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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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순간들의 무수한 지속이다.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순간을 산다. 그 순간들은 우리의 몸에 각인되어 기억으로 체화되고 현재의 순간을 만나 과거의 기억들은 새롭게 현재에 개입한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삶의 속성이다.

 

이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감정이라는 부산물을 만난다. 그 감정은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억(추억)이 순간적으로 응축되어 이미지화된 실체가 감정이라는 점. 이는 삶의 단면 속에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학은 이 감정을 이야기로 담는 예술 영역이다. 잘된 작품은 삶의 페이소스가 플롯 속에 오롯이 담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목적이고 예술이 지향하는 바라 할 것이다.

 

트레버의 마지막 단편집인 <마지막 이야기들>(문학동네, 2023)을 읽었다. 마지막 책까지 그의 작품들은 문학이 추구하는 카타르시스를 완벽히 선사한다. 단 한 작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한결같다. 읽고 또 읽게 되며 행간을 음미하게 된다. 그런 후에 오는 아련한 마음의 황량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특이하게도 그 황량함과 쓸쓸함이 전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 현재를 살고 있다는 삶의 생생함이 단편이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고독과 비애를 담은 단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근본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게 한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게 되거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게 상처이든 사랑이든 상실이든 우리는 그에 반응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어느 시점에서 점점 잊혀지지만 그 감정과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트레버의 작품들을 읽으면 그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이 아련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황량해 지지만 이를 통해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삶에서 위안이라는 것을 나는 작가의 단편집을 통해 그 단어의 의미를 처음 확인하는 경험을 했다.

 

여기 실린 10편의 단편들은 모두 주옥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겨울의 목가>, <여자들>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삶의 페이소스를 함축적이고 절제된 글에 담아내어 깊고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단편들이다. 마지막 몇 문장을 통해 단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일꾼들이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선다. 붉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그들의 장홧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메리 벨라는 불안감을, 그리고 어쩌면 연민을 감지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웃어넘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에게는 그 사랑이 그녀 의 그림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녀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방들과 장소 에 있음을 일꾼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사랑이 시들지 않을 것임을, 길고 느린 죽음이나 평범해진 사랑은 없을 것임을 일꾼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의 목가, p.206)



겨울의 목가마지막 부분이다. 이 몇 줄을 통해 작가는 메리 벨라(여주)의 감정을 아주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읽는 독자들은 벨라의 생각을 읽으며 아주 깊은 사랑의 상실감에 공명한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첫 문단을 작가가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지 깨닫고, 여주 메리 벨라의 기대감이 어떻게 상실로 이어지는 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마지막을 첫 5문장을 통해 결말의 복선을 아주 멋지게 깔아놓는다. 이것을 처음 읽어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다. 마지막 문장을 봐야만 안다.

 

그래서 큰 여운의 감정을 안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트레버의 단편들은 거의 모두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별 것 아닌 사건이 마지막 몇 문장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전제와 사건들은 마지막을 위한 절묘한 암시와 복선이다. 2-3번 읽으면 작가의 역량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이 돌아왔다볼품없는 사춘기에 이르러 더 거칠고, 키도 더 크고, 더 험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그녀의 물건들을 돌려주러 온 게 아니었고, 곧장 걸어들어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그녀는 거기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인간의 나약함이 사랑과, 혹은 천재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는 데만 너무 골몰했으니까.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p.17)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마지막 부분이다. 사실 트레버의 마지막 단편집에서 내가 제일 감명 깊게 읽은 단편이다. 작가는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를 노처녀와 소년 그리고 피아노를 매개로 삶의 미스터리가 하나의 경이임을 깨닫게 한다.

 

9페이지 분량이지만 작가가 두 인물을 통해, 특히 미스 나이팅게일을 통해 말 해주는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에 대한 페이소스는 고통과 슬픔을 넘어선다. 그리고 삶을 관조하게 한다. 그러하기에 작가가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담담한 서사는 우아하고 매혹적이다.

