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선집 2
체 게바라 지음, 홍민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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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기를 바꾼 한 남자의 특별한 여행기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지음 | 홍민표 옮김 | [생애]

 



누군가의 여행이 때론 혁명을 부른다

 


인간의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전 세계에 퍼진 바이러스로 여행이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교통수단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임에도 말이다. 인류의 조상이 여행을 시작한 것은 두 발로 설 수 있었을 때부터일까. 여행이라는 행위의 본질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감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혹은 뜻밖의 위험이 기다리는 일. 반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앎과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에게 여행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가 의대생이던 23세살에 떠난 두 번째 여행의 기록인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여행에 타고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북아메리카에 가보면 어떨까?”

북아메리카에? 어떻게?”

포데로사를 타고!”


 

혁명가의 무모한여행은 이렇게 비롯되었다. 바로 돈키호테 같은 게바라와 알베르토 두 명의 젊은이가 나눈 대화에서. ‘힘센 녀석이라는 의미와는 반대로, 폐차 직전의 부실한 오토바이 하나에 초록색 다이어리와 필기구, 오토바이 수리 도구와 부품, 권총과 칼, 먹을 것을 조금 넣은 뒤 무작정 떠난 여행(195110)이었다. 불과 1년 전에 이 의대생은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 4500 km를 여행하고 돌아온 적이 있으니 어느 정도의 자신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동행인과 오토바이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행에는 불확실성이 함께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만남뿐만 아니라 위태로운 순간도 기다리는 법. 두 의사 몽상가들은 아르헨티나를 떠나 태평양을 마주하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까지 처음에는 오토바이로, 나중에는 도보로 히치하이킹을 하며 나아갔다.


어느 날은 부실한 오토바이 때문에 하루에 9번이나 사고를 당하면서도 두 사람은 오토바이를 고치고 노숙을 하며, 폭풍우를 만나 고생을 하기도 한다. 마치 돈키호테가 늙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이리 저리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앞에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사고를 당해 땅바닥으로 구르면서도 여전히 시들지 않은 즐거운 기분으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게바라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서 나의 운명이 여행임을 알았다.”(42)라고 다이어리에 적었다. 심지어 이스터 섬으로 가고 싶어 몰래 밀항한 배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 영원히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95)라고, 여행이 자신의 소명임을 발견한다. ‘진정한 소명이라니! 내 방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 생애에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겐 혁명가의 기질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다이어리에 쓴 글을 다듬고 정리하면서 게바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아르헨티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다.”(20) 여행이 이렇게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니.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도 이런 여행을 해볼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낯선 곳에서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일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행에서 돌아와도 항상 허기를 느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다녀온 여행은 몸(뱃살)만 변했지, 나의 정신이 변화할만한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도 않고, 트럭을 타거나 혹은 걸어서 5000 m 넘는 안데스 산맥의 산들을 넘는 이들 일행을 상상해본다. 요즘처럼 이동전화가 있거나 응급환자 이송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야생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두 젊은이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모두 끌어안고 세상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일 것이다.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싣고 전국을 다니셨다는 아버지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남쪽 끝에 있는 누나 집으로 떠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아마도 당시에는 포장이 안 된 국도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여행자에게 도움이 될 지도 역시 없었을 테다. 말하자면 내 아버지는 70년대 초에 전국을 누비던 폭주족이었던 셈이다. 아버지는 길을 떠나면서 두렵지 않으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게바라는 다이어리에 두려움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경험 중 하나’(241)라고 썼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감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이제 이런 여행을 더 이상 하기 힘들 듯하다. 길을 잃고, 시행착오를 할 여지를 첨단 도구들이 대체해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부모 세대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상실해버린 세대인지도 모른다. 게바라 역시 두려움을 마주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만나는 삶의 모든 양태를 그대로 관찰하고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하면서 정치인 및 여러 지식인들, 경찰 및 병원의 직원들, 나환자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나환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함께 축구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구걸하는 이들을 비롯한 극빈자들과도 만나 대화를 하며 가난의 모습을 실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과 직접 부대끼며 교과서 밖의 세계를 배워나간 셈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범아메리카주의, 그리고 혁명의 씨앗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의 백인들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세상 밖을 상상했다. 특히 중세 시대에 지중해의 서쪽 끝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바라본 대서양은 그저 막막한 바다였다. 수평선 너머 세계의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부 몽상가들은 분명 궁금했을 것이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시작한 탐험으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후 발생한 인류사의 비극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된 노예와 노예제도의 문제들, 현재의 페루 지역에 있는 잉카 제국의 멸망, 멕시코 고원의 아즈텍 제국의 멸망이다. 게바라는 다이어리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의 태양신 잉티 사원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토대와 벽돌을 이용하여 성당(산토 도밍고 성당)을 지었던 일을 기록해두었다. 물론 서구 문명의 야만과 폭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게바라가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베네수엘라까지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서구 문명의 식민주의적 침탈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바라의 기록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칠레는 이미 전 세계 구리 생산의 20%를 담당했고, 그 밖에 철, 석탄, 주석, , , 망간, 질산염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강력한 공업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뿐만 아니라 전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가축과 곡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칠레 광산의 채굴권은 독일인들이 먼저 획득했는데, 아마도 나치 시대에 남미 지역에 많이 진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이 패전국이 되면서, 영국이 재빠르게 남미의 광산과 공장의 소유권을 가져가버렸다. 칠레와 접하고 있던 페루는 어땠을까? 게바라가 여행했던 50년대에 페루 광산의 소유권은 이미 미국에 있었다. 서구 백인들의 제국주의 국가는 20세기에도 여전히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자원을 깡그리 흡수하고 있었다. 오늘날 서양사회에서 남과 북으로 언급되곤 하는 빈부의 격차는 결국 서양의 문명이 야기한 문제였다.


