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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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영화가 개봉하고서부터였나보다. 계속 추천 멘트가 날라왔다. 책도 나왔다. 하지만 계속 우선순위로부터 뒤로 밀리게 되었다. 올 해 되어서도 주위에서 이 영화가 괜찮다고들 하는 소리가 여전히 내 귀에 들렸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는 딱 질색이라서, 일부러 멀리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쨋건 이틀 전 이 7년전 영화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본 후에 감동을 먹은 작품은 꽤 돼지만 이 작품은 데미지가 엄청나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우 추스려 언어로 옮겨본 것이 아래의 감상평이다. 언어로 옮길 수조차 없어서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정리했다.

이런 영화는 언어로 뭐라 지껄이는 것이 온당하지 않지만 그래도 꼭 영화 감상의 느낌을 글로 가둬두고 싶었다.



1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 조제를 만난 지 1년 후 츠네오가 사강의 속편을 조제에게 사다주며 조제가 읽는 대목


「해저..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츠네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함께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물고기가 그려진 모텔에서 조제의 독백


이별할 줄 알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결국 남자가 도망침으로해서 담백한 이별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의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도망친 츠네오의 눈물이 말해준다.

도망칠 수 있고, 다른 연인으로 그 외형적인 빈 자리를 대치할 수는 있지만 육체와 영혼에 주입된 사랑은 그것이 남긴 자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카나에를 옆에 두고도 도로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며 흘러나오는 츠네오의 독백은 이를 방증한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츠네오의 독백을 뒤로하고 장면이 바뀌어 조제가 자동휠체어를 타고 간다.

조제가 타고가는 자동휠체어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집에서 생선을 굽고 있는 조제를 보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

인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이 진부한 물음. 왜 이별을 예정한 두 사람의 사랑 속에는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뭔가가 있을까? 아니, 질문을 조금만 더 문학적 깊이가 느껴지게끔 해보자.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이 영혼을 잠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랑의 비현실적인 가능성이 이토록 사무치게 다가오는 것일까? 영화 속의 장면일 수밖에 없는데, 왜 이리도 가슴이 저린 것일까?
준비된 답변: 생길 수 없는 사랑이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까닭은 그들 각자에게 모든 것이 바로 그와 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고통이며 잔인한 경험 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의 발견이 품고 있는 이 파괴적인 격렬함. 자아의 어떤 것도 더 이상 자아에 남아 있지 못하는 것. 바로 그 점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3

누군가 그랬다. 사랑의 발견은 매혹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조제에게 매혹 당했다. 걷지 못하고 하반신을 끌면서 움직이는 가녀린 그녀를 보면서, (그녀 스스로 말한) 해저 밑의 조개로 그녀가 정확히 유비됐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던 이미지는 불현듯 스크린 상에 나타나 영혼을 불러들이는 신기루가 되어 고정된 눈안으로 들어온다. 부재의 밑바닥에서 꿈속으로 떠오르는 갈망의 이미지가 스크린에 현현한다. 요리를 하러 가는 그녀, 책을 읽는 그녀 그리고 츠네오에게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선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매혹된 자는 하나의 시선이다. 바라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 안으로 시선을 통해 옮아간다. 매혹된 자는 자신을 제압하는 독선적인 형태 앞에서 느끼는 황홀경에 빠진 한 순간이 된다.

그 한 순간이 지나니, 조제는 영화 뒤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불면의 밤이 어떤 건지를 알게 했다.


4

세월에 흐름에 따라서 감정은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무덤덤한 시간 속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않는 길을 통해 언어로 치환할 수 없는 격정을 경험한다.

이 격정은 언어표현의 파괴를 요구하고 수면도 없는 불면의 밤을 요청한다. 이것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깨를 들썩이는 흐느낌밖엔 없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감정은 호시탐탐 사랑을 노리고 있나보다. 

 

 

 * 파란색 표시는 <은밀한 생>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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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女革命ウテナ (1) (小學館文庫) (文庫)
ビ-パパス / 小學館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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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루만 듣던 그 우테나...
편견에 사로잡혀서 영~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하두 볼게 없어 다시 보기 시작한 애니가 이 소녀혁명 우테나 였습니다. (예전엔 건성건성 봤다는..--;;)
그런데, 보면 볼 수록 매력적인 작품이더군요.

이 작품을 짧게 평하다면, 적당히 코믹하구 적당히 심각하며 적당한 재미가 얽혀져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매 에피소드를 분석해서 보면 뻔한 스토리에 진부하기 그지 없는 내용이 인물만 바뀌어 반복되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중독성이 강합니다.

