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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 지인들은 40대가 됐는데도 결혼에 생각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50 넘으신 지인(물론 여자)은 아직도 여러 문화적 관람에 재미를 느끼며 저축 없이 아낌없이 삽니다. 저축을 왜 안하냐고 물으면, 저축 따위는 나와 상관없다 말합니다.

 

보통 비슷한 부류가 모인다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위 지인과 비슷한 행태를 보입니다. 능력도 있고 주관도 뚜렷하죠. 그래서 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혼 생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통계에서도 미혼 인구가 아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니, 대다수가 결혼을 안하는 줄 알았습니다.

 

헌데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안하고 싶은 사람보다 그 비율이 많은 듯합니다. 결혼을 못해 미혼인 인구가 상당하다는 건데, 이 상황은 개인적으로 참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결혼은 안하고 싶어 미혼인 건 상당히 건전한데, 결혼을 하고 싶은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한다는 건 충실한 삶이 아닌 듯해서입니다.

 

건너 건너 아는 분(아버지 친구의 자녀)이 결혼을 하려나 봅니다. 여자 분인데 38살입니다. 능력이 출중하여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신변이 안정되자 결혼을 하고 싶어 합니다.

 

헌데 나이가 많다고 소개팅이나 선이 없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결정사에 가입하여 거금을 내고 남자를 만나고 왔는데 그냥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이 분은 키도 크고(171) 날씬하며 메이크업을 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도 볼 수 있는 동안의 외모를 가졌다네요.

 

젊었을 때 미모가 출중하여 인기가 좋았다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 연애 보다는 학업에 가치를 두는 뭐 그런 여자였던 듯합니다. 욕심도 많은 일종의 알파걸 부류였는데, 미모가 폭발할 때는 결혼에 뜻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8살에 결혼을 하려고 보니 결혼시장이란 곳은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어서 충격을 심하게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자기는 결혼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네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에게 여쭈어 봤습니다. 나온 남자의 스펙.

 

그랬더니 결정사에서 매칭해준 남자가 43살의 잘나가는 대기업 직장인이랍니다. 머리가 벗겨진 168인 일반적인 40대 남성.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첨엔 6살 차이가 많다고 느끼는 건 내가 남자라서 그런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벗겨졌다는 사실에서 왜 여자분이 충격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아저씨 스타일로 여자분을 만났던듯합니다. 자기보다 6살 많은 남자가 키도 작고 스타일도 없으니 자기가 매우 평가절하됐다고 느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으로 검색을 해 보니 이러한 결정사 사례는 차고도 넘쳤습니다. 검색하다가 보니 결혼시장의 아포리즘과 같은 말이 보이더군요.

 

결정사에서 나오는 상대가 대략적으로 자신의 레벨이다. 결정사는 바보가 아니다.”

 

검색된 모든 글을 읽으며 내린 결론이 결혼시장이란 곳은 매우 냉정한 곳이고, 여기의 갑은 결정사란 곳임을 알게 됐습니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 결정사의 잣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개인적으로 결혼을 결정사를 통해 하는 걸 매우 바보같은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결혼이 하고 싶으면 노력을 통해 자기가 쟁취해야지 외부적인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면 사람을 알 수 없기에(포장된 인격만을 만나기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떠나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한 가지 매우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왜 모든 여자들은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조건의 남자를 찾지?’라는 의문. 남녀평등,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시장은 전근대적인 모습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능력이 더 출중하고, 모든 면에서 더 나으면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겁니다.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 출세하는 그림이 왜 작금의 현실에서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21세기 인데 말입니다.

 

물론 외국 결혼시장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대체로 스펙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 비율은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은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는 외국인들만 보아도 여자가 남자를 벌어 먹이는 사례가 상당히 있으니까요.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서 훨씬 더 남자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유럽 여자들의 상당수는 자기가 능력이 더 나으면 자기가 남자를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수수께끼처럼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 결혼시장의 구조가요. 저는 뭐 결혼에 일말의 관심도 없기에 이런 세상이 참 신기합니다. 남녀평등과 성인지가 제도화된 시점에서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여성들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82년생 김지영>이 공전의 히트를 쳤겠지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직도 압박과 설움 속에서 사는 듯합니다. 이건 뭐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자들 중 능력이 출중하고 경제력이 높은 분들 역시 자기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를 원하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몇 자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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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을 쓴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친구 분 사례에서 여자38세 맞선 남이 43세였다는 걸 직장에서 밥먹으며 얘기 했는데, 여자 동료들이 모두 남자 나이가 많다고 타박을 하기에 이상해서 써봤습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얘기를 꺼낸 건데, 역린을 건드린 꼴이 되었습니다. 하하~

그래서 평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좀 논의를 확대해 봤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도 저는 전혀 공감을 할 수 없었는데, 이게 내가 생물학적인 남자라서 어쩔 수 없는 인식의 한계를 갖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식이 아직도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는지를 명확히 갈음할 수 없었기에 그렇습니다. 21세기, 결혼시장의 전근대적 인식은 무엇을 반영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덧글로 깨우쳐 주실 분을 찾는 게 이 페이퍼의 궁극의 목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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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08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남자가 가장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고가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얼마 전 김창욱 리부트 보니까 남자가 여자 보다 수입이 적은 것에
자존심 상해하더라구요. 대부분의 여자들도 자신 보다 수입이 적은 배우자를
신경 쓰이거나 싫어하죠. 데이트 비용도 지금은 반반씩 부담하기도 한다지만
대체로 아직도 남자가 부담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좋아하면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38의 나이에 43이면 많은 것도 아닌데 많다고 생각한다니
아무래도 상대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마음에 들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겠죠.

얼마 전, 결정사에서 딸과 함께 온 어느 엄마에게 매칭을 위해
원하는 사윗감을 대라고 했더니 무조건 가수 김호중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충격 먹었습니다.
뭐 일부러 컨셉은 그렇게 잡았을 거 같긴한데 딸이 원하는 건 안중에도 없고.


yamoo 2023-11-09 09:5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자38에 남자43이면 수용가능한 연령대인데...
이게 그렇게나 말도 안되는 매칭인지 좀 거시기 합니다..^^;;

우리나라 결혼시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근대적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한데..결혼 당사자들 역시 이런 문화에 아주 잘 적응이 된 듯합니다..ㅎㅎ

2023-11-11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13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11-15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19세기의 사고를 접하는 경우가 저는 많습니다. 여성이라서일까요?
2) 여성 나이가 많으면 왜 점수가 많이 깎여야 하는지도 의문. 동갑끼리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3) 저의 개인적인 의견 : 남성의 스펙이 여성보다 월등해야 한다는 사고도 깰 깨가 됐죠.
저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집을 잘 가면(신랑의 스펙이나 집안이 좋은 경우를 말함) 신부가 고달퍼요. 좀 어려운 데로 시집 가면 신부가 대우 받으며 살 수 있음.
반대로 남성이 장가를 잘 가면 처가집에 기죽어 살아야 하고, 어려운 집안으로 장가 가면 대우를 받아요. 그래서 저는 딸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좋은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지 않았으면 해요. 고달퍼서요. 차라리 대우 받는 집안과 사돈 맺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봐요.

yamoo 2023-11-15 16:36   좋아요 2 | URL
1) 결혼시장에서 당사자가 되면 확실히 보수적이 되는 듯합니다. 뭐 저는 당사자가 될 일이 없기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 아마도 출산 때문에 그런듯합니다.
3) 물론 결혼에서 무게 추가 기울어지는 쪽..그니까 가벼운 쪽이 을이 되어 대우받지 못하는 건 있긴 합니다만...그게 조건을 우선 보는 결혼이 그럴 확률이 매우 높고 그런 경우가 아니면 고달픈 삶은 별로 없을 듯해요..^^;;

2023-11-17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11-17 17:4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외국인 만나는 편이 훨씬 낫지요..
독신남이 능력 외모 키가 출중한데 나이가 많으면 또 탈락..
3-4가지 조건이 and로 연결되어 있어 찾기가 정말 어려운데, 우리나라 결혼시장은 그런 조건 매칭이 전제되는지라...답이 없는듯한데...결정사를 통한 결혼이 있긴 있어 신기하긴 합니다..ㅎㅎ
 

안 보는 책들을 정리하다가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 2004)가 굴러 떨어졌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일본 국사 교과서 파동이 날 때 즈음 일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바로 위에 이형구의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까치, 1991)이 있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구입했던 듯하다.