게바라와 알베르토 두 사람은 오토바이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거나 도보로 다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서구 문명이 판을 짜놓은 세상의 모습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광산의 주인은 영국과 미국인들인데, 광산 노동자들은 몰락한 잉카 제국의 후손들이었던 현실. 하지만 게바라는 광산의 소유주와 노동자가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구조를 간파했다. 그는 냉혹한 효율과 무기력한 분노가,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그 거대한 광산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 편은 생존 때문에, 다른 한쪽 편은 이윤을 위해...”(101)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누더기 담요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과 함께 추위에 떨면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가학적인 가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세상이 빚어낸 극빈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오늘날 민족과 국가의 우월함이라는 허구를 걷어내고 바라본다면, 개개인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극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바라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국제 정세의 현실을 더욱 실감했을 것이다. 특히 치안과 정치적 불안이 극심했던 콜롬비아의 경우도 기록되어 있다. 이 모습은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입김 때문이었다. 칠레 공산당이 불법화된 시기(1948-1958) 역시, 미국의 매카시즘이 북아메리카를 몰아치던 시기와 오버랩된다. 여기에 한국전쟁(1950-1953)으로 불거진 냉전시대를 떠올린다면, 미국이 전 지구를 하나의 체스판처럼 만들어 세계를 주무르던 제국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 두 명의 대통령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두 번째 대통령이 대립중이다. 게바라를 사살했던 볼리비아 군이 미국의 지휘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 베네수엘라의 정세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당연한 결과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이 아름다운 나라의 분열과 희생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게바라가 70여 년 전에 바라보았던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알베르토와 게바라 일행이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을 만나면서 눈을 뜨게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연대의 가능성이 아닐까 싶다. 페루에 있는 나환자 병원에서 머물 때 만난 정신분석학 교수 발렌사 박사는 청년 게바라에게 범아메리카주의를 이야기했다. “북아메리카가 고층빌딩이나 자동차들, 엄청난 부를 가졌다고 해서 성숙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성장기를 지났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닐세. 그 차이는 표면적일 뿐, 근본적인 것이 아닐세. 이 점에서는 북아메리카든, 남아메리카든 모든 아메리카는 자매지.”(195) 나환자 병원에서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환자들과 함께 이들을 마치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듯 악수를 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축구도 했다. 이들이 떠날 때 환자들은 두 사람을 위해 진심어린 환송파티를 열어준다. 게바라는 발렌사 박사의 범아메리카주의에 감화를 받았던 것일까. 병원의 의사가 축배를 제안에 화답한 게바라는 범아메리카주의를 역설한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민족적 유사성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편협한 지역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려는 뜻으로, 페루를 위하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연대를 기원하며 축배를 제안합니다.”(217)