 

윌리엄 트레버에 따르면 단편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들 단편을 읽으면 삶의 진실이 폭발하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 압축된 서사가 주는 경이감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편이 주는 삶의 매혹과 서사의 절제미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 사료된다.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단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체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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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25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달에 현대문학 것 윌리엄 트레버, 샀어요. 거기에는 님이 인상적으로 읽으셨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겨울의 목가>, <여자들> 등이 없네요. 아쉽게도...ㅋ
보람 있는 독서 하셨네요. 좋은 소설 읽고 나면 기분이 참 좋지요.^^

yamoo 2023-11-27 09:07   좋아요 0 | URL
현대문학 세계단편선 시리즈는 정말 탐납니다. 모두 사는 건 공간 상 문제가 있어 관심 있는 작가만 사자는 결심으로 한 두 권 사서 모으고 있는데, 선별된 작품들이 모두 괜찮아 보입니다!ㅎㅎ

네, 현대문학판 트레버 단편집에는 없어요~~ 문학동네판으로 보셔야 할 듯해요..^^

새파랑 2023-11-25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레버의 함축적이고 절제된 글들은 처음에 빠지긴 쉽지 않지만 한번 빠져들면 너무 좋은거 같아요. 비교하면 안되지만 다른 단편들을 읽다보면 트레버 생각이 납니다 ㅋㅋ

yamoo 2023-11-27 09:10   좋아요 1 | URL
첨엔 읽다가 무슨 소린지 몰라 다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이 있어요. 하지만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트베버를 읽는 시간이 매우 귀중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맞습니다. 다른 단편들을 읽다보면 트레버 생각이 나는 건 막을 수 없어요..ㅎㅎ
트레버와 다른 지점에서 고골의 단편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모파상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얼른 읽어보려구요~

겨울호랑이 2023-11-2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그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이 아련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황량해 지지만 이를 통해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말은 과거의 부정적으로 상처가 되어 자신에게 박혔던 감정들이 이제는 온전하게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실감한다는 뜻일까요... yamoo님 말을 통해 문학을 통한 자신의 발견과 성장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yamoo 2023-11-27 09:12   좋아요 1 | URL
네..비슷합니다. 관조하게 된다는 것이 좀더 정확할 듯해요.

좋은 문학 작품은 자신을 마주하게 하고, 인간이 가진 보편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 같아 계속 찾아 읽게 됩니다만...발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ㅎㅎ

자목련 2023-11-2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참 좋았어요. 야무 님의 리뷰로 한 번 더 좋음을 확인합니다!

yamoo 2023-11-27 16:54   좋아요 0 | URL
자목련 님은 이 책을 7월에 읽으셨네요. 역시 별5개....
좋은 작품은 다독가들이 먼저 알아보는 가 봅니다.
헌데, 이런 소설을 만나기 참 어렵더라구요. 10권 읽으면 1권 발견할까말까...
다행히 알라딘 마을에는 소설 다독하는 분들이 많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ㅎㅎ 그래도 제가 발굴한 작품들도 있긴한데...지금은 절판이라..^^;;
 
잘못 들어선 길에서 (구) 문지 스펙트럼 17
귄터 쿠네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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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SF소설 덕후였다. 김용의 대하역사 소설을 다 읽고 시쿤둥해질 즈음 발견한 아시모프의 소설 시리즈. <강철도시><로봇>은 내 20대의 동반자였다. 이후 걸출한 SF소설들을 거쳤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을 즈음 내게서 멀어졌다. 아마도 에코의 소설에 심취하면서 나의 문학 편력은 시작됐을 거다.

 

그런데 SF소설은 장르적 기대감과 함께 한계가 분명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치나 사회비판적 의식의 부재였다. 그래서 가볍게 읽는 장르 소설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비록 출중한 SF 작가와 작품들이 간간히 발견되긴 했지만(예컨대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 그 수가 너무 적었다. 물론 SF소설의 장르적 특색은 여전했다.

 

요 몇 년 간 에스에프 소설과는 거의 담 쌓고 지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귄터 쿠네르트라는 작가의 <잘못 들어선 길에서>(문학과지성사, 2000)을 읽었는데 정말 놀라운 소설이었다. ‘SF소설을 이렇게도 쓸수있구나!’라는 감탄을 내뱉게 했으니까. 쿠네르트라는 작가는 처음 접했다. 단편 소설집임에도 한 작품 마다 임팩트는 상당했다.

 

보통 독일 작가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쿠네르트는 동독 작가임에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SF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보였다고 개인적으로 촌평하고 싶은 심정이다. 작가는 상황과 소재만 SF적 장르를 가져왔을 뿐 그 서사의 핵심은 동독 사회 구조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다.

