 그리고 사이비 정서로는 결코 진정한 성(性)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어떤 것이 바로 성이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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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 가장 어두울 때의 사랑에 관하여
짐 디피디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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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 가장 어두울 때의 사랑에 관하여

(The Day the World Came to Town: 9/11 in Gander, Newfoundland)

짐 디피디(Jim DeFede) 지음 |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 인간의 선함은 우리 안에 있다

 


오늘(2021911)은 미국의 ‘9·11 사건이 발생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에 복학생이었던 나는 TV를 통해 강박적으로 재현되던 영상을 기억한다. 한 대의 비행기도 아니고 여러 대가 납치되어 미국의 상징적인 무역센터 건물 두 동과 펜타곤을 공격했던 사건. 수천 명의 사람들은 전 세계가 목격하는 가운데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이 가상현실과도 같은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20.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 이들의 가족, 친구들은 각각 어떤 경험을 하고 또 트라우마를 겪었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사건이 있던 당일 미국의 영공은 순식간에 폐쇄되었다. 당시 미국 상공에 있던 4546대의 비행기는 미국 내 착륙이 금지되었다. 이들은 하늘에서 출발지로 회항하거나 주변국 공항에 임시착륙을 해야 했다.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발생한 한 사건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캐나다의 소도시에 모이게 되었다. 저널리스트 짐 디피디의 기록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9·11사건 당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주의 작은 섬 갠더(Gander)에 위치한 공항에 임시 착륙했던 사람들이 경험한 6일간의 기록이다.


캐나다 동쪽 귀퉁이에 위치한 뉴펀들랜드 주 갠더 섬은 인구 1만 정도의 소도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승객과 승무원 6595명을 태운 비행기 35대가 비상착륙을 했다. 도시 인구의 과반수가 넘는 인구가 순식간에 나타나 언제 이륙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은 딱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안타까워만 할 것인지, 아니면 뭐라도 도움을 주어야 겠다라고 결심하고 몸을 일으킬 것인가. 갠더 시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후자의 방법을 택하고 지체 없이 실천에 옮겼다.


하늘 길이 곧바로 열리지 않게 되자 이 뉴피(뉴펀들랜드 주민)들은 집에서 이불과 담요, 베개를 가져와 건네주려고 3 km에 가까운 줄을 섰다. 구세군과 적십자는 지원품을 여기 저기 떨어진 대피소로 실어 날랐다. 어느 약사는 지역 약국과 협력하여 세면도구와 칫솔을 대량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 상인들은 수천 달러어치의 물품을 무상으로 기부했다. 많은 가정이 사람들을 자신이 집에서 샤워를 하고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했다. ·관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주도적으로 찾아 움직였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다. 갠더 주민들의 행동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단지 물질적인 도움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는 승객들이 충격과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이들의 감정마저 돌보아 준 부분이 인상 깊다. 주민들은 이 불청객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공감했다. 또 자신들과의 공통점을 찾고 승객들이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갠더 주민들은 인종과 종교의 이질성에 주목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최대한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이 뉴피들은 타인을 도우려는 의지가 본능인 듯 보였다.


한 가지 더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갠더에 내린 사람들 중에 구소련 국가 몰도바 출신의 난민 서른여덟 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영어를 몰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갠더 주민들은 일주일 동안 무언극과 몸짓의 달인이 되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저자는 아마도 소통의 문제로 이들의 이야기를 책에 풀어놓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아프가니스탄인 390명을 구출해온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9·11사건 발생 후 한 달 뒤, 미국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년이 지나 올 8월 말일, 미군의 철수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므로 특별기여자신분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된 아프가니스탄인의 운명은 바로 20년 전 발생한 9·11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수년 전 예멘 난민과 관련한 이슈로 처음 몸살을 알았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난민이 발생하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나중에 고려해보더라도, 갠더 주민이 보여준 행동은 분명히 우리에게 유대감의 가능성과 환대의 상상력을 전달해주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개인을 보호하기위한 정치·사회적 장치가 부족했던 과거에 생존을 보장하는 길은 서로 힘을 모으는 것, 그리고 환대를 통해 가능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의지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길만이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 테다. 우리는 현재 단절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 종교, 성별, 경제적 격차 등으로 분리되고 서로가 고립되어 간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구성원이 원자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유대감을 느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뉴펀들랜드인들은 임시 착륙한 항공기 승객을 받아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곁을 내주고 이들이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9·11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이들은 갠더 주민들과 가족처럼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족과 같은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우리 인간은 모두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가족처럼 연결될 수 있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임을 갠더 시민들은 입증했다. 종교, 피부색,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말이다. 정확히 20년 전 오늘있었던 사건은 인간의 선함, 그리고 천국이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를 발견하는 일은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뉴펀들랜드인은 포위당한 사람처럼 산다. 섬에 고립된 채 거친 날씨를 속수무책으로 겪다 보니, 살아남으려면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17)