 

단군과 고조선이 만들어진 신화라는 송호정의 주장을 담은 책이 <단군, 만들어진 신화>인데, 앞부분을 조금 보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국내 고조선 박사학위 1호라는 양반의 글이 주장만 있지 논증이 없었기에. 읽다가 어의가 없어 덮었다. 좀 더 논증적인 고조선 관련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조선관련 책들을 찾았다. 역사 책 더미 어딘가에 분명히 몇 권 있었을 거다. 내 기억에 이덕일 저서 몇 권하고 고대사학 매국 어쩌고 하는 책을 분명히 사두었었다. 30여 분 가량 찾았나 보. 통사하고 고려 관련 책들과 함께 고조선 관련 책을 찾았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도서출판 말, 2018)와 김상태의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책보세, 2013).


 






도대체 내가 왜 리지린의 책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몰랐는데, 갑자기 5년 전 지인이 동북아 고조선 연구 최고의 책이라고 해서 바로 구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덕일의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는 책도 찾았다. 이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단 김상태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제대로 짚었다.

 

김상태의 책은 바로 송호정과 그 무리들(이병도-이기백-노태돈-송호정-이형구)의 책들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다. 김상태의 책을 읽은 최고의 소득은 바로 윤내현이라는 고조선 전문가의 발견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학자였는데, 김상태의 책을 통해 윤내현이 얼마나 위대한 학자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한국 고대사와 그역적들>이라는 책은 저자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을 읽고 하도 빡이 쳐서 이기백과 송호정을 비롯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윤내현이 이들에게 당한 학문적 숙청을 김상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윤내현을 대신해서, 윤내현의 이론을 통해 허접한 주류 고대사학계(서울대 라인)를 맹렬히 공격하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상태의 책을 읽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이 올라온다. 도무지 고대 사학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이론을 보존하기 위해 새롭게 발굴된 학자의 신선한 이론을 무시하고 비방하며 왕따를 시키는 행태가 꼭 양아치의 짓거리와 닮아 있기에, 도저히 학자들이 세계가 아닌 것처럼 여겨져서다.

 

김상태의 저서들을 이전에 이미 읽어서 그가 어떤 책을 주로 쓰는지 이미 알고 있었긴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비판의 수위는 김상태의 저서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논증이 약간 미비한 지점도 있긴 하지만 이기백-노태돈-송호정-이형구-이덕일 등을 비판하는 저자의 공격 수위는 비판서들 중 단연 발군이라 하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일독해 보면 좋겠다. 정말 재밌고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점과 어떤 게 진실에 근접한 이론인지 이 책을 읽어보면 대충 가닥이 잡힌다. 그리고 고조선에 대해 진실을 파해쳐 보고 싶은 사람들은 윤내현의 저서들을 구입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고조선과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제한 국가였고, 유물과 사료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내가 이 페이퍼를 쓴 목적은 김상태가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에서 윤내현을 21세기의 신채호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책들은 독보적이고 위대하다! 김상태의 책을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윤내현의 책을 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페이퍼는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나같이 잘 몰랐던 분들에게 윤내현의 저서들과 그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2013) 한국 고대사학계가 고조선에 대해서 쓴 논문은 대략 19쪽 분량밖에 안된다. 정식 학술 논문으로 말이다.

 

그런데 윤내현 한 사람은 그의 첫 논문인 <기자신고>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이어지는 고조선 연구서가 자그마치 약 2000페이지를 넘는다. 19vs 2000, 어디가 밀도가 높고 치밀한 논증구조를 보여주는지 중학생이 봐도 알아본다. (기자신고는 한국고대사신론에 한 장으로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옅은 평범한 대중은 전혀 모른다. 19쪽을 쓴 주류 고대사학계가 통설의 위치를 차지하고 2000쪽이 재야사학(엄연히 단국대 학장을 하고 있었던 교수를!)을 대표하는 이설이 된지가 오래다. 이를 바로 잡아야할 주체가 바로 우리 대중이다. 김상태의 바람도 이와 마찬가지. 그래서 여기 윤내현의 주저들을 김상태의 서평으로 소개하는 바이다.

 

윤내현이 어떤 일을 했기에 40년간이나 요지부동이던 주류 고대사학계가 변했는가. 답은 하나다. 윤내현이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서 새로운 자료들을 접하고 1983년 제출한 <기자신고>라는 놀라운 논문 때문이다. 이 논문은 중국 고대국가시대, 북경 근처 중국 동북지방 역사(기자조선으로 알려진 고조선 지역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윤내현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중략) 평소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해온 것으로 유명한 윤내현의 모든 학문적 역량이 결집된 성과, 바로 이것이 <기자신고>.” (189-190)

 

윤내현은 <기자신고>를 발표하고 내심 기대에 차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사료와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논의가 많아 공동연구하자고 제의가 많이 들어올 둘 알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학계에서는 통설을 뒤집는 논문이 나오면 그 반향이 커서 그 논문을 검증해 보거나 논의를 확대시키기 위해 공동연구를 하는 경향이 많다.

 

헌데 한국 고대사학계는 달랐다. 윤내현은 대중을 위한 <한국고대사> 책 말미에 이에 대해 토로했다. 원로 학자에게 논물 발표장에서 심한 욕을 들었고, 후배 학자들에게도 무시당하며 학계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고. 아무리 치밀한 논문을 써도 거들떠도 안 봤다는 거고, 엄연히 단국대 학과장을 하고 있는 강단사학자를 재야사학자로 낙인찍었다.

 

윤내현은 이를 통해 깨달았다. 공동연구는 먼나라 일이라는 걸. 그래서 이 막대한 작업을 그 스스로 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신고>의 핵심내용이 기자조선이라는 곳이 고조선의 작은 변방이었고 기자조선이 위만에게 멸망당한 곳도 바로 변방의 그 지역이기에 다른 지역에서 생겨난 국가들, 즉 부여, 옥저, 동예 등과 같은 열국이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지역에 있었던 걸 증명해야 하기에 그렇다.

 

이후(학계로부터 무시당한 이후) 윤내현은 혼자서 나머지 연구를 완성하기로 작정하고 수십 년에 걸쳐, 서기전 2000년 이전의 고조선 시기부터 서기 300년에 이르는 한국 고대사 전체를 재구성했다.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 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이어진 그의 작업은 경이 그 자체다. 이런 인물과 저술은 차후 30년 간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신채호 이후 리지린이 등장하기까지 30년이 걸렸으며, 리지린 이후 윤내현이 나오기까지 또 30년이 필요했으니, 남북한 통틀어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오려면 다시 30년이 지나야 될 것이다.” (190-191)

 

여기서 김상태는 윤내현의 연구를 신채호와 리지린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조선 연구의 3 거두로 윤내현을 올려놓은 것이다. 이 평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더 강조된다.

 

윤내현은 이러한 대고조선의 필연성을 거대하고 완벽한 학문체계로 완성했다. 불세출의 거인 신채호의 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폭포처럼 격렬한 리지린의 계곡을 지나 윤내현은 대고조선의 평온하고도 광활한 호수를 이루었다. 이것은 그의 대표 3부작으로 연결되는데 규모 또한 엄청나다. <한국고대사신론> 412, <고조선 연구> 904, <한국열국사연구> 734쪽 등의 저서인데 도합 2000쪽이 넘는다. 학술적 활자체로 인쇄된 책이라 이 책들을 소설책 정도의 활자 크기로 다시 출간한다면 분량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334)

 

헌데 이 책들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김상태에 따르면 지극한 상식 위에 이론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논증은 상식으로부터 시작할 때 매우 강력하다는 걸 나는 이미 베르그손의 저작들에서 느껴봤기에 김상태가 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저작들을 얼마나 상식적으로 구성했는가를 말해준다. 정말로 강력한 이론은 상식의 치밀성에 있다는 것이다. 윤내현이 이렇게 한 이유의 절반은 대중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학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간결한 상식의 누적이야말로 견고한 이론의 최고 무기임을 웅변한다. 그의 저작에는 현학적 비약이라는 게 없다. 기질이 신채호나 리지린과 달라 격한 감정이나 문체의 유별난 윤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독자를 자극한는 법이 없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도무지 지루함이 없는 천일야화에 육박한다. 빈틈없는 학술논문임에도 그렇다.” (336)

 

나는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이 명저가 된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한영우의 <우리역사>를 보면 치밀한 통사가 중학교 2학년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게 평이한 서술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서적의 밀도를 잃지 않고 있다. 윤내현의 저작들도 바로 이러하다는 것이다.