솔직히 플롯 구조만 놓고 보면, 왕자와 공주의 진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빼어난 연출력과 수려한 음악 그리고 캐릭터를 창조한 성우들의 연기가 전체적인 tv씨리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오프닝이 압권입니다. 작품의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상징적으로 처리한 영상과 가사가 어우러져, <마법기사 레이어스> 이후 최고의 오프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프닝 뿐만 아니라 엔딩과 삽입곡도 빼어나서  유일하게 OST 앨범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는 원작 만화인 <소녀혁명 우테나>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 순정만화(어느 분이 처음 표현 했는지 모르지만 백합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분류하기에는 좀 꺼림직합니다.

월간 뉴타입 기사에서 우테나를 평하기를 '일반 순정 애니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순정을 가장한 심리물인거 같습니다. 뭐, 어느 분은 페미니즘을 표방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치하하고 있습니다만..
그도 그럴것이 <우테나>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복잡한 설정과 암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분석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속고 속이는 관계. 누가 누구를 속이는지. 세계를 혁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속고 속이는 관계속에서 진실은 밝혀지고 그 의미가, 다시 말해서 '혁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작품은 히메미야 안시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는 단지 진실을 고양하기 위한 거짓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프닝에서 "거짓을 부서가고 싶어"와 엔딩에서 "거짓에 미움받고 싶어"라는 가사는 이 작품이 계속 주인공과 시청자를 속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의 감동을 위해 기꺼이 속아줄 수 있는 그런 거짓이랄까요...

편견을 부숴버리고 보니 우테나는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대작의 반열에 오를만 하더군요. 확실히 오타쿠 지향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안시와 우테나의, 그리고 듀얼리스트들의 얽히고 설킨 소유욕의 열망을 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의미있게 감상하는 잣대가 되겠군요. 하여간 중독성 강한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참~^^;;



그런데, 써놓고 보니 참으로 횡설수설한 우테나 감상기가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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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즈 - Mem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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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매력적인 장미>

 

 때는 2092년 10월 12일 우주에서 수색중이던 코로나 우주선은 노랫 소리의 S.O.S구조 신호를 보내는 우주선을 한 척 포착한다. 헤인즈와 미구엘은 R2-3005지역 일명 우주의 묘지안에서 발하는 조난 신호를 받고 구조지원을 나간다. 조난 신호를 발하는 우주선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주선이 매우 낡았음에 놀란다. 코로나호로부터 3시간 이내에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그들은 우주선 내부를 순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거기서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그곳에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오페라 극장같이 잘 지어진 바로크식 무대장치와 공연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앙에는 어느 마담의 아름다운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에바 프리델. 2030년대의 사람. 이탈리안 댄스페스티발의 최고 솔로가수. 비엔나 뮤직상 수상. 도쿄 국제 초페라 페스티발 대상에 빛나는 잘나가던 오페라 가수였다. 그리고 이 우주선은 그녀의 추억을 위한 것이었다. 우주선의 모든 장식과 장치들이 그녀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헤인즈와 미구엘이 각각 흩어져 수색하게 되자 점점 더 많은 환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장르: SF미스테리
감독: 모리모토 코지

 

 사진이란 무엇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이 현재의 시간을 잡아놓기 위해 애쓴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을 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이다. 현재의 시간이 영화로울수록 그 강도는 더해진다.

 <메모리즈>의 첫 에피소드인 이 <매력적인 장미>는 그런 점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하는 작품이다. 기억속의 여자 에바 프리델은 자신의 영화로움을 영원히 보존하고자 그녀의 영광스런 추억으로만 가득찬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를 떠다닌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망령은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우주를 떠도는 추억의 우주선.

 주인공인 헤인즈와 미구엘은 우연히 에바의 망령이 깃든 우주선을 발견하고 우주선을 탐색하기 위해 들어간다. 헌데, 얼마지나지 않아 에바의 추억과 자신의 과거가 뒤엉키면서 현실이 환상이 되고 환상이 현실이 된다. 그곳에서의 모든 환상은 그녀의 추억이자 그들 자신의 추억이었다.

 이 작품은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불행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추억속에 사람들을 매몰시키면서 그녀는 무엇을 얻었을까? “추억은 도피수단이 될 수 없다”는 헤인즈의 말이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을 것이다. 그렇다. 추억은 과거일 따름이다.