"뉴피가 이름 모르는 사람을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록샌과 클라크도 곧 알게 되었다." (78)


"온 세상이 망가지는 와중에 지금, 바로 여기, 지구상의 구석진 조그만 마을에서만큼은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 안심이 되었다." (215)


"갠더에는 증오도 분노도 공포도 없었다. 오직 공동체 의식만이 살아 있었다. 여기서는 모두가 동등하고,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았다." (216)


"갠더는 살기 안전한 곳이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이제는 16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비극이 자기 삶과 어떻게 직결되는지 알게 되었다. 온 세계가 마을에 왔을 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도 함께 다가왔다." (259)


"갠더가 마법 같은 공간이라서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마다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 재난 앞에서 한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렇다면 우리도 누구든 똑같이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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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1 0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의 의미가 깊네요
오늘 9.11
게다가 미국 아프간 철수 까지
이런 선량함 코로나 팬더믹으로 사라지고 있는것 같습니다.ㅜ.ㅜ

초란공 2021-09-11 00:38   좋아요 3 | URL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마음에 들었습니다~^^

초딩 2021-09-11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직전에 볼티모어에 출장 갔는데 9.11 잔해를 큰 빌딩 (세계 무슨 건물이던데 기억이 ㅜㅜ) 앞에 전시 해두었더라구요.
어찌되었든 잊지 않는개 중요한 곳 같아요
엄청나게 시끄럽고 책이 또 생각나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초란공 2021-09-11 22:44   좋아요 0 | URL
다른 곳에서도 잔해를 전시하고 기억하고 있나봅니다. ㅜㅜ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 아프리카 코이산족 채록 시집
코이코이족 외 지음, 이석호 옮김, W. H. 블리크 채록 / 갈라파고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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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 아프리카 코이산족 채록 시집

코이코이족, 산족 지음 | W.H. 블리크 채록 | 이석호 옮김 | [갈라파고스]

 



부시맨의 구술시 한 편을 이해하는 일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역사는 우리가 좀 더 익숙하게 들어본 바 있는 흑인 노예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등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16세기 이후 이들 국가들에 의해 수탈을 당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주저 총균쇠에서 이 부시맨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부시맨의 구술시집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를 알게 되었다. 이 시집은 1850년대 남아프리카에서 활동한 독일의 언어학자 W.H. 블리크(Bleek)가 이 부시맨들의 민담과 구술시를 채집하고 채록한 기록(부시먼 민담집 Specimens of Bushman Folklore (1911))에서 옮겨와 만든 시집이다. 시집은 얇고 가볍지만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와 문장들은 결코 가볍게 흘려버리기 힘든 고난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이 시들을 읽고 지나가기 전에 살펴볼만한 배경지식을 먼저 살펴보고 싶었다.


 

제목에 언급한 부시맨’(Bushman)은 유럽인들이 만든 인종차별적이고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부족명으로, 이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바로 북쪽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수렵채집인 및 유목민을 일컫는 용어다.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들은 때로 호텐토트(Hottentot)라는 표현과도 섞어 쓰곤 하는데, 정식 명칭은 코이산(Khoisan)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이 이름은 이들이 자신의 부족을 부르는 이름인 코이(Khoi)족과 산(San)족의 이름을 합해서 부르는 말이다.