 

김상태가 자신의 이 책에서 윤내현의 저작들을 극찬해마지 않아 나 또한 윤내현의 책을을 안 살수 없었다. 과장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3권을 모두 주문해서 그 대표작인 <기자신고>10여 페이지를 읽어 보았다. 정말 김상태가 왜 그렇게 윤내현을 상찬해 마지 않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머지 저서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갈 것이다. 사실 이 3권만 읽으면 고조선의 실체가 꽉 잡힐 듯하다. 교과서의 어느 부분이 부실한지 주류 고대사학계가 어떤 맹점을 갖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확실한 도구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이 책들보다 더 자세한 고조선에 관한 연구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윤내현의 저서들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런 후 주류 고대사학계의 저작들을 읽어 보고 비교 판단해 보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책들을 읽으면 밝혀질 거다. 고조선과 단군이 과연 만들어진 신화인지 윤내현의 저작들을 읽고 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정설이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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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내현의 주저 3권과 저서들을 모두 꼼꼼히 읽는 데에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김상태가 직접 읽고 내린 판단이니, 각자 3권만 읽으면 1년도 안 걸린다는 얘기다. 1년의 장벽이 현재 주류 고대사학계가 거짓으로 활개치고 다니는 현실이라니, 어여 읽어보고 그 말이 맞는지 판단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활동이지 않나 생각한다.

2. 만일 한 나라의 역사의 뿌리를 증명하는 학문적 검증에서 1설이 3개 정도의 증거가 있고 2설이 3개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할 때, 1설은 자신의 역사를 축소하는 증거고 2설은 자신의 역사를 확대하는 역사적 증명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 나라 학계는 어떤 학설을 정초시켜야할까? 어려운 질문일까? 당연히 2설이지 않을까? 그러지 않는 나라가 이상한 나라다. 그런데 2설의 증거가 1설의 10배라면? 당연히 2설이 통설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헌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1설의 통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2설은 재야설로 치부되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정말 이상한 학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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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9-26 17: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요즘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을 읽고 있던 차에 yamoo님의 페이퍼가 더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

yamoo 2023-09-27 09:24   좋아요 2 | URL
오~~ 한국고대사신론 읽고 계시군요!!
저도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 이런 학자가 있는 줄 미처 몰랐네요. 책이 쉽고 매우 밀도가 높습니다. 정말 경이로운 학술서입니다!

얄라알라 2023-09-29 14:26   좋아요 1 | URL
역시나!!! 전 이 페이퍼 읽는 중간 중간, 겨울호랑이님과 거리의 화가님의 댓글이 달렸거나 달리겠구나...이 생각했는데!!!

˝학문적 숙청....˝ 씁쓸하지만, 또 지금 올려주신 글에서처럼 묵묵하게 학자의 정도를 걷는 분의 세계를 알아주고 옹호하는 동료 학자들이 있고 yamoo님처럼 마음 열린 독자분들이 계시니 씁쓸함을 중화해봅니다

감은빛 2023-09-27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운 글이네요. 책 3권을 읽기 위해 1년이라.
야무님의 글이 재미있어서 저도 기회가 되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판에 1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보자마자,
바로 마음 속에서 지웠습니다.
저는 그냥 야무님 글로만 이해할게요.

yamoo 2023-09-27 12:59   좋아요 1 | URL
책3권 읽기는 1년이 안걸리구요...윤내현 주요 저서와 논문들을 모두 읽는데 1년 정도 걸리는 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윤내현 주저 3권은 이 책들만 파면 1달에 1권 3회독은 거뜬할 거 같아요. 3달이면 공부로써 충분합니다~~

weekly 2023-10-03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채호의 책도 읽었고, 관련된 세미나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사학과를 가고 싶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역사학에서 마음이 멀어지게 된 것은, 우연히 뉴스에서, (아마도) 유고슬라비아에서 (아마도) 만이천년 전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각 국가나 민족이 저마다 자신들의 역사의 장구함을 주장하는 식으로라면 역사학은 보편성을 지탱하기가 무척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생각에는요...

그때 든 생각 또 하나는 사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윤내현은 (제 기억에) 하버드 옌칭에서 복사한 수십 박스에 달하는 한국 고대사 관련 복사물들을 거의 잃어버렸다고 했었습니다. 그 사료들을 다시 찾았을까요? 그때 생각에, 일단 사료들이 검증되고 확립되어야 진지한 토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윤내현은 사료를 갖고 있고, 혹은 갖고 있었고, 국내 학자들은 뻔한 사료 몇 가지만을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윤내현에게 진지하게 반론이나 동의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윤내현이 참조할 수 있었던 사료들이 관련 연구자들에게 공유되고 검증되고 확립되었는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제가 방청했던 관련 발표회의 한 풍경:
-윤내현, ˝...에 이렇게 저렇게 기록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방청석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노인 1):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 어? 거기에 그런 기록이 있어?˝
-그옆의 노인 2): ˝있어, 있어.˝
나: (속으로 생각) 고대사는 참조할 수 있는 사료가 무척 제한적인 것 같구나...)

yamoo 2023-10-04 06:46   좋아요 0 | URL
위클리 님 오랜 만입니다! 아, 논문 발표 학회에도 계셨었군요!
윤내현 교수가 당시 그 자료들을 잃어버렸고 다시 찾지 못했나봅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공유할 수 없었구요.
하지만 윤내현 교수의 제자인 복기대 교수 이하 인하대 교수팀이 한국고대사 분야를 계속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려의 북계>라는 책을 통해서 보더라도 고려와 거란의 국경은 산해관 부근이 맞고 이는 통일신라의 강역 또한 만주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엔칭의 자료가 그 무엇이든 금사 요사 등에서 고려 국경지역을 명확히 언급함에도불구하고 우리학계는 요지부동이라는 점이 매우 이상했습니다. 금사 요사는 믿을 게 못된다. 삼국사기 일부 기록은 믿을 게 못된다. 환단고기는 위서다 등등 그런데 성삼제라는 분의 <고조선>을 읽어보면 윤내현의 엔칭 자료를 안 봐도 현재 나와 있는 자료를 종합해도 고대사학계 주류 논거보다 훨씬 더 많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사료가 넘칩니다만, 이상하게도 연구를 안하고 있는 게 신기할 뿐이죠.

고대사는 연구할 수 있는 사료와 자료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유물은 꾸준히 출토되고 있어요. 방사성동위원소 판별로 청동시시대 뮤물이 이미 BC1000년을 넘겼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주류사학계는 이런 것에는 아예 언급이 없어요. 심지어 만주 지역의 비파형 동검은 BC2천~3천년 겅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복식사 연구 자료의 유물 분포도 개략 윤내현의 고조선 강역과 겹칩니다. 이런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주류사학계는 연구 자체를 안해요. 이것이 매우 이상하다는 사실이에요.

사학계 이론은 특히 고대사는 유물이 발견되면 학설이 뒤집어 지는 일이 다반사인데...유렵도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제가 설정해 놓은 통일신라-고려의 강역을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문화사는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강역은 그대로네요..^^;;

weekly 2023-10-04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야무님의 코멘트에 코멘트를 달 능력은 안될 거 같구요...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관점의 차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국민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 혹은 민족들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관심 하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비슷한 질문으로, 역사는 실증적이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예컨대, 고려와 거란의 국경이 산해관 부근이라는 주장은 매우 복잡한 질문들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럼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는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가? 세종이 점령해나간 북방 땅의 위치는 어디였나? 산해관 국경 부근에서 살았을 고려인은 지금의 한민족의 일부인가, 아니면 통칭 만주의 소수 민족 중 고려 정부에 복속한 사람들인가? 고려와 거란의 국경이 산해관 부근이라는 것은 일시적이었는가, 아니면 지속성을 갖고 있었는가? 고려가 산해관 부근까지 행정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등등. (단순히 문헌들을 가지고 지명을 추론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신채호의 작업은, 제 기억에, 이 수준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윤내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예를 들어 중국의 한나라가 북방으로 팽창할 때, 한나라는 북방의 숲을 불태우고 농지로 만들었으며 한족 농민들을 그곳에 이주시켜 정착하게 했고, 기존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더 북방으로 쫒아냈습니다. 세종이 그랬고, 푸친이 그럴려고 하는 것처럼요. 다른 한편, 고전 그리스 시대에 그리스어를 쓰는 도시 국가가 이탈리아나 터키에도 산재해 있었다고, 그리스가 이탈리아나 터키 땅을 아우르는 제국이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 고려 시대에 산해관에 고려인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더라도, 산해관까지를 고려의 국경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민족 사학(이렇게 일컬어지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에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yamoo 2023-10-05 07:03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사관은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지점을 좁히는 과정..그래야 역사의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믿는 1인입니다. 민족사학, 실증사학을 떠나 지금은 역사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죠. 그렇다면...사료와 위성사진 그리고 유물로부터 역사연구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사 편수회에서 그어 놓은 우리 강역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연구를 통해서 학설을 뒤집는게 학계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학계는 이런 일들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까 김상태와 같은 분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봐요. 위클리님의 제기하신 문제제기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100년 전의 사실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데 500년 전 하물며 청동기시대라면 유추와 논증을 통해 사실에 근접해 나가야 합니다. 논쟁은 불가피하구요. 그렇게해서 학설이 정립되는데, 이상하게 고대사는 이러한 과정이 전무해요. 연구해 봐야할 증거들이 넘치는데 왜 연구하지 않을까요? 패수가 대동강이라는 부동의 위치비정은 일본학자가 그렇게 본다는 한줄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어떤 논증도 없이요. 지금 패수가 북한에 있는 대동강이나 청천강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쳐요. 강역을 넓히고 민족 운운...저는 그런거에 관심이 1도 없어요. 단지 왜 차고도 넘치는 증거가 학계에서 무시되느냐...저는 이게 이상했던 거고, 이런 걸 문제제기 했던 것이에요.

