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경매에 참가해서 평소 눈여겨 보던 북한 그림 한 점을 낙찰받았습니다. 약30호 정도의 풍경화인데, 보는 순간 너무도 멋진 풍경화라 안 살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 그림의 작가는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는 사람인데, 북한에서 인민예술가는 그 공적이 탁월한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칭호라고 합니다. 이보다 한 등급 낮은 칭호가 공훈예술가라고 합니다.
대체로 북한의 일류 예술가의 작품들이라고하면 공훈예술과와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작가들의 작품군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로치면 각종 미술제에서 우수하게 입상을 여러번 하여 한국예술원 회원이 되는...뭐, 그 정도 급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북한의 일류 예술가들 특히 미술가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공적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없는 아주 드문 곳이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끔 보는 6.25 전쟁을 미화하는 그림이나 노동적위대를 선전하는 포스터류의 그림들을 보면 약간 촌스러운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사실화를 원색을 써서 강렬하게 표현하기에 그런 듯보입니다.
주어진 틀이 그러하니 아무리 대가들이 그렸다고하더라도 잘 그렸다는 느낌보다는 80년대 영화관에 걸린 선전용 포스터를 보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선전용 선동 매체로 그림을 활용하는 북한의 방식 때문에 북한 화가들의 그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풍경화로 넘어가면 정말 끝내주는 그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진짜 대가들이 그렸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일반 그림 경력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풍경화도 정형적인 틀이 있는 듯 비슷비슷한 그림들(금강산을 그린 채색 산수화)이 많습니다만, 고흐가 그린 듯한 풍경화들도 꽤 있어 놀라곤 합니다. 정말 끝내주는 세밀화도 있구요.
이런 북한의 일류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는 유럽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희귀성 때문이라는군요. 화가들이 사실화만을 그리는 나라는 거의 없는데 구소련이 망한 이래 북한이 유일하답니다.
체제 안에서, 형식 안에서 그리도 많은 제한 속에서 탄생한 풍경화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40-50년대 화풍을 간직한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면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응팔을 보고 열광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2015년에 영국에서 전시된 북한의 그림들은 엄청난 호평속에서 전시된 거의 모든 그림들이 팔렸는데, 50호 기준으로 한 점당 천 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북한의 일류화가들의 그림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는 듯합니다. 인민예술가의 30호 그림이 강남 모 갤러리의 30대 초짜 작가의 그림에 1/10도 안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니까요. 이건 정말 기가찰만하죠.
물론 위작의 위험이 있긴합니다. 헌데 정창모 화백과 같은 아주 대가가 아닌 이상 위작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뭐, 위작이라도 엄청나게 잘 그린 위작이라면 걸어놓고 감상할 가치는 충분한 듯합니다.
인민예술가 정도 되면 위작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않긴 하겠지만(작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그림만 보고 내 눈을 믿어야겠지요. 이제, 구매한 그림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 렴태순(인민예술가), 육계리에서, 약30호, 캔버스에 유채, 2007>
렴태순 : 1950년생
1973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4~ 전문미술창작기관 창작가
1993~ 백호창작사 창작가
2005 인민예술가 칭호
1978 국가미술전람회 2등상 수상
1992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수상
렴태순 화백의 '육계리에서'라는 작품으로,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습니다. 원경과 근경 그리고 물가에 반사된 자연을 먼 구도에서 포착해 표현한 부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은 흡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실물을 보면 정말 압도합니다. 렴태순 화백의 여러 작품들을 봤지만 이런 수평 구도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구도는 별로 못봤습니다. 물론 이 작품보다 훨씬 멋진 작품들이 더 있긴 하지만 렴태순 화백만의 뚜렷한 화풍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래 서명이라든가 색을 표현하는 붓터치 같은 걸 보면 위작일 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뭐, 위작이니 북한 그림이니 이런 걸 모두 떠나서 위 그림 자체만 본다면, 이 그림은 강남 어떤 갤러리에서 보는 작품들보다 훨씬 좋습니다. 같이 놓고 본다면 다른 풍경화들은 다 아마추어 급이 되는 듯합니다. 저는 볼때마다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ㅎㅎ
아쉽게도 북한 화가에 대한 소개서나 북한 그림에 대한 안내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북한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개론서가 대세인듯합니다.
덧>
북한의 그림들은 통일이 됐을 시 가치가 상상 이상으로 폭등할 거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죠. 언제 어떤 그림을 사야할지가 문제이고, 위작에서도 자유롭지 않고...투자처로서는 머리가 아픈 그야말로 복마전이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저렴하게 사서 걸어 놓고 감상하여 좋다면 그걸로 된 거죠. 위작이라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요. 물론 진품이라면 좋은 이익이 덤으로 생기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ㅎㅎ 그때까지 좋은 북한 그림을 한점 한점 모아야 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