 

우선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총균쇠에서 코이산족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갈무리해본다. 이들의 기원이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지만, 이들은 수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에 살던 수렵채집 부족이었던 것 같다. -서 방향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가운데 지역(열대우림) 이남에 주로 살았으며, 이들의 특징은 크게 언어적 특징(흡착음)과 신체적 특징(피부색, 머리카락, 둔부지방축적)으로 다른 아프리카 흑인들과 구별된다. 참고로 다이아몬드의 설명에 의하면 산(San)족은 소규모의 수렵채집인이었고, 보다 큰 규모의 코이(Khoi)족은 유목민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대략 2,000년 전에 코이족은 아프리카 북쪽에서 양과 소를 얻어 목축을 하며 유목민이 되지만,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고 한다.


 

코이산족의 언어적 특징은 흡착음(click)이라고 부르는 부족 특유의 발성음으로, 시집의 설명에 의하면 혀를 입천장에 붙여 내는 소리로, 혀를 끌끌 찰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일반적인 표기법은 흡착음이 있는 단어 앞에 느낌표(!)를 붙여서 ‘!이런 식으로 표기하곤 한다.

코이산족이 다른 아프리카계 흑인과 구별되는 신체적 특징은 피부가 좀 더 황갈색을 띠며, 머리카락이 더욱 촘촘한 고수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무엇보다 엉덩이에 지방이 많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둔부지방축적’(steatopygia)라는 해부학적 용어로 알려져 있는데, 이 특징은 나중에 언급할 한 코이산족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에 영향을 주는 신체적 특징이었다.


 

흔히 코이족과 산족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지만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 <부시맨 The Gods Must Be Crazy>는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산(San)족 인물들의 이야기다. 한편 총균쇠19장 에서는 현재의 아프리카가 왜 흑인 천지가 되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는데, 주요 요지는 아프리카가 원래부터 단일한 흑인만 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있던 대륙이라고 말한다. 코이산족의 규모는 수만 년 전에 비해 규모가 크게 줄었는데, 그 이유는 유럽의 백인이 오기 전에 코이산족들이 이미 농경을 하던 반투(Bantu)족에 의해 대부분 점령되고 축출되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반투족이 아프리카대륙 서쪽 지역에서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한 시기를 BC3000-AD500년으로 파악했다. 게다가 농사를 짓던 반투족은 이미 말라리아에 적응하여 내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코이산족은 유전적인 저항능력을 갖지 못하여 인구가 더욱 감소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유럽의 백인들은 16세기부터 아프리카에 상륙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1652)에 남아공의 현 수도인 케이프타운(Cape Town)에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이들이 들어온 이후 코이산족들은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백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례처럼 코이산족 남성들을 빠르게 살해하거나 노예로 만들었고, 여성들은 노예 혹은 첩으로 만들었으며, 유럽에서 들어온 각종 전염병은 이들의 인구 감소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이산족의 시집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들의 시를 읽어보면 수렵채집 혹은 유목을 하는 부족답게 태양, , , 은하수와 같은 천체와 비, 구름, 나무와 같은 자연환경,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양한 동물들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영혼까지 언급하며,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관심사와 예민한 감각, 관찰력을 보여준다. 반면 또 많은 시들에서 백인들이 코이산족에게 가져다준 고통과 수난을 짐작해볼 수 있는 시들도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코이산족에 대한 배경지식은 무엇보다 침입자 유럽 백인들의 맥락과 연결 지어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왜 이런 시를 노래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다. 이 맥락에서 두 가지 사례를 떠올려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백인 작가 J.M. 쿳시의 소설에 묘사된 유목민과 고생물학자 스티븐 J. 굴드의 자연사 에세이에 등장하는 어느 호텐토트(혹은 부시맨)’ 여성에 관한 에피소드다.


 

J.M.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출신과 살아온 생애는 남아프리가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소설의 화자는 백인 치안판사로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제국의 요새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국으로부터 군대가 파견되는데, 군대를 이끄는 졸 대령은 야만인을 정복하고 몰아내어 야만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문명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말한다. 작가의 경험과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유목민은 무엇보다 유목민인 코이(Khoi)족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졸 대령의 군대에 의해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볼과 손이 철사에 꿰인 상태로 끌려와 가혹한 대우를 받고, 쿠타를 당하며 죽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말발굽 소리보다

더 일찍

말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단다

그렇게 우리는 발사된 총알보다

더 일찍

화약 냄새를 맡게 된단다

백인 장교가 나타나리라고

우리의 피가 피워 올린 연기는

예언을 했단다

우리 피는 그걸 안단다

바로 그날이

전쟁이 시작되는 날임을

 

(...)