 

동독 시절이면 냉전시대이다. 냉전 시대에 작가가 써내려간 짧은 서사는 시대를 초월하여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한 비판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재밌기까지 하다. 읽다 보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특히 <병 통신><가정 배달>이 그렇다.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시정하기 위한 제도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올림피아2>, <러브스토리-메이드 인 DDR>,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져야 한다> 등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돋보인다. 짝사랑과 불륜이 미래 기술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부조리하게 보여주는 단편들이다. 특히 <대리인>의 경우 사랑을 진화론적으로 풍자하는 시도가 돋보였다.

 

12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 선별집이지만 주제와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어 읽는 맛이 배가 된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보고 싶다. <잘못 들어선 길 및 또 다른 방황들>이라는 1988년 원판본이 꼭 재번역 되길 강력히 희망한다.

 

주제를 서사로 구현해 내는 작가의 역량이 매우 빼어나서 단편 12편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입맛만 다셔야겠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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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20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여간해서 별 다섯 개 안 주시는 줄 아는데 꽤 만족스러우셨나 봅니다.
좀 오래된 책이긴한데 책값도 싸네요.
전 아직 에스에프 익숙치 않지만 함 관심 가져 보도록 합죠.ㅋ

yamoo 2023-10-23 09:12   좋아요 1 | URL
네,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를 이어서 읽었는데, 좋은 소설을 읽는 시간이 왜 가치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문지스펙트럼의 세계문학은 정말 선견지명이 있었던듯해요. 여기 리스트에 목록 올리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가 걸출한 작품들입니다. 대산이나 을유에서 펴내는 세계문학 작품집에 들어 있는 듣보잡 작가라는 사람들 일부가 문지스펙트럼에 있는 걸 보고 놀랐죠. 쿠네르트는 어느 출판사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완연된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죠. 이렇게 걸출한 작가의 작품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지스펙트럼의 소설들이 다시 간행하고 있으니 기다려보면 다시 재간될 듯합니다...ㅎㅎ 2003년인가...그때 이미 무질의 단편집이 여기서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울만합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10-2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화씨451>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르귄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책도 찾아봐야겠네요!^^

yamoo 2023-10-24 09:17   좋아요 1 | URL
르귄도 괜찮지요..ㅎㅎ 브레드버리의 화씨451은 브레드버리 작품 중 가장 발군이더군요..^^

그레이스 님, 에프에프 좋아하신다면 이 책 강추합니다! 정말 의미있는 책이에요~~
 
파울리나 1880 대산세계문학총서 112
피에르 장 주브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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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을 읽을 때, 처음에 느낌이 별로라고 느끼면 바로 손절해야 매몰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 초반부, 즉 50여 페이지를 읽고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대체로 그렇다. 예외는 문장이 아주 유려하거나 가독성이 좋게 편집된 작품인데, 이 소설은 후자에 속했다.

 

더군다나 피에르 장 주브라는 프랑스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생소한 작가다. 오래 전 일본에서 건너온 세계문학 전집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작가였고, 최근에 민음사나 을유문화사 등 새롭게 단장한 세계문학전집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작가였다.

 

그런데 문지의 대산세계문학 총서 112권에 장 주부의 <파울리나 1880>(문학과지성사,2012)이 출간된 거다. 이건 아마도 대산세계문학 시리즈라서 가능한 듯하다. 이 총서에는 정말 희귀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목록을 보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어쨌거나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이 무척 지루했다. 흡입력 있는 사건이랄 게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타이틀에서 보듯이 파울리나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소개하기 때문이리라. (이와 같은 인물 전기 형식의 소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대체로 그 주제가 사랑으로 수렴되는데, 작가마다 사랑의 서사가 다른 것은 뭐 상식에 속하는 편이다. 신파로 끝나거나 아님 사랑의 쟁취로 끝나거나. 이도저도 아닌 제3의 선택으로 끝나거나. 뭐 사랑했던 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뭐 그런 얘기.

 

이 소설 역시 위에서 분류한 3가지 중 하나로 귀결된다(하지만 여 주인공은 안 죽는). 뻔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 즉 형식적 미학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매우 짧은 118개의 장과 상대적으로 매우 긴 마지막 11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은 다시 프롤로그 격인 푸른 방(1~2)’과 에필로그 격인 햇빛에서(119)’를 제외하고 토라노(3~32)’, ‘1870~1876(33~62)’, ‘성모 방문(63~92)’, ‘검푸른 천사(93~118)’ 4개의 부로 묶여 파울리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물론 그녀와 미켈레 백작의 사랑이야기도.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지역의 영주인 주세페 판돌리니 가의 딸이 매우 아름답게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딸은 매우 종교적인 성향을 가졌다. 아버지와 오빠의 시기와 감시 속에서도 몰래 유부남이자 아버지 친구인 백작을 사랑하게 된다.