 이 작품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과거에 매몰될 수 없으며, 추억에의 집착이 무의미함을 화려한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2편 <악취탄>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다나까 노부오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동네 의원에서 주사를 맞았지만 영 차도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계속 기침을 하고 코를 풀자 동료 직원이 새로 개발한 해열제를 먹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노부오는 과장방에서 파란병에든 빨간 캡슐의 신약을 먹는다.  노부오가 신약을 먹은 후 얼마지나자 회사내에 이상한 냄새가 퍼진다. 아픈 탓에 휴게실에서 잠을 자고 깨어난 노부오는 자신이 너무 많이 잤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것이다. 아침의 사무실은 너무도 조용했다. 카운터의 아가씨가 잠을 자고 있어 노부오가 깨우니 죽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무실의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이었다. 제약회사에 남은 사람은 자신 혼자임을 알고 당황한다. 과장 방에 찾아간 노부오는 경보등을 켠다. 그러자 모든 문이 폐쇄되고 제약회사 본사에 연결된 대형스크린이 켜진다. 회사내의 무인카메라로 상황을 본 회사의 지도부는 당황해하며, 노부오에게 빨간 캡슐이 들어있는 파란 약병과 서류를 들고 도쿄 본부에 있는 신약 개발부장 교이치를 찾아오라는 지령을 받는다. 드디어 노부오는 자전거를 타고 도쿄로 간다. 하지만 노부오가 밖에서 본 것은 날아가던 새가 떨어져 죽으며, 한 겨울의 들판에 벚꽃과 해바라기가 만발한 기이한 풍경이었다. 도로의 모든 차들은 사고로 파괴 되었고, 사람은 죽어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노부오는 도쿄로 발을 재촉한다.


장르: 블랙 코미디
감독: 오카무라 덴사이

 마지막 반전이 압권인 이 작품은 여러모로 <노인 Z>와 닮았다. <노인 Z>에서 오토모 가츠히로는 일본의 복지문제를 블랙 코미디적 형식을 통해 강하게 비판했었다. 이 작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의 생체병기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를 이 작품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코메디로 냉소적으로 비판한 감독의 역량이 잘 발휘된 작품이라 하겠다. 

 주인공 노부오가 먹은 약은 국가 기밀의 화학약품 이었다. 노부오가 먹은 약이 그의 몸속의 물질과 혼합되어 냄새가 만들어지고 그 냄새의 양은 그의 활동량, 감정의 변화, 신진대사 활동에 비례하며 땀을 흘려도 냄새로 변한다. 이 사실 때문에 기상이변이 생기고 사람이 죽어간다. 이것을 감상하는 중간에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마지막의 기상천외한 반전을 예상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특히 노부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육,해,공군이 모두 동원되어 폭격을 퍼붓는 장면과 마지막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노부오였다는 기상 천외한 발상은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블랙코미디적 연출력의 절정이었다. 황당하고 웃긴 장면이었지만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게 만드는 장면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 전개와 반전의 여운은 웃음과 함께 덴사이 감독이 무엇을 비판하는지 엿볼 수 있는 걸작이다.


제3편 <대포의 거리>  

 

어떤 꼬마가 잠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가족의 하루가 시작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가족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하는 일을 보여준다. 꼬마는 학교로 가서 군수에 관련된 것을 배운다.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수 있기 위해 삼각함수를 배우고, 정확성을 위해 광행차를 만들어 외부인자를 계산한다. 가격의 궤도에 영향을 주는 풍속과 풍향과 같은 기후요소는 화학시간에 배운다. 꼬마의 아버지는 포탄을 싣는 일에 종사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속에서 기계적인 명령에 부속품처럼 움직이는 일이다. 꼬마의 어머니는 포탄을 제작하는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한다. TV, 라디오 등 일상의 모든 일들이 대포를 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집들의 위에는 대포가 설치되어 있다. 온통 요새화된 도시 전체가 무기고다. 시간이 되면 모든 집들 위의 대포들은 일제히 어떤 방향을 조준한다. 그리고 중앙의 대포를 쏘기 위해 일제히 사람들이 동원된다. 하루 두 번 포를 발사하기 위해 사람들은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탄약을 내리고 포의 각도를 맞추고 장전한다. 발사명렬은 한 사람의 장군과 같이 생긴 사람에 의해 행해진다. 방독면을 쓴 채 탄 발사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어보인다. 그리고 아무 목적 없이 발사장면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은 또 한발의 포 발사를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장르: SF
감독: 오토모 가츠히로
원작: 오토모 가츠히로

 

22분 18초 동안 한 컷으로만 보여주는 이 작품은 어떤 새로운 공간에서 한 꼬마의 하루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이 전에 오토모 가츠히로가 보여주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실험성과 상징성, 비판정신이 함축된 작품이다.