고려가 산해관 부근에 국경을 인접했다는 건 유물이 말해주고 있어요. 행정력을 검증하는 단계는 그 이후라고 생각해요. 강역의 고증은 문헌과 유물로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1차적으로요. 이게 실증사학의 근간이지요. 유물의 검증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뒷받침 되겠지요.삼국유사가 변조됐다고 하면 과학적으로 검증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두가 있음에도 주류사학계는 연구를 안해요. 참으로 이상합니다. 저는 이런 논증없는 주류사학계가 이상해서 김상태의와 윤내현의 저서들을 통해 주류사학계를 비판해 보고자 함이었어요. 민족운운 했던 건, 고조선의 강역이 만주를 공유하는 넓은 지역이었다는 설이 있고 한반도 내 작은 지역이었다는 설이 있다면 1설의 증거가 5개 2설의 증거가 2개라면 우리는 1설이 다수설 내지 통설이 되어야 하는 게 합리적인거고, 양보해서 1설이 2개 2설이 4개라도 1설을 계속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지점을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제 의도가 무엇인지 위클리님에게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weekly 2023-10-05 16:19   좋아요 0 | URL
잘 알아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오는데, 어젯밤에 그 친구에게 윤내현 교수님의 ˝한국 고대사 신론˝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책을 많이 내셨고 ˝고조선 연구˝라는 묵직한 연구서도 내신 것 같은데, 상하권 가격 역시 너무 묵직해서, 고대사 신론이나 다시 읽어 볼 생각입니다.

포스트 주제와 별개로, 그리고 조선사 편수회 출신 이병도 카르텔 운운 등과 별개로, 평소 한국의 국학계(역사, 회화사, 문화재 관련 등등)가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스승이 세운 학설에 대해 신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반대 압박이 너무 심하다던지(˝오주석이 사랑한 그림들˝에 적나라한 예가 있듯이...), 한국의 그림들에 대해 신토불이니, 나는 우리 그림이 좋아, 좋은 걸 어떡해, 왜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지, 투의 허망한 미학(?)에, ˝독자˝로서 좌절감을 느낀 적이 많았더랬습니다.
이제 시대가 좀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혹 한국 전통 미술이나 예술, 더 넓게는 동양 예술론 등에 대한 괜찮은 책이 있다면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오는 친구에게 한 권 더 부탁해 보려고요.:))

yamoo 2023-10-05 17:55   좋아요 0 | URL
오~~한국고대사신론을 주문하셨군요! 저도 지금 읽고 있어요! 정말 쉽게잘 써 있긴 한데...역사학게에서의 논증이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많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매우 정치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정독하고 있어요~~^^ 고조선 연구와 열국사 연구도 모두 구입했어요~~^^

그건 그렇고...흠..아주 고난도의 책추천을 부탁하셨네요..^^;;
말씀하신 동양화나 한국화화계의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비판서는 없어요. 그도그럴것이 한국화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와 있는 책도 별로 없어요. 예전에 일본인이 쓴 동양예술론이라는 두툼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오래되서 구할 수가 없구요. 그래도 한국의 보수 미술게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분은 있어요. 윤범모 교수라고...현재는 은퇴했지만 이분의 한국미술론과 한국미술에 삼가 고함이라는 책은 국내 보수주의 화단을 비판한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닌가해요. 그리고 오래 전에 나온 <우리그림 비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한국화의 비평의 부재에 대핸 메타비평서인데, 아주 드문 책이에요. 헌책으로 구할 수 있을 듯해요. 제가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읽은 책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요즘 작가들 사이에서 한국화나 동양화난 죽었다는 게 대세인데...이에 걸맞는 책이 거의 없어요. 왜 그런지 도통 모르겠다는..^^;; 개인적으로 추천드릴 수 있는 건 윤범모 교수의 책 두 권입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좀 거시기 합니다~~^^

참고로 한국미술계는 거의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최근 신진작가들은 미술대전으로 등단하지 않고 다른 루트로 등단을 한다고 해요. 고인물인 늙은 교수들의 평가를 아예 받고 싶지 않다네요..^^;;

weekly 2023-10-05 18:33   좋아요 0 | URL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에 검색해 보고 주문할지 결정해야겠네요.

(요즘 런던 등 곳곳에 우후죽순격으로(?) 한국 주점, 한국 슈퍼 등등이 생기고 있습니다. 한류가 대단하긴 해요! 더 욕심 나는 건, 그 스펙트럼이 좀 넓었으면 하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한국의 미학에 대한 읽을만한, 영어로 된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 등등... 예전에는, 한국의 문화가 어느 정도 단계에 다다르면 그런 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젊은 세대에서 그런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준적인 서구 미학을 소화한 후에야 진행될 수 있는 작업이니만큼 어렵기도 할 것이고요. 비서구권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욕심 사항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터키의 어느 박물관에 갔을 때,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유적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아직 이런 거 정리할 여력이 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이란 이런 여력들을 확보하고,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다하네요...-.-)
 

요즘 새롭게 컨셉을 정하여 그리고 있는 주제가 있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처음 가제는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였다). 물론 이것도 베르그손 철학에 경도되어 있는 내 기호를 반영한 시리즈다.


철학사에서 시간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철학자는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이지 않을까 한다. 학부 철학 개론 시간에 숙제로 부여 받은 최초의 내 페이퍼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의 비교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파르메니데스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무척 끌렸었고, 아마도 그쪽으로 편향되게 결론을 내렸던 걸로 생각된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언급은 변화로 연결되었고 그런 인식이 막연히 좋았다.


중세철학을 공부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우렐리우스의 책을 읽었지만 이 두 철학자가 '시간'에 대해 말했는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도 못했다!)


그러다가 베르그손 철학을 읽으면서 '시간철학'에 대한 중조가 아우구스티누스였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정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수록된 시간에 대한 논의는 매우 미미한 편이었다. (다시 찾아서 읽어보니 아주 짤막했다!)


그로부터 철학사에서 그 의미를 건져올린 학자들이 대단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짧은 언급에서 '시간성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헤라클레이토스와 연결짓는 학자들의 탐구정신이 놀라울 뿐..


어쨌든 지속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베르그손부터 시작됐고, 그것을 기억과 물질로 논의를 확장한 학자는 베르그손이 유일했다. 


지금 '순간'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시간의 현재성은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되기에 베르그손을 거듭 읽었던 듯하다.


특히 <물질과 기억>은 8회독 정도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1장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진다. 1장만 10회독 이상은 한 듯한데,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머리의 우둔함을 탓하지 ㅇ낳을 수 없다.)


베르그손에 대한 환기를 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그림의 주제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로 그린 그림 두 점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순수의 전조'보다 훨씬 좋다고 하셔서 바로 낙점됐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 캔버스에 아크릴, F3, 2023)


또 다른 하나를 꼽자면, 아주 오래 전에 서재 친구인 위클리 님에게 베르그손의 책을 권해드렸는데, 지금에서야 위클리님이 <물질과 기억>을 읽고 있다고 해서이다.


다시금 <물질과 기억>을 들춰봐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좀더 섬세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한 번쯤 더 읽어야 할 듯해서다. 후설의 시간 개념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없이 좋은 공부가 될 듯하다.