 

파울리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 몸에 성()과 욕()이라는 상반되는 두 힘에 끌리게 된다. 그래서 마치 두 인물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마음은 유부남을 사랑하며 육체적 쾌락을 갈구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이게 명백한 죄라는 사실에 너무도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수녀원에 가서 마음을 정화해 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수녀원을 나온 후 연인 생각에, 백작이 사랑했던 자신의 사진을 그에게 보내 다시 만나게 되고, 격정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나서 권총으로 백작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형을 받아 살다가 풀려난다는 게 주된 얘기다. 요즘 잘나가는 막장 드라마나 영화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줄거리.

 

118장에 파울리나 판돌피니의 생애가 요약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게 이 소설의 줄거리라 봐도 무방하다. 이 작품은 결국 파울리나의 생애가 핵심이기 때문.

 

1849614일 밀라노에서 출생. 마리오 수세페 판돌피니와 그 아내 루치아 카롤리나의 막내딸.

독신, 무직.

1877년부터 1879년까지 만토바의 성모 방문 수녀원에서 수련 수녀로 지냄.

1880828일 피렌체에서 정부(情夫)인 미켈레 칸타리니 백장을 살해함.

1881412일 자로 피렌체 법정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음. 토리노의 감옥에서 형을 살다가 1891615일 사면됨. (p242)

 

사실 표면적으로는 별것도 없는 진부한 사랑 얘기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의 형식미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래 피에르 장 주부는 시인으로 출발했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의 시에 심취하여 문인들과 함께 <황금 띠>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첫 시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인 출신이 소설을 쓰면 어떤 작품이 산출되는지 이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산문이 매우 시적이고, 4부의 성모 방문편은 아예 기도문을 빙자한 시를 대놓고 시전한다. 심지어 65장은 한 문장이다. “나는 은총을 잃고 전락했지만 행복하다.”

 

이 뻔한 작품을 끝가지 읽을 수 있었던 동력은 이와 같은 짧은 장의 매력 때문이다. 짧으면 1문장 많으면 3페이지를 넘지 않는 장들은 매우 함축적인 문장들과 압축적 서사 전개로 파울리나의 삶을 끝까지 살펴볼 수 있게끔 한다.

 

보통 여성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전기적 성향의 소설들은 여주인공이 대개가 빼어난 미인이다. 그 옆에는 항상 돈 많고 잘생기고 부러울 게 없는 백마 탄 남자가 연인으로 등장한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주인공도 클리셰. (헌데 책 표지의 그림 여인은 내 생각에 정말 짜증나게 안 생겼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작품은 3류 연애소설에 그쳤을 거다. 이 작품이 이런 진부함을 가볍게 뛰어 넘는 건 두 가지 요소 때문이지 않을까. 하나는 위에서 밝혔다시피 형식미이고, 다른 하다는 캐릭터의 성격이다. 주인공인 파울리나가 가진 그 이율배반적인 성향을 작가는 무의식의 심연을 통해 들여다보기를 시도한다.

 

물론 아르투어 슈니츨러처럼 정신분석적 메타포를 능수능란하게 작품에 녹여내지는 못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무의식의 심연을 심리적 초조함으로 형상화하지도 않았다. 단지 투박하지만 내면의 그 상반된 두 힘의 이동을 서사를 통해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죄의식과 쾌락적 성향, 즉 성적인 성향과 종교적인 성향이 아주 팽팽하여 분열적 성향을 자주 보여준다. 이는 투박하지만 정신분석적으로 인물을 분석할 여지를 주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3류 통속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연대를 참작하면 충분한 작가적 역량이지 않을까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매우 상징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7장에서 파울리나는 토라노 영지에 있는 새끼염소를 매우 사랑했다. 헌데 파울리나를 좋아하지 않던 농부는 다른 염소들을 죽일 때 그 염소도 같이 죽이겠다고 했다. 염소를 구할 시간이 없었던 파울리나는 직접 염소를 죽였다.

