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우주의 첫 순간 - 빅뱅의 발견부터 암흑물질까지 현대 우주론의 중요한 문제들
댄 후퍼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3년 10월
평점 :
당혹한 암흑물질 사냥꾼의 우주론 안내서 겸 고백록
- 《우리 우주의 첫 순간》
: 빅뱅의 발견부터 암흑물질까지 현대 우주론의 중요한 문제들
댄 후퍼(Dan Hooper) 지음 | 배지은 옮김 [해나무] | (2023)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학생이던 외삼촌께 DNA가 뭐냐고 물어본 기억이 난다. 명문대 대학생(문과 사람이긴 했으나) 삼촌이 뭐라고 중얼거리셔서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요즘 과학에 좀 관심이 있는 초등학생들은 원자나 DNA에 관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발전하고 있고, 지식의 전달은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도서나 미디어 등을 통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 시절 개론으로 들었던 내용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에 나오는 걸 보면서 놀라기도 한다.
내가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이제 대부분 다 잊기도 했지만 남은 지식마저 대개는 30년 이전의 지식이다. 마침 최근 뉴스 기사에서 허블우주망원경의 고장에 관한 뉴스가 보이길레 관심 있게 읽어보았는데, 벌써 33년간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 상당히 노후화되어 부품 고장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동안 이 망원경을 통해 우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우리 우주의 첫 순간》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현대 물리학에서 등장하는 여러 입자들 가운데 중성미자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름이 말해주듯, 이 입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거대한’ 중성자에 비해 질량이 터무니없이 작은 입자다. 고도의 검출기로도 찾아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작은 입자란 의미에서 ‘중성미자’(neutrino)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질량이 작고(가볍고) 중성인 입자는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호작용을 생각해보려면 우선 큰 물체를 떠올려보자. 테니스공을 벽에 힘껏 던져보라. 그럼 벽에 공이 되튀어 내 눈에 멍이 들 것이다. 테니스공은 벽 및 내 눈과 상호작용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여자 테니스 세계 1위인 아리나 사발렌카를 떠올려보자. 그녀가 테니스공을 있는 힘껏 내리치면 철조망에 공이 박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도 공은 테니스 체의 줄, 벽, 그리고 내 눈과 ‘상호작용’을 한 셈이다. 충돌하여 되튀거나, 벽에 박히거나. 반면 테니스공이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테니스공을 칠 수도 없을뿐더러 공을 벽에 쳤다고 해도, 벽을 통과해 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호작용을 겨의 하지 않는 중성미자는 실제로 대부분의 물질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중성미자에 대한 내용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 입자가 지금 ‘매초마다 내 몸을 대략 100조개 이상 그대로 통과한다’(129)는 설명 때문이다. 그리고 이 중성미자의 대부분이 태양에서 핵융합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일상에서 나의 감각이나 기존의 지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현상들을 과학은 모형을 만들고 현상을 설명하며, 관측과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태양에서 나온 이 입자가 내 몸뿐만 아니라 지구도 쉽게 통과해간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도대체 내가 감각할 수 없는 이러한 사실을 과학자들은 어떻게 알아내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였던 칼 세이건의 영향으로, 이제 많은 이들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별’의 후손임을 안다. 별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핵융합 과정으로 가벼운 수소는 보다 무거운 헬륨 등으로 합쳐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또 아 결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보다 무거운 원소(탄소 등등)가 생성된다는 것까지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존재의 역사’를 말해주는 우주의 기원을 묻는 분야가 바로 저자 댄 후퍼와 같은 천체물리학-우주론학자들이 담당하는 분야일 것이다. 《우리 우주의 첫 순간》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탐구과정과 그 성과, 그리고 최신의 우주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이 있다면, 저자가 우주에 대해 알아낸 지식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지점이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종사해온 분야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성취를 조명함과 동시에 우리가 아직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현대 우주론이 아직 풀지 못한 지점이 어떤 것들인지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이 분야에 얼마나 진지하게 천착해오고 있는지를 반증해주고 있었다.