 

우리는 그곳에 그렇게 남았단다

온갖 피를 탕진한 채로

그 후에도 그곳에 그렇게 남아

우리 자신의 시체를 거두었단다

우리의 피는

소진되고

탕진되었고

예언의 실현을 지켜보았단다

땅이 부상자들로 넘쳐나고

죽은 우리 편 시체가 사방을 뒤엎었단다


- 시 '연기를 피우는 피',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64-65p 중에서

 


이 시에서는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졸 대령이 이끄는 군대가 요새 밖을 나가 처음 유목민들과 조우하고 전투를 치르는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코이산족 생존자들의 몸에 각인되어 기억으로 남아있는 고난의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세 사내는

밧줄 하나에 묶인 채로

마차에 누워

치안판사에게 끌려갔다오

마차가 달리는 동안

이튿날의 폭염 속을

달리는 동안

여인들 또한

넘어지고, 나뒹굴며

마차 옆구리에 붙어 달렸다오

더 빨리

점점 더 빨리

마차는 속도를 높였고

뒤를 따르던 여인들은

온갖 용을 다 썼지만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오

 

백인 치안판사에게 끌려온 나는

질문 세례를 받았다오

밤늦도록 취조는 이어졌다오

한밤중이 되고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그의 부하들이

우리 식구들을 감옥에 쳐 넣고는

모두의 발을 다시

밧줄 하나로 묶었다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워

보두의 발이 한 밧줄에

묶인 채로 누워

백인 하나가 발 주변에 설치한

나무 가시에 발을 찔리며

고통을 견뎌야 했다오

(...)

- ‘그렇게 우리가 왔다오’, 87-88p중에서

 


이 시는 마치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을 유목민/코이산족의 관점에서 노래한 시처럼 읽었다. 백인 군대가 유목민과의 전투를 마치고 생존자들을 밧줄로 묶어 요새로 복귀하는 과정과 여전히 밧줄에 묶인 채 요새에서 하룻밤을 나는 유목민들의 모습을 이들의 관점에서 다시 쓴 것만 같다. 시집에는 코이산족의 화자가 자연을 관조하고 노래하는 시도 실려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고난을 겪은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시다.


 

이 시집을 이해해보기 위한 또 다른 맥락은 고생물학자 스티븐 J. 굴드의 자연사 에세이 플라밍고의 미소에 등장한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제목의 에세이는 세례명이 사르키 바트만이라는 한 호텐토트 여성의 비극에 관한 글이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코이산족이 부시맨혹은 호텐토트라고 불리곤 했다고 언급하는데, 굴드는 이를 좀 더 엄밀하게 구분한다. 곧 부시맨족과 호텐토트족은 가까운 친척 관계로, 전통적인 부시맨은 수렵채집 부족을 가리키므로 산(San)족과 보다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호텐토트족은 소를 키우는 유목민이므로 앞서 언급한 코이(Khoi)족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사르키 바트만은 아마도 코이족 출신의 여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케이프타운 근처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농부의 하인이었다.


 