무작정 떠난 길 위에서 게바라는 이렇게 서구 문명의 침탈을 여전히 겪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극빈의 냄새를 맡았으며, 가난에 처한 인간의 위기를 목격했다. 책이 아닌 사람과 세상을 통해 범아메리카주의를 몸소 깨달았다. 그는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만일 위대한 영혼이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눈다면, 나는 민중과 함께 할 것임을.”(244)이라고 적었다. 다이어리에 좋아하던 시인들의 시를 적고 중얼거리며 추위를 견디며 걸었던 몽상가 청년은 여행 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이 책에서는 일개 의대생이 혁명가가 되기 전, 현실에 눈을 뜨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게바라는 1800년대 말에 라틴아메리카 해방투쟁의 지도자 볼리바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역자가 언급한 것처럼, 게바라는 미국 식민주의에 대항하며 쿠바의 독립을 위해 싸운 민족 영웅 호세 마르티 역시 알지 않았을까. 그에게 여행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 것뿐만 아니라, 현실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던 경험이었다. 이처럼 여행은 누군가를 혁명가로 만들고 혁명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은 이처럼 위험할 수도 있다



[1] "아르헨티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다." (20)

[2]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서 나의 운명이 여행임을 알았다." (42)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 영원히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95)

[3] "칠레에서 만남이란 곧 환대를 의미했고 우리 두 사람 중 누구도 이 뜻밖의 행운을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83)

[4] "계급제도라는 부조리한 이념에 기반한 현재의 질서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치적을 선전하는 데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들에 더 많은 돈을 써야할 때가 왔다." (86)

[5] "냉혹한 효율과 무기력한 분노가,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그 거대한 광산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 편은 생존 때문에, 다른 한쪽 편은 이윤을 위해..." (101)

[6] "발디비아의 행로는 신대륙의 정복자들이 실제로 통과한 지역들을 살펴볼 때, 스페인의 식민사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복 활동의 하나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발디비아의 행위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을 장악하고 싶은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110)

[7]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여기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력했던 토착 민족의 순수한 자기표현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직 정복자들의 문명과 접촉하지 않았고, 생명을 가지지 못한 지루함 때문에 죽어버린 벽들 사이에 있는 충만한 보물들을 말이다." (152)
- 몰락한 잉카 제국의 흔적을 보면서 기록한 말.

[8] "북아메리카가 고층빌딩이나 자동차들, 엄청난 부를 가졌다고 해서 성숙했다고 할 수 있을까? (...) 북아메리카든, 남아메리카든 모든 아메리카는 자매지. 칸틴플라스를 보고서, 나는 범아메리카주의를 이해하게 되었다네!" (195)
- 여행 중 만난 정신분석학 교수 발렌사 박사의 범아메리카주의

[9] "만약 우리 자신을 나병 치료에 진정으로 헌신하게 만들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환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애정일 것이다." (197)

"그들(나환자들)이 이렇게 고마워하는 것은 저희가 가운도 입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마치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듯이 자신들과 악수를 하고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함께 축구도 했기 때문입니다. (..) 평소 마치 동물처럼 취급받아 왔던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단지 정상인들처럼 대우받았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고양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것입니다." (211)
- 여행 중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10]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민족적 유사성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편협한 지역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뜻으로, 페루를 위하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연대를 기원하며 축배를 제안합니다." (217)
- 나환자들이 마련해준 파티에서 한 게바라의 화답

[11]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만일 위대한 영혼이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눈다면, 나는 민중과 함께 할 것임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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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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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 끝나기 직전에 참여했습니다~^^ <악의 꽃> 마티스 버젼과 함께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책! <율리시스> 마티스 버전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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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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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

 



모든 삶은 살고자 한다 - 장애인권과 동물권이 보이다


 

지난 9(2021129) 오전 8시 즈음, 서울 혜화역 지하철 역사 안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모여 시위를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시위자들의 요구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통약자이용편의증진법을 연내에 통과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떤 요구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는 있었다. 이들은 이날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충무로까지 이동하며 시위행진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출근 시간에 이미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 타려고 하니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인권이고 뭐고, 내 생계가 더 중요하다”, “조용히 해라, 당신들은 민폐다라며 비난하는 시민들이 있었는데, 기사의 댓글은 더욱 우려스러웠다. ‘장애인들은 거저먹고 사는데 나라의 장애다’, ‘내 피해를 타인의 피해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개선의 요구인가?’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충격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반응을 보이고 이들을 비난한 적은 없었을까 싶었다. 시민들의 반응과 댓글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은 비장애인들장애인들을 피해자로 보았다는 것. 이들을 불운과 비극의 상징으로만 받아들이는 듯 했다는 점이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시선들처럼, 장애인들은 경제 활동에 기여하지 못하는천덕꾸러기로 대접받아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느 쪽도 비난하지 못한다. 나는 언제고 그 시민들이 아니었을까? 앞의 기사에서 출근길에 장애인들의 시위를 비난하던 시민들은 단지 장애인들의 지난한 삶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단지 거리에 불쑥 솟아 있는 턱,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으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어느 지체장애인이 거리에서 이 턱 좀 없애 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후 20년 간 한 번도 외출을 하지 못했던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니의 결혼식이나 부모의 환갑잔치에도 초대받지도 못했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저 몰랐을 뿐인 거다.