[덧]

1. 위 그림은 처음으로 컨셉을 잡을 때 F3 캔버스에 연습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호응이 매우 좋아 같은 크기로 20여 개 정도 그릴 예정이고 이걸 100호 크기의 판넬에 붙여 100호로 만들 예정이다.ㅎㅎ

2. 영국으로 건너갈 그림은 7S호 정도 된다. 35*35센티. 원래는 '순수의 전조' 2작품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여분의 두 점을 더 갖고 오라고 해서 설 연휴에 부랴부랴 그린 건데 그 두 점이 낙점이 됐다. 

3. 그림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사가 있다는 걸 첨 알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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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23-02-03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국 전시회에 참가하시는건가요? 축하드려요.:) 런던 근처면 저도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과 기억>은 급하게 일독을 끝냈고 이제 다시 차분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1장의 유기체론적 관점에서의 지각 개념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진작 읽었어야 한다고 자책하고 있답니다.
실은 베르그손을 펴들기 직전에 후설의 <시간 의식>을 읽고 있었습니다. 후설이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고, 즉 제가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베르그손으로 갈아 탄 셈입니다.
이 둘(하이데거까지 셋?)을 어느 정도 일관된 관점에서 읽어내자는 것이 당장의 독서의 목표입니다.
그 한 측면으로 시간의 현재성, 예컨대 과거의 기억을 지금 현재에 떠올리는 행위 등등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길을 걷다 연속되는 낯익은 풍경에 놀라 댓글을 달아봅니다.:)

추). 윽, 런던에서 하시는군요. 꼭 찾아가보겠습니다!

yamoo 2023-02-03 11:24   좋아요 0 | URL
이번 전시는 꽤 큰걸로 알고 있습니다. 런던 근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2곳에서 진행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1장을 읽을 때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하여 고생했는데, 4회독 넘어서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했습니다만, 세부 논의에서 여전히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번역상의 문제가 매우 크다고 느꼈어요. 번역도 겨우 읽을 정도여서 반복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후설의 시간개념은 의식의 지향성과 과년되어 있는 듯보입니다. 한길사판 시간의식을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만...후설의 철학은 매우 관념적이고 정적인 느낌이라 시간을 접근하는 방식이 베르그손과 너무 다릅니다. 오히려 하이데거와 접점이 아주 많아 보입니다. 저는 후설의 현상학을 방법론으로 보았기에 그의 시간에 대한 개념도 베르그손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의식을 다시 정독해 봐야 보다 명확한 지점을 알 수 있을듯해요..^^

감사합니다~~

weekly 2023-02-03 18:37   좋아요 0 | URL
전시회 일정 공개되면 전시 장소와 기간 알려주세요. 꼭 가서 관람하고 오겠습니다. (런던 갤러리면 그래도 런던 근처이지 않을까요?:))

말씀대로 후설의 시간 개념은 지향성 개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의식> 편집자의 글에서 하이데거가 직접 지적한 바이기도 하고, 다른 연구서에서 하이데거 본인이 직접 탐구를 수행하기도 한 바와 같이요. 저도 바로 이 지향성 개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첨언하면, 위 연구자들이 만약 베르그손을 읽었다면, 그 속에서 분명히 지향성 개념을 발굴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층위는 다르지만, 그리고 후설에서는 아직 애매한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위 철학자들은 말하자면 비-표상론적 관점을 발견하기 위해, 혹은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한 철학자들로 성격지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 20세기 중반, ‘잊힌 철학자’라고 하면 베르그손(1859~1941)을 꼽는다. 들뢰즈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기 전까지 베르그손은 유럽에서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베르그손의 낙관적 철학관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그 효용성을 잃었다고 간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 21세기 초반에 출간된 철학사 책들은 대부분 베르그손을 중요 철학자로 다루고 있다. 물론 미국 학자들이 출간한 철학사 책 일부에는 베르그손이 빠져 있지만, 유럽 철학자들이 쓴 철학사에는 거의가 베르그손을 포함하고 있다.

 

더군다나, 들뢰즈로 인해 베르그손의 철학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문화를 다루는 영역에서 베르그손에 대한 연구는 꽤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베르그손은 더 이상 잊혀진 철학자가 아니다. 이건 확실하다. 베르그손의 주저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고, 알라딘 마을에서도 베르그손의 주저를 읽은 분들이 꽤 되니까.

 

 

그럼 현재, 한국 지식계에서 (최고의 철학자로 회자되다가) 완벽히 ‘잊힌 철학자’는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지 산타야나(1863~1952) 이외에는 생각나는 철학자가 없다. 스페인을 제외하고 유럽 철학자들에게도 산타야나는 거의 무시된 존재였다.

 

 

 

 

20세기 후반기 이후, 유럽에서 출간된 <서양철학사>책들 중 산타야나를 다룬 철학사 책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지명도 높은 철학사 스테디셀러 몇 권에도 산타야나는 빠져있다. 휠스베르그의 <서양철학사>, 렘브레히트의 <서양철학사>, 슈퇴르니히의 <세계철학사>, 러셀의 <서양철학사>,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 등 철학사 책을 펼쳐 산타야나를 찾아보라. 찾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산타야나는 미국철학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는 186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지만, 10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았다.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에서 50세까지 가르쳤다. 생의 후반기에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학문적 활동은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는 미국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가 하버드대에서 철학 강의를 할 때만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산타야나 저서가 간간히 번역되었던 걸로 안다(헌책방에서 두어 번인가 봤다). 그러다가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지식계에서 산타야나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대철학자를 소개하는 개론서들에서도 산타야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보통 ‘현대철학’이라고 하면, 구조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논리실증주의와 분석철학, 해석학, 생의 철학 등을 들 수 있는데, 산타야나는 이런 현대 철학 사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상을 전개했다. 더군다나 그는 시로 그의 사상을 즐겨 표현했다.

 

한 마디로 그는 꽤 독특한 철학자였다. 철학사가인 윌리엄 사하키안은 그의 책 <서양철학사>에서 산타야나를 비판적 실재론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곧 그 사상의 독특함 때문에 다음과 같이 부가하기도 했다.

 

 

 

 

그는 형이상학적 유물론, 플라톤적 실재론 및 무신론과 손잡고 자연주의**를 받아들였다. (중략) 그는 인식론적 이원론에 관해서는 비판적 실재론자들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저술들에 크게 의존하여 자기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전개했다. (사하키안, p375 ~ 37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야나가 하버드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890년 ~ 1912년 사이에 그는 미국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주저인 <이성의 생활>은(무려 5권의 대작이다) 그를 퍼스-제임스-듀이(프래그머티즘을 정초한 3인의 철학자)에 버금가는 철학자로 올려놓았다.

 

리엄 바렛(프린스턴대)과 헨리 에이킨(하버드대)에 의해 편집된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Random House, 1962)만 봐도 산타야나는 퍼스, 제임스, 듀이 바로 다음에 다루어지고, 그 분량도 이들 3명의 철학자보다 많이 할애돼 있다. 물론 편집자 중 한 사람(헨리 에이킨)이 하버드대 교수이긴 했지만, 1960년대까지 산타야나는 하버드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는 총4권인데, 산타야나는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198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에 조지 산타야나의 책들(또는 그와 관련된 책들)이 간간히 번역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타야나가 쓴 책으로는 <이성의 탄생>이 1974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되었고, 1980년대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에 산타야나 철학이 소개 되었다. (현재는 인터넷에서 산타야나의 저작을 검색하기 쉽지 않다.)

 

(1974년 현대신서에서 내놓은 <Berth of reason & other essay>의 한국어 번역본 <이성의 탄생>)

 

 

개인적으로는 산타야나 철학을 몰턴 화이트가 집필한 <20세기의 철학자들>(1991, 서광사)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하버드에서 공부했던 일부 우리나라 학자들이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산타야나를 언급하여 관심이 동했기 때문. 1990년대 후반, 도올 김용옥이 KBS에서 노자 강의를 할 때, 도올은 산타야나를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으면서 철학자 산타야나를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었다. 듀란트의 책을 읽을 무렵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빠져 지냈기 때문에, 단순히 미국에 산타야나라는 철학자가 있다는 정도만 아는 수준에 그쳤다. 주저인 <이성의 생활>이나 <미의 감각>은 찾아봤지만 번역본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없다!)