굴드가 기록하는 이 비극은 바트만의 주인의 형제였던 헨드릭 세자르라는 사람이 유럽에 그녀를 소개해보고자 그녀에게 영국행을 제안한 상황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백인 집안의 하인으로 일했던 바트만은 기억력이 좋았고, 네덜란드어를 잘했으며, 영어를 약간 구사할 수 있었고,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영국행을 제안한 남자는 앞서 언급했던 호텐토트족 여성의 신체적 특징(‘둔부지방축적이라 불린 특징)을 전시하여 돈을 벌 궁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호텐토트족 여인 바트만은 백인의 말에 동의하고 1810년 영국 런던에 도착한다. 백인 주인은 그녀를 전시할 때 우리 안에 있는 동물처럼 우리 안에서 명령을 하며 우리 안을 움직이고 들락거리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유럽 백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던 둔부 지방축적으로 풍성한 둔부가 성적 대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트만이 18개월 머물렀던 파리에서 기록된 그녀의 모습은 무엇보다 지적인 인간이 아닌 백인들의 동물적인 호기심에 기대었다는 점이다. 바트만은 5년간 런던과 파리 등 유럽을 떠돌며 사람들(백인 남녀)의 성적인 대상으로,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전시되며 지내다가 1815년 말에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더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것은 프랑스의 해부학자 조르주 귀비에가 그녀의 생식기를 절제하여 유리병에 보관해두었다는 점이다. 스티븐 J. 굴드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친구 칼 세이건과 파리 인류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로 시작한다. 그는 해부학 표본 보관실에서 이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벨이 붙은 유리병을 발견하고 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에세이에서 주목하고 있는 점은 호텐토트족 여성 바트만의 비극뿐만이 아니라, 유럽 백인 사회가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을 바라본 시선이다. 그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된 백인우월주의적 시선과 인종차별적 관행을 이 에세이에서 고발했다.


 

여기까지는 줄곧 비극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는데, 이는 코이산족이 겪은 수난의 사례와 문학작품에 묘사된 이들의 역사 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굴드의 설명에 따르면 (유럽의) 초기 과학자들은 코이산족을 하등한 영장류에 가까운 존재로 보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이산족이 이제는 현대 사회운동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이해하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가진 사람들로서 이들은 현대 생태 운동가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언급한다.


 

여기까지가 코이산족의 시에 담긴 정황을 이해해보고자 수집한 자료들을 갈무리한 것이다.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는 코이산족이 겪은 수난의 경험과 기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상상하며 공감한 뒤에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다른 시에서는 모든 사물에 깃든 생명과 영혼을 노래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시들도 보인다. 100여 년 전에 채록된 이 시를 통해 백인들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시선과 고난의 역사,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성의 모습을 시 한 줄 한 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읽기 경험이었다.


스티븐 J. 굴드 플라밍고의 미소에 수록된 삽화. 1812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풍자화로, '전시'되고 있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를 바라보는 영국인들 비판하는 그림. 

   

그렇게 우리는 말발굽 소리보다
더 일찍
말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단다
그렇게 우리는 발사된 총알보다
더 일찍
화약 냄새를 맡게 된단다
백인 장교가 나타나리라고
우리의 피가 피워 올린 연기는
예언을 했단다
우리 피는 그걸 안단다
바로 그날이
전쟁이 시작되는 날임을

- 시 ‘연기를 피우는 피‘,
-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64p)

우리는 그곳에 그렇게 남았단다
온갖 피를 탕진한 채로
그 후에도 그곳에 그렇게 남아
우리 자신의 시체를 거두었단다
우리의 피는
소진되고
탕진되었고
예언의 실현을 지켜보았단다
땅이 부상자들로 넘쳐나고
죽은 우리 편 시체가 사방을 뒤엎었단다

- 시 ‘연기를 피우는 피‘,
-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65p)

그렇게 세 사내는
밧줄 하나에 묶인 채로
마차에 누워
치안판사에게 끌려갔다오
마차가 달리는 동안
이튿날의 폭염 속을
달리는 동안
여인들 또한
넘어지고, 나뒹굴며
마차 옆구리에 붙어 달렸다오
더 빨리
점점 더 빨리
마차는 속도를 높였고
뒤를 따르던 여인들은
온갖 용을 다 썼지만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오

- 시 ‘그렇게 우리가 왔다오’ (87p)

백인 치안판사에게 끌려온 나는
질문 세례를 받았다오
밤늦도록 취조는 이어졌다오
한밤중이 되고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그의 부하들이
우리 식구들을 감옥에 쳐 넣고는
모두의 발을 다시
밧줄 하나로 묶었다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워
보두의 발이 한 밧줄에
묶인 채로 누워
백인 하나가 발 주변에 설치한
나무 가시에 발을 찔리며
고통을 견뎌야 했다오

- 시 ‘그렇게 우리가 왔다오’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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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07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바트만의 시신은 2002년에나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인종동물원이야기도 생각나고. 시가 처절하고 슬퍼요 ㅠ

초란공 2021-09-07 09:05   좋아요 1 | URL
거의 두 세기가 지나서 귀향한 셈이네요 ㅜㅜ 모든 시가 슬프지는 않지만 유독 이미지가 남아있는 시들이 있네요.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페크pek0501 2021-09-07 1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제목이 참 좋네요.