이 기사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마침 며칠 전에 홍은전의 그냥, 사람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장애인들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활동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또 세월호 유가족과 인터뷰를 하고 그들과 함께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서울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그녀가 묘사한 서울이란 세계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수많은 청년들이 열광적으로 월드컵을 응원했고, 촛불로 밤을 밝혔던 광화문 거리가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천 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거리’(119)라는 것을 이전엔 알지도,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게 된 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점점 무감각해지는 상황이다. 며칠 전 장애인들의 시위 행동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비난, 모멸감이 느껴질 정도의 댓글들을 떠올려본다. 또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비난과 조롱 행위는 어떤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해주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이 국가에 가난 해소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국가가 모든 시민의 어려움을 만족스럽게 해결해준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는 이 간극을 전통적으로 이웃과 공동체가 메워왔다. 바로 이 이웃과 공동체가 점차 해체되어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렸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 로쟈는 술집에서 마르멜라도프라는 전직 공무원을 만난다. 마르멜라도프는 절망과 우울증 속에 술에 빠져 살아가는 인물로, 아래는 그가 로쟈에게 하는 말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요, 그건 진리예요. (...) 하지만 극빈은, 선생, 극빈은 죄입니다. 가난 속에서는 타고난 고귀한 감정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 속에서는 누구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사람들은 극빈 상태에 이른 사람을 지팡이로 내쫓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빗자루로 아예 쓸어내버려요, 모욕을 더 심하게 느끼라고요. (...) 왜냐면 극빈 속에서는 자기가 먼저 자기를 모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술집이 있는 거지요!” - 죄와 벌, 이문영 옮김, 문학동네

 

잘 알려져 있듯이 죄와 벌에서 문제시하는 는 종교적, 윤리적 차원의 죄(sin)이 아니라 형법상의 죄(crime)을 가리킨다. 곧 기존 제도에 도전하거나 법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지적했듯이 극빈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이를 사회의 범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저자 홍은전은 명랑 사회 건설을 내세운 국가의 비호 아래 폭력이 자행되고 묵인되었던 선감학원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불과 반세기 전에 '가난을 해결하려' 했던 국가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는 손쉬운 길을 택한 국가”(177)라고 말이다. 죄와 벌에서 마르멜라도프의 입으로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문명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자본을 가진 거대 기업의 통제 아래 놓인 국가의 무책임하고 강제적인 개발 및 집행방식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삼풍백화점, 용산 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 세월호 사건 등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 참여하고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언급했던 글이 기억난다. 참여자 한 사람이 여전히 가족을 잃은 아픔을 이야기하니 다른 참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때 누군가 와주었다면 좀 더 버티지 않았겠습니까.”(131) 또 다른 칼럼에서는 용산 참사 생존자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 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169)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또 다시 죄와 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가 로쟈에게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선생, 더는 갈 데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느냐고요?”(죄와 벌, 30)


왜냐면 사람이란 어디든 갈 데가 필요한 법이거든요...”(죄와 벌, 74)

 

만약 마르멜라도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 말고, 국가와 이웃, 공동체의 손길과 보살핌이 있었다면, 그의 마지막 생애가 소설에서처럼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사회적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갈 곳을 마련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사회적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그렇게까지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저자가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150여년전에 도스토옙스키가 이미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해두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도스토옙스키는 로쟈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냐의 사랑으로 제시하며 끝내듯, 홍은전은 독자에게 타인, 특히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요청한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감에 바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상상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상상력을 갖추기 위해 배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은 없었지만, 예상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이 상태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들과 유대를 쌓아나갔다. 그가 공감하며 배우는 대상은 이제 동물에게로 확장되었다. 이것 역시 그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으며 배운 상상력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이 책을 만날 때까지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나 생존자, 중증장애인의 세계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지 못했다. 여전히 이들과 이들의 언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을 꽤나 더디게 읽었던 이유일 것이다. 홍은전의 글은 내가 책을 읽고 이따금씩 타인의 지식을 갈무리하여 쓴 글들을 무척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글들은 이 세상의 보이지 않게 접혀 있는 주름들을 일일이 펼쳐서 이 엄혹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분투했던 흔적이었다. 오늘 내가 그들과 다른 조건에서 살고 있다면, 그건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손을 잡아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나는 언제든 비장애인-장애인’, ‘수혜자-비수혜자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었다. 이 경계를 넘는 일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고, 때론 의도와 무관하게 그 경계를 넘나든다