 

그녀는 축사로 들어갔다. 염소를 죽이라고, 죽이라고, 하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중략) 그녀는 칼이 염소의 목에 파고드는 것을 느꼈고 그녀의 손은 뜨거운 피로 물들었다. 얼어붙은 듯 그대로 서 있는 그녀의 눈빛은 끔찍할 정도로 공허했고, 오직 가녀린 아랫입술만 파르르 떨렸다.” (p26)

 

이 장면은 113장에서 그대로 차용된다. 염소는 미켈레 백작으로 치환되어 있다. 칼이 염소에 목에 파고든 것처럼 총은 백작의 목을 관통했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고, 얼어붙은 듯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겁에 질리고 절규한다. 파울리나는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이면 대상을 멸함으로써 자기 사랑을 완성하는 성향을 가졌다. 정신분석적 접근이 놓칠 수 없는 인물이다.

 

, 여러 얘기를 장황하게 하긴 했지만, 딱히 추천할 만한 소설은 아닌 듯하다. 재미 면에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듯하다. 다만, 소설의 형식미를 주로 보는 분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보면 더할나위 없는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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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1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 3개라니! 작가가 이 사실을 알면 섭하겠어요.ㅋㅋ
어쨌든 읽어 볼만은 하겠어요.^^

yamoo 2023-05-12 06:41   좋아요 1 | URL
작가는 아주 오래 전 사람이라 뭐, ..ㅎㅎ
아마 유미주의나 탐미주의 계열 좋아하는 분들이면 그래도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이 계열 좋아하는 사람이 좀 드물고, 이 소설은 가독성은 좋은데 진부한 면이 많아 인기가 많이 없을 듯합니다..ㅎㅎ

그나저나 휴대폰으로 댓글 달기는 조심스럽네요. 댓글이 안 달려서 어제와 그제 날려먹은게 많아요..ㅜㅜ

페크pek0501 2023-05-1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책이라면 흥미로울 듯합니다. 심리학, 인간 이해, 정신세계 등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검색해 보겠습니다.^^

yamoo 2023-05-13 09:00   좋아요 0 | URL
페크 님,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소설이긴 합니다만..
정신분석학을 디테일하게 살려 작품속에 녹여내진 못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살던 당시는 정신분석학이 태동하던 시기라서 감안하시고 보면 좋을 듯한데...어쨌거나 정신분석학을 소설에 반영한 초창기 작품군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살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절묘하게 작품속에 녹여낸 슈니츨러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지긴 합니다.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장 주브 보다는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품들을 강추드립니다!!
 
알렉시.은총의 일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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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그대여, 무척 긴 글이 될 거요.”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토로하기 위해 선택한 이 문장은 매우 인상적이고 강렬했습니다.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대작을 만났다라는 느낌이었고,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이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 고전적 소설 한 편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편지 형식의 고백체 소설은 아주 오랜 만인데, 그냥 한 통의 편지를 94페이지에 담았습니다. 장이나 절과 같은 소설의 형식은 찾아 볼 수 없고, 그냥 아주 긴, 사연을 담은 편지 한 통입니다.

 

편지 내용은 동성애자인 남편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식으로 돼 있지만, 그게 자기변명이 아니라, 한때의 경솔한 약속에 대한 사죄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토로하는 글이지만 문장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력합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나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1인칭 화자가 삶을 반추하며 말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특히 주인공이 말하는 방식에 반해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범할 기회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소. 이내 우리의 행동은 징후로서의 가치밖에 지니지 않음을 깨달았소. 우리의 타고난 기질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거요.”

 

처음의 생각이 시간이 지나 다르게 깨달아지고, 이를 통해 판단으로 나아가는 화자의 말하기 방식은 글을 읽는 내내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합니다. 하오체 문장은 고전적이지만 화자의 고백에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미를 줍니다.

 

그리고 다음 부분을 읽게 되었을 때 줄을 치고 별표를 하며 3-4번 반복해 읽었습니다. 평소 내 생각과 너무도 일치하는데, 멋진 문장들로 화자가 말해주니 감동이 배가 되었습니다. 베그르손을 깊이 연구한 철학자가 생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요. 좀 길게 인용해 봤습니다.