요새 초등학생 아이들이라면 ‘빅뱅’이 우주의 시작을 말하는 용어임을 상식처럼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아주 작은 영역(혹은 특이점)에서 폭발하여 우주가 확장해왔다는 이론 말이다. 이는 책에 소개된 바와 같이 1930년대에는 허블과 르메트르와 같은 과학자가 다룬 최신 과학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한대로 빅뱅 우주론을 간단히 표현해본다면, 빅뱅 우주론을 ‘뜨거웠던 과거, 차가워질 미래’에 대해 말하는 우주론이라고 정리해보겠다. 하지만 우주론이 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독립적이다시피 발전해온 입자물리학과 만남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어졌으며, 실험적으로도 어느 정도 검증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자가속기의 시대가 출현한 것이다. 이 도구는 입자를 거의 빛의 속도로 빠르게 가속시킨 후 여러 입자들과 충돌시켜 이 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검출하고 분석한다. 이 입자가속기의 역할은 빅뱅 우주 초기의 환경과 조건을 짧은 시간이나마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무거운 바위를 깨뜨리면 보다 작은 돌덩이가 되고, 이를 계속 충돌시켜 더 작은 돌멩이로 만들어낼 수 있듯이, 무거운 입자를 깨뜨려 보다 작거나 다른 종류의 입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들을 실험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입자가속기에서 입자들이 충돌할 때 방출하는 데이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내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 용량은 1테라바이트의 절반에 해당하는데, 5-6년 간 사용하고 있음에도 아직 저장 공간이 남아 있다.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수석과학자이기도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LHC(거대 강입자 충돌기)와 같은 장치에서 입자의 충돌로 방출되는 데이터만 해도 매초에 약 600테라바이트라고 한다. 그러니까 해마다 수십에서 수백 페타바이트에 해당하는 데이터가 쌓인다고 하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데이터다. 이거야말로 빅 데이터 처리 기술을 요할 것이다. 엄청난 데이터가 수집되면 전 세계 30여 개 국가에 분배되어 분석에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 저자의 상당한 연구 과정이 될 것이다. 그는 우주를 들여다보는 과학자이긴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과학자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원을 말해줄 수 있는 증거를 추적하는 사람이다. 현대 우주론은 빅뱅 이론에 근거를 두긴 했지만, 여러 차례 수정과 변형을 거쳐 초기 우주가 급격한 폭발을 일으켰다는 ‘우주 급팽창’이론으로 진화되었다. 이 이론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우주의 극초기 시기에 일어난 현상을 설명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빅뱅 이후 우리 우주의 현재 모습을 설명하는 데 있다. 입자 가속기를 통해 초기 우주의 조건을 상당히 구현해내었다고 하지만, 빅뱅 후 첫 1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실험으로 구현해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충돌시키는 입자의 에너지를 더 크게(곧 입자를 더 빠르게) 가속시켜 충돌해야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에 도달할 규모가 실험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책에 따르면 현대 우주론은 빅뱅 이론에서 더 나아간 우주 급팽창이론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우주가 그냥 단순히 폭발(빅뱅)해서 균일하게 팽창해온 것이 아니라, 우주의 초기에 아주 격렬하게 폭발하며 팽창하며, 여러 상전이 현상을 거쳐 지금 우리 우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우주 급팽창 이론을 통해 우주의 극초기 시기에 서로 만나면 소멸하는 물질과 반물질의 비율이 비대칭적으로 물질 위주로 남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 관련된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은 아직도 추정만 하는 상황이다. 특히 실험적으로 구현하여 검증해내기 매우 힘든 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주 극초기의 조건에 대해 다양한 모형이 제시되었고, 간접적인 증거를 수집해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것이 현대 우주론 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몇 가지 이슈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관심 이슈는 우주 급팽창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끝나는지에 관한 탐구다(309). 우주 급팽창 이론과 같은 이론이 필요하게 된 근본적인 우주의 조건에는 우리의 존재를 강력하게 설명해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설명이 되어야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입자들을 제외하면 우리 우주의 총에너지 가운데 95%가 바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이루어낸 과학적 성취가 대단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만 알아냈을 뿐이다. 저자와 같은 천체물리학자가 암흑물질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우주의 기원에 관련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암흑물질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아낼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극초기의 우주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219)는 것이다. 곧 우주로부터 연유한 모든 존재, 예컨대 은하나 별, 행성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명, 결국 우리도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암흑물질 사냥꾼인 저자가 우주로부터 암흑물질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려고 오래도록 헌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이 과정이 쉬울 리는 없다. 암흑물질을 쫓는 과학자로서 저자는 이 우주에서 회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사’를 가장 싫어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216). 이 펄사에서 나오는 신호 스펙트럼 형태가 암흑물질이 내보낼 것으로 여겨지는 신호와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에는 사실상 실패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LHC와 같은 거대 장비로부터 얻은 지식이 거의 없거나 부실할 때, 혹은 기대되었던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학자들이 얼마나 좌절을 하게 될지 짐작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과학은 ‘확실하고 정확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요소를 갖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실험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 이론은 틀린 것이다”라고 했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처럼, 과학은 언제든 검증을 요구하고 예측이 관측이나 실험 결과와 다를 경우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게 마련이다. 저자 댄 후퍼 역시 페르미 감마선 망원경으로 측정한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어 이를 주장했지만 과학자 집단의 강력한 저항에 마주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료 과학자 집단을 설득하기 위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엄밀한 이론을 고민하고 보다 다양한 분석 기법과 접근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저자는 5년간 진행한 연구로 과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성취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해피 엔딩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언제나 헤피 엔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저자가 “10년 전 우리는 약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암흑물질을 생각했다. 오늘날에는 도대체 암흑물질이 가시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묻고 있다.”(233)라고 말한 대목처럼, 마치 길을 잃은 듯 보이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가 얼마나 어려울지 암시한다. 그는 다중우주와 양자중력 등에 관한 이야기까지 최신의 우주론을 설명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이 인정하는 이론들이 ‘거의 대부분 틀렸을 수도 있다’는 태도 역시 분명히 견지한다. 다른 과학서들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다 선명히 그려볼 수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책 전반에서 견지되고 있다. 우리가 현재까지 알아낸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이 책은 암흑물질을 탐색하며 현대 우주론을 이끄는 한 과학자가 안내하는 현대 우주론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동시에, 과학자집단에 의해 이루어낸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고백하는 당혹한 지구인의 고백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