그냥, 사람은 내게 인간의 조건이란 그렇게 위태로운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든 이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다. 어느 경우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반드시 살고자하는 의지가 있다는 걸 새삼 마음에 새긴다. 저자에게 고마운 것은 그의 글을 읽고 중증장애인들의 시위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다이 조그만 변화가 내게는 새로운 배움의 출발점이 아닐까.



[1] "활동지원이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 수십 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상이 열렸다는 것, 그것은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방 바깥으로 나온 그들은 동네를 구경하고 햇살을 만끽하고 장미꽃을 샀다. 니체를 읽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사랑하고 욕망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제도이다." (60-61)

[2] "뒤를 돌면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촛불의 거리다.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천 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이 거리에서, (...)" (119)

[3] "누군가 외로웠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때 누간가 와주었다면 좀 더 버티지 않았겠습니까." (131)
- 사회적 참사의 어느 유가족이 한 말.

"내 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169)
- 용산참사 생존자 김창수 씨의 말.

[4]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는 손쉬운 길을 택한 국가가 ‘명랑한 사회 건설’을 위해 거리의 소년들을 쓰레기처럼 청소하는 동안,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폭력에 눈감았다. 먹고사는 일이 죽기 살기로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가난에 투항하고 말았다." (177)

[5] "세상엔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은데 다정함도 그중 하나임을, 세상엔 필요한 권리가 참 많은데 ‘자매가 함께 무사히 할머니가 될 권리’도 그중 하나임을 알았다." (145)

"살면서 배워야 할 것 중에 애도하는 법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183)

[6] "고통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면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할 수는 없다." (183)

[7]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잊지 않을 것." (204)

[8] "1984년 휠체어를 탔던 지체장애인 김순석은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고, 1995년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은 철거에 맞서 저항하던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최옥란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싸우다 음독을 시도했다." (217)

[9] "멀쩡한 생명을 가두고 때때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장애인 시설은 영락없는 동물원이다." (233)

[10]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서 배웠다."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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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07 1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

초란공 2022-01-07 22:00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음악 이야기 말고도 사진과 그림에 관한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mini74 2022-01-07 17: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정말 죄와벌에 대한 멋진 리뷰였어요~~

초란공 2022-01-07 21:58   좋아요 2 | URL
제가 다시 제 글을 훑어보니 여기에도 <죄와 벌>을 썼더라구요. ㅋㅋㅋㅋ
도대체 도선생을 두달에 걸쳐서 얼마나 우려냈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당분간 <죄와 벌>을 잊으려고 책장 맨 위에 손이 안닿는 곳에 올려놨습니다. ㅋㅋ

새파랑 2022-01-07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깊이 있는 글 너무 좋은거 같아요 ^^

초란공 2022-01-07 21:57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저도 김사량 샀어요 ㅋㅋ ^^
언제 읽을지..ㅋㅋ

이하라 2022-01-07 17: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새해 기쁘게 시작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초란공 2022-01-07 21:55   좋아요 3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기분좋은 주말 보내세요!
 
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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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글과 사진 | [남해의봄날] | (2021)

 



인생의 후반기, 치열하게 지금-여기의 삶을 구도하는 부부에게서 배우다

 


남편이 은퇴하고 하루종일 같이 있으려니 짜증이 난다는 어느 부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남편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자신이 외출할 때, 함께 나서거나 차를 태워 주려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마 이럴 때 우스개소리로 죽이고 싶은 남편이 되어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가정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병원에 들렀다가 모처럼 쇼핑도 하고 바람도 쐬고 들어오고 싶은데, 남편이 시시각각 자신의 행방을 궁금해 하고 동행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란 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논의는 제쳐두고, 현실적으로 가족의 중심인 부부 사이의 관계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결혼할 때 나 역시 막연하면서도 무척 궁금했더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방정식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뿐.