 

 

 

 

 

 

 

 

 

 

 

 

 

 

그리고는 산타야나를 완전히 잊었다. 그러다가 영미 현대철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잊었던 철학자 산타야나가 다시 내 앞에 출현한 것이다. 현대 미국 철학자들이 쓴 철학사 책에서 간간히 눈에 띄었고, 결정적으로는 1974년에 번역된 <이성의 탄생>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산타야나의 에세이들 중에서 대중적이고 자전적인 작품만을 골라 편집한 것이기에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어디인가?! 산타야나가 직접 쓴 그의 사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위에 언급했듯이 <이성의 탄생>은 자전적인 에세이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가 어디에 주로 관심을 쏟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데, 자기 철학을 자기가 평가한 부분이 재밌다. 제3부 철학적 에세이에 1953년에 쓴 ‘3인의 미국철학자’가 수록돼 있는데, 여기서 산타야나는 자신을 존 듀이와 윌리엄 제임스 다음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를 최고의 철학자로 간주했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은 후, 분명한 사실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재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산타야나가 완전히 ‘잊힌 철학자’가 됐다는 거다. 아무도 산타야나 철학을 재조명하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현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산타야나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도서관에서 산타야나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는다. 

 

어떻게 산타야나는 우리 지식계에서 완전히 ‘잊힌 철학자’가 됐을까? 정말 신기하다. 산타야나를 소개한 이전의 책들을 보니, 산타야나는 우리나라 철학자 박이문과 아주 비슷한 스타일의 철학자였던 거 같다. 산타야나의 저작은 거의가 시와 에세이다. 그것도 자연주의 계열이니 한국에서 인기가 있을 턱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래 들어 한국 학자에 의해 퍼스-제임스-듀이에 대한 연구서가 나온 걸 보니, 언젠가는 산타야나의 연구서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이 고개를 든다. (세창 명저 산책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중..) 

 

[조지 산타야나의 저작들]

<미의 감각>(1896)

<시와 종교의 해석>(1901)

<이성의 생활>(상식, 사회, 종교, 예술, 과학에 있어서의 이성. 전5권)

<세 명의 철학적 시인>(1910)

<이론의 선풍>(1913)

<독일철학에 있어서의 이기주의>(1916)

<미국의 성격과 견해>(1921)

<영국에서의 독백>(1922)

 

 

-------------------------------------------------------------------------------------------

 *비판적 실재론 :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은 각각 물질적 대상과 심적 상태(또는 관념)라는 표상 이론

**자연주의 : 자연을 실재의 전체로 인정하는 이론. 이 견해는 우주가 초자연적 원인이나 통제 없이 자기 충족적이며, 과학에 의해 주어지는 세계 해석은 실재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설명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적 자연주의는 엄격한 유물론을 ‘삶과 사상’과 같은 실재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이다. (S.오너&T.헌트, p322)

 

 

 

 

[덧]

이 페이퍼는 거의 주관적인 인상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세세히 검토하지 못했기에 그렇습니다. 산타야나 저서가 번역된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알고 계신 분은 오류를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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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냐나... 처음 듣는 철학자 이름이군요. 어깨 너머 그래도 이름은 들어봄직도 한데, 서당개 3년동안 한번도 못들어봤습니다.

yamoo 2016-08-11 18:22   좋아요 0 | URL
철학전공자들 상당수도 잘 모르더라구요~ 제가 아는 설대 철학 전공 석사 출신만 5명이 넘는데, 이들 모두 제가 산타야나에 대해 물으니 `산타야나가 누구??`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ㅎㅎ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 맨 끝 부분에 소략적으로 나와 있으니 혹시 궁금하시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슥 보셔도 될 듯합니다^^

분명히 미국에서 현대철학자로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인데, 우리나라에 너무 안 알려진게 희한합니다..ㅎ

cyrus 2016-08-11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아주 좋습니다. 잊힌 저자가 쓴 책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글이 많아야 합니다. 알라딘이나 네이버 책 데이터베이스에 검색되지 않는 책이 너무 많아요.

yamoo 2016-08-11 18: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 잊힌 저자가 쓴 책들의 존재를 꾸준히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당~~ㅎ 진짜 알라딘만 검색이 되지 않은 책이 넘 많습니다. 정말 동감합니다~^^

cyrus 2016-08-11 20:40   좋아요 0 | URL
요즘 곰발님이 밀고 있는(?) 멘트를 따라하겠습니다.

이달의 마이페이퍼로 선정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8 12:09   좋아요 0 | URL
문제는 제가 임의대로 선정한 것은 단 한번도 당선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말씀에 동의 페이퍼에서 정말 알고싶은 것은 숨겨진 책을 소개하는 페이퍼.. 제일 짜증나는 것은 책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날마다 점심에 뭐 먹었다고 날마다 보고하는 글... 짜증 존나 남..


yamoo 2016-08-11 20:33   좋아요 0 | URL
곰발 님이 `짜증 존나 난다`는 그런 페이퍼가 있지요...곰발 님 덧글 읽으면서 웃음이 멈추지 않네요...ㅋㅋㅋㅋ
 

하나!

 

시이소님 페이퍼를 보면, 정말 한 달에 30권을 넘어 40권을 넘게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리뷰를 쓰면서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시이소님 자신은 누구나 백수면 그리 읽는다고 하시지만, 그런 가열찬 독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실감할 뿐이다.

 

하, 난 지난 달에 몇 권이나 읽었나? 이것 저것 여러 권 집적거려 봤지만, 완독한 책은 6권을 갓 넘겼을 뿐이다. 근데, 이건 순전히 명저 번역을 엉터리로 한 역자들 때문이다. 이들 불량 역자들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져, 책을 집어 던지고 다른 판본을 집어드는 지럴을 지속했에. 썅 소리가 절로 난다! 

 

특히 지만지고 출판사의 책들은 비싸기는 우질나게 비싼데, 번역은 별루다. 개중에 최악의 책을 만나면, 진짜 뚜껑이 열려버린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는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번역본이 지만지고 본밖에 없는데, 가격 대비 번역의 불량이 매우 심하다. 대형 서점에서 서서 봤기에 망정이지 일단 구매했다면 화가 정말 많이 났을 거 같다.

 

이런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책 시장의 유통 구조가 참으로 요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책 값 비싸며 번역이 매우 안 좋은 출판사가 한길사다. 한길 그레이트 북스의 책들은 나름 진짜 그레이트한 책들인데, 번역은 정말 형편없다. 2만원 이상 나가는 책들은 그야말로 고급 장정에 책을 소장하고 싶게 한다.

 

하지만 페이지를 열면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불량 번역 제품은 교환도 환불도 안 된다. 번역이 안 좋아 서점에 환불하러 가면, 읽은 흔적 때문에 안 된다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번역이 불량인지 아닌지 알아 내기 힘든데, 이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불량품을 양산한 출판사와 저자는 항상 면제부를 받고 있는 모양새. 진짜 천불나는 상황이다.

 

내가 읽어본 한길사 그레이트 북스 번역본들은 불량 번역이 대부분이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키에르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 등은 읽다가 집어던지다가를 반복했던 책들이다. 특히나 <의미의 논리>와 <관념의 모험>은 진짜 심했다. 이런 번역본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 나라의 지식 수준을 알려주는 척도이기에.

 

 

 

 

 

 

 

헌데 독서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별로 제기하지 않는 듯하다. 난 이게 정말 이상하고 궁금하다. 불량 번역본이 두루 돌아다니고 있는데, 리콜하는 출판사는 없고, 그 불량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둘!

 

시이소오 님 페이퍼를 보다가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사이토 다카시가 조언하는 바를 이전부터 행하고 있었기 때문.

 

이 책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작은 책장을 만들어라    

 

흐흐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을 여기저기에다가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지막 궁극의 리스트는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들 책들을 제외하고는 점점 솎아 내어 처분할 계획이다.

 

  [내 궁극의 리스트]

 (이 사진의 책들 이외에 비트겐슈타인의 책들은 10여 권이 더 있다. 다른 책꽂이의 아래 칸에 있어 현재로서는 손이 닿지 않늗다. 여튼, 이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 원저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읽을 예정임)

 

 

셋!

 

오늘로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문학과 지성사, 2013)를 완독했다. 책이 얇고 작아서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곤했다. 구입하기는 지난 3월엔가 한 듯한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라 그냥 출판사의 네임 밸류만 믿고 구입한 경우인데, 다 읽고 나니,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읽는 중간 중간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곤했다.

 

하지만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란의 카프카'란 책 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끝까지 책을 잡고 있었던 거다. 염병할,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은 무슨 얼어죽을 찬사란 말인가.

 

그냥 찌질이가 아주 괴기하게 헛소리만하다가, 40페이지 정도에 끝나버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내용을, 174페이지까지 끌고 가는 그 기이한 힘이라니! 뭐, 중간 중간 끝내주게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들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배수아 씨가 번역을 하여 우리 작품 읽는 것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무시못할 장점)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이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좀 유사한 면이 있어, 계속 읽어갈 동력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너무도 심하게 의식의 흐름(망상) 쪽으로 경도된 듯하여 실망이 컸다.