 

삶은 그냥 삶이오. 삶은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좋은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저주요. 우리는 사는 거요, 모니크.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특별하고 유일한 삶을, 우리가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과거 전체에 의해 결정된 삶, 아주 작은 것으로도 미래 전체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요. 자기의 삶. 오로지 그 자신만의 것인, 두 번 있지 않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했는지 단 한 순간도 확신하지 못하는 삶 말이오. 삶 전체에 관한 이 말들은 삶의 매 순간에 대해서도 똑같소. 타인은 그저 우리가 있고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볼 뿐이오.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삶이 이러저러하다는 데 놀라면서도, 그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오. 우리의 삶을 심판할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그 삶에 속해 있소. 삶을 향한 찬양도 비난도 삶의 일부인 거요. 삶은 언제나 삶을 비출 뿐이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 각자에게 세상은 오로지 우리 삶에 와 땋을 때에만 존재하는 거요. 그리고 삶을 이루는 요소들은 분리될 수 없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본능들과 우리가 드러내지 못하는 본능들은 결국 같은 곳에서 나왔소. 그중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도 함께 바뀔 수밖에 없지. 말은 이제, 너무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에, 모니크, 더 이상 그 누구한테도 적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오. 어떻게 과학적인 용어 하나가 하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이오. 하나의 사실조차 설명할 수 없으면서. 그저 가리킬 뿐이지. 늘 비슷하게 가리키는데, 그런데도 다른 삶 속에 있는 것 같은 사실일 수 없고, 하나의 삶 속에 있을 때조차도 아마도 같은 사실일 수 없다오.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하오. 해명하기 쉽고, 어쩌면 당신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 해도 나 스스로를 설명하는 일은 그대로 남는다오. (pp32-33)

 

정말 놀랍지 않나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이 작품을 발표한 때가 20대였습니다. 그것도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는 데뷔작에서 말이죠. 20대 여성 작가가 중년의 남성 화자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이 정도까지 설파할 수 있다는 데에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책에는 <은총의 일격>도 수록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알렉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 인용된 부분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다른 모든 문장은 이 부분을 위한 사족같이 여겨졌으니까요. 정말 끝내주는 책이라 아니할 수 없고, 작가 유르스나르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강추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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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26 14: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평을 받는 작품은 궁금해서 안읽을수가 없더라구요 ㅋ 저 읽어보겠습니다~!!

yamoo 2023-04-26 19:3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은 일독한 후 어떤 느낌이실지 궁금합니다. 리뷰로 남겨주시면 얼른 가서 탐독하겠습니다..ㅎㅎ

정말 대단한 데뷔작입니다!

페크pek0501 2023-05-01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추하신다니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검색해 봐야징... 후다닥!!!)

yamoo 2023-05-02 10:12   좋아요 0 | URL
이 책, 페크 님께서 읽으시면 어떠실지...
전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강추해 드립니다~ 일독하시면 아주아주 좋을 듯합니다!!^^

그레이스 2023-05-01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입력합니다.

yamoo 2023-05-02 10:1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두 일독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되풀이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이상해 옮김 / 북폴리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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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에서 누보 로망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알랭 로브그리예의 유작 <되풀이>(북폴리오, 2003)를 읽었다. 문학 사조에서 누보 로망이라 하면, 내겐 재미가 더럽게 없는 소설로 분류된다. 이건 뭐 편견이긴 하지만, '누보 로망' 하면, 전통적 소설의 형식을 배격하기에 인칭, 서사적 맥락, 주제 등이 전혀 없거나 매우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난해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누보 로망 어쩌구 하면 나는 아얘 쳐다도 안 봤다. 교과서에서는 반소설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매우 난해한 작품만 나열되어 있어 별로 땡기지 않았다. 내게 소설의 미덕은 재미난 이야기라서 그것 자체가 없는 작품은 나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랭 로브그리예는 그 사조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작가였기에 읽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질투>(민음사, 2003)를 살짝 봤는데, 그 한 시퀀스를 묘사해 내는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읽지는 않지만 컬렉션 해 온 작품들 중 르 클레지오, 로제 그르니에의 작품들과 같이 구매한 작품이 <되풀이>였다. 제목도 참 맘에 들지 않았지만, 로브그리예라서 그냥 컬렉션했다고 볼 수 있다.

 


헌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있는 책을 주섬주섬 옮기다가(물론 책이 너무 많아 버릴 책을 선별하기 위해서) <되풀이>의 첫장을 펼쳤는데, 보통 헌사가 쓰인 제일 첫 페이지에서 키에르케고의 <반복>의 한 문장을 보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용한 부분이다.