 

여기, 오랫동안 글을 쓰고 사진작가로 지내온 남편과 평생 종합병원 신생아실에서 일하고 은퇴한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내의 시간에 등장하는 이들은 40년간의 결혼생활 중에서 13년을 별거하고 다시 동거를 시작하게 된 별난부부다. 작가 남편이 지난날의 부부관계와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는 이 책은 무엇보다 아내의 후반기 삶을 응원하며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부부가 세 자녀를 오롯이 키워낸 후 어느 날, 작가의 아내는 별거를 선언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내의 홀로 생활은 13년간 온전히 자신을 찾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녀가 참여한 어느 모임에서 그녀는 퇴직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 차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진짜 나로 살기 위해집을 나섰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가정이 범상치 않은 것은 이를 응원하는 남편과 자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부부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할지,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굴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떠해야 할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서울과 파주, 영국 등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가족 대화방에서 각자 그 시간의 하늘 사진을 찍어 올리고 대화를 나누었던 부분이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잠시 위를 올려다보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들이 내게도 전해졌다. 이들은 서로의 의견과 지혜를 나누되 삶의 방식을 서로에게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 이 특이한가족의 소소한 행위는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이 올바른 가족, 혹은 부부의 모습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가족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써 나누고자 했을 뿐이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경험을 통해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일이 서로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부부가 40년간 살아온 진솔한 모습과 지혜가 담겨 있었다. 이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일테다. 이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의 도반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언젠가 카페에서 여성들끼리 모여 남편을 험담하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이들의 남편 역시 아내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작가의 아내는 남편의 말을 경청하고 그를 스승이라 여겼다. 남편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아내의 생각을 경청했다여기에서 나를 비롯한 보다 젊은 세대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아내의 지혜로부터 말이다. 인생의 후반에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고 싶다면, 남편 역시 아내와 가족에게 좋은남편이자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좋음을 찾는 일은 물론 각자의 삶에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 말하듯,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가 되어야 했다. 이 명제가 바로 작가가 제시하는 이 부부의 지향점을 잘 요약해주는 듯하다. 부부는 애초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개별적인 존재임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듯하다. 꽃봉오리부터 짙은 향기를 내뿜는 치자꽃처럼, 부부는 각자가 나름의 향기를 품고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함께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가 되어야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따로 또 같이말이다.


 

부부, 그리고 가족이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행복할 수 있는 관계는 단순히 집안일을 50:50으로 분담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듯하다. 단연코 부부관계는 나는 이만큼 집안일을 했는데, 너는 왜 이만큼도 안하냐?’는 태도처럼 왜곡되고 편협한 평등주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 관계가 각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이 부부와 가족의 모습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현실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모습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실현하는지가 각자 삶의 탐구 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후반기에 있는 이 부부가 치열하게, 그러나 또한 물이 흐르듯 지금-여기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따라, 나 역시 지금부터 그러한 삶을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신주의에 종속되어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가는 지혜로운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1] "우리가 동거에서 고수하는 두 가지는 ‘간섭하지 않는다‘와 ‘단순하게 산다‘입니다." (23)

[2] "모든 배움과 독서와 경험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습니다. (...)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내 삶이 좋은 삶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그곳에 닿기 위한 징검다리인 셈입니다." (160)
- 저자의 글쓰기 철학

[3] "남편은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 왔고, 나는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프레임 속에서 무엇을 뺄지 고민하고, 나는 텅 빈 도화지 속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한다. 뺄 것을 염두에 두니 더하지 않는 마음이 좀 쉬워졌다." (189)

[4] "아내의 소유에 대한 기준은 없음으로써 있음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할 때 버리고 갈 것조차 없음에 도달하길 원합니다." (194)

[5]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만드는 일은 자신을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며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공부란 점에서 아내는 똑같이 흥미를 보였습니다." (204)

[6] "두려움은 없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든 생각은 ‘이제 내 차례구나‘였다. 내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었다." (207)

[7] "이제 우리는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나이에요." (212)

[8]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두려움은 바라보고 있으면 커지고 직면하면 사라지지요." (250)

[9] "43년 전 애인이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동전을 한 움큼 쥐고 벚나무 아래의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기가 그 동전을 모두 삼킬 때까지 통화했던 밤이 생각났습니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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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2-10 14: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내, 마누라, 집사람, 안사람, 애들 엄마가 필요해지고,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독립만세, 를 외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내가 애들 키우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제 좀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하면
남편이 놀아 달라고 할지 몰라요. 그러니까 젊을 때 잘해 줘야 하는 거죠.
여자들이 흔히 하는 말, 늙어서 보자, 하잖아요. ^^

초란공 2021-12-10 19:31   좋아요 2 | URL
공감이 팍팍 됩니다~^^ 그래서 좀 더 젊을 때부터 함께 잘 지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아요^^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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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 지음 |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4)

 



삶의 터전을 연애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랑하라

 



사랑에 관한 책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는 이야기였네.