 

 

 

 

물론 작가가 어떤 성향인지 모르고 덥석 책을 잡은 내 잘못이 크겠지. 자칭 실재론자인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할 리가 없잖은가.

 

그나마 위안인 것이, 이 책과 함께 읽고 있었던 베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 동안 버닝할 태세를 마쳤기 때문이다. 아, 어찌 모든 문장들이 그리도 줄을 치고 음미하게 하는지, 참으로 읽는 맛이 난다는 말이지. 빌어먹을 부엉이, 것두 <눈먼 부엉이> 따위가 시간을 갉아 먹게 하다니.

 

아, 물론 작가 지망생에게는 <눈먼 부엉이>가 매력적일 수 있다. 환상문학과 유미주의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절대적인 추앙을 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뭐, 난 '부엉이'보단 '불안'같은 작품이 100배 좋다. 그나저나, 다음부턴 절대로 책 표지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넷!

 

처분할 책들이 쌓이고 있다. 예전같으면 악착같이 소장할 책들인데, 이제는 미련없이 처분을 하려고 한다. 공간, 내겐 더 중요한 책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발품 팔아가며 모은 책들인데... 아쉽긴 하다. 그치만 내겐, 현재...공간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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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1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이 몇 권을 읽든 적게 읽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예전에 저도 권수에 집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책 읽을 마음도, 글 쓸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

지만지 출판사 쪽에 일하는 분이 제가 독서모임을 통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진짜 그 분 때문에 지만지 출판사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고리키 단편선집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 책에도 불량 책이 많이 있을 거예요. ㅠㅠ

yamoo 2016-06-03 10:56   좋아요 0 | URL
상대방의 몇 권을 읽는지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기이할 정도로 많이 읽고 리뷰 쓰는 분들을 보면 자괴감이 밀려오곤 합니다. 이건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는...감내하는 수밖에요..

뭐, 책 값 비싸도 비싼 만큼 퀄러티를 보여준다면 불평을 좀 덜하겠습니다만...책 값은 일반 책의 2배 이상을 받고도 불량품을 양산하고 있다면, 이는 정말 심각하다 하겠습니다..ㅎ

시이소오 2016-06-0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탐구가 가장 탐나네요^^

yamoo 2016-06-03 10:58   좋아요 0 | URL
흠, 고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네요! 시이소오 님두 고진을 좋아하시는군요! 뭐, 고진은 우리나라에서 인문학계의 하루키랄까....전 그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만..ㅎ

stella.K 2016-06-0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기 이석원의 책이 보이는군요.
그때 제가 읽지 마시라고 적극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베르그손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하시는 분은 절대 못 읽을 책이죠. 암요...ㅠ
이제 절대로 야무님 앞에서 무슨 책 괜찮다고 절대 말 안할 꼬예요.

근데 이 페이퍼를 보니 야무님 때문에 우리나라 번역 수준이 언젠간 좋아질 거란 믿음이
마구마구 생깁니다.
자꾸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야 그 분야가 좋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안하면 지네들이 잘하는 줄 안다니까요.^^

yamoo 2016-06-03 11:01   좋아요 0 | URL
네...저 책을 처분하려고욤..ㅋ 읽기 다 읽었습니다만...강위석이나 고종석 작가의 에세이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읽기 힘들더군요. 말리셨어도 책이 엄청 인기 있어 한 번쯤 봤었을 겁니다요..ㅋㅋ

그래두 극찬하는 책들 중에서 그런 평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있기 땜시, 그런 판단은 자제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걍 줄기차게 계속 까댈라구욤...ㅋㅋ 그럼 언젠가는 좋아지겠죵~ㅎ

수이 2016-06-0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비평사_ 바흐찐_ 탐나는걸요. :)

yamoo 2016-06-03 11:04   좋아요 0 | URL
헐~ 야나 님 은근 문학 비평집 좋아하시는 것 같다는!

첨엔 이들 프랑스 비평에 관한 책들과 철학서들을 마구 사들였지만, 거의 읽을 수 없는 수준의 번역들이라 전부 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것이 저기 있는 책들과 아직 손이 미치지 않은 곳에 있는 20여 권의 책들....

속이 쓰립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의 70% 정도는 베란다에 박스로 저장해서 쌓아놓고 있습니다. 이게 시바... 뭔짓인지.. 지금까지 책 절반 넘게 버린 것 같은데.. 결론은 집이 넓어야 한다는 점. 뼈저리게 느낌닙니다. 저도 시이소이님 보면서 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1독 1페이퍼라... 쉬운 열정이아님..
저보십시오. 리뷰는 쓰지 않고엄한 소리만 하고... 또 읽은 책의 90%는 리뷰를 안쓰고 있습니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를 반복한다는 것은 굳은 결심이 아니면 실천하기 힘듬.. 일단 술을 안 마셔야 함.. 전 틀렸어요. 알콜중독자가 아닌가 의심을 슬슬 할 때가 되었씁니다.

yamoo 2016-06-03 11:08   좋아요 0 | URL
책은 버리기 보단 처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낫더이다~ 버리면 그냥 쓰레기가 되지만, 이걸 누구에게 주면, 또는 기부를 하면 나름 어떤 가치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버리는 것 보다야 훨씬 낫습니다..ㅎㅎ

시이소오 님은 정말 특화된 분입니다. 그런 분 따라가려다가는 그냥 한 방에 휙~ 갈거 같더군요..ㅎ

뭐, 곰발 님이야 리뷰보다야 그 엄한 소리가 더 쫄깃하니깐요..ㅎ 그거 기다리는 분들 알라딘에서 많지 않습니까..

흠, 근데, 일단 저도 금주 하시는 거에 한 표!ㅎ

감은빛 2016-06-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번역 문제는 출판계에서 아주 고질적이고, 만연한 문제입니다.

두 가지 이슈가 있는데,
하나는 번역자가 원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직역위주로 번역을 했고,
편집자 역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혹은 대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만 하다고 판단하고)
여러가지 이유(주로 출간 일정에 쫓겨)로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출간하는 거죠.

두번째는 번역자와 편집자가 번역투의 문장,
우리말 어순이 아닌 원문의 어순으로 나열한 문장 등 난해한 글을 두고
문제를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게 올바른 번역이라고 느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출판사에 일하는 편집자와 주로 계약하는 번역자가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 출판사의 책은 계속 엉망일 확률이 높습니다.

번역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재미있는 사례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스티브잡스 전기 번역 오류 지적에서부터 파생한 번역배틀입니다.
이덕하라는 분과 노승영 번역가의 배틀이었는데,
진행과정만 지켜보고 정작 결과를 알지 못해 궁금하네요.
두번째는 한참 출판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새움 출판사에서 낸 까뮈의 [이방인] 번역본 논란입니다.
출판사 대표가 번역자로 밝혀지고,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그 사건이요.

개인적으로 저도 출판사에 있을 때,
번역본 교정교열 작업을 세 번 했습니다.
세 번 모두 번역 경험이 거의 없는 분
(이건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이었죠.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어이없는 단어나 문장이 많았습니다.
평소 다른 원고 작업에 비해 서너배 이상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챕터는 아예 글 자체를 제가 다시 쓴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번역투에 비문이었으니까요.)
이런 경우 글은 제가 다시 썼지만, 번역자는 그래도 그 사람이니까,
책 정보에 번역자 이름이 실리지만, 제 이름은 판권 페이지에 작게 들어가지요. ㅠㅠ

한번은 도저히 글에 손을 댈 수 없을만큼 엉망이어서,
번역료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아예 그 원고를 버리고,
새로 다른 번역자에게 번역을 의뢰한 적도 있습니다.

번역 문제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뭐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yamoo 2016-06-03 11:11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비사가 있었다뉘!! 얼추 예상은 했지만 실상을 들으니 참으로 참담하군요. 말씀하신대로라면, 좋은 번역본이 나올 가능성은 당분간은 요원하다는 건데...아, 이거 이슈화해야 되는 거 아닌지...

어쨌거나, 알고 싶은 점을 정확히 알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다음번 페이퍼 쓸 때 참고하도록 하겠슴다!

감은빛 2016-06-0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 만들기라 좋네요!
저는 지금 책장 정리를 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나서,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셋!
저는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입니다.
재밌는 다른 책도 많은데,
재미도 없는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래도 배수아 작가의 번역이라니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넷!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가 눈에 띄네요! ^^

yamoo 2016-06-03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원래는 읽히지 않는 책은 던져버리는 건데....거참, 맛깔난 문장이란게 거, 무시못하는 듯해요. 꾸역꾸역 읽게 된다는...