여러 작가를 언급하며 쓰신 글을 읽으니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글은 자기가 아는 만큼 쓴다.‘
멋지십니당^^

초란공 2021-09-07 12:17   좋아요 3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경우는 ‘쓰고 나서 알게 되었다‘가 더 맞을 듯 합니다~ ^^;;

초딩 2021-09-07 19: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입니다요 ㅎㅎㅎ
부시맨 한글로는 안 와닿았는데
Bush man 이라고 하니 덤블 사람 이니 비하했군요
영국인들이 타민족을 제대로 대한적이 있는지 참 애휴

초란공 2021-09-07 23:09   좋아요 3 | URL
저도 그동안 사회에서 당연하게 쓰이는 표현들에 당연하지 않은 사연이 잇다는 걸 생각해본 기회가 되었네요.. 시 한편 읽어보면서요~

그레이스 2021-09-08 0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텐토트의 비너스 전시에 대한 기록 읽었었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의 무지와 잔인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도 문명인으로 자처하는 ...
에스키모가 겪었던 일들도 생각나네요.

초란공 2021-09-08 08:25   좋아요 3 | URL
최근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어보니까 사람이 대상에 대해 ‘무지‘해서 잔인해질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에스키모나 이누이트 등의 경우도 한 편으로는 환경 오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영문도 모르고 말이지요.

scott 2021-10-08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
별들은 10월에도 수근~수근~ㅎ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ㅅ^

mini74 2021-10-08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도 좋고 글도 좋고. 당선도 좋고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0-08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엔 시, 별,,,,
축하합니다 ~^^
 
미루고 짜증 내도 괜찮아 - D. H. 로런스와 씨름한 날들
제프 다이어 지음, 이한이 옮김 / 주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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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

: Out of Sheer Rage

제프 다이어(Geoff Dyer) 지음 | 이한이 옮김 | [주영사]

 



끊임없이 방랑하고 방황하며 로런스에 다가가는 작가의 고백

 


몇 년 전에 우연히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읽고 나서 단번에 제프 다이어(Geoff Dyer)라는 작가가 마음에 들었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한 장면인 고대 유적지의 한 복판에서 폐허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매료되었더랬다. 그리고 묘사가 무척이나 사진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프 다이어는 지속의 순간들에서처럼 본격적으로 사진에 대해 글을 썼던 작가였다. 이후 지속의 순간들를 비롯하여 제프 다이어의 책을 더 찾아보았고, 재즈에 관한 글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써내려간 그러나 아름다운과 같은 책도 만났다. 다만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와 같은 소설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아직 부족해서이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영국 문학의 르네상스인’, ‘국가적인 보물이라고 불리는 이 작가의 지적이고 자유분방한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다이어의 책이 나오길 계속 기다린다.


이번 여름에 만난 다이어의 책은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 제프 다이어는 영국 소설가 D.H. 로런스에 관한 연구서를 쓰기로 마음먹지만 도대체 언제 시작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이어의 글쓰기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에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로런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언젠가 읽다가 멈추었던 무지개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대단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제대로 로런스를 읽어본 적은 없는데,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을 때 로런스가 쓴 미국 고전문학 강의라는 책에 수록한 모비 딕 서평을 읽어본 것이 다였다. 로런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가 강하게 배어 있는 모비 딕비평을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면서도 그가 모비 딕과 멜빌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고 주목했는지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프 다이어는 로런스가 미국 고전문학 강의에 쓴 비평문에서 상상력 있는 문장을 썼다고 극찬하기도 한다.