 


백인들의 문명이 세계의 자원과 금을 탐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아마존의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인지 모른다. 문명은 아마존의 깊은 밀림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가는 수아르 족과 같은 원주민을 미개인으로 규정하고, 숲을 밀어버렸으며, 동물과 사람들에게 총질을 해대며 재앙을 몰고 왔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뒷담화와 무례한 오지랖으로 상처를 받았던 노인은 아내와 함께 문명이 개발하기 시작한 작은 마을 엘 오딜리오로 나와 정착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문명과 함께 혹은 그 이전에 오지에서 문명이 들어오도록 길을 만들곤 했던 선교사들이 아마존의 오지 마을 엘 이딜리오에도 도착한다. 마을을 떠나는 선교사 신부가 배를 기다리며 졸다가 떨어뜨린 책을 주워든 노인. 그는 더듬더듬 책을 읽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문자 없이, 때로는 글을 필요로 하지 않은 수아르 족과 밀림 속에서 살았던 노인은 글자를 읽으며 자신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앞에서 인용한 대목은 아직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지 못한 노인이 선교사 신부에게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 묻고 나서 연애 소설에 대해 신부가 해준 답변이었다. 신부는 자신도 지금껏 연애소설은 두 권밖에 읽지 않았다면서. 신부의 대답은 신의 사랑을 제외하고 인간들의 사랑, 연애의 감정이 무엇인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법한 답변이었다.


 

연애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신부가 내린 정의를 읽다보니 학창 시절 거의 유일하게읽어보았던 책들인 무협소설이 떠올랐다. 무협소설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남녀 주인공들이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사랑을 키워가던 그런 소설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칠레 작가 세풀베다의 대표작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이렇게 아마존 지역의 어느 오지 마을에 사는 노인을 서서히 장면 속에 등장시킨다. 작가는 아마존과 그 곳에 거주하는 원주민, 동식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백인 문명과 책읽기를 이 소설에서 대비시킨다. 노인은 선교사의 책 소개를 듣고 어느 때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노인의 책읽기는 우리가 어릴 때 책을 처음 접하고 글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하며 느꼈던 기쁨, 몰입의 행복감을 환기시켜준다. 음식을 음미하듯 한 음절 한 음절 따라 읽고, 낭독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또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 식으로 단어가 문장이 되자 노인은 이를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다. 독서와 관련한 인간의 인지기능을 연구하는 어느 연구자[1)]는 책 읽기가 인류에게 익숙하지 않은, 애초에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던가. 문자를 발명하고도 한 참 후에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접근이 가능했던 책은 인간에게 문자를 읽고 이야기를 음미하는 순수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불길한 예언과 함께 말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라는 긴 이름의 이 노인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굶어죽을 정도로 힘들게 살다가 수아르 족으로부터 돌봄과 가르침을 얻는다. 밀림에서 자연과 더불어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 이즈음 아마존을 개발하려는 문명에서 온 이들, 금을 캐어 일확천금을 노린 노다지꾼들이 밀림에 출몰하면서 서서히 비극은 시작한다. 노인은 원주민 친구를 죽인 백인에 대한 복수를 총으로대신했다. 하지만 수아르 족에게는 이들만의 계율이 있었으니, 복수를 하더라도 이들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노인은 백인의 총으로 복수를 했기에, 부족의 계율을 어긴 셈이 되었고, 부족을 떠나야 했다. 다시 엘 이딜리오라는 작은 마을로 돌아오게 된 노인은 이 곳에서 책을 알게 되고, 글을 읽는 기쁨을, 책을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발견한다. 다만 이렇게 순수한 기쁨도 어느 날 떠내려온 금발의 백인 시체로 오래가지 않았다.