 


되풀이와 되새김은 동일하지만 서로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되새기는 것은 이미 있었던 일, 따라서 뒤쪽을 향한 반복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되풀이는 앞쪽을 향한 되새김일 것이기 때문이다. -쇠렌 키에르케고, <되풀이>

 


인용한 책은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이었지만, 로브그리예는 되풀이로 번역하여 문장을 인용했다. 사실 나는 오래 전에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을 읽었지만, 인용된 문장이 그 책에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반복을 되풀이와 되새김으로 나눈 키에르케고의 탁견에 깊은 인상을 받아 로브그리예를 읽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질투>와는 차원이 다른 뭔가가 잡아끌었고, 첩보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시작되는 <되풀이>는 나의 구미를 돋우기 충분했다. (난 첩보 소설 매니아다!)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과 불가해한 사건들은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넘기게 해 줬다. 불가사이한 사건들의 퍼즐을 맞추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었지만.

 


책을 덮고 로브그리예와 누보 로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누보 로망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 작품은 로브그리예가 20년의 침묵을 깨고 근 80의 나이(2001년)에 선보인 작품이란다. 만년의 유작이 된 작품이 흥미진진한 추리기법과 첩보소설의 형식을 띠었다는 거에 놀랐고, 가독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그가 왜 타이틀을 <되풀이>라 명명했는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무릅을 쳤다.

 


<되풀이>는 표면적 의미가 반복이지만 불어에서는 짜깁기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불가해한 사건들과 분열된 인물(이 작품의 주된 인물은 분열 증상을 보인다)의 퍼즐을 맞추게 한다. 단편적이고 이상한 사건들은 분열된 인물이 불연속적인 시간을 지나며 일으킨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을 다시 맞추는 행위, 그게 바로 <되풀이(짜깁기)>였다.

 


이 소설은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시간 순으로 목차가 짜여있지만 시간 순대로 읽으면서 첫째 날을 다시 읽고 둘째 날을 지나 다섯째 날까지 날짜를 한 번 에 쭉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되돌려 읽고 되풀이해서 읽어야 했다. 궁금해서. 이 인물이 그 인물인지, 시간 대가 어제인지 오늘인지 계속 되풀이하며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궁금증이 지속됐기에.

 


결국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면서(전형적인 메뵈우스의 띠 구조는 아니다!)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 어떤 이미지를 띠는지 그려볼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불가해한 사건과 알 수 없는 기억의 부재 그리고 의식의 혼돈은 삶의 부조리그 자체였다. 그래서 <되풀이>를 짧고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끝으로 이런 리뷰를 남기게 한 감명깊은 다음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거기에 동일자인 동시에 타자, 질서의 파괴자이자 수호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현존인 동시에 여행객인 누군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와 깥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우아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이미 뱉어진 옛 낱말들은 늘 똑같은 낡은 이야기를 이야기하며 반복된다. 세기에서 세기로 전해지는, 한 번 더 되풀이된, 그리고 영원히 새로운 이야기를……” (p212)

 

 

[]

0. 이 리뷰가 <되풀이>의 알라딘 첫 리뷰라는 사실!

1. 이 작품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실의 모호성과 주체의 분열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 십분 공감한다.

2. 여기에도 질리도록 세세한 묘사가 넘쳐난다. 아주 신기한 것은 그 세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퀀스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3.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작품의 근간에 흐른다. 뿐만 아니라 소아 성애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이 신선했다.

4. 여아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가 <롤리타>를 가볍에 압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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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23-03-2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보로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이야기 같습니다 예전에 질투를 읽다가 던져버린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겠네요!

yamoo 2023-03-28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질투를 읽다가 던졌습니다. 치밀한 묘사 때문에 각인된 작가인데, 고민하다가 읽었습니다. 전 되풀이가 꽤 인상깊어서 질투를 다시 읽어야 할 듯합니다!ㅎㅎ 흥미로운 작가의 재발견이었습니다~~ㅎㅎ

stella.K 2023-03-27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질툰가 뭐 하나 읽다 중고샵에 넘겼나 그랬는데
이렇게 쓰시니 읽어보고 싶은데 품절이란 게 잘된 건지 못된 건지 모르겠네요.ㅋ

yamoo 2023-03-28 07:41   좋아요 2 | URL
보통 질투를 읽으면 대부분의 반응이 그렇습니다...ㅎㅎ 읽다가 덮죠..ㅎㅎ
근데 되풀이는 많이 달랐고 읽을만했고 꽤 인상깊었습니다. 근데 이 책이 절판이라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책을 읽고나서 알았네요..--;;