코로나 유행만 아니었다면 여름 휴가지에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을 들고 갔어도 무척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이유는 다이어가 로런스 연구서를 쓰는 과정이 독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무척 재미있고 때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무척이나 산만하고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러 있질 못한다. 끊임없이 연구서를 쓰기 위한 완벽한 장소를 찾아다니지만, 지금 살고 있고 단지 거쳐 가는아파트를 나갈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지독한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인이 자신의 별장에 다이어를 초대하지만, 풍경이 너무나 완벽해서 글쓰기에 좋지 않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결국은 멍 때리다가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애인과 차를 타고 다니다가 차 사고를 내기도 하면서 결국은 회복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책은 장의 구분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마치 다이어의 산만한 머릿속 상태를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연구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또 끊임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글을 쓰는 대신 다른 일로 그 시간을 채우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미루는데 선수다. 휴가지에서 혹은 집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제프 다이어가 어떻게 시간을 낭비하고 소일하는지를 마치 옆에서 보는 듯 재미가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소 수다스럽다고 느껴지는 작가의 변명과 엉뚱한 생각들이 쉬지 않고 지면으로 침투한다. 이것이 영국식 유머인지는 모르겠지만, 빌 브라이슨이나 마이클 부스가 보여주는 식의 유머도 보이긴 한다. 무엇보다 읽는 데 크게 부담이 없어서 좋다.


또 다이어의 독특한 로런스 연구서 쓰기 프로젝트에 관한 기록이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이어가 로런스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태리 이글턴 같은 문학 비평가들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한다. 이들의 문학 이론을 쓰레기라고 말할 정도로 다이어는 문학에서 이론을 앞세우는 행태에 거부감을 갖는 듯하다. 대신 그는 로런스의 서간문을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여기에서 상당한 문장을 인용한다. 따라서 다이어는 작품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로런스 연구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로런스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사람에게 점차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다.


로런스 역시 끊임없이 살 곳을 옮겨 다녔다는 점, 가구는 살 곳에 맞춰 매번 새롭게 고치거나 만들어 썼다는 점도 언급한다. 다이어는 로런스의 생가와 이탈리아에서 잠시 살았던 집 등을 방문하면서 로런스라는 인물에 조금씩 다가간다. 어떤 면에서는 다이어가 심지어 로런스를 점차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인상마저 준다. 아니면 다이어과 로런스에는 공통점이 많았거나. “나는 어디서든 이방인이고, 오직 모든 곳이 내집이다.”라고 했던 로런스처럼 말이다. 특히 다이어나 로런스 모두 노동자 가족의 자녀로 다이어는 아마도 귀족 출신의 작가들보다 더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이어와 로런스 모두 노동자 집안 배경에서 나온데다, 끊임없이 글쓰기를 미루고, 살 곳을 찾아 부단히 옮겨 다닌 것을 보면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극심한 결정 장애가 있는데다 부단히글쓰기를 미루면서도 로런스 연구서를 쓰기주변을 방황하듯 맴도는 모습에다 불쑥 밀고 들어오는 생각들을 새로운 기대와 함께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로런스라는 인물에 좀 더 가까이 가게 되어 그를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게 다이어의 글쓰기가 지닌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이어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렇게 산만한 와중에도 그가 어쩌다 던지는 한 마디에 주목하게 되기도 한다.



 

타오르미나에 앉아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내 인생이었다.” (84)


 

인생은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따뜻한 음료를 찾는 것이다.”(98)


 

코로나로 여행 가기 힘들어졌지만 로런스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방랑하고 방황하며 좌충우돌하는 제프 다이어.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아쉬움을 대신해본다.



"타오르미나에 앉아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내 인생이었다." (84)

"인생은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따뜻한 음료를 찾는 것이다." (98)

"글쓰기란 그런 장면에 흠뻑 잠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거리를 두는 일이다." (125)

"나는 어디서든 이방인이고, 오직 ‘모든 곳이 내집‘이다." (129)
- D.H. 로런스의 말

"읽을 만한 로런스의 편지가 더 있기를 바라는 진짜 이유는 그것들이 로런스 연구서를 쓰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완벽한 핑계가 되어서였다." (144)

"이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 책의 진짜 주제, 내가 쓰는걸 회피하고 있는 그 주제는, 바로 절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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