 

사망한 백인은 밀림 속에서 살쾡이 새끼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먹이를 구하러 집을 비웠을 암살쾡이는 이제 인간을 상대로 복수에 나섰던 것이다. 이 금발의 양키는 밀림의 첫 번째 복수였던 셈이다. 노인의 말대로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153) 숱한 역사에서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을의 읍장은 사람을 공격하는짐승을 제거하기 위해 수색대를 꾸린다. 읍장은 밀림에 경험이 많은 노인에게 강요하듯 수색대에 포함시켜 밀림 속으로 길을 떠난다. 밀림 속에서 읍장이 보여주는 행동은 자연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맨발로 가라는 제안을 거부하고 장화를 신고 가다가 전갈이 바글바글한 진흙탕에 빠져 결국 장화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한 밤중에 전등을 키고 밀림을 깨워 일행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밀림의 법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자연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밀림은 동물이 배설물을 배출하면 곧이어 밀림의 개미를 비롯한 동물들이 달려드는 곳이다.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밀림 속에서 생명을 잃으면, 개미들과 새들을 비롯한 숲 속의 동물들은 반나절도 안 되어 사체의 백골만을 남겨놓는다. 노인이 죽음에 대해 갖게 된 시각 역시 깊은 밀림 속에 살며 밀림의 규칙을 익힌 수아르 족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153)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밀림에 사는 유일한 조건이라면 밀림 세계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이렇게 바라보게 된 노인은 지나치게 대담한 행동을 하던 암살쾡이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새끼들이 사람의 손에 죽었고, 상처를 입고 비쩍 말라버린 수컷 살쾡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던 상황을 떠올려본다. 아마도 암컷 살쾡이는 수컷의 고통이 긑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마지막 선택, 죽음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난 후 노인은 암살쾡이의 입장에서 이 짐승이 원하던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노인이 보기에 살쾡이는 속임수를 쓰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보다는 대담한 맞대결의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노인은 이 대결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소설은 이제 인간과 동물, 문명과 밀림 간에 벌어지는 최후의 대결로 이어진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유랑을 하게 된 작가였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권위주의적 강압 정책을 내세운 피노체트 정권의 위협으로부터 오로지 살기 위해모국을 떠나야 했던 인물이었다. 소설 속 노인 역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신을 압박하며 숨 막히게 만드는 삶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었다. 세풀베다도 유랑하는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작가의 눈길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백인 문명의 위력과 폐해, 그리고 희생자들에게도 머물렀다. 한 때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그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인간이 자연과 맺는 파괴적인 관계를 비판하고 회복을 촉구하는 소설을 쓰게 된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개발 문명 세력의 사주로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설 속에서 노인은 사람을 공격하는 밀림의 짐승을 죽이려는 수색대에 마지못해 합류하게 되지만, 살쾡이와 벌인 최후의 대결 후 그는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린다. 자연 속에서 공존의 지혜를 잃어버린 인간은 자연의 복수에 또 다시 자연을 파괴하는 악의 순환 고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이러한 대결은 노인에게 결코 명예롭지 못한 싸움이었다. 인간이 자연과 벌이는 이런 무모한 대결과 갈등은 노인이 좋아하는 연애 소설 속의 사랑에 빠진인물 사이의 관계와 대비된다. 연인 사이의 행복을 가로막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연인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결국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노인은 부끄러움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강물에 엽총을 던져 버리고, 다시 연애 소설이 있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으로 가는 길일 테다. 어쩌면 연애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통속적 구도와 교훈이야말로 자연을 파괴하며 자멸할 위기 앞에 놓인 인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은 아닐까



[참고] 1)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의 저자.


[1]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45)

[2]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 (130)
-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

[3]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면 끝까지 헤매는 곳이 밀림이라고요." (138)

[4] "그들(수아르 족)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153)
- 노인의 ‘죽음’에 대한 시각

[5]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153)

[6] "친구, 미안하군. 그 빌어먹을 양키놈이 우리 모두의 삶을 망쳐 놓고 만 거야." (171)
- 죽어가는 수컷 살쾡이를 총으로 죽여 고통을 끝내준 노인의 독백

[7]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179)

[8]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이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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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1-25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톤 체홉의 사랑에 관하여, 라는 단편 소설집을 보면 표제작은 불륜 관계의 사랑을 포기하고
아프게 결별하고,
그 안에 있는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연인-은 둘이 함께 하길 다짐하죠. 그들 앞엔 숱한 어려움이
있겠죠. ^^

초란공 2021-11-25 16:16   좋아요 1 | URL
소설가는 다종다양한 고난을 겪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저는 감사하게도 얌전히(?) 읽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읽으면 혹시라도 있을 고난을 견딜 힘이라도 생길지도 모르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