역시 고진은 알라딘 통네에서 인문학계의 하루키인거 같습니다. 많이들 좋아하시는 거 같다눈^^

루쉰P 2016-06-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시죠? ㅋ 책을 쌓아놓고 있는 걸 보니 너무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이고 출판이고 전 우리나라 출판계에 별로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아요. ㅋ 정말 읽고 싶은 작가들의 번역이 너무나 안 되어 있다는 게 좀 속상하거든요. 일본은 번역이라는 것이 무지갛게 잘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체계가 없어요...

베르그송이라 ㅋ 저도 정말 열심히 읽었던 사람인데 ㅋ 서재에 꼽힌 그 책이 눈에 띄네요 ㅋ <불안의 책>이 그렇게 좋나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 항상 불안해서 말이죠 ㅋ

yamoo 2016-06-03 11:14   좋아요 0 | URL
어이구! 이게 뉘 십니까! 루쉰님 아니십니까! 도체 어디계시다가 나타나셨는지..

무쟈게 반갑습니다. 이제 서재활동 하시는 건지요~

루쉰 님 리뷰 읽었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그려~^^

oren 2016-06-0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그송이 쓴 책들뿐만 아니라, 베르그송에 관한 책들도 많은 게 흥미롭네요. 오래전에 저도 눈으로 구경만 했던 삼성출판사의 책등에 박힌『시간과 자유의지』라는 제목도 여기서 다시 보니 정말 반갑네요. 저는 그 책이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의 영어번역판 제목인줄 훨씬 나중에서야 알았답니다.

그나저나 번역에 관한 yamoo 님의 거듭된 문제 제기를 접하고 보니, 우리나라의 열악한 사정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좀 더 나아지려나 싶은 암담한 생각도 좀 드네요. 원저자의 뛰어난 걸작품을 졸지에 졸작으로 만드는 건 `일종의 배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 * *

젠장맞을, 대체 왜 그런단 말인가? 저자가 gehen이라고 했으면 왜 `가다`라고 하지 않는가? 역자 선생들이여, 제발 우리를 함부로 주물러 대지 마시오!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yamoo 2016-06-03 11:21   좋아요 0 | URL
네, 베르그손에 관한 책들도 눈에 띄는 대로 데려오고 있습니다.ㅎ 요즘 보니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들도 대거 출판되고 있는데...10년 전에는 거의 없던 일이 불과 몇년 사이에 전공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인가 봅니다.

헌데, 베르그손은 아직까지 좀 감감합니다. 앞으로 비트겐슈타인에 관찬 책만큼 베르그손에 관한 책들도 쏟아졌음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주저 번억본이 타출판사에서 제대로 나와줬음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시론을 보고서 알았어요. 시론이 시간과 자유의지라는 걸...근데, 미국 원서도 시간과 자유의지라고 타이틀을 단 책드이 대부분인거같아요~

감은빛 님이 댓글을 보니 더 암담합니다. 이런 불량품 번역 관행이 아주 굳어진 거 같아서요. 단기간에 고쳐지긴 매우 힘든 구조인 듯합니다.

배신을 하도 당하다 보니, 분노를 넘어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이 좀더 각성을 했으면하고, 소비자들의 어떤 운동 비슷한 걸 해서 이 나쁜 관행을 타파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나라의 지식 척도가 아주 밑바닥이니, 이건 정부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듯한데....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그리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듯해서 좀 거시기 합니다.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에 인용된 말이 참 재미나네요^^

transient-guest 2016-06-0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읽는 건 그래도 쉬운데, 리뷰를 잘 쓰는 것이 어렵네요.ㅎㅎ 전 쉬운 책을 위주로 보면 좀 빨리 많이 읽고, 고전은 아무래도 더딘 편입니다. 번역문제는 심각한데요, 한길그레이트도 그랬다니 놀랍니다. 책값도 비싸고 제본도 훌륭해서 소장하고픈 시리즈인데 말이죠...

yamoo 2016-06-08 14:51   좋아요 0 | URL
제겐 읽는 게 너무 힘듭니다. 특히 소설의 경우 처음 십여 페이지에서 완독 여부가 결정되는 거 같아요..ㅜㅜ

인문 및 고전 번역서는 개같은 번역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얇은 책도 몇 일이 걸리니..--;;

리뷰 잘 쓰기 힘들죠..^^;; 누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는..ㅎ

한길 그레이트 북스...이거 좋은 번역, 아주 손으로 꼽습니다. 100권도 넘게 발간됐는데, 거의 쓰레기 번역이 대부분인거 같아요. 골라서 읽는 책마다 그러니....시리즈 전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고양이라디오 2016-06-0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이소오님이 부럽습니다ㅠㅠ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책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ㅠ

yamoo 2016-06-08 14:51   좋아요 0 | URL
직장생활은 독서 생활을 방해하는 쥐약 쯤 되지욤..ㅎㅎ
그래두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읽는 분들 보면, 대단합니다~

보슬비 2016-07-0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5월에 60권 읽었어요. 하지만 반은 만화예요. 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리뷰도 잘 안쓰고, 독서일기는 밀리고.......... ^^;;

yamoo 2016-06-08 14:52   좋아요 0 | URL
헉! 만화책이라두 그렇지....오우~ 능력자 이십니다. 영어 원서도 달마다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거 같은데...

뭐, 리뷰 쓰는 거야 누구나 다 밀리고 있는 상황이니 .. ^^;;

보빠 2016-06-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씨는 직업이 책에 관련된 일을 하십니까??
뭐 이렇게 책이 많아요?

yamoo 2016-06-21 13:2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ㅎ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 계속 책을 사재기 하나 봅니다..ㅎㅎ

이 알라딘 동네에서 저는 아주 미미한 존재입니다만..^^;; 책이 많은 분들에 대하면 암것두 아니지요~ㅎ

보빠 2016-06-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씨는 출판업이나 도서관쪽 일도 아닌데 이렇게 책을 많이 가진 것 보면 결론은 딱하나입니다. 부자이십입니다...전 집이 좁아서 놔둘때가 없어서 못사는데.ㅎㅎ 즐독하세요.

yamoo 2016-06-22 10:11   좋아요 0 | URL
ㅎㅎ 재밌는 추론을 하셨네욤^^ 물론 그런 생각이 일반적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월급을 타면 거의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이 많은 거고, 전혀 부자가 아니라서 공간 때문에 책을 처분하고 있습니다..ㅎ 임제어록님이 저보다 부자일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감히 추정해 봅니다~^^

보빠 2016-06-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독서를 사랑하는 진짜 애독인이네요.좋네요. 특히 비트겐슈타인과 베르그송 책이 눈에 띄네요. 저도 중관불교와 비트겐슈타인, 유식불교와 베르그송을 연관지어서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두 서양 철학자를 좋아하시니 반갑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 어렵던데.. 전 포기.... 비트겐 책 이렇게 많은 분은 처음 봅니다. 사람들 대부분 비트겐 한 권 읽다 포기하는 바람에 다들 한 권만 가지고 있던데..ㅋㅋㅋㅋ

보빠 2016-06-22 13:19   좋아요 2 | URL
힌트드릴께요..무조건 비트겐슈타인 저서를 한방에 다 사세요.그럼 그 돈이 아까워서 입문서 해설서 몇권사고 ....그러다보면 비트겐슈타인 책이 많아져요.ㅎㅎ

양철나무꾼 2016-07-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이게 얼마만이래여?(버선발로 호들갑 중~^^)
잘 지내신 겝니까?

너무 오래 적조하셨다고 하려고 보니,
저와 비껴 가셨을뿐 뜨문뜨문 글은 올리셨네요.

책에 대해서 뭐라고 코멘트 하고 싶지만,
여전히...제겐 범접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우연히 들렀다가,
언제던가 더운 여름 날 드셨다던 복숭아맛 아이스 티가 생각나 몇 자 끄적여 봅니다.

참, 책은 나왔나요?
광고 하시면, 사 읽겠습니다~ㅅ!

yamoo 2016-07-31 11:33   좋아요 0 | URL
양철 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는 그럭저럭 지냅니다. 잘 지내면 오죽 좋겠습니까?!ㅎ

뭐, 적조했다고 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양철 님의 리뷰는 올리시는 글 마다 보는 편입니다만, 이상하게도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는 책만 읽으시는 거 같아 댓글달기가 좀 거시기 했습니다. 몇 번 쌓이니, `적조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거 같습니다.ㅎ

책은 나왔지만,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아 광고하지 않았슴다~ 좀더 좋은 책을 쓴 다음 광고하겠어요!ㅎ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고 반갑네요~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