 감독은 모든 일이 대포를 쏘는 일에 집중되어 있는 한 도시를 보여준다. 하나의 병영국가와 같은 이 도시는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를 연상시킨다. 포를 쏘아 보이지 않는 적을 섬멸하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행복은 희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끊임없는 지시 사항들, 통제된 사회, 자유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 개인들은 포를 쏘는 일정한 절차로서 맡은바 직무는 잘 수행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의욕이 없고 생기가 없다. 한마디로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대포를 쏘는지, 적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단 하나의 목적이란 시키는 데로 포를 쏘는 일 뿐이다.

 한 편의 추상화를 감상하는 듯한 이 작품에서 오토모 가츠히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도, 감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의 부속품으로 매몰되어 가는 인간 소외를 비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좀 더 들여다 보면, (보이지 않는 적을 위해 대포로 무장한) 도시의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인간이 지양해야 할 사회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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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 Inglourious Baste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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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에서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본 영화다. 

단지 쿠엔티 타란티노 감독에 브래드피트가 주연이라서 판도럼을 밀어내고 보게 되었다~ 

(앗, 근데 아무리 할인되는 카드가 없다지만 관람료 9000원은 터무니 없는 가격인거 같다. 이제 영화는 조조만 봐야하는지도...근데, 우라질~ 조조는 재미난 영화가 별로 없다는 사실...극장 끼리 담합을 했나부다~ --;;) 

관람료 9000원을 내는 순간 짜증이 쓰나미 처럼 밀려왔지만, 그래..영화만 재밌으면 그래도 울화감은 덜 치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봤다~ 

얼마의 시간 후, 나는 정말 유쾌하게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특히, 타란티노 감독이 그저 그렇게 흐를 수 있는 내용의 영화를 멋지게 뽑아 냈다는 것에 박수를 보냈다~  

물론 줄거리 자체는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반전도 없고, 그렇다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스텍터클한 전투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에너미 엣더 게이트> 처럼 극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부분도 없다. 

하지만 영화는 유쾌하게 재밌다. 바로 순간 순간을 기막히게 연출한 감독 덕택이다. 여기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거품이 빠진 브래드 피트의 연기와 한스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왈츠의 연기가 이 영화는 연출과 배우 빼면 남는 것이 없는 영화라는 것을 입증한다. 

왈츠의 연기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영화의 사실상의 주인공은 한스 역의 왈츠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순간 순간 웃음을 터뜨르게 하는 타란티노 감독의 기발하고도 의외의 연출력 덕분에 다소 심각할 수 있는 영화가 유쾌해 졌다.  특히 영화를 희곡처럼 제1장, 제2장, 제3장 각 소주제를 붙여 구성한 것은 매우 신선했다~

약간의 잔인한 장면이 없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기분좋게 영화관을 나올 수 있는 오락영화이지 않나 생각된다.   

지금 극장에서 할인 카드 없이 9000원을 몽땅 지불하고도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000원의 효용을 넘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팬도럼>이나 <2012> 그리고 <시간여행자의 아내>를 볼 수 없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대체 영화일 수 있고, 그렇게 본다면 절대 후회 안할 영화라 자부하는 바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ㅎㅎ 

 

아~~ 한 가지 더..시대적 배경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완전한 사발이라는 거..ㅋㅋ 환타지 영화라 봐도 무리가 없는 그런 영화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뒤통수를 어루만져야 할지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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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워즈 - Summer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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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아니메인 썸머워즈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정보사회에서의 재앙이 그대로 현실사회에서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전통을 기반으로하는 시골사회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2퍼센트 부족한 느낌. 

플롯 구조는 나름 괜찮았지만(그래도 그 엄청난 재앙을 고등학생이 해결한다는 거는 아닌거 같다..) 감동을 주기에는 밋밋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단,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재앙을 의미있게 그린 것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비주얼면에서도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진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지 않았다. 감독은 할머니로 대변되는 대가족 중심의 전통(시골)사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했다. 정보사회에서는 전통적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 가기에..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할머니의 유언이 이 작품의 주제를 응축시켜 전달하고 있다.

가족끼리 항상 열심히 살고, 같이 밥을 먹으라고.. 배고프게 혼자 있지 말라고.. 

공감이 가지만 웬지 감동적이지는 않다..ㅎ 너무 들이대는 주제의식이랄까..하여간~

지부리 극장판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도 재밌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감동은 보장하지 못하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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